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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체샤 마운틴 (산마을)
 
 
 
카페 게시글
로체샤 토크 스크랩 산악인 김형일·장지명
화인벨 추천 0 조회 285 14.07.08 15:16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촐라체 북벽 등반 중 김형일·장지명 추락사○

 

 - 그들은 끝내 ‘동굴’을 찾지 못했다

 

10월 26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헬기를 이용해 카트만두로 철수한 원정대는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곧바로 촐라체 등반을 위해 루클라로 향했다.

5일여 간의 카라반 끝에 베이스캠프(4300m)에 도착한 후 약 일주일간 등반을 준비했다.

 11월 10일 오전 4시 40분, 김형일 대장과 장지명 대원은 등반에 필요한 최소한의 장비와 식량을 챙겨

 베이스캠프를 떠났다. 7시쯤에 북벽에 도착한 대원들은 10시에 본격적으로 등반을 시작했다.   

 

<11월 10일 새벽 4시 40분 베이스캠프를 출발하는 김형일 대장(왼쪽)과 장지명 대원의 마지막 모습>

 

등반대는 약 5800m 지점까지 2005년 박정헌·최강식이 오른 루트와 거의 흡사한 라인으로 올랐다.

11월 10일 자정 무렵, 김형일 대장은 등반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베이스캠프로 “라인을 잘못 들어왔다.

망원경으로 루트를 관찰해달라”는 무전을 보내왔다.

마침 보름달이라 관찰이 가능했기에 베이스캠프에서는 잘못된 루트를 고쳐주었다.

이렇게 헤매는 과정에서 4시간 정도가 허비되었다.

 

등반을 재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오전 8시경, 등반대는 무전에서 “설사면에 도착했다.

힘들고 배가 고프다”는 연락을 한 후 등반을 계속 이어갔다.

 이후 9시 50분에 다시 “동굴이 있는 줄 알았는데 발견을 못해서 비박을 하지 못했다.

 음식도 못 먹었다”는 연락과 함께, 김형일 대장으로부터 “선등을 많이 해서 발목이 아프다.

체력이 많이 소진됐다. 목이 마르고 아프다”는 무전이 왔다.


등반을 시작한 지 24시간만인 11일 오전 10시경에 해발고도 5800m까지 진출한 등반대는

 박정헌씨에게서 전해 들었던 ‘동굴’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2003년 이 동굴에서 비박을 했던 한국산악회 원정대의 자료와 비교해본 결과,

 이번 K2익스트림팀의 등반라인은 동굴의 위치에서 오른쪽으로 한참 떨어져있었다.

당시 원정에 참가했던 대원의 말에 의하면, ‘동굴’은 텐트 한 동을 설치할 공간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올 가을 시즌은 예년에 비해 눈이 많았던 터라,

등반대가 한국산악회 원정대와 같은 라인으로 등반했어도 오버행의 눈처마 아래

움푹 팬 암벽지대인 ‘동굴’을 찾지 못할 가능성이 컸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 5800m 부근의 지점을 망원경으로 관찰하던 베이스캠프에서는 등반대에게 무전을 보내

 “왼편의 칼날능선은 위험해 보이니 오른편의 암벽으로 붙어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김형일 대장은 “발목이 아파 칼날능선 쪽으로 이동하려고 하니,

루트의 마지막이 어떤지 관찰해달라”고 요청한 후, 곧바로 왼편 칼날능선으로 향했다.

여전히 쉬지도, 음식을 먹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인 오전 11시에

김형일 대장은 베이스캠프로 다시 무전을 보내 “칼날능선 진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스노 파우더 지대라 등반하기 어렵다”라는 연락과 함께 “탈수 증세가 심하다.

휴식을 취해야 할 것 같다”며 동굴을 계속 찾고 있음을 알렸다.

이것이 등반대로부터 받은 마지막 무전이었다.

 

 

<북벽 시작점의 설벽을 오르기 시작하는 두 사람  헬멧에 착용한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했다>

 

- 비교적 안전한 쿨르와르 진입 후 1,300m 추락


칼날능선 진입에 실패한 등반대는 등반라인을 바꿔 오른편 암벽지대로 향했다.

 이후 등반에 큰 무리가 없었는지, 베이스캠프로 아무런 교신을 보내오지 않았다.

암벽지대를 통과한 후 해발 6000m 부근의 쿨르와르로 들어간 등반대의 모습은 베이스캠프에서 관찰하던

망원경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들의 모습이 다시 관찰된 것은 오후 4시 16분경.

북벽을 관찰하던 이일영, 임일진 대원과 네팔인 조리사 1명은 촐라체 북벽에서 무언가 추락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일영 대원은 곧바로 위성전화를 통해 “벽에서 뭔가 물체가 추락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그들의 소속사인

 K2코리아에 알려왔다. 그는 통화에서 “노란색 재킷(장지명 대원)이 먼저 추락하고,

10초 후 파란색 재킷(김형일 대장)이 추락했다”고 말했다.

 다시 한 시간 후인 5시 15분경에 전화를 건 이일영 대원은

 “김 대장과 장 대원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후 베이스캠프 대원 2명은 셰르파 11명을 데리고 사고현장으로 달려갔다.

김형일 대장과 장지명 대원의 시신은 6시 15분쯤 해발 4,700m 부근에서 발견됐다.

발견 당시 두 대원은 100m 정도 떨어져 있었으며,

두 사람 사이에 묶여 있던 로프는 중간이 끊어진 상태였다.

또한 김형일 대장의 하반신에는 침낭이 덮여있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보아, 이곳에서 비박을 시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꼬박 30시간을 쉬지도 못하고 등반한 그들은 많이 지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박정헌씨에 따르면, 이 쿨르와르 지대는 경사 60도 정도라 2005년 당시 안자일렌으로 통과할 만큼

어렵지 않은 구간이다. 하지만 상단에 있던 장지명 대원이 먼저 (이유를 알 수 없는) 추락을 했고,

그 충격으로 한 로프에 연결되어 있던 김형일 대장도 추락한 것으로 보인다.

 김형일 대장의 하반신에 침낭이 덮여있었던 것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두 대원을 발견한 후 이일영 대원은 다시 K2코리아 본사로 전화를 해 “시신을 찾았다”고 알려왔다.

 

 사고소식을 접한 K2코리아 측은 한국시간으로 오후 8시에 대책회의를 소집하고 유가족에게 연락을 취했다.

사고 다음 날인 11월 12일, 안치영씨가 사고수습을 위해 트만두로 출국했다.

네팔 현지에서는 이른 새벽부터 셰르파들을 동원해 두 사람의 시신과 유품을 수습했다.

원정대의 증언에 따르면, 셰르파들이 서로 안 가려고 해 설득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현지시간으로 오전 11시쯤 수습이 완료되자 그들은 루클라에 대기하고 있던 헬기를 요청했다.

날씨가 좋지 않아 대기하던 헬기는 12시 반쯤 출발해 루클라에서 다시 기름을 충전한 후 카트만두로 이동했다.

 

 

 

<삼성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놓인 두 대원의 영정>

 

- 14일부터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K2 C&F센터 3층에 임시분향소가 설치됐다.

 이에 대해 촐라체 사고대책본부 관계자는 “등반의 본질을 좇아간 두 산악인의 도전 정신과

넋을 기리기 위해 평소 그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에 임한 K2 C&F센터에 분향소를 설치했다”며

 “분향소가 마련된 오전부터 두 대원을 추모하려는 조문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K2코리아 대표와 유가족 8명은 오전 9시 45분 항공편을 이용해 카트만두로 출국했다.

 

 카트만두에 도착한 유가족들은 곧장 시신이 안치된 병원으로 가 시신 입관과 밀봉 절차를 진행했다.

 이후 16일 오후 두 대원의 시신은 유가족과 함께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으며,

한국시간으로 17일 00시 40분에 고국에 돌아왔다.

 

<한국산악회장으로 김형일·장지명 영결식 엄수>


- 촐라체(6440m) 북벽 등반 도중 해발 6000m 부근에서 추락해 숨진 김형일 대장과 장지명 대원의 빈소는

 11월 17일부터 19일까지 서울 일원동에 위치한 삼성의료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되었다.

사단법인 한국산악회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에는 연일 산악인들과 고인의 지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두 사람의 합동영결식은 19일(토) 오전 8시에 엄수되었다.


김형일 대장의 친구이자 산악인인 이기열씨(대전시산악구조대장)의 사회로 진행된 영결식에는

 유가족 및 K2코리아 관계자, (사)한국산악회와 (사)대한산악연맹 임원진 및 관계자, 산악인  등

 200여명이 참석해 고인들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묵념과 고인들의 약력보고에 이어,

촐라체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후 등반을 앞두고 가졌던 인터뷰 영상과 추모영상이 상영됐다.

 

 영상 속 김형일 대장의 “리더로서 좋은 파트너와 함께 할 수 있어 기대된다.

서로 잘 챙겨서 지금까지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성공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화면이 흘러나오자

영결식장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정영훈 K2코리아 대표이사 또한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추도사에서 “가슴은 아프나, 수직의 벽에서 승화하며 그들이 남긴 고귀한 열정을 생각하면

 그저 고맙다”며 “당신들이 보여준 위대한 도전정신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한편, 장지명 대원의 어머니가 아들의 영정에 헌화한 후 “얼마나 무서웠니, 우리 아들아”라는 말을 되뇌며

오열하자 영결식장은 마침내 울음바다로 변했다. 특히 1998년 인도 탈레이사가르(6904m) 북벽에서

막내아들 김형진씨를 잃은 김형일 대장 어머니의 “동생 먼저 보내고 너마저 이렇게 가면 어떡하냐”는 말에

주위는 더욱 숙연해졌다. 유가족에 이어 원정대원, 산악계 관계자, K2코리아 관계자 등의 헌화가 끝난 후,

고인들의 시신은 2대의 차량으로 나뉘어 성남 영생원으로 이동했다.

시신은 화장한 뒤 각 유가족들이 마련한 장지에서 49재를 마치고, 유골은 그들이 사랑하고 동경했던

 히말라야에 뿌려질 예정이다. ⓜ

 

<고 김형일·장지명 대원의 영결식은 11월 19일 한국산악회장으로 엄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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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4.07.08 15:22

    첫댓글 김형일! ..눈에 선한데..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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