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얼마나 필요할까 7 - 시작이 반이다 2

[황골농장]

 <음. 3천평이라. 다수확품종으로 평당 1키로만 나와주면 3천키로, 무농약콩이 5천원에 팔리니 매출 천오백이로군. 농사비용 삼백 잡으면 천이백은 떨어지겠군. 평당 1키로는 못한다고 해도 8백그램 정도만 나와주어도 떨어버리고 돈 천만원은 떨어질 거야. 으싸 신난다 헤헤>

꾼은 신났다.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오더니 헤헤 소리가 밖으로 샜다.

“이 이가 지금 뭐하는 거야. 무슨 약 먹었어요?”

“아니야. 그저 그런 게 있어.”

꾼은 아내가 볼세라 연필로 끄적거렸던 종이를 재빨리 접어 감추었다. 어차피 아내가 봐야 뜯어말릴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띠리링

“그 밭 같이 하기로 결정했다 이상. 일단 밭구경 하러갈께.”

“그럼 밭주인한테 그 밭 부친다고 얘기할게. 내일이 토요일이니 오후에 와.”

덜커덩 텅 덜커덩 텅텅

시멘트 포장도로가 끝나니 돌이 툭툭 불거진 산길을 올라갔다. 차가 많이 다녀서인지 풀은 전혀 없었지만 기어를 2단으로 놓았는데도 고물트럭이 툴툴거렸다. 개울바닥을 사이에 두고 20도 정도의 산길이 이어졌다.

우당탕 우당탕 갤갤 휴우

개울바닥에서 탄력을 받은 트럭이 퉁탕거리며 힘겹게 언덕을 올라가니 넓은 밭이 펼쳐져 있었다. 밭이 경사가 약간 져 있고 아래에서 보니 밭끝이 저멀리 산밑에 놓여져 있었다. 오월 중순인데도 봄풀의 푸름 때문인지 한층 더 넓어보였다. 오년 전 동생이 고추농사를 벌였을 때 고추 따주러 와 보고는 처음 가본 밭이었다.

“이 쑥들을 먼저 잡아야 농사가 되겠네. 이 돌은 어쩌고.”

“삼사 년을 묵었으니 쑥천지가 되었지. 일단 풀약을 쳐서 잡은 다음 밭을 갈 거야. 오늘은 풀약을 칠테니 줄을 잡아 줘. 제초제를 치니 금년에는 어차피 무농약 농사는 글렀어. 그래도 이행성제초제(잎에서 흡수되어 뿌리부터 죽이는 약제)는 분해가 잘 된다고 하니 내년 토양검사에서 나오지 않을 거야.”

동생은 자동분무기로 약을 치고 꾼은 줄을 잡아주는 보조가 되었다. 두 시간 만에 제초제 살포가 끝났다.

“이제 됐어. 형, 이주 후에 콩심으러 와.”

“알았어. 오늘 수고했으니 맥주한잔 사 줄게.”

작업일정과 지시는 동생에게서 나왔다. 동생이 하자는 대로 한다고 누가 보면 배꼽잡을 일이나 농사초보 주제에 형이라고 우길 수는 없는 일이다. 꾼아 억울해도 할 수 없다.

<규모가 늘어났으니 손으로 파종할 수는 없잖아. 기계를 사야겠다.>

다기능파종기를 구입했다. 37만원짜리로 작은 상추씨부터 굵은 서리태까지 파종이 된다는 기계다. 이 넘은 사고부터 머리 아팠다. 종자바가지는 쉽게 갈아끼웠는데 간격조절을 하려니 종자바가지 2개당 1개를 벙어리로 갈아끼워야 했다. 모두 산산이 분해해서 조립해야 하는데 뜯어놓고는 조립이 난감했다. 

꾼에게 슬픈 구석이 있었으니 일찌기 생선이름 비슷한 별명을 달고 살았다. 아침저녁으로 가던  길은 잘 찾아가지만 가보지 않았거나 어쩌다 가는 길은 약도보고는 절대 찾아가지 못했다. 길치라고 했지. 그래도 길치는 극복할 수 있는 것이 길을 모르면 물어보고 찾아갔다. 가다가 헤깔리면 또 행인에게 물어보면 되니까, 모르니까 물어보는 것이고 많이 물어본다고 해도 국가에서 세금징수하는 것도 아니고 길 가르쳐 주는 사람이 수수료 달라는 소리 안하니 돈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요즘은 위성에서 안내해 주는 네비를 쉽게 구할 수 있으니 길치는 더 이상 못생긴 생선이름은 아니다.

정말로 지겨운 생선은 기계치다. 꾼의 집에 못박을 일이 있으면 직접 하지 못하고 아내를 시켰다. 목재에 박는 못이야 망치로 몇 번 치면 잘 들어가지만 요즘 벽은 시멘트 벽이니 큰크리트못을 박는 일은 보통이 아니다. 조금 치면 가만있다가도 망치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갔다 하면 튕겨나갔다. 옆에 누가 있었다면 눈알 빼먹기 십상이다. 보일러 배관이 터져도, 수도꼭지 갈 일이 생겨도 직접 하겠다고 시도하다가도 망겨먹고 부러뜨리는 고생을 한 후 업체를 부려먹는 인건비 외에 망가진 부품 재료비만 더 들어간 후로는 수리할 일이 있으면 무조건 줄행랑쳤다. 아 기계치의 슬픔이여. 할수없이 인근 대리점에 찾아가서 조립해 왔다. 다행스럽게도 구입한 지 얼마되지 않았다고 대리점에서 공짜로 조립해 온 것이 꾼의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오월 하순이 되어 꾼이 장모와 파종한 밭에 호밀이 한달 반동안 거의 40센티정도로 보기좋게 자라 있었다. 누군가의 글에 설명한 것처럼 봄에 뿌린 호밀은 하트모양으로 자란다고 하더니 정말이었다. 아침저녁으로 가보면 뻐꾸기가 그렇게 구구대더니 꾼을 부르는 소리였나.

<이젠 콩심으러 가야지.>

8부에 계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