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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에 대한 예화
고난예화1) 17C 영국의 신학자 토마스 아담스(Thomas Adams ; ?~1653)는 “그대에게 시련을 주는 것은 무엇이나 그대의 유익으로 계산하라”고 말했습니다. 고통을 주는 것을 나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1901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빌헬름 뢴트겐(Wilhelm Conrad Rontgen ; 1845~1923)은 엑스레이를 발명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고등학교 시절 졸업을 앞두고 불미스러운 사고를 저질러 퇴학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독일의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스위스의 공과대학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졸업 후에도 ‘고등학교 중퇴’라는 것 때문에 취직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할 수 없이 불미스러웠던 과거의 행동을 진심으로 뉘우치며 학문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고통스러운 과거를 분발의 계기로 삼아 무섭게 연구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열심히 부지런히 연구를 한 결과, 그 연구한 업적이 알려져 48세 때에 대학교 총장에 임명되었습니다. 그 후, 엑스레이를 발명하여 노벨 물리학상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고등학교 시절의 ‘퇴학’이 그의 인생을 더욱 빛나고 성공적으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과거의 쓰라리고 잘못된 추억, 실패하고 망신당한 일들을 마음속에 담고 열심히 분발하면 더 성공하고 크게 될 수 있습니다. 가난 때문에 부유하게 된 사람이 있고, 질병 때문에 건강하게 된 사람이 있고, 어려움 때문에 더 성공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난당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입니다.
고난예화2)오래된 서구 풍습에는 엄마가 시집가는 딸에게 진주를 건네는 관습이 있습니다. 이 진주는 `얼어붙은 눈물`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진주를 얼어붙은 눈물이라고 하는데는 두 가지의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딸이 시집가서 흘려야 할 눈물이다 하는 것에 대한 교훈이고, 또 하나는 눈물을 흘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눈물은 너로 하여금 가치 있는 인생이 되게 할 것임을 교훈 해주려는 엄마의 의도라고 합니다. 이 의미는 진주가 생성되는 과정을 보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진주조개에 모래알이 들어와서 진주가 되는 것은 다 아실 것입니다. 이 진주는 본래 아비큘레대라고 불려지는 굴속에서부터 만들어집니다. 굴속에 모래알들이 굴러 들어오게 되면 즉각적으로 나카라는 물질이 생성되는데 이것이 모래알을 둘러싸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지나서 나카가 많이 쌓이면 쌓일수록 진주는 더욱 커져 값진 진주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작은 진주라도 수개월이 걸리고 어떤 진주들은 수년씩 걸려서 만들어지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굴속에 들어오는 모든 모래알이 진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굴 자체의 선택 의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내버려 둘 것인가? 진주 조개가 될 것인가? 하는 선택을 합니다. 모래알이 조개의 몸 속에 들어왔을 때, 그대로 놓아두면 나중에는 결국 그 모래알 때문에 살에 상처가 생기고 썩게되고 병들어 죽어버리게 됩니다. 반면에 처음에는 상당히 고통스럽지만 나카를 생산해서 모래알을 둘러싸기 시작하면 이것이 고귀한 진주를 만들게 됩니다.
사람들이 이 진주조개를 찾지 않습니까? 그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저는 우리 인생을 사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고난을 잘 받아들여서 진주와 같은 인생을 만드는 사람은 세상도 귀하게 여기고 찾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문제로 보지 않고 감당할 숙제로 보았던 것입니다. 문제와 숙제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문제는 푸는 것, 즉 원인을 밝히는 것에 목표가 있습니다. 반대로 숙제는 고난을 해결하고 그 책임을 감당하는 일에 목표가 있습니다.
고난예화3)다음의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어느 부잣집 앞에 널직한 빈터가 있었습니다. 잘 살려고 멋있게 지어놓고 담장도 치고 정원도 잘 가꾸었습니다. 그런데 이 집 앞에 빈 공터가 있는데, 사람들은 이 빈터에 쓰레기를 갖다버려 그만 이곳이 쓰레기장이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쓰레기가 하나씩 쌓이면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속이 상했겠습니까?
이 부자가 화가 나서는 쓰레기 차를 불러 이 쓰레기를 다 치웠습니다. 다시 깨끗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부터 또 갖다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부자가 안되겠다고 생각을 하고는 그 쓰레기 싹 치워버리고 철조망을 치고 팻말을 써 붙였습니다.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 그랬는데도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계속 갖다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부자는 쓰레기를 치우고는 몰래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그리고는 팻말에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 몰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음. 적발 시는 고발 조치함." 이라고 더 크게 써 붙였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듯 했습니다. 마침내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을 붙잡아 고발 조치를 하고 벌금을 물게 했습니다. 그제야 동네사람들은 정신을 차리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이전보다 더 영악스럽게 동네사람들은 카메라를 피해서 쓰레기를 갔다 버렸습니다. 부자는 동네사람들은 아주 나쁘다고 욕을 했습니다.
고난예화4)어느 날 시골에서 부자의 아버지가 상경을 했습니다. 노인은 부자아들의 불편을 들었습니다. 노인은 다음 날 아침 일찍 빈터에 나가서 철조망을 걷어 내고 쓰레기를 한곳으로 모으고 팻말도 빼버리고는 땅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삽과 괭이로 빈터를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돌을 골라내고 두둑을 만들어 밭을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무엇인가 정성껏 심었습니다. 노인은 그 후로 며칠동안 만들어 놓은 밭에 물을 주었습니다. 때를 맞쳐 하늘에서 촉촉히 비가 내리자 밭에서는 파란 싹이 나기 시작하더니 보기 좋은 시금치가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팻말이 써 붙였습니다. "필요하신 분은 먹을 만큼 뜯어 가시오." 노인은 부자 아들에게 "얘야, 시금치가 다 쇠면 상추, 파, 오이 같은 것을 심거라. 그리고 꽃도 좀 심어라." 부자아들은 아버지가 일러준대로 했습니다. 동네사람들이 이 밭에 와서 시금치도 뜯어가고 상추도 뜯어가고 오이도 파도 따가고 꽃도 구경하면서 쓰레기만 가득하던 이 빈터는 자연스럽게 동네의 사랑방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과 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동네사람들은 전에 생각한대로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알고 보니 순박하고 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부자와 부자아버지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부자는 자기의 빈터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을 문제로 보고 그것을 막으려는 것에 목표를 두었습니다. 그 결과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가 계속 될수록 이웃과의 관계는 더욱 나빠졌습니다. 반대로 부자의 아버지는 빈터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 땅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빈터에 버리는 쓰레기의 문제의 해결보다는 빈터를 어디에 쓸 것인가?의 고민을 한 것입니다. 같은 빈터를 가지고도 문제로 보는 사람과 감당해야 할 숙제로 보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고난예화5) 지난 20세기 100년 동안 가장 위대한 영화는 벤허입니다. 이 영화를 만든 윌리암 와일러 감독은 시사회를 보고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하나님, 내가 이 영화를 ...' 그 자신도 벤허를 보고 감동했습니다. 벤허의 원 작가는 1880년에 루 윌리스가 "그리스도의 이야기"라는 소설을 썼는데 그 당시 베스트 셀러가 되었습니다. 루 윌리스는 기독교인이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작가로서 어느 날 기독교 반대단체에서 루 윌리스에게 큰 돈을 줄 테니 기독교반대운동을 위한 소설을 써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윌리스는 기독교반대소설을 쓰기위해 먼저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윌리스 마음의 변화가 왔습니다. 그는 기독교반대협회에 가서 돈을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윌리스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가는 성경을 읽고 거기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윌리스가 쓴 소설이 "그리스도이야기"입니다. 이 그리스도 이야기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가 벤허입니다.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서기 26년, 로마제국 시대 유다 벤허(Judah Ben-Hur)는 예루살렘의 제일가는 유태 귀족이었습니다. 어느날 로마의 지배하에 있던 이스라엘에 새로운 통독이 부임해오는데 신임 총독 일행에 주둔 사령관으로 벤허의 옛친구인 멧살라(Messala)도 함께 옵니다. 그러나 옛날과는 달리 그들은 로마와 이스라엘이라는 적대적인 상황에 의해 우정에 금이 갔습니다. 다음날 신임 총독의 부임 축하 행진 중에 벤허의 여동생의 실수로 기왓장이 총독의 머리에 떨어지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를 유대인의 계획적인 사고로 보고 멧살라는 무고함을 알면서도 벤허 가족을 잡아들여 고발을 했습니다. 벤허는 그후에 노예선으로 이송되어 노를 저으며 마음에 친구에 대한 원한을 품고 살아갑니 다. 결국 어머니 미리암(Miriam ), 누이 티자(Tirzah), 연인 에스터(esther)는 감옥에 보내지고 재산은 몰수당한 채 벤허는 노예로 일하는 중 5년 되던 해 해적선의 공격을 받게 되는데 이때 벤허는 함대 사령관 아리우스(Quintas Arrius) 제독의 목숨을 구해줌으로써 제독의 양자가 되고 로마자유 시민이 되었습니다. 벤허는 자기를 고발한 친구 메살라와 함께 전차경주에 참가하여 그를 죽이고 가문의 원한을 갚습니다. 어머니와 누이를 찾는 가운데 문둥병자의 골짜기에서 어머니와 누이를 찾게 됩니다. 문둥병에 걸린 어머니와 누이를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가는 도중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데 물을 떠다 줍니다. 그때부터 벤허의 마음속에 복수심이 사라지고 들끓든 증오심이 치유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셨던 그때에 유다 벤허의 어머니와 누이동생의 나병이 완치됩니다. 고난주간이 오늘부터 시작됩니다. 고난 주간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에 의해 영육간의 치유함이 있기를 원합니다
고난예화6) 초대 교부 크리소스톰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포기하라는 로마 황제의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는 황제의 령을 듣지 않아 체포되었습니다. “그놈을 독방에 처넣어라”“아니 되옵니다. 기도교인들은 독방을 더 좋아합니다”“왜 그런고?”“조용한 기도실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잔인무도한 악당들이 있는 곳에 집어넣어라”“그것은 더욱 더 아니 되옵니다. 악당들을 전도하여 기독교인으로 만들 것입니다”“그래? 그렇다면 끌어내어 목을 쳐라”“폐하! 그건 더 아니 되옵니다” 왜 그것도 안된단 말이냐?”“기독교인들은 순교를 최상의 영광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도 헛일이옵니다. 그들은 순교할 때 울지도 않사옵니다. 오히려 얼굴에서 광채가 납니다” 그러면 그놈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냐!”
고난예화7)미국 보스톤 근교에서 목회를 하는 [해롤드 쿠쉬니]목사가 쓴 "왜 선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기는가?"라는 책이 한 동안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쿠쉬니 목사는 한 인간으로서 천성이 착하고 선한 사람 이였습니다. 그는 500여명이 되는 교회를 목회하면서 보람과 사명을 가지고 열심히 사역을 하였습니다. 교인들뿐 아니라 이웃 주민들에게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목사입니다. 모든 면에서 행복하고 기쁘고 보람찼던 그에게 갑자기 고통이 밀어닥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첫 아들인 아론이 3개월 되었을 때 중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들을 안고 병원에 데리고 가서 진단을 받았습니다. 진단결과 [프로제리아]라는 병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이 병은 [조로]증세가 있는 병으로 성장이 정지되고 빨리 늙어 가는 병입니다. 3개월 밖에 되지 않는 아이가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그대로 늙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아이는 10살 이상을 도저히 살 수 없다는 것이 진단의 결과입니다. 10년 동안 3개월 밖에 되지 않는 아이를 갑자기 늙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키워야 하는 그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이러한 고통을 책으로 쓰면서 그는 말하기를 "고통에도 뜻이 있다."는 말을 합니다. 고통의 과정을 지내놓고 보면 고통에도 뜻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난예화8)[헬렌 켈러]에게 앞못보는 맹인과 듣지 못하는 농인 중에 누가 더 불쌍하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대답인즉, 시력을 잃어 맹인이 되었거나 청력을 잃어 농인이 된 사람이 불쌍한 것이 아니라 육안을 가지고도 비전이 없는 정안인이 불쌍한 것이라고 했다.
어려운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고난이 문제가 아닙니다. 도피하지 마십시오, 나의 미래를 바라보는 비전, 하나님의 약속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통의 소리를 들으시고 나의 삶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새로운 비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하며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장님이였고, 귀머거리였고, 벙어리인 삼 중고를 극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헬렌켈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들이 불가능하다고 수군댈 때 이미 그 불가능은 극복되었다."
고난예화9) 어떤 성도가 극한 고난을 통해 괴로워하던 중 교회의 담임 목사를 찾아가 '하나님께서 왜 제게 이런 고난을 주시는 것이지요?' 라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러자 목사 조용히 웃으며 '지금 약국에 가서 약병 하나를 구해 오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약병을 구해 오자 목사는 약병을 가까이 보여주며 위로했습니다. '이 약병 밑에 인쇄된 글을 읽어보십시오. 잘 흔들어서 복용하라고 써 있지요? 인생에 파문이 일어 고난 당하는 것은 흔드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래야 은혜의 약효가 있는 것이지요'
고난예화10)빌리 그래함 목사의 친구 되는 한 사람은 어려서부터 산간 지방에서 자라났고 그 지역의 산에 대하여는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산에 올랐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미국의 산은 매우 거대하기 때문에 산에서 길을 잃으면 목숨을 잃기 쉬운 것을 잘 아는 그 사람은 당황해졌습니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하여 노력하는 중에 마침 다행스럽게도 산속 오두막집에서 혼자 살고 있는 노인을 만나 그의 도움으로 살아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노인이 남겨 준 다음과 같은 말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젊은이, 산에서 길을 잃으면 보통으로 사람들이 얼른 내려가서 동리나 길을 찾아야겠다고 산밑으로 내려가는데 그것이 죽는 길이라오. 산중에서 길을 잃으면 반대로 위로 올라가야만 사는 것이라오. 위로 올라가서 지금의 위치를 발견하고 어디에 길이 있는지, 어떤 쪽에 마을이 있는지 분명히 방향을 확인하고 내려가야만 사는 것이라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닥칠 때에 낙심하여 세상으로 내려갈 것이 아니라, 더욱 위를 바라보며 하나님을 앙망하여 가까이 나가면, 문제와 역경이 전능자의 눈에 의해 해결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신앙은 위로 올라가야만 사는 것입니다.
고난예화11)어느 랍비가 인적이 드문 샘물 가 나무 밑에서 쉬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도 랍비가 기도하고 있는데 순식간에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한 남자가 샘 가로 오더니 물을 마시고 길을 재촉하여 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서두르다가 지갑을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얼마 후에 또 한 남자가 와서 물을 마시고 떨어진 지갑을 주워 가지고 얼른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뒤에 또 다른 나그네가 샘에 와서 물을 마시고 쉬고 있는데 뒤늦게 지갑을 떨어뜨린 것을 안 처음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와서 쉬고 있는 나그네에게 물었습니다.
"선생, 내가 떨어뜨린 지갑 보았나요?" "지갑이라니요, 나는 지갑 같은 것을 보지도 못했소."
그래서 말다툼이 시작되어 급기야는 심하게 싸움이 붙었습니다. 랍비는 몸을 일으켜 달려가 말리려고 했으나 세게 맞은 사람은 쓰러져 죽었고 때린 사람은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랍비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보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물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양심 없는 사람은 돈지갑을 챙겨 달아났습니다. 한 사람은 영문도 모른 채 맞아 죽었습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내가 하는 일을 잘 모르고 있다.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하지만 모든 일은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 사건의 비밀을 알려주겠다. 돈을 잃어버린 사람은 흠이 없지만 그 돈은 그의 아버지가 훔친 돈이었다. 그리고 돈지갑을 주워 가지고 달아난 사람은 도둑맞은 사람의 아들이었다. 또한 까닭 없이 죽은 세 번째 남자는 지금 그를 죽인 사람의 형을 죽였던 사람이다. 아무도 목격한 사람이 없어 그냥 지나쳐 버릴 뻔했으나 동생을 통해 원수를 갚은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심은 대로 거둔다는 자연 법칙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난예화12)텍사스에 한 할머니가 횡재를 했다고 합니다. 이 노파는 수 십 년 동안 부자집 에서 일했습니다. 그가 섬겼던 부자에게는 30년 전에 집을 나간 외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자는 아들을 만나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유서가 없었습니다. 시 당국에서는 이 집의 가구들을 경매에 붙였습니다. 부자가 쓰던 물건들이라 잘 팔려 나갔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사진이 들어 있는 사진틀은 5달러에도 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 경매를 구경하던 노파가 손을 들었습니다. 노파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였던지 경매원은 1달러만 받고 사진틀을 넘겨주었습니다. 어렸을 때 돌보며 애정을 가졌던 아들의 사진이 있기에 손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없다고 생각되던 부자의 유서가 사진틀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서의 내용은 "내가 사랑하던 아들의 사진을 가지는 사람에게 전 재산을 인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이와 같습니다. 아들을 사랑한 사람에게 부자가 전 재산을 주었듯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천국의 영광과 기업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믿고 주님을 따르십시오. 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기쁨으로 따라 가십시다.
고난예화13)서울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 사 장, 윤경하 장로님의 간증입니다. 그 는 30년 전 교보 빌딩을 설립할 때 그 빌딩 설립에 참여했던 창업 멤버 입니다. 그런데 IMF가 터지고 많은 사람이 퇴출되자 창립자가 윤경하 장로를 불러서 “이제는 좀 쉬시 오.”하고 말했습니다. 30년 동안 몸담고 일했던 회사에 서 명퇴를 당하니까 기가 막혔습니다. '세상이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그래도 나는 창립 멤버인데…. 30년 동안 뼈빠지게 일했는데 나보고 직 장을 떠나라니…. 어떻게 하면 좋을 까?' 그는 이 어려운 상황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자기 어머 니가 떠올랐습니다. 늘 새벽 기도를 하시던 어머니 권사님이 탁 떠올랐 습니다. '어머니, 저는 어떻게 하면 좋아 요? 어머니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 까?' 그는 어머니가 새벽에 기도하시던 모습을 떠올리고는 자기도 '기도해 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나님, 기도하겠습니다.' 그래서 그는 새벽 기도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읽고, 성경을 쓰기 시작했는데 얼마나 마음이 평 안하고 기쁜지 몰랐습니다. 그 동안 '바쁘다. 바빠.' 하면서 성경을 못 읽었는데, 마침 직장에서 퇴출당하 고 시간도 남고 해서 성경을 읽고 쓰니까 그 즐거움이 마음속에 가득 넘쳤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감 사했습니다.
'하나님, 이번에 직장 그만두고 성경을 많이 읽게 하시니 감사드립 니다. 30년 동안 열심히 일만하고 쉬지 못했더니 하나님께서 저에게 포상휴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 휴 가 주신 것 감사합니다.' 그렇게 기도를 드리고 나니 자기 를 명퇴 시킨 주인, 창립자도 밉지 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마운 마음 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명퇴 당한 것 감사합니다. 휴가 받은 것 감사 합니다.' 그리고 너무너무 감사해서 퇴직금 에서 감사 헌금도 드렸습니다. 여러 분, 명퇴 당한 사람이 감사 헌금 드 렸다는 이야기 들어 봤습니까? 너무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 감사합니 다.' 하고 감사 헌금을 드렸더니 더 마음이 평안해 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따르릉" 전화가 왔습니다. 회사에서 '다시 좀 만나 자.' 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만 나보니까 이제는 더 좋은 직장, 더 큰 직장, 더 높은 자리, 교보문고 사 장을 좀 맡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죠. 하나님, 나에게 승리를 주신 것 감사합니다.' 그가 자기 어머니의 새벽 기도, 어머니의 신앙을 깨닫고 ‘하나님,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에게 축복하실 것을 믿습니다. 전화위복 될 것을 믿습니다.’하고 기도했던 것이 응 답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교보문고 사장으로 들어가서 책을 팔았습니다. 그가 들 어가기 전에는 매출이 주말 평균 3 억이었는데, 이 윤경하 장로가 들어 가서 기도하면서 열심히 일하니까 매상이 주말 평균 5억, 두 배 이상 이 올라서 그는 인정받고 존경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수도 올라갔 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 이제 나는 내 삶을 하나님 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하고 고백 하게 되었습니다.
고난예화14)1930년대 초,미국은 심각한 대공황을 겪고 있었다.어느날 클레어린스목사가 공장이 밀집된 지역의 한 흑인교회를 방문했다. 그 교회의 신자들은 대부분 극빈자들이었으며 60% 이상이 실직을 당한 상태였다.그런데 교인들이 부르는 찬송은 힘과 희망이 넘쳤다.그들의 표정에서 절망의 빛을 찾을 수 없었다.클레어린스목사는 설교를 중단하고 교인들에게 물었다. “지금은 대공황입니다.도무지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실업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어요.그런데 여러분은 무엇이 그리 즐겁습니까” 그때 한 교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노래하고 있습니다.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곁에 계신다는 사실이 최고의 희망입니다”신앙은 고난을 희망으로 바꾸는 힘이 있다.절대자에 대한 믿음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인생 자산이다.신앙은 ‘고난의 밤’에도 ‘희망의 아침’을 노래하게 만든다
고난예화15)유명한 신학자, 테르툴리아누스 (Quintus Septimius Florens Tertullianus ; 150/60∼220?)는 다 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고난을 두 려워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없다." 그는, 크리스천들은 고 난에 대해서 아주 익숙해야 하며 고 난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 니다. 이미 예수께서 고난을 받으셨 기 때문에 우리도 겸손하게 고난을 받아들이면 그 고난을 통해서 영광 과 축복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예화16)독일의 문호 괴테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눈물 에 젖은 빵을 먹어본 경험이 없고 자기 침대에 앉아 울면서 고통스러 운 시간을 가져본 경험이 없는 이 는 하늘의 능력을 모르는 사람이 다."
고난예화17)우리는 시인 서정주의 「국화꽃 옆에서」라는 시를 잘 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재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사람들은 피어 있는 국화꽃의 아름다움은 볼 줄 알지만 아름다운 국화꽃이 피기까지의 아픔은 보지를 못한다.
고난예화18)미국의 미시시피강 상류에 최장을 자랑하는 철교가 가동교(Turndridge)로 건설되었습니다. 배가 통과할 때는 철교를 열어서 배가 지나가게 하고, 기차가 통과할 시간이 되면 다시 철교를 닫아 기차가 지나가게 했습니다. 어느 날 그 가동교를 조정하는 기사의 일곱 살 난 아들이 아버지가 일하는 곳을 구경한다고 나왔는데 작동시간이 되어 나가보니 아들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 헤맸으나 대답이 없었습니다. 점점 초조해진 아버지가 미칠 듯이 날뛰며 마구 소리를 지르며 찾으니 아들이 그 가동교 끝에서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시계를 보니 이제 가동교를 닫을 시간은 30초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그 문을 닫지 않으면 수백 명이 탄 기차가 강속으로 곤두박질하고 맙니다. 그러나 가동교를 닫으면 아들이 이음쇠에 끼고 맙니다. 아버지의 심정은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그는 눈을 감고 가동교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기차는 무사히 다리를 건너갔지만 아들은 형체도 없이 으스러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아들을 죽음을 외면하셨습니다.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고난예화19)영국의 아프리카 탐험가 중 두 명의 탐험가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세실 로이드>이고, 다른 하나는 <데이비드 리빙스톤>입니다. <로드>는 남아프리카에서 소위 황금전쟁(Boer War)을 일으킨 사람입니다. 그는 아프리카 원주민 수십만명을 학살하고 황금과 다이아몬드을 벌어들임으로써 당시 영국 의 훈장과 애국자 칭호를 받았습니다. 반면 <리빙스톤>은 아프리카에 가서 노예제도와 영국의 침략정책을 반대하고 식민지 압제 정치를 비판하면서 싸워 그 당시 권력자들로부터 조국의 반역자라는 불명예스러운 칭호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로드>는 무덤조차 없지만, <리빙스톤>은 영국 국립묘지에 안 장되어 많은 방문객이 지금도 그칠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무엇이 이들의 차이를 낳게 하였습니까? 하나는 총칼의 힘으로 정복하고 빼앗았지만, 다른 하나는 대신 고난을 받으면서 스스로를 희생한 결과인 것입니다.
고난예화20)세계 문학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도스토예프키는 러시아가 낳은 천재 작가입니다. 그는 가난한 군의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렵게 성장했습니다. 그의 나이 16세 때 어머니는 폐병으로 돌아가셨고, 18세 때 아버지가 농노들에게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정신발작 증세를 일으켰으며, 그후 고아처럼 외롭게 지냈습니다.
청년 때 사회주의 결사대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어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황제의 특별 사면으로 총살직전에 극적으로 구조되었습니다. 대신 시베리아로 유배되어 4년간 징역살이를 하며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결혼생활도 평탄하지 못했습니다. 아내는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갔습니다. 그후 재혼하여 아들을 하나 얻었으나, 그 기쁨도 잠시뿐, 아이는 시베리아의 극심한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병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자신 또한 간질병으로 종종 쓰러져 정신을 잃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극심한 고통과 시련과 빚쟁이에게 쫓기는 참담한 처지에 있었으면서도 그는 '죄와 벌'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겼으며, 그후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백야'등 많은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고난예화21)우리나라의 '대학생 선교회'하면 빼놓을 수 없는 분이 김준곤 목사님입니다. 모두가 그분을 존경하고 우러러봅니다. 그러나 그분 또한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하셨는지 모릅니다. 어린 시절 동생이 불꽃놀이를 하다가 심한 화상을 입고 죽는 것을 보았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동생이 벌목현장에서 쓰러지는 나무에 치여 비명에 가는 슬픔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6.25 때는 가족들이 공산당에게 학살당하고 자신도 23번이나 그들에게 끌려가 구타당한 끝에 인민재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 몇 년 전에는 고등학교 교감으로 있던 동생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후 사랑하는 딸마저 위암으로 부모 곁을 떠나버렸습니다. 그분의 아픈 심정을 어떻게 다 형언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존경받는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고난예화22)프랑스의 수학자요 사상가인 파스칼은 선천적으로 몸이 몹시 허약하여 종종 심한 복통과 두통에다 결핵성 복막염까지 앓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병약한 몸이었지만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그의 39년 인생 중 비교적 건강했던 기간은 겨우 2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그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내가 찾고 구하는 것은 하나님뿐입니다. 육체의 병이 영혼의 약이 되었습니다. 내가 아는 지식은 단 하나, 주님을 따르는 것은 선이요 주님을 거역하는 것은 악이라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글을 써서 5년간 924개의 주옥과 같은 단상을 남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팡세'입니다. 병은 신체의 장애일 뿐 의지의 장애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육체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면 나에게만 이런 고통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더구나 그 고난 때문에 이렇게 불행하게 산다고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인물들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고난을 극복하고 믿음으로 살며 위대한 일을 해낸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고난이 가져다주는 고통은 누구에게나 똑같지만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고난이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저주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난예화23)기독교사의 유명한 성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도성'이라는 불후의 명저에서 “고통이란 동일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고통이란 있고, 고통은 동일한 것이로되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동일하지 않다. 악한 사람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비방하고 원망하고 모독하지만, 선한 사람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알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와같이 고난을 당할 때 어떤 자세를 가지느냐에 따라 결과도 달라지고 고난의 의미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고난이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저주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고난예화24) 세계 2차 대전이 한창일 때에 미국 한 농촌 마을에 서로 진실한 우정을 나누며 좋은 친구사이로 살아가는 두 명에 청년이 있었다 그런데 한쪽은 교회를 다니고 있었으며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고 또 한쪽은 교회를 안 다니지만 결혼해서 자녀도 있고 늙은 부모도 모시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마을에 주 정부로부터 군데갈 청년들을 징집하라는 명령이 왔다. 그래서 마을에서 청년들을 모으니 전부 20명이었다. 그러나 정부로부터 보내라는 인원은 10명 이었음으로 20명중에서 10명을 제비 뽑기로 하였다. 제비를 뽑고 보니 두명의 친구중에서 교회를 다니는 미혼 청년은 군대를 가지 않는 쪽이 되었고 교회를 안다니며 결혼을 한 친구는 전쟁터로 나가게 되었다. 군대에 가게된 결혼한 청년에 집에선 큰 낙십이 되었다. 이제 막 결혼을 하여서 어린 자녀도 있고 늙은 부모도 있는데... 군에 가 있는 동안 생계를 누가 꾸려 갈 것이며 또 만약에 죽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심각한 분위기에 그 가정은 마치 초상집 분위기 였다. 이 때 교회 다니는 미혼에 친구가 결혼한 친구를 대신하여 자기가 군대를 가겠노라고 제 안하면서 관계 기관에 간곡히 청원하였다. 그는 결국 친구를 대신하여 군대를 가게 되었고 고향에 남게된 결혼한 친구는 그를 위하여 미안한 마음으로 그가 항상 무사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얼마후 군대간 친구가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 사망하였다는 통지가 왔으며 편지와 함께 십자가 목걸이가 유품으로 친구앞으로 보내 왔다. 마지막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져 있었다 '내가 먼저 가더라도 미안해 하거나 슬퍼하지 말 게 다만 자내도 예수 믿고 먼 훗날 천국에서 다시 만나기를 바라네' 고향 친구는 그의 시신을 자기집 뒤 동산에 잘 묻고 정성껏 돌보았으며 그가 보내준 십자가를 편지와 함께 집안 눈에 제일 잘 띄는 곳에 걸어 놓고 항상 십자가 를 보면서 친구의 우정을 감사하고 고마워 하였다고 합니다. 물론 친구의 유언에 따라서 교회를 다니게 되었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친구를 위하여 대신 죽은 그 미혼에 청년을 바로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은 예수님으로 생각해 볼 수가 있으며 친구의 유품인 십자가를 주님지신 십자가로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고난예화25)여기 한사람의 시를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세고 계실 대 나는 돈을 세었고 하나님께서 잃은 것은 세고 있를 때에 나는 얻은 것을 세었다. 내가 곡간에 쌓아둔 물건들의 값어치를 세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나의 상처를 싸메주셨고 내가 주위를 구하고 명예에 눈이 어두었을 때 하나님게서는 나의 무릎위에 놓인 시간들을 세며 눈물지으셨다 어느날 무덤가에 서기까지 그토록 얻으려 했던 것들이 모두 헛된 것임을 알지 못하였고 내 모든 사랑하는 것들이 날아가 버릴 때까지 나는 하나님의 사랑안에 있음이 가장 부유한 것임을 알지 못하였다. 오늘 당하는 고통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계시되고 생명의 법칙이 성취되고 있음을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확신하고 고통을 직면하여 서며 승라히십니다. 십자가 안에 우리의 생명의 신비가 있고 승리의 비밀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고통스런 현실과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고난예화26)오헨리라고 하는 사람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하는 단편소설을 썼죠? 아주 아름다운 얘기죠? 여러분 다 아시는 데로 간단한 것이지만 아주 가난하게 사는 두 연인이 크리스마스가 되는데 선물을 해 주고 싶었습니다. 부인은 머리가 길었고, 남편은 시계가 있는데 시계 줄이 없었어요. 그래서 부인이 자기의 머리를 싹둑 잘라서 머리카락을 팔아서 남편의 시계 줄을 샀고, 또 남편은 시계를 팔아 가지고 부인의 머리핀을 샀습니다. 그들은 귀한 선물을 준비했지만 선물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핀을 꽂으려니 머리카락이 없어져 버렸고, 시계를 차려니 시계가 없어졌습니다. 이런 감동적인 소설을 썼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오헨리가 이런 작품을 쓰게 되었을까? 그의 인생에서 그런 뼈아픈 체험을 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는 은행원으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횡령사건에 걸려들어 가지고 그만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경찰의 눈을 피해 쫓겨다니는데 아내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갔습니다. 잡혀가면 어떡합니까? 아내가 병들었다는데. 그런데 아내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에게는 어린 딸이 있었습니다. 어린 딸을 맡기고 3년3개월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되어 옵니다. 사랑하는 딸에게 선물을 보내야 될텐데 무슨 선물을 보낼까? 그러다 그는 글을 쓴 것입니다. 그래서 오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하는 글을 쓴 것입니다. 그 글을 다 쓰고 이제 선물로 보내야 되는데 자기 이름을 거기다 넣으면 감옥에 가 있는 아버지 때문에 딸이 실망할까봐 이름을 바꿨습니다. 본 이름이 아닙니다. 오헨리라고 그게 필명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작품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자기 마음속에 있는 뜨거운 감정이, 뜨거운 사랑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하는 글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고난예화27) 2차 세계대전 때에 독일에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가 있었습니다. 이 수용소에 갇힌 포로들은 차례 차례로 가스실에 끌려 들어가 죽어야 했습니다. 지금 가스실에 끌려 들어가야 할 사람은 가요니체크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나치 독일군의 발에 매달려 애걸복걸합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요. 나한테는 젊은 아내와 갓난 아이가 있습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요.' 그 때 한 신부님이 나타나서 독일군에게 말합니다. '내가 언제 끌려갈 지 모르지만 내 순서를 이 사람과 바꾸어 주시오.' 그래서 그 날에 그 신부님은 가스실에서 죽었고 가요니체크는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1972년 10월 로마교황청은 그 죽은 신부님에게 성자의 품위를 주었습니다. 그 자리에 참석한 가요니체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날 아침에 신부님은 나에게 미소를 보내면서 가스실로 끌려 가셨습니다. 그 때 나는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지 알게 됐습니다. 나는 마치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옆에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된 소식입니다. 무엇이 복된 소식입니까. 내가 내 죄 때문에 죽어 마땅한데 누군가가 내 대신에 죽어주었다는 것, 이것이 복음입니다
고난예화28)설교내용 얼마 전에 안타까운 사고소식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중심교회 라고 하는 Y교회 부속 성전에서 천장에 있는 석고보드가 떨어져서 사고가 났습니다. 석고보드가 일 톤 정도되는 무게였다고 하는데 1층에서는 칠백 명의 학생들이 예배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고등부 교사되는 분이 떨어진 그 석고보드를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대형사고가 될 뻔한 것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그 무게 때문에 떠밀려서 아래로 떨어져 중상을 입어 죽고 말았습니다. 이 교사는 현직 교사였습니다. 대형사고로 인명피해가 날 뻔한 천정의 석고보드를 버티고 있다가 애석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 성전은 입당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새 건물인데 날림공사로 인해 천장이 떨어지는 사고가 났습니다. 저는 교사되신 그 집사님의 죽음을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을 살리고 본인은 죽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하나의 속죄적 의미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버티다가 결국은 죽었습니다.
고난예화29)스타인백의 유명한 <진주>라는 글이 있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매우 아름다운 진주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작은 흠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 흠만 없앨 수 있다면 그 진주가 세상에서 가장 크고 귀중한 보석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흠이 없어지지를 기대하면서 한 껍질을 벗겨내었습니다. 흠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흠집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 껍질을 벗겨내었습니다. 마지막에 가서 흠집이 없어졌을 때에는 이미 그 진주의 귀중한 가치도 사라진 뒤였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고난만 없어지면 내 인생도 아주 멋진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싶어 그 고난을 피하기만 하면 될 것 같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인생의 고난을 통해 신앙과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고난예화30)<로랑 생>의 이런 말이 있지요 불행한 여자 보다 불쌍한 것은 병든 여자입니다. 병든 여자 보다 불쌍한 것은 고독한 여자입니다. 고독한 여자보다 불쌍한 것은 쫓겨난 여자입니다. 쫓겨난 여자 보다 불쌍한 것은 죽은 여자입니다. 죽은 여자 보다 불쌍한 것은 잊혀진 여자입니다.
고난예화31)거창고등학교 설립자 <고 전영창 교장>의 <검은 보자기에 쌓인 축복>이란 설교집에 보면 이런 간증이 나옵니다. 아버지는 3.1운동 때 옥사하고 어머니는 병으로 죽은 4남매가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양친을 잃고 고아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살기 위해서 어린나이지만 장남은 남의 집 장머슴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동리에 전염병이 퍼져 동생들이 앓아눕기 시작 했습니다. 약 한첩 써지 못하고 막내 동생을 거적에 사서 지게에 짊어지고 공동묘지에 묻었읍니다. 배가 고파 얼마를 잤는지 앓는 소리가 나는데 두 아이 소리가 아니고 한 아이 소리만 나길래 손으로 더듬어 보니 하나가 몸이 싸늘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날이 새기 전에 또 지게로 메어서 공동묘지에 묻었습니다. 사흘 후에 남은 동생 하나도 공동묘지로 가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세 동생마져 잃어버리고 문자 그대로 사고무친이 되었습니다. 우는 것도 너무 울고 나니 울 눈물이 없더랍니다. 한탄하래야 한탄할 힘이 없더랍니다. 낳은 보모도 원망해보고 하나님도 원망을 했답니다. 그래도 낳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더랍니다. 그러나 부모에게 물려받은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머슴살이 하면서 호롱불 아레서 세끼를 그면서 그 새끼줄 눈물로 꼬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 선교사님이 이 기막힌 소문을 듣고 형을 데려다가 공부를 시키고 학교에 보내 주었습니다. 그후 이분이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는데 서울에 유명한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작년인가 기독교 방송 <새롭게 하소서> 시간에 이 분의 간증이 나와요. 성함이 조 아무개 목사님이십니다.
고난예화32)그래서 독일신학자 <에릭 사우어>는 십자가의 의의를 3가지로 나누어서 말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죄에 대한 강한 부정이요 우리 편에서 볼 때 하난미의 사랑의 최고확증이요 예수님 편에서 볼 때 아버지의 권위에 대한 절대 순종이라고 합니다.
전 영창 교장이 1963년에 미국을 가게 되었는데 그때는 미국 가기가 얼마나 힘들 때였습니다. 당시 미국을 갈려면 미국인 가운데 누가 제정보증을 써 주어야 했습니다. 전영창씨의 제정보증을 써 준 분이 계시는데 국민학교 겨우 졸업했지만 자기 이름 사인 하나 제대로 못할 정도로 I. Q가 낮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무식하여서 어디 취직도 못하고 광산을 조금하다가 실패하여 농사를 지었는데 그것도 실패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재재업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성공하여 일약 거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호의호식 하며 잘 살았습니다. <8> 그런데 좀 살만하니 심장이 좋지앉아 50도 못되어 일을 놓아야 할 형편입니다. 이때가지는 자신도 어려운 가운데 자랐고 살아왔지마는 자기 외에는 다른사람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읍니다. 그러나 건강을 잃고 나니 할 일이 없습니다. 하루는 자기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고등학교에서 한국영화를 한다기에 자기 부인과 함께 구경을 갔습니다. 그 영화는 밥 피얼스라는 미국인이 6.25 동란 때 찍은 것으로 한국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것인데 그 중에는 고아들이 한강 철교 있는데서 쓰레기통 속에서 음식물 찌꺼기를 들추어 먹는 광경이 나왔습니다.
이 분이 그 광경을 보고는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드디어 그날 밤 한국 고아들을 데려다 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1955년 가을에 한국에 와서 보니 고아들 가운데서도 혼혈아들이 제일 불쌍했습니다. 그래서 혼혈아 열 두명을 데리고 와서 8 명은 자기가 Z;우고 4명은 자기 동생들이 기르기로 했습니다. 이 사실이 미국 신문에 실렸습니다. 그랬더니 전국 각지에서 어떻게 하면 나도 한국고아들을 데리고 와서 키울 수 있느냐는 문의 편지가 일 주일 만에 4000통이나 왔습니다. 이 분이 바로 홀트 제단을 세운 <헤리 홀트>입니다. 그가 건강을 잃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순종하였기에 그는 더 건강하고 의미있는 삶을 살게된 것입니다.
고난예화33)미국의 백인들이 서부를 개척할 당시였습니다. 어느 마을에 있는 인디언들을 쫓아내야 되겠는데 쫓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 때 인디언들은 넓은 평원에 대규모의 옥수수밭을 만들어 놓고, 그 한복판에 장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백인들은 그들을 쫓아내기 위해서 양 사방에 큰불을 질렀습니다. 불길이 점점 타들어 오기 시작합니다. 이제 한 두 시간만 지나면 그 불길이 마을까지 번지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불길이 거세기 때문에 어느 방향으로든지 뚫고 나갈 수가 없습니다. 인디언들은 모두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그 때 노련하고 경험이 많은 노인 한 사람이 마을 사람들을 향해서 외쳤습니다.
"마을에서 100발자국 떨어진 곳에 불을 질러라! 운동장 크기만 하게 불을 질러라!"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불 때문에 죽을 지경인데 또 불을 지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워낙 노련하고 경험이 많은 노인이 하는 말이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순종해서 마을에서 100발자국 떨어진 곳에 불을 질렀습니다. 드디어 불탄 자리가 운동장 크기만 하게 되었습니다. 노인은 또 마을 사람들을 향해서 외쳤습니다. "이제는 모두가 그 불탄 자리 위에 올라서라!" 왜 그랬겠습니까? 노인은 경험적으로 한 번 불에 탄 자리는 두 번 다시 불에 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을사람 모두가 불탄 자리 위에 올라서서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담당하시고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 값을 다 지불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죄 값을 우리 스스로 지불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두 번 다시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우리의 죄 값을 다 지불해 주셨고,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고난예화34)송명희저 "나로 인하여" 주님의 몸이 나로 인하여 버리움을 당하셨네
주님의 살이 나로 인하여 욥과 같이 되시었네 주님의 온 몸은 피로 물들었음이여
주님의 살이 상처투성이가 되었도다 주님이 나로 인하여 저주를 당하셨네
주님이 나로 인하여 무덤에 들어가시었네
고난예화35)1988년 12월에 소비에트 아르메니아에서 최악의 지진으로 5만5천명이 희생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삽시간에 9층짜리 아파트 건물이 무너졌습니다. 수잔나의 가족들도 콩크리트와 철근속에 뒤덮였습니다. 사방은 어두워서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던 수잔나라는 여인은 엄마를 부르는 4살난 딸아이가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꼼짝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 곁에는 시누이가 시체로 변해있었습니다. "엄마! 목말라 죽겠어요! 물 주세요!" 애절하게 소리치는 딸아이에게 아무것도 줄 수도 없었습니다. 어둠 속을 더듬다가 겨우 유리병 하나를 찾았습니다. 죽어가는 자신의 몸을 겨우 조금 움직여 목말라 죽겠다는 딸아이를 살리고 싶었습니다.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흑암의 공포에서도 딸아이를 살려내고 싶은 모성애의 사랑! 줄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유리병을 깨뜨려 손가락을 사정없이 잘라서 딸의 입에서 넣었습니다. 추위로 감각을 잃어버린 손가락은 고통은 없었지만 "엄마! 제발 좀 더 주세요!" 울부짖는 딸아이를 위해 몇 번을 잘랐는지 모릅니다. 유일하게 줄 수 있었던 것은 손가락을 잘라낸 피! 피! 뿐이었습니다. 이것만이 사랑하는 딸아이의 생명을 살려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난예화36)필립 멜랑크톤은 "환난은 나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고 기도는 환난을 나의 주변에서 떠나게 한다'고 했습니다.플리니우스는 '성공과 번영은 행운아를 시험하고 고난과 역경은 위인을 시험해 본다'고 했습니다 얼마 전에 한 시를 읽었습니다.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 시였습니다. 울 엄마라는 제목인데 어머니를 기억나게 하며 또 예수님을 기억나게 하는 시였습니다 * 울 엄마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주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어리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 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마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 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을 썩여도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 외할머니가 보고 싶라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줄만 한밤중에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주님의 고난의 의미, 나를 위한 고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고난예화37)서울 봉천동에서 병원을 개업중인 윤 주홍 장로님이란 분이 계십니다. 봉천동 사람들은 그 분을 '봉천동의 슈바이처'로 부릅니다. 봉천동이 빈민촌이던 시절부터 그 분의 도움을 받지 않은 아이가 없고 그 분의 신세를 지지 않은 어른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그 동네 사람들은 그 분을 '슈바이처'라고 부르면서 친부모 형제 같이 따릅니다. 그러나 그 분도 처음부터 그런 삶을 산 것은 아닙니다. 1973년에 그 분은 사랑하는 자식을 교통사고로 잃었습니다. 아이를 친 택시 기사가 피투성이가 된 아이를 안고 뛰어든 병원이 공교롭게도 그 분의 병원이었습니다. 그는 결과적으로 자기 아이에게 사망진단을 내린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한동안 밤잠을 설치는 고통의 날들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마침내 일어섰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신의 자식을 데려가신 것은 자신을 슬픔 속에 버려두기 위함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자식처럼 돌보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그는 모든 아이들을 자기 자식처럼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고난예화38)350명의 선교사를 태우고 세계 방방곡곡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둘로스라고 하는 선교선이 있습니다. 필리핀 잠보앙가라는 곳에서 선교사들이 내려 전도집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슬람교도인 젊은이가 나타나서 수류탄을 던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선교사 두명이 즉사하고 32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죽은 선교사는 18세의 소피아였습니다. 스웨덴 출신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19살의 카렌 이라는 아가씨였습니다. 그 선교사는 뉴우질렌드에서 온 사람입니다. 이 꽃다운 젊은이들이 죽은 것입니다. 자녀들이 죽었다는 급보가 본국에 있는 부모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 급보를 들은 부모들이 선교선에 전보를 쳐왔습니다. "우리는 이 비참한 일에 잘 대처하고 있습니다. 더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일을 계속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전보입니다. 부모들이 어떻게 이렇게 대범할 수 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비교한 것입니다. 자기 딸이 죽은 것하고 장차 주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한 것과 비교한 것입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딸 잃은 슬픔을 가누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 그 영광과 비교해 보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기 때문에 "더 열심히 복음을 전하십시오"라고 격려의 전보를 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난예화39)25세의 젊은 청년이 스웨덴 동남쪽 해안을 따라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하늘이 컴컴해지면서 소나기가 내려 퍼붓더니 천둥이 무섭게 하늘을 진동했습니다. 이때 이 청년의 마음속에 강한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숲 속이나 험한 산골짝에서 지저귀는 저 새소리들과 고요하게 흐르는 시냇물은 주님의 솜씨 노래하도다" "주 하나님 독생자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보내 주셨네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신 주 내 모든 죄를 구속하셨네" "내주 예수 세상에 다시 올 때 저 천국으로 날 인도하리 나 겸손히 엎드려 경배하며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라"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이 청년의 이름은 Carl Boverg이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무섭게 온 천지를 울리는 천둥 번개 속을 2마일이나 걸어가면서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창조의 권능과 우주를 장악하는 큰 힘을 체험했고 동시에 고요한 산골에서의 졸졸 흐르는 시냇물도 연상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그의 서사시는 끝나지 아니하고 주님의 구원과 재림에까지 그의 영감은 상승했습니다.
천둥 번개와 같은 두려움, 절망, 슬픔, 고통 속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저 천국으로 인도하실 축복을 마음에 새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참을 수 있습니다. 기다릴 수 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눈을 들어 하늘을 보십시오. 세상 사람들처럼 아옹다옹하지 마십시오. 우리 앞에 있는 영광을 바라보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분명히 여러분은 승리할 것입니다.
고난예화40)마틴 루터 킹 Jr. 목사님의 자서전 "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킹 목사님이 '몽고메리 버스 스트라이크'를 주도하고 계실 때 많은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테러와 폭파 협박에 시달리셨다. 그들의 테러와 폭파 협박은 너무나 거칠고 험하여서 우직한 킹 목사님도 두려움에 옴짝달싹도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목사님이 공포에 사로잡혀서 '이제는 이 일에서 손을 떼어야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였다. 그 순간 기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는 기도했다. 그의 기도는 간절한 기도였다. 지금 혼자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난에 처해 있다는 것을 주님께 간절히 기도드렸다. 그때 머릿속에서 조용히 확신에 찬 음성이 들려왔다. " 마틴 루터, 정의를 위해서 일어서라. 평등을 위해 일어서라. 진리를 위해서 일어서라. 보라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결코 너를 혼자 내버려두지 않을 테니 싸움을 계속하라. " 는 목소리를 들은 마틴 루터 킹 Jr. 목사님에게 고난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고 어떤 어려움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의연히 이길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고 한다.
고난예화41)어떤 국민학생이 주일 학교 선생님들의 권유에 의해서 주일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 소년은 아버지가 교회를 다니지 못하게 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만 그 학생은 교회에 다녀오다가 건널목에서 기차에 치어죽고 말았습니다. 그 아버지는 그 소식을 듣자 너무너무 화가 나서 예배당에 가서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이 사람 저 사람을 때렸습니다. 그리고는 목사님을 나오라고 해서 목사님이 나오시자 내 아들이 죽을 때 하나님이 어디 있었느냐고 따졌습니다. 목사님은 잠자코 그의 말을 듣고 있더니 그가 어느 정도 진정하자 "하나님은 자기의 독생자가 죽을 때 거기 계셨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깊은내용이 담겨 있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죽는 피묻은 고난의 현장에 계셨습니다. 그러한 아픈 상처를 가지고 계십니다.
고난예화41)사도신경에 대표적인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마리아와 빌라도입니다. 이들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점에서 대조적일 뿐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사에서 그들의 위치와 존재 의미에 있 어서 전혀 반대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구원사에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므 로 하나님의 구원사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자신의 야망과 자신의 권좌를 유지하 기 위해 세상과 야합하므로 예수를 거부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것을 모두 포기하고 예 수의 잉태를 받아들이므로 모든 것을 얻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예수를 거부하므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지극히 존귀한 인간성을 대표합니 다. 그러나 빌라도는 하나님의 은총을 거부한 비참한 인간성을 대표합니다.
빌라도는 AD26-36까지 팔레스타인을 다스린 로마 제국의 제5대 총독입니다. 그는 로마 총 독으로서는 유일하게 예수를 직접 대면했습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프스에 의하면, 빌라도 는 로마기를 거룩한 도시로 가져와 유대인들을 불쾌하게 했다고 말해 줍니다. 그뿐만 아니 라 그는 로마 신들의 이름과 형상이 조각된 황금 방패를 성전 안에 걸기도 했고, 수도를 건 설하기 위해 성전세를 전유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빌라도 치정하에서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 로마 병정들이 그들을 살해하는 잔인한 일까지 자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눅 13:1)
그 당시 유대는 로마의 통치지역 가운데 시리아 지역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시리 아 지역에 속한 유대 지역 행정 대리인으로 있으면서 그 지역 행정 책임과 재판권을 맡았습 니다. 본래 그의 근무처는 가이샤라 빌립보에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에 예루살 렘에 와 있을 때 예수께서 유대 산헤드린 앞에서 심문을 받으신 뒤 빌라도에게 끌려오게 되 었습니다. 그 때 빌라도는 예수를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고난예화42)스웨덴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작은 마을에 한 어부가 살고 있었는데, 이 어부의 가장 큰 기쁨은 두 아들을 데리고 바다로 낚시를 가는 것이었습니다. 낚시 도구를 챙겨 두 아들의 어깨에 메우고 자신은 도시락을 들고 바다로 가노라면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어느 화창한 봄날, 세 사람은 여느 날처럼 낚시도구를 챙겨 바다로 향했습니다. 그날 따라 부인은 더욱 정성스럽게 도시락을 준비했고 부둣가까지 따라와서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애들을 데리고 가니 특별히 조심하세요" 잔소리 같은 부인의 말에 남편은 투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알았어!" "어젯밤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그래요" "아 이 사람, 개꿈가지고 또 난리일세 그려" 부인을 위로하고 세 사람은 바다 가운데로 향했습니다. 그날따라 입질이 좋았습니다. 큰 고기가 쉴 사이 없이 올라왔습니다. 세 사람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고기를 끌어 올렸고 고기는 배에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살살 불어 오던 바람이 급기야는 풍랑으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시커먼 구름과 집채만한 파도가 쉴틈없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싸웠을까요? 파도와 싸우던 세 사람은 방향감각을 잃어 버렸습니다. 동서남북을 도무지 구별할 수가 없는 겁니다. 당황한 세 사람은 이리저리 뱃머리를 돌렸지만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막내가 소리쳤습니다. "저것보세요" 막내가 가리키는 곳을 보자 어느 어촌에서 환한 불꽃이 솟고 있었습니다. "저기다" 세 사람은 불꽃이 일고 있는 곳을 향하여 열심히 노를 저었습니다. 포구에 도착해보니 부인이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남편과 아들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배가 무사히 도착하자 아내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을 합니다. "여보 큰일났어요 우리 집이 다 타버렸어요" 그제야 세 사람은 난파직전에 있었던 불꽃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괜찮아요 우린 그 불꽃을 보고 살아왔소" 이것이 인생입니다. 모든 인생은 봄처럼 시작됩니다. 화창한 봄날에 도시락을 준비하여 기쁜 마음으로 소풍을 가듯 그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시작된 인생은 고난과 평안, 그리고 환희와 절망, 눈물과 기쁨이 교차되며 살아 갑니다. 어느날은 기쁨의 날 어느 날에는 절망의 시간이, 또 어느 때는 소망의 시간이 전개됩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고난예화43)일본의 유명한 작가'미우라 아야꼬'는 고난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병들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다. 병들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기적이 있다. 병들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말이 있다. 병들지 않으면 가까이 갈 수 없는 성소가 있다. 병들지 않으면 우러러 볼 수 없는 얼굴이 있다. 오, 병들지 않으면 나는 인간이 될 수 조차 없다. 하나님은 시련과 역경을 다 사용하셔서 우리 삶을 온전하게 세워 나가시며 우리에게 가장 적합하게 이 두 가지를 혼합하십니다. 이 환난의 불을 통과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과정이 끝났을 때 비로서 우리는 보다 나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되어 가는데 그 비결은 하나님의 역사 하심과 환난의 영광을 깨닫고 감사와 기쁨으로 응답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고난이나 핍받을 당하거나 버림을 받았을 때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인내와 소망을 세우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고난예화44)고대 희랍의 전설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솜씨좋은 어느 조각가가 파르테논신전에 장치할 석상을 만들기 위해 커다란 대리석을 정으로 쪼개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대리석을 파 나가고 있던 조각가의 귀에 신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자세히 들으니 그것은 대리석이 내는 고통스러운 신음소리였습니다. 조각가가"왜 신음소리를 내느가?"하고 물었더니 대리석이 하는 말이"당신이 지금 나를 날카로운 정으로 쪼개고 있지 않습니까? 내 몸에 붙은 살점이 이렇게 쩌개져 나가 땅에 버려지지 않습니까" 하고 불평을 했습니다. 그러자 조각가는 크게 노한 소리로 꾸짖기를"어리석은 대리석아 내가 너의 몸을 다듬어서 훌륭한 석상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너같은 뭉뚝한 돌덩이가 무슨 재주로 파르테논과 같은 거룩한 신전에 올려져 후세 사람들에게 존경과 찬양을 받을 수 있겠느냐 너의 고통은 일시적이다, 잠시만 참아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은 일시적입니다.
고난예화45)어느 날 이 고아원에 원인모를 폭탄이 투하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그 중에 ‘행’이라는 아이도 심하게 다쳐 바로 바로 수술해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출혈이 심하여 수술 도중에 수혈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전시에 어디에서 피를 급하게 구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고아원 아이들을 모아놓고 설명을 합니다. “친구를 위해서 피를 조금 나눠줄 수 있는 사람 없니?” 그러나 아무도 선 듯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잠시 후 뒤편에서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행의 옆에 나란히 누워 수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팔에 꽂은 바늘에서부터 주사 관을 타고 친구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자신의 피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이 아이는 갑자기 말없이 눈물을 펑펑 쏟기 시작했습니다. 미군 군의관이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무서워서 그러나, 주사바늘이 아프니, 라고 물어보았지만 모두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말이 잘 통하지 않자 통역관을 불러 다가 물어보았습니다. 통역관은 소년과 대화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 아이는 자신의 피를 주면 자신은 죽는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자신이 죽는 줄 알면서도 피를 나눠줄 생각을 하였다는 데 감동받은 사람들은 아이에게 물어봅니다. “죽을 줄 알면서도 왜 피를 나눠주겠다고 나왔니?” 소년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쟤는 나의 친구니까요.”
고난예화45)톰 아저씨의 오막살이"는 스토우부인이 쓴 책입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라이만 비쳐 목사이셨습니다. 온 가족이 예수 잘 믿는 집안이었습니다. 그녀에게 고통의 그림자가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딸을 낳았는데 중병으로 딸이 죽고 말았습니다. 앉기만 하면 얼마나 슬프든지 이 부인이 언제나 죽은 딸이 생각나는 것이었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슬픔과 고통 속에서 울면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부둣가의 노예시장에서 팔려가는 어린 한 노예소녀의 두 눈을 보았습니다. 두려움과 슬픔으로 눈물이 눈에 가득하였습니다. 매질을 당하여 온몸이 상처투성이었습니다. 엄마와 헤어지지 않으려는 발버둥치는 그 노예소녀의 울부짖음은 그녀의 마음을 꽁딱꽁딱 뛰게 만들었습니다. 그 부인은 딸을 잃은 자신의 슬픔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그 검둥이 소녀의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집에 돌아와서 펜을 들었습니다. 눈앞에는 짐승처럼 끌려가는 그 소녀가 아른아른 거립니다.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상황 속에서의 힘에 겨워하고 있는 노예어머니의 입장에서 그녀는 글을 써 내려갔습니다. 이 소설은 미국사회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수많은 미국인의 양심을 찔렀던 것입니다. 그녀의 글이 미국노예해방의 깃발을 들게 했습니다. 그녀는 고통 가운데서 남의 고통을 보게 되었고 고통을 치유하는 일을 하였던 것입니다.
고난예화46)고대인들은 '트리뷸룸'(tribulum)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곡식의 낱알을 때려 껍질을 벗긴다고 합니다. 영어의 고난이란 단어'트리뷸레이션'(tribulation)도 여기에서 유전하였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도릿개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콩이나 껍질이 있는 곡식을 두둘겨서 낱알을 벗기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고난은 껍질을 벗기듯 사람의 인격을 단련시키기도 합니다. 고난의 학교에는 네 등급이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 학년에서는 '나는 환난을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 법을 배운다고 합니다. 거기서 우리는 고난이란 달리 어찌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고난을 체념하고 견디지 않으면 안 되는 괴로운 것이며, 나를 누르는 멍에로 간주하게 된다고 합니다.
두 번째 학년에서는 학생들이 점차"나는 참고 견디리라."라고 말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입니다. 거기서는 고난이 경건한 인내와 어린아이와 같은 순종에 의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떠맡아지는 짐이 된다. 그러나 결코 그 짐을 자진해서 떠맡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학년에서는 학습의 취지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것은"나는 고난을 견딜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고난을 견디는 것이 발전을 기할 수 있는 훈련이 된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와도 견디면서"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고 고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학년에서는"나는 고난을 꺾을 필요가 있다"라고 적극적으로 말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입니다. 거기서는 고난이 짐이 아니라 영예요, 인내가 아니라 보상이요, 제자됨의 가장 확실한 표징이라는 것입니다.
고난예화47)2차 대전 때 독일군들은 포로 수용소에 갇혀 있던 사람들을 차례차례 죽였습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간수의 호출을 받았습니다. 이 때 이 사람은 살려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나는 살아야 됩니다. 나에게는 장애인인 어린 자식이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그 자식을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나는 살아야 됩니다.'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이 때 이것을 보고 같이 갇혀 있던 한 젊은이가 자원하였습니다. "나는 아무 부양할 가족이 없으니 대신 나를 데려가시오" 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젊은이가 대신 끌려가 죽었고 얼마 있다가 독일군의 패배로 수용소는 열리고 울부짖던 그 남자는 살아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이 사람은 자기 대신 죽은 젊은이를 생각하며 그 수용소 옆으로 이사와서 평생 하루 하루를 그 젊은이를 생각하며 감사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추신: 바쁘게 돌아 다니다 보니 잘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잘 정리하셔서 사용하십시오.
첫댓글 정리가 잘 안되었습니다. 필요하신대로 잘 사용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