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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샘의 시창작강의 (12) : 시창작의 4단계
시라는 예술작품이 탄생되기까지는 일정한 시간과 단계가 요구된다. 시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이 태어나는 데는 그에 걸맞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아기가 태어나려면 엄마뱃속에서 열달이라는 시간이 걸려야 하고 사과 한알이 제대로 익기 위해서도 봄에서 가을까지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는 일정한 단계마다 꼭 필요한 과정들이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시인이자 비평가인 루이스는 시를 창작하는 과정을 3가지 단계로 나누었는데, 첫 번째는 "시의 씨앗"을 얻는 단계이고, 두 번째는 씨앗의 성장과 발전단계이며 세 번째는 구체적 표현을 찾는 단계이다. 여기에 더하여 우리는 '시 다듬기'를 첨가하여 시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4단계로 구분해 보았다. 그러나 이것이 꼭 모범답안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시를 쓰는 사람마다 제각기 지닌 개성이나 스타일에 따라서 창작의 과정이나 방법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앞강에서 모짜르트형이나 베에토벤형처럼 중국 당나라때 시의 쌍벽을 이루었던 이백과 두보는 시를 짓는 방법에서 아주 대조적이었다고 한다. 이백의 경우 단숨에 시를 써 내려가서 고치는 법이 없었던 반면, 두보는 시를 짓는 데 많은 시간과 뜸을 들였고, 특히 시 다듬기에 지극한 노력과 정성을 쏟앗다고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어떤 시인들은 시상을 붙들자 마자 바로 시를 써 버리거나 시상을 오래 묵히거나 시 다듬기를 무수히 거쳐 한 편의 시를 완성하는 경우도 있다. 시인마다 천차만별한 시 창작과정이야 어떻든간에 지금 우리의 관심은 가장 일반적인 과정을 살펴보는 일이다. 시를 처음 배우고 창작해 보려는 시인 지망생들에게는 시의 씨앗얻기에서부터 시상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구체적 표현과 시 다듬기 과정을 알아두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1. 시의 씨앗얻기
무성한 이파리들과 우람한 둥치, 넓고 풍성한 그늘을 드리운 아름드리 나무도 그 시작은 한 톨의 씨앗이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라는 성숙한 생명체도 그 탄생은 작은 시의 씨앗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농부가 밭에 씨앗들을 뿌리는 것처럼 시를 쓰는 사람들도 마음의 밭에 씨앗들을 뿌린다. 이 씨앗들은 보이지 않는 내면속에서 자리를 잡고 시인의 모든 정신적 영양을 받으며 성장하게 된다. 이는 마치 수정된 난자가 자궁의 점막에 붙어 모체의 영양을 흡수하는 것과 똑같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의 씨앗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시상의 첫 출발점이며 삶속에서 걷어올린 절실한 체험, 인상적인 이미지, 강렬한 느낌이나 감정, 불현듯 스쳐오는 영감, 무의식 속에서 '툭'하고 떨어져 나온 하나의 생각, 한순간에 집중적으로 얻어진 통찰등이라 할 수 있다.
루이스도 이 시의 씨앗을 가리켜 "그것은 어떤 감정, 어떤 체험, 어떤 관념, 때로는 하나의 이미지나 한 행의 시 구절일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들의 삶이란 세계와의 끊임없는 접촉이며 경험들의 연속이다. 이 접촉들과 경험들의 연속은 사람의 삶이 감옥같은 북한의 전제독재 정치체제의 사회속이거나 감옥이나 골방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이상 다분히 다양한 종교적, 문화적, 사회적, 예술적, 경제적, 정치적인 사람의 세상과 이 세계와의 만남과 접촉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우리의 생각과 감정은 끊임없이 반응하게 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마음속에 절실하게 남는 체험이 있을 수 있고 잊혀지거나 지워지지 않는 대상의 이미지가 아른거리게 마련이다. 때로는 섬광처럼 스쳐오는 영감을 느낄 수도 있으며 강렬한 심리적 충격이거나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즉 일상생활 속에서 뭔가 남다른 미적 체험을 통하여 시를 쓰고 싶다는 욕구를 생기게 하는 것이 시의 씨앗들인 것이다. 그러니 이 시의 씨앗은 시를 쓰는 동기이거나 계기 혹은 시를 쓰는 이의 마음에 떨어진 최초의 상념이라고 할 수 있다.
동치미 연가(連歌)
맑은 샘
어느 음료가, 어느 술이 닮을 수 있으랴
시리도록 춥고 발이 얼어도 그것은 잠깐
겉으론 순결하게 쌓인 눈도
이젠 더럽게 붉은 먼지들이 섞였으나
나는 따로 언 푸른 빛 비친 얼음을 깨고
뜨거운 피보다 더 맑은 하늘의 생명을 뜬다
맑고 차디찬 정화석간수(井華石間水)부어
소금절인 무우는 하늘의 짠 눈물처럼
달콤한 배는 별여신(女神)의 사랑처럼 녹아 익어
어제 그제 세상사, 아무리 머리 아파도
달짝지근, 짭쪼르니 알싸하니 쨍해
구수하니 편안 하다네
황홀한 맛 동치미에 내혀와 영혼(靈魂), 기꺼이 사로잡혀
천년 전에도, 천년 후에도 이 기막힌 맛이 기억날까만
어느 고독한 방랑자가 눈밭에서 목말라 마셔도
황혼이 깃든 찝질한 수액의 맛도, 공포스러운 쾌락의 맛도 아니다
문자(文字)의 카피지만 천년 후의 죽음과 노예에 저항(抵抗)하는 맛
고독한 혀의 영원한 맛이여
하늘이 내린 음료수, 약(藥)이여
시리도록 춥고 발이 얼어도 그것은 잠깐
달짝지근, 짭쪼르니 글로벌 알싸아
아직도,
붉은 술에 취한 자여
마음없어도 주는 차원, 그 사랑을 모르는 철없는 자여
문화의 이해에 소화불량(消化不良)한 예술가여
감히,
고독하지만 홀로 즐거운 겨울 방랑자 선율에 취해
*글로칼 동치미 한 그릇 쨍하니 제대로
마시지 않으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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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음악 : Franz Schubert- Winterreise - Güra/Berner
클릭: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moaUrDKCwaE
*주
* 글로칼 : 글로벌 + 래디칼 (필자의 신조어)
필자의 이 졸시를 쓴 날은 아주 추운 겨울밤의 토요일이라 바깥은 춥고 오랫만에 따뜻한 구들목에 이불 뒤집어 쓰고 푸욱 자고 나서 저녁무렵 깨어 쓴 시다. 잠깨어 머리가 약간 띵한 김에 맞은 저녁식사 시간, 여러 반찬들 중에서 "이야 이번 겨울 어머님이 담그신 동치미맛이 기가 막힌다." 나는 전날 오랫만에 정치적 경제적 생각을 같이하며 좌파정권 시절 그 타도를 위해 같이 데모했던 동지들을 만나 좀 과음을 했었다. 이제는 모두 거리운동을 접고 초보 대학교수로, 나는 중견 언론인으로, 어떤 녀석은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변호사로 활동하던 터였다. 요즈음 TV시사프로그램에서 좀 잘나가며 튀는 후배들의 열정을 칭찬하고 좀 모자란 점들을 지적하다가 북한 장성택 사건이 터져 우리는 심각하게 나름대로 앞으로의 예측, 보다 낳은 대응정책들을 토론하다 보니 모두들 과음을 한 것이다. 그 중에 등단 시인은 필자 혼자밖에 없어 좀 아쉽기도 하지만 말이다.
자연히 정치, 경제적으로 진성 자유주의자들인 우리와는 달리 정치 사상적으로 반대편 소위 남한의 자칭 정신질환적 진보 좌파 사실왜곡 선동 말쟁이들에 대한 비판이 가세하다보니 원시,미개사회, 비문명사회, 대중무지 사회도 아니고 발전되고 발전된 현대문명 사회의 대통령 선거나 큰 선거에서 패한 모 정치인이 그 패한 원인을 몰라 망언한 것에 대한 실랄한 비판도 있었다. 그가 선거에서 패한 원인을 모른다면 그는 아마 정상적인 사람이 아닐 것이다. 한번 패하거나 몇번 패하더라도 나중 승리한 이는 제대로 철저하게 자기반성을 필연적으로 거친 이들임을 역사도 증명하고 있지만 이제는 80,90년대와는 달리, 시간도 흐르고 국민들의 정치, 문화수준도 높아져서 한 번 패하면 다음에 또 될 리는 만무하다.
요즈음, 하늘의 뜻인지 터진 북의 장성택 사건은 연일 남한의 지성들, 먹물을 좀 먹은 이, 교양인, 아니 일반 국민들도 대한민국의 안보와 국가정체성 수호, 국헌수호 문제, 각종 사회문제, 통일을 대비한 심각한 경제문제들에 대해 큰 반성들을 하게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 지독한 정치권력 마약병, 대통령병에 걸려 붉은 마약(魔藥)과 지독하게 찌절한 붉은 사상독주(思想毒酒)에 의한 정신질환적 증상을 보이는 미친 군상들과 그 추종자들이 있어 한심하기 짝이없다. 국민 대다수의 의지, 마음, 생각을 읽지 못하고 아직도 낡고 썩은 자기들 사고틀로 언론플레이, 여론조작으로 다수국민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한심하고 교만하며 시건방지기가 하늘을 찌르는 무리들, 싹수가 노오랗다. 제발 "냉수 마시고 속차려라 !"라는 말을 좀 고상하게 시로 표현해 보니 별로 깊이 창작사고를 하지 않아도 위와 같은 졸작이 탄생한다. 도무지 저 붉게 미친 자들은 이토록 오묘하고 시원한 미래의 글로칼 동치미 맛을 모르니 말이다.
이렇듯 시의 씨앗은 그것이 정서든 사상이든 인생의 경험이든 범상하게 흘려버리지 못할 인상적인 체험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시인의 마음에 진실되게 와 닿는 것이기에 알맞은 토양을 만난 식물들의 씨앗처럼 뿌리를 내리고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시창작에 있어서 시를 처음 쓰는 지망생들은 사회적 분위기나 다른 사람들의 암시에 눌려서 자신의 감정에 잘 맞지 않는 것을 시의 씨앗으로 고르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도 하다고 본다. 필자가 습작생 시절 별것도 아닌 폼잡기 베낀철학, 개똥철학의 위세아래 몇번 당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의 씨앗과 토양이 안 맞으면 씨앗이 성장을 못하거나 성장을 한다해도 부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를들어 필자의 경우도 자유주의자지만 대학시절부터 좌파사상을 공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들보다 내가 더 깊이 원서를 읽었으면 읽었었지 나는 하등 그들에게도 꿀릴 것이 없는 사람이다.
책 몇권 읽은 것만으로 착각하는 왠만하게 덜떨어진 좌파 짜집기 찌라시 팜플렛 수준들의 녀석들은 오히려 필자에게 물어 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의 마르크스 이후 신좌익 사상비판 연작 연재물들도 좀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냥 나온 것은 아니다. (앞으로 더 깊이 다듬겠지만.....) 또렷하게 자유주의 사상들을 공부해야만 좌파사상들의 맹점들을 분쇄할 수 있다. 아니면 좌파를 비판하더라도 이론들의 맹점들에 대한 정교한 비판이 아니라 그냥 심리적 수준, 대학에서 체험적 수준들의 그들에 대한 악감정이나 행태의 불합리한 점들을 지적하는 수준에 머물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쉽게 말해서 우리좌파는 제대로된 좌파라고 보지도 않는다. 그의 80%베껴무스 짜집기 폼잡기 오만불손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아는 내시대의 공부 좀 한 진짜 좌파들의 핵심들이 이미 우리 자유주의로, 우파로 전향했기 때문이며 하고있고 아직 나머지 정신질환적 찌절이들이 주사파로, pd파로 사고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창작의 경우에서 필자의 경우는 예전 좀 이름있는 좌파성향의 문학사상적 문예지에서 등단하라는 권유도 뿌리치고 좌파정권 십년세월을 등단하지도 않고 졸작들을 써왔는데 지금 생각하면 필자의 선택과 생각이 천만다행으로 옳았고 잘했다 싶다. 가장 큰 이유는 내 시창작의 씨앗들과 그 토양으로 볼 때 그들과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다. 필자라고 무슨 명예욕이나 폼좀 잡고싶은 욕심이 왜 없었겠는가? 아마 그때 그리 걸었으면 지금쯤 그곳에서 국회의원 한자리쯤 하지 않을까?(^*^농담이지만....하도 그쪽에 인재들이 보이지 않고 정신질환자들만 보여서 이런 말도 한다. 나는 지금 전문적으로 여러가지 더 공부할 것이 있어 다시 해외의 연구소들을 살펴보고 있다.) 그러나 내 피, 고향, 삶의 체험, 가족, 친구, 동지, 사회, 국가, 세계적 안목, 미래를 생각해 볼 때 내가 무식한 무지랭이면 몰라도 좀 아는 것은 제대로 아는 먹물을 먹은 이상, 양심으로, 정신으로 아닌 것은 절대로 아닌 것이다.
젊은 시 지망생들이여.....나는 좀 괜찮은, 제대로된 시인은 지성인(知性人)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아니 원래부터 시인은 당대의 지성인들이었다. 요즈음은 너도나도 시인이지만 지성인(知性人)이란? 지식인(知識人)+사랑과 인격이 더하여진 존재, 더하여 사회적 책임감이 보태어진 존재다. 지성인(知性人)+예술인 그것이 바로 시인이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지식인(知識人)들은 넘쳐난다. 그러나 지식만으로는 과학적,공학적, 경영으로는 사회에 보탬이 될지 몰라도 사회를 이끌 수 있고 예술적, 사회 문화적 치유를 할 수있는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 하물며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정말 노력하지 않는 젊은 문예창작 전공자들이나 세상에 대하여
자신은 아무 능력도 없으면서 불만만 가득한 개폼 빵떡모자 달랑 직업 시인 하나 나부랭이들을 보면 정말 한심하다.
지식인(知識人)도 제대로된 지식인(知識人)도 아니고 중심없는 갈지 자(之)지식, 여기저기 베껴무스 짬뽕, 얄팍한 지식으로 무슨 국가를 이끌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정치적으로는 요즈음 민주당도 그렇고 민주당이 워낙 죽을 쓰니 상대적으로 뜨는 안철수 신당을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여기저기 물먹은 정치떨거지들의 모임이면 100% 실패 하리라! 무슨 뚜렷한 새정치의 개념도 모습도 없이 학부생 짜집기 철지난 지식으로들 구태만 답습하고 있지 않는가? 사회적으로 저 낡고 썩어빠진 종북주의자들, 통진당과 이석기 사태를 보시라....한마디로 정신질환자들이며 미친 자들이다. 새누리당도 잘하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사회의 기본, 원칙이나마 제대로 지켜 대한민국이 그나마 존속하기를 바랄 뿐이기에 국민들이 지지하는 것이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정책생산에 필자가 보기에는 배불러서 그런지 게으르게 보인다. 물론 힘든 가운데에서도 열심히 돈벌어서 세금 잘내는 그나마 모범시민, 국민들이 계셔서 다행이지만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탐욕에만 물든 강남의 일부 졸부들, 범법하는 재벌들의 행태, 앞에서의 행동과 뒤에서의 행태가 다른 썩어빠진 골빈 고위층을 좋아하는 국민이 어디 있으랴?
여하튼 정치적인 생각이 아니라 하더라도 사회적, 문화적, 예술적으로라도 시의 씨앗은 우선적으로 시를 쓰는 창작자 자신에 맞는것, 자신의 마음에 절실한 것에서 솔직, 진솔하게 가져와야 한다. 남의 시가 좀 낳아 보이면 자신이 스스로 더 경험하고 공부하고 노력하면 해결되는 문제이므로 안달할 것도 없다. 그러나 시창작시의 양심을 속이는 것은 큰 문제다. 그보다 항상 진솔하게 쓰는 연습은 중요하다. 이것은 시창작의 기본중의 기본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중요한 것이라고 나는 본다. 즉, 시의 씨앗에서도 창작자만의 정신적 신토불이가 필요한 것이며 이것이 바로 그 시의 독창성을 말하게 하며 결정하게 한다.
이제는 귀하게 얻은 시의 씨앗들을 잘 보관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이 씨앗들은 불현듯 스치고 가는 바람 같거나 한순간 번쩍이는 번개 같아서 이내 사라지기 때문에 아무리 작고 사소한 것일지라도 반드시 메모해 두는 습관이 중요하다. 아주 강한 인상의 씨앗이라 하더라도 일상의 잡사속에 시달리다 보면 기억이 희미해질 수도 있고 아예 까맣게 잊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습관적 메모는 매우 중요하다. 메모야 말로 시의 씨앗들을 보관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그리고는 이 씨앗들이 자신의 무의식 속으로 떨어져 잠들기를 기다려야 한다. 한동안 잊고 지내는 것이다. 지금 당장 얻은 씨앗을 붙들고 시를 창작하는 일은 시 지망생들에게는 가급적 피해야 할 방법이기도 한데 필자도 가끔 아직 이런 습관을 버리지 못했기도 하다. 물론 즉흥시를 쓸 수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많은 다작(多作)을 해 본 프로들 이야기이지 초기 습작생들에게 나는 잘 권하지는 않는다.
성급하게 씨앗으로부터 시를 쓰는 경우 시의 내용이 단조로울 수 있으며 감정에 휩싸일 수도 있다. 씨앗들을 메모하고 여유있게 그것들을 성장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는 것이 좋다. "시는 조용히 회상되는 정서"(워즈워드)라든지 "시는 감정 그 자체가 아니라 감정의 기억이어야 한다"(마넹)라고 한 말들은 시의 씨앗들이 한 편의 시로 탄생하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적 거리가 필요함을 강조하는 말들이다. 이 씨앗들은 잠을 자다가 마음 속의 적당한 기온과 햇빛, 바람, 물을 만나게 되면 싹을 틔우고 무럭무럭 성장해 나가게 된다.
2. 씨앗의 성장과 시적 사고
이 단계는 마음밭 속에 자리잡은 씨앗에서 싹이 트고 줄기가 뻗고 잎이 돋아나며 꽃이 피기 까지의 시간이다. 농부가 밭에 씨앗을 뿌린 후에 그것들을 지극한 정성으로 돌보고 가꾸어야만 알찬 결실을 맺듯이 시의 씨앗들도 정성스런 노력이 들어가야 제대로 성장하고 마침내 훌륭한 시의 열매를 거둘 수 있다. 씨앗의 성장은 눈에 보이지 않게 내면 속에서 진행되며 씨앗에 따라서 혹은 시를 쓰는 사람에 따라서 그 성장 속도나 성장기간이 다르다. 어떤 것은 단 하루만에, 또 어떤 것은 며칠, 몇주일, 혹은 몇년이 걸릴 수도 있다. 이 성장과 꽃이 피기까지 필요한 것은 수고로운 노력과 정성, 인내인데 이것은 시의 씨앗을 얻을 때와 마찬가지로 평상시의 꾸준한 시적 사고이다. 씨앗을 마음속에 품은 그 순간부터 체험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발견하는 모든 일들이 씨앗의 성장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이다. 시의 줄기들이, 이파리들이, 그리고 꽃잎들이 돋아나고 뻗어나갈 수 있도록 시간 나는 대로 생각들을 자유롭게 펼치는 시적 사고가 생활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비법으로 삼다(三多)를 강조했던 문장가 구양수가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다상량(多商量)이었는데 실제로 그의 훌륭한 글들은 그의 말대로 생각을 깊고 풍부하게 많이 한데서 나온 것임을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어느날 구양수가 태학 - 오늘날 대학과 같은 곳 - 에 시찰을 나가 그곳을 둘러보게 되었다. 많은 학생들이 그의 주위를 에워싸고는 나랏일 보기도 바쁜 그가 무슨 틈을 타서 그토록 훌륭한 글들을 줄줄 써낼수 있는지 궁금하였다. 그러자 구양수는 "물론 나는 공무에 항상 바빠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소. 나의 글은 전부가 짜낸 시간 속에서 나온 것이오"라고 대답 하였다. 학생들은 구양수의 이러한 대답에 더욱 호기심을 갖고 대체 어떻게 시간을 짜는지 그 방법을 물었다. 구양수는 진지하고 솔직하게 학생들에게 "나는 늘 세 가지에서 시간을 짜내고 있소.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오. 첫째는 말을 타고 다닐 때 말위에서 시간을 짜내고, 둘째, 누워 잘때 베개위에서 시간을 짜내고 셋째, 변소에 가서 일을 볼때도 시간을 짜내오. 이런 시간들이 내게는 글을 구상하는 훌륭한 시간이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구양수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필자에게도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다.
나의 경우에 아주 오래전 시를 처음 배울 때, 나는 법학공부를 하고 있었다. 대학 졸업후 사회학과 인류학을 보스톤에서 공부하고 막 돌아와 약간의 직장생활을 거치고 자유로운 사고, 창작적 사고를 좋아하는 필자의 성격상 진로가 언론계로 달라졌다.하지만 하여튼 당시에는 하루 12-13시간 이상씩 민법,상법,형법 등의 법학공부에 몰두하던 때였다. 법학의 학문적 체계와 법이론도 매우 공부하기가 고독하지만 맛을 들이면 나름대로 매우 재미있고 매력있는 학문이다. 토요일날은 법철학과 법사상사를 공부했는데 토요일 오후 좀 시간을 내어 우연히 동네에서 알게된 시스승으로부터 무겁고 심각,엄격한 법학을 잠시 떠나 머리를 좀 식힐겸 시창작을 배우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내 젊은 시절 인생에 있어 문제의 사단은 그기에서 벌어졌다.(지금은 잘했다 싶지만....)
쌀의 상태, 요리재료인 엄격하고 정밀하지만 무겁고 매우 진중한 법사상들이 시창작의 탈을 쓰자 이야 생각의 낙서가 쌀이 맛있는 밥 즉, 황홀한 나만의 예술작품인 사상적 시, 요리로 만들어지는 것이었고 그 재미에 빠져 시창작의 맛을 알게 된 것이었다. 시창작에는 프랑스까지 다녀오신 내 스승은 창작기법은 문학, 문예적으로 화려했지만 사회적 내용에 있어 당신은 좀 허무주의적 매너리즘에 빠져계셔서 나를 이뻐하셨다. 또 나만의 서정시를 짓는 맛은 나만의 자작곡이 창작될 정도의 마음의 기쁨을 안겨다 주었는데 우이동 계곡에서 스승과 나 둘이서 내 서정시를 가지고 내곡으로 기타로 연주해 보시던 돌아가신 스승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내게 있어 당시의 시창작의 재미는 아주 어릴적 복잡하고 정교한 프라모델을 만드는 것 같은 고독하지만 남모르는 재미를 안겨 주었다. 문학사상지나 문예지들을 보아도 사상적으로 그리 깊이 공부한 시들도 없었고 좀 했어도 내눈에는 다철지나간 좌파 베껴서 폼좀 잡아봐들 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편 두편 쓰다가 되먹지도 않은 참여시니 민중시니를 쓰기보다 에라 아예 내가 이참에 "사상감상시"라는 쟝르를 만들어 버리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사상만 할 것이 아니라 이후 계속 자유주의 사상들, 특히 경제사상들도 공부하고 기자를 하면서 정치학, 철학, 문예사상들도 공부하니 고대부터 현대까지 통합 300 여사상들에 관한 시를 한 편씩 쓸수 있는 맑은샘만의 통합 사상감상시 씨앗이 만들어 진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키면서 마르크스 이후 30여편의 신좌파사상들에 관한 본질과 그 비판 에세이들도 써놓아 이도 통합될 것인데 정치부, 경제부 기자를 하면서 점점 오늘날의 시사도 가미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작업은 토일요일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벌써 고대부터 중세를 거쳐 근대까지 와서 앞으로 약 이년정도면 마칠 수 있을 것 같다. 현대사상들이 가장 많다. 쓸것은 무궁무진하다. 다만 나는 시나 에세이나 직업상의 기사문 이외 쪼개어 쓰는 시간이 금이다. 평소에는 직장일을 하며 남는 시간을 이용해 하는 작업을 가지고 그러하니 자기재미에 빠지면 그 누구도 말리지 못한다. 나는 좋아하던 오토바이크 투어, 등산,낚시같은 취미 마져도 내던져 버린지 오래다.
나는 내 직장에서 문화부에서 일은 아직 해보지 않았는데 동료들과 술을 마시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자 좀 궁금했는지 아는 여기자들이 선배는 도대체 무얼하길레 그러는지 하면서 궁금해 하기도 했는데 지금 몇몇 여친들은 내가 무얼 하는지 알고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대단하단다. 직장일도 바쁜데 어떻게 그 경쟁율을 뚫고 등단시인까지 되었으며 문학상까지 받았는지 부러워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이야기다. 바로 구양수 전술 즉, 시간 쪼개어 쓰기가 정답이다. 습작생은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겠지만 지금 나에게 있어 분명히 철저하게 팩트에 근거한 기사문, 칼럼은 법학공부 시절 다졌던 논리력으로, 그리고 언론 비즈니스는 국내 탑의 반열에 도달했다. 요즈음은 가끔 자유롭고 편하게 나오는대로 에세이를 쓰는 것도 즐겁고 그것들과 전혀 문체가 다르고 허구적 상상력도 요하는 문학작품인 소설,시에 미친지 오래 되었다. 이것들은 문체도 쓰는 방법도 전혀 다른 쟝르의 글들이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글의 쟝르만 다를 뿐 글을 쓰는 본질과 정신은 한 뿌리일 뿐이다. 철로 만든 칼이 연검이냐 철추냐 단단하고 예리한 명검이냐 식칼이냐 그 쓰는 용도만 다를 뿐인 경지에 이른 것이다. 나는 저널리즘과 언론 기사문에 있어서는 대학에서 강의도 해보았고 또 이와는 달리 800여회의 거리데모를 주동하면서 그 수만큼 성명서도 써 보고 발표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 후배 여기자는 시창작 기법을 몰라 시를 쓰고 싶어도 못쓰고 있을 뿐인데 사실은 내 보기에 그녀가 취재하러 뛰어 다니는 모든 취재원, 장소들이 황금같은 시창작의 씨앗들이며 보고인데 시창작기법을 몰라 못쓰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가? 진정한 글쓰기 프로는 글의 쟝르에 관한 특성들을 살리면서도 그 쟝르들에 연연할 필요가 전혀 없다. 열심히 쓰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아예 나는 단편소설도 처음으로 한편 써 버렸는데 소설속에 시가 들어있는 글을 여러분은 보았는가?^*^ 이런 것이 바로 창조적 사고며 창작인 것이다.
그러하니 습작생들이여... 좋은 시창작기법을 올바로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자 ! 나는 연예에 관하여 도무지 미모와 얼굴이 예쁘면 머리가 아니고 머리가 좋으면 미모가 아닌 경우나 정신세계나 문학을 좋아하면 먹고사는 문제나 세파에는 꽝이고 얼굴도 이쁘고 똑똑하지만 소크라테스 마누라처럼 문학의 맛에는 꽝인 경우로 인해 여성들을 잘 만나지 않고 있는데 이런 불쌍하고 한심한 일이 있는가? 변명이지만 사실은 도무지 여자를 만날 시간도 없고 만나도 나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만한 상대를 보지를 못했다. 연예보다 시간만 나면 시쓰고 글쓴다고 책읽는 일이 더 즐거우니 그럴 시간이 어디 있는가? 아니면 아직 큰돈은 못벌었지만 언론인으로써 돈버는 일에 찌들어 너무 바쁘게 살았기도 하다. 시쓰고 글쓰는 일보다 더 재미있는 사랑의 상대가 나타나면 나는 잠시 시나 글쓰기를 멈출 용의는 있다^*^ 여러분의 모든 직장일,일상체험, 독서 그리고 삶의 정서들 그것들이 바로 시창작의 씨앗들이다. 시쓰기는 여기에 예술적 가치, 여러분들만의 황홀한 문화적 가치를 덧입히는 즐거운 일이다. 당신은 무식하게 밥만 먹고 사시는가? 남들의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문화생활이지만 내가 창작의 예술가가 되면 그보다 즐거운 일도 없다.
공부나 연구없이 골방에서 내용없는 폼잡기, 허드레 넋두리 감상적 시에만 머물러 있는 것도 좋은 시를 창작하기 어렵다. 좋아하는 일에 대한 사랑, 열정, 치열한 삶을 사는 자세 그것이 바로 진정한 예술가, 시인의 자세인 것이다. 결과야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한번 우리도 해 보자구요....노루 벨....나는 요즘 잠만 자면 노루벨 노루벨 잠꼬대 하는 미친 또래이다.^*^ 시창작에 있어 이 시적 사고를 배양하는 일은 시간이 따로 없고 장소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이 시적 사고는 무수한 체험들과 상상력이 가장 큰 힘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부분이다. 과거의 체험들이나 또는 앞으로 겪게 될 체험들이 적당한 햇빛과 물, 바람이 되어 시의 씨앗들에 싹을 틔우게 하고 성장하게 하며, 상상력은 여러 체험들을 유기적으로 조직하면서 질서를 부여하고 구체적인 이미지들을 만들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시적 사고란 상상력을 펼치면서 시의 구체적인 이미지들을 만들어 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꽂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이형기, <낙화> 전문---
시인에게 어느날 갑자기 하나의 이미지가 떠올랐는데 그것은 "작은 샘이면서 동시에 슬픔이 가득 어려 있는 눈"의 이미지였다고 한다. 시인은 이미지를 떠올린 순간 거의 본능적으로 '이것은 시가 되겠구나'하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시의 씨앗을 얻었던 셈이었다. 이 씨앗을 붙들자 '샘=슬픈 눈'이라는 메모를 한 후에 평상시의 습관대로 곧이어 싹을 틔우기 위한 시적 사고를 하였다고 한다. 이 부분을 시인의 말을 통하여 직접 들어보기로 하자.
<곧 종이 쪽지를 꺼내 '샘=슬픈 눈'이라고 메모를 해놓고 역시 평소의 버릇대로 한동안 이리저리 생각을 굴렸다. 그러자 이윽고 떠오른 것이 "샘터에 물고이듯 성숙하는 / 내 영혼의 슬픈 눈"이라는 구절이다. 마음에 드는 구절이었다. 성숙한 영혼의 샘터에 고이는 맑은 물은 승화된 고통의 표상이 아닌가. 눈은 그러한 영혼의 창이다. 그리고 그 눈에는 그 수많은 고통을 참고 견디는 동안에 느꼈던 갖가지 슬픔이 어려 있을 수 밖에 없다. .....(이형기 문학사상사)>
위에 인용된 글을 보면 시인은 시의 씨앗을 얻자 그것을 오랜 기간 묵힌 것이 아니라 곧바로 생각의 싹을 틔우는 동시에 시의 싹을 틔우게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일종의 속성법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그동안 꾸준하게 해온 시인의 시적 사고 덕분이었다. 시인의 말에 의하면 그 당시 어려운 생활 환경 속에서 '고통의 인내'라는 관념을 정신의 지주로 삼고 살았다고 한다.그래서 마음 속에 "참고 견디면 지금의 쓰라린 이 고통도 언젠가는 맑고 깨끗한 그 무엇으로 승화되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을 품고 지내고 있었는데 이러한 생각들이 시의 싹을 틔울 충분한 토양이 되어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어느날 문득 떠 올랐다고 하는 시의 씨앗도 우연히 얻어진 것이 아니라 시인의 생활과 생각 속에서 체험한 미의식의 발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시적 사고란 시의 씨앗을 탄생시키는 태반이며 또 그 씨앗을 중심으로 해서 여러 체험들과 이미지들을 유기적으로 조직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또한 여기에는 필수적으로 상상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상시 풍부한 시적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가치 있고 미적인 체험들을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상상력의 불길이 꺼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폴 발레리는 "시인은 어느 한 부분만을 신에게서 받거나 천성으로 타고나므로 그 나머지는 시인 자신이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 이것은 시를 창작한다는 일이 얼마나 큰 노력과 고통을 요구하는가를 알려주는 말이다. 어쩌면 시적 사고라 하는 것은 하나의 생명체를 만들기 위한 몸부림이요 혹은 골인지점을 향한 마라톤 선수의 고통스런 달음박질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감상음악 : L'Arlésienne Menuet by Bizet.
클릭 :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BAqAD82j_-s
Le Cimetière marin
Paul Valery
Ce toit tranquille, où marchent des colombes,
Entre les pins palpite, entre les tombes;
Midi le juste y compose de feux
La mer, la mer, toujours recommencée
O récompense après une pensée
Qu'un long regard sur le calme des dieux!
Quel pur travail de fins éclairs consume
Maint diamant d'imperceptible écume,
Et quelle paix semble se concevoir!
Quand sur l'abîme un soleil se repose,
Ouvrages purs d'une éternelle cause,
Le temps scintille et le songe est savoir.
Stable trésor, temple simple à Minerve,
Masse de calme, et visible réserve,
Eau sourcilleuse, Oeil qui gardes en toi
Tant de sommeil sous une voile de flamme,
O mon silence! . . . Édifice dans l'âme,
Mais comble d'or aux mille tuiles, Toit!
Temple du Temps, qu'un seul soupir résume,
À ce point pur je monte et m'accoutume,
Tout entouré de mon regard marin;
Et comme aux dieux mon offrande suprême,
La scintillation sereine sème
Sur l'altitude un dédain souverain.
Comme le fruit se fond en jouissance,
Comme en délice il change son absence
Dans une bouche où sa forme se meurt,
Je hume ici ma future fumée,
Et le ciel chante à l'âme consumée
Le changement des rives en rumeur.
Beau ciel, vrai ciel, regarde-moi qui change!
Après tant d'orgueil, après tant d'étrange
Oisiveté, mais pleine de pouvoir,
Je m'abandonne à ce brillant espace,
Sur les maisons des morts mon ombre passe
Qui m'apprivoise à son frêle mouvoir.
L'âme exposée aux torches du solstice,
Je te soutiens, admirable justice
De la lumière aux armes sans pitié!
Je te tends pure à ta place première,
Regarde-toi! . . . Mais rendre la lumière
Suppose d'ombre une morne moitié.
O pour moi seul, à moi seul, en moi-même,
Auprès d'un coeur, aux sources du poème,
Entre le vide et l'événement pur,
J'attends l'écho de ma grandeur interne,
Amère, sombre, et sonore citerne,
Sonnant dans l'âme un creux toujours futur!
Sais-tu, fausse captive des feuillages,
Golfe mangeur de ces maigres grillages,
Sur mes yeux clos, secrets éblouissants,
Quel corps me traîne à sa fin paresseuse,
Quel front l'attire à cette terre osseuse?
Une étincelle y pense à mes absents.
Fermé, sacré, plein d'un feu sans matière,
Fragment terrestre offert à la lumière,
Ce lieu me plaît, dominé de flambeaux,
Composé d'or, de pierre et d'arbres sombres,
Où tant de marbre est tremblant sur tant d'ombres;
La mer fidèle y dort sur mes tombeaux!
Chienne splendide, écarte l'idolâtre!
Quand solitaire au sourire de pâtre,
Je pais longtemps, moutons mystérieux,
Le blanc troupeau de mes tranquilles tombes,
Éloignes-en les prudentes colombes,
Les songes vains, les anges curieux!
Ici venu, l'avenir est paresse.
L'insecte net gratte la sécheresse;
Tout est brûlé, défait, reçu dans l'air
A je ne sais quelle sévère essence . . .
La vie est vaste, étant ivre d'absence,
Et l'amertume est douce, et l'esprit clair.
Les morts cachés sont bien dans cette terre
Qui les réchauffe et sèche leur mystère.
Midi là-haut, Midi sans mouvement
En soi se pense et convient à soi-même
Tête complète et parfait diadème,
Je suis en toi le secret changement.
Tu n'as que moi pour contenir tes craintes!
Mes repentirs, mes doutes, mes contraintes
Sont le défaut de ton grand diamant! . . .
Mais dans leur nuit toute lourde de marbres,
Un peuple vague aux racines des arbres
A pris déjà ton parti lentement.
Ils ont fondu dans une absence épaisse,
L'argile rouge a bu la blanche espèce,
Le don de vivre a passé dans les fleurs!
Où sont des morts les phrases familières,
L'art personnel, les âmes singulières?
La larve file où se formaient les pleurs.
Les cris aigus des filles chatouillées,
Les yeux, les dents, les paupières mouillées,
Le sein charmant qui joue avec le feu,
Le sang qui brille aux lèvres qui se rendent,
Les derniers dons, les doigts qui les défendent,
Tout va sous terre et rentre dans le jeu!
Et vous, grande âme, espérez-vous un songe
Qui n'aura plus ces couleurs de mensonge
Qu'aux yeux de chair l'onde et l'or font ici?
Chanterez-vous quand serez vaporeuse?
Allez! Tout fuit! Ma présence est poreuse,
La sainte impatience meurt aussi!
Maigre immortalité noire et dorée,
Consolatrice affreusement laurée,
Qui de la mort fais un sein maternel,
Le beau mensonge et la pieuse ruse!
Qui ne connaît, et qui ne les refuse,
Ce crâne vide et ce rire éternel!
Pères profonds, têtes inhabitées,
Qui sous le poids de tant de pelletées,
Êtes la terre et confondez nos pas,
Le vrai rongeur, le ver irréfutable
N'est point pour vous qui dormez sous la table,
Il vit de vie, il ne me quitte pas!
Amour, peut-être, ou de moi-même haine?
Sa dent secrète est de moi si prochaine
Que tous les noms lui peuvent convenir!
Qu'importe! Il voit, il veut, il songe, il touche!
Ma chair lui plaît, et jusque sur ma couche,
À ce vivant je vis d'appartenir!
Zénon! Cruel Zénon! Zénon d'Êlée!
M'as-tu percé de cette flèche ailée
Qui vibre, vole, et qui ne vole pas!
Le son m'enfante et la flèche me tue!
Ah! le soleil . . . Quelle ombre de tortue
Pour l'âme, Achille immobile à grands pas!
Non, non! . . . Debout! Dans l'ère successive!
Brisez, mon corps, cette forme pensive!
Buvez, mon sein, la naissance du vent!
Une fraîcheur, de la mer exhalée,
Me rend mon âme . . . O puissance salée!
Courons à l'onde en rejaillir vivant.
Oui! grande mer de délires douée,
Peau de panthère et chlamyde trouée,
De mille et mille idoles du soleil,
Hydre absolue, ivre de ta chair bleue,
Qui te remords l'étincelante queue
Dans un tumulte au silence pareil
Le vent se lève! . . . il faut tenter de vivre!
L'air immense ouvre et referme mon livre,
La vague en poudre ose jaillir des rocs!
Envolez-vous, pages tout éblouies!
Rompez, vagues! Rompez d'eaux réjouies
Ce toit tranquille où picoraient des focs!
해변의 묘지
폴 발레리
비둘기들 노니는 저 고요한 지붕은
철썩인다 소나무들 사이에서, 무덤들 사이에서.
공정한 것 정오는 저기에서 화염으로 합성한다
바다를, 쉼없이 되살아나는 바다를!
신들의 정적에 오랜 시선을 보냄은
오 사유 다음에 찾아드는 보답이로다!
섬세한 섬광은 얼마나 순수한 솜씨로 다듬어내는가
지각할 길 없는 거품의 무수한 금강석을,
그리고 이 무슨 평화가 수태되려는 듯이 보이는가!
심연 위에서 태양이 쉴 때,
영원한 원인이 낳은 순수한 작품들,
시간은 반짝이고 꿈은 지식이로다.
견실한 보고, 미네르바의 간소한 사원,
정적의 더미, 눈에 보이는 저장고,
솟구쳐오르는 물, 불꽃의 베일 아래
하많은 잠을 네 속에 간직한 눈,
오 나의 침묵이여!...... 영혼 속의 신전,
허나 수천의 기와 물결치는 황금 꼭대기, 지붕!
단 한 숨결 속에 요약되는 시간의 신전,
이 순수경에 올라 나는 내 바다의
시선에 온통 둘러싸여 익숙해 진다.
또한 신에게 바치는 내 지고의 제물인 양,
잔잔한 반짝임은 심연위에
극도의 경멸을 뿌린다.
과일이 향락으로 용해되듯이,
과일의 형태가 사라지는 입 안에서
과일의 부재가 더 없는 맛으로 바뀌듯이,
나는 여기 내 미래의 향연을 들이마시고,
천공은 노래한다, 소진한 영혼에게,
웅성거림 높아 가는 기슭의 변모를.
아름다운 하늘, 참다운 하늘이여, 보라 변해 가는 나를!
그토록 큰 교만 뒤에, 그토록 기이한,
그러나 힘에 넘치는 무위의 나태 뒤에,
나는 이 빛나는 공간에 몸을 내맡기니,
죽은 자들의 집 위로 내 그림자가 지나간다
그 가여린 움직임에 나를 순응시키며.
지일(至日)의 햇불에 노정된 영혼,
나는 너를 응시한다, 연민도 없이
화살을 퍼붓는 빛의 찬미할 정의여!
나는 순수한 너를 네 제일의 자리로 돌려놓는다.
스스로를 응시하라!...... 그러나 빛을 돌려주는 것은
그림자의 음울한 반면을 전제한다.
오 나 하나만을 위하여, 나 홀로, 내 자신 속에,
마음 곁에, 시의 원천에서,
허공과 순수한 도래 사이에서, 나는
기다린다, 내재하는 내 위대함의 반향을,
항상 미래에 오는 공허함 영혼 속에 울리는
가혹하고 음울하며 반향도 드높은 저수조를!
그대는 아는가, 녹음의 가짜 포로여,
이 여윈 철책을 먹어드는 만(灣)이여,
내 감겨진 눈 위에 반짝이는 눈부신 비밀이여,
어떤 육체가 그 나태한 종말로 나를 끌어넣으며,
무슨 이마가 이 백골의 땅에 육체를 끌어당기는가를?
여기서 하나의 번득임이 나의 부재자들을 생각한다.
닫히고, 신성하고, 물질 없는 불로 가득 찬,
빛에 바쳐진 대지의 단편,
불꽃들에 지배되고, 황금과 돌과 침침한
나무들로 이루어진 이곳, 이토록 많은
대리석이 망령들 위에서 떠는 이곳이 나는 좋아.
여기선 충실한 바다가 나의 무덤들 위에 잠잔다!
찬란한 암캐여, 우상숭배의 무리를 내쫓으라!
내가 목자의 미소를 띄우고 외로이
고요한 무덤의 하얀 양떼를,
신비로운 양들을 오래도록 방목할 때,
그들에게서 멀리하라 사려 깊은 비둘기들을,
헛된 꿈들을, 조심성 많은 천사들을!
여기에 이르면, 미래는 나태이다.
정결한 곤충은 건조함을 긁어대고,
만상은 불타고 해체되어, 대기 속
그 어떤 알지 못할 엄숙한 정기에 흡수된다......
삶은 부재에 취해 있어 가이 없고,
고초는 감미로우며, 정신은 맑도다.
감춰진 사자(死者)들은 바야흐로 이 대지 속에 있고,
대지는 사자들을 덥혀주며 그들의 신비를 말리운다.
저 하늘 높은 곳의 정오, 적연부동의 정오는
자신 안에서 스스로를 사유하고 스스로에 합치한다......
완벽한 두뇌여, 완전한 왕관이여,
나는 네 속의 은밀한 변화이다.
너의 공포를 저지하는 것은 오직 나뿐!
이 내 뉘우침도 , 내 의혹도, 속박도
모두가 네 거대한 금강석의 결함이어라......
허나 대리석으로 무겁게 짓눌린 사자들의 밤에,
나무뿌리에 감긴 몽롱한 사람들은
이미 서서히 네 편이 되어버렸다.
사자들은 두터운 부재 속에 용해되었고,
붉은 진흙은 하얀 종족을 삼켜 버렸으며,
살아가는 천부의 힘은 꽃 속으로 옮겨갔도다!
어디 있는가 사자들의 그 친밀한 언어들은,
고유한 기술은, 특이한 혼은?
눈물이 솟아나던 곳에서 애벌레가 기어간다.
간지린 소녀들의 날카로운 외침,
눈, 이빨, 눈물 젖은 눈시울,
불과 희롱하는 어여쁜 젖가슴,
굴복하는 입술에 반짝이듯 빛나는 피,
마지막 선물, 그것을 지키려는 손가락들,
이 모두 땅 밑으로 들어가고 작용에 회귀한다.
또한 그대, 위대한 영혼이여, 그대는 바라는가
육체의 눈에 파도와 황금이 만들어내는,
이 거짓의 색채도 없을 덧없는 꿈을?
그대 노래하려나 그대 한줄기 연기로 화할 때에도?
가려므나! 일체는 사라진다! 내 존재는 구멍나고,
성스런 초조도 역시 사라진다!
깡마르고 금빛 도금한 검푸른 불멸이여,
죽음을 어머니의 젖가슴으로 만드는,
끔찍하게 월계관 쓴 위안부여,
아름다운 거짓말 겸 경건한 책략이여!
뉘라서 모르리, 어느 누가 부인하지 않으리,
이 텅 빈 두개골과 이 영원한 홍소를!
땅밑에 누워 있는 조상들이여, 주민 없는 머리들이여,
가래삽으로 퍼올린 하많은 흙의 무게 아래
흙이 되어 우리네 발걸음을 혼동하는구나.
참으로 갉아먹는 자, 부인할 길 없는 구더기는
묘지의 석판 아래 잠자는 당신들을 위해 있지 않도다
생명을 먹고 살며, 나를 떠나지 않도다.
자기에 대한 사랑일까 아니면 미움일까?
구더기의 감춰진 이빨은 나에게 바짝 가까워서
그 무슨 이름이라도 어울릴 수 있으리!
무슨 상관이야! 구더기는 보고 원하고 꿈꾸고 만진다!
내 육체가 그의 마음에 들어, 나는 침상에서까지
이 생물에 소속되어 살아간다!
제논! 잔인한 제논이여! 엘레아의 제논이여!
그대는 나래 돋친 화살로 나를 꿰뚫었어라
진동하며 나르고 또 날지 않는 화살로!
화살 소리는 나를 낳고 화살은 나를 죽이는도다!
아! 태양이여...... 이 무슨 거북이의 그림자인가
영혼에게는, 큰 걸음으로 달리면서 꼼짝도 않는 아킬레스여!
아니, 아니야!...... 일어서라! 이어지는 시대 속에!
부셔버려라, 내 육체여, 생각에 잠긴 이 형태를!
마셔라, 내 가슴이여, 바람의 탄생을!
신선한 기운이 바다에서 솟구쳐 올라
나에게 내 혼을 되돌려준다...... 오 엄청난 힘이여!
파도 속에 달려가 싱그럽게 용솟음치세!
그래! 일렁이는 헛소리를 부여받은 대해여,
아롱진 표범의 가죽이여, 태양이 비추이는
천만가지 환영으로 구멍 뚫린 외투여,
짙푸른 너의 살에 취해,
정적과 닮은 법석 속에서
너의 번뜩이는 꼬리를 물고 사납게 몰아치는 히드라여,
바람이 인다!...... 살려고 애써야 한다!
세찬 마파람은 내 책을 펼치고 또한 닫으며,
물결은 분말로 부서져 바위로부터 굳세게 뛰쳐나온다.
날아가거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뛰노는 물살로 부숴 버려라
돛배가 먹이를 쪼고 있던 이 조용한 지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