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이륙산케-재경경남중고26산행모임
 
 
 
카페 게시글
나누고 싶은 글/음악/그림 스크랩 시인 이원규 인생의 장소 지리산
새샘 박성주 추천 0 조회 97 12.02.15 22:42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나는 지리산에 뛰노는 한 마리 산짐승

<2008년 10월 3-4일 성삼재에서 중산리까지 지리산 종주 때 반야봉에서 새샘이 바라 본 천왕봉 방향의 운해>

 

이원규는 지난 14년 동안 지리산 기슭에서만 이사를 일곱차례 했다. 구례, 남원, 함양, 하동을 옮겨 다녔으니 이제 산청만 남았다. 그는 지금 경상도와 전라도가 만난다는 화개장터 남쪽, 하동군 화개면 덕은리에 살고 있다. 마을 안 언덕 맨 끝에 서 있는 집인데, 지적도에 길을 물고 있지 않은 땅 맹지盲地여서 숨듯 들어앉아 있다. 파란 감이 비바람에 떨어져 뒹구는 마당에 서니 섬진강이 한눈에 든다. 방 셋에 마루, 너른 부엌을 들인 기와집은 그가 살아온 지리산 집 중에 제일 번듯하다.

 

이원규는 빈집 구하기 달인이다. 우편집배원에게 김치 한 가닥에 막걸리 한잔 건네며 "그 마을 할머니 돌아가시면 알려달라"고 부탁한다. 그 댁 초상일을 1박2일로 거들어주곤 "그냥두면 폐가가 되니 내게 맡겨라"며 월 몇만원에 빌린다. 이젠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멀리서 빨래줄에 뭔가 걸린 것만 봐도 빈집인지 아닌지 금방 안다. 지금 집도 어느날 강 건너 광양매화마을 앞길에 멈춰섰다가 그 먼거리에서 점 찍어뒀던 집이다. 집주인이 세상을 뜬지 얼마 안 됐다는 느낌이 전해왔다. 반풍수가 따로 없다.  이런 집에는 대개 돌아가신 분들이 쓰던 가구도 그대로 있어서 이고지고 이사할 필요도 없다. 맨몸만 오면 그만이다. 그는 "집을 못 가지거나 안 가지거나 버림으로 해서 얻은 집과 얻은 것들이 훨씬 더 많았다"고 했다. 그만큼 몸과 마음이 가벼워 날래다는 얘기다.

 

대신 가장 큰 재산이 바로 오토바이다. 열한 대를 갈아치운 끝에 장거리용 중고 BMW와 산악용 스즈키를 장만했다. BMW는 먼길 다닐 때, 산악오토바이는 지리산 오르내릴 때 탄다. 임도 끝까지 오토바이로 갔다가 정상이나 계곡에 들면 지리산에서 하루 안에 못 다녀올 곳이 없다.

 

그는 계곡에서 책을 읽으면서 한나절을 보낸다. 그 골짜기를 며칠 안보면 또 궁금해진다. 그러면 아예 야영을 하며 하룻밤을 지내기도 한다. 정상에 서서 먼 산과 사람 사는 마을을 내려다보며 시공을 초월해 하루해를 보내는 시간도 행복하다.

 

중앙일보 기자를 사표내고 집과 가족, 모든 걸 청산하고 새벽 구례역에 내린 뒤 중고 오토바이를 한대 사서 아는 스님이 비워둔 수행처로 들어갔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내리 잠만 자다 일어나면 주먹밥을 싸 들고 산짐승처럼 지리산 골짜기를 헤매고 다녔다. 이를 통해 그는 스스로를 비우고 정화했다. 이듬해부터 구례 피아골, 남원 실상사, 함양 칠선계곡, 구례 문척면 마고실마을과 문수골을 돌며 빈집이나 절방을 얻어 살았다. 한번 이사할 때마다 시집이나 산문집을 한권꼴로 냈다. 수박향 은어회에 막걸리 한잔, 선유동계곡에서의 알몸 목욕, 달밤의 투망질들이 자연스럽게 시가 됐다. 이웃집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투박한 음식일망정 꼭 감잎 두 장을 곱게 덮어 집 마루에 놓아주시던 마음 씀도 그대로 글이 됐다. 할머니는 먼지 타지 말라고, 깨끗하고 정갈하게 감잎에 은어도 싸주고, 물김치도 담가주셨다. 그는 "마음의 분憤이 치유되고 가라앉으면서 시와 글이 나오더라"고 했다.

 

이원규는 산중에 밥상을 차리다 보면 자연스레 1식3찬, 소식小食을 하게 된다고 했다. 밥상을 마주하면 늘 보던 밥알도 더 선명하게 보인다. 산나물 반찬이 어디서 났는지도 훤하게 보인다고 했다. 돈을 벌지않아도 쓸일이 별로 없으니 굶어죽을 일도 없고, 군불 지피는 토방에 살다보니 보일러 기름값도 필요 없다. 먹을거리는 뜯어먹고 얻어먹고 살다보니 도시 생활비 10분의 1도 안 든다. 그는 스스로의 일상을 가리켜 "꽉 찬 결핍, 텅 빈 충만"이라고 표현했다.

 

이원규는 피아골 살면서 아호를 '피아산방'이라고 지었다. 옮겨 사는 집마다 그 이름을 내걸었다. 어차피 내 집도 아니니 '너彼와 나我 경계 없는 집'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의 집엔 대문도 자물쇠도 없다.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이 찾아든다. 여름 휴가철이면 손님이 너무 많아 아예 집을 비워버린다. 그러면 먼저 오는 사람이 임자다. 누구든 강아지 밥 챙겨주고 나중에 떠나면서 청소만 잘해놓으면 되는 것이다.

 

이원규는 생명운동도 벌이며 지리산과 낙동강 2만리를 걷고 오토바이로 전국 50만 킬로미터를 달렸다. 지리산이 너무 좋다 보니 우리 산하가 더 좋더라고 했다. 작년 가을부터는 사라져 가는 비포장도로 2천 킬로미터를 틈틈이 오토바이로 돌고 있다. 언제가 개발에 밀려 사라질 그 길과 고개들을 일일이 기록하고 있다.

 

그는 또 틈날 때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남도 곳곳에 서 있는 신목神木들을 보러 다닌다. 뱀사골 와운리 천년송을 비롯해 남해 창선의 5백년 된 왕후박나무, 송광사 천년 쌍향수들이다. 그는 나무가 품은 천년의 기억들, 그 침묵의 소리에 귀기울인다. 나무들의 온몸에 입력된 지수화풍地水花風의 시절들을 엿본다. 어쩌다 뿌리를 베개삼아 하룻밤이라도 잠을 자는 날이면 온몸에 수많은 나이테가 들어서는 듯하다.

 

이원규는 지리산 전체를 큰 마을, 생명공동체로 본다. 그런 지리산에 한때 모텔, 펜션, 찻집, 식당 바람이 불었다가 바람이 지나가고 다시 차분해졌다. 도시 간 자식들이 돌아오면 예전엔 부끄러운 일로 치더니 이젠 귀향, 귀농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 특히 30~40대가 많다. 진정한 행복을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면서 고향을 지키던 노인들도 생기를 되찾았다. 좋은 일이지만 이원규는 빈집 구하기가 점덤 더 어려워진다.

 

그는 지리산이 "어설픈 도시보다 기회가 더 많은 땅"이라고 했다. 같은 돈을 벌어도 씀씀이가 적고 푸성귀는 갈아먹으니 이곳 생활이 훨씬 풍요롭다. 귀농한 사람들도 농약을 덜 치고 생태에 관심이 많다. 아토피가 상징하는 잘못된 도시의 삶에서 거꾸로 배운 새 삶은 양식들이다.

 

그는 지리산 사는 예술인, 전문가들과 함께 2008년 지리산학교를 열었다. 시문학, 사진, 도자기, 천연염색, 퀼트, 목공예에 산길 걷기까지 열두개 과에 학생이 1백명을 넘는다. 주로 귀농자들이고 공무원과 학생도 있다. 석달 과정에 15만원, 변변한 교실 하나 없지만 가르치는 이도 배우는 이도 즐겁다.

 

이원규는 스스로 지리산을 찾아든 것을 두고 "한없는 추락을 자처한 내 인생의 마지막 번지점프"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사실 나처럼 사는 게 가장 쉽게 사는 것"이라고 했다. "누구는 나를 보고 지리산 시인이라거나 지리산 바람의 아들이라 하지만 사실은 그저 지리산에 기대어 생의 한 철 잘 노는 한 마리 산짐승일 뿐이지요"

 

이원규는 적어도 일흔은 넘게 살아야 할 것 같단다. 지리산 큰 골짜기만 서른 개쯤이니 다 살아보려면 한 해 한 번 이사해도 30년은 걸리기 때문이다. 그는 "지리산에 오려거든 등산이 아니라 입산하러 오라"고 이른다. 등산은 정복과 교만, 입산은 자연과 한몸 되는 상생의 길이라 했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 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은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이원규 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시인이자 환경운동가인 이원규는 1962년 경북 문경출생으로 1984년 월간문학에 '유배지의 풀꽃'으로 데뷔하여, 1989년 실천문학에 연작시 '빨치산 아내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1990년 첫시집 '빨치산 편지', 1993년 시집 '지푸라기로 다가와 어느덧 섬이 된 그대에게', 1997년 '돌아보면 그가 있다', 2003년 '옛 애인의 집', 2004년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 2008년 '강물도 목이 마르다', '지리산 편지',  2011년 '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 등을 발표. 제16회 신동엽창작상, 제2회 평화인권문학상 수상.

 

이 글은 오태진 글, 내 인생의 도시(2011, 도서출판 푸르메)에 실린 글을 발췌해서 옮긴 것이다.

 

2012. 2. 15 새샘

 
다음검색
댓글
  • 12.02.16 11:18

    첫댓글 지리산의 빈집에서 한 일주일쯤 아궁이에 불때며 지내다 왔으면 싶다.

  • 작성자 12.02.16 11:27

    동감!!!

  • 12.02.17 09:26

    지리산에 오시려거던 등산하러 오시지 말고 입산하러 오시라...시인의 말에 고개가 절로 숙여지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