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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는 주변 강국들로부터 시달림을 많이 받은 작은 국가로 민족의식도 그리 뚜렷하지 않아 유럽역사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므로 서유럽에서 최초의 대도시가 발생했으며 유화를 최초로 발명한 화가가 살았던 곳이라는 사실은 거의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200여종이나 되는 맥주, 세계적으로 유명한 초콜릿을 맛볼 수 있으며, 어느 곳에서도 편안한 느낌을 주는 훌륭한 바와 카페,그리고 역사적으로 부유한 예술 도시 브뤼헤로부터 목가적인 아르덴고지의 멋진 풍경에 이르기까지 한번 벨기에에 발을 들여 놓으면 그 매력에 흠뻑 빠질 것이다
통계 자료 정식국명 : 벨기에 왕국(Kingdom of Belgium) 벨기에는 총면적이 3만 평방km로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독일, 프랑스에 들러 쌓인 유럽의 소국 중 하나이다. 북부지방은 평지이고, 아르덴이 있는 서부는 고산지대이다. 65km에 달하는 북해해변은 바람이 심한 몇 곳을 제외하고 휴양지로 유명하다. 저지대는 십자로 서로 연결된 운하망으로 되어 있다. 기후는 온난한 편이나 가장 따뜻한 7,8월이 가장 습한 때이기도 하다. 프랑스와 독일의 중간, 그리고 북해를 끼고 있는 위치로 인하여 벨기에는 오랫동안 유럽의 전쟁터였다. 13.14세기 때는 직조와 직물 거래의 발전으로 이프레(Ypres), 브뤼헤(Bruges), 헨트(Ghent)같은 플랑드르 마을들이 대도시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직공들이 길드(예술가와 공예 기술자들의 자치 공동체)를 결성하고 여러 도시에 화려한 길드 하우스를 세우기도 했으나 영국과의 경쟁, 외국산 직물을 거부한 브뤼헤인들의 고집, 해상 교역의 어려움 등으로 플랑드르의 직조업이 쇠퇴하면서 도시들도 쇠퇴하기 시작했다.
무역의 중심지도 후일 유럽 최대 항구도시로 발전하는 서부의 엔트워프(Antwerp)로 옮겨갔다.신교가 전 유럽을 휩쓸던 16세기, 저지대 국가들(오늘날 베네룩스 3국으로 알려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은 그들의 통치자이며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스페인 국왕 필립 2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교를 받아들였다. 필립 2세가 카톨릭을 고수하기 위해 잔혹한 탄압을 자행하면서 종교 분쟁이 일어났다.
프로테스탄트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교회를 약탈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했다. 1568년, 전쟁 발발 직전인 1568년에 필립왕은 1만명의 군대를 보내 진압하고 수천 명을 투옥시키거나 처형하였다. 80년 동안이나 지속된 반란으로 네덜란드와 오늘날과 같은 경계선이 만들어졌다 - 홀랜드(Holland)와 그 연합 지방은 스페인의 통치를 벗어났지만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는 그 통치를 벗어나지 못했었다. 그 후, 200년 동안 벨기에는 끊임없이 외세의 전쟁터가 되었다. 스페인이 물러나면서 오스트리아, 프랑스가 순서대로 침입했으며 1814년에 나폴레옹이 브뤼셀 근처의 워털루 전쟁에서 패하자 네덜란드 연방이 결성되었으며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는 네덜란드로 통합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카톨릭 교도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1830년에 독립 국가를 세우게 되었다.플랑드르 민족주의가 번성하면서 플라망어(네덜란드에서 파생)와 프랑스어 사용자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으며, 이 갈등 때문에 결국 나라가 언어권에 따라 분할되게 되었다.
1885년 당시 왕인 레오폴트 2세는 몸소 아프리카의 콩고(지금의 자이레)를 정복하고 노예 거래를 일삼는다. 벨기에의 식민지였던 콩고는 1960년 오랜 투쟁 끝에 독립을 쟁취하였다. 한편, 1914년, 벨기에의 중립 정책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벨기에를 침공하게 되었다. 1차 세계 대전 내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르다가 이프레가 지도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에 전 국토는 3주간의 기습 공격으로 함락되기도 했었다. 이 치욕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당시 국왕이었던 레오폴트 3세가 1950년에 물러나게 되었으며, 그의 아들인 보두인 왕(Baudouin)이 계승하여 1993년 사망할 때까지 높은 인기를 누렸다. 자식이없어 현재 국왕인 동생 알베르 2세(Albert II)가 왕위를 계승했다.전후의 벨기에는 경제 성장으로 인해 번영하게 되며, 브뤼셀 조약에 따라 유럽 연합(the European Union)과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본부가 이곳에 자리하게 되었다. 국내 총생산 : US$2,130만 15세기, 유화를 처음으로 발명한 사람은 벨기에 사람인 얀 반 아이크(Jan van Eyck)였고 그가 이끌던 플랑드르 원시파는 사실적 그림을 즐겨 그렸다. 이 때가 벨기에 예술이 빛을 발하던 때이다. 16세기 중반, 피터 브뤼겔(Pieter Brueghel)은 농민을 그로테스크하게 묘사했고 17세기 초, 폴 루벤스(Paul Rubens)는 젊은 시절,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바로크 회화의 영향을 받았다. 고향인 앤트베르펜으로 돌아와서 스튜디오를 세우고 매우 왕성한 활동을 하였는데,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예수(Decent from the Cross)]처럼 감각적이고 종교적인 것을 주제로 삼았다. 동시대의 안소니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와 야콥 요르댄스(Jacob Jordaens)도 앤트베르펜에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 20세기에 들어 구불구불한 선(線)이 특색인 아르 누보 건축이 앙리 반 드 벨드(Henri van de Velde)와 빅토르 오르따(Victor Horta)의 주도 아래 시작된다. Horta는 독특한 인테리어 기법으로 유명하며 직선이나 각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천장과 벽 사이에도 각이 없고 부드러운 곡선으로 처리해, 마치 벽과 천장이 하나로 이어진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또 하나 벨기에 사람들의 자랑거리는 만화이다. 벨기에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만화가들이 많이 있지만 국제적으로 유명한 곱슬머리의 탱탱(Tintin)을 그리는 에르제(Herg )가 우리에게도 알려진 대표적 만화가이다. 벨기에 사람들은 축제를 좋아한다. 특히, 종교 페스티벌인 카니발을 열광적으로 즐긴다. 특이한 것은 벨기에 사람들이 정오쯤에는 하던 일을 멈추고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가는 전통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다. 동성애에 대한 태도는 인근 네덜란드와 비교하면 아주 보수적이다.벨기에 전체 인구 1천만명, 그 중에서 60%의 인구가 북부 지방의 플라망어권이고 불어를 쓰는 서쪽 왈론인은 40% 정도이다.
브뤼셀 지역은 더 복잡하다. 공식적으로는 두 언어 다 사용되지만 프랑스어를 훨씬 많이 사용한다. 서쪽 끝에는 소수지만 독일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벨기에 헌법 제정 당시, 불어를 공식어로 하고 플라망어를 금지시킨 데서 언어적인 갈등은 심화되었고 오랫동안 벨기에의 정치적,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벨기에 여행자들에게 언어 분단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진 않으나 여행자들은 당황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차를 타고 몽 Mons(불어 지명)으로 갈 경우, Mons으로 된 신호판을 계속 보다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베르겐 Bergen(플랑드르어 지명)으로 바뀌는 경우이다. 벨기에 요리는 유럽에서 알아준다 - 프랑스 요리보다 한 수 아래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등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독일식에 프랑스 스타일을 혼합한 만큼 두루두루 사랑을 받는다. 고기와 해산물 요리가 주로 많다.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것은 벨기에에서 제일 먼저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프리트(frites(흔히 말하는 프렌치 프라이))이다. frites의 인기는 대단하다.
마을마다 적어도 한 곳 이상의 frites가게(friture)가 있다. 와플(또는 고프레)도 길거리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간식 거리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맥주와 버금갈 벨기에 명물 초콜렛(프랄린(pralines)이라고 함)이 있다. 'Godiva'가 특히 유명한데 하나 집을 때마다 끼는 흰 글러브의 비용도 별도로 내야 한다. 고기 요리나 야채 수프 등도 빠지지 않는 메뉴지만 백포도주로 맛을 내고 프리트를 수북히 곁들여 내오는 홍합요리만큼 국민적 메뉴도 없을 것이다. 벨기에 맥주는 그 품질과 종류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종류만도 350종이 넘고 스탠더드 라거 맥주로부터 특제 양조맥주까지 등급도 천차만별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트래피스트(Trappist)맥주는 유서 깊은 사원에서 주조한 것으로, 색이 짙고 낟알이 씹히는 특징이 있다. 도수는 6-10도 정도로 높다. 순간 발효시킬 때 넣는 첨가물에 따라 달콤하거나 시큼한 맛이 나는 lambic 맥주, 시큼한 맛이 나는 gueuze, 달콤한 맛이 나는 kriek(체리를 곁들임)와 framboise(나무딸기를 곁들임) 등으로 구분된다. 전통 카톨릭 행사를 제외하고 브뤼셀에서 가장 축제가 많은 달은 7-8월이다. 7월 첫째 목요일은 Ommegang행렬로, 전통의상을 갖춰입고 거대한 퍼레이드가 진행된다. 벨기에 독립기념일인 7월21일에도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비자 : 대한민국 여권소지자는 3개월 동안 비자 없이 여행할 수 있다. 통화 : 벨기에 프랑(Bf), 나라의 크기만큼, 다니기에 경비가 많이 부담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렴한 숙박지가 거의 없고, 찾더라도 많이 붐빌 것이다(특히 여름철). 아주 절제하고 다닌다면 하루 U$25 정도 예상된다. 종 더 편안한 잠자리를 원한다면 U$45이상은 잡아야 한다.은행이 가장 좋은 환전장소이고, 여행자수표 환전 시 US$4 정도의 수수료를 지불한다. 은행 시간 외에는 환율은 덜하지만 환전소에서 할 수 있다. 대부분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으며 팁은 꼭 내야할 필요는 없다. 벨기에는 일반적으로 날씨가 맑은 편이며, 해양성 기후이다. 7-8월이 제일 따뜻하고 습하며, 강수량은 연중 비슷하다. 11월-3월 겨울이면 아르덴 지방에 눈이 오기도 하며 다른 지방보다 상당히 춥다. 어느 때 가던지 잿빛 하늘과 젖은 길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산과 우비를 착용한 사람들을많이 볼 수 있는데 벨기에 국가의상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그리 매혹적인 수도는 아니지만, 브뤼셀(불어로 Bruxelles, 플라망어로 Brussel) 웅장한 고건축물과 현대적 빌딩들이 알맞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브뤼셀의 분위기는 신중함과 자신감을 쉽게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벨기에 사람들의 기질과도 비슷하다. 브뤼셀은 6세기 경, 센느(Senne)강변(위생적 이유에서 오래 전 매립되었다)에서부터 성장하였는데, 2개 언어가 통용되고 EU, NATO의 본부가 들어서 있다. 중앙광장은 유럽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 중의 하나이다. 15세기에는 시장이었던 대광장(Grand Place)은 브뤼셀을 한눈에 느 수 있는 곳이며 브뤼셀의 중심지이다. 광장 내 쁘띠 링(Petit Ring)은 관광객과 이곳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로 애용되며 Petit Ring 주위는 볼거리도 많이 있다. 대광장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가면 저렴한 숙박지가 몰려 있는데 전차, 버스, 지하철로도 연결된다.대광장 주변으로 많은 박물관과 건축물, 구경거리들이 몰려 있다. 대광장 남쪽으로 아르누보 제단이 있는데, 1899년, 한 예술가가 이 도시에 헌정한 금패로서,팔을 문지르면 행운이 온다고 하는 14세기 영웅상이 옆에 있다.
근처에 유명한 오줌 누는 소년 동상(Manneken Pis)이 있다. 벨기에를 알기 위해 가 볼 만한 곳은 Maison des Brasseurs 건물내의 양조 박물관(Brewery Museum)이다. 맥주와 관련된 전시뿐 아니라 길드 하우스의 내부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장소이다. 대광장의 Maison du Roi 건물 내 브뤼셀 박물관(City of Brussells Museum)에는 이 도시의 역사적 사건들과 오줌 누는 소년상이 입었던 다 떨어진 옷조각 등이 전시되어 있다. 고대 미술관(Ancient Art Museum)에는 플랑드르 원시파 화가인 Brueghel과 Rubens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만화를 좋아한다면 만화 센터(Comic Strip Centre로 가보자. 건물은 Horta가 설계한 아르누보식 건물이다. 오르따 박물관은 오르따 생전의 자택이었고 그의 세기말 건축 운동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동쪽으로 쌩껑뜨네르(Cinquantenaire)는 미술, 역사, 전쟁 무기, 차량을 거대한 공원에 전시한 종합 박물관이다. 구에즈 박물관(Gueuze Museum)에 가면 아직도 전통적 방법으로 양조한 술맛을 볼 수 있다. 아토미엄(Atomium)은 1958년 만국 박람회장이었고 현재는 이 도시의 상징이 되었다. 옆에 있는 미니 유럽 테마공원에서는 작은 모형으로 유럽을 재현해 놓고 있다.
Antwerp(플랑드르어로 Antwerpen, 불어로 Anvers)는 벨기에에서 브뤼셀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수많은 바로크 건물이 들어찬 이 도시는 17세기 화가 루벤스(Pieter Paul Rubens)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러나 많이 알려지지는 않아서 관광인파가 몰리는 곳은 아니다. Scheldt 강이 중앙으로 흐르는 Antwerp는 16세기 초만 해도 서유럽의 경제 중심지였다. 그러나 번영의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1566년에 프로테스탄트 교도들이 우상 파괴 운동의 일환으로 대성당을 점령하자, 스페인 국왕 필립 2세가 군대를 파견하여 탄압하였고 10년 뒤, 봉급을 받지 못한 스페인 주둔군이 폭동을 일으켜 도시 전체를 약탈하고 8000여명의 시민을 학살하였다.
1648년에는 네덜란드가 Scheldt 강을 폐쇄하고 자국의 선박 외에는 출입을 금지시켜, Antwerp의 생명선을 봉쇄한 사건이 발생해서 고통을 겪었다. 오늘날 Antwerp는 비록 공식적으로 그다지 인정받진 못하지만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 도시의 분위기는 세계적인 항구로서의 국제적인 명성만큼 세련되진 않다. Antwerp는 Scheldt 강과 'Ring'(도시 주위를 두른 16세기 성벽 위로 건설된 고속도로)으로 구분된다.
주요 관광지는 인상깊은 중앙역(CS)에서 15분 거리인 구시가(Grote Markt 주변)사이에 집중되어 있다. 앤트워프는 산책이 잘 어울리는 도시로, 오래 전에 운하이던 곳을 메워 넓은 광장과 자갈이 깔린 좁은 길 등을 조성하여 아름다운 산책로가 많다.박물관도 많은데, 루벤스 생가(Rubens' House)는, 루벤스의 유명한 작품들이 성당에 전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문객이 가장 많은 명소이다. 루벤스와 플랑드르 원시파, 그리고 현대 미술 작품은 왕실 미술관(Royal Museum of Fine Arts)에 전시되어 있다.
해상 박물관은 중세의 성에 있으며, 다이아몬드 박물관(Diamond Museum)에서는 다이아몬드 커팅 시범도 직접 볼 수 있다.꼭대기에 120m 높이 첨탑이달린 Onze Lieve Vrouwe는 벨기에에서 규모가 가장 큰 성당으로, 이 안에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그리스도]가 있다. 앤트워프 동물원도 가 볼만 하다.
완벽한 매력을 지닌 관광도시 브뤼헤는 유럽에서 중세의 모습(13세기)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도시 중 하나로 벨기에에서 방문객이 가장 많은 도시이다. 부유하고 화려한 13세기의 도심은 엄격한 건물규제로 인해 5세기 이전부터 그대로 정체되어 있다. 13세기의 브뤼헤는 직물 제조업이 발달하고 플랑드르 원시파미술의 중심지기도 하였으나 그 당시 강이 범람하고 흙이 이 도시를 뒤엎자 부유한 상인들이 이 도시를 떠나 앤트워프로 이주하면서 빈집과 운하가 그대로 남게 되었다. 엄격한 건축 제한법 때문에 지금도 이 문화 유산이 잘 보존되고 있다.
요즘 브뤼헤는 도시 전체가 여름만 되면 사람들이 들끓는 '살아 있는 박물관'이 되고 있다. 관광 시즌이 아닐 때나 늦은 여름밤에는 차임벨 소리가 자갈길을 따라 퍼져 나가고, 어린아이들은 몰래 버드나무 울타리가 있는 운하에 낚싯대를 드리우는 등, 낭만 속에서 푸근한 전통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브뤼헤는 타원형 모양으로 생긴 운하에 둘러싸여 있는데 관광지 모두를 걸어다니며 볼 수 있을 정도로 몰려 있어 느긋하게 여행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의 천국이다.
Markt와 Burg가 중심지인데 대다수의 버스가 이 두 곳에 정차한다. 브뤼헤는 관광 명소를 돌아보는 것 뿐 아니라 종루에 올라 보고 배를 타고 운하를 돌아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도시이다.Groeninge Museum에는 초기 원시파부터 현대까지 망라하여 플랑드르 미술이 전시되어 있다. 성모 교회(Church of Our Lady)에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인 [성모와 아기 예수 hild]가 소장되어 있다. Memling Museum은 초기 플랑드르 원시파 화가인 Hans Memling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종루의 366개 계단을 힘들게 올라가더라도 탑 꼭대기에서 경치를 바라보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평화로운 13세기 정원과 온화한 흰색 건물로 이루어진 Beginhof는 예전에는 독신녀와 과부들의 집이었으나 오늘날은 베네딕트 수녀원이 되었다.
파리를 제외하고 중세 유럽에서 가장 컸던 도시가 겐트였다(플라망어로 Gent, 불어로 Gand). Leie 강과 Scgeldt 강이 교차하는 지역에 위치한 겐트는 14세기 중반 유럽에서 양모를 수입하여 직조하던 최대 직물 생산지였다. 겐트 시민들은 자신들에게 부과된 무거운 세금을 거부하고 시민군을 결성해 투쟁하기도 했었다. 오늘날 학생수가 많고 다소 지저분하고 어두운 분위기여서 브뤼헤같은 도시들처럼 멋진 경관은 기대할 수 없지만 그래도 겐트는 나름대로의 매력적인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다른 벨기에 도시들과 달리 겐트는 특정한 중심지가 없다. 대신 중세의 핵심인 세 건축물로 연결된 대규모 개방 광장이 줄지어 있다. 성 니콜라스 교회(St Nicholas' Church), 종루, 성 바프 대성당(St Baaf's Cathedral), 이들 탑으로 이어진 스카이 라인이 겐트의 상징적인 모습이다. 중세 도시라는 점이 겐트의 가장 큰 매력이지만 그것 외에도 흥미를 끌 만한 것이 많다. Museum voor Schone Kunsten(순수 미술관)에는 플랑드르 원시파의 작품과 히에로니무스 보슈(Hieronymus Bosch)가 그린 두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현대 미술은 별도의 전시실에 있다. 아름다운 13세기 사원에 있는 Bijloke Museumd은 골동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옛 직조 공장에 부속되어 있던 14세기 종루 안에 들어가면 도시 전체가 내려다보인다. 성 바프 대성당은 밖에서 보면 그리 눈에 띄는 건물은 아니지만 위베르(Hubert)와 얀 반 아이크 형제가 그린 [신화적 양의 숭배(Adoration of the Mystic Lamb)]가 있어 많은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 그림이 중세의 종교적 사상을 아주 잘 보여주는 걸작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Gravensteen성은 12세기 공작의 성으로 평민들을 방어하고 그들의 복종을 요구하기 위해 건설된 당시의 전형적인 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벨기에 남동쪽, 깊은 계곡과 높은 산이 있는 아르덴은 예술의 도시와 수도 사이를 오가느라 바쁜 여행자들이 그냥 지나쳐 버리기 쉬운 곳이다. 그러나 Namur, Liege, 룩셈부르크 지역의 Meuse, Lesse, Ourthe 등의 계곡과 수풀이 울창한 고지에 자리한 한적한 마을들은 가 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이킹, 카누 타기, 사이클링, 스키, 지하 동굴 탐험 등도 즐길 수 있는데 역사적으로는 전투가 휩쓸고 간 곳이기도 하다.나무르(Namur)는 이 지역을 여행하는데 가장 좋은 곳이다. 룩셈부르크로 가는 기차가 거쳐가며,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들과 버스 또는 철도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차가 없다면 교통연결이 잘 되어 있지 않아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브뤼셀의 오줌누는 소년 동상이 누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이 누이 동상은 브뤼셀의 Boucher거리(Rue des Bouchers) 중앙식당가 근처 분수대에 있다.
이프레(Ypres)시에 있는 이 기념비는 1차 대전의 참호 속에서 전사했으나 무덤이 없는 5만5천의 영국군과 연합군의 이름이 새겨진 전쟁 추모비이다. 매일 오후 8시에는 나팔소리가 울려 퍼진다. 겐트 순수미술 박물관(Ghent's Museum voor Schone Kunsten) 겐트 중앙역에서 10분 정도 북동쪽으로 걸어 가면 나오는 이 박물관은 1시간 정도 관람할 가치가 있는 곳이다. 플랑드르 원시파의 작품과 히에로니무스 보슈(Hieronymus Bosch)가 그린 두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리에쥬 근교에 있는 Tongeren은 벨기에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투르네(Tournai)와 함께 BC15년에 로마 군대의 주둔지였던 곳이다. 중요한 갈로-로마 유적을 소장하고 있으며, 도시는 중세성벽으로 둘러 싸여 있다. 아르덴의 고지는 벨기에의 '야외 운동장'이라 할 수 있다. 겨울에는 스키를, 여름에는 아름다운 숲을 따라 카약과 하이킹, 또는 산악 자전거(자전거 전용 등산로 이용)를 즐길 수가 있다. 다른 흥미있는 활동으로는 선사 시대의 석회암 동굴탐사이다(특히, Han-sur-Lesse, Rochefort와 Dinant에서) 벨기에에는 2개의 국제공항이 있으며, 주요공항은 브뤼셀에서 14km 거리에 있는 Zaventem이고, 다른 하나는 앤트워프에서 가까운 Deurne공항(이곳은 Amsterdam, London, Liverpool, Dublin으로만 연결된다).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런던행은 Deurne에서 가는 것이 더 저렴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Euroline이나 Hoverspeed Citysprint버스가 벨기에와 연결되며, 벨기에 기차도 국제선 운행을 많이 한다. 브뤼셀에는 3개의 주요 기차역이 있다. 영국과 연결되는 페리회사(승객, 차량용 페리)는 2군데가 있다. 하나는 North Sea Ferries (Zeebrugge에서 Hull까지 밤새 건넌다)이고, 다른 하나는 Oostende Lines/Sally Ferries(Ostend와 Ramsgate를 연결하며 1일 6회 운항)이다. 벨기에 여행은 다른 유럽에 비해 저렴하고 용이한 편이다. 버스편도 많고 차량렌트도 쉬우며, 철도망도 잘 되어 있다. 가장 빠른 기차로 InterCity(IC)가 있으며, 노선에 따라 InterRegional(IR)과 지방 철도도 운행된다. 외딴 지역, 특히 아르덴 고지의 마을들을 여행하기에는 버스가 편리하다. 시내교통도 잘 되어 있다(브뤼셀과 앤트워프에는 전차와 전철도 연결된다).
택시는 대부분 기차역 주변에서 탈 수 있고 비싼 편이다. 자전거는 평지대인 북부에서 인기있는 교통수단이며 많은 도로에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따로 있다. 자전거는 기차역에서도 대여할 수 있으며, 벨기에의 강과 운하를 유람할 수 있는 보트도 현지에서 대여할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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