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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단목령-점봉산-망대암산-한계령-끝청-중청-대청-희운각-공룡능선-나한봉-마등령-저항령-황철봉-미시령
*참가자 : 이재근, 최재욱, 이인식, 옥영동, 박정택, 김경수, 주영민, 윤재희(8명) *산행일시 : 8월 12일~16일(4박5일) 백두대간의 난코스 설악권을 향하다. 일정상 부산에서 설악권에 접근하기는 쉽지 않다. 방학 중 연휴를 포함하여 잡힌 이번 일정에는 8명이 참가하게 되었다. 노포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박임숙 교감의 전송을 받으며 일행은 경주-포항-망양 휴게소(점심)-양양에 이르는 7번 도로를 따라 오후 늦게 오색에 도착하였다. 산행대장은 전날 상가에 다녀오느라 일행과 함께 하지 못하고 뒤늦게 부산을 출발했음에도 정오 무렵 오색에 도착하여 숙소를 잡아두고 있었다.
부산에서 양양까지는 시외버스를, 양양-오색은 군내 시내버스를 이용하였다. 일행은 설악온천장에 머물면서 식사는 남설악식당을 이용하였다. 어제까지 설악 일대에는 비가 내렸고, 지금도 운무로 휘감아 좀체 모습을 보여주질 않는다. 도로 사정과 안락한 버스라 해도 부산에서 오색까지 이동하는데 무려 8시간이나 걸렸다. 저녁 메뉴는 오징어무침에 된장국이다. 이번 산행은 4박5일이지만 이동시간 2일을 제외하면 산행은 2박3일이 되는 셈이다. 오색초교에서 계곡을 거슬러 단목령으로 엊저녁에 삶아 둔 감자와 햇반, 식수, 간식을 짊어지고 5시 오색을 출발하여 양양방면 포장도로를 따라 걸었다. 이른 아침 조용한 도로에는 차량들이 쌩쌩 달려 공포감을 느낀다. 도로 옆 계곡에는 큰 물줄기를 이뤄 바위에 부딪히면서 웅장한 소리를 내며 흐르고, 바람은 거세어 태풍이 휘몰아치기 직전의 날씨와 흡사하다.
오색초등학교에 이르러 주변을 살펴보고 계곡을 건넜다. 물이 불어선지 건널만한 곳이 여의치 않다. 단목령으로 향하는 등산로를 찾아 10여분 지났을 즈음 집 한 채가 나타난다. 앞서던 부회장은 잠시 멈추고 살펴본다. 산행대장이 접근하여 “숭악”이라고 외친다. 개 두 마리가 짖어대는 소리는 골짜기에 울려 메아리친다. 동산교회 수양관 건물이다. “출입금지” 안내판을 뒤로하고 계곡을 따라 20여분쯤 걷다가 개울가에 자리를 잡고 아침을 먹는다. 어제 저녁 식당에서 부회장이 구한 감자는 굵고 길어 다른 사람이 가져온 감자보다 두 배는 커 보인다.
7시30분 드디어 단목령에 도착하였다. 단목령에는 장승 두 개가 버티고 서 있어 지나는 길손의 말동무가 되어준다. 이곳의 이정표에는 “→지리산, ←백두산, ↓오색초교, ↑설피밭”이라고 적혀있다. 사진 촬영을 하는데 플래시가 작동할 정도로 운무와 우거진 숲 때문에 주변은 아직도 어둡다. 30분 휴식 후 점봉산을 향한다. 야생화, 산나물이 널려진 단풍나무 지대를 지나다. 단목령-한계령 구간은 생태복원을 위한 안식년제로 출입을 금지하지만 기린면으로 내려가는 등산로는 개방되어 있었다. 점봉산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출입금지 안내판이 길을 가로막고 있다. 시원한 백두대간 마루금을 따라 울창한 숲길에는 강풍이 휘몰아쳐 나뭇잎이 금세 떨어져 나갈 듯하다. 단풍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 하늘이 잘 보이지 않는 수림지대로 야생화와 산나물이 널려있다.
9시 30분 오색 주전골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에 이른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40분을 걸으니 홍포수막터에 도착한다. 10시40분 점봉산(1,424.2m) 정상에 도착하니 세찬 바람에 몸을 가눌 수가 없다. 이렇게 바람이 거센 곳에도 들꽃은 나름대로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다.
점봉산은 한계령을 사이에 두고 설악산 대청봉과 마주보고 서 있다. 표지석이 있는 정상에서 휘둘러보는 조망은 막힘이 없다. 이곳에서 북으로 보는 귀때기청봉, 끝청, 중청, 대청봉이 자리하고 있으며 대청봉 오른쪽으로는 양양과 동해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지는 곳인데 오늘은 연이은 운무 때문에 시계가 흐려 아쉬움을 갖게 한다. 한계령을 기준으로 북쪽은 설악, 남쪽은 점봉산인 셈이다.
12담 구곡으로 불리는 주전골은, 좌우로 갖가지 모양의 바위봉우리, 원시림, 맑은 계곡물이 어울려 절경을 이루며, 큰고래골, 오색약수가 있다. 오색약수를 거쳐 들어가는 점봉산 주전골은 덜 알려진 단풍명소이다. 오색약수 건너편의 축대길을 따라 올라가 성국사를 통과하면서 펼쳐지는 협곡의 단풍은 계류와 멋들어진 조화를 이룬다고 한다. 점봉산 정상 표지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다음 경유지인 망대암산으로 향한다. 11시20분 망대암산(1,236m)에 도착한다. 망대암산은 지금까지 지나온 구간과 달리 모서리가 부드러운 네모난 바위들이 생일상의 백설기처럼 포개져 있다. 머리칼을 헤집는 바람을 뚫고 망대암산 정상에 서자 북쪽 대청봉에서 대승령으로 이어지는 서북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고갯마루를 지나 등산로 왼쪽 우회로의 큰 바위 밑에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햇반을 데우고 3분 백세카레를 데워 점심을 해결한다. 오늘따라 풋고추와 마늘 맛이 일품이다.
12시30분 자리를 박차고 한계령으로 향한다. 망대암산에서 한계령 방향으로 펼쳐지는 만물상은 하나의 병풍 같다. 뾰족하면서도 웅장한 바위 병풍은 보는 이의 넋을 송두리째 가져가고 만다. 만물상 너머 한계령으로 오르는 도로는 지렁이가 지나가는 모습 같다. 1시간정도 걸었을 무렵 2명의 등산객과 조우하였다. 청주에서 온 두 사람은 구룡령에서 출발하여 3박4일간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산행기간 중 비가 와서 하루에 5시간 가량 산행을 진행했다고 한다. 3박4일이면 설악을 종주하고도 남는 시간인데, 암릉 구간에서 길을 못 찾아 쳇바퀴 돌 듯 이 근처만 맴돌았던 것이다. 힘든 암릉 구간을 기어오르고 내리기를 여러 차례 그들이 찾지 못한 길을 찾아내어 하산을 하도록 도와주었더니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해댄다. 물이 흐르는 절개지를 오르고 산죽밭을 헤치며 한계령으로
14시30분 한계령에서 현리로 이어지는 도로의 분기점에 이른다. 필레약수터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한계령까지의 백두대간 마루금은 도로로 인하여 잘려지고 있고 철망으로 굳게 닫혀 있다. 일행은 도로를 따라 걸으면서 한계령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찾으려했지만 허사이다. 4명은 휴게소로 향하고, 종주 희망자 4명은 다시 반대쪽인 현리 방향 도로를 따라 10여분을 걸으니 조그마한 통로가 보이고 절벽 위 소나무에 매달린 대간 안내 깃이 보인다. 절개지 바위는 여물지 않은 돌로 조금만 힘을 줘도 여지없이 흘러내린다. 명예회장은 손에 들고 있던 스틱을 위로 던져 올리려다 그만 저 아래로 떨어뜨리고 만다. 내려가서 주워오려니 다칠 위험이 높다. 아깝지만 포기를 하고 절개지를 올라서서 길도 없는 산죽밭을 헤치며 대간 마루금을 찾아본다.
예전의 대간길을 겨우 찾아냈지만 기능을 상실하고 지금은 배수로 역할만 하고 있다. 능선을 따라 봉우리 정상(1,003.6m)에 이르니 공터가 보이고 산행 깃발을 따라 걷는데 방향이 다르다. 알고 보니 가리봉으로 가는 하산길이다. 서둘러 돌아서서 정상으로 되돌아 길을 더듬으니 휴게소로 향하는 희미한 길이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 일정한 간격으로 표시를 해 둔 종이컵을 따라 휴게소에 도착한 시각은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휴게소에 들러 시원한 맥주를 마시니 갈증이 가신다. 일행과 함께 홍천발 시외버스를 타고 오색으로 향했다. 구불구불 내려오는 도로를 따라 좌우로 펼쳐진 회색 암벽은 푸른 숲과 어우러져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식사를 하기 전에 숙소 아주머니께 하루 종일 땀에 절인 옷가지를 세탁해달라고 부탁하였더니 흔쾌히 응해준다. 몸을 씻고 남설악 식당에서 산천어 매운탕을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다. 운무에 휩싸인 한계령은 남설악, 내설악의 경계를 이루고
오늘은 희운각 대피소까지만 가는 일정이라서 아침에 다소간의 여유가 있다. 엊저녁에 부탁한 세탁물을 찾아와서 입으니 느낌이 뽀송뽀송하다. 준비물을 챙기고 숙소를 나서 식당으로 향한다. 아침은 해장국으로 준비를 해 두었다. 식사 후 주인에게 된장과 풋고추를 얻어 배낭에 담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저 멀리 버스가 보이자 무거운 배낭을 걸친 채 달려간다.
7시30분 버스를 타고 한계령에 내린 시각은 7시50분이다. 연휴라서 많은 등산객들이 설악을 찾느라 발걸음이 분주하다. 양양군과 인제군의 경계인 해발 950m의 한계령은 내설악과 남설악의 경계에 있어 두 지방을 잇는 산업도로로서, 그리고 관광도로로서 길손들이 이용하는 곳이다. 가수 양희은이 불러 더욱 유명해진 한계령이라서 노랫말을 다시 음미해 본다. 저 산은 네게 오지마라 오지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 산중 저 산은 네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산 저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한계령 휴게소 건물 입구에는 지난 7월에 실종된 등산객의 사진이 걸려 있어 보는 이의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바로 동아대 장은기 교수로 만리장성을 배경으로 한 단아한 차림의 모습에 숙연해지기만 한다. 마지막 통신 위치는 봉정암이며, 실종 예측 구간을 여러 개 적어두어 신고를 기다리고 있다.
용아장상의 위용을 곁눈질하며 중청까지 거침없이 오르다.
준비를 끝낸 일행은 8시 정각,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여 이내 공원매표소를 통과한다. 1시간 동안 쉬지 않고 철계단을 오르고 미끄러운 마사토를 밟으며 고도를 높이니 1307봉이다. 무거운 배낭은 어깨를 짓누르고 땀은 비 오듯 쏟아진다. 서로를 격려하면서 좌우에 펼쳐지는 고산준령이 빚어 놓은 형상에 피로를 잊고 감탄해 한다. 30여분 후 좌측으로 귀때기청봉으로 향하는 길이 보인다. 일행은 직진하면서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혀본다. 쉬고 걷기를 반복하면서 일행은 12시15분 끝청(1,604m)에 도착한다. 이정표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뒤편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웅장한 용아장성을 사진에 담는다.
13시 정각 왼편으로 중청봉을 감싸고돌아 내려서니 그늘도 없는 중청대피소에는 뙤약볕 아래 많은 사람들이 점심을 먹느라고 분주하다. 저 멀리 대청봉까지 이어지는 길에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오르내리고 있었다. 대피소에서 생수 3병을 사들고 중청 갈림길의 나무 밑에 점심 자리를 잡았다. 시금치국에 점심을 먹으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고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 행복감에 젖는다.
어렵사리 찾아낸 대청봉-희운각 백두대간 마루금을 따라
13시40분 다시 배낭을 메고 설악의 최고봉 대청봉으로 향한다. 대청봉으로 가는 길 오른편에는 눈잣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눈잣나무는 상록침엽 관목으로 사방으로 넓게 퍼지며 어린 가지에 적갈색 연모가 밀생한다. 평지에 심으면 곧추서고 커진다. 잣나무에 비해 고산성 저목(低木)이고 가지가 길다. 설악산, 평남북, 함남북, 일본, 소련 동부, 캄차카에 분포하며 주로 해발 900~2,400m의 고산 정상에 자란다고 한다. 고산의 날씨가 항상 그러하듯, 남설악 방면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을 가르면서 돌길을 따라 20여분 오르니 대청봉 정상(1,707.9m)이 우뚝 서 있다. 한 줄로 서서 질서를 유지하며 기념촬영을 하였다. 촬영 후 백두대간 마루금을 찾기 위해 정상 표지석 너머 깃발을 따라 숲 속으로 기어들어 갔으나 이게 웬일인가? 대간을 종주하는 사람들이 지나간 길이라고 믿기 어려운 길임을 알고 이내 돌아 나온다. 하는 수 없이 대간길을 포기하고 중청, 소청을 거쳐 희운각으로 향했다. 대청 고갯길을 다 내려설 무렵 “숭악”이라는 한마디 외침이 귓전에 스친다. 뒤를 돌아보니 대간길을 찾았다며 다시 올라오라는 산행대장의 명령이다. 다시 대청봉에 올라서서 이번에는 정상 표지석 바로 뒤쪽에 걸린 리본을 따라 내려가는데 도저히 사람이 다니는 길은 아닌 듯하다. 동물도 지나기 힘든 덩굴을 헤쳐 내려가다 다시 철수를 한다. 이 와중에 부회장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시계를 나뭇가지에 걸려 분실하고, 반바지 차림의 일행은 천연 고아텍스가 찢어지는(?) 아픔을 맛본다. 다시 중청으로 내려오는 길에 “출입금지”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에는 죽음의 계곡으로 향하는 등산로이므로 출입을 금한다고 되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관리사무소에서 엉터리 안내를 하고, 길도 없는 곳에 리본을 옮겨 놓아 백두대간 종주자들이 길을 찾지 못하게 한 것 같았다. 산행대장은 이 길이 틀림없다고 하며 동행할 것을 강요한다. 하지만 이미 부회장은 저만치 내려갔기에 하는 수 없이 산행대장 혼자만 험로를 따라 내려가고, 다른 일행은 소청을 거쳐 경사로가 심한 능선길을 따라 희운각으로 향했다. 이렇게 중청과 대청을 오고가느라 1시간 이상을 소모하고야 말았다. 소청 능선을 따라 조금 내려오다 산행대장에게 무전을 하여 위치를 알아보니 벌써 희운각에 도착했다는 전갈이다. 다시 오른 대청봉-희운각 마루금으로 대간은 이어지고
일행은 조심스레 경사로를 따라 희운각에 도착하니 산행대장은 특공대를 조직하여 비무장으로 식수만 들고 다시 대청봉을 오르라는 명령이다. 지금까지 모든 백두대간을 이어왔으므로 반드시 갔다 와야 한다는 것이다. 오후 5시, 4인의 특공대는 “출입금지” 팻말 뒤로 숨어들어 희운각-대청봉 능선을 거슬러 올라간다. 능선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하여 모든 나무는 한쪽으로만 자라고 있었다. 서산에 지는 해는 죽음의 계곡과 화채봉을 비추어 바위를 울긋불긋한 색감으로 형형색색 수를 놓고 있었다.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TV 전선이 놓여 있었다. 1시간10여 분만에 대청봉에 이르는 지점에 도착하였다. 혹시나 눈에 띨까 돌아서서 내리막길을 재촉하였다. 올라갈 때에는 가파른 암릉을 정신없이 잘도 올라갔지만 내려올 때엔 달랐다. 숲 속에 가려진 희운각 대피소가 태양열 전지판을 드러내 보이면서 오늘의 산행도 마감이 되는 듯하다.
오후 7시, 일행의 환영을 받으며 희운각 대피소에 도착하였다. 남아있던 일행은 허기에 가득 찬 특공대를 위해 맛있는 저녁을 준비해 두었다. 산중에서 값비싼 맥주를 사 마시고 소주 몇 잔에 하루의 피로를 날려 보냈다. 주변에는 숙소를 잡지 못하여 노숙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다행히도 우리는 산행대장의 대청봉-희운각 능선길을 택한 결단의 도움으로 산장에 남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식사를 하기 전에 대피소 아래 계곡으로 내려가 얼음처럼 찬 설악의 물에 땀을 씻을 수 있는 행운도 얻었다.
일행은 하루에 대청봉을 두 번이나 오른 셈이다. 비좁은 산장은 등산객들로 넘쳐나고 저녁 늦도록 산중에서 대화를 나누느라고 왁자지껄한 가운데 밤하늘의 반달은 어두운 설악을 환히 비추며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9시, 숙소의 불빛은 꺼지고 곤한 등산객들의 코고는 소리만 적막을 깨고 있다. 로프에 매달려 바위틈을 기어올라 천화대에 이르다. 산장은 언제나 그러하듯 피곤한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밤새도록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도 어김없이 새 날은 밝아왔다. 햇반 전복죽을 데워 아침을 때우고 6시 정각 이번 산행의 하이라이트인 공룡능선을 향해 출발한다. 비선대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왼편으로 난 숲길을 따라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일행은 공룡능선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다가선다. 40분 정도 지나서 고개마루에 올라서면서 본격적인 좌우 낭떠러지가 이어진다. 왼편에는 가야동 계곡이, 오른편에는 천불동 계곡이 보인다. 운무가 짙게 피어오르다가 이내 사라지면서 능선의 암봉들은 연신 숨바꼭질을 한다. 신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곧 신선임을 느끼게 한다.
천불동 방향으로 펼쳐지는 만물상이며 갖가지 암벽들은 운무에 묻혔다 진면목을 드러내며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는가 싶더니 새색시처럼 수줍은 듯 다시 얼굴을 감춘다. 여러 번 로프를 잡고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니 천화대에 이른다. 7시30분이다. 희운각을 출발한 지 1시간30분만이다. 예정보다 다소 빠른 속도이다. 천화대 암벽에는 암벽산행을 하다가 고인이 된 강남대 산악인을 추모하는 기록이 적혀있다. 천화대 아래로 급전직하하는 경사로가 100여m는 넘게 보인다. 다행히 날씨가 맑아 바위를 잡고 기어오르거나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는데 별 어려움은 없어 보이지만 주의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험로임에는 틀림없다. 비라도 오거나 야간 산행을 해서는 안 되는 곳이라고 여겨진다. 천화대 아래 샘터에서 수통에 차가운 물을 가득 채운다. 내려온 만큼 다시 오르고 또다시 내려오기를 반복한다. 설악 최고의 비경을 간직한 공룡능선에 안기다.
8시20분 공룡능선 최고봉인 1275봉에 이른다. 운무에 숨어 지내던 1275봉이 이제야 늘씬하고도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1275봉의 왼편으로 감싸고돌아 내려선다. 공룡능선은 고도를 100~200m 정도는 올렸다가 내리기를 밥 먹듯 한다. 저 멀리 말잔등처럼 보이는 나한봉이 버티고 서 있고 그 뒤로 보이는 골이 마등령이다. 9시50분 나한봉에 오르고 다시 돌아서서 짧은 돌 너덜지대를 지나 10시10분 마등령(1,240m)에 도착한다. →비선대, ←희운각, ↓오세암, 백담사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우리를 반긴다. 이곳 샘터에서 미역국, 라면, 햇반을 요리하여 점심을 먹고 땀을 씻으려고 등목을 하였다. 물이 워낙 차가워 등에 물을 세 차례 이상 적실 수가 없다. 점심을 먹고 나서 11시40분 마등령을 뒤로 한 채 설악 구간 중에 제일 따분한 길로 향한다. 10여분 걸으니 비선대로 가는 길과 황철봉으로 가는 갈림길에 도착한다. 이곳부터 “출입금지” 구간이다. 안내판 뒤로 살짝 돌아들어 1326봉에 오른다. 일행의 키 높이와 같은 나무가 가득하고, 바람도 없어 땀이 비 오듯 한다. 오전만 해도 바람이 불어 땀을 식혀가며 걷는 산행의 묘미가 있었으나 오후 일정은 정말로 짜증이 난다. 1326봉에서는 길을 주의해야 한다. 정상에서 왼쪽으로 90도 회전하면서 산 아래로 펼쳐지는 너덜지대를 통과해야 한다.
30여분 정도 걸어갔을 즈음 전면에 보이는 큰 암봉이 가로막는다. 암봉 옆 우회로를 따라 너덜지대를 내려가고 다시 올라 마지막 절벽을 기어오르니 발 아래쪽에 저항령이 보이고 그 뒤로 황철봉이 보인다. 저 멀리 오른쪽에는 울산바위가 위용을 뽐낸다. 그 아래로 저항령 계곡 끝자락에 자리한 설악동이 희미하게 보인다. 저항령을 지나 너덜지대가 펼쳐진 황철봉을 넘어가다.
돌너덜 위로 조심스레 한 걸음 한 걸음씩 옮기느라 속도가 더디어진다. 14시40분 저항령에 이른다. 휴식을 취하면서 간식으로 체력을 보충한다. 뒤따르는 등산객이 저항령에 물이 있는가를 찾는다. 박정택 회원이 가지고 있던 물을 건네준다. 그저께도 산 속을 헤매던 사람을 구해준 숭악이 아니던가. 오늘도 갈증에 애타던 등산객에게 물을 나누어주는 미덕을 발휘한 것이다. 저항령을 출발한 지 50여 분만에 암봉 끝에 오른다.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땀을 식혀본다. 땀이 식으면서 이내 한기를 느낀다.
다시 배낭을 둘러매고 갈 길을 서두른다. 황철봉 구간은 도상시간과 실제 산행시간이 맞지 않는 구간이다. 16시40분 이윽고 황철봉(1,381m)에 이른다. 1318봉을 지나면서 가장 따분하고 조심해야 할 너덜지대를 만난다. 지금까지 지나온 어느 너덜보다도 규모가 크고 위험한 구간이다. 돌의 표면은 시멘트 보다 더 거칠고, 너덜과 너덜 사이는 깊고 간격도 불규칙하며 진행 방향도 찾기가 어렵다. 황철봉 너덜지대는 날씨가 좋을 때 종주하는 것이 좋다. 안개나 눈, 비가 올 때는 삼가는 것이 좋으며 안개가 끼여 시야가 확보 안 되면 조난당하기가 쉽다. 특히 이 구간은 야간산행을 금해야 할 것이다. 단지 큰 바위 위에 쌓아둔 작은 돌탑을 따라 걷는다면 조금은 쉽게 방향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이런 너덜지대가 4군데 이상이다. 17시20분이 되어서야 너덜지대를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너덜을 지나면서 대원 두 사람이 발목을 약간 삐었다. 너덜의 높낮이가 크고 배낭의 무게로 인하여 발목에 하중이 크게 작용한 때문이다. 부상을 당한 대원들은 걷는데 불편해 하면서도 다른 대원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레 걷는다. 1092봉을 지나는 삼거리 오른쪽으로 울산바위로 가는 등산로는 “추락주의”라는 경고와 함께 출입을 금지하는 팻말이 보인다.
일행은 저 멀리 보이는 상봉과 미시령 휴게소에서 들려오는 음악을 들으며 하산을 재촉한다. 18시30분 미시령 절벽 위 철망을 끼고 돌아 입산통제소 옆으로 하산을 완료한다. 드디어 3일간 실제거리 61km를 34시간30분 동안 걸었다. 숭악 대원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원해주신 회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대포항에서 설악권 백두대간 종주를 자축하다. 미시령 휴게소에서 시원한 한 그릇의 팥빙수로 갈증을 해소하고 택시를 불러 속초 시내 24시 사우나로 향했다. 비닐봉지를 하나씩 얻어 땀에 젖어 냄새나는 옷가지를 쑤셔 넣은 다음 몸을 씻고 나니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발목을 삔 대원은 찬물에 찜질을 하고 나서야 통증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숙소를 정하고 대포항 청해횟집에서 생선회와 함께 자축연을 가졌다. 저녁은 부회장이 부담하였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맥주 한 잔을 곁들였다. 다음날 아침에는 청진동 해장국으로 해장을 한 뒤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발목을 삔 대원은 한의원에 다녀왔다. 오전 10시50분 숙소를 나서 속초공항 인근의 실로암 메밀국수 집에서 택시를 대기시킨 채 동김치 메밀국수로 점심을 해결하였다. 이곳은 각계의 유명인사 사진이 걸려있는 이름난 음식점이었다. 식사 후 대기 중인 택시를 타고 양양공항에 도착하여 탑승수속을 거쳐 12시40분발 항공편으로 14시 부산에 도착했다. 이로써 4박5일간의 기나긴(?) 설악권 백두대간을 마친다. 숭악사관 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