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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S구두과학기술원,구두공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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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문학 마당 스크랩 피천득/
구두과학 추천 0 조회 69 10.05.02 12:4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피천득"의 시, 수필 중에서~

 


                                                                                                                 

                     피천득 님의 인자한 모습

 

호는 금아(琴兒). 1937년 중국 상하이[上海]에 있는 후장대학[?江大學]영문과를 졸업했다.

일제강점기 때 경성중앙산업학원 교사로 근무했고 해방 직후 경성대학 예과교수를 거쳐 1946~74년에는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1954년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하버드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1930년 〈신동아〉에 시 〈서정소고〉와 1932년 〈동광〉에 〈소곡〉을 발표해 등단했다.

사상과 관념을 배제하고 아름다운 정조와 서정을 읊었는데,

첫 시집 〈서정시집〉(1947)에는 동심과 자연을 노래한 시가 상당수 실려 있다

 

맛은 감각적이요, 멋은 정서적이다.
맛은 적극적이요, 멋은 은근하다.
맛은 생리를 필요로 하고, 멋은 교양을 필요로 한다.
맛은 정확성에 있고, 멋은 파격에 있다.
맛은 그때뿐이요, 멋은 여운이 있다.
맛은 앝고, 멋은 깊다.
맛은 현실적이요, 멋은 이상적이다.
정욕 생활은 맛이요, 플라토닉 사랑은 멋이다.

그러나 맛과 멋은 반대어는 아니다.
사실 그 어원은 같을지도 모른다.
맛있는 것의 반대는 맛없는 것이고,
멋있는 것의 반대는 멋없는 것이지
멋과 맛이 반대되는 것은 아니다.

맛과 멋은 리얼과 낭만과 같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맛만 있으면 그만인 사람도 있고
맛이 없더라도 멋만 있으면 사는 사람이 있다.
맛은 몸소 채험을 해야 하지만, 멋은 바라보기만 해도 된다.
맛에 지치기 쉬운 나는 멋을 위하여 살아간다.
 


피천득 / 인연 중에서




그의 눈은 이슬과 같이 맑습니다.
때로는 흐리기도 하고 안개가 어리기도 합니다.
그는 싱싱하면서도 애련합니다.
명랑하면서도 어딘가 애수를 깃들이고 있습니다.
원숙하면서도 애띤데를 지니고 지성과 함께 애묵합니다.

그는 모양이 있습니다.
걸음걸이는 가벼우나 빨리 걷는 편은 아닙니다.
성급하면서도 기다릴 줄 알고
자존심이 강하면서도 수줍어할 때가 있고,
화려하면서도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양보를 아니하면서도 밀릴 줄 압니다.

그는 아름다우나 사람을 매혹하지 않는 푸른 소나무와 같습니다.
옷을 늘 단정히 입고 외투를 걸치는 버릇은 결코 없습니다.
그는 언제나 환경에 적응할 줄 압니다.
그는 언제난 찻잔을 윤이나게 닦을 줄 알며
 이 빠진 접시를 버릴 줄도 압니다.

그는 지위. 재산. 명성 같은 조건에 현혹되어
 남의 가치평가를 잘못하지 않습니다.
그는 남이 감당하지 못 할 기대를 하고 실망하지 않습니다.
돈의 가치를 알면서도 인색하지 않고 그러나 시간에 만은 인색합니다.
남의 회합이나 남의 초대에 가는 일이 드?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한가한 시간이 많습니다.
문학을 입으로 하는 그에게는
 쉬는 시간에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노래와 산보를 합니다.
그의 시는 넓고 많은 생각과 깨끗하고 청순한 느낌이 어립니다.
그는 이따금씩 사랑이 귀한것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사랑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짤막하게 대답하곤 합니다.
 
그는 마음의 공허를 그냥 둘지언정
무조건 아무것으로나 채우지는 아니 합니다.
그는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사랑하게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받아서는 아니될 남의 호의를
정중하고 부드럽게거절할 줄 압니다.
그는 과거의 연인을 웃는 낯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그는 몇몇 사람을 끔찍히 아낍니다.
그러나 아무도 섬기지는 아니 합니다.
 
그는 정직 합니다.
정직은 인간에 있어서 가장 큰 매력입니다.
그는 자기의 힘이 닿지않는 광막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울고 싶을때 울을 수 있는 눈물이 있습니다.
그에게서 유머나 재치있는 말을 받아서 넘기기도 하고
 남의 약점을 찌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럴때는 매우 드?니다.

그는 한 시간 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습니다.
이런때라도 그는 같이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합니다.
그의 하는 말은 정중하고 무게가 있으면서도 다정다감 합니다.
그는 같이 있는 사람과 속삭일 줄 압니다.
그는 긴 머리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연인/피천득





이 순간 내가
별들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두뇌가 기능을 멈추고
내 손이 썩어 가는 때가 오더라도
이 순간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허무도 어찌하지 못할 사실이다.

 

이 순간 /피천득




너같이 영민하고
너같이 순수하고

너보다 가여운
너보다 좀 가여운

그런 여인이 있어
어덴가에 있어

네가 나를 만나게 되듯이
그를 내가 만난다 해도

그 여인은
너는 아니다


너는 아니다 /피천득




나무가 강가에 서 있는 것은
얼마나복된 일일까요

나무가 되어 나란히 서 있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일까요

새들이 하늘을 나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일까요

새들이 되어 나란히 나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일까요

 

축복/피천득




정열
투쟁
클라이맥스
그런 말들이 멀어져 가고

풍경화
아베 마리아
스피노자
이런 말들이 가까이 오다

해탈 기다려지는
어느날 오후
걸어가는 젊은 몸매를
바라다본다.

고백/피천득


 

 


 
헤어진 너의 등을 만지며
꼬이고 말린 가죽끈을 펴며
떨어진 장식을 맞춰도 본다

가을 서리 맞은 단풍이
가슴에다 불을 붙이면
나는 너를 데리고 길을 떠났다

눈 위에 달빛이 밝다고
막차에너를 싣고
정처 없는 여행을 떠나기도 하였다

늙었다---너는 늙었다
나도 늙었으면 한다
늙으면 마음이 가라앉는단다
 
나의 가방/피천득




산길이 호젓다고 바래다 준 달

세워 놓고 문 닫기 어렵다거늘

나비같이 비에젖어 찾아온 그를

잘 가라 한 마디로 보내었으니

후회/피천득


 
 
눈보라 헤치며
날아와

눈 쌓이는 가지에
나래를 털고

그저 얼마동안
앉아 있다가

깃털 하나
아니 떨구고

아득한 눈 속으로
사라져 가는


너 /피천득




1
길가에 수양버들
오늘 따라 더 푸르고

강물에 넘친 햇빛
물결 따라 반짝이네

임 뵈러 가옵는 길에
봄빛 더욱 짙어라

2
눈썹에 맺힌 이슬
무슨 꿈이 슬프신고

흩어진 머리칼은
흰 낮 위에 오리오리

방긋이 열린 입술에
숨소리만 듣노라

3
높은 것 산이 아니
멀은 것도 바다 아니

바다는 건널 것이
산이라면 넘을 것이

못 넘고 못 건너가올
길이오니 어이리

4
모시고 못 사오면
이웃에서 사오리다

이웃서도 못 산다면
떠나 멀리 기오리다

두만강 강가이라도
이편가에 사옵고저

금아연가 /피천득

 

따스한 차 한 잔에
토스트 한 조각만 못한 것

포근하고 아늑한
장갑 한 짝만 못한 것

잠깐 들렀던 도시와 같이

연정 /피천득
 


너는 이제 무서워 하지 않아도 된다.
 가난도 고독도 그 어떤 눈길도

너는 이제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조그마한 안정을 얻기 위하여 견디어 온 모든 타협을.

고요히 누워서 네가 지금 가는 곳에는
너같이 순한 사람들과 이제는 순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다 같이 잠들어 있다.

너는 이제/피천득
 
 

너 / 피천득


눈보라 헤치며
날아와
눈쌓이은 가지에
나래를 털고
그저 얼마동안
앉아 있다가

싯털 하나
아니 떨구고
아득한 눈 속으로
사라져가는
너.

 

 

 

 

후회 / 피천득

 

 

산길이 호젓다고
바래다 준 달

세월 놓고
문닫기 어렵다거늘

나비같이 비에 젖어
찾아온 그를

잘가라 한 마디로
보내었느니..

 

 

 


눈물 / 피천득

 

 

간다 간다 하기에
가라 하고는
가나 아니가나
문틈으로 내다보니
눈물이 앞을 가려
보이지 않아라...

 

 

 

 

 

편지 / 피천득

 

 

오늘도 강물에
띄웠어요

쓰기는 했건만
부칠 곳 없어

흐르는 물 위에
던졌어요.

 
 
1. 지식과 자유 사이.


“어떻게 하면 골프를 잘 칠 수 있나?”라는 물음에 세계적인 골프 선수인 최경주는
“지식(Information)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하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과거 그가 알고 있었던 골프 지식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1993년에 프로로 전향한 그는 잘할 수 있다는 신념과 열정을 가지고
10여 년간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인 후에야 그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골프 관을 자신 있게 피력했다.
“내 골프의 비법은 클립(골프채의 손잡이 부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나는 골프와 수필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일 훌륭한 수필가가 되고자 한다면, 나는 피천득의 대표작 “수필”을 가슴에 안고
살면서 피천득에게서 자유로워질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피천득이라는 고유명사는 수필이라는 보통명사로 불릴 만큼
그가 수필 문학에 남긴 자취는 너무나 크고 찬란하기 때문이다.       



2. 피천득의 대표작.


제목 : 수필.


수필(隨筆)은 청자 연적(靑瓷硯滴)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淸楚)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女人)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으로 난 평탄(平坦)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포도(葡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住宅街)에 있다. (수필의 성격).

수필은 청춘(靑春)의 글은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中年)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情熱)이나 심오한 지성(知性)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오,
그저 수필가(隨筆家)가 쓴 단순한 글이다. (수필과 삶과 연륜).

수필은 흥미는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 아니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散策)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기와 여운(餘韻)이 숨어 있다. 
수필의 빛깔은 황홀 찬란(恍惚燦爛)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頹落)하여 추(醜)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 우미(溫雅優美)하다.
수필의 빛은 비둘기 빛이나 진주 빛이다. 수필이 비단이라면,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것이다.
무늬는 사람 얼굴에 미소(微笑)를 띠게 한다. 수필은 한가하면서도 나태(懶怠)하지 아니하고,
속박(束縛)을 벗어나고서도 산만(散漫)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하며 날카롭지 않으나 산뜻한 문학이다. (수필의 미감).

수필의 재료는 생활경험, 자연관찰, 인간성이나 사회 현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 등
무엇이나 좋을 것이다. 그 제재(題材)가 무엇이든지 간에 쓰는 이의 독특한 개성(個性)과
그때의 심정(心情)에 따라,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液)이 고치를 만들 듯이' 수필은 써지는 것이다.
또 수필은 플롯이나 클라이맥스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필자(筆者)가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이 수필의 행로(行路)이다.
그러나 차(茶)를 마시는 것과 같은 문학은, 그 차가 방향(芳香)을 가지지 아니할 때에는
수돗물같이 무미(無味)한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수필의 제재와 표현).

수필은 독백(獨白)이다. 소설가나 극작가(劇作家)는 때로 여러 가지 성격을 가져 보아야 된다.
셰익스피어는 햄릿도 되고 오필리아 노릇도 한다.
그러나 수필가 찰스 램은 언제나 램이면 되는 것이다. 수필은 그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率直)히 나타내는 문학 형식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독자(讀者)에게 친밀감을 주며, 친구에게서 받은 편지와도 같은 것이다. (수필의 고백성).

덕수궁(德壽宮) 박물관에 청자 연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본 그 연적(硯滴)은 연꽃 모양으로 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整沿)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 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均衡)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破格)이 수필인가 한다.
한 조각 연꽃잎을 옆으로 꼬부라지게 하기에는 마음의 여유(餘裕)를 필요로 한다.
이 마음의 여유가 없어 수필을 못 쓰는 것은 슬픈 일이다.
때로는 억지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다가, 그런 여유를 가지는 것이 죄스러운 것 같기도 하여,
나의 마지막 10분의 1까지도 숫제 초조(焦燥)와 번잡(煩雜)에다 주어 버리는 것이다. (쓰는 이의 자세).


3. 수필이란 무엇인가?


“수필”은 필자(筆者) 피천득 자신의 수필론 이다.
그의 수필론으로 포섭할 수 없는 그 밖의 수필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자신의 수필론을 뒷받침하는 수필이 따르지 않는 수필론 들은 우리에게 아무 흥미도 없다.
작가가 수필을 쓴다는 행위는 수필론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수필은 그 형식이나 내용이 자유로운 문학 장르다.
그러나 나는 수필에서 자유란 수필가 자신이 추구해야 할 정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유란 삶과 죽음, 종교와 철학,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그리고 배운 자와 못 배운 자의
경계를 없애는 것이다. 수필가는 자기의 종교를 굳은 신념으로 지키고 타인의 종교를 존경하며
자신과 다른 세상을 추구하는 사람을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라고 인식할 수 있는 속이
탁 트인 자유인이 되고자 노력해야만 한다.
그래서 일상에 투영된 삶의 가치를 보편적인 가치로 그려내야 한다.

흔히 소설을 가공의 진실이라고 한다. 상상으로 지어낸 이야기에 진실을 집어넣는 문학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수필은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하는 정직한 자기 고백의 문학형태다.
따라서 훌륭한 수필은 화려한 글이 아니라 정직한 글이다. 모 대학교수의 수필을 읽은 제자가
“어떻게 선생님의 수필과 생활이 이렇게 다를 수 있습니까?”라고 다그쳐서
식은땀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글이 실패한 수필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수필에서의 정직은 행위의 진위뿐만 아니라 심정적인 진실도 포함된다. 예를 들어
동성연애를 찬성하면서도, 세상 정서에 맞추고자 이에 반대하는 것처럼 거짓 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필을 정직하게 쓰는 행위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수필은 문학적인 문체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문학적인 문체가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전에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비문학적인 문체를 열거해 보기로 한다. “신문 사설” “판사의 판결문” “최고 경영자의 신년사” 등이다.
물론 이러한 글들은 모두 그 방면에서는 훌륭한 글이다. 그러나 수필 문학에 사용하는 문체로는
적합하지가 않다. 그러면 문학적 문체란 무엇인가? 인간이 어떤 사건에 직면할 때마다 생산된
다양한 감정과 우리 내부에서 자체 생성된 수많은 감정은 가슴 속에 침전물처럼 쌓여
깊은 호수를 이루게 된다. 문학적 문체란 이 호숫물로 그린 동양화를 말한다.
그런데 이 호숫물을 끄집어내는 일이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바다 속에서 석유를 캐내는 작업같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가능성이 있는 곳에다
끊임없이 탐사봉을 내리꽂는 것뿐이다. 따라서 수필은 문학적 문체를 탐사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4. 행복.


인간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말은 “홀가분하다.”이며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말은 “참담하다.”라고 한다.
피천득과 수필 이야기를 쓰고 난 후에 나의 마음은 홀가분하고 행복해 졌다.
산고를 격은 산모가 자신의 분신을 바라보는 심정이 이러하리라.

피천득의 말대로,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을 목격할 수 있는 수필가는
행복한 운명을 타고난 것이 아닐까?

탄탄한 품격으로 만들어낸 파격 인생

교과서에 글을 실은 작가로서 가장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작가는

아마도 금아 피천득 선생일 것이다.

많은 사람이 그 중 하나로 ‘인연’을 기억하지만

그보다 더 오래 전에는 ‘수필’과 ‘플루트 플레이어'가 실렸고,

지금은 ‘은전 한 잎(고등학교)’이 교과서에 실려 있다.

‘교과서에 실린 글의 작가’라는 명칭이 지니는 의미는

단순히 ‘유명 작가’의 차원을 넘어선다.

우리말과 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모범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글들이

교과서에 소개되기 때문이다.

그 많은 ‘교과서 속의 작품들’ 중에서도
피천득 선생의 글들과 명성이

길이길이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결코 길지 않은 그의 글이

학생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될 수 있는 ‘특별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그 특별함이란 무엇일까?

2001년 5월의 마지막 날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는 작은 모임이 있었다.

금아 피천득 선생의 작품집 영역본 "A Skylark"의 출판기념회였다.

이름은 출판기념회였지만 실제로는 피천득 선생이

자신의 작품을 번역하여 준 제자들을 불러 식사를 대접한 자리였다.

결국 이 자리는 피천득 선생의 제자이며 우리나라 영문학계에서

그 권위를 떨치고 있는 영문학자 대부분이 모이는 흔치 않은 자리가 되었다.

<A Skylark>

5월 29일 선생의 제91회 생신에 맞추어 제자들이 헌정한 이 책에는

선생의 수필 51편과 시 48수가 영문 번역되어 실려 있다.

<A Skylark>은 장장 30년에 걸친 기간 동안

우리나라 최고의 영문학자는 거의 모두 참여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비중있게 진행되었으며 번역 후에도 세밀한 원문 대조와 미국인 영문학자의 감수를

또다시 거친 완성도 높은 영문 번역서이다.

이 책의 번역은 피천득 선생 자신과 대부분 선생의 제자로 구성된

44명의 영문학자, 번역가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미 고인이 된 장왕록 박사를 비롯하여 석경징, 김우창, 황동규, 백낙청, 이재호, 심명호 교수 등 이제는 우리나라 영문학계의 원로 위치에 있는 이들은,

피천득 선생의 우수한 문학 작품에 선생에 대한 깊은 존경심까지 담아 정성껏 번역하여

문학적 향기와 깊이를 더한 번역 문학서를 만들어낸 것이다.

뛰어난 영문학자이면서도 평소 그토록 겸손한 피천득 선생 자신도

이 책에 대해 평하길, ‘영문 번역으로 이보다 더 나을 수는 없는’

‘만족할 만한’ 번역 수준이라고 감탄하였다.

<A Skylark> 은 한국어의 맛과 멋을 가장 아름답게 살려낸

한국 문학의 진수인 동시에 이를 가장 정확하고 아름다운 영어로 공들여 번역해낸

번역 문학의 정수인 셈이다.

우리 나이로 올해 94세.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피천득 선생이 제자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아직도 소년과 같은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은

선생이 살아온 삶의 태도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2001년 5월 SBS 라디오 ‘책하고 놀자’에서 피천득 선생에 대한 특집 방송을 마련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선생이 공개한 자신의 건강 비결은

곧 90평생을 유지해 온 그의 욕심없는 삶 자체를 말해 주고 있다.

오래 전 교과서에 실렸던 피천득 선생의 대표작 ‘수필’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다.
“덕수궁 박물관에 청자 연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본 그 연적은 연꽃 모양을 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은 파격(破格)이 수필인가 한다.

한 조각 연꽃을 꼬부라지게 하기에는 마음의 여유를 필요로 한다.”

어찌 보면 피천득 선생의 인생 중 많은 부분이 파격 그 자체이다.

50년째 인형 난영이를 갓난아기 키우듯 돌보는 것도,

벽에 못구멍이 나는 것이 안타까워 수많은 액자를 다 바닥에 세워놓는 것도 파격이다.

유학간 딸이 외로워한다고 교수직을 사임하고 딸 곁으로 떠나간 것도 파격적인 행동이며,

담배를 피지 않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이 피웠다는 이유로

‘필립 모리스’ 를 일부러 사 피워봤다는 것도 파격이다.

‘책들만 있는 방에 들어와 ’가을에 와서 꽃씨나 가져가야지‘라고 말하는 도둑도

선생의 작품 속에서나 등장할 수 있는 ’꽃을 알고, 책을 알며 꽃의 아름다움을 탐하는‘

파격적인 도둑이다.

파격이란 깰 수 있는 ‘격(格)’이 있어야만 비로소 우러나올 수 있는

탄탄한 품격의 소산물이다.

피천득 선생의 작품이, 또 그의 일생이 파격의 여유와 파격의 아름다움을 지닐 수 있는 것도

선생이 완전한 ‘격(格)’의 소유자인 덕분이다.

또 그다지 많지 않은 작품 가운데 ‘교과서에 실릴만한 작품’이

그렇게 여러 편이라는 것은 선생은 ‘격’을 갖춘 작품들만 만들어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얼핏 보면 아주 쉽고도 간결한 언어로 자연스럽게 쓰여진 피천득 선생의 작품들.

후배 작가들이 흉내를 내려 해도 쉽게 흉내낼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선생이 사용한 간결함이란 그냥 ‘문장의 길이가 짧음’이 아닌 것이다.

이미 선생은 그 간결함 속에 자신이 터득한 완벽한 ‘격(格)’을 듬뿍 담아

파격적 매체인 수필로 표현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선생의 문학 세계에서 보여 주는 함축미, 심오한 단순성도

정연한 가운데 연꽃 한 잎을 꼬부려놓을 수 있는, 파격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품격에서 나온 것이었다.

피천득 선생은 <A Skylark> 출판기념회에서 남들은 좀처럼 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파격적인 말을 던졌다.

수즉다욕(壽則多辱), 남들은 오래 사는 것이 욕이라 하는데

자신에게는 그것이 해당되지 않는다고.

그리고 수즉다경(壽則多慶), 오래 살수록 즐거운 일만 생긴다는 말을 자신있게 했다.

일생을 욕심없이 탄탄한 품격을 지니고 살아온 금아 피천득 선생이

그 작품만큼이나 고귀한 일생을 스스로 표현하기에 충분한 한 마디 말씀이었다.

금아(琴兒) 피천득의 자취와 수필세계 

                                                                          

1. 서론

   1>금아(琴兒)의 문학사적 의미와 개인적 고찰 


  수필은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자기 성찰이다.

 『떠도는 그림자』를 쓴 키냐르는 “나는 누군가가 인류전체의 진실을 다룰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의 총체적인 진실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과 다를 바 없지요. 진실이란 매우 분열된 상태에 있는 것이니까요. 나는 분열된 진실, 결코 다가갈 수 없는 진실을 문제시함으로써, 그것에 접근하는 책을 쓰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하였다.1)

  키냐르는 진실에 가까운 글쓰기를 갈망했지만, 어떤 문제든지 진실에 온전히 접근한다는 것은 쉽지 않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금아(琴兒) 피천득(이하 금아, 또는 피천득으로 부름)도 진실의 척도에 도달하기 위해 오월의 따뜻함을 사랑하며 진실한 삶을 내보였지만, 겨울 같은 음지의 진실, 치열한 인간의 고통은 잘 드러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1. 실크로드 길이, 영원으로 펼쳐지고

  금아(琴兒) 선생을 보내는 삼성병원 장례식장 - 실크로드 같은 그 길은 생각보다 많이 담백했다. 우리 문학단체 편집위원(현대수필)이 다른 문인들과 시간이 어긋나서 그런지, 문단의 거대한 별이 땅에 떨어졌음에도 영전이 많이 적막했다.

  장남 피세영 씨, 차남 피수영 씨, 딸 피서영 씨와 병원 측 도우미, 한 두 명의 문인만이 고인의 영전에 무릎을 꿇고 있을 뿐이었다. 금아 선생과의 고별식을 침묵으로 일관하는 수많은 조화(弔花)만이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시골에선 객지에서 내려온 생면부지의 사람이 세상을 떠나도 주변은 웅성웅성, 낡은 멍석이라도 깔아 고스톱 판이라도 벌이며 고인의 명복을 빌기도 하지만, 도시생활에서의 여건은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처럼 금아(琴兒)의 영결식장은 떠나는 길까지 그 성품을 닮았는지 고요하기만 했다. 일 만 명에 가까운 문인시대라고 하지만 금아(琴兒)의 영전을 모신 곳엔 적막함만이 흘렀다. 문인들이 풀어 나가야 할 과제라고 느껴졌다.

  

  금아(琴兒)의 영상을 기리기 위해 2008년 5월 25일, 묘소가 있는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모란공원에서는 1주년 기념식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금아(琴兒)의 얼이 담긴 시비가 세워졌다. 2)


  눈보라 헤치며

  날아 와

  눈 쌓이는 가지에 나래를 털고

  그저 얼마 동안 앉아 있다가

  깃털 하나 아니 떨구고

  아득한 눈 속으로

  사라져

  가는  너3)

                   - 너 


  묘 옆에 세워진 이 시비는 상단에 고인의 며느리 - 홍영선 씨가 쓴 ‘琴兒詩碑(금아시비)’가 새겨졌고, 그 밑으로 서예가 조주연 씨의 글씨로 시(詩) 전문이 새겨졌다.

  고인의 묘소가 있는 그곳에서는 유족과 교수 재직시절 인연을 맺은 제자, 각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행사가 치러졌으며, 추모식은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의 추모 기도로 시작되었다.

  시비설립추진위원장을 맡았던 심명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올 4월 금아(琴兒)의 학부ㆍ대학원 제자 800여 명 중, 연락이 닿는 70명에게 협찬을 부탁해 스승의 소식을 알리면서, 시비 제작비용이 준비되었다고 전했다.

  행사에는 김남조 시인의 추모사(『책과 인생』. 2008. 7월호. 범우사)에 이어 참석자 모두가 고인의 문학 정신과 넉넉한 인품에 대해 회고하였고,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도 1968년 말 고인이 강연 차 뉴욕을 방문했다가 예고 없이 김우창의 유학하던 보스턴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찾아왔던 일을 소개하였다.

  금아(琴兒)는 “십 수 년 전 인연을 맺은 제자 - 미국에서의 교수를 만나고, 보스턴심포니 공연을 관람하고 싶어 주최 측이 마련한 호텔까지 마다하고 8, 9시간 버스를 타면서 나의 기숙사를 찾으셨던 것”이 생각난다며, 당시 룸메이트 도움을 받아가며 기숙사 지하실에서 선생께서 주무실 매트리스를 가져오던 일을 회상하니, 선생의 소탈한 면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문상득 서울대 명예교수도 “선생님을 처음 뵈었던 곳은 1951년 피난 시절 부산에 마련된 임시 캠퍼스였다”며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대조적인 금아(琴兒) 선생의 영시(英詩) 강의는 판잣집 강의실을 환상의 세계로 인도했다고 추억했다.4)

  금아(琴兒) 선생은 제자들을 친구처럼 대하고 함께 여행하길 즐겼다. 

  고인이 별세하기 얼마 전까지도 제자들과 만남을 가지면서 사제지간의 융화력을 보여 주었다.

  유족을 대표해 아들 피수영 교수도 참석자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피수영은 고인을 ‘아빠’라고 부르면서 독자들은 아빠가 딸 피서영에 대해 지극한 사랑을 담은 글을 여러 편 썼기에 무남독녀를 뒀나보다 오해 하는데, 아빠는 두 아들에게도 비밀 없는 친구였다고 말했다.

 금아(琴兒)를 기리는 행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서울 ‘금아(琴兒) 피천득(1910-2007) 기념관’5)이 잠실 롯데월드 3층에 개관되였다. 기념관 중앙엔 고인의 대표 수필,「인연」을 형상화한 조각상이 배치되고, 그 둘레엔 고인의 반포동 자택 서재에 있던 육필 원고와 사진, 금아(琴兒)가 안고 자던 인형 난영이, 여러 가지 유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2. 담백한 수필과 청청한 시처럼

  금아(琴兒)피천득은 시인, 수필가, 영문학자로서 1910년 5월 29일 서울에서 태어나 중국 상하이(上海) 공보국 중학을 거쳐, 1937년 호강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피천득은 1954년엔 미국 국무성 초청으로 하버드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연구하기도 했으며, 한때 서울 중앙상업학원 교사로 근무했고, 1945년 경성(서울 대)대학교 예과 교수를 시작으로, 1974년까지 서울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제자를 배출해 냈다.

  작품집으로는 1930년 <신동아>6)에「서정소곡」을 처음으로 발표하고, 1932년<동광>7)에 시「소곡, 1932」, 수필「눈보라 치는 밤의 추억, 1933」을 발표하여 호평을 받았다. 투명한 서정으로 일관하며 사상과 관념을 배제한 - 순수한 정서에 의해 시정(詩情)이 넘치는 생활을 노래했다.

  첫 시집 -『서정시집, 1947』에는 그리움을 꿈으로 승화시킨,「꿈」이나「편지」 처럼 소박하면서도 전통적인 삶의 서정을 노래한 시(詩)가 상당수 실려 있다.

  하지만 피천득의 문학세계는 교과서에도 볼 수 있지만, 시(詩)보다 수필을 통해 그 진수가 드러난다.

  서정적이고 주관적· 명상적인 것을 소재로 삼는 금아(琴兒)의 수필은 섬세하면서도 다감한 문체로 서정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대표적 수필로 1933~1934년에 발표한「눈보라 치는 밤의 추억」,「기다리는 편지」,「은전 한 닢」,「인연」,「오월」을 들 수 있다. 특히 작품 「수필」은 수필 형식으로 쓴 ‘수필론’으로, 은유법을 적절히 구사해서 수필의 본질과 특질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 외에도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토머스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8)의 시구를 부정하면서, 봄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봄」, 여성의 아름다움은 생생한 생명력에서 나온다는「여성의 미」, 지휘자보다 무명의 연주자를 택하겠다는「플루우트 플레이어」, 영국 대사관에서의 엘리자베스 여왕 생일 축하 가든파티에 참석하여 소회(所懷)를 쓴「가든 파아티」, 성모 마리아상과 같은 구원의 여인상을 찾는 「구원의 여상」같은 작품들이 인상적이다.

  ‘수필’ 이 외의 작품으로는 시집『금아 시문선, 1959』과『산호와 진주, 1932』, 번역서인『소네트의 시집, 1975』, 평론인「노산 시조집을 읽고, 1932」와「춘원 선생, 1961」 등이 있다. 하지만 금아(琴兒) 피천득은 이 모든 자취를 후세들에게 물려주고 1년 전인 2007년 5, 25일 세상을 떠났다. 붉은 앵두와 딸기, 모란꽃이 피는 ‘오월’을 좋아하더니 ‘오월’ 속으로 긴 여행을 떠났다.

  <샘터>에서도『피천득 문학전집』을 발간하였다.9)

  제 1권인『인연』에서는 소년 같은 진솔한 마음과 꽃 같은 순수한 감성, 성직자 같은 고결한 인품과 해탈자 같은 청결한 무욕을 엿볼 수 있고. 제 2권인 『생명』에서도 금아(琴兒)의 유일한 창작 시집으로 간결한 시어(詩語), 반짝이는 위트를 담은 금아(琴兒) 선생의 순수한 동심과 투명한 서정을 그대로 담고 있다.

  제 3권 『내가 사랑하는 시』에는 블레이크, 워즈워스, 예이츠, 도연명, 타고르의 시를 발췌해 금아(琴兒)가 직접 번역한 세계의 명시들이 소개되어 있다. 제 4권은『셰익스피어, 소네트』 시집을 번역한 154편의 시편으로 풍부한 인간미와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는 - 대문호의 주옥같은 시어(詩語)들이 우아하면서도 재치 있게 녹아 있다.

  금아(琴兒) 선생은 담백한 수필과 순수한 시처럼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향해서는 연민의 샘을 강하게 품고 있었으나 자신에게는 엄격했으므로, 그 삶은 떠났어도 그 자취는 떠나지 않아,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꽃이 필 것이므로 문단 사에  큰 의미가 아닐 수 없다.

      

2. 본문

   1>작품의 파시즘을 통해 살펴 본 금아(琴兒)의 세계관

 

 1.인생관

  금아(琴兒) 선생은 국민작가이면서도 서울 대학교 교수로 정년퇴임을 하였다.

  그러한 가운데서 ‘모시같이 섬세하고 깔끔하며 옥양목같이 깨끗하고 차가웠다’는 어머니를 닮으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 노력은 해방 후 한국전쟁, 이데올로기 대립시대, 독재시대, 산업시대, 경제 고도성장의 시대, 소비가 미덕인 시대를 거치면서도 세속에 전혀 물들지 않아, 그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10)


  스물한 살이 나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있던 보트, 덧문이 닫혀있던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 않았다. 가까이 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失了愛情痛苦

  젊어서 죽은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오월」중에서

  

  금아(琴兒) 선생은 봄과 오월을 많이 사랑했다.

  작품「오월」이 대표작이 될 만큼 ‘오월’을 사랑하다가, ‘오월’의 소년처럼 아흔 일곱 번째 생신인 5월 29일에 발인을 하였다.  

  금아(琴兒)는 간소한 생활을 지향하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작품도 일상의 신변사에서 소재를 발견해 아름다움과 기쁨의 계기를 놓치지 않으며 특유의 문체로 우아하게 그려냈다. 서정적이고 섬세한 가운데 간결체, 우유체를 사용하면서,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는 것”이라고 했던 김진섭11)의 수필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금아(琴兒)는 유월이 오면 녹음이 짙어갈 것이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하겠지만, 젊어서 한 때 죽음을 각오했던 시절을 되돌려 놓은 ‘오월’이 가고 있어, 아쉽다고 노래했다.

  「오월」을 읽다보면 ‘내 나이 셈하여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라는 글귀가 강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得了愛情痛苦(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 금아(琴兒)는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고 하였다.

  스물 한 살의 젊은 시절, 금아(琴兒)는 애정의 고통 속을 헤매면서 죽으려고 피서지로 갔던 일을 회고했다. 당시 금아(琴兒)는 애정의 고통을 얻어 방황하던 때, 가눌 길 없는 감수성으로 인해 도피하는 심정으로 짙푸른 색으로 물들어 있는 섬들과 신록이 짙어가는 5월의 피서지로 갔던 것이다.

 「오월」을 읽으니, 좌절하여 홋카이도 바닷가 하코다테로 떠났던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12)의 시(詩),「나를 사랑한 노래」가 떠오른다.


  동해바다

  자그만 갯바위 하얀 백사장, 나 눈물에 젖어

  게와 놀았다네.

  모래 언덕의 모래 위에 엎드려 첫사랑의 쓰라림을

  아련하게 떠올리는 날

  촉촉이 흐른 눈물을 받아 마신 해변의 모래

  눈물은 이다지도 무거운 것이런가

                                   

  이 시(詩)에서도 고통이 유성처럼 흘러내리고 있다.

  그럼, 무엇이 금아(琴兒)에게 젊어 죽은 중국 시인의 시 구절 - 애정의 고통을 버렸다(失了愛情痛苦)는 시(詩) 구절을 모래 위에 써 놓고 돌아오게 했을까. 무엇이 금아(琴兒)에게 애정의 고통을 얻어 죽음의 언저리에 선 채 서성이던 마음을 버리게 했을까.

  푸른 ‘오월’이 금아(琴兒)의 20대를 구했다. 다른 작품을 보더라도 금아(琴兒)는 ‘봄’과 ‘오월’을 찬양한 작품이 적지 않다. 생명력이 넘치는 신록의 계절 ‘오월’이 애정의 고통을 버리게 했다. 그 싱그러움은 어떤 음침한 죽음의 색조와 비교해도 광채가 난다.

  작품「오월」에서 죽음의 빛깔이 금아(琴兒)를 위협했지만, 금아(琴兒)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러나지 않도록 담담하게 수필을 써내려갔다. 얼마나 놀라운 여유이며 탄탄한 기법인가. 작품「오월」은 여러 가지 함축미로 볼 때 의미 깊은 시(詩)이면서, 구성이 탄탄한 단편소설이고, 차원 높은 ‘수필’이 아닐 수 없다.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오월’ 속에 서 있던 금아(琴兒), 독자의 마음까지 훈훈하게 하는 ‘오월’은 바다처럼 잔잔해 때 묻지 않는 순수함이 묻어난다.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고운 얼굴을 욕망 없이 바라다보며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 찬양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사람을 좋아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하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점잖게 늙어가고 싶다.         

                                                                  

                                                                  「나의 사랑하는 생활」중에서 

  

  작품「나의 사랑하는 생활」에서는 금아(琴兒) 피천득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금아(琴兒)의 은은한 사랑의 세계가 아름다우면서도 크게 반사되며 글 속에 따스하게 녹아 흐르고 있다. 그 세계가 소박해 작은 것 같지만 금아(琴兒)의 세계는 결코 협소하지 않다. 깨끗하고 부드럽고 조촐한 것들 속에 금아(琴兒)의 이상(理想)이 가득 차 있어, 그 세계가 넓고 크게 클로즈업 되고 있다.

  “고운 얼굴을 욕망 없이 바라다보며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 찬양하는 것을 좋아 한다”는 금아(琴兒)의 인생관을 보더라도, 금아(琴兒)의 평생은 얼마나 고요하고 맑았는지 짐작이 간다. 이런 금아(琴兒)에게 무슨 집착이 있고 들뜸이 있으며 혼탁이 있겠는가.

  금아(琴兒)의 삶에는 요란하고 퇴폐적인 아름다움은 자리할 곳이 없다.  


  예전 어떤 집에는 일어 상용(日語常用)하는 주인을 따라 “오하요(안녕)” 하고 인사를 하는 앵무새가 있었다. 그러나 종달새는 갇혀 있다 하더라도 그렇지 않다. 종달새는 푸른 숲, 파란 하늘, 여름 보리를 기억하고 있다.

  그가 꿈을 꿀 때면 그 배경은 새장이 아니라 언제나 넓은 들판이다.  

                                                                             

                                                                             -「종달새」중에

 

1..술   /   피   천   득

 

  피 천 득(1910∼  ) : 시인, 영문학자. 호는 금아(琴兒). 상해(上海) 호강대학(扈江大學)에서 영문학을 공부하였구ㅡ 서울 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서정시집','금아 시문선' 등의 저작이 있다.  

 

 

"술도 못 먹으면서 무슨 재미로 사시오?" 하는 말을 가끔 듣는다. 그렇기도 하다.

 

       술은 입으로 오고

       사랑은 눈으로 오나니

       그것이 우리가 늙어 죽기 전에

       진리로 알 전부이다.

       나는 입에다 잔을 들고

       그대 바라보고 한 숨 짓노라.

 

예이츠는 이런 노래를 불렀고, 바이런은 인생의 으뜸가는 것은 만취(滿醉)라고 하였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백(李白)을 위시하여 술을 사랑하고 예찬하지 않은 영웅 호걸, 시인,묵객이 어디 있으리오. 나는 술을 먹지 못하나 술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름날 철철 넘는 맥주잔을 바라다보면 한숨에 들이마시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차라리 종교적 절제라면 나는 그 죄를 쉽사리 범하였을 것이요, 한때 미국에 있던 거와 같은 금주법(禁酒法)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벌금을 각오하고 사랑하는 술을 마셨을 것이다. 그러나 술을 못 먹는 것은 나의 체질 때문이다.

나는 학생 시절에 어떤 카페에서 포도주를 사 본 일이 있다. 주문을 해 놓고는 마실 용기가 나지 않아서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술값을 치르고 나오려니까 여급이 쫓아나오면서 왜 술을 안 마시고 그냥 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할말이 없어서 그 술빛을 보느라고 샀던 거라고 하였다. 이 여급은 아연한 듯이 나를 쳐다만 보았다. 그 후 그가 어떤 나의 친구에게 이상한 사람이었다고 내 이야기를 하더라는 말을 들었다.

술을 못 먹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울할 때 슬픔을 남들과 같이 술잔에 잠겨 마시지도 못하고 친한 친구를 타향에서 만나도 술 한잔 나누지 못하고 헤어지게 된다.

"피 선생이 한잔할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소리를 들을 때면 안타깝기 한이 없다.

내가 술 먹을 줄 안다면 더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을 것이요, 탁 터 놓고 네냐 내냐 할 친구도 있을 것이다. 집에서도 내가 늘 맑은 정신을 갖고 있으므로 집사람은 늘 긴장해서 힘이 든다고 한다. 술 먹는 사람 같으면 술김에 아내의 말을 듣기도 하지만 나에게 무엇을 사 달래서 안 된다면 그뿐이다. 아내는 자기 딸은, 술 못 먹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시집보내지 않겠다고 한다. 아이들도 내가 다른 아버지들같이 술에 취해서 집에 돌아오기를 바란다. 술에 취해서 돌아오면 무엇을 사다 주기도 하고 돈도 마구 주고 어리광도 받아 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본래 소극적인 성질이라도 술에 취하면 평시에 품었던 잠재 의식을 발산시키고, 아니 취했더라도 술잔 들면 취한 체하고 화풀이라도 할 텐데, 그리고 술기운을 빌어 그때마다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며 호탕하게 떠들어 볼 텐데, "문 열어라"하고 내 집 대문을 박차 보지도 못한다. 가끔 주정 한바탕 하고 나면 주말여행(週末旅行)한 것 같이 기분이 전환될 텐데 딱한 일이다.

술 못 먹는 탓으로 똑똑한 내가 사람 대접 못 받는 때가 있다. 술좌석에서 맨 먼저 한두 번 나에게 술을 권하다가는 좌중에 취기가 돌면 나의 존재를 무시해 버리고 저희들끼리만 주거니 받거니 떠들어댄다. 요행 인정 있는 사람이나 끼어 있다면 나에게 사이다나 코카콜라를 한 병 갖다 주라고 한다. 시외같은 데 단체로 갈 때 준비하는 사람들은 술은 으례 많이 사도 음료수는 전혀 준비하지 않는 수가 많다. 간 곳이 물이 없는 곳이면 목메인 것을 참고 밥을 자꾸 씹을 수밖에 없다.

술을 못 먹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큰 손해다. 회비제로 하는 연회라면 그 많은 술에 대하여 억울한 부담을 하게 된다. 공술이면 못 먹고 신세만 진다. 칵테일 파티에는 색색의 양주 이외에 주스가 있어 좋다.

남이 권하는 술을 한사코 거절하며 술잔이 내게 돌아올까봐 권하지도 않으므로 교제도 할 수 없고 아첨도 할 수 없다. 내가 술을 먹을 줄 안다면 무슨 사업을 해서 큰 돈을 잡았을지도모른다.

술 때문에 천대를 받는 내가 융숭한 환영을 받는 때가 있다. 그것은 먹은 술이 적거나 한 사람에 한 병씩 배급이 돌아갈 때다. 일정 말엽에 더욱 그러하였다. 우리 집 아이들도 내가 술 못 먹는 덕을 볼 때가 있다. 내가 술 못 먹는 줄 아는 제자들이 술 대신 과일이나 과자를 사다 주기 때문이다. 또 내가 술을 못 먹는 줄을 모르고 술을 사오는 손님이 있으면 그 술을 이웃 가게에 갖다 주고 초콜렛과 바꾸어 먹는 법이 있기 때문이다.

독신으로 지내는 내 친구 하나가 여성들에게 남달리 흥미를 많이 갖는 거와 같이 나는 술에 대하여 유달리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찹쌀 막걸리는 물론 거품을 풍기는 맥주, 빨간 포도주, 환희(歡喜) 소리를 내며 터지는 샴페인, 정식 만찬(正式晩餐) 때 식사전에 마시는 술, 이런 술들의 종류와 감정법(鑑定法)을 모조리 알고 있다. 술에 관한 책을 사서 공부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술 자체뿐이 아니라 술 먹는 분위기를 즐긴다. 비 오는 저녁때의 선술집, '삼양(三羊)'이나 '대하(大河)' 같은 고급 요리집, 눈 오는 밤 뒷골목 오뎅집, 젊은 학생들이 정치, 철학, 예술, 인생,  이런 것들에 대하여 만장의 기염을 토하는 카페, 이런 곳들을 좋아한다. 늙은이들이 새벽에 찾아가는 해장국집도 좋아한다.

지금 생각해도 아까운 것은 이십여 년 전 명월관에서 한때 제일 유명하던 기생이 따라 주던 술을 졸렬하게 안 먹은 것이요, 한번 어떤 미국 친구가 자기 서재 장 안에 비장하여 두었던 술병을 꺼내어 권하는 것을 못 받아 먹은 일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지금까지 먹을 수 있는 술을 안 먹은 것, 앞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을 못 먹고 떠나는 그 분량은 참으로 막대한 것일 것이다. 이 많은 술을 내 대신 다른 사람이 먹는 것인지 또는 그만큼 생산을 아니 하게 되어 국가 경제에 큰 도움이 되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솔직이 고백하면, 나는 술에 대하여 완전한 동정(童貞)은 아니다. 내가 젊었을 때 어떤 여자가 나를 껴안고 내 입을 강제로 벌려 술을 퍼부은 일이 있다. 그 결과 내 가슴에 불이 나서 의사의 왕진을 청하여 오게끔 되었었다. 내가 술에 대하여 이야기를 쓰려면 주호(酒豪), 수주(樹州)의 ≪명정 사십년(酩酊四十年)≫보다 더 길게 쓸 수도 있지만, 뉴맨 승정(僧正)이 그의 ≪신사론(紳士論)≫에 말씀하시기를, 신사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너무 많이 이야기하지 않는 법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더 안 쓰기로 한다. 나는 술과 인생을 한껏 마셔 보지도 못하고 그 빛이나 바라다보고 기껏 남이 취한 것을 구경하면서 살아왔다. 나는 여자를 호사 한 번 시켜 보지 못하였다. 길 가는 여자의 황홀한 화장과 찬란한 옷을 구경할 뿐이다. 애써 벌어서 잠시나마 나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그들의 남자들에게 감사한다. 나는 밤새껏 춤도 못추어 보았다. 연애에 취해 보지도 못하고 사십여 년을 기다리기만 하였다. 그리고 남의 이야기를 써 놓은 책들을 읽느라고 나의 일생의 대부분을 허비하였다. 남이 써 놓은 책을 남에게 해석하는 것이 나의 직업이다. 남의 세방살이를 하면서 고대광실을 소개하는 복덕방 영감 모양으로 스물 다섯에 죽은 키츠의 ≪엔디미온≫ 이야기를 하며, 그 키츠의 죽음을 조상하는 셸리의 <아도니스> 같은 시를 강의하며 술을 못 마시고 산다.

 

2..은전 한 닢   /   피천득

 

 늙은 거지 하나가 전장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일 원짜리 은전 한 닢을 내놓으면서,

  "황송하지만, 이 돈이 못 쓰는 것이나 아닌지 좀 보아 주십시오."

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전장 사람의 입을 쳐다본다. 전장 주인은 거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돈을 두들겨 보고,

  "좋소."

하고 내어 준다. 그는 '좋소'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돈을 받아서 가슴 깊이 집어 넣고 절을 몇 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다보며 얼마를 가더니, 또다른 전장을 찾아 들어갔다. 품 속에 손을 넣고 한참을 꾸물거리다가 그 은전을 내어놓으며,

  "이것이 정말 은으로 만든 돈이오니까?"

하고 묻는다. 전장 주인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 돈을 어디서 훔쳤어?"

거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러면 길바닥에서 주웠다는 말이냐?"

  "누가 그렇게 큰 돈을 빠뜨립니까? 떨어지면 소리는 안 나나요? 어서 도로 주십시오."

거지는 손을 내밀었다. 전장 사람은 웃으면서

  "좋소."

하고 던져 주었다.

그는 얼른 집어서 가슴에 품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흘끔 돌아다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 선다. 서서 그 은전이 빠지지나 않았나 만져 보는 것이다. 거친 손바닥이 누더기 위로 그 돈을 쥘 때,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어떤 골목 으슥한 곳으로 찾아들어가더니, 벽돌담 밑에 쭈그리고 앉아서 돈을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얼마나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간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누가 그렇게 많이 도와 줍디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말소리에 움칠하면서 손을 가슴에 숨겼다. 그리고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달아나려고 했다.

  "염려 마십시오. 뺏아 가지 않소."

하고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고 하였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훔친 것이 아닙니다. 길에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저 같은 놈에게 일원짜릴 줍니까? 각전 한 닢을 받아 본적이 없습니다. 동전 한 닢 주시는 분도 백에 한 분이 ??지 않습니다. 나는 한 푼 한 푼 얻은 돈에서 몇 닢씩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은 돈 마흔여덟 닢을 각전 닢과 바꾸었습니다. 이러기를 여섯 번을하여 겨우 이 귀한 대양 한 푼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돈을 얻느라고 엿달이 더 걸렸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그 돈을 만들었단 말이오? 그 돈으로 무엇을 하려오?"

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 돈, 한 개가 가지고 싶었습니다."

 

  전장(錢장) --> 돈을 바꾸어 주는 집

  대양(大洋) --> 청나라 시대 때 돈을 헤아리는 돈의 단위.

 

3..인  연   /   피 천 득

  

지난 사월 춘천에 가려고 하다가 못 가고 말았다. 나는 성심여자대학에 가보고 싶었다. 그 학교에 어느 가을 학기, 매주 한 번씩 출강한 일이 있다. 힘드는 출강을 한 학기 하게 된 것은, 주 수녀님과 김 수녀님이 내 집에 오신 것에 대한 예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사연이 있었다.

수십 년 전 내가 열 일곱 되던 봄, 나는 처음 동경(東京)에 간 일이 있다. 어떤 분의 소개로 사회 교육가 미우라[三浦] 선생 댁에 유숙을 하게 되었다. 시바꾸 시로가네[芝區白金]에 있는 그 집에는 주인 내외와 어린 딸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하녀도 서생도 없었다. 눈이 예쁘고 웃는 얼굴을 하는 아사꼬[朝子]는 처음부터 나를 오빠같이 따랐다. 아침에 낳았다고 아사꼬[朝子]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하였다. 그 집 뜰에는 큰 나무들이 있었고 일년초 꽃도 많았다. 내가 간 이튿날 아침, 아사꼬는 '스위트피'를 따다가 화병에 담아 내가 쓰게 된 책상 위에 놓아 주었다. '스위트피'는 아사꼬같이 어리고 귀여운 꽃이라고 생각하였다.

성심(聖心)여학원 소학교 일학년인 아사꼬는 어느 토요일 오후 나와 같이 저희 학교까지 산보를 갔었다. 유치원부터 학부까지 있는 카톨릭 교육 기관으로 유명한 이 여학원은 시내에 있으면서 큰 목장까지 가지고 있었다. 아사꼬는 자기 신발장을 열고 교실에서 신는 하얀 운동화를 보여주었다.

내가 동경을 떠나던 날 아침, 아사꼬는 내 목을 안고 내 뺨에 입을 맞추고, 제가 쓰던 손수건과 제가 끼던 작은 반지를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선생 부인은 웃으면서 "한 십년 지나면 좋은 상대가 될 거예요" 하였다. 나는 얼굴이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아사꼬에게 안데르센의 동화책을 주었다.

그 후 십년이 지나고 삼사년이 더 지났다. 그동안 나는 국민학교 일학년 같은 예쁜 여자 아이를 보면 아사꼬 생각을 하였다. 내가 두 번째 동경에 갔던 것도 사월이었다. 동경역 가까운 데 여관을 정하고 즉시 미우라 댁을 찾아갔다. 아사꼬는 어느덧 청순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영양(令孃)이 되어 있었다. 그 집 마당에 피어있는 목련꽃과도 같이. 그때 그는 성심여학원 영문과 삼학년이었다. 나는 좀 서먹서먹했으나, 아사꼬는 나와의 재회를 기뻐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가끔 내 말을 해서 나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그날도 토요일이었다. 저녁 먹기 전에 같이 산보를 나갔다. 그리고 계획하지 않은 발걸음은 성심여학원 쪽으로 옮겨져 갔다. 캠퍼스를 두루 거닐다가 돌아올 무렵 나는 아사꼬 신발장은 어디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무슨 말인가 하고 나를 쳐다보다가, 교실에는 구두를 벗지 않고 그냥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갑자기 뛰어가서 그날 잊어버리고 교실에 두고 온 우산을 가지고 왔다. 지금도 나는 여자 우산을 볼 때면 연두색이 고왔던 그 우산을 연상한다. <셸부르의 우산>이라는 영화를 내가 그렇게 좋아한 것도 아사꼬의 우산 때문인가 한다. 아사꼬와 나는 밤늦게까지 문학 이야기를 하다가 가벼운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새로 출판된 버지니아 울프의 ≪세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것 같다.

그 후 또 십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제2차 세계대전이 있었고 우리 나라가 해방이 되고 또 한국 전쟁이 있었다. 나는 어쩌다 아사꼬 생각을 하곤 했다. 결혼은 하였을 것이요, 전쟁 통에 어찌 되지는 않았나 , 남편이 전사하지나 않았나 하고 별별 생각을 다 하였다. 1954년 처음 미국 가던 길에 나는 동경에 들러 미우라 댁을 찾아갔다. 뜻밖에 그 동네가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미우라 선생네는 아직도 그 집에 살고 있었다. 선생 내외분은 흥분된 얼굴로 나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한국이 독립이 돼서 무엇보다도 잘됐다고 치하를 하였다. 아사꼬는 전쟁이 끝난 후 맥아더 사령부에서 번역 일을 하고 있다가, 거기서 만난 일본인 이세(二世)와 결혼을 하고 따로 나서 산다는 것이었다. 아사꼬가 전쟁 미망인이 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이세(二世)와 결혼하였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만나고 싶다고 그랬더니 어머니가 아사꼬의 집으로 안내해 주었다.

뾰죽 지붕에 뽀죽 창문들이 있는 작은 집이었다. 이십여 년 전 내가 아사꼬에게 준 동화책 겉장에 있는 집도 이런 집이었다. "아, 이쁜 집! 우리 이담에 이런 집에서 같이 살아요." 아사꼬의 어린 목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십년쯤 미리 전쟁이 나고 그만큼 일찍 한국이 독립되었더라면 아사꼬의 말대로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뾰죽 지붕에 뾰죽 창문들이 있는 집이 아니라도.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집에 들어서자 마주친 것은 백합같이 시들어가는 아사꼬의 얼굴이었다. ≪세월≫이란 소설 이야기를 한 지 십년이 더 지났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싱싱하여야 할 젊은 나이다. 남편은 내가 상상한 것과 같이 일본 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도 아닌 그리고 진주군(進駐軍) 장교라는 것을 뽐내는 것 같은 사나이였다. 아사꼬와 나는 절을 몇 번씩 하고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꼬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4..시집 가는 친구의 딸에게   /   피 천 득

 

  너의 결혼을 축하한다. 아름다운 사랑에서 시작된 결혼이기에 더욱 축하한다. 중매 결혼을 아니 시키고 찬란한 기적이 나타날 때를 기다려 온 너의 아버지에게 경의를 표한다.

예식장에 너를 데리고 들어가는 너의 아버지는 기쁘면서도 한편 가슴이 빈 것 같으시리라. 눈에는 눈물이 어리고 다리가 휘청거리시리라. 시집 보내는 것을 딸을 여읜다고도 한다. 왜 여읜다고 하는지 너의 아빠는 체험으로 알게 되시리라.

네가 살던 집은 예전 같지 않고 너와 함께 모든 젊음이 거기에서 사라지리라.

너의 아버지는 네 방에 들어가 너의 책, 너의 그림들, 너의 인형을 물끄러미 바라다보시리라. 네가 쓰던 책상을 가만히 만져 보시리라. 네 화병의 꽃물을 갈아 주시려고 파란 화병을 들고 나오시리라.

사돈집은 멀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친정집은 국그릇의 국이 식지 않은 거리에 있어야 좋다고도 한다.

너는 시집살이 잠깐 하다 따로 나와 네 살림을 하게 된다니 너의 아버지 집 가까운 데서 살도록 하여라.

얼마 전에 나는 무심코 말 실수를 한 일이 있다. 첫 나들이 나온 예전 제자가 시부모가 아니 계시다기에 "거 참 좋겠다"고 하였다. 그 옆에는 그의 남편이 있었다. 다행히 웃고 있었다.

시부모님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라. 너의 남편의 부모니 정성껏 받들면 된다. 며느리는 아들의 배필이요 장래 태어날 손주들의 엄마가 될 사람이니 시부모께서는 너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실 거다. 네가 잘하면 대견히 여기시고 끔찍이 사랑하여 주실 거다. 너 하기에 달렸다.

결혼 후 남편이 친구들과 멀어지는 때가 있다고 한다. 너 같은 아내는 남편과 친구들 사이를 더 가깝게 만들 줄 믿는다. 옛날 가난한 선비집에 친구가 찾아오면 착한 아내는 말없이 나가 외상으로라도 술을 받아 왔다고 한다.

너희는 친구 대접할 여유는 있으니 네가 주부 노릇만 잘하면 되겠다. 주말이면 너희 집에는 친구들이 모여 차를 마시며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남편의 친구가 너의 친구도 되고, 너의 친구가 그의 남편과 같이 오기도 하고.......

부부는 일신이라지만 두 사람은 아무래도 상대적이다. 아버지와 달라 무조건 사랑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리고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언제나 마음을 같이할 수는 없다. 제 마음도 제가 어찌할 수 없을 때가 있는데 개성이 다른 두 사람이 한결같을 수야 있겠니? 의견이 다를 수도 있고 기분이 맞지 않을 수도 적은 비밀이 있을 수도 있다.

자존심 강한 너는 남편의 편지를 엿보지는 않을 것이다. 석연치 않은 일이 있으면 오해가 커지기 전에 털어 놓는 것이 좋다.

집에 들어온 남편의 안색이 좋지 않거든 따뜻하게 대하여라. 남편은 아내의 말 한마디에 굳어지기도 하고 풀어지기도 하는 법이다.

같이 살아가노라면 싸우게도 된다. 언젠가 나 아는 분이 어떤 여인보고, "그렇게 싸울 바에야 무엇하러 같이 살아, 헤어지지." 그랬더니 대답이 "살려니까 싸우지요 헤어지려면 왜 싸워요" 하더란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 싸움이라도 잦아서는 나쁘다. 그저 참는 게 좋다.

아내, 이 세상에 아내라는 말같이 정답고 마음이 놓이고 아늑하고 평화로운 이름이 또 있겠는가. 천년 전 영국에서는 아내를 '피스 위버(Peace-weaver)'라고 불렀다. 평화를 짜 나가는 사람이란 말이다.

행복한 가정은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결혼 행로에 파란 신호등만이 나올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어려움이 있으면 참고 견디어야 하고, 같이 견디기에 서로 애처롭게 여기게 되고 더 미더워지기도 한다. 역경에 있을 때 남편에게는 아내가 아내에게는 남편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같이 극복해 온 과거, 옛이야기하며 잘산다는 말이 있지.

결혼 생활은 작은 이야기들이 계속되는 긴긴 대화다. 고답할 것도 없고 심오할 것도 없는 그런 이야기들.......

부부는 서로 매력을 잃어서는 아니 된다. 지성인이 매력을 유지하는 길은 정서를 퇴색시키지 않고 늘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며 인격의 도야를 늦추지 않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세월은 충실히 살아온 사람에게 보람을 갖다 주는 데 그리 인색치 않다.

너희 집에서는 여섯 살난 영이가 '백설 공주' 이야기를 읽고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고거, 에미 어려서와 꼭 같구나" 그러시리라.

 

 봄/피천득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계절의 봄을 인생의 봄과 서로 교차하고 대응시킨 이 글은 문장 하나하나가 서정시처럼 아름답고 정교한 수필이다.

봄이 되면 겨우내 입었던 무겁고 두꺼운 옷을 벗어 버리고, 방안에만 갇혀 있다가 밖으로 나와 따뜻한 햇살이 퍼져 있는 생동하는 대지를 마음껏 호흡할 수 있다. 봄은 이처럼 마음과 몸을 짓누르던 무거움으로부터 가벼움을 되찾게 해 주고, 닫힌 공간에서 벗어나 생명이 약동(躍動)하는 열린 공간을 호흡하게 해 준다. 여기에는 비상(飛翔)의 꿈과 자유의 기쁨이 있다. 삶에 대한 성취 의욕이 다시 용솟음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작자는 이러한 봄이 바로 인생에 있어서는 젊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지나간 청춘과 젊음은 안타까운 미련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지나간 젊음에 대해 아쉬움과 한탄으로 일관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봄을 기다리는 심정은 잃어버린 젊음에 대한 향수인 동시에, 생기 넘치는 삶을 성취하고자 하는 의욕이다. 40이 넘은 사람에게도 매년 찾아오는 봄, 그 봄의 의미를 알뜰히 가꾸어 더욱 성숙된 삶을 지향하고자 한다. 한편으로, 이것은 무디어진 지성과 감수성의 회복이기도 하다.

  요점정리

성격 : 경수필, 서정적 수필

표현 : 간결하고 부드러운 문체

             쉽고도 명료한 단어와 서정시처럼 아름다운 문장 구사

주제 : 봄을 맞는 기쁨과 그 의미

출전 :

  작품 읽기

‘인생은 빈 술잔, 주단 깔지 않은 층계, 사월은 천치(天癡)와 같이 중얼거리고 꽃 뿌리며 온다.’

이러한 시를 쓴 시인이 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렇게 읊은 시인도 있다. 이들은 사치스런 사람들이다. 나같이 범속(凡俗)한 사람은 봄을 기다린다.

봄이 오면 무겁고 두꺼운 옷을 벗어 버리는 것만 해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주름살잡힌 얼굴이 따스한 햇볕 속에 미소를 띠우고 하늘을 바라다보면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봄이 올 때면 젊음이 다시 오는 것 같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 그림이나 조각을 들여다볼 때, 잃어버린 젊음을 안개 속에 잠깐 만나는 일이 있다. 문학을 업(業)으로 하는 나의 기쁨의 하나는, 글을 통하여 먼 발자취라도 젊음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젊음을 다시 가져 보게 하는 것은 봄이다.

잃었던 젊음을 잠깐이라도 만나 본다는 것은 헤어졌던 애인을 만나는 것보다 기쁜 일이다. 헤어진 애인이 여자라면 뚱뚱해졌거나, 말라 바스러졌거나 둘 중이요, 남자라면 낡은 털자켓같이 축 늘어졌거나, 그렇지 않으면 얼굴이 시뻘개지고, 눈빛이 혼탁해졌을 것이다.

젊음은 언제나 한결같이 아름답다. 지나간 날의 애인에게서는 환멸(幻滅)을 느껴도, 누구나 잃어버린 젊음에게서는 안타까운 미련을 갖는다.

나이를 먹으면 젊었을 때의 초조와 번뇌(煩惱)를 해탈(解脫)하고, 마음이 가라앉는다고 한다. 이 ‘마음의 안정’이라는 것은 무기력으로부터 오는 모든 사물에 대한 무관심을 말하는 것이다. 무디어진 지성(知性)과 둔해진 감수성(感受性)에 대한 슬픈 위안의 말이다. 늙으면 플라톤도 허수아비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높은 지혜(智慧)도 젊음만은 못하다.

인생은 40부터라는 말은 인생은 40까지라는 말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내가 읽는 소설의 주인공들은 93퍼센트가 사십 미만의 인물들이다. 그러니 사십부터는 여생인가 한다. 40년이라면 인생은 짧다. 그러나 생각을 다시 하면 그리 짧은 편도 아니다.

‘나비 앞장 세우고 봄이 봄이 와요.’

하고, 부르는 아이들의 나비는 작년에 왔던 나비는 아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온다지만 그 제비는 몇 놈이나 다시 올 수 있을까?

키츠가 들은 나이팅게일은 4천 년 전이 이역(異域) 강냉이 밭 속에서 눈물 흘리며 듣던 새는 아니다. 그가 젊었기 때문에 불사조(不死鳥)라는 화려한 말을 써 본 것이다. 나비나 나이팅게일의 생명보다는 인생은 몇 갑절이 길다.

민들레와 바이올렛이 피고, 진달래 · 개나리가 피고, 복숭아꽃 · 살구꽃, 그리고 라일락 · 사향장미가 연달아 피는 봄, 이러한 봄을 40번이나 누린다는 것은 적은 축복은 아니다. 더구나 봄이 40이 넘은 사람에게도 온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것이다.

녹슬은 심장도 피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건을 못 사는 사람에게도 찬란한 쇼윈도는 기쁨을 주나니, 나는 비록 청춘을 잃어버렸다 하여도 비잔틴 왕궁에 유폐(幽閉)되어 있는 금으로 만든 새를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아아, 봄이 오고 있다. 순간마다 가까워 오는 봄!

 

#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 영국 시인 T.S 엘리어트의 <황무지>에 나오는 구절

# 키츠 :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 셸리 등과 함께 탐미주의의 극점을 이룸. 그의 시 중에 <나이팅게일에게 부침>이 있다.

# 룻 : 구약에 나오는 모압 여자로 이스라엘 사람을 남편으로 맞았으나 그가 곧 죽자 시어머니와 함게 이스라엘로 와서 보리 이삭을 주워 시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함.

# 사향장미 : 사향내가 나는 장미의 일종.

 
    Kitaro 연주 모음곡... 01, End Theme Beyond 02, Caravansary 03, Silkroad - 메인테마 04, Angel Queen 05, Mirage 06, Winter Waltz 07, Moondance 08, Wave Of Sand 09, Oasis 10, Silver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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