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신선.부봉(神仙峰.釜峰 967m)
♣ 소개 / 특징 / 볼거리
높 이 : 967m
위 치 :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괴산군 연풍면
♣ 신선봉(967m)
신선봉은 충북 충주시 상모면과 괴산군 연풍면에 걸쳐 뻗어있다.
수안보온천에서 동남쪽으로 5㎞지점에 우뚝 솟아있는 아름다운 산이다.
인근에 월악산, 주흘산, 조령산 같은 명산들이 둘러싸고 있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신선봉 북쪽과 남쪽에는 각각 예부터 이름난 두 줄기 길이 있다.
북쪽의 길은 신라가 국력의 팽창에 따라 북진정책을 위해 이곳 백두대간에 처음으로
뚫은 하늘재(지릅재)요, 남쪽의 길은 조선시대에 영남의 선비들이 과거 보러
서울로 올라가던 그 유명한 문경 새재 고갯길이다.
당시에 [황간의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과거에 떨어져버리고, 풍기의 죽령을
넘으면 대나무처럼 미끄러져 과거에 떨어져버리기 때문에 문경 새재를 넘는다]는 속말이 떠돌았다고 옛이야기는 전한다.
한편 하늘재는 평강공주와의 로맨스로 삼국혈전사의 한 장을 빛낸 온달장군이 신라에게 빼앗겼던 [계립현과 죽령 서쪽 땅을 되찾기 위해 출전했다가 단양군 영춘면 하리 소재의 아단성- 근래들어 온달산성이라고 불리는 석성에서 전사한 바 있는 바로 그 계립현으로서 충북 충주시 상모면 석문리와 경북 문경시 관음리를 잇는 해발 500m의 고갯길이다.
새재 고개마루에는 사적147호로 지정된 제3관문 조령관이 있다. 조령관은 예부터 교통의 요지요 군사적 요충이어서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이 장부 1인이 능히 만명의 적을 막을 수 있는 천험의 요새인 이곳을 포기하는 대신 열세의 군사력으로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싸우다가 패퇴한 사실은 유명하다.
♣ 부봉(916m)
역사의 향기를 맡으며 문경새재 길을 걷다보면 조곡관(제2관문) 주위에서 보이는 우뚝솟은 바위산이 있는데 바로 이곳이 부봉(916.2m)이다.
백두대간이 하늘재를 지나며 조령까지 주능선을 이어 놓으면서 한가지를 뻗어 주흘산을 만들고 또다시 한가지를 뻗어 6개의 봉우리를 솟구쳐 놓은 곳으로 백두대간이 지나는 부봉을 제1봉으로 하여 6개를 나누어 높이를 보면 제1봉이 917m 제2봉이 933.5m 제3봉이 911m 제4봉이 923.9m 제5봉이고 사자바위가 있는 곳이 916m이며 새재길에서 보이는 것이 제6봉이고 916.2m이다.
이렇게 비슷비슷한 암벽 봉우리로 모인 산인 부봉은 크고작은 나무와 아기자기한 암벽이 한데 어우러진 등산로로 인하여 많은 등산객들이 즐겨찾는 산이며 새재도립공원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조망이 아주 좋은 산으로 단풍이 가득한 가을산이 제일 아름다운 곳이다
♣ 마역(폐)봉(940m)
마패봉은 암행어사로 이름난 박문수가 조령관 위 봉우리에 마패를 걸어놓고 쉬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조령관(제3관문)을 사이에 두고 깃대봉과 마주하며 충북 쪽으로 신선봉과 맞닿아 있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산으로 지도에는 마역봉이라 기록되어 있으나 이 지방에서는 마폐봉이라 부르고 있다.
오르는 길은 잘 나 있으나 조령관(3관문) 군막터를 지나 성벽을 따라 오르는 길도 있다. 오르는 시간은 1시간이면 충분하며 내려가는 길은 여러 곳이 있다.
▶ 산행코스
A코스 : 고사리주차장 ~ 신선봉 ~ 마역봉 ~ 동문 ~ 부봉 ~ 동화원 ~
조령3관문 ~ 고사리주차장 ( 약 5시간 )
B코스 : 고사리주차장 ~ 신선봉 ~ 마역봉 ~ 동문 ~ 동화원 ~
조령3관문 ~ 고사리주차장 ( 약 4시간 )
C코스 : 고사리주차장 ~ 동문 ~ 고사리주차장 ( 명소 관광 약 4시간 )
▶ 산행지도
◈◈◈ 풍물, 전설 한 마당 ◈◈◈
● 책바위
옛날 이 지방의 부자가 지성을 드러 아들을 얻었으나 몸이 허약하여 걱정을 하는데
어느날 문경의 유명한 도사가 일러주기를 "당신집을 둘러싼 돌담이 이 아이의 기운(氣運)를 누르고 있기 때문이며, 돌담을 허물어 문경 새재의 책바위 뒤에 쌓아 정성을 드리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 했다.
그래서 이들이 삼년에 걸쳐 담을 헐어 돌을 이곳에 운반하여 쌓고 정성을 드렸드니 아이의 건강이 좋아지고 공부도 잘하여 뒤에 장원급제까지 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건강과 급제를 원하는 소원을 비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있다.
오래전부터 과거를 보기 위해 이곳을 지나던 선비들이 책바위 앞에서 장원급제를 빌었다고 하며 지금도 영험하다는 소문이 있어 가족의 건강과 자녀들의 성적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이 찾고 있다.
특히 입시철에는 자녀의 합격을 염원하는 부모들의 발길과 소원성취를 바라는 수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 문경새재(聞慶鳥嶺)의 유래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조령산(鳥嶺山) 마루를 넘는 이 재는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유역을 잇는 영남대로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사회 문화 경제의 유통과 국방상의 요충지였다.
새재(鳥嶺)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옛 문헌에 초점(草岾)이라고도 하여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 또는 하늘재, 麻骨嶺)와 이우리재(伊火峴) 사이의 「새(사이)재」, 새(新)로 된 고개의 「새(新)재」 등의 뜻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뒤에 이곳에 3개(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의 관문(사적 제 147호)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
이 곳은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유서 깊은 유적과 설화·민요 등으로 이름 높은 곳이다. 이 곳에는 나그네의 숙소인 원터, 신구 경상도관찰사가 관인을 주고 받았다는 교귀정터만 남아있는 것을 1999년 중창하였고, 옛날에 산불을 막기 위하여 세워진 한글 표석 "산불됴심" 비(지방문화재자료 제226호)가 남아있다. <문경새제도립공원관리소>
● 꾸구리바위(희롱바위)
교귀정지를 지나 조금 오르다 보면 왼편 큰 도랑 안에 크고 둥근 바위가 있다. 이 바위가 꾸구리 바위이다. 전설에 의하면 바위 밑물속에는 큰 꾸구리가 많이 살고 있어 바위에 앉아 있으면 물속에서 꾸구리가 움직여서 바위가 들썩인다고 한다.
꾸구리는 송아지를 잡아먹을 정도로 컸다고 하며, 물이 깊고 큰 바위가 놓여져 있는 이곳은 전하는 얘기로는 특히 젊은 새댁이나 아가씨가 지나가면 희롱하기까지 하였다고 전한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길을 지나면서 동전을 던지면서 기원을 드리기도 하는데 물이 맑고 고요해 잠시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곳으로 지나는 사람마다 한 번씩 눈길을 주곤한다.
● 예배굴
이 곳 재재길은 최양업 신부 (김대건 신부에 이은 우리나라 두번째 방인사제)가 경상도와 충청도 지방의 순회 전교활동을 위하여 넘나 들던 곳으로 새재길입구(문경읍 진안리)에서 순교하여 천주교 성지로 지정되어 있으며,이 굴은 조선시대 말기 기독교인들의 예배장소로 추정되며 길이 7m, 폭 5.5m, 높이 1m의 동굴내에는 당시 교인들이 사용하던 십자가가 모셔져 있다.
● 교귀정(交龜亭)
교귀정은 조선시대 임금으로부터 명을 받은 신, 구 경상감사가 엄무를 인계인수하던
교인처(交印處)로 1470년경(성종초)에 건립되어 지속적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1896년 3월(건양1년) 의병전쟁시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후 폐허로 터만 남아있던 것을 1999년 6월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매년 경상감사 교인식 재현행사를 이곳에서 거행하고 있다.
건물의 양식은 팔작지붕에 이익공,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 교귀정소나무
이 교귀정 소나무는 경상감사 교인식이 이루어진 교귀정의 역사와 함께한 나무로
전해지고 있다.특히 나무의 뿌리가 교귀정 방향인 북쪽으로 뻗어있고 줄기는 길손들이 쉬어 갈 수 있도록 남쪽으로 향해 있으며,마치 여인이 춤을 추는 듯하여 새재를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보면 볼수록 특이한 형태와 수형으로 그 신비감을 더해준다.
● 소원성취탑
그 옛날 문경새재를 지나는 길손들이 이 길을 지나면서 한 개의 돌이라도 쌓고 간 선비는 장원급제하고, 상인은 장사가 잘되고, 아들을 못 낳는 여인은 옥동자를 낳았다고 한다.
● 마당바위
조령원터와 주막 사이의 상처난 소나무 조금 아래에 위치해 있다. 원터를 지나 약 200m 정도 오르다 보면, 길가에 조령산 등산로를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조령산으로 오르는 이 골짜기는 화덕골이다.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개울을 건너기전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넓은 바위가 보인다. 이 바위가 바로 마당바위다. 타원형의 이 바위는 긴 쪽이 약 5m, 짧은 쪽이 약 4m정도 된다.이곳 문경새재를 지나는 과객들이 새재길을 지나면서 잠시 쉬어가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청운의 부푼 꿈을 안고 금의환향을 기원하며 굳은 의지를 다시 한번 다져보며 길을 떠났던 곳으로 옛 선비들은 풍류를 통해 서로의 깊은 뜻을 헤아려보기도 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새재를 찾는 많은 관광객들의 쉼터이지만, 과거에는 도적들이 이곳에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덮치기도 했던 곳이다.
약 10여년 전 어떤 사람이 마당바위를 잘라가려고 줄을 맞춰 홈을 파고 나무를 끼워 놓았다고 한다. 이를 발견한 주민들이 제거하였으며, 현재 그 흔적이 바위 앞쪽에 남아 있다.
● 바위굴
그 옛날 새재를 지나던 길손이 갑작스런 소낙비를 만나 이 바위굴에 들어오니
마침 과년한 쳐녀가 비를 피하고 있어 두 남녀가 깊은 인연을 맺고 헤어졌다고 한다.
그후 처녀가 아이를 낳아 십수년뒤 아이가 장성하여 아비를 찾아 전국방방곡곡을 다니던 중 선비의 엉덩이에 있는 큰 점을 보고 아비를 찾아 행복하게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 무주암 사연
누구든지 올라 쉬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바위로 옛날에는 이 바위 아래에 무인 주점이 있어 술과 간단한 안주를 준비하여 두었다.길손들이 이 바위 위에 올라 주변의 경치를 즐기면서 목을 축인 후 마신 만큼의 주대를 함에 넣고 가도록 했다고 한다.
● 산불됴심"표석
"산불됴심"표석은 교귀정과 조곡관 사이의 새재길 오른쪽에 있으며, 새재길을 바라보며 서 있다. 다듬지 않은 원추형 자연석(높이 183㎝, 폭 75㎝)에 "산불됴심"이라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 순수한글비로 조선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새재길 통행인들에게 산불조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의미심장한 비로서 이 비는 자연보호의 시금석으로 「조심」을 고어인 「됴심」으로 기록한 보기 드문 순수한글비로 1990년 8월 7일 지방문화재자료 제 226호로 지정됐다.
● 성황사
사적 제147호인 문경관문 주흘관 성벽 위 오른쪽 끝에 위치하고 있는 성황사는 여신(女神)을 모신 곳으로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1975년 성황사 보수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1700년경에 건립하여 조선 헌종 10년(1844년)에 중수한 것으로 추측되며, 문경 제1관문의 축성과 비슷한 시기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새재 성황사 여신은 영험(靈驗)이 뛰어나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아직까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성황신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오고 있다.
조선조 영의정을 지낸 최명길(崔鳴吉 : 1586~1647)이 젊었을 때 문경새재를 넘게 되었는데 이 성황사 여신이 예쁜 색시의 형상을 하고 나타나 새재를 같이 넘으면서 최명길에게 “장차 나라에 큰 병란이 닥칠 때 청나라와 화친하여 나라를 보전하라” 는 말을 하였다.
그후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 청나라가 남한산성을 포위하자 나라의 중신들이 청나라와 끝까지 싸우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최명길은 화청(和淸)을 주장하여 나라를 구하였다는 유명한 전설이 있다.
● 조곡폭포
산불됴심비에서 200m 정도 위에 위치해 있다. 주흘산 깊은 골의 맑고 청아한 물이 한 방울씩 모여 이루어진 이 폭포는 높이 25m의 3단으로 이뤄진 폭포로 이곳에서는 조곡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까지 마련돼 있어 잠시 휴식을 취하기에 좋은 곳으로 영남제2관문인 조곡관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 조곡폭포라 부르고 있다.
이곳의 폭포에 쏟아지는 맑은 물은 부봉과 주흘산 사이의 조곡계곡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을 끌어 폭포를 이루도록 했다. 한 여름 새재길을 지날 때 폭포에서 쏟아지는 시원한 물줄기와 새재계곡의 물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세속의 티끌을 남김없이 씻어주는 곳이기도 하다.
● 용추(팔왕폭포)
교귀정 바로 맞은편에 있는 용추(龍湫)는 일명 팔왕폭포라고도 하며, 새재를 지나는 많은 시인.묵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던 곳이기도 하다.
「동국여지승람」문경현 편에는 "용추는 새재 밑의 동화원 서북쪽 1리에 있다. 폭포가 있는데 사면과 밑이 모두 돌이고,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으며 용이 오른 곳이라 전한다."라고 적혀 있다.
용추에는 '龍湫'라고 바위에 크게 적혀 있으며, 퇴계 이황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의 경관을 시로 읊은 것으로 볼 때 이전부터 널리 알려져서 많은 사람들이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곳 용추를 지나면서 선인들은 무수한 시를 읊으며 경치에 감탄했으며, 대표적인 시를 최근 부근에 돌에다 새겨 깊은 뜻을 음미하도록 했다.
● 지름틀바우(바위)
조산과 조령원터 사이 길 옆에 있다. 바위가 옛날 기름을 짜는 기구와 흡사하게 생겼다하여 지름틀바우(바위)라 불리고 있다.
길쭉하게 늘어뜨린 바위가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내려올 것만 같아 위태롭게 느껴지지만 잘 견뎌오며 오가는 길손들은 신기한 이 모양을 보고 발길을 멈추곤 한다.
● 옛 오솔길(장원급제길,금의환향길)
옛 오솔길이 잘 남아있는 곳은 조곡관인 제2관문 뒤편 100m 쯤 올라가 길 오른쪽으로 오솔길이 보이는데 길 폭이 약 2~3m로 300여m 정도 잘 남아 있어 옛 정취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현재 이 길 외에도 오솔길은 3관문 아래 장원급제길을 합해 3개소로 총 850m 정도가 잘 보존돼 오고 있다. 문경 땅 바로 이 길은 조선조 선비들이 장원급제를 꿈꾸며 과거(科擧)를 보러 한양으로 넘나들던 옛적 그대로의 길이다.
당시 영남에서 한양에 이를 수 있는 길은 조령(문경새재)과 죽령 및 추풍령을 경유하는 세 갈래가 있었는데, 영남대로인 문경새재는 문경의 옛 지명인 문희(聞喜)에서 드러나듯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 하여 영남은 물론 호남의 선비들까지도 굳이 먼 길을 돌아 이 길을 택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 문경새재 볼거리 목록
49.영남 제3관 |
조령관(사적 제147호) 숙종 34년(1708)에 설관 |
48.부봉 |
해발917m의 바위산으로 노송이 유명함 |
47.마패봉 |
해발925m의 백두대간으로 일명 마역봉이라고도 함 |
46,군막터 |
조선시대 조령관을 지키던 군사들의 대기소 |
45.조령약수 |
새재정상에 솟아나는 백수령천(百壽靈泉),낙동강 3대 발원지 하나 |
44.장원급제길 |
영남의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던 청운의 길 |
43.책바위 |
각종 시험들에 합격을 기원하는 돌탑 |
42.동화원 |
조령원과 같이 길손들의 숙식을 제공하던 곳 |
41.이진터 |
임진왜란때 신립장군이 진을쳤다고 전해지는 곳 |
40.조령산 |
해발1,026m로 백두대간에 위치한 명산 |
39.귀틀집 |
산악지대에서 사용되던 한국식 통나무집 |
38.바위굴 |
새재길을 지나는 길손들이 비를 피하던장소, 새재우의 전설 |
37.문경새재아리랑비 |
문경새재 물박달나무에 얽힌 민요를 새긴 비 |
36.시가 있는 옛길 |
조선시대 새재를 넘던 선비들의한시를 감상할 수 있는 곳 |
35.조곡약수 |
길손의 갈증을 풀어주는 명약수 |
34.영남 제2관 |
조곡관(사적 제147호)선조 27년(1594)에 설관 |
33.주흘산 |
해발1,106m로 조선시대 문경현의 진산 |
32.조곡폭포 |
주흘산 깊은 계곡의 맑은 물이 흐르는 45m의 3단 폭포 |
31.산불됴심비 |
조선시대 설치된 한글로 된 산림보호비(문화재자료 제226호) |
30.예배굴 |
조선시대말 기독교인들의 비밀 예배장소로 추정되는 바위굴 |
29.교귀정 |
체임하던 신,구관찰사가 관인을 인수인계하던 곳 |
28.소원성취탑 |
장원급제, 부자, 출생, 쾌유 등을 기원한 돌탑 |
27.꾸구리바위 |
바위속에 꾸구리가 있어 아가씨가 지나가면 희롱하였다고 함 |
26.팔왕폭포(용추) |
시인,묵객(墨客)이 즐겨 찾았던 경승지(궁예 최후의 장면 촬영지) |
25.주막 |
새재길을 넘다 피로에 지친 몸을 한잔 술로 여독을 풀던 곳 |
24.상처난소나무 |
일제말 일본군이 송진을 채취하던 자국이 남은 소나무 |
23.무주암 |
무인주점이 있던 장소로 전하며 조령산 능선의 경관이 잘 조망됨 |
22.조령원터 |
조선시대 길손들의 숙박과 물물교환장소로 사용 |
21.지름털바우(기름틀바위) |
기름을 짜던 틀처럼 생긴 바위 |
20.마당바위 |
가로 5m,세로 4m정도로 마당같이 평평한 타원형의 바위 |
19.등룡정 |
이순신 장군이 무예를 익히던 활터를 재현한 KBS촬영세트 |
18.혈지른자리 |
임진왜란시 큰 인물이 날 자리라고 하여 혈을 질렀다고 하는 곳 |
17.조산 |
마을의 안녕과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돌무덤 |
16.KBS드라마촬영장 |
세계 최대규모의 사극촬영세트 |
15.망치등 |
봉수대와 망루가 있던 능선으로 전하며 포루라는 기록도 보임 |
14.산신굴 |
주홀산의 산신인 호랑이가 살던 곳으로 전하는 바위굴 |
13.선정비군 |
관찰사나 현감등 관리들의 선정을 기념하는 비(碑) |
12.경북 개도100주년 타임 |
경북도민의 생활상등 자료매설 |
11.대궐터 |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행재소(대궐)를 세운 터 |
10.혜국사 |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한 곳으로 신라시대에 건립된 사찰 |
9.여궁폭포(파랑소) |
20m의 장대한 폭포, 일명 여심폭포(女心瀑布) |
8.신길원 현감 충렬사 |
신길원 현감의 위패를 모신 사당 |
7.성황당 |
병자호란 당시 지천 최명길과 여신과의 전설이 있는 곳 |
6.영남제1관 |
주흘관(사적 제147호) : 숙종 34년(1708)설관 |
5.장승공원 |
잡귀를 막고 마을의 안녕을 지키는 민간 수호신 |
4.자연생태공원 |
생물의 다양성확보와 자연환경보전의식 고취를 위한 자연체험장 |
3.문경새재박물관 |
이 고장 선조들의 문화유산을 전시 |
2.신길원 현감비 |
임란때 순직하신 신길원 현감의 비 (지방유형문화재 제 145호) |
1.선비상 |
전통사회의 구심점이었던 선비의 의식과 정신을 상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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