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동서유럽여행]
[1. 영국]
a. 대영박물관: 세계적으로 희귀한 고고학 및 민속학 수집 품들을 소장한 박물관으로, 런던의 블룸스버리 지역에 있 다. 왕립학사원장을 지낸 의학자 한스 슬론경(Sir Hans Sloane)의 6만여 점에 이르는 고미술(古美術)·메달·동전·자연과학 표본류 등 방대한 소장품을 1753년 정부가 매입할 것을 의회에서 의결하고, 로버트 코튼경(Sir Robert Cotton)의 장서와, 옥스퍼드의 백작 로버트 할리(Robert Harley)의 수집품들을 합하여 1759년에 설립, 일반에게 공개하였다. 초기에는 17세기 프랑스 고성풍(古城風)의 진귀한 건물로 그레이트 러셀가에 있던 몬터규(Montagu) 후작의 저택에 전시되었다. 그러나 소장품이 증가하자, 1824년부터 로버트 스머크경(Sir Robert Smirke)의 설계로 동쪽에는 장서용, 서쪽에는 이집트 조각 전시용의 갤러리가 먼저 세워지고, 1852년 중앙부의 옛 건물 자리에 신고전양식(新古典樣式)으로 현재의 정면 건물이 완공되었다. 1881년 자연사 소장품들은 사우스켄싱턴에 신축한 자연사박물관으로 옮기고, 박물관 안의 도서관은 몇몇 주요 기관들의 장서를 합하여 영국도서관으로 독립하였다.
또한 1970년부터 민족학 부문 소장품들은 웨스터민스터의 벌링턴가든스에 있는 인류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주요 전시품에는 1802년 프랑스에서 얻은 이집트의 고고학 자료, 1806년에 수집한 타우네레, 1816년에 수집한 엘긴 대리석 조각, 이밖에 크니도스의 데메테르 여신상, 소크라테스의 소형상(小形像), 페리클레스의 반신상(半身像), 율리우스 카이사르 및 로마 제왕들의 흉상 등이 있다. 이외에 아시리아의 날개 달린 황소, 칼데아의 유물, 헨리 8세 궁전의 금붙이 세간, 중앙아시아의 옥수스의 유보(遺寶), 중국의 벽화·도자기 및 불상 등이 있다. 그밖에 성서의 알렉산드리아 사본, 색슨의 연대기, 마그나카르타, 옛날 인쇄·제본의 견본 등은 하나의 문헌으로서도 귀중하다. 2000년 11월 396.72㎡ 규모의 한국관이 신설되었는데, 구석기 유물부터 청자·백자 등 조선 후기 미술품 25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b. 테임즈 강: 런던에 있는 대표적인 강으로써 대부분의 관광명소들이 이 강 주변에 위치해 있다.
c. 타워교: 19세기에 런던이 발전함에 따라 템즈강을 건너 려는 사람들도 많아 졌다. 이 다리의 특징은 대형 선박이 지나갈 대 다리 가운데가 올라간다는 점이다. 가동 부분의 위로 보행자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설치되어 있어 배가 통과하는 동안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리게 하여 사람들이 다리를 건너가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곳에서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1909년 이후 중지하였다.
d. 국회의사당: 세계 최초 의회제 민주주의를 발달시킨 영 국의 상징인 국회의사당은 원래 참회왕 에드워드가 10세 기에 지은 궁전이었다.
‘웨스트민스터 팰리스’ (Westminster Palace)라는 이름은 현재에도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궁전은 1834년 10월 16일 밤에 일어난 불로 소실되었다. 1835년 새로운 건물로 짓고자 실시한 현상모집에 당선된 찰스 배리의 안을 따 1840년에 착공하여 1867년에 완성되었다. 상하 양원 외에 의원과 직원들의 숙사(宿舍)까지 포함해서 총건평은 1만 7000㎡나 된다. 이 의사당에는 높이 102m나 되는 높은 탑인 빅토리아타워가 있는데, 개원(開院) 중에는 그 탑에 국기가 게양된다.
e. 버컹엄 궁전: 영국 왕실의 공식적인 거처인 곳이다. 엘 리자베스 2세 여왕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곳에서 지낸다. 1837년에 빅토리아 여왕이 버킹엄 궁전에 처음으로 거주하였다. 여름 기간에 엘리자베스 여왕은 스코틀랜드에서 지내는데 이 때에만 궁전의 몇 곳을 개방하고 있다.
f. 버킹엄궁전 근위병: 영국의 상징이 되어 버린 독특한 털모자에 빨간 상의를 입은 근위병들의 교대식은 4월-7월 중 매일 아침 11시 30분에 볼 수 있다.
g. 웨스트민스터사원: 영국 대부분의 왕이 대관식을 올렸 으며, 왕실의 장례식과 결혼식이 열리는 이곳은 영국의 심 장과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디 애비](The Abbey)라고도 불리는데, 영국인들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가장 최고의 수도원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h. 런던탑: 템즈강변에 웅장한 모습으로 세워진 런던탑은 정복왕 윌리엄 1세가 지은 왕궁이자 요새요, 감옥이다. 런 던탑이 있는 곳은 런던탑이 세워지기 약 1천여년 전 로마시대에 요새가 있었던 곳이다. 윌리엄 1세가 이곳을 세울 당시에는 3개의 탑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지난 세월 동안 확장되어 10개의 탑을 가진 큰 규모의 성채로 완성되었다. 런던탑은 제임스 1세까지 왕궁으로 사용되었고, 나중엔 감옥의 기능이 강해졌다. 특히 신분 높은 국사범들이 주로 투옥되었다. 강력한 왕권의 상징이기 도한 런던탑은 유네스코 선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i. 세인트폴 대성당: 런던 어느 곳에서나 보이는데, 대성 당의 돔은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영향을 받았다. 세 인트폴 대성당이 있는 자리에 교회가 들어선 것은 604년이다. 바이킹의 약탈로 교회가 불타자 962년에 다시 지었다. 1087년에 다시 화재로 소실되어 노르만양식의 석조 건축물로 다시 짓기 시작하였다. 약 200년이 걸려 1310년에 완성되었으나 356년 뒤인 1666년에 런던 대화재로 성당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현재의 건축물은 1708년에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의 설계로 완성되었다. 여러 번 불탔던 세인트폴대성당은 제2차세계대전 기간동안 또 한번의 수난을 맞는다. 독일군이 세인트폴대성당을 목표로 공격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물은 큰 손상을 입지 않았는데, 그 이후로 세인트폴대성당은 나치의 공격에 맞선 영국인들의 용기와 회복력의 상징이 되었다. 이곳에서는 국가를 위해 공헌한 사람들의 장례식이 열리기도 하고 왕실 가족들의 생일파티, 결혼식이 열리기도 한다. 1981년에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스펜서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j. 트라팔가 광장: 1841년 완성되었으며, 1805년 넬슨의 ‘트라팔가 해전’의 승리를 기념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중 앙에는 50m의 넬슨탑이 서 있는데, 꼭대기에 넬슨의 동상이 서 있다. 탑 주변에는 청동으로 만든 4개의 사자가 둘러싸고 있다.
k. 서더크 대성당: 서더크 지역의 영국국교회 교회를 관할 하는 교회이다. 교회의 주요 구조는 1220년부터 1420년까 지 이루어졌다. 20세기 초에 대성당이 되었으며,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장식도 별로 없는 소박한 교회이다.
l. 빅벤: 영국 국회의사당의 동쪽 끝에 있는 탑에 달린 대 형 시계이다. [빅벤]이라는 명칭은 당시 공사를 담당한 벤 저민 홀 경(卿)을 덩치가 커서 빅벤이라고 부르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1859년에 종이 설치되었는데, 그 당시 영국에서 가장 큰 종이었다. 이 거대한 종은 16마리 말이 이끄는 수레에 싣고 왔다고 한다. 빅벤은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매 시간을 알리는 빅벤의 종소리는 정각을 알려주는 신호로 사용되고 있다. BBC 라디오 방송에서는 매 시 빅벤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m. 런던 아이: ‘런던의 눈’이라는 하는 이름처럼 관람차에 올라 최고 높이 135m까지 오르는 동안 런던을 한 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35m 높이의 규모는 세계 최고라고 한다. 런던 아이를 만들고자 한 아이디어는 새천년의 상징물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모한 한 부부의 생각이었다. 이러한 이야기가 런던의 일간지인 이브닝 스탠다드(Evening Standard)에 실리고, 영국의 항공사 브리티시 에어웨이즈(British Airways)가 이들 부부와 함께 뜻을 모아 런던 아이를 세움으로서 부부의 꿈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n. 피카디리 광장: 런던의 최대 번화가이다. 영어에서 ‘circus’는 몇 개의 거리가 모이는 원형의 네거리, 원형 광장이라는 뜻으로 이곳은 5개의 길이 교차된다. 피카딜리라는 말은 17세기에 근처 양복점에서 고안한 ‘피카딜’(piccadil)이라는 주름 장식 칼라에서 유래했다.
o. 하이드 공원: 런던의 가장 넓은 왕립 공원이다. 원래 는 헨리 8세의 사냥터였다. 찰스 1세가 공원으로 조성한 뒤 1637년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하이드파크에서 유명한 것은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스피커스 코너 (Speaker’s Corner)이다. 1872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유 지되고 있는데, 최초로 의회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영국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가운데 사진은 하이드 공원의 명물 인 [알버트 공의 기념탑]이다. 알버트 공은 빅토리아 영왕과 결혼하여 4남 5녀를 낳을 정도로 금슬이 좋았다. 알버트 공이 죽은 후 빅토리아 영왕은 슬퍼해서 만든 기념탑으로 순금 50Kg이 입혀져 있다. 밑의 사진은 하이드 동원 앞에 위치한 [로얄 알버트 홀]인데, 10,0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왕립음악당이다.
p. 유로스타: 유로스타는 런던에서 파리 또는 브뤼셀 구간 을 시속 300Km로 해저터널을 통과하여 도심에서 도심까 지 운행하는 고속 열차이다.
[2. 프랑스]
a. 에펠탑: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의 교 량기술자 A. G. 에펠이 설계하여 만든 탑으로 1889년 파 리의 만국박람회장에 세워졌다. 높이는 약 300m로 그 이전에 건설된 어떤 건물에 비해서도 약 2배에 이르는 높이였다. 재료에는 프랑스에서 제조된 7,300t의 시멘즈 마르탕 평로강(平爐鋼)이 사용되었다. 탑이 만들어지던 당시에는 파리의 경관을 해치는 것이라고 반대가 심하였으나 완공 후 프랑스를 상징하는 조형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b. 노틀담대성당: 세느강(江) 시테섬에 있는 파리의 노틀 담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틀담’(Notre-Dame)은 가톨릭에서 쓰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존칭이며, 프랑스어로는 ‘우리들의 귀부인’이라는 뜻이다. 성당을 짓는 공사는 1163년 주교 M. 쉴리의 지휘 아래 내진(內陣) 건축이 시작되었고, 1330년 완공되었으나 그 후에도 부대공사는 계속되어 18세기 초엽 측면 제실(祭室)의 증설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70년에 걸쳐 만들어진 고딕양식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c. 샹제리제 거리: 샤를 드 골 광장에서 방사선으로 뻗은 12개의 거리 중 하나이며, 가장 넓은 길이다. 콩코르드 광 장까지 길이 약 2km이며, 폭은 124m에 이른다. 1667년 이전까지는 센강이 범람하는 황폐한 늪지였으나 앙드레 르 노트르에 의해 아름답게 변모하였다. [샹제리제]란 [천국의 들판]이란 뜻이다.
d. 팡테온: 원래 루이 15세가 자신의 병이 치유된 것을 신 에게 감사하기 위하여 생트 준비에브(Saint Jenevieve) 교회로 지었으나 뒤에 나라에 공헌한 위인들이 묻히는 국립묘지로 바꾸어 사용하였다. 건물 지하에는 볼테르, 루소, 에밀 졸라, 빅토르 위고 등의 무덤이 있다.
e. 에두알 개선문: 프랑스 파리의 드골(에투알) 광장 중앙 에 있는 석조 개선문. 1806년 나폴레옹 1세가 휘하 군대 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계획하였다. 설계는 주로 J. F. 샬그랭이 맡았으나 그는 얼마 안 가서 죽고 나폴레옹 자신도 실각하 였기 때문에 공사는 중단되었다가 1836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완성되었다. 높이 49m, 너비 45m로 대체로 고대 로마의 개선문의 양식을 따랐으나 프랑스 근세 고전주의의 걸작으로 꼽힌다.
f. 콩시에르 주리: 원래는 세금과 주택을 관할했던 콩시에 르주리의 거처였던 곳이다. 프랑스 혁명 때에는 혁명재판 소의 대기실로 사용되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2,600여 명의 귀족과 혁명가들이 최후의 한때를 보낸 곳이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최후의 나날을 보냈던 독방은 1816년에 확장되어 속죄의 예배당이 되었다.
g. 루브르 박물관: 원래는 궁전이었다. 소장된 미술품의 규모는 세계 최대이다. 원래 루브르궁에는 역대 프랑스 국 왕들이 수집해 놓은 방대한 양의 미술품이 소장되어 있는 데, 프랑스 혁명 후인 1793년 국민의회가 그것을 공개하 기로 결정함으로써 미술관으로 정식 발족하고 그 뒤로도 꾸준히 미술품 수집이 계속되어 오늘날의 세계 3대 미술관 안에 드는 대미술관이 이루어졌다. 약 30만 점의 소장품이 있으며 그 중 2만 5천점이 전시되고 있다.
h. 앵바리드: 군사박물관, 입체도시계획박물관, 역대해방박 물관, 폐병원인 생루이교회 등 여러 기념물이 한데 집합되 어 있는 파리 최대의 종합전시장이다.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를 습격할 때 군중들이 사용한 무기의 대다수는 그날 아침 앵발리드로부터 탈취한 것이었다. 경비병의 저항이 있었지만 군중들은 다수의 힘으로 그들을 제압하고 지하에 있던 무기고로 들어가 약 2만 8000정의 무기를 탈취했다. 그러나 앵발리드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은 1840년 나폴레옹의 유해가 돌아와 그곳에 안장된 것이다. 당시 프랑스 국왕이었던 루이 필리프(Louis Philippe)는 영국 정부와 7년간에 걸친 협상 끝에 세인트헬레나로부터 황제의 유해를 이장하는 허가를 받았다. 황제의 사후 19년이 지난 1840년 10월 8일 관이 발굴되어 2분간 개봉된 뒤 프리깃함 라벨풀호에 선적되었다. 당시 임석했던 사람들은 유해가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i. 베르사유 궁전: 베르사유궁전의 기원은 17세기 전반 수 렵을 즐겼던 루이 13세가 고요한 마을에 불과했던 이곳을 수렵장으로 만들고 작은 성을 지은 것에서 비롯한다. 그 후 루이 14세가 1661년 건축가 르보, 실내장식가 르 브룅, 정원예술가 르 노트르 등을 초빙하여 50년이라는 긴 세월과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 궁전을 지었다. 1668년 건물 전체를 증축하여 외관을 가로축 부분이 앞으로 튀어나온 U자형 궁전으로 개축하였고, 1672년 왕궁을 이곳으로 옮겼다. 이 후 베르사유는 왕국의 수도로서 정치, 문화, 사교의 중심이 되었다. 1783년 미국독립혁명 후의 조약, 1871년 독일제국의 선언,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후의 평화조약체결이 거울의 방에서 행해지는 등 국제적 행사 무대가 되었다. 1979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3. 독일]
a. 백조의 성(노이반슈타인성): 국경도시인 퓌센에 위치해 있으며, 루트비히 4세가 건축하였다. 디즈니랜드에 있는 성이 이 성을 모형으로 만든 것이다.
루체른호수의 서안 로이스강의 기점에 위치한 도시로 루세른(Lucerne)이라고도 한다. 중세 스위스 도시의 모습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구 시가지를 중심으로 역사적인 유산들이 많이 남아있다. 구 시가지에는 프레스코화로 전체 벽을 채색한 건물들이 많이 있다. 근교의 피라투스산과 리기산이 루체른호를 둘러싸고 있으며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많은 예술가들과 문학가들이 즐겨찾는 스위스 최대의 관광 휴양지로 알려져 있다. 730∼735년에 베네딕트파 대성당 장크트 레오데가르가 설립된 후, 이곳을 중심으로 한 생고타르 고개의 개통에 따라, 지중해 지역과의 무역 중계지로서 급속히 발전하였다.
구 시가지와 신시가지를 구분 짓는 로이스강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카펠교가 있으며, 파이프 오르간으로 유명한 호프교회는 스위스에서 가장 중요한 르네상스 교회 건축물로 여겨진다. 주변의 명소로 루체른 사자의 기념상과 빙하공원이 있으며, 루체른 중앙역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어 도보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b. 루체른: 루체른호수의 서안 로이스강의 기점에 위치한 도시로 루세른(Lucerne)이라고도 한다. 중세 스위스 도시의 모습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구 시가지를 중심으로 역사적인 유산들이 많이 남아있다. 구 시가지에는 프레스코화로 전체 벽을 채색한 건물들이 많이 있다. 근교의 피라투스산과 리기산이 루체른호를 둘러싸고 있으며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많은 예술가들과 문학가들이 즐겨찾는 스위스 최대의 관광 휴양지로 알려져 있다. 730∼735년에 베네딕트파 대성당 장크트 레오데가르가 설립된 후, 이곳을 중심으로 한 생고타르 고개의 개통에 따라, 지중해 지역과의 무역 중계지로서 급속히 발전하였다.
구 시가지와 신시가지를 구분 짓는 로이스강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카펠교가 있으며, 파이프 오르간으로 유명한 호프교회는 스위스에서 가장 중요한 르네상스 교회 건축물로 여겨진다. 주변의 명소로 루체른 사자의 기념상과 빙하공원이 있으며, 루체른 중앙역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어 도보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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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태리]
a. 밀라노 대성당(두오모 성당): 밀라노는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로 서 발달한 북이탈리아 공업지대의 중심도시이다. 그런데, 374년에 성(聖)암브로시우스가 밀라노의 대주교가 되면서부터 밀라노는 북부 이탈리아의 종교적인 중심지가 되었다. 성(聖)암브로시우스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밀라노의 수호성인(守護聖人)으로 추앙받고 있다.
b. 피렌체: 영어로는 플로렌스(Florence)라고도 한다. 현재 피렌체 는 유럽의 상공업·금융업의 중심이 되었다. 13세기에 이르러 교황당(敎皇黨:겔프)과 황제당(皇帝黨:기벨린)과의 싸움이 피렌체시(市)뿐만 아니라 전(全)토스카나 지방, 나아가서는 전이탈리아를 휩쓸었으며, 이때 피렌체는 피사 등의 인근도시를 지배하여 강대한 공화국이 되었다. 1300년에 비롯된 백당(白黨)과 흑당(黑黨)은 단테를 망명하게 하였으나, 이 무렵의 피렌체는 이미 인구 10만을 헤아렸고, 산업뿐만 아니라 문화면에서도 이탈리아의 중심이 되어있었다. 15세기 초부터 메디치가(家)가 시정(市政)에서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하였는데, 코지모 및 손자인 대(大)로렌츠는 실질적으로 메디치가의 독재체제를 확립하여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으로서 그 황금시대를 맞이하였다.
15세기 말부터 메디치가의 추방과 복귀가 되풀이되었으나, 1532년 메디치가의 세습체제가 확립되어 피렌체는 토스카나 공국(公國)의 수도가 되었다. 1859년 토스카나 공국은 사르데냐 왕국(뒤의 이탈리아 왕국)에 병합되었고 1865년부터 1870년까지는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격심한 연합군의 공습을 받았으며, 1944년 8월에는 영국·독일 양군의 치열한 공방전의 무대로 참화를 입었다.
지금은 이탈리아에서 손꼽히는 종합대학을 비롯하여 많은 문화기관 ·연구기관이 모여 있다. 1966년 가을에 아르노강이 범람, 우피치 궁전 등 시가의 중심부가 침수되어 귀중한 문화재가 큰 손실을 입었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c. 씨뇨리아 광장: (피렌체): 수세기 동안 피렌체의 정치·사회적 중 심지였으며, 현재는 카페 테라스가 있는 휴게장소이다. 광장 부근 베키오 궁전에 있는 종루의 종은 시민들을 공공집회에 불러모으는 데 사용되었다.
광장에는 피렌체를 일으킨 코지모 데 메디치의 동상이 있고,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동상 《다비드》의 모조품과 메두사의 목을 벤 페르세우스의 청동상인 《첼리니의 페르세우스》, 잠볼로냐의 《사빈 여인의 강간》 등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 모조품들이 있다. 광장 중앙에는 한때 피렌체를 지배했던 수도승 사보나롤라의 처형지임을 알리는 화강암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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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스위스]
1. 루체른: 루체른호수의 서안 로이스강의 기점에 위치한 도시로 루세른(Lucerne)이라고도 한다. 중세 스위스 도시 의 모습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구 시가지를 중심으로 역사적인 유산들이 많이 남아있다. 구 시가지에는 프레스코화로 전체 벽을 채색한 건물들이 많이 있다. 근교의 피라투스산과 리기산이 루체른호를 둘러싸고 있으며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많은 예술가들과 문학가들이 즐겨찾는 스위스 최대의 관광 휴양지로 알려져 있다. 730∼735년에 베네딕트파 대성당 장크트 레오데가르가 설립된 후, 이곳을 중심으로 한 생고타르 고개의 개통에 따라, 지중해 지역과의 무역 중계지로서 급속히 발전하였다. 구 시가지와 신시가지를 구분 짓는 로이스강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카펠교가 있으며, 파이프 오르간으로 유명한 호프교회는 스위스에서 가장 중요한 르네상스 교회 건축물로 여겨진다. 주변의 명소로 루체른 사자의 기념상과 빙하공원이 있으며, 루체른 중앙역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어 도보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b. 카펠교: 1333년 로이스강에 놓인 다리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긴 나무다리로 길이가 200m에 이른 다. 우아한 형태로 루체른의 상징이 되어 있다. 위를 덮고 있는 지붕의 들보에는 스위스 역사상 중요한 사건이나 루체른 수호성인의 생애를 표현한 112매의 삼각형 판화 그림이 걸려 있는데, 이 중에는 17세기 하인리히 베그만의 작품도 10여 점 있다. 다리 중간에 있는 팔각형 석조의 바서투름(물의 탑)은 등대를 겸한 루체른 방위탑으로, 위급할 때에는 시민에게 경종을 울려 알리는 종각과 감옥소 또는 공문서의 보관소 등으로 쓰였는데 지금은 기념품을 파는 상점이 있다. 밤이 되면 다리 주변에 조명이 들어와 경관이 아름답다.
c. 빈사의 사자상: 호프교회 북쪽의 작은 공원 안에 있는 사자상으로, 프랑스혁명 당시인 1792년 8월 10일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머물고 있던 궁전을 지키다가 전사한 786명의 스위스 용병의 충성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덴마크 조각가 토르발센의 작품으로 1821년 독일 출신인 카스아호른에 의해 완성되었다. 스위스 용병들을 상징하는 사자가 고통스럽게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이 묘사되었다. 사자의 발 아래에는 부르봉 왕가의 문장인 흰 백합의 방패와 스위스를 상징하는 방패가 조각되어 있다. 마크 트웨인은 이 사자기념비를 “세계에서 가장 슬프고도 감동적인 바위”라고 묘사하였으며 다른 관광지와는 달리 숙연한 분위기가 흐른다.
d. 필라투스
[5. 오스트리아]
[6. 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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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헝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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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라하: 문지방, 문턱 이란 뜻. 신교의 발상지
얀후스 유언: 나는 거위처럼 까맣게 불타 죽지만 백조처럼 다시 태어날 것이다.
얀후스의 유언: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행하고, 진리를 지켜라
얀후스 기념성당에 있는 황금성배:(만민평등설)을 상징
합스부르크왕조가 침입하고 파괴하고 마리아 상으로 대체했다.
고딕양식의 특징: 2층 발코니에 악마형상의 동상을 세우는 것
실내에 있는 악령이 입을 통해 나가라고.
보헤미안: [자유로운 영혼]이란 뜻.
얀후스종교개혁광장에 있는 [시계탑]:
프라하 대학의 천문학 교수인 [하누쉬] 만들었는데 다른 나라에서도 만들어 달라고 하니까 납치하여 눈을 멀게 만들었다.
한번만 시계를 만지게 해달라고 했는데, 400년 동안 시계가 울지 않았다.
4 개의 인형:
맨 왼쪽: 인간의 허영
유대인의 전대
해골
터키인의 쾌락
유진 장군: 합스부르크의 왕자
터키 군과 전쟁에서 9번 승리
명장이라고 나폴레옹도 인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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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헝가리 평야의 북서부, 도나우강 연안에 걸쳐 있는 도시이다. 부다와 페스트는 원래 별개의 도시로 발달였다. 부다는 2세기부터 파노니안(Panonian) 지방의 로마의 군(軍) 주둔지 아쿠인쿰으로 알려졌다. 14세기경부터 부다는 헝가리의 수도가 되고, 페스트도 상업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1872년 부다와 페스트를 합병하여 부다페스트가 되었다.
부다페스트는 도시 자체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부다왕궁:
13세기 몽고 침입 이후에 에스테르곰에서 이곳으로 피난 온 벨라 4세는 방어를 위해 높이 솟은 부다의 언덕에 최초로 왕궁을 지었다. 이후 마차시 왕 시절에 모든 건물들은 르네상스 스타일로 변형되었고, 궁전은 중부 유럽의 문화, 예술, 정치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17세기에는 합스부르크의 마리아 테레지아에 의해 현재의 크기로 개축되었고, 지금은 역사박물관과 국립미술관, 국립도서관 등으로 쓰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된 현장을 복구하면서 수많은 유물들이 발굴되었는데, 이 유물들은 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노동운동박물관에는 헝가리 투쟁운동과 사회주의 하의 헝가리 모습을 담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고, 국립미술관에는 11세기부터 현재까지의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영웅광장: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기 위해 1896년에 지어진 광장이다. 광장 중앙에는 36m 높이의 기둥이 있는데, 꼭대기에는 가브리엘 대천사의 조각상이 있다. 기둥 옆에는 마자르의 7개 부족장들의 동상이 있다.
이 기둥을 기준으로 반원의 형태로 주랑이 2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곳에는 헝가리의 역대 왕과 영웅들이 연대순으로 조각되어 있다.
마차시교회:
13세기 중엽에 세워진 마차시교회는 헝가리의 가장 위대했던 왕인 마차시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마차시 왕의 두 번의 결혼식이 이곳에서 거행되었으며, 합스부르크 최후의 황제인 카를 4세의 대관식을 포함하여 3번의 대관식이 거행되어 대관식 교회라고도 부른다. 16세기에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으면서 이슬람사원인 모스크로 사용되었다. 17세기에는 다시 가톨릭 교회가 되었고, 18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되었기 때문에 이슬람적인 분위기와 카톨릭적인 분위기가 혼재되어 묘한 매력을 풍긴다.
교회의 지붕은 원색의 타일을 사용한 모자이크 모양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며, 내부는 헝가리 역사의 중요한 장면들을 묘사한 프레스코화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여름밤에 열리는 오르간 콘서트는 뛰어난 음향과 완벽한 분위기로 인기가 높다.
어부의 성채(요새):
왕궁 언덕의 동쪽에 우뚝 서 있는 네오 로마네스크와 네오 고딕 양식이 절묘하게 혼재된 건물로, 1899년에서 1905년 사이에 지어졌다. 헝가리 애국정신의 한 상징으로 19세기 시민군이 왕궁을 지키고 있을 때 도나우강의 어부들이 강을 건너 기습하는 적을 막기 위해 이 요새를 방어한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
중세에는 어부들이 도나우강에서 왕궁 지구에 있는 어시장으로 가는 지름길로 사용되었다.
동양적인 색깔이 짙은 고깔모자 모양을 한 일곱 개의 탑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건국 당시의 7부족을 상징한다. 전체가 긴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하얀 색의 화려한 성벽과 마차시교회까지 뻗어있는 계단이 아름답다.
헝거리 국회의사당:
영국 국회의사당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규모가 크다. 건국 1000년을 기념하여 세워진 국회의사당의 외벽에는 헝가리 역대 통치자 88명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지붕에는 1년 365일을 상징하는 365개의 첨탑이 있다. 국회의사당의 내부에는 총 691개의 집무실이 있으며, 카펫의 길이를 모두 합치면 무려 3456m에 이른다고 한다. 김춘수 시인의 시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의 배경이 바로 국회의사당 앞에 있는 코슈트광장이다. 1956년 혁명 당시 부다페스트 대학생과 시민들이 소련군의 철수와 헝가리의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연좌데모를 벌이다가 소련군의 총탄에 쓰러져간 곳으로, 헝가리 민주의회정치의 현장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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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조으글 잘보았음니다
여행을 다시 다녀온 기분 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목사님이 우리가 거쳐온 여행길목들을 다시한번 쭈~욱 훌터 주셨네요. 저희가 가본곳도 있고 또 동 유럽은 안가본곳도 있지만 새록 새록 기억을 더듬어 주셨고 다시한번 간다면 이글을 카피해서 가져가고 싶네요. 감사드립니다.
근데?? 웬 글씨가 이래 큽니까? 깜짝 놀랐네!! 목사님, 크던, 쬐메하던 자주 올려 주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