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8일 해외의료봉사단 일행을 실은 비행기가 10시30분 인천공항을 출발해 자카르타를 경유 발릭파판(balipapan)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을 넘어서였다. 짐을 찾아 공항 밖으로 나오자, “환영합니다. 축복합니다.”라고 한글로 적힌 프랜카드를 들고 라빡(Rapak)교회 목사님과 교우들이 우리를 기다리며 반갑게 맞이한다. 전통의상을 입은 여인이 환영의 뜻으로 단장(김덕진목사)에게 꽃다발 목걸이를 걸어 주자, 모두들 환호와 박수로 화답하며 기쁨을 나눈 후, 경찰차의 호위를 받으며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에 도착한 뒤 나눠 갖고 온 의약품을 한곳으로 모으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일부 봉사단원은 내일 오후에 있을 진료를 위해 의약품을 분류해 놓고 돌아와 새벽3시가 되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단잠을 깨운 건 새벽4시 라마단 기간 샬라타임을 알리는 큰 음악과 독경소리가 모두를 깨웠다. 봉사기간 동안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적응하기가 녹록치 않을 것 같았다.
7월 29일(주일)
주일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6일간 봉사단의 교통수단은 대형버스(칼리만탄(보루네오섬)에 버스가 총 28대 있는데 그 중 한대로 에어컨과 화장실이 구비되어 있으나 뒷자리는 더위와 불쾌한 냄새를 견뎌내야만 했다)를 이용했다.
3일간 예배와 진료, 문화사역, 성경학교를 진행할 라빡교회는 발릭파판(balipapan)에 있는 10여개 교회 중 가장 큰 교회로 1,500여명이 재적인원으로 이날 700여명이 함께 예배를 드렸다.
열정적인 찬양과 김덕진목사님의(한광숙 선교사님 통역) 은혜로운 설교가 있은 후, 담임이신 해리(Herry)목사님의 인상적인 알림시간(한국:인도네시아 국제축구경기(8월7일))과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이곳 예배시간은 3시간이 기본인 것 같다)
먼저, 500여명의 교인을 대상으로 오후 진료에 들어갔다. 교회 앞마당에는 천막을 치고 대기장소를 만들고, 예배당 정문을 중심으로 안내와 접수, 혈액검사, 혈압측정, 혈당측정, 체중, 체온검사 순서가 끝나면, 봉사자를 따라 교육관 마당 정사각형 모양으로 배치된 책상에는 안과, 피부과 가정의학과, 소아과, 신경외과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목재로 지은 교육관 안에는 약국과 통증의학과가 자리하였고, 진료를 마친 환자는 창문을 통해 조제된 약을 받아 갈수 있게 하였다.(3일간, 약국과 통증학과는 더위, 모기와 싸워야 했고, 벽에 붙어있던 귀여운 도마뱀이 떨어져… ) 마당 안쪽구석엔 조그만 거울 하나와 접이식 의자를 놓아 간이 미용실을 차렸고, 한쪽에선 청년들이 패이스페인팅과 풍선아트, 솜사탕을 만들며, 부모님과 함께 온 주일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성경학교를 진행해나갔다.
어두운 조명아래서 진료를 마치고, 저녁8시에 드린 저녁예배엔 청년들이 준비해간 K-POP과 판소리, 찬양, 무언극이 큰 인기와 호응을 얻은 가운데 첫날을 보냈다.
7월 30일(월요일)
오늘부터는 지역민을 대상으로 진료가 있는 날이다. 교회에 들어서자 진료를 받기 위해 온 사람들과 오토바이, 자동차로 가득 차있다. 현지 경찰이 나와서 사고예방과 안전을 위해 통제를 하고 자원봉사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함께 모여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로 일과가 시작되었다.
새사람교회에서 기증한 물품과 현지교인들이 준비한 바자회는 장을 펼치자 마자 동이 나고 말았다. 이틀간 진행한 바자회 수익금은 120만원으로 라빡교회 교도소 선교를 위해 쓰여질 것이다.
안과(박영순권사님)에 많은 환자들이 몰려있다. 기후의 영향으로 백내장 환자들과, 노안이 온 사람들이다. 나이가 들면 눈이 안 보이는 것을 당연 것으로 생각하고, 글을 아는 사람만 안경을 써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저들에게 자세히 설명을 해주고, 가져온 돋보기 안경을 나눠주자 다른 세상을 만난 듯이 행복한 표정들이다.
한쪽 무대 위에서는 우리의 전통한복을 입어 보고 꽃미남 청년들과 사진을 찍으며 출력한 사진을 보며 신기한 듯 즐거워한다. 한국의 미남(양휘석)은 인도네시아에서도 인기가 높다. 가는 곳마다 연예인 못지 않은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오후, 교회 안에서는 학교에서 돌아온 70여명 아이들과 봉사단자녀들이 함께 어울려 성경학교를 시작했다. 현지인과 닮아서인지 인기가 많은 임정현목사님은 아이들과 함께하느라 목소리가 쉬어버려 돌아와서야 조금 나아졌다.
늦은 오후 남루한 옷차림의 목사님 한 분과 일행 4명이 섬에서 배를 타고 4시간 동안 왔다고 한다. 목사님은 몸이 아파 여러 번 쓰러진 적이 있고, 동행한 일행 중 한 명은 맨발이었는데 평생 신발을 신어 본적이 없다고 한다.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돌아갈 길을 생각해서 앞서 진료 받도록 배려를 해주어야 했다. 인도네시아의 최고 생수회사 대표가 다녀갔다. 그는 그리스도인도 아닌데 봉사기간 동안 먹을 생수를 무상으로 제공해 주고 갔다. 성령께서 그의 마음을 움직이셨나 보다.
오랜 시간 진료를 기다리며 무더위에 지쳐 힘들만도 한데 얼굴 한번 붉히지 안고, 항상 웃는 얼굴로 봉사단을 향해 뜨리마 까시-ㅎ(Trima Kasih/ 감사합니다)하며 인사가 끊이질 않는다.
저녁8시, 풋살 경기장에서 라빡교회와 새사람교회 청년들과 야간축구 경기가 있다.
체력이 바닥 났을 텐데 걱정이다.
7월31일(화요일)
오늘도 런던올림픽의 메달 소식을 정규진 집사님이 반갑게 전해 주신다. 전날 축구경기가 궁금해져 알아보니 7: 4 새사람교회 완패, 금요일 주경기장에서 설욕전을 펼치기로 했다.
교회에 도착하니, 선교사님이 달려와 현지 두 곳의 신문 1면과 B-TV방송에 새사람의료봉사단이 나왔다고 전해준다. 봉사단이 있는 동안 오젝(Ojek/오토바이 수송업)기사들은 발릭파판에 지진이 났다고 표현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외부에서 의료봉사를 온건 우리가 처음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섬김을 통해 90%가 이슬람교인 이곳에서 교회가 선한 일을 하고, 복음이 전파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셨다. 더욱 놀라운 것은 라마단 기간임에도 이슬람인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교회 땅을 밟는 잊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영적인 축제를 펼쳐주셨다.
쥐에 물려 발이 썩어 들어가는 환자가 왔다. 치료를 부탁하지만 상처가 깊어 수술을 할 수 없는 형편이라 돌려보내야만 했다, 돌아가는 모습이 안쓰러워 인근 정유회사 병원으로 안내하여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라빡교회 선교팀과 교도소 방문이 이루어졌다. 도착한 곳은 단층 건물로 길게 둘러 쌓인 학교와 같았다. 이곳은 살인죄를 지은 수형자들이 모여있는 곳 이라고 한다. 교도소 안 작은 교회에서 함께 예배 드리며 청년들이 준비해간 K-POP과 무언극을 공연하고 돌아왔다. 우리가 떠나는 날 한수형자로부터 편지 한 통이 왔다. “내가 여기서 나가게 된다면 무언극의 내용처럼 술, 도박, 담배, 마약에 다시는 빠져 살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내용이었다.”
3일간 1,700여명의 사람들이 다녀갔다. 가져간 약이 부족해 현지에서 비싼 값을 주고 사와야만 했다, 진료연장 요청이 들어왔다. 허가 받은 날짜는 오늘이 마지막인데 난감했다. 고심 끝에 접수 받은 환자만 늦은 시간까지 진료를 하고, 조제약은(200명분) 목요일 팜팡마을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의료진이 와서 나눠주기로 했다. 진료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는 이들에게 구충제(오바짜진/현지에서는 1알에 만원으로 비싸서 복용이 어려움)를 나눠주며 미안함을 달래야 했다.
엘리카(삼성의료원 연수중)의 삼촌이 자신의 나라를 위해 수고하는 봉사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호텔 저녁 만찬에 초대를 했다. 늦은 밤 맛있는 음식과 이재현 형제의 생음악 ‘빈잔’은 봉사단의 또 다른 추억으로 남았다.
8월1일~2일(수,목요일)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과 습한 날씨, 70년대 우리 내 도시를 연상케 하는 거리, 왕복 2차로인 도로엔 오토바이와 차가 뒤엉켜 아슬아슬한 곡예운전을 해야 하고, 추월하기 위해서는 수시로 중앙선을 넘어만 했다. 사마린다(Samarinda)의 다약(DaYak)부족이 사는 팜팡(PamPang)마을 입구에 도착했으나, 길 위로 지나는 전깃줄이 버스보다 낮아서 진입이 어려워졌다. 버스가 처음 들어가는 곳이라 장대로 전깃줄을 올려가며 지나가야 했다.
롱하우스의 회관 입구에 들어서자 화려하게 채색된 전통의상을 차려 입은 부족민과 족장이 나와 환영한다는 의식으로 봉사단에게 물을 뿌리고 악수를 청하며 반갑게 맞아준다. 잠시 전통 춤을 감상 한 후, 롱하우스안에 진료소를 차렸다.
환경이 열악한 곳이라, 이(벌레)와 피부병환자가 많았고, 등에 혹이 난 환자의 수술에서는 세균에 감염된 검은색의 혹 덩어리가 나왔다. 목에 난 큰 혹으로 늘어난 피부가 가려워 찾아온 여인이
있었다. 손을 쓸 수 없는 중증의 암환자였다. 약을 받아 든 여인은 자신의 딸과 패이스페인팅을 하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두 팔에 예쁜 나비로 마지막 추억을 새기고 돌아갔다.
운동장에서는 청년들과 맨발의 꼬마들이 축구를 하고, 풍선아트가 신기한 듯 전사의 후예답게 칼을 만들어 달라고 달려는 아이들과 함께 성경학교가 열렸다.
티없이 맑은 미소와 목청껏 부르는 찬양 소리에 아버지안에 있는 저들의 희망찬 미래가 보였다.
5일간, 바닥에 수북이 쌓인 머리카락을 수없이 쓸어 담았다. 발릭파판과 팜팡마을 사람들이 한국의 헤어스타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미용봉사를 위해 유명 헤어 디자이너에게 사사 받은 오선영집사의 실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다약족(DaYak)은 100%가 기독교라고 한다. 그러나 아직 토착신앙과 원시적인 관습으로 인해 믿음의 뿌리가 깊지 않아 사역에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 사이로 커다란 달이 교회 지붕 위에 걸려 있다.
달빛 사이로 감미로운 “어메징그레스” 선율이 흘러나온다. 어느새 모두 허밍으로 하나가 되었다. 오버에 소리를 처음 들어보는 이들과 봉사단에게 하나님은 영원히 기억될 아름다운 수요일 밤의 예배를 선물로 주셨다.
8월3일(금요일)
저도 좋으니 제발 부상만 입지 말아달라는 단장님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일까? (4대0 완패)
내년에도 다시 와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는 해리목사님의 바램과 설욕전을 위해서라도 다시 와야 할 것 같다.
잠시 한 여름밤에 꿈이라도 꾼 것처럼 시간이 흘렀다.
즘바란 해변가에 모여 지난 일들을 하나 둘씩 풀어 놓는다.
하염없이 밀려오는 파도가 깊은 바다로 쓸려가듯 저들의 아픔과 고통도 함께 가져가길 바래본다.
해외의료봉사를 위해 중보기도와 바자회를 통해 재정으로 지원한 교우들과 목회팀에 감사를 대신하며,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고, 보게 하시고, 느끼게 하시고, 감동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린다.
첫댓글 아멘!!! 이렇게 다시 기록된 글을 보니 감사합니다...이곳 게시판에 가면 집으로 돌아오는길이라고 제가 사진을 올려놓았어요...즘바란 해변에서 찍은건데 우리 모두 행복해 보이거든요 ^^*
짧은 글로 7일간의 우리봉사 내용을 적절하게 잘 표현하셨네요 ~ 감사합니다. 아직도 봉사 현장에서의 감동이 제 마음을 벅하게 합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