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클라인> 감상문
2021190262 영어교육과 임찬호
한 인물이 다른 인물으로 오인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어온 스토리 전개방식이다. 그것이 자신과 똑같은 복제인간이든, 또는 <미스터 클라인>에서처럼 동명이인이든, 주인공은 오인받는 상황으로 인해 갈등을 겪고 그 과정에서 인식의 변화를 갖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오해의 갈등 상황이 더 복합적이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주인공 로베르 클라인은 유대인 탄압이 당연시되는 시대에 그 이득을 취하는 그림 매매업자지만, 갑자기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이 덧씌워지며 실존적 위기에 처하게 된다. 로베르의 미스터리한 ‘추적’을 다룸과 동시에 영화는 그의 추적 여정 속에서 정체성, 도덕적 책임, 사회와 개인의 관계라는 의미 있는 주제를 탐구하게 한다.
먼저, 영화는 ‘정체성의 불확실성’을 주요 갈등의 소재로 삼는다. 클라인은 본래 프랑스에서 성공한 예술품 상인으로, 자신이 유대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같은 이름을 가진 또 다른 ‘미스터 클라인’의 존재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본인은 유대인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사회는 타자의 눈으로 그를 규정하고 억압하기 시작한다. 규정과 억압 주체는 나치 당국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까지로 확산되어, 순식간에 로베르는 유대인 로베인 클라인이 된다. 이를 통해 영화는 정체성이 단순히 개인의 내면적 확신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상황과 타인의 시선에 의해 얼마나 쉽게 바뀔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또한 도덕적 책임과 방관의 문제를 제기한다. 클라인은 처음에는 자신이 유대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탄압받는 유대인들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심지어 이를 자신의 이익을 위한 기회로 활용하는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다. 유대인 신문이 온 것을 ‘실수’라고 말하기까지 하는 것에서 그의 태도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유대인으로 오해받으면서 그가 방관하던 억압과 폭력의 부당함을 직접 체험하게 된다. 영화는 그가 방관자에서 피해자로 전환되는 과정을 통해,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불의에 대해 무관심하고 방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경고하며, 방관의 책임을 묻는다. 이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상기시키며, 억압에 대한 무관심이 어떻게 사회적 폭력을 허용하고 심화시킬 수 있는지를 암시한다.
더불어, 이 영화는 나치 점령 하의 억압적 권력 구조가 개인을 어떻게 통제하고 파괴할 수 있는지를 강렬하게 묘사한다. 영화 첫 장면에서 가축처럼 신체를 평가받는 유대인이 나오는데, 권력의 억압적 특성이 얼마나 폭력적으로 나타나는지를 볼 수 있는 충격적 오프닝이었다. 한편, 이와 상관없는 삶을 사는 줄 알았던 주인공 클라인은 점차 규제에 옥죄어간다. ‘유대인 로베르 클라인’으로 간주된 이후부터, 나치 정권과 프랑스 경찰은 그를 감시하며,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폭력적으로 그를 지배하려 든다. 미셸 푸코의 권력 이론을 떠올리게 하는 이 장면들은 권력이 단순히 억압하는 수준을 넘어서, 개인의 삶을 통제하고 정체성까지 재정의하려는 폭력성을 드러낸다.
<미스터 클라인> 속 로베르의 추적 여정은 흥미로운 미스터리이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 정체성 문제, 도덕적 책임 문제, 권력의 성격 문제에 대한 논의를 가능하게 한다. 순식간에 타인의 시선으로, 사회의 규정으로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로베르 클라인’이 자신의 정체성도 잃고 스스로 수용소행 기차에 몸을 싣는 엔딩이 여운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