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懷鄕詩鈔』金容稷 著, 푸른사상사 刊
李 章 佑 (영남대 중국언어문화학부 명예교수)
1.
현대에 와서 한국인이 한문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현대 한국인이 한시를 쓴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또 현대인들도 한시를 잘 쓸 수 있을까?
우선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좀 하자면, 나는 중국문학이라는 것을, 그것도 고전문학이라는 것을 전공하고 있으니 한시를 많이 읽고, 그것을 강의도 하고, 번역 주석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한시를 잘 짓지는 못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것을 거의 짓지를 않고 지낸다. 다만 대만에 유학을 할 때는 석사논문도 고문(한문)으로 썼고, 지금까지 중국의 동학들과 편지를 주고받을 때도 고문을 쓴다. 나에게는 백화문으로 편지를 적는 것보다 고문으로 글을 만드는 것이, 정해진 규격에 글자를 적당히 맞추어 넣기만 하면 되니까 더 용이하게 여겨지고, 더 습관화 되어있다. 그러나 선친께서 보내신 한문편지에 나는 한문으로 답장을 드린 일은 한 번도 없다. 왜냐하면 늘 “전공을 한다는 녀석이 글이 이렇게 한심하냐?”고 꾸지람만 하실까 항상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한문으로 시를 짓는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같은 과에 한시를 수천 수 외우고, 붓글씨도 잘 썼고, 한시도 잘 짓던 노 교수 한 분이 계실 적에는 더러 습작을 해서 보여 드리고 교정을 받은 적이 있지만, 그 어른이 퇴임하신 뒤로는 한시를 지은 일이 거의 없어졌다. 지금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후배들 중에서 한시 모임을 만들고 컴퓨터에 홈페이지까지 만들어 놓고서 한시 짓는 것을 지도하는 데가 있다고 하고, 중국 대륙에서도 이러한 한시 모임이나 한시 홈페이지는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하니, 그러한 데라도 참여하여 습작을 계속해 보고 싶은 마음만은 간절하다.
2.
향천(向川) 김용직(金容稷) 교수는 한국의 현대시를 짓고, 또 전공하는 사람이다. 그가 쓴 이 책 서문과 부록을 읽어보면 그는 한학을 하는 집안에서 태어나기는 하였지만, 어릴 때부터 한문을 제대로 배울 기회는 거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선친이 진작 항일 운동에 참가하다가, 그가 어릴 때 불운하게 작고하셨기 때문에 가세가 기울어지고 그의 동몽수준의 학습도 저절로 단절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이 중년이 넘어, 숱한 역경을 극복하고서 한 문인으로서, 학자로서 자리를 확고하게 다진 뒤에 한시를 짓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어떤 실향민(失鄕民)이 타향에서 고생 끝에 성공을 거둔 뒤에 매우 자랑스럽게 고향을 찾아가는 것과도 같은 것이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생각만 있고 재주만 있다고 쉽사리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시를 짓자면 한문 글자의 발음 배열 방식[평측, 압운]을 알아야 하고, 의미를 배열하는 방식[대구] 같은 것도 알아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옛날 선비들이 사물을 보고 이해하던 방식, 생각하던 방식, 짧은 시구 안에서 풍부한 이미지를 담을 수 있는 특수한 기술 같은 것을 익혀야만 한다. 이러한 고도의 기술은 내가 위에서도 실토한 바 있지만, 그의 동몽 수준의 한문 지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데, 그런 것을 익히기 위하여 김 교수가 선택한 방식은 아주 재미있고도 멋진 것이었다.
그는 그와 같이 타향(서울)에 와서 성공하였으면서도 늘 옛 고향을 그리워하고, 새로운 것을 알면 알수록 옛 것에 대한 그리움을 더 간절하게 느끼는 친구들과 모여 한시를 짓는 기술을 함께 연마해 가는 길을 택하였다. 고병익(전 서울대 총장, 작고), 김동한(전 한국토목학회 회장), 김종길(시인, 영문학자), 조순(전 부총리), 이용태(삼보컴퓨터 설립자), 김호길(전 포항공대 총장, 작고), 유혁인(전 문공부 장관, 작고) 이헌조(전 럭키그룹 사장), 이종훈(전 한전사장) 등등 이름만 들어도 다 누구인지 알만한, 당대에 각 분야에 명성이 쟁쟁한 분들과 어울리어, 오늘날 제일가는 한학자 벽사 이우성(李佑成) 교수를 좌주로 모시고서 20년째 매주 시짓는 모임인 난사회(蘭社會)를 이어오고 있다.
이 난사회에서는 이미《난사시집》을 세 책이나 내었는데, 김 교수는 이 시집에 수록된 자작시만 골라내어, 이미《벽천집(碧天集)》,《송도집(松濤集)》,《회향시초(懷鄕詩鈔)》3권을 별도로 간행하였다.
첫댓글 존경 스럽습니다! 아울러 동양 고전 연구소에 이와 같은 좋은 말씀을 계속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참! 건강도 하셔야 합니다.
현대시를 쓰시는 시인으로만 알았던 김용직 교수님의 또다른 면모를 볼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신 분들이 전문분야를 뛰어넘는 멋진 취미활동을 하고 사시는 분들 한분 한분에게 존경스럽다는 말 외는 더 할말이없네요. 멋진 인생 !
동양고전에 계시는 것만해도 든든한데 이렇게 글을 올려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우리 인문학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생각하도록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