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마당에서 보았던 개나리가 꽃망울을 터트렸던데 바나나vs개나리 커플룩이 스튜디오를
세팅했네요. 오늘 특별 게스트는 최 대림(남, 6권의 책)입니다. 그가 들고 온 책 중에
하나가“여자란 무엇인가? “인데 50만부나 팔렸지만 기독교 쪽엔 안티를 만든 책입니다.
제가 대충 훌 터 봤더니 그냥 인문학 책입니다. 다소 원색적인 표현으로 자0,보0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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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서 점잖 치는 않았지만 나름 재미도 있고 학자적 전문성을 갖춘 책입니다.
보고 싶은 사람은 한 번 읽어보시라. 지난주 강의를 대충 서 머리 해 보면 중국의
근대사를 망친 인간은 강생이랍니다. 시진 핑에게 있어서 하방 생활7년을 견디게 한
부친의 좌우명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초근목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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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 쉰을 반역죄로 숙청한 강생은 여전히 쳐 죽일 나쁜 놈이고 4천만을 아사시킨
대약진 운동은 공짜 밥이 불러온 비극이랍니다. 그밖에 송 오브 아리랑에 담긴 김 산과
작가 님 웨일즈의 러브스토리, 장 예모 감독은 누구인가? 붉은 수수밭의 저자이며
베이징 올림픽 총연출을 맡은 장본인이랍니다. “아비정전‘에서 맘보춤을 추는 장 국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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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소매만 입었어도 멋있네요. 재민이 놈 지가 실제로 유 덕화를 만났다는데 믿어 못 믿어?
이 소룡의 절권 도를 배운 조승연의 돌려차기 쿵푸 시범. 내 참, 그 정도는 나도 합니다.
지난 시간 나온 만리장성은 어느 시대에 누가 쌓은 것인가? 그 정도야 알지요. 진시황.
그러나 바로 이것이 중국을 바라보는 오류 중 하나입니다. 만리장성은 춘추 전국 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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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나라들이(제, 조, 연) 이미 토성을 쌓은 것을 진시황 때 연결만한 것이라네요.
그 후 주나라, 당나라 때 보수를 거쳐 명나라에 와서야 완성을 했으니 도합200년
동안 300만 명이 동원되어 인민의 피를 빨아먹은 수치스런 역사의 유물이랍니다. 헐.
도르곤은 홍타이지의 동생인데 청조를 굳건하게 만든 건국영웅으로, 볼모로 잡혀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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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를 교육시켰습니다. 소현세자는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청에 항복할 때
볼모로 청에 끌려가 9년 동안 억류되었던 조선 제16대 왕 인조의 첫째아들입니다.
청이 만리장성 너머 북경에 입성할때 (1644년) 소현세자를 데리고 갔다고합니다.
"앞으로 너는 조선의 왕이 될 텐데 이런 장면을 봐라" 그러나 광활한 대륙을 보며 자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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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는 환국 두 달 뒤 의문사 합니다. 청나라 제4대 황제 강희제 (재위 1661~1722)는
중원을 정복했으니 이제 만리장성을 보수하자는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만리장성이 있기 때문에 북방민족이 중국을 못 쳐들어온 적이 있냐. 만리장성 수리하느라
국력 낭비해서 명나라가 망했다. 성 안과 바깥을 구분은 것은 중국이 아니다. 만리장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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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배치하는 것은 병력분산, 돈 낭비다." 한마디디로“미친 개소리하지 말라면서
우리나라 국방정책을 신랄하게 깠습니다.
“만리장성 보수는 군대 배치, 병력 분산, 돈 낭비 등 헛것이다!”
이 정도로 세게 말하려면 자기 학문에 대한 깊은 인식이 있어야겠지요.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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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은 허물고 깨야지 개성공단 철수나 하고 냉전시대로 가면 도대체 어쩌자는 것이냐?
쓸데없는 데에다 신경 쓰다가 훅 간 사람이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어디 한 둘이냐?
오우, 칠성사이다! 다짜고짜 2007년 중국 상황은 제17차 당 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부터
권력을 둘러싼 두 지도자(시진 핑, 보시라이)의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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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라이의 부친인 보이 보는 공산주의 체제에 충실했는데 문화 혁명 때 유소기, 등소평
계열로 숙청되었다가 복권된 인물입니다. 보시라이의 어머니가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그
충격으로 자살을 하는 바람에 원한과 울분에 휩싸인 보시라이는 북경 고급간부 자녀 출신
홍위병 "연동"을 조직하였고 "연동" 홍위병은 "강청 계열" 홍위병과 맞서면서 세력이 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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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 1967년 보시라이는 감옥행을 가면서 정강이뼈가 보일 정도로 엄청난 고문을 당합니다.
이때의 고생으로 보시라이는 "문화혁명 때 니들이 당한 건 약과야" 라고 했다나봐요.
저는 고문 하면 백 기환 선생님 생각이 납니다. 1975년 문화혁명 시기에는 대입시험이 없다가
1977년에 중국 대학입시가 부활했고 78학번은 대입시험을 거친 엘리트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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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라이, 리커치앙이 78학번 입니다. 보시라이는 북경대 역사학 학사, 중국사회과학원
석사,1992~2000 대련시 시장,2001~2004 요녕성 성장, 2004~2007 상무부 부장을 역임
했고 상무부 부장 (통상부 장관 역할) 재임 시절 일을 아주 엑설런트하게 했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조신하고 다소곳한 시진 핑에 비하여 보시라이가 우위를 지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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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유망한 보시라이가 왜 제17차당대회 정치국상무위원이 되지 못했을까?
그는 왜 권력서열에서 밀려났나? 중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누구일까? 모택동?
등소평? 아니다. 중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축을 형성한 인물은 호요방(1915~1987)입니다.
그러나 11, 12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로 80년대 민주화 시위 진압 거부로 실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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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등소평은 "개혁개방은 되지만 사회주의 원칙을 바꾸는것은 안된다" 면서 이러한
흐름에 결정적 쐐기를 박는데 호요방을 실각시킨 앞잡이는 바로 등소평과 그의 심복 보이 보.
보이 보와 다이 다이였던 시종쉰은"호요방 생각이 옳다! 호요방에 대한 모든 판결은 부당하다!"
고 반대하는 바람에 시종신도 아웃되고 호요방은 명령거부로 실각 후 의문사하지요(19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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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요방 추도집회를 계기로 천안문 민주화의 불길이 중국전역에 타오릅니다.
등소평은 1989년 6월 3일~4일 인민해방군을 동원하여 무차별 발포로 시위를 진압했고요.
이번엔 중국에서 광주민주항쟁을 따라한 것 같습니다. 곧바로 등소평은 천안문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개혁개방을 추진합니다. 반면 강택민은 그 흐름에 급히 따라갈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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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합니다. 보이보는 등소평을 반대하는 강택민을 제거하라는 뜻으로 오해를 하고 강택민을
쳤으나 원로들과 당의 중재로 마무리됩니다. 결국 강택민은 개혁개방의 흐름에 동참하지만
보이보에 앙금이 있고 당연히 아들 보시라이에게도 대를 이은 미운털이 박힙니다.
보시라이는 2007년 12월 1일 중경시 당서기로 부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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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정의로운 우리 민족의 정도를 구현하겠다."며 마피아(따헤이, 흑, )를 조지기
시작합니다. 박통의 깡패소탕이나 전두환의 정의 사회 구현, 노태우의 범죄와의 전쟁 등은
아마도 보시라이의 “따헤이‘를 벤치마킹한 것 같습니다. 숙명의 라이벌 보시라이는186cm의
몸 짱 얼 짱으로 머리 좋고 스피치 끝내주는 당대 명불허전인데 시진 핑vs보시라이의 대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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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보시라이가 지고 맙니다.
문화혁명 시절 인민에 대한 사랑을 배웠던 시진 핑에 비해, 권력을 향한 원한과 증오를
배워가는 보시라이가 쇠락하는 바람에 시진 핑이 당 서열6위가 될 수 있었답니다.
당 서열 7위가 리커치앙 이고 서열 5위까지는“지는 해”들이니까 당 서열6위가 실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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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시 후진타오의 치세 5년의 기간입니다. 중국 8대 혁명 원로인 보이보(시종 쉰과
동급) 전 부총리의 아들이자, 영웅이었던 보시라이였지만 운명의 신이 서서히 기울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2011년, 그의 아내 ‘구카이라이(북경대 법학과,법호사)가 영국인
사업가 청부살인 사건에 연루되면서부터 보시라이의 배는 마침내 침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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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보시라이의 심복 ‘왕리쥔
(중경시의 포청천)’의 배신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모든 것이 자업자득이라고 봅니다.
어느 날 보시라이가 28층 호텔 전 층을 전세내서 있을 때 자신의 아내가 미국인 닐 헤이
우드와 내연의 관계를 알게 됩니다. 이 역시 보시라이가 내 놓고 바람을 피우니까 맞바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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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웠을 개연성에 무게를 둡니다. 어쩠거나 닐 헤이우드의 도움으로 보시라이의 아들은
영국의 옥스퍼드와 하버드를 거쳐 중요인물이 되었습니다. 부전자전이라고 아들놈도 별별
개지랄을 다하고 다녔다는데 아들놈을 빌미로 닐 헤이우드가 내연녀 구카이라이를 협박하여
거액을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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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이 돈 세탁(흰 장갑)도 했고 기업 브로커였다고 하니 협박할 명분은 충분한 것 같습니다.
근데 닐의 철봉이 시원찮았는지 몰라도 구카라이는 정부를 구해주지 않고 죽여 버립니다.
사건 2시간 후 알 콜 중독 사고를 위장 화장을 시켰는데 그 사건은 부하들에 의해 왕리쥔
에게 보고가 되었고 보시라이에게 최종 보고가 되었습니다. 지위체계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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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었는데 보시라이가 오른팔인 왕리쥔을 오해하여 권력을 빼앗아버리면서 일파만파 됩니다.
도올 샘 왈, 일단 부시장으로 승격시켰지만 두려움을 느낀 왕리쥔이 부 시장 직을 수락한 후
바로 미 총 영사관으로 도피해버립니다. 그곳에서 증경 시장 황 기범 이 중재해보았으나
설득에 실패하면서 보시라이 스캔들’은 아이러니 하게도 폭력조직 비호, 뇌물 수수, 여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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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혐의로 문강을 사형시켜 인민의 사이다로 등극한 보시라이의 발목도 잡습니다.
너무 억울할 것 없습니다. 원래 조폭은 부하에게 잡아먹히는 것이니까?
그가 재판장에서 그랬답니다. 나는 나의 부하와 가족을 잘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재판이 공정하다고 생각합니다. 보시라이와 임 화수는 사이즈가 다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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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차돌 상: 알베르토
“인생이란 걸어가는 그림자/자기가 맡은 시간만은 장하듯이 무대 위에서 떠들지만/
그것이 지나가면 잊혀지는 가련한 배우일 뿐. (맥베스)
2016.4.4.mon.악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