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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노인
정 병 국
원 사람하곤! 눈총 좀 그만 줘요. 여기서도 쫓겨나면 더 이상 갈 데가 없소.
내 언제 당신을 타박한 적 있소? 한 세상 참 무난하게 잘 살았다고 하늘과 땅에, 그리고 조상님에게 감사드리지 않았소. 아들 딸 세 자식농사도 임자 덕분에 그만하면 풍년이니 고맙다 이르며 술 한 잔 따랐는데 그새 잊었소?
하기야 부부의 정마저 내려놓고 떠나야 하는 게 저승이지요. 그런 사람에게 속세의 일을 시시콜콜 들춰내어 따지듯 말함은 큰 실수지요. 하지만 오늘은 요즘의 심사를 말하지 않을 수 없으니 조용히 들어줘요. 욕심 같아서는 용한 무당을 가운데 앉히고 당신과 소통하며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너무 요란을 떠는 것 같아 참소. 그냥 내 하소연할 터이니 듣기만 해요.
우리가 살붙이고 산 게 40년이었으니 적지 않은 세월 아니요.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소. 엉뚱한 오해로 다투기도 했고요. 늙어서 혼자가 되면 추억을 먹고 산다는데, 누가 한 말인지 모르지만 기막힌 표현이요. 추억을 떠오르는 대로 회상하다보면 당시에는 죽고 싶었던 일도 빙그레 웃음이 나오잖소.
당신, 이혼하겠다고 펄펄 뛴 게 두 번이지요? 그중 하나만 얘기합시다. 해명할 방법이 없어 하마터면 이혼당할 뻔했지만, 그때 당신의 고약한 성질머리에 학을 뗐소. 뭐 이런 절벽 같은 여자가 다 있어. 빌어먹을! 그래. 헤어지자. 하면서도 저 여자가 정말 이혼서류 드밀면 어쩌나, 오금이 저렸다는 말 이제야 실토하오.
그 아가씨는 날 사랑한 것이 아니요. 뭐랄까, 의지할 곳이 필요했었는데 때마침 내가 그녀 앞에 있었던 것뿐이요. 그 의지라는 게 뭔지 아오? 지금은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지만, 그때는 너무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소. 거기다가 당신은 무조건 여자와 남자의 불륜으로 단정 짓고 날 박살이라도 낼 기세였는데 어찌 변명하겠소. 무조건 죽을죄를 지었다. 제발 살려 달라. 빌 수밖에요.
그 사건은 용서함도, 용서받음도 없이 당신이 덮어두는 것으로 일단락됐소. 때문에 나는 이혼당하지 않고 조강지처의 수발 속에서 세상살이를 할 수 있었소. 쑥쑥 크는 애들에게서 핏줄의 행복을 만끽하며 힘들은 줄 몰랐다오. 한데 이제 와서, 더구나 저승에 있는 사람에게 옛일을 해명하려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요.
“아빠! 정말 바람피웠어요? 그것도 같은 직장의 여자랑.”
작은 애가 얼마 전에 묻습디다. 옛날,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유품을 정리하다 일기를 보았다며 정말이냐는 표정이었소. 아니라고, 그건 엄마의 오해라고 하자 녀석이 나를 중심으로 한 바퀴 빙 돌더니 그럽디다.
“옛날 실력 발휘해서 여자 친구 사귀세요. 예쁜 여자 친구요.”
작은 애는 생글거리며 재혼도 괜찮다고 했소. 녀석의 말은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소. 큰오빠는 미국에 있으니 남의 자식이나 다름없고, 언니는 시댁 어른들을 모셔야 하므로 친정아버지까지 챙길 수 없다. 나도 독일친구랑 결혼하면 한국을 떠나야 하니 아빠가 걱정이다. 사랑하는 아빠가 버러지 듯이 외톨이가 되는 건 정말 싫다. 엄마에게는 미안하지만, 아빠가 노후를 함께 할 여잘 들였으면 좋겠다고 합디다.
“아빠! 자식들 열 명 있으면 뭐해요? 다 저 살겠다고 뿔뿔이 떠나는데, 아빠도 방법을 찾아야죠.”
작은애의 말이 섭섭했소. 화도 났소. 나중에는 배신감마저 들어 깜짝 놀랐소. 자식들을 애써 키운 건 늘그막에 덕 보려는 계산은 아니잖소. 한 놈, 한 놈 좋은 짝 만나 행복한 가정꾸리기를 바라는 게 부모 마음 아니오. 그 소망을 자식들이 알아서 착착 이뤄주는데 서운하고 화가 나다니 기가 찼소.
“요리학원 다니게 한 것도 애비 혼자 살 걸 걱정해서 그런 거냐? 못된 놈!”
아파트를 나와 공원을 산책하는 동안 눈물이 납디다. 작은애의 말이 백 번 옳지만, 내 신세가 참 처량해진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소. 당신이 살아 있다면 작은애도 내 걱정을 하지 않고 행복한 웃음으로 떠날 터인데 말이오. 솔직히 죽을 나이도 아닌데 훌쩍 떠난 당신이 원망스러웠소.
“아빠! 제 말은…….”
아파트로 돌아오자 작은애가 술상을 내옵디다. 돼지고기를 큼직큼직하게 썰어 넣고 벌겋게 끓인 김치찌개 안주였는데, 맛이 당신의 손맛 그대로지 뭐요. 작은애의 말에 기분 상해 밖으로 나갔다 들어와서는 당신 맛을 빼닮은 술안주에 감동하는 내가 우스워 허허 웃었소.
“고맙구나. 네가 아빠 걱정을 많이 했구나. 그런데 말이다. 그 일은 엄마의 오해였어.”
이제는 다 부질없는 옛 일이지만, 그래도 그때의 오해를 풀어야겠소. 이건 순전히 내 마음이 편해지겠다는 뜻이니 부탁하오. 구차한 변명할 짓 왜 했느냐, 또 돌아앉지 말고 끝까지 들어주길 바라오. 혹 당신도 할 말이 있으면 꿈으로 찾아주구려. 당신은 내 말을 들을 수 있지만, 난 당신의 말을 듣지 못하니 꿈의 힘을 빌릴 수밖에 요. 꼭 한번 다녀가구려.
그녀와 산부인과에 간 것은 맞소. 당신 친구에게 당신에게 말하지 말라, 비밀로 해 달라, 아내가 알면 큰 사단이 나니 제발 못 본 걸로 하자, 부탁한 것도 맞소. 당시에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소. 당신 친구도 차마 못 볼 걸 본 양 하얗게 질리는 모습에 난 하늘과 땅이 무너지는 줄 알았소.
당신 친구에게 내가 왜 새파란 아가씨랑 산부인과에 왔는지 설명했소. 저 아가씨는 회사의 여직원이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함께 왔다. 저 친구가 자살이라도 할 것 같아 산부인과에 데려온 것이니 오해 말라. 이렇게 말이오.
그러나 허둥거리는 내 모습이 오히려 더 큰 오해를 불러일으켰나 보오. 여직원의 딱한 사정을 도와주려 왔다고 사실대로 웃으면서 설명했다면 당신 친구도, 당신도 오해하지 않았을 터인데 말이오.
참 참한 여직원이었소. 그런 아가씨가 어느 날부터인가 풀이 죽은 모습이기에 선물로 들어온 연극이나 영화의 초대권을 주었소. 무슨 일인지 몰라도 힘내라는 뜻으로 말이오. 초대장이 많을 때는 직원 여럿이 어울러 가기도 했소. 영화나 연극을 관람한 후에는 술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눴고 말이오.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죽고 싶어요.”
어느 날이었소. 밑도 끝도 없는 그녀의 말에 허허 웃었소.
사귀던 남자가 결별을 선언했다. 교제 삼년 만에 처음 결혼이야기를 나눈 며칠 후라 충격이 더 컸다. 이유도 모른 채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버림당한 아픔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임신을 떠올렸다. 두 달째 없는 달거리. 피임에 실패했을 수도 있다는 불안이 사랑의 이별, 그 충격보다 더 큰 해일로 밀려왔다. 만약 하나, 임신했다면……. 그것은 상상만으로도 불행한 사태라며 눈물을 흘렸다. 낳을 수도, 수술을 할 수도 없으니 차라리 죽고 싶다.
그녀의 말에 더는 웃을 수가 없었소. 결혼으로 이어지는 임신이라면 축하하겠지만, 이건 미혼모가 될 수도 있겠다는 예감에 갑자기 나까지 막막했소. 나라면, 만약 내가 그녀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결정하고 행동할까. 답이 없었소. 무엇을 선택하고 말고 하기보다 우선 임신여부부터 확인하자. 그게 최우선이라는 생각뿐이었소.
“가자. 산부인과에 가서 확인부터 하자.”
당신도 알다시피 당시에는 요즘처럼 약국에서 임신확인테스트 용품을 사다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산부인과로 갈 수밖에요. 그녀가 싫다는 걸 겨우 설득하여 여동생 친구가 의사로 있는 그 산부인과에 갔던 것이요. 죄라면 여직원을 산부인과까지 데려간 것인데, 그것이 당신친구의 눈에는 못 쓸 일을 저지른 저질남자로 찍힌 거지요. 당신은 또 친구의 말만 믿고 흥분하여 이혼하자며 울고불고 난리를 쳤고요. 그때 처음 당신이 밉다는 생각을 했소. 남편을 저렇게 못 믿을까, 정말 서운했었소.
그런데 말이요. 나 말이요. 지금 기분이 매우 좋다고 말하면 또 오해할거요? 왜 기분이 좋은지, 무엇 때문인지 당신은 짐작조차 못할 거요.
당신이 내 곁을 떠난 지 그새 오년이 넘었소. 묘의 잔디도 어떤 태풍이 밀려와도 한 천년은 끄떡없을 만큼 자리를 잘 잡았어요. 오늘 몇 달 만에 당신을 찾아와 묘 주위를 둘러보며, 또 당신 옆에 누울 내 자리를 살펴보며 빙그레 웃었소. 이젠 옛날 그 일의 오해가 풀렸겠지, 하면서도 한번은 꼭 상황 설명을 하리라 별렀던 나요. 그 소망을 오늘 풀려다보니 말께나 했소. 당신 떠나고 이렇게 말을 많이 한 적이 없소. 좋지도 않은 일로 많은 이야기를 해 민망하지만, 이유야 여하튼 모처럼 살아 있는 느낌이요.
이왕 말문이 터진 김에 신세타령 좀 하리다. 늙으면 작은 일에도 지레 비관한다고 적당히 듣지 말아요. 또 나 한 사람만의 일이라고 외면하지 말고요. 늙으면 본의 아니게 딱한 입장에 놓이는 경우가 많소. 뭐랄까? 해도 눈총이고, 안 해도 눈총인 울타리에 갇힐 때는 정말 난감하오.
전철은 무척 편리한 교통수단이오. 더구나 만 65세 이상인 노인에게는 무임승차증까지 국가에서 주니 고맙기 이를 데 없소. 서울에서 온양, 춘천 등 웬만한 도시는 차비를 안 내고 다니니 나들이의 부담이 하나도 없소. 나도 가끔씩 늦은 아침을 먹은 후 점심은 천안시장에서 먹어요. 춘천의 소양강댐까지 가서 막국수를 먹을 때도 있고.
그날따라 전철의 승객이 붐볐소. 출퇴근 시간대가 아니면 객실은 한산한 편인데 그날은 달랐소. 오후 4시쯤인데 4호선 전철이 많이 복잡했소. 동대문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탈 때 노약자석이 있는 출입문으로 탄 것이 아니라 객실 중간의 문으로 들어갔소. 손잡이를 잡기 위해 좌석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는 짧은 시간에 이미 나는 후회하고 있었소.
아! 잘못 탔다. 자리에 앉아 있는 젊은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에 휩싸이겠구나.
나는 비참한 경험을 했소. 정말 싫지만, 그날의 망신을 비참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소. 약속시간이 급해 서둘러 전철을 탄 후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소. 객실의 선반 위에 부착된 광고를 보고 있는데 소곤거리는 소리였지만, 내 귀에 또렷하게 들렸소.
“아 쓰펄! 재수 없어. 왜 하필 내 앞이야?”
“야! 쪽팔리지 말고 일어나.”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모르지만, 학생인 것만은 분명했소. 처음에는 그들의 대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듣지 못해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우렸소.
“늙었으면 방구석에 처박혀 있지. 왜 나와서 민폐냐? 쓰펄!”
예쁘장하게 생긴 학생의 입이 거칠어 얼굴이 저절로 찡그러졌소.
“일어나 새끼야!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잖아.”
빨간색 모자를 푹 눌러 쓴 또 다른 학생이 킥킥 거리며 말할 때, 그때서야 학생들이 나 때문에 나누는 대화라는 걸 눈치 챘소. 그 순간 온 몸이 뜨거워지면서 억장이 무너졌소. 또 한편으로는 민망해서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그렇게 난감하기는 내 평생 처음이었다오. 젊은이들의 노인 경시풍조에 대한 기사를 대할 때마다 너무 과장된 게 아니냐는 시각이었는데 막상 당하고보니 속수무책이었소.
“쓰펄! 내리자.”
“그래. 재수 옴 붙었다. 쓰펄”
입을 열 때마다 터지는, ‘쓰’에 악센트를 준 쓰펄(시팔) 소리에 한 마디 하려는데 두 아이가 일어났소. 나를 밀쳐내듯 떠밀며 코까지 막고 말했소.
“어휴 쓰펄! 늙은이 냄새. 냄새!”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내뱉는 말에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소. 머릿속이 까맣게 변하며 멀미하듯 속이 메슥거려 주저앉을 뻔 했소. 다행히 정신을 차렸지만,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고 다음 역에서 내려 의자에 한참동안 앉아 있었소.
-늙은이 냄새!
그 말은 자리에 앉아 있던 젊은 사람 모두가 하고 싶은 말이었는지 모르오. 저쪽에 노약자석이 따로 있는데 왜 여기에서 자리를 양보하라고 버티는 거지? 재수 없게! 라는 말도 하고 싶었는지 모르오. 생각이 예까지 미치자 갑자기 코끝이 아려왔소. 솔직히 말해 그냥 울고 싶었소. 이놈들아! 세월 앞에 장수 있더냐? 소리치고도 싶었소.
그 일이 있은 후 반드시 노약자석이 있는 출입문만 이용하오. 늙은 사람은 젊은이들이 앉는 일반석 쪽은 얼씬해서도 안 된다는 원칙을 세웠소. 일반석에 자리가 있어도 눈짓으로조차 넘보지 말자는 게 그날에 세운 철칙이었는데 그만 실수를 했던 거요.
승객들을 비집고 노약자석까지 갈 수 없어 다음 역에서 내렸소. 내 딴에는 노약자석의 출입문으로 다시 타겠다는 계산이었는데 내리는 승객들에게 밀리고 말았소. 약속 시간 때문에 꼭 그 전철을 다시 타야했는데, 내 힘으로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어 밀리는 대로 밀려갔소. 우연인지 몰라도 내 주위에는 대부분 노인들이었소. 그들도 나처럼 젊은 승객들의 썰물에 밀려난 상황 앞에 황당한 얼굴입디다.
다음 전철이 전 전역을 출발했다는 운행 안내판에 고정한 눈길이 뿌옇게 흐려왔소. 빌어먹을! 노인들이여! 일어나라. 노인들만 타는 지하철을 별도로 운행하라고 궐기하자. 청와대로 몰려가자. 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을 당신 이해하겠소?
당신이 살아 있다면, 전철을 공짜로 태워주는 나라 은혜에 감지덕지할 일이지 웬 타박이냐고 핀잔하겠지요? 아니면, 투덜거리지 말고 그냥 주는 밥상이나 조용히 받다 갑시다, 라며 웃을지도 모르겠소. 그래요. 전철은 그렇다 칩시다. 그럼 공짜가 아닌 내 돈 내고 먹는 식당의 대접은 어떻소?
늙어서 사귄 몇몇 친구가 있소. 산에서, 공원에서, 극장에서, 식당에서 우연히 사귄 친구들인데 나이가 제각각이요. 일흔 네 살 먹은 김 사장이 리더 격이고 내가 막내요. 우린 서로의 호칭을 사장으로 통일했소. 그러니까 나도 그들을 만나면 정 사장이요.
호칭을 사장으로 통일한 늙은이들에게 주책이라고 눈 흘길지 모르지만, 그렇게 부르기로 한 배경에는 눈물겨운 분노가 있소. 눈물겨운 사연 때문이 아니라 폭발 직전의 울화통을 애써 가라앉히면서 분노의 항의 목소리로 사장이란 직함을 택한 것이요. 제일 연장자인 김 사장은 국가공무원 출신이고, 일흔의 박 사장은 중소기업의 만년 과장으로 있다 퇴출당한 사람이요. 나보다 한 살 더 먹은 조 사장은 닥치는 대로 온갖 일을 한 사람인데 도통 말이 없어요. 나는 당신의 남편이니 잘 알지 않소. 그러니까 우리 넷 중 누구도 사장이란 직함을 가졌던 적이 없소. 그러나 우리는 사장 행세를 늘 멋지게 하오. 웬만한 식당에서는 우리를 큰손님으로 반길 만큼 말이요.
리더 김 사장이 삼년 전에 겪은 일인데, 그는 지금도 그 일로 치가 떨린답니다. 국가공무원에서 은퇴한 그는 여행과 낚시로 노후의 자유를 즐기다가 어느 산악회에 가입했다고 했소.
“처음에는 당일 코스만 따라다녔어요. 산행시간도 네 시간 안팎이라 정말 좋더군요.”
김 사장은 부담스럽지 않은 산행에 젊은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일요일만 기다렸다. 회비가 삼만 원이라 한 달 매주 가도 십이만 원밖에 되지 않았다. 등산을 마친 후 술 한 잔 나누는 뒤풀이 역시 깨소금 같은 시간이었다. 너무 즐거운 나머지 때로는 2차를 사는 호기도 부렸다.
문제는 무박2일의 산행계획에서 터졌다. 강원도의 설악산 공룡능선으로 코스를 잡자 젊은 임원들이 나이 많은 회원들의 동행을 반대했다. 열 두 시간의 야간산행은 젊은이도 버거운데 육십 넘은 회원이 참가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했다. 설사 따라붙는다 해도 언제 어디서 어떤 사고가 날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고 했다.
김 사장은 산악회 사무실에 들렀다가 본의 아니게 회의에 참석했다. 임원이 아니라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지만, 기분이 많이 언짢았다. 회의의 요지는 나이 많은 회원들의 참가허용 여부였다. 그러나 허용 여부의 회의라기보다 이번 무박2일의 산행에서는 60살 넘은 회원은 무조건 배제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기우려진 상태였다.
“어쩔 수 없어요. 인정에 끌려 동행했다가 큰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합니까? 그 책임 누가 져요?”
큰 사고란 안전사고의 의미가 아니었다. 생명과 직결되는 사고, 이를테면 심근경색환자나 새벽의 찬 공기로 뇌출혈환자가 발생하면 속수무책이라는 불안감이었다. 애당초 그런 사고의 우려가 있는, 나이 많은 회원은 배제하는 게 상책이라고 했다.
그들의 불안한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화가 났다. 나이 먹은 사람은 아예 회원 취급도 하지 않는 말에 참지 못했다.
“육십 넘으면 다 환잔가요?”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 불쑥 끼어들자 모두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 반갑게 인사를 나눴지만, 회의가 진행되면서 임원들은 그가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 그가 들어서는 안 될 말까지 마구 쏟아냈으니 민망할 수밖에 없었다.
“육십이 아니라 칠십이 넘어도 젊은 사람보다 체력 좋은 사람들 많아요. 무조건 배제한다는 건 나이 먹은 사람들을 너무 무시하는 겁니다.”
김 사장의 말에 회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나를 봐요. 내가 칠십인데 어때요? 비실비실한 가요?”
“우리 얘기는 그런 뜻이 아니라…….”
누군가 말끝을 흐렸다.
“물론 알아요. 여러분이 뭘 우려하는지. 하지만 그건 너무 지나친 판단입니다. 참여여부는 회원들에게 맡기세요. 정 걱정된다면 이러이러한 회원은 무박산행의 참여를 자제해 달라고 공지하세요.”
“그래도 숨기고 참가했다가 사고가 나면요?” 누군가 발끈했다.
“왜 극단적인 생각만 해요? 나이 많은 회원들과 야간산행을 하면 더 즐거울 거라고 기대하면 안 돼요?”
“아뇨. 늙은 건 늙은 겁니다. 겉보기에만 건강하게 보일 뿐이죠.”
발끈했던 그 친구는 산악회 총무였다. 그는 양보할 의사가 전연 없음을 표정과 눈빛으로 고집스럽게 표출했다.
“그래요? 그럼 이 산악회에서 탈퇴해야겠군요. 나 같은 늙은이는 필요 없을 테니까.”
여보!
김 사장은 애기하는 내내 분노와 침통한 감정을 애써 눌렀소. 욕이라도 한바탕 쏟아내고 싶은 가슴을 진정시키려 눈까지 질끈 감았소. 우리 세 사람은 그의 표정에 긴장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소.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공간은 어떤 소리도 존재하지 않는 진공상태였소. 먼지 하나가 날아와 살짝 부딪쳐도 진공과 함께 우리 세 사람까지 파삭 깨질 것 같았소.
“그 총무라는 놈이 내가 탈퇴한다니까 뭐라고 한 줄 알아요?”
세 사람은 김 사장의 얼굴에 시선을 모았소.
“그 놈이, 총무 그놈이 그럽디다. 잘 생각하셨어요. 이젠 집에 계실 나이시니 그렇게 하세요. 아주 탁월한 결정이세요.”
김 사장은 삼 년 전의 분노가 지금도 풀리지 않는 듯 진저리를 쳤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소. 김 사장의 마지막 말에 우리 세 사람은 한참동안 침묵했소. 아마 그 침묵의 시간은 모두 하나의 감정이었을 거요.
아! 이게 현실이구나. 현실!
그런 나쁜 놈의 총무가 어디 또 있겠소? 그 놈은 영원히 늙지 않는답디까? 산악회에서의 나이 든 회원들을 쫓아내는 방법이 그렇게 없소? 적어도 그 동안의 산행 정리(情理)가 있는데 어찌 모질고 모진 말로 노년의 가슴을 팍팍 찢어놓는단 말이요?
나만 겪는 게 아니었구나. 주머니에 용돈께나 넣고 다녀도 세상이 바라보는 노년 인생은 누구랄 것도 없이 다 귀찮은 존재들이구나. 망할 놈의 세상! 하늘은 뭐 하는 거여? 그런 놈들을 혼내지 않고. 라는 힘없는 분노에 그만 맥이 빠졌소.
“김 사장! 그 정도는 약과요. 난 아예 앉지도 못하고 쫓겨났어요.”
나도 분통터지는 사연을 하나 털어놓으려고 하는데, 만년과장으로 있다 퇴출당한 박 사장이 먼저 입을 열었소. 대머리인데다 남은 머리카락도 눈처럼 하얀 박 사장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놓고 있어 성깔께나 있어 보여요. 답답한 일이 있거나 화가 나면 넥타이의 묶음 매듭을 가슴까지 내려놓는 사람이요.
“이것들이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박 사장의 흥분한 말에 우리 세 사람은 실실 웃었소. 왠지 아오? 그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이미 짐작했기 때문이요. 한낮에 커피를 마시러 가든, 해 떨어진 후 맥주 한 잔 생각날 때 우리 같은 늙은이가 들어가도 괜찮은 곳인지 카페 이름부터 살핀다오. 카페 간판이 불어나 독일어로 되어 있으면 일찌감치 돌아서요.
영어나 한자어, 우리말 간판이라도 안을 슬금슬금 살펴보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요. 카운터의 여자가 고개를 젓거나 종업원이 황급히 다가오면 앗 뜨거워라 라는 몸놀림으로 돌아서요. 그 순간의 기분은, 표현이 좀 뭐하지만 말하리다. 맛있는 냄새에 살금살금 다가가다가 덩치 큰 개에게 놀라 꼬리 내리고 도망치는 똥개 꼬락서니요. 감히 달려들 엄두도 못내는 거죠.
“뭐? 노인 절대사절이라나. 어르신들이 들어오면 자기넨 굶어죽는다나. 나 원 참!”
박 사장은 젊은 놈들의 돈은 황금알이고, 우리 돈은 밑씻개만도 못한 모양이라고 투덜거리며 어이없다는 웃음을 터트렸어요. 그러자 이번에는 조 사장이 말을 받았어요.
조 사장은 말이 없는 사람이에요. 책가방 끈이 짧아서 말을 많이 하면 무식이 들통 난다며 어지간해서는 입도 뻥끗 안 해요. 말 좀 하라는 채근에도 허허 웃고 말아요.. 그 동안 김 사장이나 박 사장,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사람은 집안 사정까지 대략 털어놓았는데 그만은 입을 꼭꼭 다물었소. 어쩌다 부인과 가족들의 안부를 물으면 “다 편안해요. 잘 지내요.” 라는 대답이 전부라오. 좀 답답하긴 해도 우린 그를 제주도의 하루방으로 받아들였소. 언제나 말없이 잔잔한 미소로 자리를 지키는 하루방 말이요.
“내 집도 살 곳이 못 된다면 어떻게 생각해요?”
정말 뜻밖의 질문이었소. 내 집도 살 곳이 못 된다니? 세상에 그걸 질문이라고 하나 싶어 우리 세 사람은 멍한 표정을 지었소.
“그래요. 내 집도 내 집이 아닐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그만 목숨 끊어야겠다 싶었어요.”
한 마리의 미련한 곰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어 새끼 곰 시절부터 일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를 겨우 마친 후 농사 품삯 일부터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다니며 배웠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고향을 떠났다. 친척이 즐비했지만 머무를 만한 집이 없었다. 6.25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 오륙년이 지났지만 살기 힘들기는 매한가지였다. 동구 밖 작은 강의 제방공사 현장사무실에서 잔심부름을 하다 읍내의 중국집으로 진출했다.
“맞아요. 진출! 중국집의 취직은 서울로 이어지는 출발점이었으니까요. 새로운 인생이 거기서부터 시작됐어요.”
여보!
조 사장은 중국집 주인이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쫓은 걸 고맙다고 했소. 그가 내쫓는 바람에 서울로 올라와 서울 인생을 살게 됐다며 허허 웃었소.
서울 생활은 죽기 살기의 전쟁이었다. 인쇄견습공으로, 중국집 배달원으로, 공사장의 막일꾼으로, 리어카의 채소 과일 생선 장사꾼으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6.25사변 고아 출신의 여자와 결혼식 없이 살림도 차렸다. 셋방에서 시작한 살림살이가 솔솔 불어나자 사는 게 재미있었다. 아이 셋을 대학까지 가르쳐 시집 장가를 보냈다. 둘째와 막내 놈은 영악스러워 제 앞 가름을 잘 하는데 첫째가 부실했다. 할 수 없이 교통사고로 다리가 불편한, 아들보다 두 살이 더 많은 공사판 친구의 딸과 결혼시켰다. 전세를 얻어 분가시키려고 하자 아들과 며느리가 거절하는 바람에 함께 살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손자가 생기자 집을 비우기 예사였다. 절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늘그막에 생과부가 아닌 생홀아비가 됐다. 자연 집에 있기가 싫어졌다. 아내가 없는 집, 아무리 아들과 며느리가 있고 또 손자가 생글거려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눈만 뜨면 밖으로 나돌면서 지방의 친구에게 다녀온다는 핑계로 집에 들어가지 않는 날이 잦아졌다.
아들과 며느리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버지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자 홧김에 방 두 칸의 전세를 얻었다. 일단 편했다. 식생활이 문제였지만 조금씩 익숙해졌다. 아내에게 전세 집을 알려주었지만,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 사장은 한숨을 길게 쉬었소. 차마 말하기가 거북한지 여러 차례 숨을 내뱉었소. 무슨 말을 하려고 난감한 표정인가 싶어 우린 숨을 죽였소.
“집사람이 밑도 끝도 없이 각자 알아서 살자고 해요.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해 물었지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집사람이 조목조목 얘기하더군요.
당신과 결혼하여 아내로서의 역할을 다 했다. 남들은 아들이 한 놈도 없어 난리인데 셋을 낳아주었으니 불만이 없을 것이다. 살림도 알뜰살뜰 아끼고 아껴 자식새끼 공부시키고 결혼시키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이만하면 아내로서, 어미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본다. 남은 건 당신과의 남은 세월의 해로인데 난 그것을 포기하니 그렇게 알라. 더 늙기 전에 나를 위해 살고 싶다. 다른 절로 옮겨가니 찾아올 생각마라.
“한 마디로 그만 헤어지자는 통보였지요. 처음에는 하도 기가 차 말도 안 나오더군요. 이 할망구가 미쳤나, 싶었고요.”
조 사장은 우리가 고개까지 숙이고 경청하자 허허 웃었소. 다 지나간 일이라 지금은 남의 일 같다며 술이나 한 잔 하러 가자고 했소.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를 김 사장이 제지하며 물었소.
“도대체 자신을 위한 일이 뭐랍디까?”
다시 자리에 앉은 조 사장이 모른다고 하자 이번에는 박 사장이 물었소.
“마누라가 있던 절에 가보긴 했소?”
“안 갔어요. 가면 뭐 합니까? 마음이 떠난 사람인데.”
“해도 그렇지요. 일단 만났어야지요. 안 그래요?”
여보!
하 답답해서 핀잔주듯 내가 물었어요. 내 눈에는 집사람이라는 그 여자보다 조 사장이 더 황당했어요. 일 처리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잖소. 설령 부인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다 해도, 또 설득되지 않아 마음을 돌리지 못해도 무조건 만나는 게 순서 아니겠소. 그런데 전화 한 통화로 모든 걸 받아들이다니 그런 경우가 어디 있소.
“정 사장의 말이 맞아요. 일단 만나는 게 순서지요.”
조 사장은 얘기할 때와는 달리 밝은 표정을 지었소.
“그렇게 잘 아시는 분이 왜 안 찾아갔어요?”
“정 사장은 물론 김 사장, 박 사장도 그 이유가 궁금한 거죠?”
우리 세 사람은 침묵의 눈빛으로 대답을 요구했소. 그가 이유를 밝히지 않아도 되지만, 우리는 정말 궁금했소. 왜 일방적인 부인의 이별통보를 조용히 받아들였는지 알고 싶었소.
조 사장은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사람이요. 부인이 그 사실을 더 잘 알 것이요. 반면에 조 사장도 변변치 못한 남편을 수발하며 열심히 살림한 부인의 노고를 모를 리 없지 않소. 그런 두 사람이 노후에 와서 부부 정을 버리다니 그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소. 그것도 전화 한 통화로 말이오.
“그 까닭은…….”
조 사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소.
“그 이유는 간단해요.”
조 사장은 세 사람의 얼굴을 차례로 쳐다보더니 소리 없이 웃었소. 아주 잔잔한 미소였지만, 쓸쓸한 빛이 묻어나 외면했소.
“나도, 집사람도 늙었기 때문입니다. 나보다 더 늙은 집사람이 덜 늙은 남편에게 그만 편하게 살자는데 무슨 말을 합니까. 그냥 받아들이면 간단히 끝나는 걸 가지고.”
그가 늙었기 때문이라는 대답에 화가 났소. 그러나 아무리 허물없이 지내지만 화까지 낼 수야 없지 않소. 뒤집어지는 속내를 감추는데 조 사장이 눈치를 챘는지 부언 설명을 합디다.
“큰 놈과 며느리에게 아파트를 빼앗기고, 집사람에게도 버림받는 등 복장 터지는 일이었지만, 누굴 탓하고 싶지 않더군요.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그날, 우리 네 사람은 술 한 잔 안 하고 헤어졌소. 그 후 한 동안 만나지 않았소. 통상 박 사장의 연락으로 점심이나 술을 했는데 마치 모르는 사람들처럼 지냈소. 조 사장의 일이 너무 충격적이라 나 역시 그의 얼굴을 자연스럽게 볼 자신이 없었소. 그를 만나면 분명 싫은 소리를 할 것 같아 안 보는 게 상책이다 싶었던 거요.
하늘에 있는 당신에게 이승의 골치 아픈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오. 허나 어쩌겠소?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은 저승의 당신 밖에 없으니. 사실 나도 조 사장 입장과 다를 바 하나도 없지 않소? 조 사장 부인은 절로 떠났지만 당신은 저승으로 갔소. 조 사장 큰놈은 슬그머니 아파트를 차지했지만, 우리 아들과 딸년은 애빌 아파트에 버리고 미국과 독일로 도망갔소. 그래도 조 사장은 세 자식들로부터 손자손녀를 보았는데, 우리 자식들은 손자나 손녀새끼 한 놈 안겨주지 않았으니 오히려 내가 더 불쌍한 듯싶소.
내 말이 틀렸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게는 당신의 무덤이 있다는 사실이요. 유난히 바다를 좋아하는 당신이기에 해가 뜨는 동해에 뿌리려고 했었는데, 딸년의 말을 들은 것이 천만다행이요. 그때 끝까지 고집했으면 정말 갈 곳 없는 신세가 될 뻔 했구려. 사내놈 따라 독일로 간 딸년이 밉지만, 그 점 하나만은 대견스럽소. 어린 것이 애비의 앞날을 내다본 것 같아서 말이오. 딸년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당신도 이 점만은 나와 같으리라 믿소.
서쪽 하늘에서 검은 구름이 밀려오는 걸 보면 비가 오려나 보오. 한 동안 이슬비 한 번 내리지 않았으니 좀 왔으면 싶소. 가을비는 오히려 농작물에 해가 된다지만, 그래도 땅이 촉촉이 젖었으면 하오. 당신에게 오는 길이 팍팍하여 바람이 불면 붉은 흙먼지가 일 것 같기에 하는 말이오.
언젠가 당신이 내게 화낸 적이 있었지요. 주위 사람들에게 쓸데없이 자신의 사생활을 낱낱이 털어놓는다고. 감출 건 적당히 감추고 살아야 하는데 시시콜콜 다 말하니 참 딱한 사람이라고 했었소. 그 말을 까맣게 잊고 살았는데 그날 문득 떠올랐소. 늙으면서 겪은 황당한 일들이 많지만, 당신 말대로 감추기로 했소. 그냥 나 혼자 삭히기로 말이요.
“정 사장은 어때요? 아직 우리와 같은 설움을 안 당했지요?”
김 사장이 느긋한 표정으로 물었었소.
“그럴 리가 있겠어요? 우리보다 더 황당할지 몰라요. 아직 늙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테니. 정 사장! 안 그래요?”
박 사장은 한 수 떴어요. 그는 실실 웃으며 어디 경험담 좀 들어봅시다, 라는 눈길로 재촉합디다. 그의 눈길에 그만 말할 뻔 했어요. 내게도 울화통치미는 일이 한 두건 아닌지라 입이 근질근질했단 말이요. 그러나 당신의 핀잔이 생각 나 고개를 저었소.
“웬걸요! 저는 동안이라 아직 괜찮아요. 세상 사람들이 오십대 초반으로 본답니다.”
세 사람은 내 말에 기가 차다며 허허 웃었소. 김 사장이 뭐가 좋다고 비참한 얘기를 돌아가면서 하느냐며 일어섰소. 그는 오늘은 술도 마시지 말자며 자리를 먼저 떴소. 그러자 박 사장도, 조 사장도 “나도 갑니다.” 라며 사라졌소. 그들이 간 뒤 나는 한참 동안 더 다방에 앉아 있었소. 세 사람이 쏟아놓은 아픔에 못내 가슴이 아려 혼자서라도 술 한 잔 하려다 그만 두었소. 초로라지만, 늙은이가 혼자 술 마시다가 울기라도 하면 무슨 망신이요. 별로 슬프지 않은 연속극에도 눈물을 주르르 흘려 스스로 참 딱하다고 혀를 차는데 말이오.
앞으로 당신을 자주 찾아온 거요. 그러나 오늘처럼 슬픈 얘기로 궁살 떨지 않으리다. 얘기하지 않아도 이미 당신은 다 내려다보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일 텐데 거기다가 왜 말을 보태요. 가슴 아프게.
대신에 내 약속 하나 하리다. 이제부터는 나를 추스르면서 누군가에게 도움 되는 일을 찾겠소. 전철에서 젊은이들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당당히 서 있고, 혼자 식당에 들어가도 주눅 들지 않고 반주까지 겹들이며 밥을 먹으리다. 미국의 두 놈과 독일의 딸년에게도 일 년에 한 번씩 당신에게 다녀가라고 호통을 치겠소.
또 무엇을 하리까?
알았소. 내일 당장 세 노년친구에게 술 한 턱 내리다. 세상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천수를 누린 후 죽는 것이라며, 우린 그것을 잘 누리고 있으니 만세를 부르자고 하겠소. 생명의 큰 강이, 큰 바다가 바로 늙음이니 건배 구호를 이리 정하리다.
“늙음 최고! 늙음 최고! 늙음 최고!”
이 구호, 어떻소? 괜찮지요?
마음에 안 들고 주책이다 싶어도 그냥 넘어갑시다. 지금의 내 심정이 그러하니 눈감아주구려. 이왕지사 신세타령으로 주책 부린 거, 한 마디만 더 합시다. 당신과 사는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이요. 잘 듣소.
“여보! 사랑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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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병국 선생님은 소설가이고 전 코리아 헤럴드북경 특파원을 역임한 언론인 출신입니다. "지금은 시와 수상 문학" 발행인이며, 효자로 널리 알려진 분입니다. 이 글은 금년에 발간 예정인 한가람문학 7호에 실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