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적이면서도 감미로운 땅고 음악이 흘러 나오던 밀롱가에 난데없이 쿵작쿵작 하고 이상한 음악이 등장하였다.
사람들은 갑자기 등장한 이 음악에 당황해 잠시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몇몇 사람들이 “그래도 땅고는 어떤 음악에도 출 수
있다”는 꿋꿋한 신념으로 춤을 계속 진행하려고 하는 순간 음악이 갑자기 사그라져 버렸다. 덕분에 사람들은 더 어리둥절해져 버리고
말았다. 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땅고 음악이 흘러 나오고 밀롱가는 다시 춤을 이어 나갔지만, 이 느닷없는 음악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밀롱가의 분위기를 깨며 사람들을 춤으로부터 잠시 빠져 나오게 하는 이 음악의 정체는 바로 꼬르띠나(Cortina) 이다. 국내 밀롱가에서 아직 자리 잡혀 있지 않은 이 꼬르띠나는 가끔 시도될 때마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게 하곤 하였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밀롱가에서는 늘 꼬르띠나가 등장한다.
꼬르띠나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춤을 마치고 파트너를 자리까지 에스코트 해 준다. 그리고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 다시 춤을 신청하고
플로어로 안내하여 자리를 잡고 서서 땅고 음악이 흘러 나올 때 까지 가벼운 대화를 나눈다. 꼬르띠나는 한 곡을 다 사용하지는
않는다. 보통 30초에서 아주 넓은 홀에서의 밀롱가의 경우 1분 이상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럼 왜 꼬르띠나가 필요한 것일까?
<춤을 시작하기 전 가벼운 대화를 나눈다. 매 곡이 시작할 때마다 대화는 계속된다>
땅고 음악에는 여러 스타일의 오케스트라가 있다.
클래식에서도 시대에 따라 여러 가지 스타일이 나뉘어지는 것처럼, 땅고 음악도 시대별로, 오케스트라 별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어떤 곡은 아주 경쾌하고 발랄하고 리드미컬한 데 반해 어떤 곡은 부드럽고 감미로우며 로맨틱하다. 뿐만 아니라 3박자의
땅고 왈츠인 발스(Vals)가 있고, 2박의 빠른 리듬을 가지고 있는 밀롱가(Milonga)도 있다. (밀롱가에는 땅고를 추는
장소를 지칭하는 것 외에도 음악의 장르로서의 의미도 있다.) 땅고를 추는데 있어서는 음악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음악적 특징을 잘 아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만약 이 여러 음악들이 뒤섞여서 연주된다면 각자의 특징을 살리면서 춤을 추는 것이 쉽지 않게 된다.
그래서 스타일별로 3곡~5곡씩 묶어서 틀어주게 되었는데, 이것을 딴다(Tanda) 라 한다. 사실 밀롱가에서 디제이가 음악을
선곡할 때 지금처럼 노트북 컴퓨터를 이용하거나 MP3를 사용해 여러 스타일의 곡이 믹스되어있는 디스크를 만들어 내는 게
불가능했던 시절, 매 곡마다 디스크를 교체하는 것은 무척이나 번거로운 일이었던 당시에는 이런 딴다의 구성이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하겠다.
이 딴다와 딴다를 구별 짓는 사이에 자리하는 것이 바로 꼬르띠나이다.
혹자는 꼬르띠나의 발생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기도 하였는데, 옛날 LP플레이어를 이용해 음악을 틀어 줄 당시에 디제이가 디스크를
교체하면서 잠깐 쉬기 위한 용도로 꼬르띠나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는 설이다. 이유야 어떠하던지 간에 지금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모든 밀롱가는 이 형식을 고수하고 있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오케스트라마다 독특한 스타일이 있다. 사진은 라이브 밀롱가의 모습>
꼬르띠나는 전 딴다에서 흘러나왔던 음악의 분위기를 씻어낼 수 있을만한 전혀 새로운 장르의 음악으로 선택된다. 강렬한 메탈 류의 음악이나 귀에 익은 편안한 클래식, 영화음악 등 누가 들어도 이 음악은 땅고가 아니구나 하고 알 수 있는 곡이 효과적이다.
와인을 마실 때 새로운 병을 따면 잔을 바꾸거나 입안을 물로 헹구어 전에 마시던 와인의 맛을 씻어낸 후에 새로운 와인을 마시는 것처럼, 한 오케스트라의 딴다가 끝나면 꼬르띠나로 귀를 헹구어 앞 딴다의 느낌을 지워 버린 이후에 새로운 딴다를 맞아들이는 개념이라 하겠다.
각 딴다를 구성하고 있는 음악들을 주의 깊게 잘 들어보면 땅고 음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각 작곡가 오케스트라 별로 특징을 잘 살리어 춤의 느낌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또한 딴다와 꼬르띠나는 자연스러운 파트너 체인지를 이끌어낸다.
땅고는 파트너를 바꾸어 가면서 여러 사람과 즐길 수 있는 춤이기 때문에 밀롱가 내에서는 춤을 추고 싶은 사람을 선택하여 한
딴다, 즉 3곡에서 5곡 정도를 함께 즐긴다. 간혹 파트너와 마음이 통해 춤을 계속 추고 싶은 경우에는 두 딴다 이상 지속하는
경우도 있지만 꼬르띠나가 시작되면 플로어는 거의 비워진다. 꼬르띠나를 이용해서 여러 안내방송을 하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경우
1분여 이상 춤을 추지 않고 플로어에 머쓱하게 남아 있기는 영 어색하게 된다. 이럴 때에는 함께 테이블로 돌아왔다가 다음 딴다가
시작되면 다시 플로어로 나가기도 한다.
<꼬르띠나 동안에는 플로어가 비워진다. 사진은 포틀랜드 페스티발 밀롱가>
딴다 도중에 춤을 그만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간혹 예외의 상황이 있기도 하지만 보통은 딴다가 끝날 때까지 같은 파트너와 춤을 춘다. 그리고 밀롱가 내에서 “감사합니다” 라는 표현은 춤을 끝내고 싶다는 의사표현이 되니 자칫 실수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유명한 땅게로인 까를로스 가비또
(Carlos Gavito) 에 관한 일화가 있다. 그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밀롱가에서 한 여성이 가비또의 청을 받고 춤을
추게 되었다고 한다. 평소 가비또를 너무 동경했던 그 여성은 그와 춤을 출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너무 기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서 첫곡이 끝나고 나서 그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그러자 가비또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손을 잡고 플로어를 빠져 나와 그녀를
테이블로 에스코트 해 주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그녀가 어리둥절해짐과 동시에 몹시 실망했을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녀는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알지 못했었다. 그녀가 감격의 표시로 인사한 “Thank you” 가 바로 춤을 그만 추자는 의사표시로
소통되는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고 그녀는 얼마나 가슴을 치고 후회를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