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다리와 구성리의 지명에 대해 많은 의문을
가졌다. 돈다리의 '돈'을 왜 한자어로 조아릴
頓으로 표기했을까?
머릴 조아리기를 많이 하는 마을, 북쪽인
한양,임금이 있는 곳 또는 옛 조상이 있는 곳을향해 조아리기를 하는 마을이라는 뜻일까?
지명을 이런 의미로 정했다는 건 상식적으로 지명에 맞지 않는다.
이번에 본 1872년에 작성된, 조선시대
지방지도를 보면 산이면의 돈다리는
敦도타울 돈으로 표기되어 있다.
정이 도타운 마을.
역사적으로 이 이름이 타당하겠다는 생각이다.
그걸 후대에 도타울 돈을 조아릴 돈으로
오기했지 않았을까?
옛 필사본은 오기를 한 게 많이 나타난다.
원래 지명이 돈다리였는데, 일제시대
1912~1918년까지 우리 나라 지적도를
완성할 때 돈다리를 고유어로 착각해서
또 다른 지명인 '구성리'로 명명했겠다는
생각이다. 이런 오기(誤記)는 전국의 지명에서 많이 나타난다.
내가 '돈다리'를 고유어로 착각해
서해에서 들어오는 밀물이 좁은 곳,
영산강과 영암호로 꺾어 들면서
툭 튀어나온 구성리 지형때문에
물결이 도는 곳에 다리를 놓은
마을이라고 옛 선경지명이 있는 분이
지은 거로 여겼었다.
예전에 해남 향토지리지를 봤었는데
이제 찾을 수도 없어 지명을 고증하지도
못 하고 지명에 의문만 갖고 있다가
옛 지방지도를 보면서 의문이 풀렸다.
1872년 지방지도의 돈다리가 원래 써오던
지명인데, 일제 시대의 우리 나라 지적도를
완성할 때 구성리라는 새로운 한자어로
명명했다는 생각이다.
물론 지적도의 객관적인 자료는 보지
못했지만 지금도 일차 완성된 일제 시대
지적도를 현대에 와서 다시 측량하여
지적도를 사용하고 있다.
산이서교 15회 졸업생,
부동리 이배성 올림.
첫댓글 좋은 글을 올려주어 고맙다 친구야
조선시대 아마 정조 때가 아니었나 싶은데
이런 고지도를 찾아 보내주어 고마웠다.
자세하지는 않지만 확대해보니 부동이란 지명도
돈월란 지명도 보이는구나
그렇다면 조선시대 후기까지 구성리로 불려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우리가 생각하기론 우리 조상들이 살던 곳이
용인시 구성이란 곳이 있는데 여긴 駒城이라
표기한다. 우리 고향은 九星이라 쓰기 때문에
한문표기론 전혀 같지 않지.
옛날 할아버지가 사시던 고향동내 이름을 차용해 사용하지 않았나 했는데 친구가 보낸 옛지도가
18세기 적이고 그 당시에도 돈월리로 표기된걸 보면 용인 구성이란 지명 차용은 아닌것 같다.
좋은 글을 올려주어 고맙다 친구야
조선시대 아마 정조 때가 아니었나 싶은데
이런 고지도를 찾아 보내주어 고마웠다.
자세하지는 않지만 확대해보니 부동이란 지명도
돈석이란 지명도 보이는구나
돈월이 아니고 한문으론 석자 같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후기까지 구성리로 불려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우리가 생각하기론 우리 조상들이 살던 곳이
용인시 구성이란 곳이 있는데 여긴 駒城이라
표기한다. 우리 고향은 九星이라 쓰기 때문에
한문표기론 전혀 같지 않지.
옛날 할아버지가 사시던 고향동내 이름을 차용해 사용하지 않았나 했는데 친구가 보낸 옛지도가
18세기 적이고 그 당시에도 돈월리(돈석)로 표기된걸 보면 용인 구성이란 지명 차용은 아닌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