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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고 영원하신 하나님, 제가 싸우는 이 싸움이 얼마나 이상한지요. 사람들이 이것에 대해 얼마나 말이 많은지요! 당신께 대한 그들의 믿음이 얼마나 작고 희미한지요! 우리의 육신은 약한데 사탄은 얼마나 강력하며 활동적인지요! 사탄은 악한 영과 세상의 지혜자들을 모두 동원하여 저를 맞섭니다. 이 세상은 얼마나 빨리 지원을 중단하고 등을 돌리는지요! 그러고는 쉬운 길을 찾고 죄인들이 속한 지옥에 이르는 넓은 길로 재촉해 가는지요! 세상이 찾는 것은 오직 빛나고 강하고 크고 높아 보이는 것 뿐! 제가 그것에 눈을 돌린다면 망해 버렸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지혜와 논리에 맞서 제 편에 서 주소서. 그래 주소서. 당신만이 그래주셔야 합니다. 사실, 이 싸움은 제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의 문제입니다. 저 자신만 따진다면 세상 권세 잡은 자들과 맞설 이유가 없습니다. 저도 편안하고 조용한 나날을 지내고 싶습니다. 이 싸움은 당신의 싸움입니다. 의롭고 영원한 것을 위한 싸움입니다. 하오니 제 곁에 서 주소서. 오 참되고 영원하신 하나님, 저는 사람들의 충고를 따르지 않으렵니다. 모두 헛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지혜는 믿을 것이 못 됩니다. 돌아가신 것은 아니지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죽으실 수 없습니다. 숨어 계시겠지요. 저를 이 곳으로 부르신 분이 당신입니까? 의심해서가 아니라 확인하고 싶어서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 허락하소서. 이 막강한 통치자들과 맞서리라고 꿈에도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이런 일을 해 본 적도 없습니다. 당신이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를 지켜 주소서. 그분은 저의 보호자요 변호자가 될 것이며 당신의 성령의 능력으로써 저의 든든한 요새가 되실 것입니다. 저는 희생양처럼 이 의로운 일을 위해 생명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 싸움은 당신의 의로운 뜻을 위한 것입니다. 저는 영원히 당신에게서 떠나지 않겠습니다. 비록 지금보다 더 많은 마귀들이 대적하더라도, 비록 당신이 지어 주신 제 몸이 소멸하더라도, 세상의 압력에 밀려 제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당신의 이름으로 허락하소서. 당신의 말씀과 영이 제 육신을 구원하소서. 제 영혼은 주님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께 속했으며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오니 저를 도우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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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번역성경(출처- http://blog.daum.net/wonsunbe)
종교개혁의 중심 사상
어느 날 감리교 운동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가 기도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는 하늘나라의 꿈을 꾸었다. 그가 황금 유리가 깔린 찬란한 보석길을 따라 하늘나라에 도착했을 때 천국의 수위천사가 정중하게 마중하여 주었다. 웨슬레는 마음에 궁금해하던 한 질문을 수위 천사에게 던졌다.
"천사님, 나와 더불어 영광스러운 감리교 운동을 하던 성도들이 하늘나라에 얼마나 왔습니까?"
웨슬레는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천사의 답을 기다렸다.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천사는 한참이나 하늘나라 명부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조용하지만 또렷하게 말했다.
"감리교인 명단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웨슬레는 큰 충격과 실망 속에 빠지고 말았다. '나의 신앙에 무슨 잘못이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선교활동은 결국 실패한거야. 그렇다면, 칼빈의 교리가 맞았나 보다. 천국은 온통 칼빈 주의자들로 가득 차있겠구나' 웨슬레는 천사에게 힘없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장로교인은 얼마나 있습니까?"
천사는 다시금 생명책을 꺼내어 보기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장로교인은 한 사람도 없소."
'장로교인도 천국에 없다니, 그렇다면 우리들의 종교개혁은 실패를 해 버렸구나. 결국 하늘나라는 천주교인으로 가득 찼겠구나. 그 어려운 종교개혁을 이루었는데 어찌된 일인가' 기가 막힌 웨슬레는 다시 천사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하늘나라에는 모두 천주교인들만 있습니까?"
"여기 이 생명책에 적혀 있는 것을 보면 천주교인도 한 사람도 없습니다."
드디어 웨슬레는 흥분되었고 천사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그렇다면 천국에는 도대체 누가 있단 말이오? 불교인입니까? 아니면 회교도들입니까?"
천사는 조용히 펼쳤던 생명책을 덮었다. 그리고는 요한 웨슬레를 바라보면서 힘주어 말했다.
"여기는 그리스도인들뿐이오!"
천사는 그 한 마디를 남기고는 사라져 버렸다.
종교개혁은 중세기 로마교권이 부패하면서 싹트기 시작했다. 루터 이전에도 많은 개혁을 외친 교회지도자들이 있었다. 얀 후스를 비롯한 위클리프 등 여러 개혁들이 개혁을 시도한 적은 있었지만, 많은 추종자들이 따르지 아니하여 한 순간에 그치지 말았다. 개혁을 시도한 개혁자들은 개죽음으로 최후를 맞이해야만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회의 부패를 그대로 방치하지 않으셨다. 본격적인 종교개혁은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수도사였던 마틴 루터가 비덴베르크 대학 정문에 카톨릭의 부패에 관해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부착한 것을 기폭제가 되어 시작된 것이다.
그 중에도 직접적인 발단이 된 것은 면죄부 판매 때문이었다. 당시 도미니크 종단의 사제 테첼이 간교한 방법으로 백성들을 선동하여 이 면죄부를 사게 되면 연옥의 고통에서 면제된다고 구원의 교리를 사람의 방법으로 미약한 성도들을 현혹시켰다. 면죄부를 판 돈은 교황 레오 10세가 베드로 성당(지금의 바티칸시티에 있는 성당으로서 교황이 기거하고 있음) 증축에 사용한다고 하였으나, 사실 그 수익의 절반은 호헨쫄레른 가문의 브란텐 부르그의 알베르크가 모인츠의 대주교직을 사는데 소용된 빚을 갚는데 쓰여졌다고 밝혀진 적이 있다. 여기에 분노한 마틴 루터는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외치게 되었고, 95개 조항의 항의문을 내걸었던 것이다.
그때 루터가 황제의 소환을 받아 보름스 의회에 서면서 "교황에게건, 의회에게건 난 내 신앙을 버릴 수 없다. 그들의 오류가 빈번하며 서로 모순된다는 것은 대낮처럼 분명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증거를 받아 확신하는 나는 결코 철회할 수 없다. 내가 여기 섰으니 딴 길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라고 외쳤다. 또 보름스에 가는 것은 생명에도 위험이 있으니 가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보름스에 있는 모든 기왓장이 다 마귀가 되어 나를 공격한다 해도 나는 가겠노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 여파가 쯔빙글리의 믿음과 요한 칼빈의 지성이 함께 유럽을 휩쓸었고 존 낙스로 하여금 스코트랜드의 종교개혁을 하게 되었다. 또한 요한 웨슬리로 하여금 영국 감리교회를 창립하게 했고 신대륙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에게 큰 부흥의 불길을 당기게 하였다.
당시 수도사들이 진정한 복음을 몰랐기 때문에 고행으로 자기의 영혼을 구원하려 했고, 기도문을 읽어도 그 내용이 어느 성경에 기초한 것인지도 몰랐다. 심지어 고급 사제들이 대낮에 창녀들과 함께 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교황의 무오설을 믿고 성경의 권위보다 교황의 권위가 더 앞섰던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종교개혁의 중심사상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주님께서 외치신 종교개혁의 중심은 무엇이었는가? 성경에서 말하는 종교개혁의 주제는 무엇인가?
첫째/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다-One Lord
구원은 오직 유일하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는 것이다. 교황이나 신부가 주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고행으로 죄사함 받는 것도 아니며 면죄부를 산다고 구원받는 것도 아니다.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요? 어떠한 위대한 인물도 대신할 수가 없다. 자수성가한 인물도 대신할 수 없다. 세상에서 존경받는 사람일지라도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할 수 없다. 우리 예수님은 선언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3:16)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고 말씀하셨다.
모든 인간의 유일한 대속주가 되시고, 유일한 중보자가 되시고, 유일하게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정신과 신앙은 세상 끝 날까지 교회가 보존해야 될 중심사상이다.
둘째/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One Bible
개혁자 마틴 루터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Back to the Bible)고 역설했다. 교황의 권위도 성경의 권위보다 앞설 수 없다. 성경 외에 그 어떤 사람의 철학도, 사상도, 문헌도, 다른 경전도 우리 구원 신앙의 표준이 될 수 없다. 참고는 될지언정 신앙의 표준도 구원의 표준도 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성경만이 우리 신앙의 표준이며 신앙의 대상이 되며 신앙의 고백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민이었던 장자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가 무엇인가? 호세아 선지자는 그 이유를 밝혔다. "내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너희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4:6) 이뿐만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으며(호4:1)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6:6)고 외쳤다.
1927년 쥘리앵 방다에 의해 출판된 <지식인의 반역>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행군 도중 자꾸 뒤쳐지는 동료를 구타하는 병사를 보고 톨스토이가 꾸짖었다. '친구를 그렇게 대하다니 자네는 성경도 안 읽었나?' 그러자 병사는 '상관께서는 군대의 규율을 안 읽으신 모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현세를 바로잡으려는 톨스토이의 질책과, 엄격한 징벌로 기율을 잡으려는 부하의 책임 의식 가운데 어떤 것이 옳은가? 아니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인가? <지식인의 반역>의 저자 쥘리앵 방다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 50년 이래 유럽에서 이름을 떨친 모럴리스트의 대부분이 -이상하게도 프랑스에서는 작가들이- 성서를 비웃고 군대의 규율을 읽도록 인류에게 권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향해 무엇을 책망하셨는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마15:2-9)고 꾸짖었다. 예수님은 여기서 무엇을 꾸짖었는가? '장로들의 유전'이었다. 오늘날의 장로들의 유전은 무엇을 말하는가? 성경학자들의 주석, 신학자의 해석과 교의, 교단들의 헌법과 교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때와 똑같이 성경의 권위보다 주석이나 헌법 그리고 학자들이 만든 교리가 더 권위가 있다. 교단에서 목사나 직분자들을 징계하는 표준은 성경이 아니라 교단의 헌법이나 교리이다. 그리고 성경보다 교단의 헌법이나 교리를 위배했을 때 정죄하는 경우가 더욱 많다는 것이 주목할 일이다.
장신대 출신의 이동진 목사는 "기독교란 어떤 종교인가?"라는 논제에서 '기독교는 하나님을 성령에 의하여 계시하시는 계시의 종교'라고 히10:16절을 제시했다.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그는 이어서 '기독교란 하나님이 당신의 뜻들인 하나님의 법을 성도들의 심령에 계시를 통하여 주심으로써 하나님이 직접 가르치고 인도하는 종교이다. 계시란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고전2:7) 그것은 성령을 통하여 성도들에게 전달된다. 성령은 하나님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분으로써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통달의 영이시며 또한 계시의 요소와 속성을 갖고 있는 계시의 영이시다(고전2:10). 하나님의 전지성 안에는 밝혀지지 않은 세상의 비밀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러한 하나님의 진지성인 비밀에 대한 지혜, 지식...등 모든 것은 성령의 3대 원리(가르치고, 생각나고, 평안) 중 하나인 가르침을 통해 성도들에게 전달된다(요16;13). 하나님의 전지성을 끝없이 펼쳐진 다함이 없는 무한한 운동장이라고 한다면 성령의 인도란 캄캄한 어둠속의 후레쉬와 같아서 성도 각자의 상황과 필요에 따라 부르짖고, 찾고, 구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는 부분적인 전지성인 것이다. 이러한 전지성을 가지고 성령은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고, 생각나고, 평안을 주시는 것이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리라(요14:26-27)고 하신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들을 계시로 인도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의 사역이다. 계시와 예언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에 계시의 성격에 따라서 예언이 될 수도 있다. 계시에 대하여 교리주의자들은「계시는 사도시대의 계시록으로 끝났다」라고 하며 성경이외의 계시는 더 필요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성경에 대한 대단한 오해이다. 성경 안에 수록되어 있는 모든 말씀과 예언서 안에는 그 모든 계시와 예언을 성령으로 다시 각자에게 직접 계시 즉 성령의 인도해 주겠다는 것이 새 언약의 주요 핵심 골자'라고 제시했다.
오늘날의 계시는 66권외에 새로운 성경을 만들기 위한 계시는 있을 수 없다. 다만 성경에 근거한 계시는 오늘날도 계속 되어야 한다.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 성령의 계시는 계속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모든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의 표준은 성경에 근거해야 한다. 말세에 교회와 세상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말세에 부어주실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 성경을 재조명해야 새로운 교회, 새로운 개혁, 새로운 부흥을 일으킬 수 있다.
셋째/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이 받는다-One Faith
구약이나 신약에서 선포한 구원받는 선행 조건은 우리들의 믿음이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가장 크게 강조했던 것도 역시 '오직 믿음'(Sola Fidei)이었다. 우리도 구원받는 것은 면죄부를 사는데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고행을 행하는 것도 아니며 더욱이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는 것도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당시 교인들은 죄를 지으면 고행을 해야 죄가 없어지는 줄 알았다. 그래서「성계단」을 맨 무릎으로 기어오르면서 모래알이나 유리조각에 찔려 피를 흘리면서도 한 계단씩 오를 때마다 입을 계단에 맞추었다. 지금도 이태리나 스페인에 가보면 그렇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마틴 루터는 여기에 강력히 반발해서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성경의 말씀을 강조하고 외쳤다. 구원은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고행으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강력하게 성경대로 주장했다. 사도 바울은 엡2:8절에서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했고, 9절에서는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했다.
하나님은 구원의 방법에서 어떤 선행을 조건으로 제시하신 적이 없다. 구원은 유대인들의 주장처럼 율법의 할례를 행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또는 침례주의자들의 주장대로 물 속에 잠겨 침례를 받음으로, 아니면 카톨릭의 주장대로 고행의 대가로 받는 것도 아니다. 오직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를 받아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의 공로를 지적으로 정적으로 동적(의지적)으로 인정하고 고백하여 시인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바울은 갈 2:16절을 통해 재차 강조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했다. 또한 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라고 했다.
따라서 진정한 구원은 어떻게 받는가?
성경을 통해 선포하신 예수 십자가의 복음의 메시지를 듣고 또는 선지자나 주의 종들을 통해서 선포하신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선포하신 말씀을 지적으로 정적으로 의지적으로 아멘하여 순종으로 아브라함을 비롯한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처럼 그리고 신약의 제자들처럼 믿음의 증거를 나타낼 때 구원을 확증하게 되어진다. 믿음의 말씀, 믿음의 기도, 믿음의 은사, 믿음의 순종만이 구원을 보장받을 수 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고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으로 정적으로 동적으로 믿으시기를 축원한다.
넷째/오직 성령을 받아야 한다-One Spirit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에 대속의 사명을 다하시고 부활 이후에 감람산에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과 500여 성도들을 모아 놓고 간곡하게 부탁하신 말씀이 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4-5)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전혀 다른 질문을 했다. 그때에 주님도 동문서답을 하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여기서 주님의 간곡한 부탁의 핵심이 무엇인가?
성령의 세례를 받으라. 성령의 불세례를 받으라는 것은 성령의 권능을 받으라. 성령의 은사를 받으라는 뜻이다. 왜 주님은 간곡한 부탁으로 성령을 받으라고 했을까? 주님의 제자들은 왜 성령을 받아야만 하는가?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서야 주님의 말씀의 뜻을 깨달았다.
첫째/성령을 받아야만이 거듭나기 때문이다.
새 마음을 가지는 것, 새 사람이 되는 것,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 할례 받는다고 되는 일인가? 율법을 지킨다고 되는 일인가? 성형 수술한다고 되는 문제인가? 어느 어리석은 사람처럼 성전환 수술한다고 되는 문제인가? 지식으로도, 과학으로도, 철학으로도, 권세를 가진다고 할지라도, 침례(물세례)를 수 십 번 받는다고 되는 문제인가? 옛 사람이 새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은 사람의 힘이 아닌 오직 성령의 힘으로만이 된다는 새로운 소식이다. 스가랴 선지자는 말하기를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나의 성령으로 되느니라"(슥4:6)고 했다.
예수님의 제자 게바는 어떻게 거듭났는가? 성령을 받고 베드로로 거듭났다. 우레라는 별명을 가진 요한은 사랑의 사도로 거듭났다. 자기중심적 사고로 살았던 사울이 성령을 받고 나서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거는 작은 자 바울로 새롭게 태어났다. 새롭게 태어난 바울을 보고 온 유대인이 놀랐다. 그를 경계했던 제자들도 놀랐다. 그는 고백하기를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성령의 은혜로-①카리스:성령을 받은 증거(싹) ②카리스마:성령의 나타남의 은사(잎과 꽃) ③카리스마타:성령의 작용으로서 결과 (열매)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고전15:10)
바울의 고백 핵심은 오직 하나님의 성령의 힘으로 말미암아 새사람이 되었다는 증거요, 모든 사역도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둘째/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할 수 있는 것도 오직 성령의 역사이다.
바울은 고전12:3절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우리 구주 예수님을 나의 대속자로 믿고 나의 구세주로 의지하며 나의 영원한 생명과 나의 신랑 되신 주님으로 믿고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신념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전적 성령으로 말미암아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의 행위가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알게 한다고 말한 것이다. 보편적인 사람들이 그리고 타종교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고 말하는 일이 흔히 있는 것은 성령의 역사하심이 아니라 마귀의 속임수라는 사실을 분별해야 한다.
셋째/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게 하는 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이다.
바울은 롬8:15절에서 그리고 갈4:6절에서 말하기를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했다. 더욱 확증적인 말은 롬8:16절에서 한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더 나아가 이 사실을 보증하는 일도 성령이 하시는 일이라 했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후1:22, 5:5, 엡1:13, 14, 요일3:24)
넷째/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일은 더욱이 성령의 권능이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사명이다. 그러나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은 우리의 힘이나 지식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우리의 힘이나 지식으로 전하는 복음은 변질되는 우려가 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이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강권하신 이유를 이제 알 수 있다. 성경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들이 자기 힘으로 사명을 한 적이 있나요? 역시 바울도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강권한 것은 자기 체험을 통해 얻어진 것으로 우리에게 권면한 것이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고 싶나요? 성령을 충만히 받기를 기도하라. 오직 성령이 임하실 때에 증인이 될 수 있다.
다섯째/하늘에 영원한 집을 기업으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오직 성령의 힘이다.
바울은 고후 5장에서,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에 대해서 전하면서 이 일을 이루고 이 일에 보증이 되는 것도 성령이라 하셨다.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고후5:5)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자격에서 육체의 열매가 아니라 성령의 열매라고 바울은 말한다. 따라서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일은 오직 성령의 역사를 통해 나타내신다.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다.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일꾼이 될 수 있다. 이 시대를 개혁하는 일꾼은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한다. 성령과 함께 세상을 개혁하는 일꾼은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과거나 지금이나 성령과 함께 세상과 교회를 개혁하는데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 특별히 종교개혁 정신과 배치되는 이단 신학, 자유주의 신학 사상을 배격하며 하나님의 교회를 지켜나가야 한다. 특히 말세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는 세계 종교를 하나로 만들어 사탄에게 경배하게 만들려고 기독교의 유일 사상을 흔들고 혼란스럽게 급기야는 부정하게 하려는 음모가 시작되었다. 현재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마귀의 소굴로 만들고 교회를 근본적으로 흔들며 파괴하려는 자유주의 신학, 종교다원주의 신학, 해방 신학, 민중 신학, 여성 신학, 후기 근대주의 신학은 목숨 걸고 싸워야 한다. 배격해야 교회가 살고 사도행전적 교회를 회복하고 사도들의 영성을 회복할 수 있다.
1973년 방콕에서 열린 WCC 대회에서 복음화와 선교는 의미없는 일이라고 선언하고 해방이 참된 선교라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의식화 교육이나 해방운동을 위해서 선교비를 지출하면서 영혼 구원이나 복음 전파를 위해서는 지불정지 명령을 내렸다. 1976년 호주 캔버라에서 열린 WCC 대회에서는 한국의 이화여대 조직신학 교수인 정현경은 한풀이 춤을 추면서 하갈의 영과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이여! 어서 오라고 했다. 그는 성령을 동양의 氣로 설명하고 해석하여 교계를 어지럽힌 적이 있다.
오늘날 기독교의 유일사상을 위협하여 교회와 성도들을 어지럽게 하고 성도들의 바른 길을 나쁜 길로 미혹하고 호도하는 사상과 세력이 있다.
첫째/후기 근대주의(Post-Modernism)사상이다.
이 이단 신학사상은 지금까지 내려온 전통적인 진리를 모두 거부하는 사상이다. 특히 홍정수 교수에 의해 한국에 널리 영향을 미치게 했다.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으로 해석하고, 홍해 바다 이적을 갈대밭으로 해석했다. 그는 어처구니없는 많은 사상을 주장했다. 결국 그는 독일의 철학자 니체처럼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후기 근대주의 신학사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현대 과학적인 방법으로 해석하여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으로 해석하여 유일사상을 부정하려는데 있기 때문에 단호하게 배격해야 한다.
둘째/종교 다원주의 사상이다.
이 사상은 카톨릭 신학자들 중심으로 나타난 신학사상이다. 카톨릭이 부패해지면서 결국 하나님의 유일 사상을 부정하고 타종교와 같이 모든 신을 인정하고야 말았다. 최근에는 인도 신학자들을 통해 세계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러한 영향을 우리나라 학자들과 목회자들로 받게 되었다. 다원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사람은 류영모, 함석헌, 유동식, 변선환, 이현주, 길희성, 오강남 교수등이 있다. 시간상 이들의 사상을 구체적으로 전해줄 수 없어 아쉬움이 있지만, 종교 다원주의 사상은 21세기의 무서운 악이요 독이다. 다원주의 사상에는 무서운 함정이 숨어있는 사상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핵심 사상은 무엇일까?
절대 진리는 없다. 다른 종교에도 진리가 있다.
고전 13:11절을 들어 어린아이일 때는 배타주의 신앙이며,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고 다원주의 신앙이 된다.
이들은 성경의 기록을 역사적으로 보지 않고 상징적으로 보는데 있다.
셋째/여성 신학 사상이다.
한 마디로 하나님은 여자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고 어머니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기도할 때 하나님 어머니라고 해야 한다.
요즘 현대에 와서 여성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신학을 여성 중심으로 정립하여 여성의 한을 풀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이로 인해 남자를 사랑하고 존경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복수의 대상, 증오의 대상, 공격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극단적인 여성 신학에서는 그리스도의 구속도 부활도 천국도 지옥도 부인하는 사례도 있다. 여성 신학은 21세기의 아주 위험한 사상이며 여성의 한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는 것이다. / <천국이 있는 풍경>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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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결혼(1525년 6월13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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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 성지
(아이슬레벤, 아이제나흐, 바르트부르크성)
아이슬레벤 루터 생가 (출처- http://blog.daum.net/wonsunbe)
루터는 1483년 11월 10일 작센안할트주 아이슬레벤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만스펠트로 이주하여 광부로 일하다가 광산업을 경영, 성공하여 중세 말에 한창 득세하던 시민계급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엄격한 가톨릭신앙의 소유자였고 자식의 교육에도 관심을 가졌다.
루터가 1483년에 태어나 1546년 63세에 생애를 마감한 것은 아이슬레벤이었으나, 그가 활동한 중심 비역은 비텐베르크였다. 마르틴 루터는 때때로 태어난 고향을 방문할 때가 있었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생가는 1689년에 화재로 거의 전소되어 1693년에 재건되었다. 생가가 재건될 때, 위층은 안뜰 쪽으로 아케이드만큼 불거져 나왔으나, 후기 고딕 양식의 중심 부분은 보존되었다. 의자가 딸린 현관, 입구의 각진 곳을 깎아 낸 평평한 천장, 1층의 아래쪽 계단 등 이전 건물의 요소가 새로운 건물에 도입되었다.
아이슬레벤 거리의 루터 동상(출처- http://blog.daum.net/wonsunbe)
아이슬레벤 거리의 루터 동상
<루터의 생가 아이슬레벤>
루터의 생가
루터의 생가
아이슬레벤 루터 생가
아이슬레벤 루터 생가 지역 모형(출처- 정해은 목사)
루터의 생가
루터의 생가
루터 부모(출처- 정해은 목사)
루터 부모
루터 아버지(출처- http://blog.daum.net/wonsunbe)
루터 어머니
루터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
1525년 6월13일 루터는 비텐베르크 시민들의 축복을 받으며 카타리나와 결혼했다.
이때 루터의 나이는 42세, 신부는 16세 아래인 26세였다.
마틴 루터
멜랑흐톤
멜랑흐톤
루터의 평생 동역자였던 멜랑흐톤이다. 그는 21세의 젊은 나이에 비텐베르크대학의 그리스어 주임교수로 부임했던 천재적인 학자였다. 그는 본래 신학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비텐베르크대학에 와서 루터를 만나게 되었고, 그의 영향으로 종교개혁운동에서 충실한 루터의 동지가 되었다.
대석학이었던 멜랑흐톤은 루터가 그의 신학을 정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됐고,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위로하고 격려해주었다.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할 때, 어학 대가였던 멜랑흐톤은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루터성경’을 오늘날까지 독일 사람들의 사랑 받는 번역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루터가 이끈 종교개혁이 성공한 것은, 루터 곁에 충성스런 동역자 멜랑흐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비텐베르크시 광장에는 루터의 동상과 멜랑흐톤의 동상이 나란히 서 있어, 종교개혁이 두 사람이 함께 이룬 대업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이슬레벤 루터 임종의 집>
아이슬레벤 루터가 임종한 집
루터가 임종한 집은 별 흠집 없이 보존되고 있다.
이곳에는 루터의 초상화와 오리지널 편지, 복제 데스 마스크가 있다.
용골 모양 아치로 테를 두른 의자가 딸린 현관이 파사드를 장식한다.
특히 임종의 방을 포함한 각 방은 역사적인 고증을 거친 치밀한 복원 작업을 통해 추억의 장소답게 꾸며져 있다.
아이슬레벤 루터가 임종한 집
아이슬레벤 루터가 임종한 집
루터가 임종한 방
데스 마스크가 있는 루터의 임종의 방.
루터가 마지막 설교를 한 안드레아스 성당에서 가까운 장소에 있다.
마틴 루터, 크라나흐 작, 1543
루터의 친필
루터의 친필(출처- 정해은 목사)
<아이제나흐 루터하우스 박물관>
아이제나흐 루터가 청소년기를 지낸 곳(출처- http://blog.daum.net/wonsunbe)
독일의 중부 알프스라 할 수 있는 튀링겐 숲속에 자리잡고 있는 아니제나흐 시, 루터와는 그의 생애를 통하여 다섯번의 체류를 통하여 깊은 인연을 갖게되는데, 이는 루터 어머니의 고향이라서 친척들이 많이 있음에 연유한다고 볼 수있다.
루터가 15세이던 1498년부터 1501년까지 교구학교인 St George School을 다니며, 루터의 학교생활은 근면 건실하여 선생들로부터는 물론 학우들로부터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음악에 조예가 깊어 작곡은 비평 뿐만 아니라 스스로 작곡을 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마르틴 루터는 종종 이 도시를 회상하며 ‘오 나의 사랑스런 도시여!’ 하곤 했다.
1521년[38세]에는 보름스의 제정국회 청문회 증인으로 소환되어, 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에 죠지 교회 (Georgenkirche)에서 설교를 한다. 그리고 위장납치되어 은둔하고 있는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그는 신약성경을 헬라어 원전에서 독일어로 번역하는 역작을 남긴다.
1529년[46세]에는 마르부르크에서의 종교논쟁에 참여키 위해 가는 길에, 그리고 노년인 1540년[57세] 지방감독이었던 J. Menius의 집에 3주간 머무르며 교제를 나눈다.
이러한 루터 기념관들은 잘 관리되고 있으며, 그중에도 루터의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Luther House는 독일의 전통 가옥으로서 문화재로 보전이 되고 있으며, 또한 유물 및 기념품들이 안에 전시되어 볼수있다. 예를 들어, Lutherstube(공부방)에서는 루터의 학창시절을 볼수있고, 2층으로 올라가면 개신교 목사관의 역사를 볼 수있다. 카알 광장(Karlplatz)에는 루터 생전의 모습을 실제 크기로 성경을 손에 들고있는 동상을 볼 수 있으며, 동상의 받침대에는 루터가 아이제나흐에 체류한 기간들이 부조되어있다.
아이제나흐 루터하우스 박물관
아이제나흐 루터하우스 박물관
아이제나흐 루터하우스 박물관
<아이제나흐 죠지 교회>
죠지 교회(출처- 정해은 목사)
아이제나흐 광장 옆 루터가 설교하였던 George교회는 연중 무휴 관람할 수 있다. 이 교회는 루터가 1521년 보름스의 제정국회 청문회 증인으로 소환되어, 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에 죠지 교회 (Georgenkirche)에서 설교를 하였던 곳이다.
그리고 위장 납치되어 은둔하고 있는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그는 신약성경을 헬라어 원전에서 독일어로 번역하는 역작을 남긴다.
설교단
죠지 교회
죠지 교회
죠지 교회
마그데부르크, 루터가 공부한 도시
<벼락이 떨어진 곳과 회심 서약을 한 교회>
벼락이 떨어진 곳과 회심 서약을 한 곳
벼락이 떨어진 곳과 회심 서약을 한 교회 (공사중)(출처- 정해은 목사)
벼락이 떨어진 곳과 회심 서약을 한 교회(출처- http://blog.daum.net/wonsunbe)
벼락이 떨어진 곳과 회심 서약을 한 교회
마틴 루터
마틴 루터
벼락이 떨어진 곳과 회심 서약을 한 구 교회
벼락이 떨어진 곳과 회심 서약을 한 교회 제단
<바르트부르크성>
바르트부르크 성
루터의 일기 "독일어 신약성경을 번역하기위해 머물렀다는 일기"(출처- 정해은 목사)
바르트부르크성(출처- http://blog.naver.com/hmlee6542)
보름스 종교재판에서 촬스5세 황제는 1521년 5월 26일 루터의 나이 38세 때, 교황과 마찬가지로 루터를 파문했다.
'마틴 루터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정원에 받아들이지도 말고 그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지 말 것이며, 그를 숨기지 말고, 은밀하게 공공연하게 말로나 행위로써 그에게 도움을 베풀거나 추종하거나 지지하거나 혹은 원조하지 말 것이다. 그를 잡을 수있는 곳에서는, 그를 붙잡아 제어하고 생포하여 단단히 결박한 다음 우리에게 압송해야 한다.'
이때 작센주 선제후 프리드리히는 ‘납치극’을 벌여 루터를 그의 영지 바르트부르크(Wartburg) 성채로 피신시켰다. 루터는 이 성채에서 가명을 쓰고 머리와 수염을 길게 길러 변장을 한 채, 10개월 동안 도피생활을 했다.
이 기간은 루터에게는 시련의 시간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신약 성경 전체를 헬라어에서 독일어로 번역하는데 성공했고, 곧 이어 구약 번역도 시작되었다. 경이롭게도 총 12년이나 걸려 1534년 9월[51세] 최초의 완역본인 비텐베르그 성경이 출판되었다.
비텐베르크로 돌아와서는 새로운 교회 형성에 힘썼는데, 처음에는 멸시의 뜻으로 불리던 호칭이 마침내 통칭이 되어 '루터파 교회’가 성립되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에서 파생된 과격파나 농민의 운동, 농민전쟁에 대해서는 성서 신앙적 입장을 취함으로써, 이들과는 분명한 구분을 지었다.
그 뒤 만년에 이르기까지 가톨릭 교회와 종교개혁 좌파 사이에서 이들과 논쟁 ·대결하면서, 성서 강의·설교·저작·성서번역 등에 헌신함으로써 종교개혁 운동을 추진하였는데, 영주(領主)들간의 분쟁 조정을 위하여 고향인 아이슬레벤에 갔다가, 병을 얻어 그곳에서 죽었다.
프레데릭 공, 바르트부르크성으로 루터를 피신케 하고 돌보아주었다.
바르트부르크성(출처- http://cafe.naver.com/stronghold)
바르트부르크성
바르트부르크성
예배실
예배실
강단보
독일어 성경 번역 방(출처- 정해은 목사)
독일어 성경 번역 방
바르트부르크성 루터가 성경을 번역한 방
전시실
루터의 번역성경(출처- 정해은 목사)
루터의 번역성경
루터 번역성경(출처- http://blog.daum.net/wonsunbe)
마틴 루터
마틴 루터
마틴 루터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
<출처: 성화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