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포세대’라는 말은 연애, 결혼, 출산포기라는 뜻에서 나온 신조어이다. 5포세대는 3포세대에 내 집 마련, 인간관계 포기가 추가된다. 7포세대는 5포세대에 꿈, 희망 포기가 늘어난다. 이것도 부족하여 지금은 얼마나 더 포기해야 할지 모르는 N포 세대에 이르렀다고 한다.
젊은 남녀들 중에 ‘비혼주의’가 많다. 취업을 하지 못하여 연애도 못한다. 취업했다손 치더라도 결혼까지 골인하기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런 한계에 맞닥뜨린 청년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비혼주의로 살아가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느 순간부터 결혼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해야 세대를 이어간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심정으로 가족들부터 결혼 응원과 독려를 해 보았다. 결혼적령기에 이른 처남이 있었기에 중매를 두세 번 해보았는데, 매번 저울질만 하다 성사되지 못했다. 어느 한쪽이라도 눈에 콩깍지가 씌어야 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잔꾀만 느는 것 같다. 50세에 이르도록 건강한 처남이 결혼하지 못한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하다.
내가 세상을 초월하고 신학교에 가려고 인천에 왔을 때, 삼중고에 빠진 어느 목사를 만났다. 어느 날 교회당이 불타버리자, 새로 건물을 세우다가 아내까지 잃고 목회마저 어려운 상태에 놓였다. 교회당 건물은 1층을 짓다말아 녹이 슨 철골조가 험상궂은 모습을 하고 있었고, 교인들도 몇 명 남아있지 않았던 것 같다.
43세의 홀아비 목사님의 슬하에 남매가 있는데, 조부모가 돌보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목사님은 아픔과 고통을 이기기 위해 성경 원어를 독파하며 고뇌의 시간을 보냈다. 어떨 때는 땅콩과 귤 몇 개로 한 끼를 때운다고 했다. 그때마다 동정하는 마음뿐 뾰족한 수가 없었다.
어려움에 빠진 그에게 보이지 않게 중매가 진행되었다. 아는 후배가 외국 선교지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 처녀 선교사에게 목사님의 이력과 형편을 이야기하며, 혹시 결혼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대뜸 기도해보겠다며 인적사항과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단다. 목사님에게는 귀띔만 해 줬다.
어느 날 새벽 4시에 낯선 여인이 그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여보세요. 저는 해외에 있는 ○선교사입니다. ○목사님이시죠?”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황당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후배로부터 대충 들었지만, 처녀가 새벽 4시에 전화를 한 그 담대함이 무서울 정도였다. 선교편지를 보낸다고 주소를 알려달라는 것이다. 당황한 목사는 한마디로 거절하고 나중에 귀국하면 후배와 함께 식사나 대접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 여선교사는 홀연 단신으로 해외원주민 선교사역을 7년 동안 하고 있었다. 4남 2녀 중 둘째딸로 ‘남녀호랑객교’를 섬기는 집안에서 자란 그녀가 선교사가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지방에 있다가 서울로 상경하여 퇴직하셨고, 그녀도 예전에는 의료보험조합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명퇴하고, 문학에 뜻이 있어 집에서 가까운 한신대학교 국문과에 입학을 했다. 어머니가 하나님을 믿는 대학교라는 낌새를 채고 반대했지만, 그녀는 학교가 무슨 상관이냐고 반박하며 다녔다.
한신학교는 매주 두 번 채플에 참여해야 하는 규칙이 있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예배에 참석했다. 가랑비에 옷이 젖게 된 것일까? 채플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고 회심이 일어났다. 그것도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하나님을 만난 후 시인이 아니라, 선교사가 되기로 결단했다. 그 후 가족들도 부모님을 비롯하여 형제 및 자매를 개종시켜 예수님을 믿게 했다. 부모님은 권사 직분을 받게 되었고 남동생 하나는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녀는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 후 곧바로 해외 원주민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다. 이런 담대함이 있었으니 무서운 여자가 아닌가?
10개월 후 그 선교사가 입국한다고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목사로는 원하지 않았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 당시 목사는 49세, 선교사는 44세였다. 목사는 약속 장소에 먼저 와서 기다렸다. 맞은편에서 쇠골이 파인 레이스로 치장한 옷을 입고 횡단보도를 걸어오는 여인이 있었다. 왠지 애처로워 보였는데, 바로 그녀가 맞선보러 나온 선교사였다.
주선한 후배를 보내고 둘이서 식사와 차를 마시며 데이트를 하는데, 목사의 눈에 선교사는 한 번도 데이트를 해 본 적이 없는 여인 같았다. 처녀선교사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못해서, 홀아비 목사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서점과 서울대학교를 배회하며 교제를 나누었다. 그리고 늦은 시간에 집까지 배웅해주며, 책 한 권과 복숭아 한 박스를 선물로 주었다.
그 때까지 벙어리처럼 말만 듣던 그녀가 말문이 열렸다. “집에 들어가서 차 한 잔 하고 가실래요?” 목사는 또 한 번 무섭게 밀어붙이는 여자라는 걸 실감하며, 부모님에게 인사까지 하게 되었다. 하루 만에 속전속결이었다. 물론 처갓집의 반대도 있었다. 그런데 당사자가 좋다는데 누가 막겠는가? 목사는 그녀의 요청을 받고 해외 선교지에 나가 결혼식을 마치고 선교사역을 마무리한 뒤, 국내에 들어와 목회를 하며 살갑게 잘 살고 있다.
최근에 그 목사님에게 연락이 왔다. 사모가 정원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허리를 다쳤단다. 손수 머리를 감겨주고 집안 살림을 하다 보니, 아내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홀아비와 처녀가 희한하게 만나서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아간다. 광야의 절벽에서 포기하지 않았던 목사와 여장부의 선교사가 만나 천생연분의 부부가 되었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 속담이 있다. 결혼은 내 짝을 찾는 일이다. 그 효험 있는 첫 단추가 하나님께 짝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다. 모든 것을 알고 능치 못함이 없는 하나님은 모든 만남을 주선하신다. 하나님은 조건을 따지지 않는 희한한 중매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