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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동파키스탄 전후부터 방글라데시 독립(1971년)까지
이 시기의 샤하닷 호센Shahadat Hossain(1893년~1953년)은 이슬람 전통에 대한 인식과 자연에 대한 사랑을 노래했으며, 그의 시 <룹짜다>(1943년)는 유명하다. 그리고 골람 모스또파Golam Mostofa(1897년~1964년)는 이슬람 사상을 방글라 문학에 도입했는데, 시를 쓰는 것 외에도 이슬람 예언자의 훌륭한 전기인 <빗쇼노비>(1942년)도 썼다.
소이드 왈리울라흐Syed Waliullah(1922년~1971년)는 <랄 살루>(1948년)에서 독실한 이슬람 배경을 가진 가난한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타종교를 가진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지배욕 등을 묘사했다. 그의 소설은 등장 인물의 내면을 통해 사람들에 대한 실존적 분석을 시도했다. 소설 <아노아라>가 초기 방글라 소설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처럼 그의 <랄 살루>도 방글라데시 현대소설의 한 이정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시기의 몇몇 시인들은 이슬람을 시 소재의 주요한 영감으로 사용했다. 포르루크 아흐모드Farrukh Ahmad(1918년~1974년)의 <하뗌 따이>(1966년), 로오션 이즈다니Raushan Yazdani(1917년~1967년)의 <카따문 노비인>(1960년), 딸림 호세인 Talim Husain(1918년~1999년)의 <샤힌>(1962년), 수피 줄피까르 하이다르Zulfiqar Haider의 <페르 바나오 무슬만>(1959) 등이 있다.
그 후에 시의 주제들은 공동체의 감정을 초월한 인본주의적 사상을 표현하는 데로 옮겨 갔다. 인간, 순박한 낭만적 사랑, 자연 등이 당시 시의 주요 주제가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소이드 알리 아흐산의 <웃짜론>(1968년), 삼수르 라흐만의 <빗도스또 닐리마>(1967년), 무함모드 모니룻자만Muhammad Moniruzzaman의 <비뽄노 비샷>(1968년), 하산 하피주르 로흐만Hasan Hafizur Rahman의 <언띰 셔레르 못>(1968년)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모함모드 마흐푸줄라Muhammad Mahfuzullah의 <줄레카르 몬>(1959년), 까데르 노와즈Kader Nawaz의 <닐 꾸무디(1960년), 마흐무다 카툰 싯딕까Mahmuda Khatun Siddiqua의 <먼 오 므릿띠까>(1960년) 등이 언급할 가치가 있다.
당시에 주목한 또 다른 시의 주제에는 현대 사회 생활의 피로, 실패, 절망 등이 있다. 이 경향에는 삼수르 라흐만의 <쁘러톰 간 디띠오 무릿뚜 아게>(1960년)와 <로우드러 꺼로띠떼>(1963년)가 있다. 유사한 시집으로는 압둘 고니 하자리Abdul gani hazari의 <샤만노 돈>(1961년)과 <수르제르 시리>, 소이드 삼술 혹의 <에꼬다 엑 랏제>(1961년), 소이드 알리 아흐산의 <어넥 아까쉬>(1961년), <에꼭 션다이 보숀또>(1962년) 등이 있다.
시인들의 생각과 정서를 반영한 주제에 애국심도 있다. 이러한 벵골 민족주의 정서는 산나울 혹Sanaul Huq의 <셤봅나 언논나>(1962년)와 <슈르저 언또르>(1963년)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알라웃딘 알 아자드Alauddin Al Azad, 호쇼네 아라Husne Ara 등 당시 시인들은 마르크스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알라웃딘 알 아자드의 <만찌뜨러>(1961년)와 호쇼네 아라의 <미칠>(1964년)은 억압받는 사람들을 옹호했다.
또한 서민생활의 비참함, 자유민족으로서의 독립에 대한 갈구, 벵골 족에 대한 억압과 이것에 저항하는 민중들의 시위가 있다. 시인들은 개인의 불행을 넘어 대중의 희망을 그리려고 시도했다. 1969년 벵골 족의 봉기는 이러한 변화를 촉발시켰다. 봉기를 접하는 사람들은 매일 '미칠(행렬), 도르모곳(시위), 하르딸(동맹파업), 슬로간(주장), '샨도 아인(통금 법), 군대' 등과 같은 단어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시인의 작품 속의 어휘에서도 사용되었다. 소이드 샴술 혹의 <보이샤케 로찌또 뽕띠말라>(1969년), 삼수르 라흐만의 <니즈 바스부메>(1970년), 알 마흐무드Al Mahmud'의 <소날리 까빈>, <니르몰렌두 구네르 쁘레망슈르 럭또 짜이>(1970년)의 시들은 대중의 삶을 밀착해서 묘사했다.
방글라데시 연극의 위상을 상당한 수준으로 끌어올린 사람 중에는 단연 무니르 쪼우두리Munier Choudhury(1925년~1971년)가 있다. 그는 1952년의 벵골 모국어 운동에 참여한 죄목으로 다카 감옥에 정치범으로 2년 동안 투옥되었는데, 이 기간에 1952년 언어운동을 소재로 한 희곡 <꼬보르(무덤)>(1953년)를 썼다. 그의 희곡들은 현대 사회 생활의 불균형과 일탈, 공동체 사상의 지양, 갈등을 극복하는 인류 공통의 인간성을 탐구했다. 희곡의 무거운 주제를 생생한 대화와 유머를 통해 표현했다. 다수의 외국 희곡을 방글라로 번역한 그는 연극,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에서도 연출을 했다. 그를 기리기 위해 방글라데시의 ‘theatre' 극단은 연극 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무니르 쪼우두리 명예상‘을 수여하고 있고, ’방글라 아카데미‘에서는 양서 출판에 공헌한 출판사에게 ’무니르 쪼우두리 기념상‘을 수여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연극에서 주목되는 또 다른 작가들로는 소이드 왈리울라흐Syed Waliullah가 있다. 그는 방글라데시 연극에 우아함과 기교의 양식과 기법을 최초로 도입했다. 그의 <보히삐르>(1955년)와 <떠롱고봉고>(1964년)는 방글라 희곡에 다른 장르를 추가했다. 그와 같이 소이드 아흐메드Sayeed Ahmed도 방글라 연극을 창작하면서 현대 철학과 예술 이론을 사용했다. 그의 <깔벨라>(1962년)와 <마일뽀스뜨>(1964년)는 세계적인 수준의 연극과 비교될 만했다. 이 연극들은 형식의 기술면에서도 혁신적이고 실험적이었다
이 시기의 평론들은 주로 이슬람 문인들을 중심으로 방글라 문학의 역사에 대한 연구에 집중되었다. 당시의 주요한 것으로는 나지룰 이슬람 모함모드 수피안Nazirul Islam Muhammad Sufian의 <방글라 사힛떼르 너뚠 이띠하시>, 압둘 러띠프 쪼우두리Abdul Latif Choudhury의 <방글라 사힛떼르 이띠하시>, 무홈모드 에나물 혹Muhammad Enamul Huq의 <무슬림 방글라 사힛또>, 무홈모드 압둘 하이Muhammad Abdul Hai와 소이드 알리 아흐산Syed Ali Ahsan이 공동 집필한 <방글라 사힛떼르 이띠브릿또>, 까지 딘 무홈모드 Kazi Deen Muhammad의 <방글라 사힛떼르 이띠하시>와 무홈모드 몬수룻딘Muhammad Mansuruddin의 <방글라 사힛떼 무슬림 샤도나> 등이 있다.
특히 이 시기에는 '뿌티puthi' 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연구자들은 방글라데시의 중세 문학을 고찰했다. 뿌티 문학은 벵골 지역 중세 시대의 아랍어, 페르시아어 그리고 방글라가 혼합되어 필사된 시적 동화와 종교 이야기를 담은 문학 장르이다.
알라올Alaol의 <뻣다보띠>는 문학자인 무홈모드 셔히둘라흐Muhammad Shahidullah, 소이드 알리 아흐산Syed Ali Ahsan, 압둘 꼬림의 의해서 비평과 편집이 이루어졌다. 아흐모드 셔리프Ahmad Sharif는 도울럿 우지르 바흐람 칸Daulat Uzir Bahram Khan의 <라일리 모즈누>(1958년), 알라올의 <또흐파>(1958년), 무홈모드 칸Muhammad Khan의 <셧또꼴리-비밧-셩밧 바 죽 셩밧>(1959년), 져에눗딘Jainuddin의 <로술비조이>(1964년) 등 15편 이상의 뿌티를 편집했다.
동파키스탄 시기의 문학 활동은 1958년 서파키스탄의 아윱 칸 육군참모총장의 계엄령 공포로 좌절되었다. 그렇지만 벵골 지역 주민들은 주저앉지 않고 자유 정치의 제한, 독재 정권의 강화, 여러 통제 조치들을 내린 강압 정권에 대하여 저항하기 시작했다. 1968년 민중봉기, 1969년 학생운동, 1970년 통파키스탄의 총선 승리와 서파키스탄의 거부 그리고 1971년 해방전쟁 등은 방글라 문학에 적지 않게 반영되었다
3-4. 방글라데시 해방(독립) 이후
3-4-1. 소설
이 시기의 소설은 해방전쟁의 무용담, 전쟁의 지옥 같은 국면, 자유롭고 평등한 방글라데시의 이상 그리고 독립 실현을 기록했다. 이 시기의 소이드 삼술 혹Syed Shamsul Haque(1935년~2016년)의 소설들은 복잡하고 다면적인 갈등을 묘사하고 있다. 그의 소설 <두롯또distance>(1981년)는 1975년 이후의 방글라데시의 복잡한 사회정치적 현실을 대학 교사의 이야기를 통해 나타냈다. 그의 다른 두 권의 소설인 <모하순노 뽀란 마스따르>(1982년)와 <아이나 비비르 빨라>는 시골 생활의 변화와 몰락을 표현했다. 시인이며 극작가인 그는 <니싯도 로반>(1990년), <켈라람 켈레 자>(1991) 등 수십 편의 소설을 썼다.
하스낫 압둘 하이Hasnat Abdul Hye(1937년~)의 소설 <띠미timi>(1981년)는 독립 직후의 사회와 정치 불안정을 배경으로 해안가 주민들이 부조리한 악한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들을 나타냈다. 이 작품은 해안 까졸뿌르 사람들이 악당과의 투쟁에서 어떻게 연합해서 승리하는지 보여 주었다.
보시르 알 헬랄Bashir Al Helal(1936년~2021년)는 <세쉬 빤뽀뜨러>(1986년)에서 방글라데시 독립 이후의 시골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존재에 대한 의문을 이야기했다.
해방전쟁에 참여했던 애국적 중산층의 상당수는 국가의 경제, 사회, 정치적 여건에 좌절했다. 1971년 이후의 소설들은 해방전쟁 이후의 불안정과 허탈함을 주요 주제의 하나로 삼았다.
쇼르다르 조에눗딘Sarder Jayenuddin(1918년~1986년)의 <스리모띠 꼬 오 코 스리만 딸렙 알리>(1973년)는 해방 이후 중산층 군상들의 삶에 있어서 붕괴를 표현했다.
후마윤 아흐메드의 <논디또 노로께>(1972년)와 <셩코닐 까라가르>(1973년)는 중산층의 삶의 좌절과 외로움을 표현했다.
중산층의 삶의 다양한 문제들은 로시드 꼬림Rashid Karim의 <쁘렘 엑띠 랄 골랍>(1978년)과 <사다론 록께르 까히니>(1981년)에서도 묘사되었다. 반면, 리지아 로흐만의 <록떼르 옥커르>(1978년)는 성 노동자들의 도시 빈민가에 대한 어두운 그림을 그렸다. 그녀의 <엑띠 풀레를 존노>(1986년)는 패배의 상처를 입은 자유 투사의 얼굴을 나타냈다. 이와 유사한 작품으로는 쇼오꼬또 알리Shawkat Ali(1936년~2018년)의 <오빽카>(1985년), 보시르 알 헬랄의 <깔로 일리시>(1979년), 하스낫 압둘 하이의 <아마르 아또따이>(1980년), 셀리나 호센Selina Husain의 <모그노 쪼이똔노 시시>(1979년) 등이 있다. 여류 작가이자 교육자인 라지아 칸Razia Khan(1936년~2011년)은 소설 <헤 모하지본>에서 자유롭게 된 여성의 일대기를 묘사했다.
정치적 불안정, 군부 지배, 전범들 문제 등으로 인한 정치 상황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쇼오꼬또 오스만Shawkat Osman(1917년~1998년)의 <뽀똥고 삔조르>(1983년)와 셀리나 호센의 <니론또르 곤따도니>(1987년) 등과 같은 소설의 집필을 자극했다.
그리고 벵골 지역이 동쪽 방글라데시와 서쪽 인도의 서벵골 주로 양분되었지만, 같은 방글라 어를 사용하는 두 지역의 문학가들의 교류는 줄곧 이어졌다. 그들의 작품은 방글라데시와 인도 서벵골에서 관심을 받았는데, 그중 수닐 겅고빳다이Sunil Gangopadhyay(1934년~2012년)는 역사와 정치뿐 아니라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 현대사회의 부조리, 소외계층, 치부 등을 노출했다.
3-4-2. 단편소설
이 시기에는 사회에서 억압받는 계층이 상류 계층과 함께 주체적인 위치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작가들은 이러한 사회 현상을 단편 소설에서 투영했는데, 이러한 경향에는 라핫 칸Rahat Khan(1940년~2020년)의 <어니스찌또 록깔러이>(1972년), <언또힌 자뜨라>(1975년), <발로몬데의 따까>(1981년), 압두스 사꾸르Abdus Shakur(1941년~2013년)의 <끄라이시시>(1976년), <셔로스 걸뽀>(1982년), 로시드 하이다르Rashid Haider(1941년~2020년)의 <언또레 빈노 뿌르쉬>와 <메게데르 거르바리>. 보시르 알 헬랄의 <비뽀릿 마누쉬>, 마프루하 쪼우두리의 <어론노 가타>, 아불 하사낫Hasnat Abdul의 <뻐로끼아>(1973년), <꺼보슈노>(1978년), <바즈>(1986년), 나즈마 제스민 쪼우두리Nazma Jasmine Chowdhury(1940년~1989년)의 <언노 나욕>, 수브럿 보두아Subrata Barua(1946년~)의 <까쯔뽀까> 등등의 소설이 있다.
또한 땅주인, 대부업자, 정치적 근본주의자, 종교적 광신도들에 의한 착취와 억압에 대한 이야기도 단편 소설의 주요 주제였다. 하산 아지줄 혹Hasan Azizul Huq(1939년~)은 단편 <지본 고세 아군>(1973년), <남힌 고뜨러힌>(1975년), <빠딸레 하스빠딸레>(1981년)을 통해서 북벵골 사람들의 삶을 묘사했다. 셔오꼬또 알리의 <렐리한 샷>(1973년)과 <슈노 헤 로킨도르>(1986년)도 언급할 가치가 있다.
3-4-3. 시
시인들은 일반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독립으로 인해 높아진 그들의 희망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좌절하고 절망하게 되었다. 해방 후 불안정과 기근에 시달린 삶을 시집으로 담아냈다. 이 시기 삼수르 라흐만은 그의 작품을 통해 진보적이고 확고한 자유주의적 인본주의 주제를 표현했다. 그는 대부분의 시를 자유 운문으로 썼으며, 지보나넌도 다스의 영향을 받아 벵골 지역의 주요 리듬 형식을 사용했다.
해방된 이후 시가 품은 또 다른 중요한 주제는 사랑이었다. 방글라데시의 시인들은 정치적 상황에 대한 우려와 함께 그들의 작품에서 마음의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그들은 사랑과 혁명을 동등한 입장에서 대했다. 그러면서도 시인들은 군사독재가 권력을 장악해 민주적 과정을 좌절시키며 억압할 때 분노와 저항을 서슴지 않았다. 잘 알려진 시인들 중에는 콘도까르 아슈라프 호센Khondakar Ashraf Hossain(1950년~2013년), 모혼 라이한Mohan Raihan, 마루프 호센Maruf Husain, 수브러또 어가스띤 고메즈Subrata Augustin Gomes가 있다.
1980년대의 시는 본질적으로 저항의 정서로 가득 차 있었다. 방글라데시는 당시 군사독재 하에 있었고 실정과 권력에 허덕이는 시민들의 착취를 목격했다. 시인들의 분노는 당시의 시 속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었고, 1990년대에는 새로운 각성이 작품으로 표출되었다. 시인들은 의식적으로 포스트모던 풍조를 함양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1930년대 모더니즘 시인들의 시풍詩風과 달리 자신들 나라의 고유한 유산과 진정한 뿌리에 집중했다.
3-4-4. 연극
희곡은 1971년 해방전쟁 이후에 번성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 정치적 자각과 인식, 세련된 언어의 형태, 언어 구사에 대한 기술 등은 드라마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 시기의 연극은 민중운동과 해방전쟁 그리고 당시 사회적 가치의 와해와 대중의 절망을 소재로 했다. 또한 상징주의와 민속 유산도 많은 연극에서 소재로 사용되었다. 많은 외국 희곡들도 이 시기에 번역되었다. 연극 무대의 공연에 영향을 미친 소이드 삼술 혹Syed Shamsul Huq(1935~2016), 압둘라흐 알 마문Abdullah Al Mamun(1942년~2008년), 마무누르 로시드Mamunur Rashid(1948년~), 셀림 알 딘Selim Al Deen(1949년~2008년) 등이 이 연극 운동을 강력하게 주도했다.
벵골 지역의 최초 연극 단체인 1888년의 일리시암 극단이 다카에서 시작된 이후로 연극 공연 활동은 점증되어 나갔는데, 해방전쟁 후에는 정기적으로 무대 공연을 꾸릴 수 있는 많은 연극 단체가 등장했다.
특히 활동적이고 기억될 만한 극단으로는 나고릭 낫또 셤쁘러다이Nagorik Natya Sampradaya(1968년 창단), 아론녹 낫또돌(1971년), 낫또쩌끄로(1972년), 다카 극단(1973년) 등이 있다. 그들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몰리에르Molière,, 안톤 체호프Anton Pavlovich Chekhov, 셰익스피어, 입센Henrik Johan Ibsen 등과 같은 세계적인 극작가의 희곡을 번역하거나 각색하였고, 타고르를 비롯하여 후마윤 아흐메드Humayun Ahmed(1948년~2012년), 소이드 삼술 혹 등 벵골 지역 작가들의 작품도 무대에 올렸다.
3-4-5. 평론, 민속 문학, 언어학
해방 후의 평론 분야 연구는 방글라데시에서 눈에 띄게 진행되었다. 연구의 주요 주제는 고대 문학, 중세 문학, 현대 문학, 타고르 문학, 까지 너주를 이슬람 문학, 민속 문학, 언어학, 언어 운동, 해방 전쟁 등이었다. 숀지다 카뚠Sanjida Khatun, 로피꿀 이슬람Rafiqul Islam, 아니숫자만 Anisuzzaman, 아부 헤나 모스또파 까말abu hena mostafa kamal, 모함모드 모니룻자만Mohammad Moniruzzaman, 압둘 하피즈Abdul Hafiz 등이 연구에 큰 기여를 했다. 숀지다 카뚠은 너즈룰 작품에서 타고르와 로피꿀 이슬람을 연구했다. 아부 헤나 모스또파 까말은 <벵골 언론과 문학 저술>(1977년)이라는 책을 냈다.
민속 문학은 벵골 지역에서 대개 구전되어 온 것으로, 바울baul 노래 같은 민속 음악, 자뜨라jatra(춤, 노래, 대사 등 종합연극) 같은 민속 연극, 민화(민속 이야기) 등이 있다.
민속 문학에 대한 귀중한 자료를 남기는 작업은 아불 깔람 모함모드 자까리아Abul Kalam Muhammad Zakaria, 아스라프 싯디끼Ashraf Siddiqui, 모조하룰 이슬람Mazharul Islam, 압두스 삿따르Abdus Sattar, 압둘 하피즈Abdul Hafiz, 아노아룰 꼬림Anwarul Karim, 콘도까르 리아줄 혹Khondkar Reazul Huq, 아불 아흐산 쪼우두리Abul Ahsan Choudhury 등이 수행했다.
언어학 연구에 기여한 이들은 모함모드 압둘 까윰Mohammad Abdul Qayyum, 로피꿀 이슬람Rafiqul Islam, 아불 깔람 몬주르 모르셰드 Abul Kalam Manjoor Morshed, 몬수르 무사Mansur Musa, 후마윤 아자드Humayun Azad, 다니울 혹Daniul Huq, 모니룻자만Moniruzzaman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