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시조를 감상하는 순간 무릎을 탁! 치고 말았다.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로 내 심장을 도려내는 그 무엇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한낮 부록에 지나지 않는 자식인 우리들은, 언제나 부모님의 깊은 사랑을 받기만 하면서, 주름의 깊이만큼이나 터진 실밥 같은 그의 생은 감지하지 못했다. 그저 모든 것을 건성으로 받아 넘긴 죄가 클 뿐이다. 또 다시 우리가 부모가 되어 그 마음을 헤아리려 하였을 때는 이미 부모님은 너무 멀리 계신다. 허공 있어도 따뜻한 빛이 되어 자식을 환한 웃음으로 보듬는다.
내게 있어 '아버지'라는 이름은 멀리 있어도 항상 곁에 있는 이름이다. 그러나 '어머니'라는 이름은 슬프고 아픈 이름이다. 국민학교(초등학교) 1학년 때 엄마가 생겼다. 무척이나 기뻤다. 엄마가 생겨서...또 3학년이 되었을 때 또 엄마가 생겼다.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으면서도 엄마가 있다는게 행복해서 내 엄마가 되어 오래 있어 달라고 매달렸다. 6개월인가 지났을 무렵 떠나는 그녀의 치맛자락을 잡고 엄마 가지말라며 애원을 했다. 그녀의 단호한 한마디 왜? 내가 네 엄마냐고...그녀가 가는 모습을 보며 한없이 울었다. 마을 노인정에 계신 아버지가 없는 사이...내일, 모래, 아니 걸피면 지천명의 나이를 받아 들여야 하지만 나의 일상은 아버지 떠난 국민학교 4학년 겨울방학 끝무렵의 시간만 보듬고 산다. 흰눈 펑펑 내리던 섯달 열엿세 날 한 소년이 돼지저금통을 손에 들고 눈물이 얼정도로 울었다. 그런 소년이 시조를 쓴다. 행복하다. 시조를 쓰지 않았다면 어찌 이 많은 말과 감정을 부릴 수 있었겠는가? 내 안에 수많은 말을 가두어 버렸을 것이다. 박기섭 시인처럼 시조 잘 짓는 분들은 나의 선망의 대상이고, 나의 희망이다.
우리민족 고유의 시가인 정형시를 감상하며 한 줄의 감상노트라도 적어보는 것은 어떨까? 각자의 삶의 방식에 따라 다른 색깔의 느낌을 새길 수 있지 않을까? 아마 우울증 같은 마음의 병도 치유할 수 있는 처방전이 되지 않을까 싶다.
박기섭 시인의 시조를 가만히 접하다 보면 한층 마음이 가볍고 따뜻하고 상쾌하다
. 위에서 소개한 시조 외 그의 연작사설시조집 『엮음 愁心歌 』는 시인이 생활의 터를 잡고 있는 ‘각북’이란 고을을 통째로 옮겨 놓은 듯 이웃사람들의 따뜻하고 정겨운 노래가 있다. 일반 독자들에게도 편안하게 읽히는 시조집이기에 꼭 권하고 싶다.
이 지면을 빌어 또 한 편 유쾌 상쾌한
「벽서」라는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시조는 시인의 여섯 번째 시조집 『달의 門下』에 수록되어 있으며 우리들의 유년을 떠올리게 하는 재미나는 시조다.
박기섭 시인은 대구 달성에서 태어나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당선으로 문단에 나왔으며 시집 『키 작은 나귀타고』『黙言集』『비단 헝겊』『하늘에 밑줄이나 긋고』『엮음 愁心歌』『달의 門下』등이 있으며 대구문학상, 중앙시조대상(신인상), 오늘의 시조문학상, 대구시조문학상, 중앙시조대상(대상), 이호우시조문학상, 고산문학상 등의 수상경력이 있다.
첫댓글 허기진 생의 그믐에 실밥이 다 터진 책이 어머니의 책이라!
이해가 갑니다.
SBS드라마중에 현재 방송하고 있는 드라마 "폼나게 살거야"를 시청하면 어머니와 자식의 끈끈한 사랑과 아픔이 여기에
비유되지 않나 싶습니다.
일찍 어머니를 저세상으로 보낸 저는 어머니 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납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책갈피는 항상 촉촉히 젖어 있나 봅니다.
그러내요 우리도 이렇게 나이들어 가는데 진작 왜 몰랐을까요.
어쩌면 이렇게 어리석은게 사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