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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명론가 협회 3월 합평회
날짜: 3월 20일
참석자: 안숭범, 정재형, 박태식, 이수향, 송아름, 민병선, 윤성은, 성진수
<화장>
성진수 : 3월 20일 영화평론가협회 합평회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먼저 영화 <화장>을 주제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안숭범 평론가께서 먼저 하실까요?
안숭범 : 전 여러 가지 말할 게 있지만 전체적인 느낌만 먼저 말씀드리면, 임권택 감독님이 80년대 이전까지 50~60편의 영화를 만드는 동안, 자신이 만든 영화에 대해서 본인이 거의 쓰레기라고 생각을 하시잖아요. 스스로가. 그 이후, 80년대 이후에 본인이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어떤 과정을 거쳤는가를 보면, 좋은 문학작품을 선택해서 문예영화를 찍으면서 자기 작품세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던 걸로 판단됩니다. 그 중 하나의 예가 <안개마을>인데요. 그때에는 이문열씨가 세간에 그렇게 알려지지 않은 신인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문열의 단편을 문예지에서 읽고 나서 영감을 받고, 그것을 곧바로 영화화 했다는 거죠. 저는 그것에 대해 어떤 느낌을 받았냐면, 비평집단에 의해 충분한 평가를 안 받았어도 스스로 좋은 작품을 알아볼 수 있는 힘이 임권택 감독에게 있었구나 하는 거죠. 그걸 저는 좀 느꼈었거든요. 사실, <달빛 길어 올리기>라는 전작이 평단의 지지 여부나 세간의 관심에서 좀 다운 됐었던 영화였잖아요. 그런데 이미 잘 알려진 작가이긴 하지만, 김훈의 좋은 소설을 영화화해서, 그러니까 문예영화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일어서려고 한 측면이 있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 건 , 김훈과 임권택, 이 두 분이 일정한 공통점을 가진다는 거예요. <화장> 원작을 안 읽어보긴 했지만, 김훈의 원래 기존 소설들을 보면 진짜 문체가 좋아요. 문체가 화려한건 아닌데 그 문체가 그 소설이 갖고 있는 내용적 깊이보다 더 있어보이게 하는 그런 힘이 있거든요. 그런데 임권택 감독님의 절제된 편집 형식도, 그런 유사한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바꿔 말하면, 임권택 감독님이 영화적으로 영상을 써가는 방식과 김훈이 소설의 문체로 글을 써가는 방식이 닮아있는 부분이 있다는 거죠. 그래서 굉장히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작품 내적인건 조금 후에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이수향 : 저도 이 작품을 시사회에서 봤는데요. 비슷한 문제의식인 것 같아요. 문학 텍스트를 영화화 한다는 게 가장 문제가 되는 지점인 것 같고요. 그런 면에 있어서 앞에서 얘기하셨지만 김훈만의 문체가 있어요. 굉장히 단문체에 건조한데, 뭐랄까, 버릴 문장이 하나도 없는. 굉장히 여러 번 퇴고해서 축약한 느낌이 드는 남성적인 문체에요. 그런 문체로 굉장히 진지하게 사유의 통찰, 심연 이런 걸 드러냈을 때 느껴지는 페이소스 같은 게 있는데, 중요한건 그 부분을 영화로 어떻게 살려내느냐가 핵심인거죠. 그러니까 김훈의 작품은 ‘화장’도 그렇고 다른 작품들도 스토리가 화려하거나 굉장히 놀라움을 줘서 재미있는 게 아니고 그 분 고유의 남성적인 건조한 문체가 주는 특유의 매력이 있어요. 그런 점에서 굉장히 훌륭하고 그 부분이 인정받아서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거죠.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영화적인 방법으로 원작을 살려내느냐 라는 문제이고, 저 개인적인 평가로는 절반정도는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그 특유의 분위기, 원작이 가지고 있는 느낌. 생과 삶의 혼란스러운 상태. 이런 분위기를 어느 정도는 잘 잡아냈다고 생각해요. 절제되고 다소 다운된 그 분위기를 그러나 감정적으로 과잉되지 않도록 하는, 그걸 잘 잡아냈다고 생각해요.
그 외에 저는 뭐랄까, 올드하다는 느낌을 받는 장면이 몇 개가 있었어요. 그래서 영화적으로 해내는데 있어서는 다소 박한 평가를 주고 싶어서 절반정도의 성공이라고 보고 싶네요. 좋은 부분이 분명히 있는 영화이지만 임권택 감독님 명성을 생각한다면 약간 아쉬웠어요. 감독만이 가진 새로운 해석이나 깊이 있는 통찰 같은 것이 조금 더 나올 수 있었을 것 같았는데 좀 미진하다는 느낌이었구요. 그건 뭐랄까, 다소 감각적으로 따라잡지 못한 부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장 감독으로서 세련되게 요즘의 호흡을 따라잡지 못한 부분이 있지 않나란 생각이 들어서 좀 아쉬웠단 평가를 내리고 싶네요.
윤성은 : 저도 두 분의 의견, 영화 전체적으로 올드하다는 표현이 가장 적합한 표현일 것 같은데요, 세련미가 있다거나 모던한 영상적인 감각 이런 것들은 사실 보기 어려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까 그 절제라는 그 부분에서 모든 연기자들에게서 보였던 절제미가 있었고요. 또 신파로 가지 않은 게 좋았던 것 같아요. 심지어 저는 굉장히 슬픈 장면인데 막 눈물이 나진 않았었거든요 세부적인 장면에 대해선 나중에 또 얘기를 하겠지만요. 죽음에 가까이 가는 장면에 있어서도 눈물이 나지 않는데 그게 연출이 부족해서라거나 깊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일부러 연출이나 모든 연기자의 연기가 그런 부분에 대해서 감정이 넘치는 것보다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벌어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전체적인 평가를 하자면 좋은 편인 것 같아요 긍정적이고 영화 좋았던 것 같아요
이때까지 거장 감독들이 남겼던 유작이라든가 나이가 많이 드셨을 때 만든 작품들을 보면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과 깊이와 통찰들이 잘 드러난 작품들이 많았는데, 임권택 감독님도 그런 부분에 대해서 훨씬 더, 연륜이라는 게, 영화적인 연륜뿐만 아니라 그냥 한명의 인간으로서 생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죽음, 소멸에 대한 것들을 이 영화를 통해서 말하고 싶으셨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부분에, 아직 젊은 사람으로서 많이 좀 경도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민병선 : 개봉한지 한참 된 영화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할 것 같은데 개봉을 안 한 영화라 말을 아껴야 할 것 같은데... 4월 달 개봉인 영화죠. 중년남성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지점이 있고, 생과 사를 바라보는 단면이 담겨 있죠. 삶의 환희와 소멸이 교차하는 단면요. 철학적 물음이 관객에게 좋은 반응으로 다가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요. 일단 영화 보면서 느낀 점은, 소설과 영화의 차이점이었어요. 원작 소설을 어떤 여성작가가, 내면의 심리를 따라가기 위해서 각색을 했고 원로 작가가 또 각본을 하고...
안숭범, 성진수 : 반대에요, 각색이 육상효.
민병선 : 근데 이게 단편소설이잖아요 장편소설인줄 알았는데 단편소설이더라고요. 그래서 문학과 영화의 차이가 여기서 벌어지는 구나라는 느낌을 일단 받았어요. 단편일 때는 중년 남자의 심리, 여기서는 죽음 그리고 억제하거나 잠재를 하려고 해도 막을 수 없는 어떤 욕망, 그런 것을 소설은 큰 사건이나 행동이 아니어도 의식의 흐름으로 따라갈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단편이었을 때. 문학이고 글로 봤을 때. 그런데 영화로 오니까 지지대 하나가 없는 형태가 돼버리더라고요. 기승전결 중에서 ‘전’이라는 부분이 묻혀 버린 거죠. 그래서 각색이나 각본을 누가 했는지, 또 새로 없는 걸 창작하는 부분에 있어서 원작자가 동의를 안 해준 건지, 혹은 원작에 충실하게 가려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건지 검증할 필요성은 느껴요. 제가 보기엔 서사의 가운데 토막이 빠져버리니까 이 얘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빠졌다는 게 뭐냐면 김규리(추은주)라는 젊은 여성과 안성기(오상무)에게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과정이 없잖아요. 왜 안성기가 고통스러워하는지, 김규리가 왜 나중에 별장을 찾아오는지, 딸이 왜 아버지한테 ‘아빠는 엄마를 사랑했어?’ 이런 얘기를 하는지, 죽어가는 여자가 왜 원망을 토해내는지, 연결고리가 없어 보일 수 있어요. 그래서 소설 원작을 영화로 가져오면서 그대로 갖고 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데, 영화와 문학이, 한 독자가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거랑 대중은 다를 수 있구나란 생각을 했어요. 구성 자체가 플래쉬 백을 많이 썼잖아요, 플래쉬 백을 써서 과거로 갔다가 현재로 돌아 왔다가. 저는 그래요. 중년인 오상무의 죄의식에 의한 시각적 명확성이 떨어진다고 봤어요. 그것이 절제와 생략이라는 의견과 비교하면 제 생각은 그래요. 저렇게 모범생이고 훌륭하고, 아내를 위해서 훌륭한데 박수를 쳐줘야지. 왜 혼자 절망하고 갈등하고 좌절하는지 동의가 되는가? 왜 슬리퍼 신고 혼자 고통스럽게 정처 없이 헤매는지 저는 설명이 안 되더라고요.
윤성은 : 그건 본인이, 죄의식이라는 게 사람마다 너무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 같아요. 이 오상무의 캐릭터는 그런 생각만으로도 죄의식에 빠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보거든요.
민병선 : 그래서 저는 이 사람이 주류를 이루는 영화적인 캐릭터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윤성은 : 그럴 수 있겠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저도 영화가 완벽한 영화라거나 진짜 명작으로 길이 남게 될지는 자신은 없지만, 그렇게 지금 말씀드릴 순 없겠는데, 그래도 저는 말씀하신, 지적하신 부분에 있어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어쨌든 지금 김규리 같은 경우에는 다른 남자 애인도 있었고,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애인도 있었고, 지금 이 남자한테 다른 사심, 남자로서 사심을 가질만한 상황이 아니고, 오상무라는 캐릭터는 지금 죽어가는 아내를 곁에 두고 있으면서 그 상황과는 너무나 다른, 아내는 계속 칙칙해져 가고 몸이 굳어가고 모든 장기가 엉망이 되어가는 이런 상황에서 생기 넘치고 활발하고, 똑똑하고, 막 피어오르는 그런 여성의 모습을 보면서 가지고 있는 어떤 욕망인거잖아요. 이게 남자가 여성에게 가지는 욕망이라기 보단 삶에 대한, 생에 대한 대비가 되는 거죠. 자기 아내와 비교했을 때.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상무가 사실 손 한번 잡은 게 아니고 상상으로만 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게 좀 일반적인 대중들에게 상업 영화적으로 재미있게 다가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저는 충분히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아내는 죽어 가는데 자기가 다른 여자에게 갖게 되는 그런 욕망에 대해서 죄의식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래서, 영화 자체로 봤을 때 추은주가 오상무와 둘이 가졌던 가장 큰 썸씽은 결국에는 초콜릿을 주는 장면이었는데, 저는 그 장면의 연출이 기억에 많이 남더라고요. 왜냐하면 화이트 톤의 넓은 전시관에서 추은주가 오상무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라면서 옷을 빨리 갈아입고 멀리서 오상무를 바라본 다음에 거의 뛰다시피해서 가잖아요. 갔더니 오상무가 초콜릿을 주고. 저는 그 장면이 두 사람이 가장 가까워지는 교감의 장면이었는데 별거 아니지만 그 장면에서 뭔가, 아마 추은주가 마지막 장면에서 내일 출국인데 한번 꼭 뵙고 싶다고 하면서 가게 된 것도 아마 그 때 느꼈던 오상무에 대한, 꼭 남자라기보다 애틋함이라든가, 자길 생각해주는 그런 감정들, 그런 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됐어요. 이게 하이라이트가 없다고 하셨잖아요. 영화가 밋밋하고 그거는 맞는 말인데 이 영화는 그런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막 적극적으로 표현해내고 갔으면 영화가 또 자칫 너무 평범해졌을 것 같아요.
민병선 : 그래서 추은주와 안성기의 러브라인이 없잖아요, 어떻게 보면. 없기 때문에 저는 차라리 그걸 들어내 버리고 죽어가는 아내와 그 안에서 오히려 더 깊게 들어갔으면. 어차피 이게 상업적인 영화는 아니잖아요. 그런데 예고편을 보면 마케팅 포인트를 그렇게 잡잖아요, 불륜처럼 보이게.
이수향 : 사실 원작을 본지 오래됐는데, 가장 문제가 뭐냐면 원작에 그런 러브라인 느낌이 덜해요. 이 영화보다. 그러니까 문제는 영화에서는 화장이라는 삶과 죽음, 젊은 여자와 늙어가는 죽어가는 아내, 얼굴을 생기 있게 하는 화장과 죽어서 하는 화장, 이런 이분법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소설인거에요, 일종의. 추은주와 아내를 딱 나눠놓고 있는데, 소설에서는 이거를 정말 생과 사, 소멸, 죽음과 소멸 이게 너무 핵심적인 주제의식인거에요. 늙어가는 노년의 남자가 생과 사를, 생물학적인 소멸을 눈으로 보면서 생물학적인 피어남을 반대편에서 봤을 때 느끼는 그런 내면적인 고통과 갈등 같은 건데, 영화를 보면 방금 민 선생님이 얘기하신 데로 이게 약간 러브라인이 더 그거보다 쎈 거 같아요, 단편보다. 그러니까 문제가 뭐가 되냐면, 저도 약간 민병선 선생님 얘기에 더 동의를 하는 게, 이게 약간 어중되다는 느낌을 좀 받는거죠. 제가 그래서 영화를 보고나서 민선생님한테 어떻게 보셨는지 물었죠. 전 제가 중년남자의 시각을 가질 수가 없는 입장이니까 이 영화가 어떤 지의 여부는, 정말 중년남자가 젊은 여자를 어느 정도까지 생각하는지를 저는 너무 가늠이 안 되잖아요. 사실 저는 성별도 다르고 연배도 너무 다르니까.
박태식 : 중년 남자로서 젊은 여자는 다 예쁘다고 생각해.
이수향 : 그냥 예쁘다고 생각하고 젊어서 풋풋해서 좋다고 생각하는 정도인지.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시선이 허리를 훑고 아내가 죽어가는 데 가슴골을 보고이래요. 이게 정말 사랑인 건지, 오상무가 특별히 추은주라서 그런 건지, 보통 남자들이 그런 건지. 영화 속 그런 오상무의 태도가 층위가 잘 안 나눠지니까 저는 이 영화가 뭔가 좀 어정쩡하더라구요. 이게 정말 소멸과 죽음을 생각하는 일반 남자의 시선인지, 정말 개인에 대한 성적 욕망을 느끼는 남자의 시선인지 이게 되게 애매해서 저는 그 욕망이라는 게 애매하게 표현이 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웠어요.
또 하나, 윤 선생님과 생각이 다른 부분이, 저는 끝까지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안 일어났으니까 추은주가 정말 존경심일 뿐이었나, 이렇게 생각을 했었어요. 마지막 장면에서(스포일러라서 자세히 얘기하긴 좀 그렇지만) 어떤 느낌을 받았냐면, 좀 뭔가 이 거부당해서 화가 나거나 상처를 받은 여자의 분노를 봤어요. 그러니까 이게 단순히 존경심을 넘어서는 어떤 지점, 생각보다 추은주가 오상무에게 남성으로서 매력을 느꼈던 게 아닌가, 그렇다면 양쪽 다 통하는 그런 마음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안숭범 : 저는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선 제일 고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이수향 : 윤성은 선생님도 고평가를 하셨는데요.
안숭범 : 저는 생각보다 너무 저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저는 임권택 감독님에 대한 존경, 이런 의미로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영화만 보고 말할 때 중요한 미덕이 있다고 봐요. 일단은 쇼트들을 보면 별로 군더더기가 없어요. 이건 임권택 감독님의 날인이죠. 저는 어떤 느낌을 받았냐면 이게 김형구 촬영감독이 찍었잖아요. 전혀 다른 영화인데 <봄날은 간다>를 김형구 촬영감독이 찍었단 말이에요. 근데 <봄날은 간다>는 대중영화의 호흡을 상기할 때, 이미 잘라야 되는데 자르지 않고 더 길게 뺐다가 왜 이렇게 안 자르지 하는 긴장의 순간에 잘라요. 이게 허진호 영화의 특징이죠. 그런데 이건(<화장>) 잘라야하는 포인트가 있는데 그보다 더 훨씬 앞서서 잘라요. 그러니까 아직 자를 때가 안됐는데 자르는 거죠. 그러면서 긴장이 발생해요. 그런 식으로 저는 김형구 촬영감독의 특징적인 촬영과 임권택 감독의 개성적인 편집이 잘 아우러진 면이 있다고 봐요. 요약하면, 촬영이라든지 편집이라든지 이런 부분들에 군더더기가 없어요. 그게 첫 번째 좋은 점이었구요.
두 번째는 아까 <안개마을> 얘기를 했는데, <안개마을>도 여성의 성적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소재는 굉장히 내면적인 관심을 영상화해야 하는 숙제를 가지거든요. <화장> 역시 겉으로 드러나는 러브라인이 강렬하지 않아요. 바깥으로 서사가 명확하게 있고 갈등구조가 있고 극적 사건이 자아내는 긴장으로 부딪치고 하는 그런 영화도 아니지요. 한마디로 인물의 내면이 읽혀지고 동의되어야 하는 영화인데요. 그들 내면에 집중하게 하는 힘 같은 게 있어요. 그런 식으로 긴장이 있죠. 저는 그런 부분이 좋았어요. 내용적으로 몇 가지를 분석해 보면, 이 영화의 소재는 화장품 회사 오상무에게 다가온 사랑의 기회 같은 거잖아요. 그런데 화장품 회사에서 말하는 ‘화장’이라는 게 얼굴을 실제보다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거고, ‘사랑’이란, 현실을 현실보다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그런 내면의 힘 아니겠어요? 이 두 부분을 접목시키는 방식이 이채로웠어요. 이를테면, 다른 분들도 말씀하셨던 김훈 작가가 차용하곤 하는 어떤 상징성 같은 거, 그런 부분들을 영화적으로 잘 살린 면이 있죠. 아까 다 설명하셨지만 김규리에 대해서 오상무가 사랑을 기다리면서 설레는 과정, 그로부터 오는 긴장이 있잖아요. 근데 오상무 내면의 반대편에선 아내가 죽어가니까 아내의 죽음을 오히려 기다리면서 느끼게 되는 윤리적 자책이 생겨요. 양쪽이 서로를 더 증폭시켜요. 젊은 여자와의 사랑을 기다리면서 원초적 본능이 커지는 거고, 한편으론, 그와 관련해서 늙은 아내의 죽음을 기다리면서 윤리적 자책이 커지는 거죠. 양쪽이 서로를 견인하면서 어떤 팽팽한 고통이 전달되죠. 그런데 물론 몇 가지 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뭐냐면 저는 안성기의 내면에서 사랑의 감정 같은 건 잘 표현됐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추은주(김규리)가 오상무(안성기)에 대해서 갑자기 별장에 찾아올 정도로 감정이 고조되었는가. 그 부분은 짚고 넘어가야 되는 것 같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가 잘 안돼요. 왜냐면 추은주는 영화 거의 중반 이후까지 결혼할 상대가 있었고 일종의 존경의 표시로 대했던 것 같은데 그것이 너무 비약적이잖아요. 갑자기 문자 계속 보내고 스토커처럼 하면서. 일단 서사적으로 이해가 잘 안됐고. 또 하나는 형식에 있어서 발레 뮤지컬 같은, 그 장면이 좀 올드했어요. 오상무가 일부러 찾아가서 공연 보는데 꿈속의 공연장면이 나타나고. 그런데 이건 80년대 초에 <길소뜸>, <티켓> 이런 데서나 나오던 꿈 장면 같은 느낌이었어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임권택이니까, 하면서 넘어가는 과잉의 장면들이죠.(웃음)
이수향 : (웃음)저는 그 장면에서 제일 충격을...올드해서...
안숭범 : (웃음)임권택 감독님의 올드한 부분들이 드러나는,,그런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이수향 : 제가 이 영화를 보고나서 드는 생각은, 저 같은 비교적 젊은 여자가 이 영화를 보는 느낌 말고, 나이가 많은 중년 남자가 이 영화를 보고 깊이 있고 정말 맘에 드는 영화다, 내 맘을 잘 읽은 영화라고 생각을 하면 이 영화는 굉장히 성공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무슨 얘기냐 하면 저는 제가 이 영화에서 감흥이 덜한 부분이 연배에서 오는 식견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가 특별히 그런 면이 좀 심해요. 왜냐면 시선이 중년 남성의 시선을 따라가지 못하면 이 영화 되게 재미가 없어요. 되게 이상하게, 심지어는 느끼하게 느껴져요. 왜 저러지 이해를 못하고 그럴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만약에 중년, 아니 중년이 아니더라도 남성들이 이 영화를 봤을 때 오상무의 심경이 정말 이해가 갔다면 영화 굉장히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개인적으로 생각이 들어서 그런 부분에 평가를 유보하고 싶구요.
아까 윤성은 선생님이 짚어주시기 전까지는 영화를 보고나서 그런 생각을 한 번도 못했었는데, 그 부분이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초콜릿 주는 장면과 앞뒤 처리되는 장면에 있어서 감정을 막 일일이 얘기하지 않고 깔끔하게 넘어가는데, 둘의 애매하긴 하지만 분명히 호감 있는 마음의 움직임을 잘 잡아낸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그 장면이. 과하지도 않고. 여하간 적당한 선을 지키지만 분명히 존경심을 표현하는 그런저런 장면들이 사실 이 영화의 미덕인거죠. 그래서 반대로 저는 이 영화에서 별로였던 장면이 아까 얘기했던 무용하면서 그 사이에 김규리가 갑자기 막 벗고, 무용수들을 풀어헤치고 김규리를 막 잡으려고 하는 이런 장면이 좀 별로였어요. 참, 민선생님이랑 얘기했었는데 저희 둘이 가장 좋아했던 장면이 있었어요. 지방으로 출장을 가는데 나름대로 접대를 한답시고 지역 사업자가 오상무의 모텔에 직업여성을 넣어줘요. 그런데 오상무가 정말, 진심을 담아서 막 거절을 하거든요. (웃음) 그 여자분 대사도 딱 그럴 듯 해서 더 웃겼고. (웃음) 이 영화에 웃기는 장면이 거의 없는데 그 장면 하나에서 빵 터졌던 것 같아요.
윤성은 : 그 마지막 장면에 왜 별장에 찾아갔는가. 이 부분을 두 가지로 해석하는 것 같아요. 왜냐면 그게 에스컬레이팅이 잘 안됐으니까, 김규리의 감정이 안됐으니까, 이선생님은 그래도 남자로서 느낀 거 같다고 보고, 저 같은 경우 그냥 존경심이라고 보고. 이렇게 해석이 갈리는 것 같아요. 그 부분이 명확하게 표현이 안 되서 그거는 연출의 약간, 연출의 부족함으로 볼 수도 있겠죠. 너무 절제한 것이 아니라 이거는 누가봐도.
이수향 : 존경심을 표현하려고 상중인 남자를 별장까지 찾아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은데……. (웃음)
윤성은 : (웃음)모르겠네요. 나라면, 내가 내일 중국에 간다면, 모르겠다. 어쨌든 간에 오상무의 캐릭터에 대해 조금 더 말씀드리고 싶은데 오상무의 캐릭터가 흥미롭다고 보였는데, 어떤 사람들은 안성기씨가 뭐 그렇게 연기를 잘했냐, 여기서 뭘 했냐, 부산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보고 이렇게 말하는 얘기도 들었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는데, 왜냐면 이 캐릭터가 되게 흥미로운 게 이때까지 욕망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죄책감을 느낄 정도로 바른 생활을 해왔던 사람인거에요. 직업적인 그런 것들만 바라보고 여자에 대해서 그런 딴 데 쳐다보지 않고. 그렇기에 아내에게 너무나 헌신적으로 하잖아요. 그게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책임감인거죠. 자기가 남편이기 때문에 해야된다 라는. 그런 캐릭터들이 진짜 추은주(김규리)를 대하는 어떤 태도에서도 너무 잘 드러나는 거예요. 청첩장을 받았을 때 바로 돈 주면서 나 못 간다고 이렇게 얘기하는 부분이라든가, 굳이 출장 잡고, 그런 면에서도 자기가 직업적으로는 호통을 쳤을 때 이 여자가 받았을 상처나 이런 것들 때문에 그 다음날은 또 가서 그 일을 깔끔하게 해결하면서 너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게 남자로서 느끼하게 느껴지는 게 아니고 직장상사가 한번 혼내면서 여직원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어떤 느낌? 딱 그 정도의 선에서 초콜릿을 주면서 하는 그런 거라든가, 뭔가 되게 맺고 끊음이 너무 딱딱 확실하고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 어떻게 보면 만나지 않고, 끌고 혼자 나가는 장면이 뭔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이 남자의 캐릭터와 그리고 이 영화와. 이 영화와 이 캐릭터가 너무 닮아있는 것 같은 거에요. 그 냉철함과 그 절제와 그러면서도 보여줄 건 보여주는 그런 느낌들이.
안숭범 : 저는 오상무(안성기) 엄청 잘 이해되던데요.
이수향 : 그러니까. 이러면 이 영화는 정말 괜찮은 영화인 거예요.
윤성은 : 중년이 아니시잖아요.
이수향 : 근데 민변선 선생님은 이해가 안 된대요.
윤성은 : 저는 이게 안성기 캐릭터가 중년의 남성들에게 이해되면 물론 이건 대박이에요. 근데 그게 아니라 또 이 죽어가는 여자나 젊은 여자들이 봤을 때 이 중년남자들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 그것도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건 되게 남성적인 영화라기보다 여성들이 오히려 이 감수성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 행간을 읽어야 하니까.
이수향 : 저 거기 좀만 더 덧붙이자면 연기에 관련 되서 좀 얘기하고 싶었던 게, 전 사실 안성기씨의 연기가 다소 좀 정형화됐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약간 옛날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어서 그렇게 평소에 엄청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이 영화를 보고나서는 저런 깔끔한 절제미라든가 뭔가 할 수 있는 최고치를 윤리적인데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느낌을 지금 우리나라 배우 중에 안성기 정도 빼곤 누가 표현해 낼 수 있을까. 왜냐하면 사생활이 엄청 가쉽성이 많이 올라있는 사람이면 사실 그런 걸 하기가 조금 애매한 거예요. 진실성이 떨어져 보이니까 심하게. 왜냐면 너무 윤리적인 느낌이 강한 성격이라서. 그래서 저는 의외로 연기도 깊이 있고 좋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요. 말할 것도 없이 김호정씨의, 그 어떤 전체적으로 말라가고 죽어가는 그 연기는 거의 완벽했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옥의 티, 그냥 김규리씨가 저는 좀 안 받쳐주는 느낌이었어요. 대사도 좀 튀고.
안숭범 : (웃음) 예쁜 여자를 싫어하는 건 아니고?
이수향 : 아니에요. 아니에요. (웃음) 예뻐서 그런 건 아니에요. 그저 연기가 다소 인위적이었다고 생각하고, 김규리가 거기서 너무 몸매도 좋고 예쁜데 뭔가 좀 그런 느낌 말고 차라리 아예 약간 중성적인, 수수한 여자였으면 어땠을까라는 개인적인 생각이 들었어요. 오상무로서는 추은주가 누가 봐도 정말 예뻐서 좋아했다기 보다는 그녀 자체의 성격적 쾌활함, 생생한 느낌, 그런 매력에 끌린 거라면 저는 더 설득이 됐을 것 같은데, 너무 여자의 시각인가? (웃음)
안숭범 : 근데 저는 그 의견에는 반대에요. 김규리가 연기를 잘했다는 게 아니지만요. 저는 이것부터 생각해야 될 것 같아요. 문학은 관념이나 추상을 정말 자세하게, 그 사람의 내면에 있는 것까지 다 묘사를 해낼 수 있는데, 영화는 그냥 관념을 즉물적으로 형상화하 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짊어진 매체인거죠. 그런데 임권택 감독님이 잘하는 게 뭐냐면 아내 같은 경우는 화장을 아예 안한 얼굴이고 머리도 다 밀었고. 근데 그 사람을 잡을 때 클로즈업으로 잡아요. 그런 어떤 느낌과 김규리씨가 연기하는 추은주는 화장을 제일 잘해야만 하는 홍보팀장이죠. 어떻게 보면 여러 기준에서 극단에 있는 두 사람을 성찰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임권택만의 기획이 보였어요. 저는 그 점이 나름대로 좋았다고 생각을 하는데, 김규리가 그렇게 ‘젊음’, ‘활기’, ‘아름다움’ 등으로 포장된 여자로 보이는 게 맞다고 봤어요. 일부러라도 더 생기가 있어야 하죠. 아내의 상징성이 인간의 죽음이나 소멸이기 전에 여자로서의 죽음이나 소멸이니까요. 근데 김규리도 나이가 37이잖아요. 그러니까 약간 더 과장되게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부분이 있었을 것 같고 그래요.
이수향 : 팬 아니에요?(웃음)
안숭범 : 아니야, 그건 아니야(웃음). 아내를 잡을 때의 조명이나 공간. 그리고 밤에 늘 아내를 간호하잖아요. 그런 세계와 낮에 색조화장을 한 김규리의 톡톡 튀는 세계. 이 양자의 세계들을 잘 배치해가면서 저는 영화로는 전달하기 힘든 관념적인 어떤 진술 같은 것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생각이 들었어요.
윤성은 : 저는 만약 김규리의 캐스팅이 좀 적합하지 않았다면, 아니, 캐스팅이 아니라 캐릭터가 조금 부족했다면 저는 <은교>에서처럼 김고은 같은, 그렇게 좀 더 튀었어야 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여긴 홍보팀장으로 나오니까 너무 어린 여자는 안 될거고 그래도 어느 정도 연륜이 있어야 되고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하여튼 조금 더 생기발랄 이런 스타일, 어떻게 보면 와인 시키고 이렇게 할 때 약간 좀 그렇게 보이려고 했던 것 같기는 했는데 좀 부족했죠.
안숭범 : 그런데 오상무가 전립선? 그거 때문에 오줌보 팽팽하게 있잖아요. 저도 오후에 시사회보면서 저도 그런 오상무 오줌보처럼 팽팽해지는 것 같은 긴장이 있었어요. 비유를 하자면.
이수향 : (웃음)오상무는 비뇨기과를 다니면서 고통스러워하는데 왜 거기에 비교를 하세요.
윤성은 : 나보다 어린걸로 아는데(웃음)
안숭범 : 그게 육체적인 고통이지만 심리적인 긴장을 보여주기 위한 육체적인 장치잖아요. 그만큼 심리적으로 팽팽했을 거 아니에요.
그리고 저도 사실 <은교> 이야기도 하려고 했는데, 느낌이 은교는 좀 더 대중적으로 간 거고 이거는 임권택 감독님 스타일로 간 거고.
민병선 : 김규리씨는 너무. 소설이라면 화사하고 어쩌구 이런 게 상상이 될 텐데 영화에서 시각적으로 봤을 때는 뭔가 김규리가, 어떤 목적이 있는 행위가 뭔가 화학반응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냥 즉물적인 이미지였기 때문에 전혀 역할을 못하진 않았나. 오히려 김호정씨도 왜 이렇게 예뻐, (웃음) 생기가 있어 보여서. 안성기의 문제는 그냥 안성기여서, 그냥 안성기를 연기하니까, 아 저렇게 가도 되나 그런 아쉬움이 있었어요.
이수향 : 진짜 정말 안성기 같았어요.
윤성은 : 저 한마디만 더 해도 되요? 우리 빼먹은 거 얘기, 그 개를 죽이잖아요. 근데 그거 진짜 이거는 많은 비판을 받겠는데……
이수향 : 왜요, 와이프가 해달라고 했는데
안숭범 : 서사적으로 맞죠.
민병선 : 근데 아픈 개면 모르겠는데 개가 너무 튼튼해.
윤성은 : 개가 약간 죽을 때가 다된 그런 개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데 그게 아니라 너무 생생한 젊은 개인 것 같은데 그걸 그렇게 한다는 건……
성진수 : 불쑥 끼어들어서 죄송한데, 시간 관계 상 다음 영화로 넘어가야 할 거 같아요. <화장>에 대해 세부적인 얘기들을 좀 더 듣고 싶지만, 시간관계상.
민병선 : 그래요? 그럼, 이로써 <화장>에 대한 얘기는 마치도록 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