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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은 모두 몸 건강히 잘 계신지.
중국에 계신 정소진 선생님이 내가 올리는 답사후기 기다리신다고 댓글을 달아놓으셨다.
어머, 나도 써 봐? 하다가, 위대한 김해규샘, 알파걸 정려정샘, 숭고한 헌신 홍석경샘들의 글들을 읽으면서 어줍잖은 답사기 쓸 엄두가 안났다.
그래서 기존의 양식을 파괴하고 답사 기간 동안 나만이 천착했던 한 가지 주제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를 풀어, 일명 틈새 답사 후기를 쓸까 한다.
인간은 왜 싸야만 하는 존재인가?
그렇다. 화장실이다.
중국 방문은 세 번째인데도 중국의 화장실은 늘 나를 괴롭혔다.
첫 번째 방문은 소주 대학에 교환교수로 가 있는 남편을 방문하는 것이었기에 공중화장실에 갔다 말없이 돌아서서는 호텔로 돌아갈 때까지 그냥 참았다. 귀가 시간은 어차피 내가 정하면 되니까.
두 번째 방문은 교직원 연수였는데 북경등의 큰 도시를 여행했으므로 오히려 나았다.
세 번째 방문. 신흥무관학교 답사. 동북지역. 문제가 크다. 이동거리도 제일 길다.
완전중학교 측은 여선생님들을 위해 특별히 여학생 기숙사 화장실을 개방해 주셨다. 세상에, 친절도 하셔라. 각오하고 있었는데. 지금도 감사드린다.
잊지 못할 추가가 마을. 또 다른 의미로도 잊지 못할 동네다.
버스가 우리들을 내려 준 곳은 작은 구멍가게 앞이었는데 벌써 멀어지는 대원들의 뒤꽁무니를 따라가지도 못하고 화장실을 급히 찾았다. 가이드에게 도움을 청하니 구멍가게 뒤편을 가리킨다.
옆에서는 개가 짖고 사방이 트였는데 세상에, 같은 여성이면서 가이드도 무심하시지. 짐짓 원망스런 눈초리를 보내도 모른 체하던 가이드가, 반드시 밀폐된 화장실을 가고야 말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자 이번에는 일반가정을 알아봐 주었다.
큰 길가에 있는, 그 동네에서 비교적 부유해 보이던 집의 옥외 변소를 이용할 수 있었던 행복...( 뒷간은 역시 인간의 근심과 걱정이 해소되는 해우소임이 맞다)은 잠시이고 뒤쫓아간 기와공장 앞 뜰에선 신흥강습소에 대한 강의가 한참 벌어지는 중, 냄새가 다 떨어져 나갈 때까지 한참을 일행과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길림으로 달리던 버스,
까칠하신 빨간 옷 기사님이 띵깡을 부려 노래도 더 못 부르고 다들 억지로 잠을 청하던 밤이다.
차가 멈추더니 길에서 볼일을 보란다. 그냥 앉아 있는데 들르는 휴게소 마다 화장실을 들락거리던 나를 눈여겨 보셨는지 이 근수 교수님이 주무시는 선생님들 다 깨우게 큰 소리로 부르신다.
“정영미 선생! 2호차 버스 뒤에 여선생님 화장실 마련됐어요. 시원하게 보고 와요.”
아, 민망해라. 지성과 교양이 철 철 흐르는 교수님은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 자약하신 태도로 한 방을 먹이셨다. ‘두고 봐요 교수님.’
그래서 이 지면을 빌어 복수한다. 교수님! 간식으로 오이를 건네 받으시고는 입맛을 다시며 “오입해야 되는데...”라는 말씀으로 좌중을 쓰러뜨리신 유명한 일화, 사모님은 알고 계신가요?
버스뒤에 화장실이..? 뛰어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한 여선생님이 앉으면 그 둘레를 빙 둘러싸 가려주는 식이다. 손에 손을 맞 잡아 만든 원 안에 차례대로 한 명씩 들어가고, 내 차례가 되었다.
마침 반대편 차선에 길림성의 도로에서는 귀하기만 한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천천히 우리를 향해 오고 있었다. 근데, 수상쩍다. 너무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다. 마치 우리들의 상황을 다 알고, 구경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게다가, 오줌 줄기는 도로 옆 풀숲으로 흐르지를 않고, 중앙선을 침범하여 반대 차선쪽으로 힘차게 뻗어나가는 중이다. 더했다가는 웅덩이를 만들 참이다.
무리들 중 나와 맨 마지막 주자는 결국 용변을 포기했다.
이 따위 경험이 무슨 에피소드씩이나 되느냐고?
본론은 이제부터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
줄서기 전에 한 차례 다녀온 바 있건만 성마르고 예민한 나는 대기 시간이 길어지자 또 간절해졌다. 그래서 지프차로 올라가는 동안 힘들었던 이유가 남달랐던 것이다. 괜찮아. 누렇게 뜬 얼굴은 지프차에서 시달려서 그런 걸로 다들 알 거야.
마침내 도착한 천문봉.
태호림 가이드가 가리켰던 손가락 방향에는 아무리 찾아도 화장실이 안 보였다. 휴게 건물 구석 구석을 뒤져 보아도 허탕이었다. 광복회라 쓰인 조끼를 입은 한국인 일행을 발견하곤 반가워 달려갔는데 그 중의 여자일행도 화장실은 모른단다.
이게 뭐냐. 일행은 이미 올라가 보이지도 않으며, 백두산까지 와서 천지를 볼 생각은 접어두고 나 혼자 이 드넓은 곳에서 화장실 찾아 이리 저리 헤매는 꼴이라니...
천하절경도 소용없다. 백두산도 변후경이로세.
쓴 웃음을 지으며 일단 올라갔다. 솔직히 처음 접하는 천지의 장경에도 불구하고 내 신경은 내내 다른 곳을 찾고 있었다. 바위산 틈으로 천지의 멋진 자태가 한 자락씩 나타날 때마다 셔터를 눌렀지만, 그 아름다운 풍경이 죄다 흔들려 지금 보니 한 장도 건질 만한 게 없다.
일행을 놓치는 바람에 셀카밖에는 다른 사진을 찍을 도리가 없던 차, 중국 청년 사진사가 꼬신다. 한국돈 5000원. 사실 속으로 울며 찍어 두었던게 지금은 외려 정려정 선생이 부러워하는 처지가 됐다.
내려오던 중 멀리 한줄기의 사람무리가 길게 늘어선 줄이 보였다. 꽤 오른 쪽으로 치우친 곳에
화 ․ 장 ․ 실이 있었던 것이다!
내 눈에 비친 중국은 가끔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있다. 늘어선 사람들 옆으로 번듯한 화장실 건물이 지어져 있건만 그 앞을 지키고 앉아 있는 여성은 나에게 턱으로 옆을 가리킨다.
임시건물인 듯 나무로 된 커다란 부스 앞에 중국인으로 보이는 여성들이 줄을 꽤 길게 서 있다. 잽싸게 줄을 서야 했다. 중국인들의 줄은 옆으로 무한정 늘어나는 요술을 부리기 때문에, 약간만 한눈을 팔아도 뒤로 밀려나고 만다. 내 앞으로 얌체처럼 끼어들던 일련의 무리들과 신경전을 벌이면서 악착같이 자리를 수호했다.
반드시 싸야 돼. 이따가 천지를 내려가려면...
이윽고 내 앞이 줄어들면서 화장실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뿔싸. 출입구는 문이 달린게 아니라 천이 달려 있었다. 공사장에서 쓰이는 두꺼워 보이는 천이었지만, 두껍고, 불투명하면 무엇하리? 수시로 휙! 휙! 들리면서 안의 모습이 다 보였다. 천막을 걷고 지면보다 약간 높게 지어진 화장실에 올라서면, 천정도 칸 막이도 없이 구멍이 3개가 뚫려 있고, 그 구멍을 차지한 3명의 여성들 앞으로 약간의 공간이 있어 거기에 3명의 또 다른 여성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일 보는 여성들을 내려다 보는 구조여서, 천막 안에는 총 6명의 여성들이 들어갈 수 있었다. 천막은 밖으로 한 명씩 나올 때마다 훌러덩! 뒤집히는 데다가, 그냥 기다리면 어련히 순서가 올 것이건만 중국여성들은 내 차례는 멀었는가 하고 꼭 한번씩 열어 제쳐 본다. 문제는 그때마다 볼일 보는 여성들의 모습이 순간 순간 보인다는 점이다.
어쩐다?
참다 못한 중국여인 둘이 줄 밖으로 나가며 누가 보던지 말던지 그냥 아랫도리를 내린다.
다른 선택은 없다.
저 천막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이다.
마침내 눈 앞의 천막이 열렸다. 재빨리 각도를 계산해 그나마 밖에서 가장 덜 보이는 벽쪽의 구멍을 후다닥 차지했다. 그리곤 내 앞에 대기중인 붉은 티셔츠의 중국여인을 향해 알아 듣던지 말던지 다짜고짜 외쳤다.
“잡아 주세요! 잡아 주세요!”
신기하게도 한국말을 알아 들었다. 그 여인은 내 앞쪽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던 천막을 손으로 꽉 잡아 눌러 주었다. 심장도, 손도 벌벌 떨리는 나에 비해 중국여인들은 나보다 볼일 보는 속도가 빨랐다. 이번에는 나가려는 그녀들을 향해 알아듣던지 말던지 소리를 꽥꽥 질러 댔다.
“아직 열지 마세요! 아직 열지 마라니깐요~!!!”
미친 사람 보듯 하던 그녀들의 눈동자.
외국에서 용변 보며 절규하는 경험은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다. 대신, 반드시 썬글라스는 쓰고 있어야 한다. 나중에 썬글라스 끼고 화장실에서 고래 고래 고함 지르던 이상한 한국 여자에 대해 흉을 보든 말든 아무래도 좋았고 주춤거리며 나를 쏘아보던 그녀들이 고맙기까지 하다. 아무튼 그녀들은 자연스런 생리현상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는 자신들의 문화에 녹아들지 못하고 절박한 순간에도 개인적 프라이버시를 놓아 버리지 못하는 이방인을 최대한 존중해 준 셈이다.
미친 여자는 천막 밖을 나서자 순식간에 정상인으로 돌아왔다.
화장실에서의 그 사투를 눈치 챈 일행은 아무도 없었다.
학교 가서, 아이들에게 비상시에 먹으면 순식간에 오줌보가 건조되는 알약 한 번 발명해 보라고 해야지.
그렇게나마 볼일을 볼 수 있었다는 건 참 다행이었다.
경사 60~70도의 벼랑길을 내려가며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 지옥같은 트레킹 중 엉덩방아를 찧은 게 몇 번이었던가?
지옥을 내려가니 천국이 기다리고 있었다. 천국이 지옥보다 낮은 곳에 있다는 깨달음만도 이번 답사에서 얻은 소득이다.
그런데, 수확은 그 뿐 만이 아니었다.
일일이 말을 나눠 보지는 않았어도 전국 여기저기서 오신 선생님들에게서는 역사와 시대에 대한 사명감이, 인간에 대한 사랑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내가 그들의 옆에 잠깐 동행해서 그 기를 전달받을 수 있었던 것만도 영광이다.
그리고 살아오는 동안 얼마나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해 왔던가. 우리 안의 이명박이라고 했던가. 아무리 번지르르한 말을 한다 해도 결국 욕망에 지배되어 왔던 삶.
그 지리한 싸움을 간단하게 끝내는 법을 추가가에서, 합니하에서, 고산자에서, 천지에서,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으신 선열들의 영혼이 가르쳐 주셨다. 재산, 생명, 그리고 자식들의 미래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으신 그들은 이미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신 승리자로 간도에 건너가신 것이다.
우아한 이미지를 한방에 날려 버릴 이 글을 쓰고 앉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답사 내내 골칫거리라 여겼던 배설이 엉뚱하게도 내 안의 욕망을 다스리는 법, 아니, 욕망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는 비결을 터득하게 되는 열쇠가 되어줄 줄은 정말로 몰랐었기 때문에, 경이로워서이다.
내 안에 뭔가를 잔뜩 저장해 두고 있으면 긴장되고 불안하다. 비워 버리면 너무나도 후련하고 시원했다. 심지어 행복하기까지 했다.
답사 기간 동안 ‘행복하다’는 느낌은 여러 번, 여러 경로로 나를 찾아왔다. 옥수수 이파리에 살결을 베어도, 광개토왕비를 올려다 보던 순간 만큼 행복했다. 그리고 그것이 행복임을 바로 인지했다.
나름 책 읽고, 공부하며 산다고 자부했어도 여기 모인 선생님들에 비하면 빈 깡통에 불과했다. 그래도 좋았다. 이제부터 다시 공부하면 되니까.
적지 않은 내 나이에 감사했다. 젊은 날의 결심이라면 휴지 조각이 되기 쉬우니까.
여지껏 비틀 비틀 걸어온 길이 더 이상 외롭지는 않을 것 같다.
인생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정말이지.
그래서 불행한가? 빨간머리 앤의 대사를 들려드리는 것으로 마치는 인사를 대신 한다.
“인생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니, 얼마나 멋진가요!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니 말예요!”
추신. 여선생님들, 죄송합니다. 남선생님들의 상상력이 제발 빈곤하시기를....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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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선생님! 버스뒤 마지막 주자입니당ㅋㅋ 지금 지하철에서 읽으며 혼자 빵빵 웃었어요~~ 인간의 근원을 파고드는 글 재미있게 읽었어용~ 또 글의 말미에 와서는 결연해지네요
정려정 샘이랑 유독 인연 많네~ 샘 답사기도 잘 읽었어요.
심성 곱고 올곧은 려정 샘이 답사기 글에서도, 댓글에서도 그대로 보이네요~
ㅋㅋㅎㅎ, 읽어내려가면서 상상할 수도 없고.. 화장실 사투기, 배꼽 잡고 잼있게 읽었습니다. 답사기 중 최곱니다.^^
모듬것이 감동입니다., 이 감동 독도를 지키고 통일의 길이 열릴 수 있느 길이라면 우리 세상이 백두산 천지의 맑은 물만 볼 수 있으리요.
답사기 중 최고라는 홍석경 샘의 의견에 나도 한 표! 증말 재밋네요. 덕분에 빈곤한 상상력 업 되었습니다. ㅎ ㅎ ㅎ
정샘 전주에서의 번팅 정말 감사했어요.
홍샘 잘 들어가셨어요? 보신탕은 전혀 못하시던데 껄떡대는 저희들 옆에 자리를 지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저는 정샘하고 대리운전 기다리다가 방학진 국장 전화받고 성대역 앞으로 2차하러 갔습니다. 2차하면서 얼큰해진 정신에 시계를 잘못봐서 오랫만에 막차도 놓치고, 병점에서 택시타고 귀가하였습니다. 그래도 참 반가웠고 기분 짱 좋았습니다.
보신탕, 맛을 보는 정도입니다. 어렷을 때 집에서 키우던 개를 무척 좋아해서 그런지 멍멍이탕만 보면 옛 생각이 난다는... ^^ 방학진 사무국장님 오실 수 있을래나 했는데 그래도 완전히 헤어지기 전에 연락이 와서 다행이었네요.
이 싸람들이...김샘, 홍샘, 여기 번팅 후기 페이지 아니걸랑요? 가뜩이나 kbs 앞 함께 해드리지 못해 속상한 판인데, 수도권 안사는 사람 약올리시기에요?^^
약, 아니고 사실인대요?????
우째든 선생님 글 덕분에 상상력 최고입니다.
뭐, 저도 지적 자극을 얻는 등 선생님 덕을 많이 봤으니 작은 도움 하나는 드려야죠~^^
정선생님의 만주 투쟁기 잘 보았네요. 너무나 리얼해서....
상상, 리얼....흑, 이번 주만 게시하고 글 내릴래요...ㅠ
너무 재미있는 글에 혼자 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경희민동 회보에 실어도 될까요
경희대 민주동문회보입니까? 여선생화장실 사투기 따위가 실려도 될지?
부끄럽습니다.
상상력이 풀풀 날리게 하시고는... 선생님의 글 솜씨 참 감칠맛 나는게... 참 좋습니다.
뒤늦게 가입해서 이 글 읽고 킬킬 웃었습니다. 저도 중국 여행 전에 최고 걱정거리는 화장실이고, 화장실 이야기는 저도 선생님 못지 않은 어드벤처가 있는지라... 개인적으로 최고의 화장실은 한여름 옥수수밭이었고, 노상방뇨 잡으러 공안 떴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던 선생님들 생각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