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구간 |
산 행 일 자 |
종 주 구 간 |
종주거리(km) |
종 주 시 간 |
최 고 봉(m) |
소요비용(원) |
제 1구간 |
2011. 10. 27 |
삼강봉~당산고개 |
15.7 + (1.7) |
9시간 35분 |
삼강봉/ 845 |
89,350 |
제 2구간 |
2011. 10. 28 |
당산고개~원고개 |
18.9 |
9시간 03분 |
치술령/ 765.4 |
44,100 |
제 3구간 |
2011. 11. 12 |
원고개~성황재 |
25.2 |
10시간 40분 |
토함산/ 745 |
70,100 |
제 4구간 |
2011. 11. 13 |
성황재~세계원재 |
13.8 |
5시간 20분 |
만리성/ 427 |
68,100 |
제 5구간 |
2011. 11. 25 |
세계원재~호미곶 |
24.6 |
9시간 40분 |
조항산/ 245 |
95,700 |
합 계 |
2011.10.27~11.25 |
삼강봉~호미곶 |
98km |
42시간 53분 |
백운산 삼강봉 |
367,400 원 |
□ 산행지도 및 개념도
호미지맥 개념도
호미지맥 5구간 지도(세계원재~호미곶)/ 24.6km
(지도를 클릭하면 확대됨)
□ 산행사진
호미지맥 마지막 구간 출발지 세계원재
호미지맥 마지막 산행을 위하여 어제 저녁에 일산 화정터미널에서 포항행 고속버스로 포항으로 내려와서
포항시외버스터미널에서 다시 200번 버스로 오천버스터미널로 이동하여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지난 구간에도 이용하였던 오천버스터미널 근처의 만덕온천사우나에서 어제 저녁을 보내고
새벽에 일어나 06시 10분에 출발하는 800번 감포행 버스에 올라 세계원재에 06시13분에 도착하였다.
간단하게 산행준비를 하고 사진 촬영을 하려는데 사진기에 이상한 깜박거림이 발생하고 있어서
세계원재의 사진촬영을 멈추고 몇 번이고 재 부팅을 하여도 사진기에서는 이상한 신호를 보내고있다.
할수없이 그냥 촬영을 하고 06시 25분에 출발하려던 계획이 20분이나 지연이 되어 06시 45분에 산행을 출발하였다.
세계원재에서 출발을 하여 잠시후 2차 포장도로인 2번지방도로가 나오고
곧 이어서 조그만 "나눔텃밭 갈림길" 이정판이 있는곳에서 우마차 임도로 통점마을쪽으로 향하고...
통점마을 입구에 있는 나눔텃밭이 있는곳에 새 형상의 목형이 하늘을 향하고 있고 백구는 엄청 짖어댄다.
평화로워 보이는 통점마을을 지나는데 동네 개들이 이방인이 나타남에 일제히 엄청 짖어댄다.
통점마을을 지나 한적한 소나무 사이로 솔잎을 밟으며 조항산을 향하고...
갑자기 발동기 소리가 나서 주변을 살펴보니 군용 텐트옆에 발동기가 돌고있다.
아까 통점마을 오기전 2번 지방도로로 내려서기전에 숲속에서 해병대원들이 어둠속에 운집하여
중화기를 배치하고 훈련중에 있었는데 군 훈련을 위한 통신시설 때문에 발전병이 텐트속에 상주하는 모양이다.
항상 용기와 힘을 북돋워주는 준희님의 격려문... 우리모두 힘. 힘. 힘을 냅시다.
산행을 하면서 마루금상에 있는 이런 묘지를 가끔 보는데 안타까운 심정이다.
석곡선행 묘소가는길에서 이정표를 지나 좌측으로 진행하고...
앞쪽으로 채석장 흔적이 보이는 봉우리 뒤로 조항산이 희미하게 보이고...
드디어 포항시내의 모습과 영일만의 동해바다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고
조항산으로 오르는 마루금 좌측으로 채석장이 있어서 산이 함몰되어있다.
POSCO(포항종합제철)에서 내뿜는 허연 연기의 모습이 대한민국 산업의 본거지답게 웅장한 모습을 보이고있다.
젋은시절 34개월 2주간의 현역 군 복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두 달만에 청운의 꿈을 안고...
POSCO에 취업을 하여 한 동안 젊음을 불사르며 저곳에서 근무하였던 시절이 엇 그제 같은데 어느덧 세월은 흘려가고...
조항산의 여러가지 통신탑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조항산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떨어져서 나무잎위에 널려있다.
조항산 정상으로 향하는 시멘트 포장도로
통신탑들이 모습을 보이고...
조항산 정상은 포항항공무선표시국이 점령하고있어서 이곳에 정상 표지판이 설치되어있다.
드디어 모습을 보이는 조항산 정상
조항산은 포항항공무선표시국이 정상을 점령하고 둘레에 철책을 쳐 놓았기 때문에 저 정문에서
정상으로 갈 수가 없고 좌측이나 우측으로 우회하여 조항산을 통과해야 하는데...
현재 아래에 보이는 이 사진을 한 장 찍고 있는데 저 창문이 열리면서 경비원이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신겁니까"
"사진을 찍으시면 않됩니다." 하며 사진찍는 것을 제지하고있다.
대꾸하기도 그렇고 하여 "미안합니다" 하고 좌측의 철책을 타고 조항산을 우회하였다.
준희님의 조항산 정상표지판
하마터면 발견하지 못할번한 저 정상표지판은 철책을 빙 돌아서 정문 맞은편쯤에 걸려있다.
POSCO의 모습을 다시한번 바라보고...
흰날재 내려서기 직전에 위치한 항공항행안전시설의 철탑이 정상에 설치되어있는 202 봉우리
잠시 뒤 돌아본 202 봉우리
흰날재
31번 국도의 4차선 포장도로가 마루금을 넘어가는 흰날재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있다.
--(신라 어느왕이 이곳을 돌아보다가 봉상현(장기현의 옛 지명)에 이르렀을때 갑자기 태양이 빛을 잃고
밤과 같이 캄캄해져서 이에 놀란 왕이 일관(日官)을 불러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이에 일관이 왕에게 고하기를 왕의 몸으로 경솔하게 나 다니면서 오랫동안 궁을 비워 두었기 때문에
하늘이 크게 노하여 빛을 거두어 간 것이라고 고하니 왕이 크게 뉘우치고 급히 환궁을 서둘러서 고개를 막 넘자
태양이 다시 빛을 발하게 되어 밝은 날이 되었다는 뜻의 흰날재, 희날재, 히나리재 등으로 불려졌다고한다.
외적의 침입을 받아 피를 많이 흘렸다는 또 다른 전설에 따라 이곳이 피날재로 부르기도 하였다고 전해진다.)--
흰날재를 중심으로 이 지역에는 흔히 백토라고 불리우는 벤토나이트가 무진장 매장되어 광산업체에서 채광작업을 하고있다.
우리모두 산불조심을 합시다.
이 지역의 토질은 흔히 백토라고 불리우는 벤토나이트가 무진장 매장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런 문제로 인하여 이 지역의 산에 임도가 거미줄같이 설치되어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여본다.
양호하게 잘 관리되어있는 넓은 비포장임도
흰날재에서 마루금으로 올라서서 뒤 돌아본 저 멀리 조항산에서부터 이어져온 호미지맥의 산줄기
파평 윤씨 묘지 위치를 알려주는 이정석
월성 손씨 묘지를 알려주는 이정석도 지나고...
동산공원묘원 1km 전방을 알려주는 이정표
시멘트 포장도로를 지루하게 지나고...
동산공원묘원
동산공원묘원 정상(x197)에서 바라본 좌측 저 멀리 통신안테나가 보이는 조항산에서부터 지나온 산줄기의 모습
동산공원묘원 관리소
관리사무소와 화장실이 있고 넓은 주차장 시설이 되어있는데 하절기에는 식수 보충은 가능해 보인다.
앞쪽으로 가야할 금오산의 모습
지루하게 걸어온 임도를 잠시 버리고 잘 다듬어진 마루금으로 금오산으로 오르고...
금오산 정상
정상에는 정상표지판과 4등삼각점이 설치되어있고 유인산불감시초소가 정상에 떡 버티고있다.
간식을 좀 먹고 가려고 초소 아래에 앉으려하니 초소안에서 라디오 소리가 난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라고 불러보니 나이가 좀 드신 초소원이 창문을 열고 "무슨일입니까"고 묻는다.
"사진 한장 찍으려고 합니다." 하니 이 아저씨 "그건 찍어서 무엇하려고 그럽니까?" 라고 말하며 창문을 닫아버린다.
임도로 내려와서 잠시 뒤 돌아 바라본 방금 지나온 금오산
또 다시 비포장 임도로 진행하고...
임도 삼거리
호미곶13.8km, 동산공원묘지2.7km를 알려주는 이정목이 설치되어있는 첫 번째 임도삼거리
오늘 구간에는 이런 임도 삼거리가 모두 네 군데가 있고, 임도 사거리가 한 군데 있다.
오늘 구간은 조항산, 202봉, 197봉, 금오산, 공개산, 명월산, 우물재산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임도로 진행해야한다.
오늘 구간이 장거리는 아닌데도 우물재산을 지나서 부터는 시멘트임도와 비포장임도를 많이 걸어서 발바닥이 아플 지경이다.
두 번째 나타나는 임도 삼거리
이곳에서 잠시 임도를 버리고 212봉을 향해 산자락으로 오르고...
212봉 오르길에 잠시 뒤 돌아 바라본 지나온 호미지맥의 산줄기 모습
잡목, 잡풀이 덮여있는 212 봉우리
이곳에서 아래의 정상표지판 때문에 잠시 알바아닌 알바를 하였다.
이 봉우리는 212봉인데 이곳에다 아래의 공개산 정상표지판을 붙여놓아 잠시 혼란이 왔는데...
후답자중에 누군가가 이 정상표지판을 떼어버려야 한다. 공개산은 이곳에서 윳판재를 지나서 조금 더 진행을 해야한다.
잠시 영일만의 시원한 바다를 조망하고...
윷판재
잠시 알바를 한 212봉을 지나서 나타나는 윷판재에는 성황당 흔적의 돌무더미와 큰 바위 하나가 보인다.
공개산
준희님의 정상표지판이 설치되어있고, 앞쪽으로 20여m 더 가면 삼각점이 설치되어있다.
세 번째 나타나는 임도 삼거리
지루하게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
네 번째 나타나는 임도 삼거리
호미곶 가기전 8.1km 지점에 설치되어있는 임도 삼거리에서 임도길에 지쳐서 10분간 편안하게 앉아서 과일을 먹고 출발하였다.
명월산으로 이어지는 임도
이 임도에 어떤 차들이 다니나 했더니 저런 트럭들이 백토를 실어나르는지 연상 서너대씩 몰려다닌다.
앞쪽으로 명월산 정상의 유인산불감시초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고...
명월산
임도를 벗어나 명월산 오름길로 명월산 정상에 올라서 산불감시초소와 정상표지판을 확인하였다.
이곳에서 그냥 다시 임도로 내려와서 진행을 하였어야 무탈하였을 것을
공연히 마루금을 밟는다고 산불감시초소 뒤쪽으로 가면서 우물재산을 향하여 진행을 하여서
알바를 자초하여 오늘 호미지맥 마지막 산행에서 대형 알바를 초래하고 말았다.
명월산 정상에서 다시 임도로 내려와서 임도로 진행하였더라면 20분이면 충분했을 것을 쓸데없이
아래 계곡까지 내려가서 다시 시멘트 임도로 올라가서 임도사거리까지 1시간 10분이나 걸려서 도착하였다.
임도 사거리
이곳까지 명월산에서 그냥 임도로 진행하여 왔더라면 20분이면 충분할것을 1시간 10분이나 걸려서 도착하였다.
한 시간이 넘도록 길도없는 산중을 헤메며 헛 걸음을 하여 고생만 산나게 하고나서 이곳에 도착하니
기진맥진하여 임도사거리 긴 의자에 앉아서 찰떡파이와 사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10분 휴식후 우물재산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이곳에서 마루금을 버리고 산자락으로 우물재산을 향하여 우마차 임도로 올라서고...
이곳에서 우마차 임도를 버리고 산자락으로 접어들고...
우물재산
정상에 약간의 잡풀과 잡목이 보이는 우물재산에는 정상표지판과 삼각점이 설치되어있다.
앞에서도 거론 하였지만 세계원재에서 호미곶까지의 오늘 구간은 명함이있는 산이나 봉우리를 제외하고는
임도로 진행이 되는데, 임도가 거의 마루금이나 아니면 9부능선에 설치가 되어있기 때문에 임도로 진행하는것이 유리하다.
고금산 직전의 군부대 안내판
고금산이 가까워지자 고금산에서 군부대의 비상사이렌과 안내방송이 계속 울려댄다.
고금산쪽으로 다가서니 계속 비상사이렌과 여자음성의 안내방송이 계속 울려대고 경고를 한다.
이 안내판이 설치된 지점에서 우측 아래로 내려서려니 길이 통 길이 보이지 않아서
한 동안 능선상을 이리저리 길도없는곳을 헤메다가 가까스로 아래의 철책이 설치되어 있는 곳으로 내려서서
간신히 고금산을 빠져 나와서 몰골을 살펴보니 상의와 하의에 온통 검은 도깨비 풀바늘이 박혀 있다.
한 동안 이 도깨비 풀바늘을 떼어내느라 시간을 소비하고 오늘 구간의 마지막 고금산을 어렵사리 우회하였다.
고금산을 완전히 내려서니 앞쪽으로 호미곶이 보이며 탁 트인 광활한 동해바다가 시원하게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잠시 뒤 돌아본 어렵사리 우회하여 내려선 군 부대가 정상을 장악하고있는 호미지맥 마지막 고금산의 모습
호미곶(虎尾串)
우리나라 최동단(最東端) 호미곶은 어린시절 초등학교 다닐때부터 지도를 그리면서
토끼꼬리라고 배운 기억이 나는데 이곳은 토끼꼬리가 아니라 호랑이 꼬리이다.
지금은 초등학교에서도 호랑이꼬리라고 가리키고 있으리가 믿는데 불과 얼마전까지
흔히들 일본인들의 교육 가르침 그대로 토끼꼬리라고 가리키고 그렇게 호칭하고 있었는데...
최근 한 3~4년정도 전부터 초등학교 교과서에 태백산맥이 아니고 백두대간이 표기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적이 있는데 참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가관이 너무나도 미약한것 같다.
일본인들은 엄연히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놓고
최근엔 그것도 모자라서 중등학교 교과서에다가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표기하고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해방된지가 60년이 훨씬 넘었는데 최근에 서야 초등학교 교과서등에 백두대간이
실리고 있으니 한심한 처사가 아닌가 싶은데 역으로 일본인들 같았으면
해방된 1945년 다음해인 1946년도 초등학교 교과서에 백두대간이 실렸을것으로 추측된다.
국민들의 의식구조를 바꾸는데 가장 빠른 방법은 초등학교의 교과서에서부터 시작이 되는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나는데 우리나라의 교육계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의 학위와 명예를 지키고 높이는데는 눈에 불을 켜고 있으면서 정작 국가관적인 국민교육은
산 너머 불구경하는 꼴이 아닌가 싶은데 얼마전부터 지하철에서 우측통행을 권장하는것을 보고
저 것이 초등학교에서 먼저 교육을 시켜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하여본다.
좌측통행은 일본제국의 사무라이식 교육이 우리나라를 지배하면서 우리나라 국민학교에서
교육을 시킴으로서 모두가 좌측통행을 하는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있는데
이것은 일본 사무라이가 칼을 좌측 허리에 차고있기 때문에 우측통행을 하면 서로의 칼이 부디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좌측 통행을 교육 시켰던 것인데 지금까지 좌측통행을 하다가 최근에 들어
지하철공사에서 세계의방법 우리의방법 운운하면서 우측통행을 권장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각설하고 지금이라도 늦었지만 하나하나 바뀌어 나가고 있으니 그래도 바람직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낙동정맥 백운산 삼강봉에서 발원한 도상거리 98km의 호미지맥의 산줄기가 그 명을 다하는 호미곶의 광활한 동해바다
해안선 근처에 이러한 삼각점이 일정한 간격으로 주욱 설치되어 있다.
영해기준점
우리나라 영해를 획정하기 위하여 설치되어있다는 국토해양부에서 설치한 국가기준점
호미곶(虎尾串) 해맞이광장
한반도 최동단(最東端) 호미곶 해맞이광장은 200년 1월 1일부터 시작된 한민족 해맞이 축전이 매년 열리는 장소다.
포항시에서 새천년의 출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역사성과
새천년의 미래 지향과 상징성을 담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124억원을 들여 조성하였다.
2000년 새천년 한민족 해맞이 축전, 2002년 전국 최대규모의 축구공 제작, 2004년 2만명분 떡국만들기 체험행사,
2006년 독일 월드컵 성공을 기원하는 초대형 태극기 제작등 다양한 해맞이 이벤트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이곳은 13,920평의 부지에 상생의 손, 성화대, 천년의 눈동자, 연오랑세오녀상등이 조성되어있다.
상생의 손은 육지에 왼손이, 바다에 오른손이 설치되어 있는데, 새천년을 맞아 모든 국민이
서로 도무며 살자는 뜻에서 조성되었고 육지에 설치된 왼손 앞에는 태양과 상생을 상징하는 성화대가있다.
천년의 눈동자는 햇빛 채화기로 햇빛의 적외선을 열로 변환시키고 천년의 눈동자 안의 불씨함에는
변산반도에서 채화한 20세기 마지막 불씨, 남태평양 피지에서 채화한 지구의 불씨,
독도에서 채화한 즈믄해의 불씨, 호미곶에서 채화한 새천년 시작의 불씨를 합한 영원한 불씨가 보관되어 있다.
연오랑세오녀상은 이야기의 배경인 영일만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졌는데,
연오랑이 타고간 바위가 이곳에서 솟아 올랐다고 전해진다.
광장 진입로에는 유채꽃 단지가 있고 매년 4~5월경에 유채꽃이 활짝핀다.
광장주변에는 한국 최초의 국립등대박물관과 호미곶의 세찬 해풍을 이용하는 풍력발전기등의 볼 거리가 풍부하다.
상생(相生)의 손
한반도 최동단(最東端) 육지에 설치되어있는 좌측 손 앞에는 태양과 상생을 상징하는 성화대가 있다.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이곳 호미곶은 고산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일곱번이나 밟았던 곳이라 하는데 호랑이 꼬리형상을 닮았다고 하여 이곳을 호미곶(虎尾串)이라고 하는데
호랑이는 꼬리의 힘으로 달리며 꼬리로 무리를 지휘한다고 하여 호랑이 꼬리는 국운상승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곳 한반도 최동단(最東端) 호미곶 해맞이광장에는 바다를 향하고 있는
상생의 커다란 좌측손이 설치되어있고, 그 앞에는 상생을 상징하는 성화대가 있다.
마친가지로 바다에는 육지를 향하고 있는 커다란 상행의 오른손이 세워져있다.
이 청동 조형물의 상생의 손은 2000년 1월 1일 한민족 해맞이 축제를 기념하기 위하여 포항시에서 설치하였다.
바다에 있는 높이 8.5m의 오른손은 새 천년을 맞아 모든 국민이 도우며 살자는 뜻에서 세워졌고
상생의 의미를 담은 커다란 왼손과 오른손 두 손이 서로 같이 잘 살자는 상생(相生)을 의미 한다고 한다.
바닷가쪽으로 예쁜 꽃 마차가 보이고...
연오랑세오녀상(延烏郞細烏女像)
고려 초엽 박인량(朴寅亮)이 엮은 수이전(殊異傳)에 실렸던 것으로,
지금은 삼국유사(三國遺事)와 필원잡기(筆苑雜記)에 수록되어 전해진다.
연오랑과 세오녀는 신라의 동해 바다에 살고있던 부부인데
157년(신라 아달왕4년) 미역을 따러나간 연오랑이 올라섰던 바위(물고기라고도 한다)가
움직여 일본의 한 섬에 닿아 임금이 되었는데
남편을 찾아나선 세오녀도 바위에 실려 일본에 닿아 연오랑을 만나고 왕비가 되었다.
그때 신라에서는 돌연 해와 달이 빛을 잃게 되었다.
변괴에 놀란 왕이 일관(日官)에게 물으니 이는 해와 달의 정(精)이 신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탓이라고 아뢰었다.
왕이 급히 사신을 보내어 두 사람을 찾으니 연오랑은 하늘의 뜻이라 돌아갈 수는 없으나
세오녀가 짠 세초(생사로 가늘게 짠 비단)를 가지고 돌아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라고 하였다.
그대로 하였더니 다시 해와 달이 밝아졌다고 하는데 이 후로 제사 지낸곳을 영일현(지금의 영일만)이라고 하였다.
전국 최대의 가마솥
2004년 1월 1일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면저 뜨는 이곳 호미곶에서 개최된 한민족 해맞이 축전행사에
참여한 관광객들이 새해 아침에 직접 떡국을 꿇여먹는 체험행사용으로 특수 제작된
가마솥으로 20,000명이 먹을 수 있는 4톤 용량으로 내부는 스텐레스로 외부는 강관으로 제작된
지름3.3m, 깊이1.3m, 둘레10.3m의 규모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가마솥으로 포항시에서 설치하였다.
무원마을
☞ http://blog.daum.net/cho24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