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부처님께서 큰 물고기로 변화하여 어부들을 제도하다 아미타불께서 큰 물고기 몸을 나투어 어부들을 인도하여 구제한 감응 (외국의 기록에서 나옴出外國記) 집사자국執師子國(스리랑카, 또는 사자국이라고도 부름)에서 서남방향으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외딴 섬 하나가 있었다. 오백 여 가구가 들쑥날쑥하게 지은 초가집에 살면서 모두 새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였는데, 여태까지 불법을 들은 적이 없었다. 하루는 수천 마리의 큰 물고기들이 섬으로 헤엄쳐 왔는데, 모두 사람의 말을 하며 나무아미타불을 노래 부르는 것이었다. 이를 본 바다 사람들은 그 이유를 몰랐기에 노래하는 내용에 따라 아미타불어阿彌陀魚라고 불렀다. 어떤 사람이 아미타불을 노래 불렀더니 물고기들이 바닷가 가까이로 헤엄쳐 왔다. 노래 부르면서 물고기를 죽이면 나머지 물고기들이 도망가지 않았고 생선 맛은 매우 좋았다. 사람들이 아미타불 노래를 많이 부르고 나서 잡은 생선의 맛은 최상이었고, 적게 부른 사람이 잡은 생선의 맛은 맵고 쓴 맛이 났다. 섬사람들은 생선 맛을 즐겼기 때문에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 나중에 처음부터 그 생선을 먹었던 사람이 수명이 다하였는데, 죽은 지 삼 개월이 지난 뒤에 자줏빛 구름을 타고 광명을 놓으며 섬에 이르러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는 이 섬에서 물고기를 잡던 사람들 중에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죽어서 극락세계에 왕생하였다. 이 큰 물고기들은 아미타불께서 변화하여 나투신 것이다. 저 부처님께서 우리들의 어리석음을 가엾이 여기시어 큰 물고기로 변화하여 염불을 권유하신 것이다. 만일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땅히 생선뼈들이 모두 연꽃형상을 하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매우 기뻐하였다. 왜냐하면 그동안 버렸던 생선뼈들이 모두 연꽃형상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를 본 사람들은 모두 감동하여 깨닫고는 살생을 끊고 아미타불을 불렀다. 나중에 섬에 살던 사람들이 모두 정토에 왕생하였고. 이 섬은 오랜 세월 무인도가 되고 말았다. 집사자국의 사자현師子賢 대아라한께서 신통력으로 그 섬에 가셨다가 이 사실을 전하게 된 것이다. (삼보감응약록·정토성현록 三寶感應要略錄、淨土聖賢錄) 생각건대: 신심信心도 모르고 원심願心 역시 없었으나, 오직 생선 맛을 즐기며 항상 부처님명호를 불렀다. 칭명을 한 까닭에 모두 왕생하였으니, 이는 아미타불의 본원의 기능이다. 아미타불께서 맹세하시길, ‘나의 명호를 불렀음에도 왕생할 수 없다면 성불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아미타불께서 지금 현재 극락세계에서 성불하셨으니, 중생이 칭념하면 반드시 왕생한다.
4. 일찍이 고승이었던 적이 있었으나 또다시 침륜하다 가선嘉善(지금의 절강성)의 제생諸生 지모支某씨는 여태까지 재능과 학식이 뛰어나다는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강희기유康熙己酉년(1669) 여름, 가흥嘉興에 과거시험을 보러 가다가 대낮에 한 귀신이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보고는 곧 바닥에 쓰러지더니, 북방발음을 하면서 원수를 갚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인이 서둘러 배에 실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이 유란사幽瀾寺 주지 서련西蓮법사를 모셔왔다. 법사가 물었다. “너는 어떤 악귀이길래 감히 지선비를 성가시게 하는 것인가?” 이에 귀신은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악귀가 아니오. 전생에 원한이 있었는데 이미 그 인연이 도래하였기에 원수를 갚으러 온 것이오!” 서련법사가 그 이유를 따져 물었더니 답하기를, “나는 명나라초기 때 부장副將으로, 성은 홍洪씨이고 이름은 수洙였소. 주장主將 요군姚君은 나의 처 강씨의 미모를 보고서 탐심을 내었소. 마침 모처에서 반란이 일자 요군은 연로하고 몸이 약하여 싸울 능력이 없는 사병 칠백 명을 주면서 나더러 토벌하라고 명하였는데, 내가 버틸 힘이 없어 전군이 전멸당하고 말았소. 요군이 나의 처를 가두자 내 처는 곧 목을 매어 죽었소. 이 깊은 원한을 품고서 여러 생을 쫓아다니며 보복하려 하였소. 그런데 요군은 만년에 후회하며 수행을 하였고, 다음 생에는 고승이 되었고, 그 다음 생에는 대사림大詞林(대문인)이 되었고, 세 번째 생에는 계행승戒行僧이 되었고, 네 번째 생에는 대부호가 되어 베풀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복수할 기회가 없었소. 지금은 다섯 번째 생인데 술유戌酉년 시험에 연달이 합격하였지만 모년에 (소송을 위해) 함부로 붓대를 휘둘러 죽차객鬻茶客 네 명이 죽게 되어 명부에서 이미 녹적祿籍을 삭제하였기 때문에 내가 이제 원수를 갚으러 온 것이오!”라고 하였다. 서련법사가 들어보니 그의 말에는 조리가 정연하였다. 그래서 그를 타이르며 경전을 독송하고 예참을 하여 원한을 풀어주겠다고 약속하자 귀신이 응낙하였다. 곧바로 서련법사를 모시고 불공을 드렸더니 지모씨의 병이 즉시 나았다. 며칠 뒤에 다시 귀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련법사가 약속을 어겼다며 꾸짖자 귀신이 말했다. “나는 부처님의 힘으로 극락왕생하였기에 절대로 번복하지 않소. 오늘 원수를 갚으러 온 이들은 죽차객 네 사람이지 내가 아니오. 스님께서 내가 신의를 저버렸다고 의심할까봐 특별히 이 소식을 전해주러 온 것이오!” 이 말을 마치고는 떠나버렸다. 머지않아 지모씨의 병이 재발하더니 이틀 밤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현과수록』 권4 《現果隨錄》卷四) 생각건대: 일찍이 고승 및 계행승이었던 적이 있었으나, 환생하자 곧 미혹하여 다시 업을 지었다. 만일 그가 말로에 정토수행을 했었다면, 한생에 해탈하여 후회를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생사의 길이 험난하고 윤회가 두려운데, 육도를 벗어나지 못하면 타락을 피할 수 없다. 우리 수행자들은 지모를 거울로 삼아, 맹세코 극락왕생하여 그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5. 법화경을 독송하던 비구니가 관기로 환생하다 구양영숙歐陽永叔이 영주潁州 지방에서 벼슬을 하고 있을 때인데, 관기官妓 한 명이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 연꽃향이 나오는 것이었다. 전생을 잘 아는 스님 한 분이 계셔서 이 기생의 전생은 비구니스님이었고, 『법화경』을 삼십년 동안 독송하였지만, 한 생각 차이로 이 지경에 이른 것이라 말하였다. 기생에게 “『법화경』을 읽어본 적이 있는가?”라고 묻자 “여기서 정조를 잃은 몸이 어찌 독경할 겨를이 있겠는가!”라고 답하였다. 『법화경』을 건네주자 막힘없이 줄줄 독송하였으나, 다른 경전을 주자 읽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그 스님의 말을 믿을 수 있음을 알았다. 만약에 이 비구니가 서방법문을 알았더라면 상품상생도 가능했을 것이다. 이것을 몰라서 기생으로 타락하고 말았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서방법문으로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구제의 공덕이 매우 클 것이니, 그 복보를 어찌 쉽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왕일휴 『용수정토문』 권7 王日休《龍舒淨土文》卷七) 생각건대: 출가하여 비구니가 된다는 것도 이미 쉽지 않을 텐데, 삼십년의 고행은 더욱 쉽지 않다. 오로지 자력만 의지하고 타력의 가지加持가 없었기에, 번뇌를 조복하지 못하고서 다시 윤회하여 미혹한 것이다. 다른 법문에서 도를 배우는 것은 개미가 산을 오르는 것과 같지만, 염불하여 왕생하는 것은 순풍에 돛단배가 물결을 따르는 것과 같다. 극락에 왕생하지 않으면 여전히 사바에 있게 되지만, 일단 서방에 태어나면 영원히 윤회를 끊어버리게 된다. 6. 염불하던 노파에게 기이한 서응이 나타나다 원나라 지순경오至順庚午(1330)년, 절서浙西 지방에 해마다 기근이 들었다. 항주성杭州城에는 굶어죽은 사람들의 시신들이 마구 겹쳐 쓰러져있다. 지방관리가 말단관리에게 명하여 사람들을 시켜 시신을 들어서 육화탑 뒷산에 있는 큰 구덩이에 버리도록 하였다. 한 노파가 열흘이 넘도록 부패되지 않고 매일 수많은 시신위에 누워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노파의 몸을 뒤져보니 품속에 작은 주머니가 있는데, 그 속에 ‘아미타불을 부르는 그림(念阿彌陀佛圖)’ 세 폭이 들어있었다. 이 일을 들은 관리는 노파를 위해 관을 사서 거두어주었다. 화장을 하자 연기와 불꽃 속에서 불보살의 상이 나타났고 환하게 빛이 났다. 이로 인해 염불하기로 발심한 이가 매우 많았다고 한다. (산암잡록정토성현록山庵雜錄、淨土聖賢錄) 생각건대: 염불노파는 종승宗乘의 교리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이 오직 염불만 하였다. 죽은 뒤 서응瑞應이 신기하니, 왕생을 확실히 증명하여 의심할 게 없구나. 생전의 지혜로 이해함은 스님들만 못하나, 죽은 뒤 과위의 증득은 스님들도 그녀만 못하네. 자력으로 해탈하기 어려우나 염불왕생은 쉬우니,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겨 앞날을 그르치지 말지어다. 7. 최파가 게송을 지으니, 혀가 연꽃을 닮다 송나라 동평東平 지방에 양씨의 유모인 최파는 치주淄州사람으로 선의랑宣義郎 원명元明의 유모였다. 평생 채식을 하였으며, 성품은 매우 어리석어 동배들과 시비를 타툴 수 없었다. 여주인인 조晁부인은 선학禪學에 뜻을 두었으나, 최파는 조석으로 조부인 곁에 있으면서 오직 아미타불만 정성껏 외우며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염주를 돌리면서 횟수를 세지 않았기에 몇 천만번을 외웠는지 알 수 없었다. 소흥18원(1148)년, 72세가 되던 해에 병이 나, 설사를 하며 침대에서 내려올 수 없었는데, 염불을 더욱 더 성실히 하였다. 문득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게송을 지어 노래하였다. "서방으로 가는 길 수행하기 쉬운데, 위로는 재 하나 없고 아래로는 구덩이가 없으니, 가실 때 신과 양말을 신을 필요 없이 연꽃을 밟으며 걸음걸음 왕생한다네." 이렇게 매일 게송을 읊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누구의 말이냐고 묻자 답하기를 “내가 지었다”고 하였다. “할머니는 언제 가시는가?”고 묻자 “신시申時에 간다”고 답하였다. 과연 그 시간에 죽었으니, 10월 15일이었다. 승가의 법도대로 다비를 하였는데, 다비가 끝나니 혀만 타지 않고 연꽃모양을 닮은 것이었다. 원명은 내 친구의 사위이다. (『이견지』을 권9·정토성현록《夷堅志》乙卷九、淨土聖賢錄) 생각건대: 대집경에서 설하시길, “만약 어떤 사람이 오로지 아미타불만 부른다면, 이를 위없이 깊고 묘한 선이라 부른다네”라고 하였다. 고덕이 말하기를, “한 구절 아미타불 외에 다른 생각 없으면, 손가락 튕길 수고로움 없이 서방에 이르리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인연 따라 묘법을 열어 중생에게 진정眞情을 얻도록 가르치니, 성도문 수행은 많이 수고로우나, 서방으로 가는 길은 매우 평탄하도다”고 하였다.
8. 어리석고 지혜 없던 이가 합장하며 서서 왕생하다
청나라 왕치두王癡頭 도인은 직례直隸사람이다. 성품이 너무나 어리석어 부모를 여의고 끼니조차 해결하기 어려웠으며, 고단할 때는 다 쓰러져가는 움막집에 누워 생계를 꾸려나갈 방법이 없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돈을 주면 그 돈의 액수조차 분별하지 못했다.
이를 불쌍히 여긴 진도인陳道人이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여 매일매일 바닥을 쓸고 땔감을 주워오게 하였다. 저녁기도는 부처님명호 수백 번을 부르면서 향 한 자루 다 탈 때까지를 기한으로 하였다. 왕치두는 염불을 하면서 운율을 맞추지 못하고 매번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그 때마다 진도인은 긴 막대기로 때리면서 말했다. “너는 이처럼 어리석으면서도 부지런히 정진할 줄 모르느냐?”
이렇게 삼년이 지난 어느 날 저녁, 하하 하고 크게 웃는 것이었다. 진도인이 또 때리려 하자 왕치두가 말했다. “오늘은 저를 때릴 수 없습니다”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하였다. “스승님은 18년 동안을 덧없이 앉아 계시기만 하셨으니, 수행방법을 모르시는 것입니다. 만약 저처럼 성실하게 예배하고 염불하였다면 벌써 극락왕생하여 부처님을 친견하셨을 것입니다.”
진도인은 이상하게 여겼으나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튿날이 되자 왕치두는 가파른 낭떠러지에 올라 서방을 향해 합장한 채로 왕생하였다. 다비를 하여 사리 두과를 얻었다.
(염향집·정토성현록 染香集、淨土聖賢錄)
생각건대: 성도문은 지극한 지혜로써 열반을 증득하고, 정토문은 어리석음으로 돌아와 극락왕생한다. 성도문은 자력이고 난행이이서, 만 명 중에 한 명도 없고, 정토문은 타력이고 이행이어서, 백 명이면 백 명이 다 왕생한다. 성도문은 설사 성인의 근성일지라도 여전히 삼지백겁三祗百劫이 지나야만 불과를 증득하나, 정토문은 최파와 왕치두 같은 이들도 오직 한 구절 육자에 의지하여 왕생성불한다.
9. 한 망치 한 부처님으로 게송을 남기고 서서 왕생하다
송나라 황타철黃打鐵은 담주潭州사람으로 대장장이 일을 생업으로 삼았는데, 매번 쇠를 두들길 때마다 입에서 염불이 끊이질 않았다.
그의 부인이 물었다. “쇠를 두들기는 것만 해도 힘들 텐데 염불까지 하면 더욱 힘들지 않은가?” 이에 황타철이 답하였다. “이 법은 아주 좋다. 예전에는 화로 옆에서 엄청 뜨겁게 느껴졌었는데 염불을 하니 뜨겁지가 않고, 또 쇠를 두들길 때 팔이 시큰거렸는데 염불을 하니 시큰거리지도 않는다” 하루는 아무런 병이 없이 이웃에게 부탁하여 게송을 적었다.
땡그랑땡그랑, 오랫동안 정련하여 강철이 되듯, 태평이 곧 다가오니, 나는 서방으로 왕생하네.
그리고는 망치를 들고 서서 왕생하였다.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기이한 향기가 짙게 났으며, 하늘음악이 허공에서 울리니, 대중들이 다 같이 들었다. 이 게송은 호남에 널리 퍼져 많은 사람들이 염불하게 되었다.
(불조통기·정토성현록 佛祖統紀、淨土聖賢錄)
생각건대: 별다른 능력 없어 오로지 염불하며, 한 망치 한 부처님으로 염불을 멈추지 않았다. 게송을 남기고 서서 왕생하니,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기이한 향기 그윽하며 하늘음악이 허공에 울렸다. 염불과 생업 서로 방해되지 않으니, 사농공상이 모두 따라할 수 있다. 다만 이를 본떠서 수행하길 바라나니, 교묘한 것만 찾다간 허송세월하고 말 것이다.
10. 염불이 끊이질 않아 관위에 연꽃이 피다
명나라 연화태공蓮花太公은 월나라 사람으로, 일생을 소박하고 꾸밈없이 살았으며, 오로지 주야로 끊임없이 염불을 하였다. 죽은 뒤에 관위에서 문득 연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가족과 이웃들이 경탄하여 연화태공이라 불렀다고 한다.
(연지대사 『왕생집』 蓮池大師《往生集》)
생각건대: 어리석고 무지하며 소박하고 거짓 없이 마음과 입으로 억념하니 중생과 부처가 완연한데, 주야로 언제 어디서나 염념마다 명호를 잊지 않으니, 온종일 사바이나 온종일 극락이다. 비록 육도에 있지만 이미 삼계를 벗어났고, 한번 정토에 왕생하면 윤회는 영원히 끊어지니, 염불 한 법은 편리하고 직접적이어서 선악현우善惡賢愚를 조금도 가리지 않는다.
11. 입에서 나오는 대로 끊임없이 칭명하다
청나라 심정유沈廷瑜거사는 가흥嘉興사람으로, 성품이 단정하고 근실하며 어떠한 일이라도 반드시 몸소 실천하였다. 그러면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끊임없이 부처님 명호를 불렀는데, 사람들이 모두 이를 두고 비웃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렇게 수십 년이 지나 스스로 말하기를, “염불이 익을수록 일을 처리하는데 더욱 상세하고 분명하다”고 하였다.
73세가 되던 해 작은 병이 났다. 문득 가족들에게 말하기를, “부처님이 오셨다. 나를 위해 등을 밝혀달라”고 하면서, 직접 향을 사르고 죽었다. 이때가 가경嘉慶19년(1814) 3월 19이었다.
(염향집·정토성현록 染香集、淨土聖賢錄)
생각건대: 염불 한 법은 행주좌와에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 모두 방해되지 않는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염불하면 몸이 곧 도량이고, 칭명소리에 맡기면 부처님과 함께 한다. 한가롭든 바쁘든 염불을 잊지 아니하고 자나 깨나 생각하니 동죙靜이 일여一如로다. 염불이 익을수록 일처리가 더욱 분명하니, 염불하면 마음이 맑아지고 맑으면 지혜가 생겨난다.
12. 수많은 뱀들이 염불하여 다 같이 극락왕생하다
명나라 강서 지방의 추윤조鄒子尹祖는 광동의 병헌兵憲이다. 참장參將 한 명이 스스로 삼세의 인을 안다면서 첫 번째 생은 뱀이었고, 두 번째 생은 서생이었으며, 세 번째 생이 곧 지금의 직책이라고 하였다.
하루는 출병하여 남방의 오랑캐를 토벌하기 위해 어느 산을 건너다가 하사관에게 말하기를, “내가 전생에 이 산의 뱀이었는데, 지금 산에 들어가 옛 부하들을 만나려 하니, 너희들은 놀라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다.
동굴에 들어가 보니 수많은 뱀들이 있었다. 참장이 뱀의 언어로 말하였다. “내가 예전에 너희들과 함께 이곳에 태어났었는데, 내가 염불을 한 번 했기 때문에 사람으로 태어나 지금 대장이 되었다. 너희들은 어찌 염불하여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 않는가?”
뱀들은 머리를 숙이며 가르침을 받는 모습을 하였다.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오던 날, 다시 동굴에 들어가 살펴보니, 수많은 뱀들이 모두 죽어있는 것이었다. 아마 염불하여 왕생하였을 것이다. 추공이 이 얘기를 듣고 나서 기이하게 여겨 이 일을 기술하여 전하였다.
(정토신종 권10 《淨土晨鐘》卷十)
생각건대: 꿈틀거리는 부류가 지극히 무지하나, 역시 염불하여 삼악도를 벗어날 수 있다. 이로써 염불이 수승하고 간단하고 쉽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만약 염불하지 않는다면 벗어날 기약이 없을 것이다. 한 번 염불해도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거늘, 만약 정토를 원한다면 필히 왕생한다. 아미타불께서 맹세하시길, ‘악도의 중생들이 모두 나의 나라에 태어나 모두 성불케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13. 수많은 물고기들의 염불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다
당나라 천보년간天寶年間(742~755)에, 당토當塗 지방의 어부 유성어劉成魚와 이휘李暉는 물고기를 싣고 단양丹陽으로 향하였다. 도착해서 물가에 배를 대고 이씨는 딴 곳으로 갔다.
이때 문득 배위의 물고기들이 수염을 떨고 머리를 흔들면서 ‘아미타불’을 칭념하는 것을 본 유씨는 놀라서 강기슭으로 도망갔다. 갑자기 수많은 물고기들이 모두 뛰어오르면서 염불을 하는데, 그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유씨는 너무 무서워서 물고기들을 전부 강에다 던져버렸다. 이씨가 돌아와서 그 얘기를 믿지 않아 유씨는 자신의 돈으로 보상해주었다. 이튿날 물억새 사이에서 돈 만 오천(십오 관貫)을 얻었는데, 거기에 ‘그대의 물고기 값을 갚는다’고 적혀있었다.
(『불조통기』 권28 《佛祖統紀》卷二八)
14. 염불로써 겨루니 불상이 방광하다
당나라 선도대사(613~681)가 장안의 서경사西京寺에서 금강법사와 함께 염불의 수승함과 열등함을 따진 적이 있었는데, 대사가 법상에 올라 발원하였다.
“여러 경전에 의하면 세존께서 말씀하시길, ‘염불 한 법으로 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 하루나 이레, 한 번이나 열 번 아미타불을 부르면 반드시 정토에 왕생한다’고 하셨는데, 이것이 진실하여 중생을 속이는 게 아니라면 이 법당 안의 불상들은 모두 방광하게 될 것이다. 만약 이 염불법이 거짓이어서 정토에 왕생할 수 없고 중생을 속여서 미혹시키는 것이라면 선도로 하여금 이 높은 자리로부터 바로 대지옥에 떨어져 장시간 고통을 받고 영원히 벗어날 기약이 없도록 할 것이다.” 곧 주장자를 들어 법당내의 불상을 가리키니, 불상들이 모두 방광을 하였다.
(당나라 도경 선도 『염불경』 唐朝,道鏡、善道《念佛鏡》)
생각건대: 누군가 어떤 중생이 성불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염불하는 중생이 성불할 수 있다고 답할 것이다. 염불하여 성불하는 것은 아미타불의 본원이자 석가세존께서 홍양하는 바이며, 제불이 찬탄하는 바이다. 15. 대중이 화불께서 천동자를 인도하심을 보다
당나라 장안에 살던 경京씨는 본래 백정이었는데, 선도대사가 사람들에게 염불을 권장하는 바람에 온 성에서 육식을 끊게 되었다. 이를 질투하여 미워한 경씨는 칼을 들고 절에 들어가 선도대사를 살해하려는 마음을 품었으나, 선도대사가 서방을 가리켜 보이자 정토의 모습이 나타났다. 경씨는 곧바로 마음을 돌려 발원하며 높은 나무에 올라 염불하며 나무에서 떨어져 죽었다. 대중들은 화불이 천동자를 인도하여 그의 정수리로부터 나오는 것을 보았다. (천동자天童子가 곧 신식神識이다)
(『불조통기』 권28 《佛祖統紀》卷二八)
생각건대: 아미타불의 구제는 수시로 존재하고 어디서나 존재하며, 아무런 조건이 없으시다. 어느 누구도 모두 구제받을 사람이고, 언제라도 모두 구제받을 시기이다. 아미타불께서 중생들에게 공덕을 회향하여 베풀어주심으로써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복과 지혜를 구족케 하신다. 나의 나라에 왕생하고자 내지 십념으로 왕생할 수 없다면 성불하지 않겠다. 그런 까닭에 중생들이 누구든지 저 나라에 왕생하기를 발원하며 즉시 왕생할 수 있다.
관세음보살이 나를 ‘육신보살’이라 불렀다
내 이름은 유연劉燃이고, 법명은 불혜佛惠이며, 산동성 청도사람이다. 나의 염불에는 하나의 특징이 있는데, 설사 교통이 번잡한 큰길에서도 소리 내어 염불하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대로 보고 나는 나대로 염불하면 되는 것이다. 만약 작은 동물들이 내 곁을 지나가는 것을 보면 나는 더욱 큰 소리로 염불하여 그들이 최대한 나의 염불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였다.
바로 이런 나의 염불습관 때문에 아미타부처님의 불가사의한 가피를 불러오게 된 것이다.
2014년 6월의 어느 날, 나는 평소처럼 홍원사에서 모셔온 108염주를 들고 소리 내어 염불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유유히 걷고 있었다.
그때는 이미 해질 무렵이었고, 내가 마침 어느 식당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갑자기 50대 정도의 아저씨가 뒤에서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는 첫 마디로 이렇게 물었다. “자네는 아미타불을 부르고 있는가?” 내가 “예, 아저씨! 무슨 일 있으세요?”라고 묻자 그는 흥분하며 나에게 말했다. “아, 바로 너야! 바로 너야!”
나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본 아저씨는 계속해서 설명하였다. “나도 염불하는 사람인데, 고향은 덕주이고, 청도에 온지는 일 년이 다 되어 가네. 그런데 여기서 염불하는 사람을 한 사람도 만난 적이 없었어. 나는 지금 이 식당에서 차량을 관리하는 경비 일을 하고 있는데, 방금 관세음보살님의 계시를 받고 여기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었네.”
자신도 염불하는 사람이라는 아저씨의 말을 들은 나는 “아저씨, 아저씨는 왜 염불하세요?”라고 물었다.그는 아주 솔직하게 대답하였다.
“극락세계에 가려는 거지 뭐! 그러나 나는 무슨 일이 생기면 관세음보살님께 도와 달라고 빌어. 조금 전에 내가 손님이 없는 틈을 타서 눈을 감고 길가에 앉아 마음속으로 묵묵히 보살님께 이 지역의 염불인들을 알고 지낼 수 있게 불연을 맺어달라고 빌었지!”
“계속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정신이 몽롱해지며 잠이 들었어. 그때 문득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나에게 ‘조금 있으면 육신대보살님 한 분이 여기를 지나갈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거야. 이 말을 들고 나는 깜짝 놀라서 깨어났어. 막 이 일을 생각하고 있는데 자네가 손에 기다란 염주를 들고서 염불하며 내 곁을 지나가는 것을 본 거야. 그래서 내가 자네를 불러 세운 거야!”
내가 그에게 “아저씨는 왕생에 대한 확신이 있나요?”라고 묻자 그는 “아직 모르겠어, 공부성편功夫成片조차 증득하지 못했거든!”라고 답하였다. 그의 말씀 중 곳곳에서 공부(염불실력)를 언급하였는데, 공부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기에 절박한 심정으로 일심불란의 경계에 도달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선도대사님의 정토사상을 공부해볼 것을 건의하면서, 아울러 그에게 이렇게 말씀드렸다. “정토종은 아미타불께서 구제를 해주시는 법문이지 수행하는 법문은 아니에요. 우리가 왕생하는 것은 부처님의 원력에 올라타는 것이지 절대 자신의 수행공부에 의지하는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미타부처님께서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크게 편안케 하리라’는 서원을 세우셨기 때문에 우리가 ‘아미타불의 구제를 믿고 받아들이고,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며, 아미타불의 정토에 왕생하기를 발원한다’면 누구나 서방극락세계에 갈 수 있는 거예요.”
“오직 선도대사님께서 설하신 것만이 비로소 석가세존의 본회요, 아미타불의 본원이며, 비로소 아저씨가 진정한 의미의 일심불란을 얻게 할 수 있고, 염불의 대안심과 대법희를 얻게 할 수 있어요. 내일 제가 홍원사에서 모셔온 책과 cd를 드릴 테니, 보시고 나면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이튿날 아침 일찍 나는 『염불감응록』과 『선도대사의 정토사상』을 갖다드리고, 아울러 그에게 말씀드렸다. “이것은 관세음보살님께서 아저씨에게 가리켜주신 이행도입니다. 꼭 진지하게 잘 보셔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 아저씨를 위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분은 틀림없이 난행도에서 이행도로 돌아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보살님께서 이러한 선교방편으로 그에게 계시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내가 무슨 육신보살은 아니다. 나는 오로지 업만 지을 줄 아는 진짜 생사범부일 뿐이다. 그런데 왜 관세음보살님께서 이렇게 나를 호칭한 것일까?
개인적인 생각에는 오로지 선도대사님의 정토사상을 의지하여 공부하는 염불이라면 모두 육신보살이라 불릴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반드시 성불한다는 종성種性이 이미 결정되었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진흙 속에서 피어난 연꽃처럼, 다 타버린 잿더미에서 불씨가 살아난 것처럼, 비록 “아직 사바세계를 벗어나지 못했으나, 이미 사바세계에 오래 머물 손님이 아니고, 아직 극락에 왕생하지 못했지만 이미 극락의 귀한 손님”인 것이다!
대자대비하신 나무아미타불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불혜佛惠 거사 2016.2.23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