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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영적전쟁이라 제목을 붙인 것은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나 자신이 이 사건에서 온전히 믿음으로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 선교와 교단 선교위
1998년 지금으로부터 23년 전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다시 꺼내게 되었다. 23년이 지난 지금 세상을 떠난 분들도 있고 생존한 분들도 있지만 그분들 모두에게 감정이나 미움은 조금도 없다.
그럼에도 희미한 기억을 되살리며 이 글을 다시 쓰는 것은 최근까지도 교단 내에서는 이 일이 회자되고 있음을 몇몇 목사님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세 가지다. 첫째는 내가 잘못했든지 다른 사람이 잘못했든지 잘못한 사람이 하나님께 회개를 하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는 실상을 모르면서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잘못된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사람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고, 셋째는 적어도 목회자라면 뒤에서 남을 험담하는 죄를 짓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1998년도에는 이와 관련한 내용을 일자별로 정리해 자료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다 폐기해버렸고, 이제는 기억마저 아물아물하기에 정확한 날자 기억도 잊어버렸다.
언젠가 개인의 자서전을 쓰게 된다면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가지고 있던 자료들까지 폐기처분한 데에는 김은희 집사의 말이 많이 작용을 했다.
김은희 집사는 나에게 “진실이 이기는 것이므로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진실이 밝혀지게 하실 것이므로 이 문제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쓰지 마세요.”라고 하였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하였고 모든 자료들을 폐기처분해 버렸다.
나는 그 말을 받아들였고 이 문제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글을 쓰고 있는 2021년 최근 몇몇 목회자들과 대화를 하는 중 교단 목회자들 사이에 이와 관련한 악성루머가 떠돌고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나를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가물거리는 기억이기는 하지만 실상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 놓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이제 중국 선교와 교단 선교위의 출범에 관한 사건으로 돌아가 본다.
1. 중국 조선족의 편지
사건의 시작은 한국으로 돈을 벌러 나온 중국 조선족 부부가 우리 교회로 출석을 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중국 선교라는 것을 생각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 분의 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고, 지금은 남편은 엄집사 아내는 손집사라는 정도만 기억한다.
1995년 조선족 부부는 약 2년간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작은 접촉사고의 발생으로 불법체류자 신분이 드러나 중국으로 추방되었는데, 그 사이 우리 교회에 출석하며 말씀의 은혜를 받았던 모양이다.
중국으로 돌아간 후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남편인 엄집사가 편지를 보내왔다. 내용은 부부가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동안 말씀이 너무 좋아 은혜를 받았는데 지금도 그 말씀이 생생하게 생각이 난다면서 중국으로 들어와 말씀을 전해 주시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중국을 전혀 알지 못하는 나는 세 번 정도의 편지를 받고도 답을 하지 않았다.
2. 고종대 청년의 중매
그러던 중 기쁜교회 김창례 집사 집에 세를 들어 살고 있던 고종대라는 청년을 혹시 내가 알고 있는 조선족 처녀가 있으면 중매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알고 있는 처녀는 없지만 중국으로 돌아간 조선족 부부에게 알아보면 될 것 같았다.
중국으로 들어와 말씀을 전해 달라는 간곡한 편지에는 답도 하지 않았었지만 고종대 청년을 중매하기 위해 어딘가 넣어두었던 편지를 찾아 봉투에 적힌 주소로 조선족 처녀가 있으면 소개를 해 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그렇게 하겠다는 답장이 왔다.
1998년 4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던 시기였던 때 나는 고종대 청년을 데리고 중국으로 들어가서 조선족 부부의 주선으로 김봉금이라는 처녀와 중매를 하게 되었다.
3. 조선족 교회에서의 설교와 집회
그런 중 이왕에 중국에 오셨으니 수요일 저녁예배 때 설교를 해 달라는 조선족 부부의 부탁을 수락하여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한국에서 목회자가 와서 설교를 한다고 미리 연락을 했는지 수요저녁 예배임에도 성도들이 약 150여명 정도 모인 교회에서 설교를 했다.
모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씀에 집중하고 은혜를 받고 아멘으로 화답하며 열광하는 모습을 보니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예배를 마치고 인사를 나누는 가운데 이렇게 좋은 말씀을 더 듣고 싶다며 집회를 열겠으니 몇 시간 더 말씀을 전해 달라고 하기에 수락을 하여 예정에도 없던 급조된 이틀간의 집회를 하게 되었다.
교회에 소속된 모든 처소에 연락을 했는지 갑자기 가지게 된 집회였지만 교회를 가득채운 성도들이 말씀에 뜨겁게 은혜를 받는 모습에 매번 설교마다 가슴에서 뜨거움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집회 중에 병자가 고침을 받는 기적도 일어나고, 또 한 번은 설교 중 철대문을 두드리는 요란한 소리가 들리고 안내위원이 나가서 한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는데 설교를 듣고 있던 사람들의 분위기가 갑자기 싸늘해지는 것을 확연이 느낄 수 있었는데 설교를 마치고야 알게 되었지만 집회를 한다는 신고를 받고 나온 시 종교국에서 관리였다.
설교를 마치고 나니 안내위원이 나에게 와서 귓속말로 “한국에서 왔다는 말을 절대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고는 나를 그 관리에게 데리고 갔는데, 그 관리도 조선족이었는지 조선족 말을 할 줄 알았다.
그의 첫 질문이 “선생은 어디서 왔소?”였는데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망설임 없이 대답을 했다. 순간 주변 사람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창백해지는 것이 느껴지는데, 그 관리는 종교국 관리라서 신앙이 있는 사람이었던지 “목사님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정말 좋은 말씀이었고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남은 시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하면서 호칭도 선생에서 전도사였던 나를 목사님으로 바꾸고 존대를 하고 돌아갔다.
함께 있던 사람들이 안도의 표정이 되고 기쁨과 희열이 넘치는 표정이 되는 것을 보았고, 집회를 한다는 연락을 받은 다른 지역 교회의 지도자들 몇 명이 함께 참석을 했었는데 그들의 요청으로 대화를 나누는데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은혜롭고 좋은 말씀을 처음 들어본다면서 앞으로 자주 들어와서 말씀을 전해 주시면 좋겠다고 하였고, 이것이 중국 선교를 해야겠다는 계기가 되었다.
4. 선교를 위한 보고
교단의 지교회는 교회의 중요한 사항을 노회나 교단에 보고할 의무가 있고, 교회에 파송된 목회자의 활동도 선교와 같은 중요한 활동은 교단에 보고하고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5월 목회자 회의에 참석한 나는 이순홍 목사와 대화를 하는 중에 중국 선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선교를 하면 교회는 어떻게 하느냐?”는 이순홍 목사의 말에 “완전한 선교가 시작되면 결국 교회는 사임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고 또 박경철 전도사에게도 같은 말을 했는데 어쩌면 그들 중에 한 사람이 이 말을 다른 사람에게 와전시켰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6월 목회자 회의 모임에서 선교를 하겠다는 보고를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선교를 하라고 하면서 나는 교회를 사임을 시키고 우리 교회에는 후임을 보내겠다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황당한 결정을 하였지만 나는 교단의 명령에 순종하기로 하였다.
교단의 결정이 황당한 결정이라 말하는 것은, 그 당시에 교단 목회자들 중에서 중국 선교를 하고 있다고 자랑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교회를 사임하고 선교를 하는 분은 한 분도 없었다. 그런데도 아직 “니 하오”라는 중국어 인사도 몰랐던 내가 선교를 하겠다는 보고에 교회를 사임하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나의 선교 계획은 4단계로 계획되어 있었는데 그때 작성한 선교 계획표는 대략 다음과 같다.
1단계
몇 년 간 1년에 한두 번 왕래하며, 조선족 부부가 있는 교회를 중심으로 집회를 하면서 주변 교회들을 알아가는 것, 중국 왕복에 필요한 비자료, 항공료, 교통료 외 헌금 및 생활비 필요함.
2단계
몇 년 간 1년에 대여섯 번 왕복하며, 집회를 하는 중 연결되는 다른 조선족 교회 지도자의 교회에도 순회 집회를 하며 신실한 지도자로 판단되는 사람들을 집중 교육하는 것, 중국 왕복에 필요한 비자료, 항공료, 교통료 외 헌금 및 생활비 필요함.
3단계
몇 년 간 많은 사람들에게 인지도를 얻은 후 지역교회를 세우고 교류하는 지도자들 중 신실한 지도자로 생각되는 사람을 책임지게 하고, 좀 더 편리하게 중국 선교 거점을 마련하는 것, 중국 왕복에 필요한 비자료, 항공료, 교통료 외 헌금 및 생활비 필요함.
4단계
조선족 뿐 아니라 한족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중국어에 능통하게 되면 중국 국적을 취득하게 되면 한국 교회를 사임하고 중국 선교에 전염하는 것, 국적 취득을 위한 호적구입비용 1회성으로 필요, 선교를 위한 자금 필요함.
이렇게 4단계의 선교를 생각하며 계획했으나 첫번째 보고는 구두로 중국 선교를 하겠다고만 보고를 했고 단계별 선교계획은 나중에 서류로 보고했다.
그런데 구두로 중국 선교를 하겠다고 보고한 그날 회의에서 교단은 무조건 즉시 교회를 사임하며 후임을 보낸다는 것이 정말 황당한 결정이지만, 그런 결정이라 할지라도 교단의 결정이었기에 순종하기로 하였고 교회에 돌아와 주일예배 후 교단에서 나는 기쁜교회를 사임하고 후임을 보내기로 했다고 광고했다.
교회도 내가 사임하는 것에 대한 반대는 없었다. 나는 수건을 기념으로 만들어 성도들에게 나누고 성도들은 금반지를 이별 선물로 주고 받았다. 6월 8일 회의에서 결정된 것이었지만 즉시 순종한다는 생각으로 그날 곧바로 수건을 기념품으로 주문하였고, 다음주일인 6월 14일 수건을 나눠주었고 그 주간에 성도들은 금반지를 우리 부부에게 이별선물로 주었다.
5. 후임에 대한 교회의 거부
교단에서 보내기로 한 후임에 대해 교회는 만족하지 못하였고 교단에서 보내는 목회자를 받지 않겠다고 통보하였다. 사실 원치 않는 목회자는 거절하고 원하는 목회자를 청원하는 것은 모든 교회의 당연한 권리이므로 나는 교단에서 결정한 후임을 교회가 원치 않는다는 보고를 하였고, 교단은 또 다른 목회자를 보내겠다고 했으나 그분 역시 받지 않겠다고 거절하였다.
그분들을 거절한 데는 교회로서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그분들의 이름과 내용은 신상의 문제이므로 소개하지 않겠다.
두 번째 후임으로 내정되었던 분은 우리 교회로 오고 싶은 마음이 매우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집사님에게 전화를 해서 왜 자기를 받지 않겠다고 하는 가운데,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허물을 이야기하며 이런저런 이유로 받지 않는 것이냐고 따졌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교회 집사님과의 통화로만 끝난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는 전혀 다른 이유로 모시기를 거절하는데, 그 목사님은 교단의 행정위원장에게 자기가 생각하는 이유로 청빙을 거절하는 것 같다고 말을 했고, 그때부터 교단과 교회의 마찰이 시작되었다.
후임에 대한 교회의 찬성과 반대에 나는 개입하지 않았고 교회의 결정을 교단에 보고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교단에서는 “교인들을 교단에서 파송하는 목회자를 받도록 내가 설득을 하라”고 요구를 했고, 나는 “교회의 후임 문제는 교회의 성도들의 의견을 직접 듣 결정을 하시라”고 답변하였다.
6. 교단 선교국 발족
1998년 7월 6일 ‘덕유산청소년수련원’에서 있었던 교역자회에서 나의 중국 선교문제가 다시 의제로 떠올랐다. 내가 선교를 하는데 있어 개인적으로 후원자를 모집해서 선교를 하게 하면 그 막대한 후원금을 가지고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선교후원금은 교단에서 모금을 하고 매월 적당한 일정액을 지원하는 것이 좋다는 김명재 목사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통과되었다.
그래서 교단에서는 지금까지 없던 선교국을 신설하고 선교국 명의로 후원금을 모금하여 매월 60만원씩 선교비로 후원을 하겠다고 결정하였다. 이 결정을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이 김명재 목사인데 그분은 그 전부터 중국 선교를 하고 있었으며 일 년에 1억이 넘은 선교비를 지출하고 있다고 은근히 자랑하던 목사님이었다.
1년에 몇 번 나가지도 않는 선교 일정으로 1년에 1억이 넘는 선교비를 지출하고 있다고 공공연히 자랑하던 분이 나의 선교 문제와 관련해서는 중국에서는 한 달에 60만원이면 부자로 살 수 있다면서 개인적인 모금은 하지 못하도록 하자고 한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교단에서는 해외 선교에 대해 지식이 전무한 상태였기에 선교 활동을 하고 있던 분의 의견은 절대적 신뢰를 얻었고 그렇게 통과가 된 것인데 이 역시 황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결정이었으나 나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그 당시 나는 교회에서 년4회에 걸쳐 특사를 받고 있었으며, 성도들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었던 목회자였다. 그 당시 우리 교회는 교단에서 잘되는 교회 재미있는 교회로 소문이 나 있었고, 선교와 관련하여 교단에서 나를 사임하도록 결정하자 많은 사람들이 오고 싶어 하는 교회라는 것이 밖에서 보는 우리 교회의 모습이었다.
목회자의 사례로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던 교회가 매월 8개의 교회와 기관 10개의 가정을 돕는 교회로 발전을 하였고, 전도사였던 내가 할 수 없는 교회의 일로 다녀간 목사님들에게도 4~50만원씩 지출했기에 밖에서 보는 우리 교회는 정말 좋은 교회였고 많은 목회자들이 탐을 내었던 것 같다.
1998년 7월 나는 사모와 3명의 자녀를 포함해 5식구였는데, 교회를 사임하고 중국 선교를 하라고 하면, 모든 목회자가 그러하듯 돈 많은 부자가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모든 가족이 한꺼번에 중국으로 갈 수 있겠는가?
나는 김명재 목사에게 “목사님은 많이 나가야 두 달에 한 번 정도 나가는 단기선교를 하면서도 일년 1억이 넘는 선교비를 쓴다고 자랑을 하셨는데 달마다 중국을 오가야 하는 단기선교사를 시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60만원이면 부자로 산다고 하시니, 목사님의 6회분의 선교비를 엄청 부자로 살 수 있는 600만원으로 계산하면 9천만원이 넘는 나머지 돈은 어떤 용도로 사용하셨습니까?”라고 되묻고 싶었지만 목구멍으로 삼키고 교단의 결정을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때는 저가 항공사도 없던 때라 적어도 중국 비자와 함께 왕복 항공료만 해도 7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는데 교단의 명령을 그대로 받아들여 교회를 사임하고 중국 선교를 한다면 나는 중국을 오가지만, 나머지 가족들은 한국에서 살아야 하기에 사임전보다 훨씬 많은 생활비가 든다는 것은 세 살 아이라도 계산이 될 것 같았는데 월 60만원이면 부자로 살 수 있다는 말이 그렇게 믿어지는 목사님들의 모습 또한 의아스러웠지만 교단의 결정이니 따르기로 하였고, 사모는 일을 해서라도 아이들을 먹여 살리면 된다고 뜻을 모아주었다.
어쨌든지 교단 선교국이 그렇게 발족이 되었고, 그것이 지금의 교단선교위원회의 시작이었고, 나의 선교 문제로 인해 교단에서 해외 선교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일을 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7. 진전되지 않는 후임 문제
나는 교단의 결정에 따라 교회를 떠나기로 했지만 정작 교단과 교회는 후임의 문제를 매듭짓지 못하고 교단과 교회 집사들들과 설전을 주고받고 있으면서, 그 문제의 책임을 서서히 나에게로 돌리기 시작했다.
내가 교회를 떠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교인들이 후임을 받지 않는 것이니 무조건 내가 이사를 하면 된다는 말에 나는 교회에서 무작정 이사를 하겠다고 하였고, 김기종 집사가 이삿짐센터의 차를 예약하기로 하여 우리는 어디로 떠나야 할지도 모르는 막연한 상황에서 이삿짐을 꾸리고 약속한 날에 차를 기다렸으나, 그날 오후가 되도록 이삿짐 차는 오지 않았고, 김기종 집사는 차가 오지 않는다고 하였다. 아마도 내 생각으로는 예약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삿짐 차가 오지 않으므로 우리는 이삿짐을 사택에서 끌어내어 사용하지 않고 비어있던 옛 예배당 건물로 옮겨 놓았다.
그 사이 교단과 교회의 갈등은 더 골이 깊어졌다. 교단은 무조건 교단에서 파송하는 목회자를 받으라는 것이었고, 교인들은 교회가 원하는 목회자를 보내달라는 입장의 차이를 서로 조금도 굽히지 않고 대립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단도 교회도 입장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고, 교단에서는 그 모든 책임이 내가 제천을 떠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당장 제천을 떠나라고 하였다.
이에 나는 중국 비자를 신청하고 선교를 위한 자금을 개인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후원금 모금은 하지 말라고 하였으므로 선교를 위한 자금 준비를 위해 출고 1년도 되지 않는 처남이 선물한 차를 150만원에 처분을 하고 비자와 항공료를 포함한 선교비를 위해 이렇게 저렇게 300만원을 만들어 8월 4일 출국예약을 하였다.
교단에서 대책도 없이 아무리 황당한 명령을 해도 무조건 순종하겠다는 자세로 남겨질 가족도 생각지 않은 채 이렇게 일을 진행했음에도 교단에서는 해결되지 않는 후임 문제의 화살을 점점 강하게 나에게 쏘아대기 시작했다.
8. 중국 출국과 입국
1998년 8월 3일 월요일 시작된 여름집회 첫날 밤 집회를 참석하고 곧바로 올라와 다음날인 8월 4일 화요일 나는 무작정 중국으로 출국하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황당무개한 명이라도 교단의 명령은 무조건 순종하겠다는 나보다 사모가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부부가 헤어져 살아야 하고 아이를 혼자서 키워야 하는데 아무런 불평이나 불만을 토로하지 않고 무조건 응원하고 협조하며 힘을 실어준 사모가 나에게 정말 큰 힘이 되었구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집회를 하고 있던 나에게 9월 중순 무렵 사모가 전화를 했다. 사모가 나에게 전화를 한 이유는, “류재룡 목사님이 전화를 했는데 교단에서 3가지 제안을 했으니 그에 대한 나의 확고한 입장을 표명하라고 합니다.”고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교단에서 제안했다는 내용은
첫째 확실히 중국 선교를 하겠다면 힘껏 지원을 하겠다는 것.
둘째 중국 선교가 힘들어 국내 개척을 하겠다면 힘껏 지원하겠다는 것.
셋째 선교도 개척도 하지 않고 시무하던 교회에 유임을 하려면 교역자회에서 전체의 목회자들에게 사죄를 하라는 것.
솔직하게 세 번째 제안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교회의 후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 왜 나의 책임이라 했을까?
선교와 관련해 내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오히려 순순히 교단의 명령에 순종하여 사임을 결정하고 선교를 결심하고 지원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적으로 선교비를 마련하여 중국으로 출국하여 40여일을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것 외에는 없는데 무엇을 목회자들에게 용서를 구하라고 한 것일까? 오히려 교단에서 잘못된 행정을 하고 있던 분들이 나와 교회에 사죄를 하고 용서를 구해야 했다.
어쨌든 연락을 받은 나는 서둘러 입국을 하였고, 3가지 질의에 대해 4가지로 답변서를 작성하여 모든 목회자들에게 배포하기 위해 프린트하였고, 먼저 3장을 가지고 사모에게 연락을 했다는 류재룡 목사와 함께 행정위원장이었던 배종일 목사의 교회로 방문하였다.
유인물의 내용은 그간의 경과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중국 선교를 하고 있는 나에게 류재룡 목사님을 통하여 교단의 제안을 받았기에 답변을 드린다면서,
첫째, 중국 선교를 하겠으니 약속한 지원을 해 주십시오.
둘째, 중국 선교에 대한 교단의 지원이 어렵다면 개인적으로 후원자를 모집해서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셋째, 선교에 대한 교단의 지원도 개인적인 후원자 모집도 허락지 않으신다면 제안하신대로 개척을 할 터이니 약속대로 지원을 해 주십시오.
---이하 생략---
위와 같은 내용의 유인물을 살펴본 배종일 목사는 유인물을 돌리지 말라고 부탁하면서 나에게 유익되도록 최선을 다해서 힘을 쓰겠다고 하여 유인물을 돌리지 않기로 약속하고 프린트물을 모두 폐기하였다.
9. 권정숙 집사
정확히 언제인지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 날 아침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남천교회에 다니고 있던 권정숙 집사였다. 권정숙 집사는 다짜고짜 화를 내면서 큰 소리로 “조사님이 뭔데 우리 류재룡 목사님이 기쁜교회로 이동하는 것을 반대했느냐?”라고 따졌다.
금시초문인 나는 어리둥절하여 그게 무슨 말씀이냐고 했더니, “교단에서 우리 류재룡 목사님을 기쁜교회로 파송하겠다고 했는데 류재룡 목사가 기쁜교회로 가면 교회가 두 쪼가리로 갈라진다고 조사님이 반대를 했다면서요?”라고 고함을 질렀다.
나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나는 류 목사님이 우리 교회로 파송된다는 말을 들은 일도 없고, 내가 알기로는 우리 기쁜교회에서도 들은 바 없기 때문에 류 목사님의 거취 문제로 의논을 한 일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그래도 권정숙 집사는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한참을 고함을 질러댔는데, 나와 우리 교회에서는 그런 내용을 알지도 못하는 일이라고 몇 번을 되풀이 설명을 하니까, “그러면 배종일이가 그 짓을 했구만!” 이라고 고함을 지르며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10. 목사의 거짓말
어이가 없었던 나는 사실을 알아보니까, 내가 중국에 있었던 9월 교역자회에서인지 아니면 우리 교회 문제로 운영위원회를 별도로 연 자리였는지 그곳에서 류재룡 목사를 기쁜교회로 파송하자는 의견이 나왔는데, “류재룡 목사가 기쁜교회로 가면 기쁜교회가 두 쪼가리로 갈라진다고 하더라”고 최재진 목사가 말을 해서 류재룡 목사의 파송이 취소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최재진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류재룡 목사님이 기쁜교회로 파송되면 기쁜교회가 두 쪽으로 갈라진다고 목사님이 말씀하셨다는데 제가 알기로 기쁜교회는 류재룡 목사님이 파송된다는 전갈을 받은 일도 없고 그 일로 모여서 의논한 일도 없는데 도대체 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까?”라고 했더니 최재진 목사는 자기가 우리 교회 성도로부터 분명하게 그런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아닌가? 류재룡 목사를 파송하자는 의견이 나온 자리가 바로 그 자리이고 그 회의가 아직 끝나지도 않은 상태이기에 교회에는 통보도 하지 않았는데 류재룡 목사가 우리 교회 후임으로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우리 교회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런데 후임으로 보내자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류재룡 목사가 가면 그 교회가 두 쪽으로 갈라진다고 그 교회 집사님이 말을 했다는 그 말을 믿는 목회자들도 수준이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나는 최재진 목사에게 우리 교회의 누가 그런 말을 했는가 재차 물었더니, 최재진 목사는 “아~ 목사인 내가 거짓말 하겠습니까? 내가 안 들을 말을 들었다고 하겠습니까? 목사의 말을 못 믿습니까?”라고 하기에, “우리 교회에서는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없는데 목사님은 들었다고 하시니 삼자대면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 말을 누구에게 들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했더니 우리 교회에서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없고 자기가 혼자 생각해서 한 말이라고 했다.
11. 류재룡 목사
교회의 의사와 상관없이 류재룡 목사가 거론되었고 피해자가 되었으므로 교회는 류재룡 목사를 교회의 담임목사로 청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하고 류재룡 목사를 청빙하는 청원서를 교단에 제출하였다.
그러나 교단에서는 교회에서 청원하는 류재룡 목사를 보내기를 거절하고 교회에서 받지 않겠다는 분을 받으라고 계속 강요하며 교단과 성도들의 마찰은 더욱 심해졌다.
교단의 목사님에게 전화를 받는 집사님들은 기쁜교회의 성도들이 교단의 지도를 받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며 저주를 퍼붓는다고 하였고 이런 교단의 처신은 성도들이 교단의 지도를 더욱 거부하게 만들었다.
12. 총공회자 김태희 목사
기쁜교회는 류재룡 목사를 청원하고 교단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데 교회로 전화가 걸려왔다. 김성진 성도가 전화를 받았는데 당시 총공회장이었던 김태희 목사가 전화를 했다고 하면서 전화를 받다가 갑자기 “목사님이 어떻게 그러실 수 있냐?”며 언성을 높였다.
전화를 끊은 김성진 성도가 나와서 하는 말이 교단에서 보내는 목회자를 받지 않으면 너희들은 저주를 받는다고 했다면 황당해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즈음 김태희 목사뿐 아니라 교단의 다른 목사 몇 분도 기쁜교회의 재직들에게 교단의 지도를 받지 않으라고 전화를 했다가 거부하니까 저주도 하면서 기쁜교회 하나 없어지는 것은 교단에서는 눈도 꿈쩍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재직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분내는 모습 역시 아직도 눈에 선하다.
교회에서는 재직회를 하면서 “교단에서 우리에게 뭘 해준 게 있다고 이렇게 우리를 대하냐고 하면서 이런 교단에 있을 필요가 없으니 탈퇴를 하자”는 말들이 나왔고, 나는 “탈퇴란 말을 그렇게 쉽게 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교인들을 진정시키며 교단과 잘 의논하여 타협점을 찾을 것을 부탁하였다.
13. 또 다른 거짓말
1998년 10월 울산평화교회에서 열린 교역자회에 참석을 했다. 먼저 열린 운영위원회에 들어오라고 해서 들어갔더니 약10여명의 목사님들이 앉아 있었고 행정위원장은 나에게 “김희준 전도사님은 예 아니오로만 대답해 주세요.”라고 운을 떼었다.
류재룡 목사와 함께 유인물을 가지고 갔을 때 유인물을 배포하지 말라면서 나에게 유익이 되도록 자기가 힘을 쓰겠다고 했기에 나는 그 말을 믿고 “알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행정위원장 배종일 목사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김희준 전도사님 중국 선교를 할 테니 교단에서 지원을 해 달라고 했지요?”
“네”
“중국 선교 지원이 안 되면 개척을 할 테니 지원을 해 달라고 했지요?”
“네”
“선교에 교단 지원이 안 되면 개인적으로 후원자를 모집해서 선교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했지요?”
이어서 배종일 목사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1안, 김희준 전도사님이 선교를 할 테니 교단에서 지원을 해 달라고 했는데 우리 교단은 그럴만한 힘이 없어서 못 합니다. 2안, 선교 지원이 안 되면 개척을 할 테니 지원해 달라고 했는데 선교 지원도 못하는데 개척지원은 더 못 합니다. 개인적으로 후원자를 모집하고 기쁜교회는 당장 비우고 어디로든지 떠나십시오.”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선교나 개척에 대한 제안은 나의 요청이 아니라 배종일 목사님이 류재룡 목사님를 통해서 중국에 있던 나에게 사모가 전화를 해서 내가 확실한 답변해 달라는 것이아니었습니까? 목사님의 제안에 답변을 한 것뿐인데 왜 내가 제안을 한 것처럼 말씀하십니까?”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 말도 목구멍 속으로 삼켰다.
처음부터 선교 지원을 할 생각도 없었고, 개척 지원을 할 생각도 없었으면서 마치 교단의 질의에 내가 답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교단에 그런 내용을 스스로 요구하는 것처럼 매도하는 것에 너무나 화가 나서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선교 후원자 모집이 하루아침에 되는 일인가? 이미 7월 회의에서는 모든 선교 후원금은 교단의 창구로 일원화해서 받기로 결의하고 교회들마다 통보된 상태인데 선교 후원자가 마치 회의를 마침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처럼 후원자를 모집해서 선교를 하고 교회는 당장 비우고 어디로든지 떠나라고만 결정하는 것이 옳은 것이었는가?
기쁜교회를 유임하지 않겠다는 것은 목회를 그만두겠다는 말이 아니었다. 교단의 인사이동이 우리 교회로 오는 목회자가 있으면 그 교회가 빌 것이고 그곳으로 바꿔서 이동을 하거나 몇 교회를 바꿔서 이동을 하는 것이지 이곳도 저곳도 갈 곳을 정해주지 않고 어디로든지 떠나라는 것은 매우 잘못된 행정이었지만 운영위원들 어느 누구도 그것이 잘못된 행정이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기쁜교회보다 더 열악하고 작은 교회라도 이동을 해서 목회를 하면서 세웠던 선교계획대로 선교를 할 수 있도록 진행하는 것이 나는 지극히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했지만 교단에서는 기쁜교회에서 나를 쫓아내고 다른 사람을 앉힐 생각밖에는 없었다.
14. 정말 나를 사랑하고 위해서 한 말일까?
회의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있는 나에게 김명재 목사가 다가와서 “어디로든지 떠나라고 하는 것은 김희준 전도사님을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하고 하였다.
회의를 하지 않고 떠나려는 나를 기쁜교회의 당회장이었던 함평희 목사가 다독이며 내려왔으니 회의를 마치고 가자고 하면서 들어가자고 하여 회의에 들어갔다.
그리고 발언권을 얻어 “목사님을 거짓말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한 마디를 했다. 그랬더니 정재완 목사를 비롯하여 원로 목사님들이 자신들을 거짓말쟁이라고 한다며 나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나는 회의장을 나와서 차를 타고 올라와 버렸다.
류재룡 목사는 본인도 기쁜교회로 오고 싶어하고 교회에서도 청원을 하는데 안 보내겠다고 하고 교회에서 거부하는 목회자는 받으라고 하면서 나에게는 그냥 무작정 어디로든지 떠나라는 이상한 행정,
이럴 요량이면 중국에서 선교를 하고 있던 나를 왜 불러들였는가? 이미 교회를 비우고 중국으로 떠나 40여일을 지나고 있었는데 무엇 때문에 불러들여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조건 당장 어디로든지 떠나라고 하는가?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14. 기쁜교회의 최종결정
교회에서 청원한 류재룡 목사는 보내지 않겠다고 하고, 교회에서 반대하는 목사를 받으라고 강요하는 것에 지쳐 기쁜교회 재직들은 내가 없는 상태에서 자체 회의를 열고, 그러면 이 모든 일이 처음부터 없었던 일로 하고 나를 목회자로 유임시키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그 결정 사실을 나에게 통보하였다. 중국 선교를 위해 비운 상태라면 몰라도 국내에 있으면서 멀쩡한 교회의 강단을 비워둘 수 없는 노릇이라 참으로 난감한 처지가 되었다.
그런 가운데 재직을 대표한 집사님이 재직회의 결정사항을 교단에 통보한 것 같았다. 1998년 10월 14일 수요일 오후 김병춘 목사 배종일 목사 김명재 목사 세 분이 기쁜교회로 찾아와서 교단의 수습위원으로 왔다면서 배종일 목사 저녁 예배를 인도하고 회의를 하겠다고 했다.
예배를 마치고 회의를 시작하면서 배종일 목사는 자신을 비롯한 세 사람이 수습위원으로 왔다고 하면서 교단에서는 교회의 입장을 듣지 않겠습니다. 교회는 교단의 지시를 순종하라면서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내가 중국 선교를 한다면서 매월 300만원의 지원을 해 달라고 교단에 요구를 했다고 하고, 성도들에게 교단의 목사들이 거짓말쟁이니까 듣지 말라고 선동하는데 내 말을 듣지 말라는 것과 한 가지를 더 말했는데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발언권을 얻어 앞으로 나가 내가 교단에 매월 300만원의 지원을 요청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했다. 4단계의 선교 계획 중 중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중국의 호구(호적)을 사는데 1회성으로 300만원이 필요하다는 말은 했었지만 매월 정기적으로 300만원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은 한 일이 없다고 했다.
또 내가 교인들에게 교단의 목회자들이 거짓말쟁이라고 선동을 한다고 하는데 기쁜교회 성도들 중에 내가 교단의 목회자들이 거짓말쟁이라고 선동하는 말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 있다면 말씀해 보시라고 반론 발언을 하고 자리로 앉았더니 배종일 목사는 내가 있으면 회의가 되지 않으니 밖으로 나가라고 해서 나는 밖으로 나왔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김병춘 배종일 김명재 세 명의 목사들이 내려왔다. 김명재 목사는 나를 보고 “우리가 정말 김조사님을 사랑하고 위해서 하는 말인데 어디로든지 떠나라”고 했다. 나는 대답했다. “차라리 옷을 벗으려면 벗겠습니다. 어디로든지 떠나라고 하는데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려는 주고 가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말하니까 세 분은 쌩하고 떠나버렸다.
뒤이어 기쁜교회 재직들이 내려왔다. “오늘 회의에서 우리 교회는 교회에서 보내는 목회자는 받지 않고 전도사님을 모시고 그냥 지금처럼 하기로 최종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니 전도사님 떠난다는 말씀 하지 마시고 우리와 함께 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15. 터져버린 울화통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어느 날 배종일 목사로부터 “지금이라도 교인들을 설득해서 교단에서 파송하는 목사를 받게 하라”는 전화가 왔다. 나는 지금이라도 교회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듣고 교회에서 류재룡 목사를 청원했으니 지금이라도 파송하라고 했다. 배종일 목사와 나는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거의 두 시간을 통화를 한 듯하다. 갑자기 배종일 목사가 화를 내며 욕설을 하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서너번 참고 있었지만 듣다가 보니 나도 그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속된 말로 뚜껑이 열려버린 나는 전화기에 대고 “야 임마 니가 잘못해서 안 되는 행정을 왜 내가 잘못해서 안 되는 것처럼 나한테 책임을 돌리냐? 이게 니 잘못이지 내 잘못이냐?”고 고함을 질렀다. 배종일 목사가 전화를 끊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이것은 나의 크나큰 실수이고 잘못으로 생각된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나이로나 목회로나 선배인 목사님께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에 크게 후회를 했고 지금도 그 점에는 죄송하다는 생각을 한다.
어쨌든 그날 이후 선교나 목회자 파송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표면상 이 문제는 해결이 된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고, 교단에서 어떤 문서나 전화로 어떤 통보를 보낸 사실이 없었음에도 기쁜교회에 행정보류처분을 내린 상태였다는 것을 1년을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맺는 말
현재의 나는 선교와 관련한 모든 분들을 이미 마음으로부터 용서했기에 용서를 구하라고 이 글을 쓴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선교와 관련한 사건으로 내가 나쁜 목회자라는 거짓말을 다른 사람들에게 옮기는 것은 추가된 죄를 짓는 것이므로 하지 않는 분들이 되기를 원한다.
목회자들이 개인적으로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나를 나쁜 목회자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러나 교단의 사건과 관련하여 실상을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얘기만 듣고 나를 나쁜 목회자라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옮기는 죄를 짓지 않기를 바란다.
목회자 청빙과 거부권은 개교회의 권리이다. 성도들이 반대하는 목회자를 교단은 파송할 수 없고, 목회자가 가기 싫어하는 교회로 파송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 이동을 동의하는 목회자와 받기를 원하는 교회의 성도들의 동의 하에 목회자의 이동이 이루어지는 것이 순리이다.
교단에서 책임진 선교사의 파송이 아니라 개교회나 개인적으로 단기선교를 한다고 교회를 사임하게 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그것이 정당한 것이라면 단기 선교를 하는 모든 목회자들은 당연히 자신의 교회에서 사임해야 한다. 그러나 자신들은 교회를 사임하지 않고 선교를 하면서도 다른 사람은 선교하려면 교회를 사임하라는 것은 옳지 못하다.
성도가 남을 비방하고 욕하는 것도 합당치 않는 일인데, 목회자가 알지도 못하면서 남을 비방하고 뒤담화를 즐기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적어도 목회자라면 이것을 기본적 소양으로 가져야 할 것이다. 사람을 진심으로 알기 전에는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남을 판단하지 말라. 나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어린 아이들도 자신이 불리한 것은 말하지 않고 유익하도록만 말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의 제목을 영적 전투의 패전이라 한 것은 아무리 억울하고 원통해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각하며 끝까지 참아야 했었지만, 마지막에 인생 선배이며 목회 선배인 목사님에게 "야 임마"라고 무례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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