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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12월 7일 주일 오후 예배 설교)
성경 : 로마서 3:19-31(신약 243)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구원을 받고 복을 받기 위해서 필요한 첫 번째 조건이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도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기 위해서 의로운 성도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서 의로운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어떻게 의롭게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길은 영적인 사면 밖에는 없습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한 이후로 인간은 인간 스스로 의로운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의롭다는 말은 죄가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거룩하다는 말도 역시 죄와 구별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거룩이란 말과 의롭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죄가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죄를 지었고 우리는 죄를 유전 받아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죄에서 완전히 벗어날 만한 힘이 없습니다. 또한 우리 스스로 죄를 이길 의지가 없습니다.
누군가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면 우리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힘이나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길은 오직 믿음 뿐입니다. 믿음 이외의 방법으로 우리가 의롭게 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바울 사도가 하는 말씀은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될 수 있고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성도의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믿음으로” 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율법은?
바울 사도는 믿음으로 라는 말을 강조하면서 믿음과 율법을 비교하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믿음과 율법은 늘 논란의 대상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믿음과 율법은 교회 안에서 중요한 논쟁의 대상입니다.
안식교회는 오늘날도 율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주일이 아닌 안식일 예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약의 율법의 규정들을 오늘날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율법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효력이 있습니다. 19절을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율법은 율법을 지켜야만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효력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율법은 효력이 없다는 말입니다. 율법대로 살아야만 한다고 믿는다면 그리고 율법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율법은 효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으로 구원 받는다고 믿지 않습니다. 반드시 율법대로 살아야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야 구원받는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율법이 우리에게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에 매여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았음을 믿는다면 자꾸 율법주의에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자꾸 율법주의가 되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될 사람이 없습니다. 20절을 보면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은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만 효력을 발휘한다고 말씀하신 다음에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고 인정받을 육체가 없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즉 율법을 완벽하게 다 지켜야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수 있는데 율법은 완벽하게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또 하나 언급하고 있는 것은 율법의 본래 목적이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법이란 원래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법이란 것을 읽어보면 무엇을 하면 무슨 죄가 된다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법이란 말 자체가 죄를 규정하는 것이고 어떻게 하면 의롭게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율법은 의롭게 되는 길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것이 율법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으로 죄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이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이고 우리의 힘으로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율법의 유익은 바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알게 되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의 유익이라면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게 되는 유익이 있습니다. 우리가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것이 율법의 온전한 목적입니다.
믿음이 율법을 온전하게 합니다. 31절을 보면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여기서 바울 사도는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고 할 때 율법이 필요 없는 것인가? 하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율법을 굳게 세운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을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그러면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이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을까요? 그와 정반대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의지하는 만큼 더욱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길과 하나님께 더 순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주의가 아니라 율법의 본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율법의 의미를 깨달을 때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더 큰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의
바울은 율법에 의한 의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면서 하나님에 의한 의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한 의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21절에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는데 율법과 선지자들이 증거를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하나님에 의한 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 미치는 의입니다. 22절을 보면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율법 외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말한 다음에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는 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해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거기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우리가 율법대로 살아감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의는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차별이 없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주시고, 어떤 사람은 제외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의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습니다. 23절을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나님의 의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의가 필요한가 하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한 이후로 모든 사람들은 죄를 유전 받았고 죄 가운데 태어났기 때문에 모두가 죄를 범한 상태입니다.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같은 이치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죄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은 영광과 거리가 멀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모두 죄인이고 죄를 범했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러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벧전 5: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우리는 원래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없는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임하게 되었기 때문에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자가 되었습니다.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24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가 임하게 되는 것은 즉 의롭다고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잘 지키고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만큼 무엇인가를 했기 때문에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값없이 은혜로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의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에 의해서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값없이 즉 어떠한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그냥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의 특징입니다. 율법의 의는 그것을 완벽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완벽하게 지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 은혜로 값없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은혜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죄가 없다고 인정을 받는 것으로 영적 사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3. 믿음으로
오늘 본문에서 믿음으로 라는 단어가 6번이나 사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임하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되는 것이고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시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믿음으로 화목제물로 세우셨습니다. 25-27절 까지를 보면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3: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5절을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보내 우리가 지은 죄를 대신해서 벌 받게 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내릴 진노를 멈추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피와 우리가 가진 믿음으로 진노를 거두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이 되셨다는 말입니다. 이전 시대에 죄지은 자들을 벌하지 않았던 것도 실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들의 죄를 없애 주실 때를 기다리신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공정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우리 대신에 벌을 받게 하셨고 우리에게 내릴 진노를 멈추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은 화목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의 피에 의한 것이고 그 피를 힘입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이 되게 하심으로 이전 시대에 죄지은 자들을 벌하지 않았던 것 까지 모두 사함을 받게 하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예수님 이전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의가 그리스도의 화목제물 되심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28절에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우리의 구원은 선한 일을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따라 선한 일을 많이 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고, 의롭다 인정을 받게 하고, 거룩한 성도로 인정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모두 다 죄인들이고 의로운 자가 없는데 하나님의 의가 그리스도의 화목제물 되심을 통해 우리에게 임하게 되었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게 되는데 이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고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어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차별이 없이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29-30절을 보면
3:29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3: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을 유대인에게만 국한시킨 종족 수호신의 개념을 공격하면서 범우주적 창조주, 섭리주, 구속주로서의 하나님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을 근동 지방의 다른 나라들과 같이 자기들만의 신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은 제사장 나라로서(출 19:6) 열국의 구속을 위해 살아야 할 의무를 무시했습니다.
바울은 이처럼 유대인의 잘못된 신앙관을 비판함으로써 유대인들이 섬겼던 하나님을 이방인들이 믿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무시했던 것을 고려하면 바울이 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매우 충격적인 발언이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이름조차도 감히 부르지 않았던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을 이방 민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신성 모독과 같이 무거운 범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오히려 유대인의 교만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방인의 하나님 되심은 바울 자신의 개인적인 소신이 아니라 이미 구약의 선지자들에 의하여 예언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에 동참한 이방인(갈 3, 14)은 참된 이스라엘이 되었으며 또한 영적 아브라함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으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하지 않으시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을 받아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받은 구원과 의를 감사하면서 매일 주님의 영광에 가까이 가는 믿음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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