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유기농업 연수를 다녀와서
박정아(여성 민우회 생협)
출발할 날짜를 한 달 남짓 남기고 연수 참가를 제의받았을 때 든 생각은 가는 것과 안가는 것 반반이었다. 가고 싶지 않다는 쪽은 1주일 가까이 내가 없을 때 가족들이 제대로 생활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낯선 사람들과의 1주일이 피곤한 일일 거라는 짐작 때문이었고 가고 싶다는 쪽은 워낙 어디든 다니길 좋아하는 내 성격과 매일 똑같이 돌아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좀 쉬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연수에서 내세운 것처럼 중국의 유기농과 관련된 거창한 목표는 솔직히 별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가면 뭐라도 볼 수 있을 것이고 안가도 나랑은 크게 관련이 없는 일이라 생각했었다. 다녀와서 내린 결론은 다녀오길 잘했다 이다. 가족들은 주변에서 챙겨주는 이웃들 덕분에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었고 처음만나 서먹서먹했던 연수팀원들은 불과 2~3일만에 다들 친해져서 말 트고 지내는 사이가 됐다. 중국의 유기산업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자극을 받을 수 있었다. 거기다 중국이나 중국 사람들에 대해 막연히 가지고 있던 편견들을 많이 해소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수확이었다. 역시 집 떠나면 배울 게 많다.
연수일정은 매일 한 곳을 공식적으로 방문해서 견학과 설명, 질의 응답시간을 갖고 여유시간이 생기면 가까운 관광지를 찾아 관광을 하는 일정이었다. 준비를 맡으신 환농연 장상준 팀장님에 따르면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인 탓에 견학할 곳에 대한 방문허가를 받는 게 쉽지 않았다고 하고 내가 보기에도 방문지들간 이동거리가 있어 하루 한 곳 이상 방문하는 것이 불가능해보였다. 덕분에 꼭 가보고 싶던 몇 곳을 관광할 수 있어서 난 아주 좋았다.
난징 공항에 도착 했을때 중국의 유기농업 운동을 선도하고 있는 OFDC(유기식품 개발센터)의 이사이신 Dr. Zhou Zejiang(周澤江)께서 마중을 나와 주셨는데 그 분은 세계무대에서 중국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 유기농 분야의 대부격이라 한다. 보기에는 대가의 풍모가 느껴지기보다 시시콜콜 챙겨주는 맘 좋은 이웃 아저씨 같은 인상이었는데 우리의 모든 공식일정도 그 분이 잡아주셨다고 하고 도착할 때부터 돌아갈 때까지 세심하게 배려해주셔서 중국인에 대한 인상이 강한 호감으로 바뀌게 해 주신 분이셨다.
도착 첫 날인 22일은 Bailong 유기 농장을 견학했다. 차와 블루베리, 과일등을 재배하고 있는 총 240헥타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농장이었다. 불과 4년 정도밖에 안 된 농장이라 차밭을 제외하면 나무들도 어리고 아직 제대로 자리 잡은 농장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중국이라는 나라는 마음만 먹으면 쉽게 이런 규모의 농장을 만들 수 있는 거 같아 부럽기도 하고 중국의 유기농업이 얼마나 큰 폭발력을 가지게 될지 예상할 수 있게 하는 곳이었다. 게다가 농장에 대해 설명하는 젊은 사람들, 갓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 농장을 경영하는 회사에 입사했다는 두 사람은 농업이 전망 있는 산업이라 생각하고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둘째 날 23일은 난징 환경 연구소에 가서 Dr. Zhou로부터 세계 유기농 현황과 그 안에서의 중국의 위치, 중국 유기농의 역사와 현황, 전망들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받았다. 불과 20년 전 수출산업의 하나로 전략적으로 시작된 중국의 유기농업과 환경운동, 생명운동의 신념을 갖고 몇몇 선각자들이 시작한 우리나라의 유기농업이 얼마나 다른 지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날 저녁은 Flanck라는 유기농 식당에서 Dr. Zhou를 비롯한 중국 유기농 관계자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이 식당을 운영하시는 분은 유기농장도 8개를 경영하고 있고 거기서 생산되는 것들로 매장도 내고 계신다고 한다. 마침 식당과 매장이 함께 있어서 매장도 둘러볼 수 있었다. 매장 규모나 갖고 있는 상품들의 숫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거의 전부 먹을거리들이었는데 나중에 다른 데서 들은 얘기로는 중국의 유기농 매장은 주로 식료품만 판매한다고 한다. 생활용품들은 없는 건지 아니면 판매장이 따로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가격은 곡식류는 유기사양인데도 한국의 일반사양보다 확실히 더 저렴했고 채소류는 생협매장에서 판매되는 것들과 비슷하거나 약간 저렴했지만 수입된 기름종류는 한국보다 더 비싼 것 같았다.
여기서 잠깐, 중국의 유기농산물이 어떻게 유통이 되는지 잠깐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번 연수에서 내가 맡은 부분이긴 한데 제대로 그림이 그려지진 않았다. Dr. Zhou의 프리젠테이션 내용과 나중에 간 Bio Farm에서 본 것들, 마지막날 들른 유기농 매장에서 모은 자료들, 그리고 돌아와서 Mr. Li Feng으로부터 얻은 정보들을 종합해보는 정도로만 정리해보기로 했다.
일단 중국의 유기농산물은 많은 부분 수출되고 있다. 그러다가 2007년을 기점으로 수출보다 내수가 더 커지고 있다고 한다. 2007년의 경우 수출이 4억$이상, 내수가 5억불$이상이었다고 한다. 수출 부분을 제외한 중국 내 유통 구조는
①주로 농장과 연결된 자체 매장에서 판매된다. 둘째 날 간 Flanck 유기농 식당과 매장도 자체 농장의 야채들을 판매하는 곳이었다. 농장에서 생산된 야채들은 새벽 2,3시경까지 포장 작업을 마치고 매장으로 운반되면 소비자들이 매장에서 구매를 하게 된다. 유기농 매장에서 회원으로 가입하게 되면 약간 더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생협과 같은 개념은 아니었다. 단순 소비자 회원 정도의 개념이었다. 이런 유기농 매장들은 자체 농산물뿐만 아니라 다른 유기농 회사의 상품들도 함께 판매하고 있다.
②까르푸 같은 대형 매장이나 호텔에 판매되고 있다. 대형 매장을 통한 판매는 우리랑 비슷한 거 같고 호텔로 판매되는 것은 호텔에서 필요한 야채들을 주문하면 재배해서 공급하는 방식이었다.
③중국내에서는 특이한 케이스라고 하는데 연수 후반에 방문한 BioFarm의 경우는 단순 소비자가 아니라 유기농을 지지하는 회원을 모으는 일에 힘을 쏟고 있었는데 이를 위해 농사체험, 생물 다양성에 대한 공부 등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회원모집의 한 방법으로 다양한 장소에서 flea market을 열어 자체 생산한 유기농산물을 판매하고 있었다.
④그 밖에 특이한 점이라면 중국의 독특한 개념인 것 같은데 정부나 대형회사들이 선물용으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첫째 날 방문한 Bailong 유기 농장도 생산되는 차는 전량 정부가 선물용으로 구매해 간다고 했다. 정부 기관이나 대형 회사들의 중요 행사 시 선물용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중국 내 유기농 유통은 현재 이정도 수준이지만 중국 내 소비층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앞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유기농 시장이 될 거라 전망하고 있었다. 500만이 넘는 고소득자와 안전한 먹거리를 요구하는 중산층, 100만이상의 외국인들과 대만인들이 주요 소비층이고 앞서 말한 정부나 기업같은 그룹 소비도 꾸준할 것이라 한다. 중국 유기농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쳐야겠다. 더 얘기하면 바닥이 보일 것 같다.^^
셋째 날 24일은 나로서는 다소 생소한 개념인 유기 수산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기회였다. 우리는 수산이라하면 김, 미역, 굴 등 바다 양식을 주로 떠올리는데 중국은 민물양식을 주로 하고 있다고 한다. 바다와 가까운 큰 도시가 별로 없고 강과 호수에서 잡히는 민물 생선을 주로 먹어왔기 때문에 수산 양식도 민물 생선 위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 아직 유기 수산 제도는 없고 친환경 수산제도가 도입되고 있고 2011년 세계 유기농 대회를 통해 유기 수산에 대한 전망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열리는 울진 친환경 엑스포에서도 유기 수산에 대한 심포지움이 열릴 예정이다. 각설하고 우리가 방문했던 유기 수산 양식장은 절강성 지아산군에 있는 汾湖(2700헥타 규모)라는 호수에 있었다. 그 중 1600헥타정도의 면적에서 유기 수산으로 생산하고 있다. 유기 수산으로 전환한 지는 2년밖에 안됐지만 호수 안에 그물을 쳐 놓고 게, 새우, 숭어 등을 기르고 있는데 먹이가 되는 수초를 심고 민물 골뱅이를 넣어주어 자연스럽게 번식이 되도록 해서 항생제나 호르몬 성분이 있는 사료를 넣어주지 않아도 돼서 유기 수산으로 인증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양식 밀도를 정확히 지키면 사료를 넣지 않기 때문에 수질이 오히려 더 좋아지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이 호수는 상해시와 절강성 주민들의 상수원이라 수질 관리 기준이 엄격한데 현재 15일에 한번씩 수질 검사와 양식어류의 성장 상태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경영은 개인이 하고 있지만 정부는 호수 임대 시 경쟁을 감독하고 주변환경관리를 해주고 있는데다 자금이 필요할 때 은행 융자를 주선해 주는 등의 편의를 봐주고 있다고 한다. 유통은 초기에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유통해봤지만 관행 생산된 것과 섞이는 등 문제가 많아서 현재는 6개의 전문 판매점을 설치해서 직접 운영하면서 혼입이나 오염을 방지하고 있다. 양식 밀도를 지키느라 수확량은 적지만 생산비는 관행 생산에 비해 훨씬 적게 들고 판매가는 2배정도 높기 때문에 수익은 많은 편이라 한다. 보고난 후 일단 중국은 뭐든지 하면 대규모로 그리고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한 길로 밀어붙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넷째 날 25일은 야채 가공 회사 견학을 했다. 내가 이날 기록 담당이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당일 기록에서 볼 수 있으니 참고 하시면 될 것 같다. 유기 사양과 일반 사양을 함게 병행하고 있는 곳이라 어떻게 혼입을 방지하는지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갔었는데 너무나 심플한 방법이어서 궁금해 했던 것이 무색해졌다. 일단 라인을 완전히 분리해서 혼입이 일어날 수 없었고 가공 일정도 겹치지 않게 잡는다고 했다. 공장 시설은 HACCP기준을 거의 완벽하게 맞추고 있었고 수출을 위한 국제 인증도 거의 획득해 둔 상태라 어느 시장이든 진출할 준비가 갖춰져 있었다.
다섯 째 날 26일은 앞서 말한 BIOFARM농장을 견학했다. 전 날까지 본 시설들에 비하면 훨씬 우리 정서에 맞는 곳이라 나름 반가웠던 곳이었다. 이전까지 견학들은 중국의 유기산업이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전망 있는 산업이라서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면 이곳은 나름 철학을 가지고 운동의 개념을 갖고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영이 안정될 만큼 수익이 나는 구조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중국에서도 당연히 이런 움직임이 있기를 바랐던 기대가 무너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연수 마지막 날 27일은 상하이 BIOFACH(처음에 이걸 어떻게 읽는지 궁금했었는데 독일어식으로 읽는 것이었다.^^ 비오팍이라 읽으면 된다)에 참관하는 걸로 연수 일정이 마무리 되었다. 2011년 남양주에서 열리는 세계 유기농 대회 홍보부스(이번 연수에 여기 홍보팀이 함께 움직였었다)가 차려지는데 이곳도 지원하고 다른 부스들도 돌아보면서 중국의 유기농이 어디쯤 있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올해는 예년보다 규모가 적은 편이라 하고 별로 많이 참여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중국 외 나라들의 부스는 별로 볼만한 게 없었고 중국 내 부스들도 수출을 위한 식료품 홍보 부스만 많았던 것 같다. 생협을 대신해서 간 내 입장에서 하나 눈에 띄었던 곳은 LOHAS FAMILY라는 소비자 조직이 차린 부스였는데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중국 내에서도 소비자 조직이 생겨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혹시 이곳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홈페이지를 살펴보시길. 주소는 http://www.lohas-village.com 이다.
견학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하고 남는 시간동안 둘러본 곳 중에 인상 깊었던 두 가지를 소개하고 글을 맺으려 한다. 하나는 난징에서 항주로 이동하는 중에 점심식사 겸 들렀던 Xitang이라는 오래된 수상 도시이고 두 번째는 항주 서호에서 저녁 시간을 이용해서 본 “인상서호(印象西湖)” 관람이다. Xitang은 규모도 작고 좀 다른 분위기이긴 하지만 베니스를 연상시키는 곳이었는데 아기자기하게 볼 게 많은 곳이었다. 하지만 유명 관광지가 되어있으므로 주의할 점이 많은 곳이기도 했다. 장예모 감독의 인상서호(印象西湖)는 항주에 갈 기회가 있다면 꼭 한번 보시라 권하고 싶다. 물위에서 공연할 생각을 하다니 장예모 감독은 정말 기발한 사람인 것 같다. 내용은 중국 무협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알만한 ‘백사전’이라는 중국 전설을 소재로 한 것이라 그냥저냥 진부한 내용이지만 西湖의 호수위에서 펼쳐진 음악과 조명과 무대장치, 그리고 동원된 사람들로 어우러진 환상적인 장면들은 놓치기엔 너무 아깝다. 우리가 간 날 마침 비가 많이 와서 우의를 입고 비를 맞으며 봤지만 오히려 더 환상적인 분위기였다는... ^^.
처음의 기우를 완전히 날려버리고 즐겁고 유익한 여행이 되게 해줬던 함께 간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하고 불편없이 일정을 소화하게 도와준 가이드 마선생님을 비롯한 중국에서 만난 분들, 그리고 알찬 일정과 세심한 배려로 감동을 주신 환농연 장상준 팀장님께도 감사를 드리며 글을 맺는다.
기행문-환농연 중국연수.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