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어 볼만한 이런 저런 시사 정치 야기들 ♣ |
[시론] '아시아 시대'를 이끌 대한민국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 이사장 |
100여년 전 서양 사람들은 중국을 '종이호랑이'라 불렀다. 그렇다면 오늘날 미국은 가히 '비틀거리는 호랑이'이라 불릴 만하다. 최근 호주가 미국이 태평양에서 더 이상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없기 때문에 대대적인 군비 증강에 나서겠다고 발표한 것은 이 '비틀거리는 호랑이'를 웅변적으로 상징하는 사건이다. 한마디로 미국은 빚더미에 싸여 허덕이는 나라이다. 미국의 국가 부채는 내년까지 12조달러로 늘어나 GDP의 무려 80%에 달할 것이다. 미국은 세계 각국에 2조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 이들 나라가 만일 미국 국채를 시장에 내다 팔기 시작하면 미국의 이자율이 천정부지로 올라 미국 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갈 것이다. 미국 국민은 저축률 제로에 매년 수천억달러의 무역적자, 즉 빚에 의존해 수십년 살아온 삶의 스타일에 대한 대가를 이제 치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다. 막대한 국가 부채, 줄어드는 국민 소비, 지켜야 하는 달러 가치, 중동에서의 전쟁 등 모든 난제를 극복하면서 미국 경제가 옛 활력을 되찾기까지는 상당히 긴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유럽도 형편이 미국보다 별로 낫지 않다.
미국과 유럽의 쇠퇴로 야기된 힘의 공백을 누가 메울 것인가?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이 메우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아시아 경제가 가장 역동적이며 여기에 중국이라는 강력한 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시아가 다시 몇 백년 전의 아시아의 구도, 즉 중국이 모든 것을 호령하는 시대로 되돌아갈 것인가? 그것은 세계를 위해서도, 아시아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이다. 중국은 세계를 호령할 수 있는 도덕적인 기반을 아직 갖추지 못한 나라이다.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나라도 아니며 많은 소수민족과 갈등을 빚고 있고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한 자신의 책임과 역할을 천명하지도 않은 나라이다. 그렇다고 일본이 아시아의 기축 역할을 하기에는 일본이 지고 있는 역사의 짐이 너무 무겁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에 사상 초유의 특이한 책임과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성장하였을 뿐 아니라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룬 나라로서 도덕적 정당성과 성공의 노하우를 가진 아시아 유일의 나라이다. 한국은 아시아의 시대에 아시아 전체를 한데로 묶고 그것이 상호 존중과 공동 번영의 공감대 위에 세계 역사를 주도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촉매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것은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역사적 사명이다.
그러기 위해 한국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한국의 전체적인 외교 전략이 다시 수립되어야 한다. 대아시아 외교를 확대하고 글로벌 스탠더드(세계적으로 인정된 보편적 가치)에 입각한 적극적인 대외 개방과 국내 체제 정비를 실천해야 하며 나아가 상호 호혜와 선의의 정신을 세계만방에 적극적으로 표방하고 실천해야 한다. 무엇보다 한·중·일 관계가 상호 호혜적 경제 공동체 이념을 실천하는 모델이 되어야 하고, 한국은 이러한 모델 구축의 이념적 리더·중재적 리더가 되어야 한다. 한·중, 한·일 FTA는 아시아를 하나로 모으는 결정적 기폭제가 될 것이다.
적극적으로 아시아의 후발 주자들에 대한 원조, 특히 경제 개발 노하우에 대한 지적 원조를 대대적으로 확대하며 그를 통해 한국이 선진과 후진의 중심에서 아시아를 묶는 융합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아시아의 시대는 세계 역사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시대가 될 것이며 한국은 5000년 역사상 처음으로 진정 의미 있는 세계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
李明博 정부를 비난하는 日記를 喪中에 공개한 김대중 유족 |
國葬까지 선물한 李明博 대통령에게 "너가 노무현을 죽였지"라고 들이대는 모습이다. 李 대통령의 입장 표명이 불가피하다. 趙甲濟 |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5월 23일 日記에서 "자고 나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보도" 라며 "슬프고 충격적" 이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이어 "그간 검찰이 너무도 가혹하게 수사를 했다"며 "노 대통령, 부인, 아들, 딸, 형, 조카사위 등 마치 소탕작전을 하듯 공격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수사기밀 발표가 금지된 법을 어기며 언론플레이를 했다. 노 대통령의 신병을 구속하느니 마느니 등 심리적 압박을 계속했다. 결국 노 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썼다는 것이다.
유족측이 장례기간에 이런 日記를 공개한 것은 國葬까지 선물한 李明博 대통령에게 "너가 노무현을 죽였지"라고 들이대는 모습이다.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선택한 自殺까지도, 그 자신이 유언에서 "아무도 원망하지 말라"고 한 그 죽음까지도 정권과 검찰에 의하여 강요된 것이라고 인식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선동적 습관을 버리지 못한 것인가. 그를, 동아일보 전 회장 故김병관씨가 저승에서 만난다면 무엇이라고 말할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내 아내의 자살은 당신이 강요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당신의 보복적 세무조사가 내 아내를 죽음으로 몰고 갔어." 국민통합을 위하여 보수층의 비난을 무릅쓰고 관례에도 없는 國葬을 결단하였다는 李明博 대통령은 김대중 일기를 공개한 유족측에 대하여, 그리고 국민들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李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자살로 몰고간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반박되지 않는 거짓말은 진실로 통용되는 곳이 정치판이다. 이런 日記를 喪中(상중)에 공개하는 게 과연 국민과 국가에 대한 예의인가? 故人을 영웅으로 추켜세우기 위하여 꼭 李明博 대통령을 惡黨(악당)으로 만들어야 하는가? 李 대통령은 아예 자존심도 없는 사람이니 이런 식으로 얼굴에 침을 뱉어도 반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계산한 것인가? 노무현 喪家(상가)에서 지지자들이 장례위원장 한승수 국무총리를 비롯하여 이회창, 박근혜씨 등의 弔問을 폭력적으로 방해하였던 것과 비견되는 無禮(무례) 아닌가? 李明博 대통령이 국가의 명예를 버리니 자신의 명예도 지킬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한 듯하다. 李明博 대통령은, 김대중씨 유족들이 故人의 日記를 공개한 21일 오전, 국회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李 대통령은 이날 헌화 및 분향을 한 뒤 유족들을 위로했다. 이어 조문록에 “나라사랑의 그 마음 우리 모두 오래 기억할 것입니다”라는 글을 썼다. joins.com에는 이런 댓글이 올랐다. <이상웅 (spl0516)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정체성도 애매하고 원칙도 없는 이명박이 죽으면 동네장으로 하면 된다!> [ 2009-08-21, 11:38 ] |
특별기고 : 前 대통령 金大中의 죽음 李長春 前외무부 대사 (1940 馬山生) |
‘잃어버린 10년‘은 틀린 말이다. 계속 잃어버릴 세월이 안타깝다.
근 한 달 동안 인공호흡기에 의존했던 전 대통령 金大中이 8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의 행적과 治政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갈래로 엇갈린다. 그의 出生연도마저 네 가지로 달리 알려져 왔다. 차제에 한 가지라도 바로 잡아 둘 만하다. 1997년의 大選으로 가면서 그는 1923년에 태어났다고 직고했다.
이제 그가 세상을 떠난 이상 누구도 그의 삶을 加減(가감)하거나 왜곡할 수 없다. 지금은 그의 죽음을 애도할 때이다. 그러나 그의 장례와 묻힐 곳을 둘러싸고 벌써부터 시끄럽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者들이 그를 조용히 冥府(명부)로 보내지 않고 紛亂(분란)과 갈등을 조장하며 아까운 시간과 자원을 浪費할 조짐이다.
한반도는 한 동안 葬事(장사)를 치르는 데 실없이 바쁠 것 같다. 불과 3개월 전에는 자살한 전 대통령 盧武鉉을 위해 세기적 國民葬을 거행했다. 그때 故人은 유서로 조촐한 가족장을 원했으나 生者들의 부질없는 고집 때문에 死者의 유언이 무시되었다. 이번에는 國民葬보다 ‘높은’ 國葬을 치른다고 하니 더 요란할 듯하다. 머지않아 한 번은 더 國葬을 치러야 할 판이다. 전 대통령 金泳三측이 國葬을 원할 것이다. 또한 머지않아 다른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의 장례가 불가피하다. 이번에는 평양에서 조문사절이 내려왔으니깐 불원간 서울에서도 조문단을 올려 보내야 할 판이다.
남북간의 영악한 政治드라마로 잇속을 챙겨 온 북한은 葬事(장사)를 호재로 재미를 볼 것이 뻔하다. 이래저래 죽음을 다루는 문제가 李明博 정권의 심상찮은 의제가 될 모양이다.
국가의 빈번한 葬禮(장례)는 實用主義에 어긋난다. 까닭 없는 國葬은 개인의 호화 결혼식보다 훨씬 나쁘다. 浪費를 억제 못하는 권력의 허영이다. 국가원수가 國事로 순직한 경우에만 國葬을 치르고 國民葬을 폐지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맞다. 한국처럼 두 개의 국가葬儀(장의)로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는 나라가 없다. 영어에는 國民葬이란 말이 없다. 그런 말이 있다면 國民葬이 國葬보다도 높아야 한다. 민주주의에서는 국민(the people or the nation)이 국가(state)보다도 상위의 개념이다. 예전에 허구한 날을 葬事로 또한 祭祀(제사)로 보낸 조상들의 후예답게 한국은 과연 帝王的(제왕적) 共和國이다. ‘問喪(문상)은 권력의 척도’라는 말이 염치를 모르고 횡행한다. 한국이 民主化를 完成했다는 새빨간 거짓을 더 돋보이게 한다. 선진세계로 가는 길이 멀다는 것을 모르고 자만하는 때문이다.
金大中은 천수를 다한 셈이다. 盧武鉉처럼 60代 초의 나이에 타계한 것도 아니고 비참하게 자살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깐 애달프게 슬퍼하는 사람들이 적다. 비겁한 보수 언론까지 정치권력에 영합하느라고 아양을 떤다. 정상적으로는 이번의 死者가 전라도 고향 땅 하의도에 묻히는 게 바람직스럽다. 미국의 대통령들은 거의 그들의 고향 땅에 묻혀 있다. 겸허한 자세로 죽음을 맞은 死生觀의 소치로 본받을 점이다. 그것이 아름답다. 한국의 지도층 인사들은 대개가 죽음에 오만하여 그렇게 못한다. 盧武鉉은- 그의 治政에 대한 논란과는 동떨어지게 - 火葬하여 경상도 봉하에 묻힐 만큼 겸손하게 삶을 마감했다. 그가 남긴 그 유산만은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김대중은 國葬의 예우를 받을 자격이 없다. 더군다나 대한민국을 위해 순직한 영령을 모신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그가 묻히게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는 대한민국을 사랑한 愛國者가 아니었다. 그는 습관적으로 한국의 건국을 폄하한 반면 북한의 共産왕조 집단을 비호했다. 소위 民主化 투사로서 그가 남긴 족적보다는 그가 大統領으로서 국가에 끼친 累(누)가 너무나 크다.
그는 사실상 국고를 强奪(강탈)한 者이었다. 현금 4억5000만 弗을 훔쳐 북한의 金正日에게 몰래 건넸다. 대한민국의 법치를 무시했다.
그는 反逆者(반역자)이었다. 형법상의 與敵罪(여적죄)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졸개들만 재판에 회부되어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북한은 그가 보낸 돈으로 원자폭탄을 개발했고 소위 강성대국을 유지하는데 썼다.
그는 대한민국을 증오한 인물이었다. 죽기 직전까지 소위 6·15선언의 노래를 부르며 聯邦制(연방제)로 한국의 소멸을 획책했던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한국은 刑事 피의자로 조사를 받던 者가 자살하면 國民葬을 치러주고 敵의 핵무장을 도운 反逆者가 病死하면 國葬을 베푸는 야비한 나라로 타락했다. 국가 스스로가 그 體統(체통)을 갉아먹고 국민의 심기를 괴롭히는 중병을 앓고 있다. ‘잃어버린 10년‘은 틀린 말이다. 계속 잃어버릴 세월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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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의 열등의식과 천민의식" 池萬元 박사 |
'가난한 민중의 고통을 보듬기 위해,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그리고 남북통일을 위해 평생을 살았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왜 이렇게 부자이고, 왜 그렇게 독선적이고, 왜 그렇게 분열적일까? 김대중의 장례식 방송은 또 다른 거짓 선동이었다. 김대중의 '무리한' 국장은 김대중의 독선적 기운을 상징한다. 김대중의 민주화 투쟁은 작년에 광우난동사태를 '아테네 이후에 최고의 직접 민주주의'라고 규정하고 이명박 대통령을 '독재자'로 규정함으로써 반란적 선동으로 판명되었고, 그리고 김대중의 남북통일 강조는 김정일의 대남적화 공작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판명나고 있다. 김대중의 마지막 몇년은 그의 이율배반적 본색을 충분히 증거했다.
김대중은 서민의 고통을 알기에는 너무 호화롭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김대중의 운구행사가 잘 보여줬다. 김대중의 영정이 그의 사저와 동교동을 돌아 서울역광장과 서울시청광장을 거쳐 장지로 떠나는 장면을 방영하면서, MBC아나운서는 "김대중전 대통령이 5.16쿠데타 당시에 만들었다"고 전한 김대중의 동교동사저와 연세대(김대중)도서관을 돌아다니는 장면을 보여줬다. 김대중의 사저를 구경하면서 국민들은 '김대중의 사저가 저런 호화저택이었나'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김대중이 독점 사용해온 6-7층(지하포함)의 연세대(김대중)도서관은 사실상 살아있는 자의 개인기념관이다. 저렇게 아방궁 같은 사저와 도서관에 살면서 김대중은 어떻게 입만 열면, 가난한 민중을 들먹였을까?
서민적인 삶을 살았다고 자처하는 김대중의 사저와 도서관은 김일성이나 누릴 화려하고도 거대한 개인 기념관이다. MBC는 '김대중은 독서광이고 메모광이었다'고 선전하면서 김대중 도서관의 독점사용을 정당화하는 듯했다. 김대중에게 행동하는 힘을 준 것이 독서였다고 주장하면서, 여성들을 존중하는 김대중의 이미지도 MBC가 부각시켰다. 그리고 김대중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고 강조하면서, '그의 정치적 신념은 종교의 힘이었다'고 선전했다. '정치지도자가 아니라 종교지도자'로서 김대중을 MBC는 선전했다. MBC가 채색한 김대중은 초인적 지혜와 용기를 가진 우상이었다. 악질적 사실왜곡과 인간숭배가 MBC의 김대중 장례방송에 나타났다.
"참 종교지도자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김대중의 발언을 소개한 MBC는 김대중을 종교적 성자처럼 끌어올렸다. 그러면서 김대중을 남북화해를 위한 순교자처럼 채색했다. 서울광장에서 개최된 '민주주의·화해·평화'를 제목으로 내건 장례문화제를 MBC가 보도하면서, 김대중을 민주화와 평화추구의 화신인 것처럼 미화했다. MBC가 아무리 김대중세력이 장악한 좌익선동방송이라고 해도, 마치 북한의 선동기관처럼 김대중을 일방적으로 우상화하는 방송에 역겨운을 느꼈다. 이런 MBC의 선동에도 불구하고, 김대중은 사실 광주사태와 광우사태의 주도적 지휘자로서 역사적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방송이 '행동하는 양심'으로 채색하는 김대중은 '행동하는 위선'은 재평가될 것이다.
남한의 좌익세력은 김대중의 장례를 민주항쟁의 삶을 살았던 영웅을 부각시키면서, 남북화해의 선전 기회로 삼았는 것 같다. '사상 30년 만에 최대의 국장을 지낸다'는 MBC의 방송보도애서 죽음을 미화하는 한국인들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평생을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해 바쳤다"고 강조하면서, 서울광장을 민주화의 성지로 채색하는 MBC의 선동질에 국민으로서 불쾌했다. 김대중 이외의 통치자들은 모두 독재자처럼 매도하면서, 김대중의 민주화 투쟁을 찬양하는 방송의 선동은 아무리 망자를 좋게 말하는 장례문화를 감안해도 '너무 심한 우상화'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가난한 이웃을 위한다는 구호가 대통령이 되기 위한 가면이 아니었는지 의심하게 된다.
저렇게 거창한 장례식과 망자 미화는 전체주의적 독재자나 가능한 허례허식이나 거짓선동으로 비쳐진다. 거창한 장례와 기념비를 비난한 도가들의 도덕을 이제 이해할 것 같다. 예절이 지나치면 무례한 것이 되듯이, 너무 김대중을 미화하니까, 국민들의 마음에 김대중의 부정적인 면이 더 부각되는 것이다. 민주화와 인권의 상징이 독선과 위선의 상징일 수 있음을 선동방송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광우난동사태를 만들어낸 좌익세력을 나무래지 않은 김대중에게 무슨 정직과 민주가 있단 말인가? 김대중의 정의는 보복이고, 김대중의 민주는 반란구호이고, 김대중의 평화는 폭란이라는 사실이 오늘 그의 장례식 방송에서 더 크게 보인다.
이휘호 여사가 "내 남편은 일생 동안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피나는 고통을 인내했다. 민주화와 남북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와중에 권력의 탄압을 받았지만, 굴하지 않았다. 내 남편의 뜻인 화해와 용서의 정신이 이어지길 바란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이러한 이휘호의 연설이 끝난 뒤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불러서 김대중이 마치 통일의 화신인 것처럼 장례는 진행되었다. 분열과 갈등의 화신인 김대중의 시신을 높고, '통일의 노래'를 부르는 한국인들은 통일의 이름으로 분열과 갈등의 화를 입을 것이다. 서울광장에는 전남 함평에서 가져온 나비 3천마리를 날리는 행사도 있었다.
김대중의 삶과 죽음을 계속 남북통일에 연결하는 MBC의 김대중 장례방송 중계는 좌익세력이 김대중을 친북선동의 소재로 삼아 국민들을 속이는 듯 했다. 용산을 지나갈 때에는 용산참사를 강조하면서 "추운 겨울에 쫓겨나는 (철거민)서민들이 불쌍하다"는 김대중의 일기를 들먹이면서 MBC는 김대중의 하층민의 영웅으로 채색했다. 김대중의 초호화판 사저와 10여 층에 이르는 김대중(연세대)도서관을 독점해서 사용하는 것을 방송에 비쳐주면서도 '빈자의 구세주'로서 김대중을 미화하는 MBC는 전체주의적 선동방송과 같았다. 김대중은 민주화 영웅이고 다른 대통령들은 독재적 악당으로 대비시킨 선동방송의 편파와 기만에 분노스럽다.
불교, 기독교, 개신교, 원불교의 축복을 받은 김대중의 명복은 따로 빌지 않아도 천당(극락)에 갔을 듯했다. 죽어서까지도 건국대통령 이승만과 건설대통령 박정희 위에 안장되려는 김대중의 기운은 독재자의 그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좌우에 박정희와 이승만 사이에 김대중을 안장시키려는 김대중 측의 의도는 별로 보기에 좋지 않다. 김대중의 죽음은 모든 다른 사람들의 죽음처럼 안타까운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의 죽음을 계기로 거짓말을 마구 퍼트리는 방송의 선전선동은 김대중의 나쁜 기운이다. 김대중의 삶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그의 죽음을 적화통일의 선동으로 만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대중의 죽음이 상식과 정직이 한국사회에 부활하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김대중에 의해 수십년 동안 한국사회에 확산된 거짓, 왜곡, 날조, 교만, 배척, 독선의 폐악들이 사라지길 바란다. 그리하여 김대중이 한국사회에 풍긴 표리부동의 기만을 걷어내야 할 것이다. 김대중의 민주화 투쟁과 통일에 대한 꿈은, 그의 좌익성향만 가미되지 않았다면, 찬양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함세웅 신부가 김대중의 안장식을 집례하는 것을 보면서, 김대중의 깊은 반역성, 위선성, 기만성이 재부각된다. 그의 안장식을 집전한 함세웅 신부의 '남북의 일치와 화해, 그리고 용산참사자들을 위한 기도'에 김대중의 모든 정치적 속성과 인생의 역정이 압축된 것 같다.
김대중의 열등의식과 천민의식 그리고 이중행적 행동 / 지만원 (옆 사진 : 지만원 시스템클럽 대표, 군사평론가, 박사) ☞
8 월 23일 오후 1시 45분경부터 국회 광장에서 김대중의 영결식이 열렸다. 24,000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마련해 놓았지만 자리는 3분1정도만 찼다. 눈으로 보기에 대략 8천명 정도 참석했고, 16,000 개 정도의 의자가 텅 비어 있었다. 그런데 방송들은 24,000명이 초대된 사상 최대 규모의 국장이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영구차는 국회를 나와 민주당 당사를 들리고 동교동 자택과 ‘김대중도서관’을 들려 광화문을 거쳐 시청 앞으로 갔다가 마지막 행선지인 동작동으로 갔다. 20여 키로의 길이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 國葬 때와는 달리 [참조 : 옆 동영상 보시려면 ▶ 크릭, 억찌로 강요된 국장과 비교해 보시라. 1979년, 박정희, 영결식 당일날 200만명의 시민들이 청와대~국립묘지 연도에 도열하여 통곡과 절규로 민족의 영웅 박정희 각하를 애도하는 감동적인 장면. 대한민국 인구가 3천만일때 국장기간 1720만명 조문, 이것이 진정한 國葬이다.] 연변에 사람들도 없었고 서울시청 광장에도 사람들이 별로 없다. 전국적으로 차려진 분향소에 들린 6일간의 조문객이 겨우 60만 명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박정희 國葬 때에는 1,700여만. 이번에는 전국적으로 조기를 게양한 국민들이 별로 없었다. 사람들이 모여도 김대중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 김대중은 전국적으로 백안시당했다.
사회부장 출신의 은퇴 언론인이 어제 말하였다. "김대중 國葬 날에 내가 살던 아파트(서울)를 돌아다니면서 취재를 했어. 175가구가 사는 단지에서 조기를 건 집이 네 곳이었요. 그러면 2.3%의 참여율이잖아?" 국장은 法에 따르면 모든 국민들이 장례기간중 弔旗를 걸도록 의무화하였다. 정부와 아파트 관리소에서 조기 게양을 독려하였다. 그럼에도 2.3%의 참여율이라면 너무 낮다. 이 기간 강원도, 대전을 돌아다녔던 필자의 눈에도 弔旗는 단 한 개도 보이지 않았다. 이 기간에 조문객은 약70만 명이라 한다. 정부, 유족, 방송, 신문, 북한정권이 합세한 추도 무드 만들기의 强度(강도)에 비춰 최소한 1000만 명은 조문하였어야 하였다. 인구 4850만 명의 한국에서 왜 98%의 국민들은 弔問을 하지 않았나?
政權과 유족과 언론이 만든 애도 강요 분위기에 거부감과 반발심을 느낀 것이다. 국민장이었으면 조기게양률과 조문객이 더 많았을 것이다. 다수 국민들이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無言의 國葬거부운동을 벌인 셈이다. '국가배신자' '겁쟁이'라는 비판을 당하기 시작한 李明博 대통령이 이 진짜 民心을 읽지 못한다면 그는 실패할 것이다. [ 2009-08-25, 08:34 조갑제 닷컴에서 인용 ]
김대중 사진(영정)이 김대중의 사저와 그 옆에 지어진 도서관을 돌았다. 아마도 대한민국 최고의 호화판일 것이다. 이를 보는 아낙들은 모두다 김대중의 사치에 분노했다. 그의 도서관은 단순한 도서관이 아니라 김대중을 우상화하는 기념관이었다. 그는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방해했다. 그리고 자신의 기념관에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었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국가를 건설하느라 자서전 하나 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김대중은 이들이 이룩해놓은 풍요를 북한에 퍼주고 자신은 민주노총 간부들처럼 국민이 낸 세금으로 호화생활을 했다. 그것도 모자라 생전에 자기 손으로 자기를 미화하는 기념관을 호화판으로 건립해 놓았다.
인물은 후대가 평가한다. 후대에 김대중을 훌륭하게 평가할 사람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인지 그는 살아생전에 그 자신을 그가 미화하기로 했다.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그 스스로 초호화판 기념관을 건설한 것이다.
기념관은 사저 옆에만 있는 게 아니라 연세대에도 있다. 그 엄청난 돈은 김대중이 땀 흘려 번 돈이 아니다. 그 돈이 어디에서 나왔겠는가?
그는 천민적 욕심의 상징이다. 그의 부인 이희호와 그의 추종자들도 염치를 모르고 민심이라는 것을 통 모른다. 의자에 대한 욕심이 너무 많았다. 24,000개의 의자를 놓아달라 하고 겨우 3분의 1정도만 소화했다. 16,000개의 의자는 고급 음식 남기듯이 남겨버렸다. 의자 놓는 사람들의 고생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 그는 서울 시내 교통을 하루 종일 마비시켰다. 수많은 국민들의 불편은 안중에도 없다. 묻히는데 뭐 그리 들리는 데가 많은가?
이후 다른 대통령은 말없이 대전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그의 가족들과 추종자들은 뒤룩뒤룩한 욕심을 가지고 비좁은 동작동 현충원을 비집고 들어갔다. 현충원 전체가 옹색해 졌다. 그가 빨갱이인줄도 모르는 순진한 국민들도 욕을 하고 입을 삐죽인다. 웬 욕심이 그렇게도 많아?”
국장? 그것은 영광의 장례식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국민에 게 불편을 강요한 게걸스러운 욕심의 잔치였다. 김대중은 배운 게 별로 없다. 겨우 혼자서 읽은 잡글들이 그가 가진 지식의 전부였다. 출생도 미천하다. 가난해서 미천한 것이 아니라 족보가 난잡해서 미천한 것이다. 배운 것에 비해 욕심이 많다. 열등의식은 바로 이러한 패러다임에서 솟구친다.
이승만-박정희는 배운 게 많고 이룩한 게 많아 자신의 기념관 같은 것을 만들 생각조차 못했다. 돈이 있다 해도 그들은 돈을 사회에 내 놓을 사람들이지 김대중처럼 치사한 짓 할 사람들이 아니다.
가방끈 자체가 없는 김대중, 이룩해 놓은 것이라고는 사기와 거짓말뿐인 김대중, 열등의식으로 가득한 김대중, 그런 그가 오늘 낮에 보여준 초호화판 사저와 기념관은 김대중의 천민성을 적나라하게 웅변해 주었다. 생선 썩은 내가 풍긴다.
오늘 국민은 어느 한 졸부가 수집해놓은 양주병 창고를 본 것이다. 더러운 인간 김대중, 천하의 사기꾼 김대중, 정신적 조국이 북한인 김대중은 오늘 이후 망각의 장으로 넘어 갔을 것이다. 2009.8.23. [지만원 시스템클럽] |
남북대화는 '김대중식' 버리고 '박정희식'으로 !! |
6.15 -10.4 등 북에 말려든 '통일전선 족쇄' 끊어버리고, 1대1 회복을 대화할수록 친북세력의 반역 분쇄.....제발 협박에 겁먹지 말라. 류근일 한양대 대우교수(아래사진) |
남북대화를 가장 일찍 가장먼저 시작한 인물은 ? 이런 시험문제를 내면 오늘의 많은 젊은이들은 아마 김대중 씨요 라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천만에 그는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1970년을 넘기면서 대한적십자사 총재 崔斗善 씨는 대통령의 뜻을 받아 남북 이산가족 찾기를 북에 제안했다 그게 남북대화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그 남북대화는 김대중 노무현 시대를 거치면서 북의 통일전선전술에 코를 꿰이고 말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남북대화를 다시 시작할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명박대통령은 지난 10년의남북대화 방식을 이어받는 것 아닌 그것을 극복하고 시정하는 남북대화를 해야한다.
1) 남북대화의 개념부터 다시 설정해야 한다. 정당한 남북대화는 南과 北의 다름을 전제로 한 1 대 1 의 對座이지, 좌우합작이 아니다. 2) 남북대화를 주도하는 한반도 汎좌파 통일전선으로 견인하려는 反대한민국 책동은 단호하게 抑止돼야 한다. 3) 이 하자는대로 하지않을 경우 대화가 단절될까 두려워 北에 끌려가는 식의 남북대화는 더 이상 하지말아야 한다. 4) 6.15 선언, 10.4 선언에 구속받지 말아야 한다. 北도 "남북 기본합의서" 를 파기한 적이 있지 않은가 ? 5) 대화가 北 의 일방적인 고집에 직면할 경우, 우리가 먼저 대화중단을 선언할 줄도 알 아야 한다. 6) 남북대화를 쇼(show)의 무대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남북대화는 쇼 아닌, 철저한 실무형으로 해야 한다. 대통령부터 그런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7) 남북대화를 할수록, 대한민국의 정체성 교육, 올바른 역사관 교육을 더 철저히 해야 한다. 남북대화를 한다고 해서 이념무장을 해제해선 안 된다. (南에 온 김기남은 "냉전시대 와 달라야...” 운운 했다. 자기들은 왜 내부적으로 냉전시대의 反南 교육과 선전 선동을 계속하면서 우리한테만 이념무장 해제를 요구하는 듯한 그런 소리를 하는가 ?) 8) 줄대로 다 주고도 뺨 맞는 머저리 남북대화를 불식해야 한다. 받는 것 없이는 주는 것 없다의 원칙을 세워야 하고, 그것을 北 에 행동으로 주지 시켜야 한다. 9) 남북대화를 빙자해 우리 언론과 시민사회의 비판기능을 봉쇄하려는 기도를 정부도 언론 - 시민사회도 거부해야 한다. 우리 언론과 시민사회는 남북대화와는 별개의 차원에서 예컨대 北 의 인권 참상을 비판할 자유를 추호라도 침해받아선 안 된다. 10) 남북대화를 할수록 우리 내부의 親北 세력의 반역을 엄중하게 분쇄해야 한다. 그것을 구실로 北 이 대화를 거부할 경우 우리도 단호히 대화를 중단해야 한다. 北 은 걸핏하면 " 존엄한 우리 체제를 비방했다 ” 운운 하곤 한다. 우리 역시 존엄한 우리의 자유민주 헌정질서에 대한 저들의 도전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것은 和而不同 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이것을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기에 남북대화를 반역의 놀이터로 만들어 버렸다. |
故 박정희대통령을 비난하는 젊은이들에게 池萬元 박사 |
젊은이들아!! 금세기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 세종대왕보다 더 존경받는 사람, 그것도 무려 20%가 넘는 최고의 인물로 존경받는 사람이 누군지 아는가?
국민소득 76불에서 1,500 불, 인류 역사상 그 유래가 없는 단기간에 20배 성장으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정치꾼'이 아닌 진정한 지도자이며, 애국자가 과연 누군지 아느냐 말이다.
실의 도탄에 빠져 나태한 국민에게 우리도 하면 된다는 새마을 정신혁명으로 잠재력을 일깨워 자신감을 안겨준 지도자, 그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다.
젊은이들아!! 그런 그가 독재자였음에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화를 외치던 그 어느 지도자들보다도 가장 복제하고 싶은 인물, 가장 친근감이 있어 대화하고 싶은 지도자가 박정희라며 그리워하는 이유는 또, 왠지 아는가?
'행복지수'라는 것이 있다. 그때는 지금처럼 배불리 먹지도 못하고 새벽부터 손이 부르트게 일을 하였지만 내일의 희망과 비전이 있었으며 삶의 의욕이 충만해 즐겁고 행복했었다는 것을 젊은이들은 알아야 한다.
독재자 박정희라?? 젊은이들아! 당시 독재 시대라 해도 일반 대다수 국민은 생활하고 살아가는 데에는 아무런 어려움과 불편함이 없었다.
다만, 독재니 자유니 하며 이론적 정의만을 내세우는 소수의 사람들과 정치를 하겠다는 극소수의 '정치꾼'들을 제압하였으나 그 또한 누구를 위한 억압적 제압이었겠느냐?
부정 축재하려고 그랬느냐? 자식들과 친인척을 도와 주려고 그랬느냐? 아니면 출세하여 족보에 남기려고 억압적 제압을 하였느냐?
젊은이들아!!, 1960년대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대한민국 그때에서, 자유, 독재, 민주주의를 생각해 보고 박대통령을 생각해 봐라!!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이 식욕, 성욕, 금욕, 지배욕, 이라 했다. 그 첫째 '식욕', 먹는 것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우선 될 수 없다고 본다. 경제력이 뒷밭임 없는 민주주의!, 배고픔이 해결되지 않는 민주주의!, 모래사막 위에 탑을 쌓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당시 우리보다 몇 배를 더 잘 살던 필리핀과 북한을 보고, 타이, 말레이시아를 봐라, 지금 이들 국가들이 어떤가를……. 한 나라의 발전이 지도자가 누구냐에 따라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 아니겠나.
그래도 독재자 박정희라 폄하 하며, 그의 업적과 공을 깎아내리려 애쓰는 젊은이들이 많다. 왜, 그럴까? 16,000불에서 살다 보니 76불의 삶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것이다. 보릿고개가 뭔지 모르고 다이어트에 신경 쓰다 보니 과거 60년대가 실제로 어땠는지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자유니 독재니 하며 교과서적 정의만을 내세워 따진다.
젊은이들아!! 우리나라 정부 일 년 예산의 80%를 미국의 지원으로 살았고 춘궁기가 되면 굶어 죽는 사람이 흔하게 발생했지만, 뉴스거리조차 안되던 때가 바로, 60년대였다. 배를 곯아 봐야 인생이 뭔지 삶의 철학도 깨우칠 수 있음에 너무나 잘 먹어 뱃살 빼기를 고민하는 젊은이들아!!
그때는 여성은 살이 쪄야 맏며느리 감이라 인기가 있었고, 남자는 살이 찌고 배가 나와야 사장이며 인격, 신분 상승으로 여겨 겨울이면 옷을 많이 입고 살쪄 배 나온 시늉을 하던 그때를 아느냐 말이다. 오늘의 시각에서 본다면 웃긴다고 할까? 눈물겨운 일이라고 할까?
젊은이들아!! 과거가 없는 현재가 있을 수 없으며, 과거를 모르면 현재의 풍요로움 또한, 그 가치를 모르는 법!!. 1960년 4월19일 학생 혁명으로 이승만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장면 과도정부가 들어섰을 때, 각종 단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자, 농민, 상인, 이발사, 식당주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길거리로 몰려나와 데모……. 학생들도 교장 선생님 조회 시간이 너무 길다 데모, 짧은 머리 기르자 데모, 공부시간 단축하자 데모, 하다못해 초등학생, 선생들까지도 데모, 데모,……. 온 나라가 일 년 열두 달 365일 데모로 지새워 오죽하면 데모를 하지 말자고 데모를 하였으니, 나라가 어떻게 되였겠는가?
이를 지켜본 세계에서는 KOREA는 '데모 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최루탄 가스를 소비하는 나라가 되었으며 사회는 극도로 혼란스러워 밤이면 마음 놓고 밖을 나다닐 수가 없을 정도로 치안은 여기서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이 무법이 판을 치던 그때, 하다못해 깡패도 주먹으로 정치를 하던 그때를 아느냐 말이다.
더욱이 기가 막힐 노릇은 이승만 독재로부터 자유를 찾았으니, 모든 것이 자유라며 지나가는 사람을 아무런 이유 없이 발로 차거나 주먹을 휘둘러대며 '자유'가 뭔지도 모르는 어처구니 없는 무지의 국민들이 많았으며, (당시에는 초등학교 무학자가 대다수였다.)
더더욱 기가 막힐 노릇은 서울 광화문에서 데모하는 모습을 북한에서 라디오로 생중계하여 현장 실황을 남한에서도 들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많은 남파 간첩들이 포진되어 안보가 위태로웠는지, 그때를 아느냐 말이다.
김일성 자서전에 당시 남침하지 못한 것 후회한다 했지 않은가. 그때,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젊은이들아!!
이렇듯, 굶어 죽지 않으면 공산화되기 일촉즉발의 풍전등화였던 나라를 구하고자 구국에 일념으로 박정희가 나타난 것 아닌가.
역사에 만약 이란 없다 하지만 당시에 박정희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당리당략과 사리사욕, 출세욕에 혈안이 된 정치인들이고 보면 지금쯤 이 나라는 어떻게 되였을까? 너희들이 제일 좋아하는 축구가 월드컵 세계 4강에 올라 대한민국,~, 짝, 짝, 짝~, 하며 즐거움을 맞볼 수가 있었을 것이며, 올림픽을 개최하여 한국의 위상을 세계에 알릴 수가 있었을까? 또, OECD 경제 대열에 오르는 오늘의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을까? 젊은이들아, 사업가는 10년, 정치가는 최소한 100년 앞을 내다보는 안목과 지혜가 있어야 하며 냉철한 판단력과 결단력, 추진력이 있어야 된다고 한다.
당시 일본으로부터 대일 청구권으로 받은 돈으로 동남아 국가들은 호텔 짓고, 백화점 짓고, 선박 구입 등, 비생산적인 곳에 썼지만, 박대통령은 100년 앞을 내다보는 안목으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하며 이승만정권 때부터 14년간이나 지지 부진하게 끌어 오던 한일수교를, 결단, 결행, 단행하여 산업의 쌀이라 일컫는 제철공장 짓고, 고속도로 등, 경제 재건을 위한 생산적인 곳에 투자하여 지금은 조선업, 철강업, 기타, 중공업 분야에서 세계 1, 2위로 일본과 경쟁하고 있으며 경부고속도로는 지역간 격차를 줄이고 산업의 동맥으로 토목 건설 기술 축적으로 지구촌 곳곳에 건설수주 외화 획득, 매년 고도성장을 30년 이상 지속, 지금은 세계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박대통령의 업적을 기반으로 가 아닌가. 젊은이들아!! 그런 그를 사후 27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친일파청산이란 명제하에 알 수 없는 정치적 잣대로 재고 재단하여 매도하고자,
공(功)은 빼고 과(過)만 조명하는 '친일파 박정희' 만화책 만들어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 세뇌시키려 하고 살인범 김재규를 민주화인사 운운하며 세계 수십여 개 국가, 수만 명이 하루가 멀다 날아와 가르쳐 달라고 머리를 조아리며 배워간 새마을운동까지도 사실 왜곡되게 가르치고 있다 하니 도대체 이럴 수가 있느냐 말이다.
이웃 나라 중국에서도 박대통령에 탁월한 지도력을 배우고자 연수용 교재로 '박정희 전기'란 책이 중앙 위원회 산하 당정 고위 간부들의 교과서가 되였으며 서점에서는 베스트에 올라 인기리에 팔리고 있어 중국 천하를 통일했던 진시황에 비유하며 높이 평가함인데,
이 나라에서는 수백만 명을 굶겨 죽인 독재자 중에서도 가장 악독한 독재자 김정일에게는 '님'을 꼬박꼬박 붙여가며 존칭을 쓰고 통큰 지도자라며 추켜 세우면서도 박대통령에게는 '님'은 커녕, 그가 쓴 친필이라 해서 광화문, 운현각 현판을 뜯어내 부시고 빠개고, 하다못해 그 시절에 심어졌다해서 나무까지 뽑아내 그의 흔적까지 지워버리려 하니 이런 기가 막힐 노릇이 어디 또 있는가 말이다. 또, IMF 때보다도 살기 힘든다고 아우성인 경제는 뒷전이요, 진보라 자칭하며 개혁하겠다고 과거 캐기에 국론 분열을 일삼으며 국민 80%가 반대하는 국보법을 김정일이가 원하는 대로 폐기하겠다고 발버둥치는 그들!! 그래서 국민들을 극도로 불안하게 만드는 그들!!
결국, 이를 보다 못한 전직 국무총리, 대법원장, 국회의장 등을 비롯해 대한민국 건국이래 사상 최대 규모의 사회 각계 원로 9,000여 명이 시국선언을 하였으니 도대체 이들이 누구며, 왜 이러는 지 진짜 알 수 없는 노릇 아니냐?. 세대 간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좌파들에 부화뇌동하는 젊은이들아!!, 한 번의 실수는 5년이 아니라 10년이 갈 수도 있으며 한번 잘못 선택한 지도자로 겪어야 할 고통의 대가는 자손 대대로 후회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라!!.
천하에 사기꾼 김대업을 이용하고 젊은이들을 선동하여 정권을 휘어잡고선 탄핵 땐 예수 부활을 비교하면서 다시 태어났다고 자랑하는 좌파정권, 그 배후세력들이 지금까지의 언행을 보면, 아마도 언젠가는 독재자 부인 육영수여사 살해했다고, 살인범도 의인으로 추대하여 광화문에 이순신 동상 철거하고 문세광 동상 세우자고 촛불 든 젊은이들 선동할까 정말 걱정된다. 똑바로 알아라!! 비록 한 인간이 죄가 있다고 하여도 그 죄를 불공평하게 들추어내는 행위는 죄악이며 어떤 사회든 부조리가 있고 사회적 병리가 없는 문제없는 사회가 없는데, 역사 바로 세워야겠다며 유독, 하나만 싸잡아 성토하고, 그래서 갈아 치우고자 한다면 이는 인정될 수 없는 반, 민주적 행태가 아닌가. 개혁이란 명제하에 법을 현실보다 고도의 도덕적 가치 기준에 매달아 놓고 그 기준에 걸리면 모조리 갈아 엎어 버린다면, 칼자루를 쥔 쪽에서 의도적으로 휘둘러대는 알 수 없는 심판의 잣대로 매장시키려 한다면 이 어찌 민주를 부르짖던 자들의 행태란 말인가!!
그런 기형적 사고의 두뇌로 개혁이다 역사 바로 세우겠다 한다면 그 누구도 '왕따' 시켜 매장시킬 수 있으며, 세종대왕도 독재자로 몰아세우고 그분의 많은 업적을 모조리 비판하여 쓰레기통으로 집어넣어야 하며 한글도 때려 치워야 되는 것 아닌가.
젊은이들아!! 사람의 가치관은 정권이 바뀌고 물질 사회가 급격하게 변하며 세월이 아무리 흘러간다 할지라도 바뀔 수도 없고 바뀌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라!!.
권좌, 출세를 위한 일이면 그 어떤 가치와 업적도 부정하려 드는 부도덕한 정치인들과 그 배후 세력들, 그리고 이에 부화뇌동하는 일부 젊은이들이 오늘의 잣대로 비판하려 애쓰는 것을 지켜보면서, 두 손을 불끈 쥐고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이 오늘을 살던 우리가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을 때, 우리는 민족중흥의 신앙을 굳게 가지고 일하고 또 일했노라고 떳떳하게 대답하자.'라고 한 민족중흥의 시조, 박정희 대통령, 서거 27주년이 되어 생각해 본다.
젊은이들아!! 박정희 대통령을 제대로 알자!!
-촌장-(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회) -해병가족모임 (부)314기 아버지- |
전두환 전 대통령 명예회복 池萬元 기자 |
全斗煥 전 대통령을 독재자가 아니라고 하면 화를 낼 분들이 많을 것이다. 全斗煥을 쉽게 독재자라고 규정하면 화를 낼 사람은 적을지 모르지만 말이 안되는 구석이 생긴다. 독재자의 定義는 장기집권이다. 헌법을 마음대로 고쳐서 죽기까지 물러나지 않으면서 인권탄압을 자행하는 사람을 독재자라고 본다.
그런데 全 당시 대통령은 장기집권이 가능하던 헌법을 고쳐 대통령의 임기를 7년 단임으로 설정하고 그 약속을 지켰다. 그는 더구나 국민들이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자 6.29 선언을 결단하여 이를 수용했다. 이것도 독재자가 할 일이 아니다. 누가 '6.29선언은 국민이 全당시 대통령의 항복을 받아낸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할 것이다. 국민한테 항복하는 사람을 독재자라고 부를 수 있는가.
全斗煥의 집권과정에는 유혈사태와 하극상과 위법이 있었다. 이 시기만 본다면 그는 독재자이다. 1980-88년의 5공화국 전체를 놓고 본다면 그는 유혈사태를 일으키고 독재자로 등장하였으나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여 민주적 개헌을 하고 평화롭게 정권을 이양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독재자라고 단정하려면 독재자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
'전두환이 권위주의적 통치를 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한 정치인의 한 시기를 잡아서 극단적인 말로 단정해버리면 시원하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위험한 과장이다. 좀더 깊이 全斗煥 시대를 분석해본다. 박정희 대통령은 누가 뭐래도 위대한 대통령이다. 그러나 전두환 대통령이 경제발전을 계승하여 성공적으로 완성시키지를 못했다면 그 위대성은 다르게 평가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제5공화국 관련 경제정보: 박정희 정권 마지막 해와 전두환 정권 마지막 해의 비교표 (박정희 정권의 경제초석을 전두환 정권이 효과적으로 완성시켰음을 알 수 있다) 1. 1979년 1인당 GNP: 1,546 달러 2. 1988년 1인당 GNP: 3,728 달러 3. 1980년대 경제성장률: 연평균 10.1%로서 200여개 국가중 1위 4. 1979년 수출 147억 달러, 수입 191억 달러, 경상수지 적자 41억5100만 달러. 5. 1988년 수출 600억 달러, 수입 525억 달러, 경상수지 흑자 138억 달러. 6. 1979년 국민저축률: 25% 7. 1988년 국민저축률: 34% 8. 1979년 도매 물가상승률: 20%, 1980년은 44% 9. 1983-87년 도매 물가상승률: 연평균 2.7% 10.1988년 채권과 채무: 외채 320억 달러, 대외자산 253억 달러. 1989년에 순채무국으로 전환. 11.전화대수: 1982년 300만 대에서 1988년 1000만 대 돌파. 12.소득격차:1980년에 지니계수가 0.39, 88년엔 0.34로 축소 (수치가 낮으면 격차가 줄었다는 뜻).
全斗煥 정권은 1980-88년 사이 세계 1위의 고도경제성장을 달성했다. 이 기간 국민소득은 2.3배로 늘었고 무역적자 구조는 무역흑자로 바뀌었다. 두 자리 수의 물가상승률은 2%대로 안정되었다. 외채도 크게 줄었고 국민저축률은 일본을 앞서는 세계 최고 수준에 달했다. 1980년대 全斗煥 정부는 통신망 설치와 전자산업 육성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하여 1990년대의 세계적 인터넷-전자산업 강국을 예비했다.
이 경제성장으로 해서 한국사회에 중산층이 두껍게 등장했다. 1980년대 말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약70%가 되었다. 이들이 민주화의 주력부대가 되었다. 이들의 온건성향이 6.29선언으로 나타난 타협적 평화적 민주화의 엔진역할을 했다. 경제성장이 만든 쿳션이 한국사회의 바닥에 깔리는 바람에 민주화의 열풍을 견뎌냈다. 1985년 2.12 총선으로 시작된 민주화의 혼란기에 경제성장률이 피크에 달했다. 경제호황기에 민주화 시위가 절정기를 맞았다는 것은 행운의 타이밍이었다.
全斗煥 대통령은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경제를 이어받아 성공적으로 이를 수습한 뒤 물가를 잡고 고도 성장과 흑자를 이룩했다. 全斗煥 대통령이 경제에 성공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정치는 상당부분 경제를 관리하는 기술이다. 경제에 성공했다는 것은 정치도 실패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경제는 성공했는데 정치는 실패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공부는 잘했는데 시험은 잘못 쳤다는 말처럼 모순이다.
경제 성공의 공을 전두환 대통령이 아닌 金在益 경제수석한테 모두 돌리려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는 잘못이다. 金在益씨를 잘 부린 사람이 全 전 대통령이었고, 金수석은 1983년10월에 아웅산 테러로 타계했기 때문이다.
이 경제성장은 평화적 민주화와 全대통령의 단임실천을 가능케 했다. 동시에 1988년의 서울올림픽을 뒷받침했다. 이런 호재로 安保면에서도 對北우위를 확보했다.
그에게는 물론 12.12사태,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등으로 집권한 과오와 비자금 모집의 과오가 있다. 이 때문에 그는 2년간 백담사 귀양, 2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이들 과오를 한쪽으로 놓고 그 반대편에 경제적 성공과 튼튼한 안보, 그리고 단임실천 및 6.29 민주화 선언(직선제 개헌이 핵심)을 놓으면 저울은 어디로 기울 것인가.
全斗煥 전 대통령을 독재자로 규정하려고 할 때 가장 큰 장애물이 되는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의 선례를 남긴 사람'이란 대목을 검토한다. 이것이 민주주의 발전에 대수롭지 않은 일인가, 아니면 대단한 일인가.
한 국가가 민주주의인가 독재인가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선거를 통해서 평화적 정권교체를 하고 있는가의 여부이다. 평화적 정권교체의 역사가 그 나라의 민주주의 성숙도 지표이다. *
유럽에선 영국이 1688년의 명예혁명을 통해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을 확립했다. 미국은 1776년 건국시부터 이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프랑스는 1871년 普佛전쟁에 져서 나폴레옹 3세 황제가 쫓겨난 뒤 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정권교체기에 들어갔다. 독일과 일본은 1945년 패전 이후부터 선거를 통한 권력교체가 가능한 나라가 되었다. 스페인은 철권통치자 프랑코가 죽은 2년 뒤인 1977년부터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舊소련과 동구권 나라들은 1989년경부터 이 시기로 들어갔다. 필리핀은 1986년 마르코스 추방 이후 그렇게 되었으나 아직도 불안해보인다. *한국은 1988년 全斗煥 퇴임으로부터 이 전통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놓고본다면 민주주의의 발달사는 길지만 의외로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은 길지 않음을 알 수가 있다. 민주화의 과정에서 평화적 정권교체는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가능해진다는 의미이다. 17년밖에 되지 않는 한국의 평화적 정권교체 역사는, 민주주의의 기반이 충분히 다져졌다고 볼 수 없는 조건에서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주기도 한다.
북한과 중국은 아직도 정권교체의 꿈도 꿀 수 없는 곳이다. 정권교체는 옛날엔 전쟁이나 암살, 쿠데타를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 정상이었다.
*민주주의 시대엔 선거가 전쟁을 통해서 했던 일을 대신한다. * 그만큼 선거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아직 17년밖에 되지 않은 정권교체의 전통을 국민 모두가 소중히 가꿔나가야겠다. 동시에 全斗煥 정권이 만든 이 평화적 정권교체의 선례에 정당한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조갑제 |
“왜 군바리 개XX들 있는 곳 묻혔나? ” 김승근 기자 2009.08.24 07:13: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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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열성적인 사랑표현 (?)을 하고 있는 한 시민 - ⓒ 독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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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동영상> DJ 안장식장에서 벌어진 소동 을 보세요.
옆 친구 말데로 민주영령의 안식처인 5.18 묘지에에서 영민하시면 좋았을걸. 국립현충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안장식이 있던 23일, 행사요원들의 저지로 안장식장에 들어가지 못한 한 시민 (민주당 당원으로 추정)이 소란을 피웠다.
그는 "왜 군바리 개XX들 있는데 여기(국립현충원)왔어, 애국지사 있는데 묻히셨어야지"라며 "왜 군바리들이 좋다고 여기왔냐"고 말했다.
또, "위정자들 안 믿어 이 개XX들" 이라며 신랄하게 민주당을 비판한 뒤 "민주당 욕 했으니 이제 민주당 옷을 벗겠다" 라며 " 나는 다시 시민의 품으로 간다. 백성의 품으로 간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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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은 모든이에게 희망. 싱그러움은 누구에게나 평화. 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소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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