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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139.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의 종류와 의미를 말해보라)
하나님의 부르심은 보편적 부르심과 실제적 부르심과 봉사를 위한 부르심으로 정리할 수 있다. 보편적 부르심은 창조와 구속으로 부르신 부르심이요, 실제적 부르심은 하나님의 구속으로 부르신 보편적 부르심에 대한 인간 개인적인 응답이며, 봉사를 위한 부르심은 실제적 부르심에 머무는 사람을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교회 내에 직분을 주어 일하게 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 모든 부르심을 통하여 "주께서 땅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롬 9:29).
사단은 이미 패배한 원수이지만 그의 여력이 있는 동안 부르심의 영광스러운 결과인 교회를 파괴하기 위하여 갖은 핍박을 퍼붓고 있다.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계 12:12). 분노한 사단은 핍박하기를 강물이 도도히 흐르는 것같이 하였다(계 12:15).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 하나님의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라. 그것은 피의 발자국이 아닌가! 예수께서 당신의 피로 교회를 사시고 세우신 것처럼 그의 교회에 부르심으로 가담한, 제사로 언약한 백성들은 순교의 피로 교회를 지키며 발전시켜 왔다. 교회가 없어질 것같이 느껴지는 시대도 있었으나 교회의 주인 그리스도, 음부의 권세를 이기신 분께서 교회를 붙들고 있기 때문에 결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 사단은 핍박으로 교회를 없애려고 하다가 실패하자 방법을 달리하였다. 자신을 교회로 가장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교회에 힘있는 일군처럼 침투하여 모든 형식을 그대로 두면서 내용을 변질시켜 의미상으로 자신을 경배하도록 이끌어 왔다.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고후 11:14, 15). 이리하여 사단은 교회를 자기 형상으로 변질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살후 2:4).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세상의 가장 마지막 때 소위 7년 대환란 시기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라고 말한다. 바울이 이 말씀을 기록할 때 이미 불법의 비밀이 활동하였다고 하였다.
(문140. 적 그리스도가 신약 어느때부터 있었는가?)
이 적 그리스도 곧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세력, 사단의 세력이 교회 안에 침투하여 활동하는 일이 바울 당시에 이미 시작된 것이다. 그리하여 교회에 비 성경적 가르침을 퍼뜨리고 그 가르침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였는데 이것은 세상에 환영받을 만한 것들이었다. 예수님은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9)고 말씀하셨다. 또한 그리스도의 나라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하셨으며(요 18:36), 섬기는 자로 세상에 계신다고 하셨다(막 10:44, 45). 그런데 사단은 교회에 광명한 천사처럼 마치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처럼 들어와서 교회가 세상에서 높임을 받은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인도하였고 마침내 성전에 앉아 모든 숭배받는 것들보다 더 높여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숭배받는 존재를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이 존재에게 정치와 종교의 최상권(最上權)을 가지게 하여 이 권세에 순복하지 않으면 누구든지 핍박하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사는(엡 4:1) 모든 사람들은 극도로 핍박을 당하였다.
(문141. 한 때 두 때 반 때란 무엇이며 무엇을 의미하는가?)
외부적으로 볼 때는 교회가 교회를 핍박하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이 기간을 성경은 "한 때 두 때 반 때", 혹은 '1260일' 혹은 '42달'로 나타내었다. 한 때 두 때 반때는 3년 반이요, 이것을 달로 계산하면 42개월이요, 다시 날 수로 세면 1260일이다. 이 숫자는 다 동일한 사건 곧 교회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참 백성이 핍박받는 기간을 지적하는 예언이다. 이 기간이 나타나 있는 곳은 다니엘 7:25; 12:7; 계시록 11:2; 12:6, 14; 13:5 등인데 사단의 세력이 교회를 핍박하는 입장에서 42개월이라고 하였고 교회가 핍박받는 입장에서 한 때 두 때 반 때라고 하였고 교회가 하나님의 손에 보전되는 입장에서 1260일이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농담할 때에 감기 치료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약을 먹으면 일주일, 그냥 두면 7일이라고 한다. 꼭 같은 기간이지만 숫자만 따지면 하나는 1이요 하나는 7이다. 약을 먹어도 7수를 요한다고 하기보다는 1수로 주[ ]는 것같은 일종의 자위책이 그 숨은 의도인지도 모른다. 이 성경의 핍박의 날짜도 이런 수의 위로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같은 핍박기간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위로와 보호의 기간이라고 말할 때 1260이라는 수로 표시하였다. 그러나 핍박받는 교회의 상태는 겨우 한 때 두때 반때라고 표현하였다. 또 핍박자의 입장에서는 42개월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양육과 위로의 많음을 느끼게 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 기간은 동일한 기간인데 예언상으로 1260년의 하나님의 참 백성들이 핍박받은 세월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참 교회는 이 핍박을 참 교회의 표로 가지게 된다. 이 세월은 사단이 마치 광명한 천사처럼 교회에 들어와 자기의 대리자를 교회의 하나님의 위치에 확립시킨
(문142. 한 때 두 때 반 때는 언제부터 언제까지이며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기원 538년부터 그 세력이 꺾인 1798년까지 기간이다. 이 시기는 역사적으로 암흑시기이다. 이 정치와 종교의 최상권을 잡고 세상에서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던 사단의 대리자로서, 하나님의 참교회처럼 행사한 세력은 로마 카톨릭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지적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교회는 로마 교황의 최상권을 반대하는 세 국가, 반달(Vandals), 헤루라이(Heruli), 동고트(Ostrogoths)를 최종적으로 정복하고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의 칙령 즉 로마의 감독이 모든 교회의 최상권을 가진다는 칙령을 완전히 실현할 수 있게 된 AD538년부터 나폴레옹에 의하여 교황 비오6세(PiueⅥ)가 폐위되고 이 지위는 다시 계승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한 때까지 1260년간 세상을 정치, 종교 양면에서 지배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 긴 기간은 천주교의 전횡(專橫)에 세계는 암흑시대가 되고 모든 발전은 정지하게 되는 것같은 시대였던 것이다. 이 기간 동안 하나님의 참 교회는 전무한 핍박을 겪었는데 이 때 참교회는 오히려 지하 교회였고 이단이라는 이름으로 처형을 받는 교회였었다. 그러나 이 핍박의 기간이 끝나고 살아남은 교회는 여자의 남은 자손이라고 불려지는데 그 특징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것이라고 말한다(계 12:17).
'남은 자손' 이것은 마지막 때 즉 세상의 끝이 이를 때에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세상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전파하고 확정하는 구원된 백성을 뜻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성경이 남은 자만 구원 얻는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롬 9:27).
남은 자에 대한 구체적인 사상은 온 이스라엘이 바알에게 부속되어 하나님을 떠나 배도했을 때 엘리야가 부르짖는 호소에서 출발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 왕비 이세벨은 온 이스라엘을 바알화 시키려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핍박하였다. 결국 엘리야가 자기 혼자 남았다고 생각하였고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고군분투(孤軍奮鬪) 하였고 스스로 피곤하여졌을 때 하나님께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호소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자 7,000명이 남아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 사람들은 그 배도의 시대에 하나님 편에 굳게 선 것이 확정된 사람들이다. 이들이 남은 자였다. 이 사상은 이사야 선지자에 의하여 심화되고 확대되었다. 남은 자는 구원된, 구원의 확정된 사람들이라는 인상이 깊어진 것이다. "유다 족속 중에 피하여 남는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히리니 이는 남는 자가 예수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에서 나올 것임이라"(사 37:31,32), "그러나 오히려 주울 것이 남으리니 감람나무를 흔들 때에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실과 이 삼개가 남음 같겠고 무성한 나무의 가장 먼 가지에 사 오개가 남음 같으리라"(사 17:6). 여기에 나타난 것을 보면 예루살렘과 시온에서 남은 자가 나올 것이며 꼭대기에 끝까지 남아 있는 과실은 하나님의 손에 거두어진, 거두어질 수밖에 없는 것들을 표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상은 이스라엘의 민족적 집단적 구원의 사상이, 온 민족과 국가적 배도(背道)의 상황에 처하여 구원은 집단적 국가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온전히 연결된 개인에게 이르러 오는 것이라고 해석되어지면서 일어난 것이다. 하나님의 선민으로 자처한 이스라엘의 국가적, 민족적 배도는 그 국가 민족이 집단적으로 구원받는다는 가능성을 의심케하였고 이러한 상황 아래서 하나님은 엘리야의 일을 통하여 개인적 구원의 사실을 계시하신 것이다. 이런 계시는 이사야 시대 이후의 여러 선지자들에게 나타났고 신약에 와서 바울의 편지서와 요한 계시록에 더욱 분명하여졌고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에 완전히 남는 자들을 가리키게 되었다. 남은 자만 구원을 얻는 것이다. 집단은 단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개인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부르심에 의하여 하나님 편에 머무는 것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롬 4:17)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그 개인이 하나님 앞에 존재하게되는 것이고, 이렇게 존재한 개인들이 모일 때 무리가 되는 것이다. 보편적 부르심에 의하여 모두가 구원에 참예 하였으나 개인적으로 그 사실을 하나님 앞에 확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개인적인 확정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지고"(계 12:17)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문143. 하나님의 게명은 무엇이며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제시하는가?)
하나님의 계명, 이것은 십계명이다. 십계명은 현 세상에 처하여 사는 사람들이 최소한(最小限)의 사랑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이다. 하나님이 사랑이식 때문에(요일 4:8) 그의 부르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해야 할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십계명이 사랑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인 것은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8∼10)는 말씀으로 확인된다. 사랑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 이웃을 사랑하는 최소한의 범위, 그것은 도적질, 간음, 살인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들 외에 다른 계명 조문들이 있을지라도 사랑을 참으로 실천하는 곳에 다 들어 있어서 실천하고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사랑하면 십계명을 폐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하는 자가 십계명의 구체적 내용을 완성하는 자이다.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 이웃을 참으로 사랑하는 일에 의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증명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의하여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실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구원에 머무는 사람이 나타내는 당연한 생활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제시된 것이 1계명에서 4계명까지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말하면서, 믿는 자는 잘못할 마음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율법의 조문이 필요 없다고 말하면서 실제로 율법의 완성을 유린하고 믿음의 역사를 파괴하고 있는 것은 슬픈 일이다.
특히 무엇을 파괴하고 있는가? 제4계명이다. 십계명은 크게 둘로 나누면 5계명에서 10계명까지는 인간 사이의 윤리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세계에서도 해야하는 것이다. ∴ 종교 윤리라고만 할 수 없다. 오히려 종교 윤리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이 정도는 틀림없이 행하는 사람들이다. 불신자도 하는 도덕인데 어찌 하나님의 백성이 안 하겠는가?
(문144. 종교윤리에 해당하는 계명은 무엇인가?)
그러나 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종교 윤리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나타내야 할 사랑의 구체적 표현이다. 그런데 1계명에서 3계명까지는 아무 종교에서 주장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어는 종교에서 그들이 섬기는 신 외에 다른 신을 섬겨도 좋다고 하겠는가? 또 그 종교가 우상 숭배를 원치 않는 것이면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명령 할 수 있다. 또한 어느 종교가 자기의 신의 이름을 함부로 아무렇게나 블러도 좋다고 하겠는가? ∴ 이것은 일반 종교 원칙이다. 그러나 제4계명을 보자. 이것은 성경의 하나님의 독특성을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계명이다. 하나님의 존재와 인격과 그의 창조하신 사실에 의하여 명령된 계명이다. 창조주가 아니면 이 명령을 누가 할 수 있겠는가? 만일 창조주가 아닌 존재가 이런 말로 명령한다면 그것은 사기꾼이다. 사기꾼을 어떻게 믿겠는가? 제4계명을 제하여 버리고 무시한다면 그것은 성경의 하나님 여호와를 모르는 것이며 섬기지 않는 것이다. "또 나의 인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너희로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줄 알게 하리라"(겔 20:20). 안식일을 안 지키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자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자가 하나님의 남은 자일 수 없다.
(문145. 남은 자손은 어떤 특징을 갖는가?)
∴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남은 자손의 한가지 특징이 되는 것은 결국 오늘날 교회라고 자처하는 모든 교회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참교회는 하나님의 계명 전체를 문자대로 다 지키는 교회가 남은 자손이요, 구원된 백성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문146. 예수의 증거는 무엇인가?)
예수의 증거는 무엇인가? 계시록 14:12은 계시록 12:17과 병행절(竝行節)인데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하였다. 12:17에는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라고 하고 14:12에는 예수 믿음을 가진 자라고 하였다. 같은 뜻이나, 전자는 원칙을 말하고 후자는 실천을 말한다. 예수의 증거대로 사는 것이 예수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왜 이렇게 계명과 믿음을 강조하였는가? 하나님의 계명은 유대교에서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예수 믿음은 그리스도교에 있다. 그리스도교는 유대교를 모태로 하였다고 말해서 잘못된 것이 아니다. 남은 자는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고 구속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는 자들이다. 오랜 핍박의 세월 동안 교회는 올바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법을 왜곡하여 왔다. 하나님은 이 핍박을 통하여 견디어 나온 교회에게 올바로 하나님을 순종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하여 성경을 성령으로 친히 해석해 주기를 기뻐하셨다. 그래서 옛날 성경을 기록할 선지자를 선택하여 성령으로 계시하여 성경을 기록하게 하듯이 성령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일을 하도록 한 선지자를 택하셨다. 이 사실은 계시록 10:11에 예언되었다.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고 하였다. 다시 예언하여야 할 그때에 하나님은 성령으로 감동하여 성경을 올바로 해석할 특별한 종을 택하시고 성경의 도를 따라 올바로 예수 믿음을 지키게 하셨다. 이 종을 통하여 해석한 하나님의 기별을 예언의 신(구역 성경, 개역에는 대언의 영)의 기별이라고 한다.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예언의 신)이라"(계 19:10). 이것은 계 22:9의 병행절과 대조하면 선지자의 기별임을 알수 있다.
(문147. 성경의 선지자는 어떤 특징이 있으며 마지막 선지자는 누구인가?)
이 기별을 주신 분은 예언의 신이신 성령이며 그가 해석한 기별인 고로 그 기별을 예언의 신 곧 예수의 증거라고 하며 이 증거를 좇아 성경의 진리를 올바로 순종하는 것을 예수 믿음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기별을 받아 기록한 인간 대리자를 선지자라고 하는데 그는 엘렌 지 화잇(Ellen G. White)이다.
오늘날 핍박을 견디어 남은 자손,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이루어진 교회의 최종 구성원 그들은 누구인가? 성경의 증언을 좇아 분명히 이해할 때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임이 분명하다. 이들은 구원의 확증을 가진 자들이다. 이 말은 이 교회에 속한 자는 누구든지 이 교회에 속했다는 사실만으로 구원이 확정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문148. 구원이 확정된 자의 특징은 무엇이며, 구원이 확정된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이미 말했듯이 개인적으로 이 특성을 확실히 소유한 자가 남은 자요 그가 구원이 확정되었으며 이런 사람이 모인 최종 교회가 안식일 교회라는 말이다. 이들 중에도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지 않은 자들도 있을 수 있다.
이 사람들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참 하나님 되심을 위하여 온 세상에 증거해야 할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다. 이들의 기별이 온전히 전파되어질 때 이 지상의 교회는 하늘의 완전한 교회와 온전히 일치하게 되고 죄는 영원히 끝나고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 곧 처음 창조로 부르신 그 순결하고 영광스럽고 영원한 세계의 생활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이 일을 완성하기 위하여 그때 주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이다.
이 남은 자가 전하는 기별이 세 천사의 기별인데 계시록 14:6∼12이다. 이것에 대한 얘기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의 사랑의 열매이며 부르심에 의하여 우리는 있는 것이다. 이 부르심은 곧 우리의 존재요 영생인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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