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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0일(둘째 날).
새벽 3시 30분, 모닝콜이 삑~ 한 번 울린다. 전화를 받지 않는데도 그걸로 끝이다.아무튼 잠은 깬다. 10분만 더 자면 좋겠다는 생각을 겨우 떨쳐버리고 무거운 몸뚱이를 일으켜 세운다. 샤워는 자기 전에 해 뒀고 간단히 세수와 양치만 하고 나온다. 짐을 꾸려 로비에 집결했는데 희명 형님이 안 나오신다. 웬일인가 부르러 올라갔더니 집결시간을 잘못 알았단다. 약간 늦게 4시20분쯤 출발, 백두산 근처로 이동한다. 5시쯤 되었나, 어느 식당 앞에 내려준다. 아침식사를 위함이다.
(이렇게 신새벽에 이동한다)
(아침식사, 그리고 도시락을 제공해 준 백계산장이다. 여기 가지 마세요~)
(양푼에 담겨진 희멀건 죽을 한 그릇씩 떠먹는다)
아침식사는 희멀건 죽에 꽃빵 그리고 성의 없어 보이는 무짠지, 이름 모를 나물 정도다. 이 집에서 등산 중 먹을 도시락도 맞춰줬는데, 나중에 또 성토하겠지만 정말 맛대가리 없이 만들어줬다. 곤달걀은 상해서 곰팡이가 피어 있었으니 환장할 일이다.
아침식사를 부랴부랴 마치고 버스에 탑승, 두 시간 정도 걸려 백두산 북파 산문 앞에 도착한다. 가이드 인솔에 따라 산문을 통과, 공원 차량에 탑승하고 산 속으로 한참을 올라간다. 정말 규모가 큰 산이다. 중간에 장백폭포쪽으로 가는 사람들을 내려주고 우리는 다시 트래킹 깃점을 향해 간다. 오전 8시 30분경, 이제 산행 시작이다. 그런데 날씨가 별로다. 가늘긴 하지만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진다.
(북파 산문 입구다. 여길 입장료 내고 통과해야 공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소천지라 불리는 은환호 전경 - 앞에 보이는 바위에 은환호라고 붉은 글씨가 새겨져있다)
산행 초입지점에는 소천지라 불리는 은환호(銀環湖)가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서 이곳 관리공단직원인 산행가이드를 만난다. 중국인이지만 한국말도 잘한다. 산행가이드를 따라 본격적인 트래킹이 시작된다. 울창한 숲속 길을 지나자 곧바로 오르막이 힘들게 이어진다. 헐떡이며 10여분 오르니 시야가 툭 터진다. 화산지대의 특이한 지형들이 나타난다. 과거 화산활동에 의한 잿빛의 봉우리들과 기암괴석의 모습들. 길고 멋진 폭포, 드넓게 펼쳐진 초원의 모습들은 보통 우리가 다니던 산의 모양과는 달랐다. 날씨만 좋았으면 더 좋으련만, 아쉽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어제 온 팀들은 비가 너무 와서 중도에 포기하고 내려왔다던데, 아무튼 우리는 트래킹을 하고 있지 않느냐 말이다.
(맨 뒤에 처진 김재영씨와 울 와이프, 그 뒤로 가이드들이 뒤따라온다)
(벌써 등판이 땀으로 다 젖었다. 첫번째 휴식)
(조금 힘드셨나요? 안개와 구름으로 시야가 20미터도 채 안되는 것 같다)
중간 중간 휴식도 취하면서 우리는 구름이 잔뜩 낀 산중에서 트래킹을 이어간다. 12시쯤 어느 봉우리 정상에서 점심을 먹는다. 원래 이곳이 날이 좋으면 천지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란다. 하지만 지금 우리 눈앞에는 구름과 가스만 가득 차 있다. 더구나 바람도 심하게 불고 빗방울도 조금씩 떨어진다. 아침에 준비해 준 도시락을 꺼냈더니 이건 정말 먹기가 고약스러울 정도다. 그래도 체력을 보충해야 하니 할 수 없이 먹는다. 이런 음식을 준비해주고 돈을 받았다니 해도 너무한다. 백두산 트래킹 시 점심준비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문제다.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즉석밥을 준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
겨우 점심을 마치고 다시 산행 채비를 한다. 우리보다 앞서 출발한 사람들인지 벌써 산행을 접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다. 날씨가 어떠냐고 물었더니 천지는 볼 수가 없단다. 아, 실망 이다. 그토록 기대하고 왔는데 날씨가 협조를 안 해주다니,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비바람이 몰아친다. 모자 날라가지 않도록 끈을 꼭 조여야한다)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특이한 산세들)
(옥벽폭포에서)
(양 어깨에 훈장처럼 매달고 있는 만년설)
그래도 우리는 비바람을 뚫고 전진을 계속한다. 널찍한 평원이 나타나기도 하다가는 급경사의 화산암 지대가 앞을 막아서기도 한다. 우리 팀원 중에 산청에서 오신 아줌마들은 비교적 산행을 잘하시는데, 안나푸르나도 다녀왔다는 서울의 아가씨(김재영 씨)는 많이 힘들어 한다. 나는 빗물에 홀딱 젖었지만 기분은 참 좋았다. 왜냐구요?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 왔으니 그렇지요!!!
녹명봉(사람마다 부르는 말이 달라 확인이 필요하지만)까지 갔는데 산행가이드가 여기서 되돌아간다는 선언을 한다. 비바람이 더욱 거세져서 손님들의 안전상 더 이상의 전진은 어렵다는 것이다. 안전문제라는데 어쩔 도리가 없다. 하산을 결정하고 다시 조심조심 내려온다. 중간에 비가 좀 뜸하기에 휴식을 하면서 간식도 먹는다. 오늘 이틀째 트래킹을 하고 있다는 창원팀과 합류하여 소주잔을 주고받는다. 그 사람들 중 한 분이 우리 희명형의 전라고 후배라고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세상 참 좁다. 이곳까지 와서 고교후배를 만나다니 말이다.
(천지여, 내가 왔다. 자~ 너를 위해 건배!)
(원래 이곳에서 천지가 가장 멋지게 잘 보이는 곳이란다. 혹시나 구름이 걷히지 않을까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기다려보는 중이다)
(이름모를 야생화. 이 모진 환경에서도 이렇게 예쁜 모습을 간직하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휴식 중에 나는 틈틈이 사진을 찍어둔다. 우리의 이번 산행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첩을 하나 만들 계획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멋진 풍광들을 간간히 담아둘 수 있었다. 6~7월에 오면 야생화가 멋지게 펼쳐진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또 한 번 욕심을 내어볼까?
내려오는 도중 자그마한 텐트를 하나 쳐놓고 커피를 파는 곳을 들른다. 믹스커피 한 잔에 2천원이다. 내가 5잔을 사서 일행들에게 돌린다. 그 사이에 여성들은 화장실도 다녀온다. 화장실이 있냐구요? 천만의 말씀이죠. 가이드 하는 말이 걸작입니다. “저기 안 보이는데가 다 화장실입니다”
나는 아무튼 이곳에서 커피 값도 날렸지만 깜빡 잊고 스틱을 놓고 왔다. 한 칠팔년 써서 낡고 허름한 물건이긴 하지만 오랜 시간 함께 동반했던 정든 물건이었는데 조금 아쉽긴 하다. 하지만 이제 저 녀석이 나를 떠나 새로운 주인에게 가려나보다 하는 생각으로 정리하고 미련을 버린다. 사실 그 제품이 메이드인 차이나다. 그러니 그 녀석은 고향에 온 셈인가?
(홀딱 다 젖고서도 좋으슈? ㅎㅎㅎ)
(엄청난 힘이 느껴지는 계곡물은 특이한 형태의 협곡을 만들어 놓고 있다)
(아쉬운 하산길. 이제 버스를 타고 호텔로 간다)
궂은 날씨 덕에 하산을 일찍 하니 시간 여유가 생긴다. 오후 5시 반에 이도백하(二道白河)에 있는 호텔에 도착 30여분 휴식을 취한다. 젖은 옷을 벗고 따끈한 물로 샤워를 하니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다. 호텔 이름은 길림산강호텔이다. 시설도 깔끔하고 괜찮다. 여기식 표현으로는 吉林山江酒店이라 써져 있다. 젖은 옷과 등산화를 말리기 위해 창가에 쭉 널어놓고 6시 집결시간에 맞춰 로비로 내려간다. 다들 씻고 나니 하산할 때의 후줄근한 모습은 모두 사라지고 말끔한 신사, 숙녀 분들만 오셨다. 우리는 인근의 한 식당으로 간다. 식당이름은 강원도 식당이다. 이곳 길림성은 우리 조선족들이 많이 살고, 또 백두산 관광구역은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는 탓에 한국식 식당이 많다. 손님들도 대부분 백두산 관광 온 한국 사람들이다.
(호텔 로비에서 가이드 윤동매씨와 이야기하는 울 와이프)
(푸짐한 음식으로 즐거운 저녁식사)
(좌측부터 내 옆에 황기수 사장님, 김세봉 박사님, 희명형님 - 내일은 꼭 천지를 보고가자!)
식탁에 앉으니 푸짐하게 상이 차려진다. 삶은 닭고기와 돼지고기가 메인 메뉴인 듯 하고 된장국과 각종나물이 풍성하다. 고사리나물이 맛있었고 목이버섯은 술안주로도 좋았다. 우리 쪽 식탁은 희명형님 부부와 우리부부, 그리고 황기수 사장님, 김세봉 박사님, 김재영씨 이렇게 7명이 둘러앉았다. 우리가 가져온 소주도 마시고 이 지역의 특산주도 마셔본다. 향이 그리 독하지 않은 편이어서 먹을 만 했던 것 같다. 밥도 배불리 먹고 술도 얼큰하게 마시며 환담을 통해 친해지는 시간이 되었다. 황사장님은 “한국기초소재주식회사” CEO라고 하신다. 무슨 회사인지는 잘 모르지만 쌍용의 협력업체로서 중요한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김세봉 박사님은 한문학이 전공이시며 지금 단국대학교 교직원으로 근무하신단다. 서로 소개를 하면서 반가운 이야기들을 나눈다. 우리 팀 유일한 아가씨 김재영씨는 안나푸르나까지 다녀온 트래킹 경력자이다. 그런데 술도 잘 못한다고(사실일까? ^^) 하며 말수도 적고 얌전하기만 하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까지 멀지 않은 거리를 걸어온다. 길에는 늘씬하게 쭉쭉 뻗은 미인송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곳 도로의 지명도 미인송로(美人松路)가 있다. 그 멋진 모습을 담아보고자 사진을 찍어봤지만 아직 내 실력으로는 어려움을 실감한다. 구름이 낮게 깔린 저녁, 어스름한 빛의 풍경을 사진으로 표현하기는 쉬운 게 아닌듯하다. 사진공부도 좀 더 해야 하는데….
호텔로 돌아오니 입구 마당에 생맥주 가든파티장이 열려있다. 참새방앗간이지 그냥 지나칠쏘냐? 안엘 들어가니 우리 팀의 젊은이들 셋이 미리 자리를 잡고 있다. 이들과 자연스레 합류, 즐거운 맥주파티가 시작된다. 여기서는 심양에서 생산되는 설화(雪花)맥주가 판매된다. 이거 맛 괜찮다. 내 입맛에는 유명한 칭따오보다 이게 더 나은 것 같다. 울산에서 온 젊은이들 세 사람 중 둘은 형제(최재영, 재훈)이고 하나는 동생 재훈이의 친구 김청일 군이란다. 모두 건강한 사고를 가진 전도유망한 젊은이들이었다. 자리에 앉아 맥주파티가 시작되니 황사장님이 좌중을 즐겁게 해준다. 경륜이 배어나는 능숙한 구라는 연속해서 웃음을 선사한다. 이렇게 한 여름의 즐거운 하룻밤을 백두산 아랫마을에서 보내는 우리는 모두 행복할 수 있었다. 이 날의 건배구호는 선창 “천지를!” 후렴 “보고가자!”였다.
방으로 돌아와 내일 출발을 위한 짐 정리를 한다. 지금 벌써 11시다. 자야한다. 내일 새벽 4시에 모닝콜이 울리기로 했다. 오늘도 긴 하루를 즐겁게 마무리한다.
첫댓글 날씨가 좋기만 하면 무슨 재미
골고루 느껴 봐야지
악천후, 우중 산행도 좋습니다.
내일은 꼭 천지를 본다는 전제하에
부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