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筆
오래된 숙제
이재홍
타이베이 북쪽에 위치한 송산 공항 문을 밀고 나오니 덥고 습한 바람. 이 확 밀려온다. 오래전 기억 속의 타이완 날씨다. 비행기 속에서 엉키던 타이완 생활의 기억이 예전에 익숙했던 바람을 맞으니 하나씩 되살아난다. 몇 번이나 벼르기만 하고 차일피일 미뤄왔던 타이베이의 옛집, 대학원 교실과 기숙사를 다시 한번 보고, 그때 학우들을 만나 보려는 계획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35년 전, 나는 늦깎이로 대만 정치대 행정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때는 우리도, 대만도 못살았고, 막 발전을 위한 발걸음을 떼던 때이다. 대만에 첫발을 디디던 때의 첫인상은 도시는 더럽고, 무더위에 웃통을 벗고 사는 사람이 참 많았다. 만둣집에 가면 만두를 튀기는 솥으로 일하는 사람의 땀이 뚝뚝 떨어져 들어가는 것을 보고도 그 가게서 만두를 사 먹기도 했다. 그들의 여유롭지 않은 삶에서 위생 관념을 중히 여길 겨를이 없었을게다.
유학이라면 미국이나 프랑스, 독일이 주류던 시대에 대만으로 유학을 온 것은 조금은 뜬금없는 일이기도 했다. 나름대로는 머지않아 중국과 수교가 불가피하고, 수교 되면 중국 전문인력 수요가 크게 늘 것이므로 미국보다 중국을 배워야겠는데, 중국은 미수교국으로 갈 수 없기에 대신 대만으로 온 것이었다.
대만 생활은 힘들었다. 언어도 유창하지 않은데 사투리까지 섞인 노교수의 강의를 듣는 시간은 고역이었고, 매사에 서툰 생활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생전 처음 겪는 더운 날씨에 머리가 멍하고, 무질서하고 더러운 골목길과 시장은 참기 어려웠다. 거기에 빠듯한 경제 사정까지 겹치니 모든 것이 어렵기만 했다. 어떻게 견뎠을까? 젊었기에 견디었나?
아침 산책 삼아 '청년공원에 가기로 했다. '청년공원'은 내가 예전 살던 아파트 건너편에 있는 넓은 공원이다. 호텔에서 멀지 않아 걸어서 갔다. 큰길은 넓고 깨끗했다. 공기도 서울보다 깨끗한 듯했다. 조금 지나 좁은 길로 들어서자 바닥에 때가 끼고 닫힌 셔터에 먼지가 많은 집이 아직도 있다. 대만은 비가 잦고 습도와 기온이 높아 오래된 건물에는 곰팡이가 피고 외벽 틈새에는 풀까지 자라 더럽게 보인다. 좁은 길의 보도는 도로변 건물의 필로티로 되어 있어 비가 오면 비를 피할 수 있지만, 비가 와도 바닥이 씻기지 않아 쉽게 더러워진다.
'청년공원'에 도착하니 입구 건너편 길에 아침에만 열리는 번개시장이 열렸다. 예전에 그날 치 신선식품을 번개시장에서 구했던 일이 생각났다. 우리나라 시골 재래시장과 비슷한 모습이다. 아내는 좌판의 굵은 죽순, 싱싱한 공심채 등 채소와 파파야, 양타오, 빠자오 등 다양하고 저렴한 과일을 보고 서울보다 훨씬 싸고 싱싱하다고 연신 탄성이다. 우리는 사과, 깎은 파파야, 주먹밥과 떠우장을 사 들고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은 예전과 달리 잘 관리되어 깨끗하고 갖가지 계절 꽃이 한창이었다. 키큰 나무의 보라색 꽃, 키 작은 나무에 탐스럽게 핀 노란 꽃이 간밤에 온 비를 맞아 싱싱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공원 중간쯤의 벤치에 앉아 그들을 보며 방금 산 주먹밥과 과일로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맞은편에는 인근 주민들의 아침 운동이 한창이다. 태극권을 하는 이, 구령에 맞춰 댄스 같은 체조를 하는 이 등 다양하다. 노인들 중에 중년도 간간이 섞여 있다. 중국에는 예전부터 어딜 가나 이른 아침 공원에서 운동하는 사람이 많다. 요즘 많아진 서울 주변 산의 아침 운동 모습보다 다양하고 연륜이 있어 보인다. 노인의 건강관리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인데, 우리나라는 급속한 노인 증가에 비해 사회적 대응이 한발 늦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들의 추억이 서린 조촐한 아침밥은 생각보다 맛있었다. 따뜻한 쌀밥 안에 절인 무, 참깨 등 네댓 가지 소를 넣었다. 담백하면서도 짭짤한 맛과 고소한 맛이 어울려져 옛날 맛이 떠올려졌다. 할머니가 조그마한 밀차를 가지고 와 즉석에서 만들어준다. 아마 평생 만들어 팔았을 것이다. 주먹밥은 눈에 보이는 재료와 눈에 안 보이는 그녀의 삶이 함께 뭉쳐진 듯 맛이 깊었다. 젊은이들은 만드는 것을 보면 비위생적이라고 안 먹으려 할 것이다. 나에게는 어릴 적 어머니가 끓여준 시래기와 삭힌 매운 고추를 넣은 된장국이 생각나듯 주먹밥 맛이 정겨웠다.
공원을 가로질러 나가면, 내가 살았던 아파트가 있다. 아파트 모습은 예전대로인데 주변 풍경이 눈에 설다. 35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옛날 그 음식점들, 그 가게들이 그대로일 리 없는 것을 알면서도 옛 모습이 그리웠다. 아파트를 보니 예전의 기억 조각들이 부스스 깨어난다. 옛집을 잘 보기 위해 길을 건너 아파트를 따라 걸어 본다. 수십 년간 보고 싶었던 마음을 한 번에 다 채우려는 듯 천천히 걸었다. 학교에서 힘든 하루를 마치고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걷던 기억이 소환되어 가슴이 묵직해진다. 주말 아침이면 공원 부근 간이음식점에서 계란과 파를 넣고 밀가루로 붙인 전병과 떠우장으로 식사를 하던 때가 생각난다.
왜 여기를 꼭 다시 와보고 싶었을까? 왜 여기를 와보는 일이 오랜 세월동안 마음의 숙제였을까? 단순히 그 시절의 힘듦 때문이었을까? 이제 삶을 펼치기보다 정리해서 닫을 때라고 여겨서일까? 그 시절 나는 학업 부담이 컸고, 중국 친구들과의 교류를 통한 즐거움도 적었다. 매일 즐겁고 활력이 넘치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분위기가 아내에게까지 전달되어 가족 모두가 불편한 시간들이었다. 그 아픔은 생각보다 깊었다. 훗날 생각하니 그때의 어려움은 가슴을 짓누르는 부담으로 여기지 말고 세월과 함께 흘러가는 것이라 여겨야 할 일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옛집 앞에 서니 가슴속에 오랫동안 똬리를 틀고 있던 묵직한 응어리가 스르르 사라졌다. 마음껏 푸르른 공원 숲에서 옛집을 보니, 지나간 시절은 아련한 한폭의 풍경이었다.
이튿날은 옛 학교를 찾았다. 북상하는 태풍으로 시내는 텅 비었다. 손님이 적어 헐렁한 시내버스를 타고 옛 학교에 갔다. 교문 부근 기억 속의 저렴하지만 실속있는 허름한 식당들은 깔끔한 가게들로 바뀌었다. 그 시절의 모습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너무 많은 변화가 서운했다. 학교 정문 옆 '졸업생 복무센터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아뿔싸! 여기도 오늘 휴무구나. 나는 그곳에서 옛 학우의 연락처를 알아보려 했다. 나에게 유난히 친절했던 왕웨이화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새침떼기 웨이메이롱양은 이제 할머니가 되었을까? 꼭 만나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번 여정은 이틀 후에는 출국해야 하므로 옛친구를 만날 기회가 사라졌다. 오랫동안 간직했던 두 번째 숙제를 풀 기회를 태풍이 앗아간 것이다. 그들의
얼굴을 보며, 그동안 잘 살아왔는지 안부를 묻고, 옛날 정말 고마웠다고 인사라도 하고 싶은 바람을 접어야 할 때였다.
나의 유학은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유학의 목적이 학문연구가 아니라 중국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었다. 정부를 운영하는 방식을 보고, 그에 반응하는 시민들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현실과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으나 나의 준비는 모자랐다. 그들을 깊이 알기 위해서는 학점보다 진실한 현지인 친구를 사귀는 것이 더 중요했다. 많지 않은 교우 관계도 귀국 후 얼마지 않아 단절되었다. 가느다란 인연조차 사라진 것이다. 훗날, 생활에 여유가 생긴 후에야 그 인연들은 매우 귀했음을 알게 되었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옛 강의실을 찾아봤다. 텅 빈 불 꺼진 강의실은 썰렁했다. 내 인생의 한 부분이었던 옛 기억은 마음에 그대로 둔 채 교정을 걸었다. 운동장에서 젊은이들이 태풍에 아랑곳없이 야구를 하는 모습이 여유로웠다. 이제 내 마음에 오랫동안 쌓아뒀던 추억의 한 페이지를 덮을 때인 것 같다. 친구들 얼굴도 못 보고 가지만 모두 안녕하길 빌고, 교문을 나섰다.
이재홍
<인간과 문학) 수필등단인간과문학제10회 신인작품상인간과 문학회, 아침문학회 회원 md1011@hanmail.net
<<인간과문학 2025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