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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23. 10. 1.~3.(일~화) - 음력(8. 17.~19.), 일출 06:24~일몰 18:12
●산행지: 운달지맥 1구간 졸업
●산행코스: 여우목재-대미산(1,115.1m)-여우목재-산불감시초소-872m봉-911.9m봉-839.6m봉-국사봉-마전령-거르목산-장구령-963.7m봉-장구목-전망대-운달산(1,103.2m)-1,068m봉-석봉산-855.5m봉-조항령-791m봉-함몰지-806m봉-단산별빛전망대-활공랜드-스카이힐천문대-956m봉-단산(959.4m)-배너미산-신선대(선암산)-새터재-돌리네습지전망대-347m봉-2층팔각정-370.2m봉-358.5m봉-장구매기산-달고개-381.1m봉-321.8m봉-한두리재-해돋이광장-352.9m봉-금사재-작은재-352.7m봉-348.2m봉-월방산갈림길-월방산(360.1m)-자실고개-수루재-약천산(210.8m)-산양단지진정사거리-산업단지복지회관-경북선철로-왜곡재-156m봉-농로삼거리-142m봉-수로배수갑문-115m봉-924번지방도-영순초교입구-사근삼거리-경주김씨선화당-밤고개-236.2m봉-갈림길-천마산(274.4m)-222.3m봉-큰고개-199.5m봉-달봉산-용화사-금천/낙동강 합수점
●먹거리: 생수1.8리터, 튀김건빵1, 별사탕뽀빠이1, 반건조망고1, 단백질바1, 사탕10
●준비물: 하계텐트, 윈드스토퍼, 바람막이, 상의, 모자, 장갑, 메트, 스틱, 헤드랜턴, 구급약, 피부연고, 부직반창고, 충전지3, 충전짹2, 손수건, 면수건, 휴지, 물티슈, 팔토시, 말방울, 비닐우의, 안대, 귀마개, 양말, 띠지15
●거리: 약 64.9Km
●소요시간: 26.47h
●누구랑: 나홀로
●경비: 시외버스13,000원, 김밥6,800원, 택시26,000, 짬뽕8,000원, 복지회관4,000원, 시외버스19,000원, 짜장6,000원
●날씨: 9~23, 첫날 맑고, 둘쨋날 오후 흐려짐
●산행경과:
* 10. 1.(일) 6.3km
- 21:02 : 여우목재
- 21:43~23:02 : 돼지봉(1,040.4m)/ 여우봉
- 22:18 : 대미산(1,115.1m)
- 23:35 : 여우목재
* 10. 2.(월) 29.3km
- 06:00 : 여우목재 출발
- 06:30~50 : 삼거리
- 06:40 : 912.5m봉
- 07:13 : 839.6m봉
- 07:38 : 국사봉
- 08:00 : 마전령
- 08:34 : 거르목산
- 09:22 : 장군봉(963.7m)
- 09:32 : 장군목
- 10:25 : 운달산(1,103.2m)
- 11:03 : 석봉산(985.7m)
- 11:49 : 조항령
- 13:20 : 861m봉/ 활공랜드
- 13:34 : 단산(959.4m)
- 14:35 : 배너미산(810.6m)
- 14:50 : 신선대(798m)
- 15:40 : 새터재
- 16:05 : 돌리네습지
- 16:46 : 주차장
- 17:39 : 358.5m봉/ NO109철탑
- 18:50 : 달고개
* 10. 3.(화) 29.3km
- 05:57 : 달고개 출발
- 06:27 : 381.1m봉
- 07:24 : 360.6m봉
- 07:37 : 해맞이광장
- 08:30 : 금사재
- 08:44 : 작은재
- 09:05 : 352.7m봉
- 09:26 : 348.2m봉
- 09:53 : 월방산(360.1m)
- 10:03 : 산신각
- 10:27~47 : 봉천사
- 11:07 : 수루재
- 11:42 : 약천산(210.8m)
- 12:00~37 : 진정사거리 점심
- 13:00 : 왜곡재
- 13:44 : 새발재
- 13:56 : 청림조경삼거리
- 14:13 : 사근동
- 14:36 : 밤고개
- 15:09 : 236.2m봉
- 15:44 : 천마산(274.4m)
- 16:23 : 큰고개
- 17:05 : 달봉산(236m)
- 17:16 : 양회임도
- 17:46 : 삼강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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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달지맥(雲達枝脈)이란?
백두대간의 대미산(1,115.1m)에서 남쪽으로 분기해서 여우목고개(618m)를 지나 911.9m봉에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국사봉(943m), 마전령(661.7m), 거르목산(926m), 운달산(雲達山, 1,103.2m)으로 이어지고 계속 남진하다가 석봉산(985.7m)을 지나면서 고도를 낮춘다. 조항령을 지나 활공장으로 변한 866.9m봉을 들어올린 후 남쪽 단산(959.4m), 배나무산(810.6m), 장구매기산(310.7m), 달고개, 월방산(360.1m), 약천산(210.8m)에서 천마산(274.4m)으로 이어진 다음 달봉산(236m)을 지나 금천이 낙동강에 합수되는 문경시 영순면 달지리 삼강나루터(삼강교)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8.8km인 산줄기이다. 운달지맥 서쪽에는 신북천, 조령천, 영강(潁江) 등이 낙동강으로 흘러가고, 동쪽에는 하리천, 금천 등이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내성천과 영강은 낙동강의 지류로 길이는 각각 106.3km, 66.2km이며 내성천에 합류하는 금천은 42.9km이다. 금천과 내성천이 낙동강에 합류되는 삼강나루터 부근에서 문수지맥, 국사지맥, 운달지맥 등 3개 지맥이 각각 마주보면서 그 맥을 다한다.
♤ 운달지맥 개념도
♤ 운달지맥을 지나는 동네
* 제천시(堤川市, 덕산면)
충북 동북부에 있는 시로 강원도·경북·충북 3개도의 접경지역으로 중앙선·충북선·태백선이 교차하는 지역이다. 관광지로는 의림지와 충주호, 월악산국립공원이 대표적이며, 매년 여름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개최된다. 제천시는 본래 고구려 사열이현(沙熱伊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청풍으로 고쳐 내제군(奈提郡)의 영현이 되었다. 1018년(현종 9)충주에 속하였다가 뒤에 감무를 두었고 1317년(충숙왕 4) 이 고을의 중 청공(淸恭)이 왕사(王師)가 되었으므로 지군사(知郡事)로 승격하였다. 1660년(현종 1) 부(府)로 승격되었으며, 1895년(고종 32)에 군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제천군에 병합시켜 읍내면(邑內面)이라 하였다가 1917년에 청풍면으로 고쳤다. 지명의 유래는 이곳의 산천경개가 빼어나 남도의 으뜸으로 쳐, 이에 따라 청풍명월(淸風明月)이라 한 데에서 따온 것이며 조선시대에는 진산(鎭山)인 인지산(因地山) 부근의 남한강유역에 한벽루(寒碧樓)가 있어 많은 시인 묵객이 즐겨 찾았던 곳이다. 군사적으로는 오현봉수(吾峴烽燧)가 있어 동쪽으로 단양군 소이산봉수(所伊山烽燧)와 서쪽의 충주 심항산봉수(心項山烽燧)에 연결되었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내토군으로 불렸다가 신라의 삼국통일 후인 757년(경덕왕 16)에 내제군으로 개칭했으며, 고려초에 제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으로 1413년(태종 13)에 제천현이 되어 조선시대 내내 유지되었다. 제천의 별호는 대제·의천·의원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6년 충청북도 제천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때 근좌면·근우면·읍내면·백운면·성산면·송학면으로 개편되었다. 이때 충주군 덕산면과, 청풍군이 폐지되면서 청풍군 8개면이 5개면으로 통폐합되어 제천군에 편입되어 면적이 크게 넓어졌다. 이 시기에 통합된 읍내면이 1917년 제천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40년에 제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중앙선과 태백선이 통과하여 교통의 요지가 되면서 강원도와 충청북도 내륙을 연결하는 제천의 역할이 더욱 커져 1980년 시로 승격, 분리되고 나머지 지역은 제원군으로 바뀌었다가 1991년에 다시 제천군으로 환원했다. 1983년 제천시는 당시 제원군의 금성면 일부를 편입했다. 1995년 전국 행정구역 개편으로 제천군과 제천시가 다시 하나로 통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도농통합시인 제천시를 이루었다. 시의 전체적인 지세는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지형이다. 영월지맥이 시의 북부를 지나고, 백두대간이 경상북도와 경계를 이루며 시의 남부를 지나고 있어 북쪽과 남쪽이 높고 서쪽과 동쪽은 상대적으로 낮은 지형을 이루고 있다. 시의 동쪽에는 금수산(錦繡山, 1016m)을 비롯하여 동산(東山, 896m)·가창산(歌唱山, 820m)·작성산(鵲城山, 771m)·마당재산(661m)·무등산(無謄山, 620m) 등이 솟아 있으며, 서쪽에는 십자봉(985m)·시루봉(734m)·오청산(五靑山, 655m)·천등산(天登山, 807m)·대덕산(大德山, 580m)·마미산(馬尾山, 601m)·등곡산(嶝谷山, 589m) 등이 있다. 그리고 북쪽에는 백운산(白雲山, 1,087m)·구학산(九鶴山, 983m)·감악봉(紺岳峰, 886m)·석기암(石機巖, 906m)·청룡산(靑龍山, 575m)·송학산(松鶴山, 819m) 등이, 남쪽에는 월악산(月岳山, 1,093m)·대미산(大美山, 1,115m)·문수봉(1,162m)·매두막(1,100m)·만수봉(萬壽峰, 983m) 등의 높은 산들이 감싸고 있으며, 중앙에는 국사봉(國師峰, 632m)이 있다. 단양군에서 흘러든 남한강이 시의 중앙을 동서로 흐르며 많은 지류를 합하여 충주시로 흘러간다. 봉양읍을 흐르는 용암천이 장평천과 합류하여 주포천을 이루고 고교천이 금성면을 흘러 구룡천과 합류하여 각각 충주호로 흘러든다. 이밖에 송한천·시곡천·원서천·화당천·광천·하소천·용두천 등이 흐른다. 특히 하소천과 고암천의 하천유역은 상당히 넓어 청전동에서 두학동까지 펼쳐져 있으며 신월동 하안에 하안단구가 발달해 있다. 이들 하천들은 대부분 깊은 협곡을 따라 흐르기 때문에 평야의 발달이 미약하여 장평천과 용암천이 흐르는 봉양읍 지역에 약간의 평야가 있을 뿐이다. 이 지역에는 관개용수 공급을 위한 저수지와 소류지가 많은 편으로 의림지(義林池)를 비롯해 백마저수지·월림저수지·안말제·광암제 등이 있다. 충주다목적댐의 건설로 청풍면을 중심으로 한 5개면 61개 동리가 수몰되었다. 단양-제천-태백산지역으로 이어지는 곳에는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했다. 주요농산물은 쌀·보리·콩·팥·수수·옥수수 등이며, 고추·잎담배·마늘·약초·인삼 등이 생산된다. 특히 석회암질 토양에서 재배되는 마늘은 단단하고 맛이 좋다. 우리나라 기후구로 볼 때 중부내륙형 기후구에 속하는 이 지역은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해양의 영향을 받지 못하는 내륙으로 한서의 차가 심한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철도 및 도로 교통의 중심지로, 시가지를 중심으로 철도와 국도 및 지방도가 방사상으로 뻗어 있다. 중앙선이 용암천·장평천을 따라 시의 북부를 동서로 지나고, 시의 북서쪽에 위치한 봉양읍 봉양역에서 충북선과 이어진다. 또한 제천역에서 분기한 태백선이 고암천을 따라 시의 북동부를 지난다. 원주·안동·안성·태백·충주·울진을 잇는 국도가 있다. 중앙고속도로가 완공되어 도로교통이 더욱 편리해졌다. [포탈에서 발췌 정리]
* 문경시(聞慶市, 문경읍, 동로면, 산북면, 마성면, 호계면, 산양면, 영순면)
동쪽에 예천군, 남쪽에 상주시, 서쪽에 충북 괴산군, 북쪽에 충북 충주시, 제천시, 단양군이 있다. 수도권과 가장 가까운 경상도 지역이다. 이천시 율면의 맨 끝에서 문경시 가은읍 또는 문경읍 극초입까지 최단 직선거리가 약 48km이다. 물론 실제 도로는 직선거리가 아니므로 실제 이동 시 거리는 약 75km이다. 문경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문경새재가 떠오르는데 이 관문은 조선시대에는 서울과 영남을 잇는 영남대로의 주요 관문이었고 그만큼 문경은 교통의 요지였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경부고속도로나 경부선 등 각종 도로, 철도망이 생기면서 이러한 교통 기능을 상실했지만 대신 영화와 사극 촬영지, 트레킹 코스 등으로 각광받고 있다. 경제개발 시기에는 석탄개발이 활발한 곳이었으며 이때는 여느 광산도시와 마찬가지로 번성하던 곳이었으나 석탄사업의 몰락과 함께 크게 쇠락한 곳으로 경북 유일의 폐광지역진흥지구이다. 석탄이 많이 나던 곳답게 지질이 복잡하다. 신라 고령군(古寧郡, 상주시 함창읍) 소속 영현으로 관산현(冠山縣, 문경 중심지), 호계현(虎溪縣, 호계면), 가선현(嘉善縣, 가은읍)이 있었다. 이렇게 이 당시에는 문경이 상주(사벌주) 휘하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문경 지역 사람이던 견훤과 아자개가 상주 사람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조선시대 문경현이었다가 1895년 23부제가 실시되어 안동부 문경군이 되었다. 1896년 23부 체제가 다시 13도로로 개편되어 경상북도 문경군이 되었다. 문경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부터 석탄을 캐던 곳으로 이때 만들어진 대성탄좌는 남한 최초의 석탄광산이다. 한때 국내 제2의 탄전지대였으며 1960~80년대에는 석탄산업이 활발한 곳이었다. 그러나 석탄이 사양산업이 된 이후 석탄을 캐던 광산들은 줄줄이 폐광되기 시작하고 한때 73개에 달했던 문경의 광산은 1994년 7월 최후의 광산인 은성광업소마저 폐광하면서 석탄산업은 완전히 막을 내렸다. 신기동에 쌍용양회 문경공장이 있었고 문경시 경제에 많은 기여를 했으나 2018년 6월에 폐업하였다. 이 부지는 영화 및 드라마 촬영소로 조설될 예정이다. 석탄개발이 활발하던 1960~80년대까지는 젊은층 인구도 많고 지역 전체 인구도 10만이 넘을 정도로 번성했으며 약 30여개의 탄광이 있던 1974년에 인구는 16만 1천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이후로 탄광이 하나둘씩 문을 닫고, 1985년에 본격적으로 산업합리화 정책이 실시되면서 인구가 가파르게 줄기 시작했다. 1974년 16만 1천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11년간 2만 1천명이 줄어 1985년 인구는 14만명 정도였는데, 1985년부터 10년간은 과거 감소폭의 두 배를 넘는 4만 4천명이나 인구가 감소했다. 2023년 2월 인구가 7만 선이 붕괴되고 말았다. 문경시는 경상도 시 중에서 가장 인구가 적으며 전국 기초자치단체 인구 순위에서 시 중에서는 네번째로 인구가 적다. 계룡대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특례로 승격된 계룡시를 제외하면 (뒤에서) 1, 2, 3위인 태백시, 삼척시, 문경시 모두 폐광으로 인해 인구가 급격히 감소한 지역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나마 KTX 문경역의 개통과 더불어 문경 역세권 도시개발에 기대를 걸고 있으나 이정도로는 얼마나 크게 효과를 볼지가 미지수이다. 1906년 예천군의 동로면과 화장면이 문경군에 편입되었고, 상주군의 산서·산남·산동·산북·영순면이 편입되었다. 1914년 용궁군의 서면, 함창군의 동면 일부를 편입하였고, 1933년 신북면이 문경면에 통합되었다. 1956년 7월 8일 호서남면이 읍으로 승격하면서 호서남면의 중심 마을인 점촌리의 이름을 따라 점촌읍으로 개칭되었고, 1963년 1월 농암면 삼송리가 충북 괴산군 청천면으로 편입되었다. 1973년 7월에는 문경면이 읍으로 승격하고, 가은면과 상주군 이안면 저음리를 합쳐 가은읍이 되었다. 1986년 1월 점촌읍과 문경군 호계면 별암리 일부가 합쳐져 점촌시로 승격, 분리되었고, 1989년에는 상주군 함창읍 윤직리 일부를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자로 점촌시와 문경군이 합쳐져 도농복합시가 되었다. 1996년 산북면 거산출장소, 동로면 수평출장소를 폐지하였다. 1986년 문경군의 일부였던 점촌읍이 시로 승격되어 점촌시로 설치된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과거 문경군청은 문경읍 상리에 있었으나 1949년 점촌읍으로 이전하면서 문경군의 중심지가 점촌으로 바뀌었다. 1995년 도농복합시 도입으로 인한 행정구역 대개편 당시 본래 하나의 행정구역이었던 점촌시와 문경군도 통합하게 되면서 통합시의 명칭을 문경시로 하느냐 점촌시로 하느냐를 놓고 논란이 일었으며, 이 문제가 지역 주민들 사이의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상당한 진통 끝에 원래 이름인 '문경시'가 되었지만 문경시 안에 시청이 있는 구 점촌 지역과 문경읍이 공존하는 상황이 혼란을 가져왔다. 현재 점촌은 문경시 점촌동이다. 문경읍에 문경시청이 없고 옛 점촌시 지역인 시내에 문경시청이 위치하게 된 것이다. 현재 문경시 인근의 대부분의 교통 표지판에는 시내를 가리키는 표시로서 반드시 '점촌(문경시청)'과 '문경읍'을 명확히 표시하도록 되어 있다. 보통 나오는 지도에서는 점촌 지역은 문경시청 소재지라서 문경으로 나오고 역시 문경읍도 문경이라고 나온다. [포탈에서 발췌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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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부 구간거리
여우목고개-3.1km-대미산-3.1km-여우목고개-3.2km-국사봉-4.4km-운달산-3.1km-조항령-3.6km-단산-1.9km-배넘이산-2.1km-새터재-5.5km-장구매기산-1.1km-달고개-4.9km-금사재-2.9km-월방산-3km-수루재삼거리-2km-34번국도-2.1km-왜곡재-3.3km-923번도로/새발재-3.1km-영순면사무소-2.5km-밤고개-2.2km-천마산-3.3km-달봉산-1.5km-삼강합수점
* 구간거리
- 접속 : 여우목고개 ~ 대미산 3.1km
- 대미산 ~ 달고개 28km
-. 대미산 ~ 조항령 14km
-. 조항령 ~ 달고개 14km
-. 조항령 ~ 새터재 8.1km
- 달고개 ~ 삼강교 합수점 27.8km
-. 달고개 ~ 34번국도 12.6km
-. 달고개 ~ 수루재 10km
-. 34번국도/ 진정사거리 ~ 삼강교합수점 15.1km
-. 영순면사무소 ~ 삼강교합수점 9.5km
* 식수 공급지 및 산행 정보
- 활공대전망대, 모노레일 상부승강장: 매점
- 새터재 과수원농장(장우농원): 물보충 가능
- 달고개 오른쪽 아래 100m 외딴집 식수보충 가능
- 달고개 ~ 점촌터미널: 점촌택시 010-6524-5266, 19,000원
- 봉천사: 물보충 가능
- 34번국도/ 진정사거리: 중국집 정수기, 복지회관 매점 현금만 가능(음료, 과자)
- 영순면: 식당, 하나로마트
- 영강합수점 ~ 하풍버스정류장: 1.4km
* 서울에서 운달지맥 분기점 가는 길
- 동서울터미널 ~ 문경버스터미널: 06:30, 07, 07:50, 08:40~14:20, 16:20, 17:50, 18:30, 2h, 9,100~12,700원
- 문경터미널 ~ 여우목고개: 문경택시 054-571-0373, 26,000원
- 문경터미널 ~ 동로면 시내버스: 여우목고개
* 삼강리 합수점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 원달지버스정류장 ~ 점촌터미널: ~ 09:40, 10:50, 12:30, 14:10, 15:30, 15:50, 17:35, 19:00, 0.35h, 1,500원
- 점촌택시: 010-6524-5266, 054-555-3661, 0.15h, 16,000원
- 용궁택시: 010-6533-3331, 010-4802-9243, 010-5138-6171, 010-4522-6477, 010-3527-8818
- 점촌터미널 ~ 서울(동서울, 강남): 자주 있음. 2h, 19,000
- 예천 ~ 동서울: 11:40, 13:40, 14:40, 15:40, 17시, 18:50, 2.30h, 21,600
- 안동역 ~ 청량리역 18:18, 19:00, 21:25, 3h, 2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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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聞慶)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여러가지 견해가 있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문희경서(聞喜慶瑞)의 줄임말로 기쁘고(喜) 경사스러우며(慶) 상서로운(瑞) 소식을 듣는(聞) 곳이란 뜻으로서, 특히 예로부터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갈 때 문경을 통해서 가면 반드시 과거에서 급제하는 소식을 듣게 된다는 데서 유래하였으며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영남대로 중 가장 높고 험한 고개인 문경새재는 그 옛날 새들도 날다가 쉬어간다 해서 새재(鳥嶺)라는 이름이 붙었다. 국방의 요새로 삼았던 문경새재에는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 세 개의 관문이 있다. 이 길은 과거시험 치는 선비들이 유독 많이 넘어 다녔다. 조선시대 5백년간 한양과 영남을 잇는 번듯한 길은 세 개가 있었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했지만 추풍령은 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은 대나무처럼 미끄러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어 문경새재를 택했고 과거급제 후 돌아갈 때도 기쁜 소식을 빠르게 전하기 위해 가장 빠른 이 길을 넘었다. 지금도 문경새재에는 장원급제길이 있다. 오롯한 문경새재의 흙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됐고 4대 명승길 중 하나이기도 하다. 33개 시군이 거치는 백두대간 중에 문경이 남한 구간의 중심이고, 중간 지점이 작은차갓재에 있다. 백두대간 740km 중에서 문경시를 통과하는 길이가 116km, 점유율 15.6%로 최고이다. 운달지맥은 문경의 최북단에서 최남단에 이르며 문경의 종심을 관통하기에 가히 문경대간이라고 욕심을 낼 만도 하겠지만 대간은 아무 데나 함부로 붙이는 명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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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우목고개/ 육각정/ 국립공원지킴이초소/ 동물이동통로
해발 618m 여우목고개 동물 이동용 터널은 근래에 완공되었다. 여우목고개 북쪽은 백두대간 대미산을 오르는 지점으로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하여 입산금지 구역으로 정하여져 국립공원 지킴이 근무 장소가 있으며, 입산하지 못하게 휀스로 막아 놓았다. 남쪽은 국립공원이 아니고 운달지맥으로 자유로운 산행을 할수 있으며, 9월이 되면 버섯을 채취하기 위해 전국에서 새벽부터 내왕하여 붐비는 곳으로 도로변에 자동차 주차장 같이 느껴질 정도이다. 여우목고개 운달지맥 들머리 약수터는 2010년까지 산꾼들의 생명수가 되었는데 물의 양이 차츰 잦아들어 이젠 옛 정취만 남아있다. 여우목고개에서 운달지맥 분기점 대미산까지는 편도 약 3.1km, 75분 소요된다. 등산로가 뚜렷하고 잡목이 없어 여름산행도 가능하지만 능선에 오르기까지 특히 1,040.4m봉 오름이 가파르고 사납다.
♤ 문경시 문경읍(聞慶邑)
경북 문경시 북부에 있는 읍으로 동쪽은 동로면(東魯面)·산북면(山北面), 북쪽은 충북 제천시, 서쪽은 충북 괴산군, 남쪽은 마성면(麻城面)과 접한다. 남부의 일부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이 300~1,000m 내외의 험준한 산지를 이루고 있다. 백두대간 동쪽사면에 해당하며 조령(鳥嶺)·운달산(雲達山)·백화산(白華山)·주흘산(主屹山) 등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들 산지에서 발원하는 신북천(身北川)과 조령천이 하리(下里)에서 합류하여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문경읍(聞慶邑)은 문경시 북부에 위치한 읍으로 1932년에는 군청소재지였으며 1949년 군청을 점촌읍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문경의 중심지역이었다. 1973년 7월 1일 읍으로 승격하였다. 조선시대 말기까지 조령을 통과하는 주요한 영하취락이었다. 한때 광업개발의 활성화로 호황을 누렸으나, 1990년대 들어 석탄광업의 사양화로 지역경제가 침체되어오다가 최근 새재도립공원내 태조왕건 촬영장, 주흘산, 문경활공랜드, 문경온천개발, 폐광지역진흥지구, 개발촉진지구 지정 등 개발여건 조성으로 다시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 그 밖에 예로부터 전해오는 전통과 풍부한 동력 및 원료를 바탕으로 요업이 발달하였으며, 특산물로 사과가 유명하다. 예로부터 서울과 영남지방을 연결하는 관문이었으며, 조령에는 혜국사(惠國寺)·조곡관(鳥谷關)·조령관 등의 유적지가 남아 있다. 점촌에서 이화령(梨花嶺)을 지나는 국도의 개통으로 경북 북부지방 교통도 편리해졌다. 문화재로는 문경관문(聞慶關門:사적 147), 신길원현감충렬비(申吉元縣監忠烈碑:경북유형문화재 145), 문경 갈평리 오층석탑(葛坪里五層石塔:경북유형문화재 185), 주흘산 조령 관문일원(主屹山鳥嶺關門一圓:경북기념물 18), 문경향교대성전(경북문화재자료 132), 문경 관음리 석불입상(觀音里石佛立像:경북문화재자료 136), 관산지관(冠山之館:경북문화재자료 192), 조령산 불됴심표석(경북문화재자료 226), 옥소권섭영정(玉所權燮影幀:경북문화재자료 349), 관음리 석조반가사유상(石造半跏思惟像:경북문화재자료 350), 문경 상리(上里) 2층석탑, 마고산성(麻姑山城) 등이 있다.
중평리 여우목마을은 버스가 들어가지 못합니다. 택시비는 약 23,000원이고 여우목마을에서 대미산까지는 약 2.4km입니다. 낮이라면 여우목마을도 구경할겸 해서 그리로 출발해 보겠는데...
♤ 문경읍 중평리 여우목마을
여우목마을은 원래 화전민촌이었는데 조선말기에 천주교가 박해를 받으면서 교인들이 이곳으로 숨어 들어와 살면서 유명해진 마을이다. 천주교 여우목 성지(聖地)는 대미산(大美山) 자락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와 문경읍 중평리를 이어주는 901번 지방도로 여우목 고갯길이 마을 앞으로 지나간다. 여우목은 백두대간의 준령인 대미산을 경계로 충북 단양과 접하는 곳에 있는 고개로 이곳에 천주교 신자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1839년 기해박해를 피해 충청도 홍주 출신인 이윤일(요한)의 가족과 경상도 초대 신자인 서광수의 후손 치보가 이곳으로 피난오면서 부터이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이윤일과 그 가족, 신자 30여 명이 체포되었으며 1867년 1월 21일에 대구 관덕정에서 참수되었고 다른 지역으로 피난가 있던 서치보의 아들 인순과 익순도 병인박해 때 잡혀 순교하였다. 이윤일은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성지 안에 서치보와 그의 아들 서인순의 묘가 있으며, 성지 위쪽으로는 산비탈에 대여섯 집의 교우촌이 남아있다.
♤ 대미산(大美山, 1,115.1m)/ 시도계/ 삼읍면봉(제천시 덕산면 → 문경읍 중평리, 문경시 동로면)
백두대간이 포암산을 지나 제천시 덕산면과 문경시 문경읍 경계를 따르다가 대미산에서 운달지맥이 분기하여 문경읍 중평리와 문경시 동로면의 경계를 따라 남서진한다. 경북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와 문경읍 중평리 그리고 충북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문경제산지조(聞慶諸山之祖), 문경 지역 모든 산의 주맥(主脈)이라는 산이다. '대미' 지명은 『여지도서』(문경)에 "대미산(黛眉山)은 현 동북 30리에 있는데 동쪽의 풍기 소백산으로부터 와서 본 현 여러 산들의 주맥이 되었다."라는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산 정상부에 눈썹만큼의 봉우리가 돋아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이 산 바로 아래의 여우목과 하늘재(계립령)는 문경새재가 있기 전 한양으로 통하는 주요 길목이었다고 한다. 『청구도』에 대미산이 계립산(?立山) 위쪽에, 『1872년지방지도』에는 현재와 다른 한자 표기의 대미산(戴眉山)이 지도 상단에 높은 산지의 대지와도 같이 표시되어 있다. 『조선환여승람』에는 이황 선생이 대미산(大美山)으로 명명했다고 하여 또 다른 한자 표기가 나타난다. 울창한 참나무 숲과 돼지골과 심마니골, 제천 덕산면 방향으로는 용화구곡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다양한 식물의 보고(寶庫)로 불리는 대미산 정상에 오르니 월악산 영봉을 비롯한 운달산, 조령산, 주흘산 등 문경이 산그리메가 한 눈에 보인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했다. 백두대간의 태백산에서 이어진 대미산, 주흘산, 희양산 같은 고봉들이 충북과 경북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문경은 골이 깊고 계곡이 아름답다. 대미산에서 여우목재로 이어지는 돼지등 능선은 비탐방 구간으로 출입금지 구간이다. 지도상에 돼지등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유래는 알 길이 없다.
♤ 문경시 동로면(東魯面)
경북 문경시 동부에 있는 면으로 북쪽은 충북 단양군 제천시, 동쪽은 예천군, 서쪽은 산북면(山北面)·문경읍과 접하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작성현(鵲城縣)이었으나 조선시대에는 예천군 동로소면(冬老所面)으로 불렀다. 본래 조선시대 예천군 동로소면(冬老所面) 지역으로 '동로' 지명은 고려시대 동로소(冬老所) 또는 동로평소(冬老坪所)가 있던 것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보인다. 『세종실록지리지』(예천)에 "부곡이 둘이니 고림·보진이며, 소(所)가 하나이니 동로(冬老)이다."라는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예천)에도 "동로평소(冬老坪所)는 군의 북쪽 53리에 있다."라는 관련 기록이 확인된다. 그런데 현재의 '동녘 동(東)', '나라이름 로(魯)' 자의 동로(東魯)는 『조선지지자료』와 『구한국행정구역일람』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동로의 한자 표기가 근대에 접어들며 바뀐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고불목(생달1리) 마을 앞에 자연적으로 생긴 동로소(冬老沼)라는 큰 못의 이름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그 한자 표기가 바뀌었다는 설도 있다. 백두대간 남쪽 사면에 위치하며 해발고도가 높고 주위에 문수봉(1,162m)·황정산(皇廷山:1,077m)·대미산(大美山:1,115m)·공덕산(功德山:913m) 등 높은 산이 솟아 있다. 이들 산간에서 발원하는 작은 하천들은 금천(錦川)에 합류하여 남쪽으로 흘러 낙동강으로 합류한다. 평야의 발달은 매우 미약하며 도로와 경지는 하천연안을 따라 좁고 길게 발달했다. 전국 오미자 생산량의 절반을 담당하는 오미자산업특구로써 오미자 생산이 많으며, 그밖에 사과와 고추 등도 함께 재배되고 있다. 남부 일대에 조성된 경천호는 물이 맑고 수심이 깊으며, 문경·예천 지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잇다. 북부 지역은 산악경관이 아름다워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한다. 연평균기온 12℃이나 내륙에 위치하여 한서의 차가 심하며, 평균강우량은 1,100mm 내외이다. 산지가 많아 경지율이 적고 일부에서 쌀을 재배하나, 특산품으로 영지·표고·느타리 버섯 등을 재배하여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 외에도 대부분 잎담배·고추 등 밭작물에 의존한다. 마광리에 2개시군 9개읍면에 물을 공급해 주는 경천호가 있다. 도로는 북쪽의 벌재(600m)를 넘어 단양군에 이르고, 남쪽으로 점촌읍을 거쳐 상주·예천 등지로 통한다. 문화재로는 황장산 봉산표석(경북문화재자료 227), 명전리 성지(鳴田里城址), 작성(鵲城), 노고성지(老姑城址) 등이 있다.
♤ 1,047m봉
우회로를 버리고 직진의 마루금으로 내려선다. 1,047m봉에서 우틀로 내려선다. 가야할 1,040.4m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보이고 내려서며 곧바로 여우목마을과 여우목고개 갈림길이 나온다.
♤ 돼지봉(1,040.4m)/ 여우봉
오름이 가파르고 사납다. 넘어진 철제이정표가 있다. 정상에는 돌축대 위에 이장을 한 묘지가 보이고 우틀로 급하게 꺽어 내려서는데 가을철엔 급경사에 낙엽으로 엄청 미끄럽다.
♤ 여우목재(狐項嶺, 620m)/ 육각정(여우정, 與佑亭)/ 초소/ 동물이동통로
문경시 문경읍 중평리와 동로면 생달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문경에서 동로로 이어지는 901번 지방도가 지나는 곳으로 고개에는 ‘여우정(與佑亭)’이라는 정자와 면계 안내판이 있다. 지명의 유래를 보면 이 고개의 모양이 여우 목덜미와 비슷하다 하여 여우목이라 불렀다 하며 일설에 의하면 사냥하는 사람들이 이곳이 여우가 많이 다니는 길목이라고 하여 여우목이라고 하였다는 말도 전한다. 여우정 뒤쪽이 들머리이다. 잠시 후 관리 되지 않는 산불감시초소를 만난다.
♤ 872m봉/ 운달공덕분맥분기점/ 삼읍면봉(문경읍 중평리, 동로면 생달리 → 산북면 가좌리)
여우목재에서 능선삼거리까지 1km도 안되는 거리를 고도 250 이상을 가파르게 올린다. 정상에서 지맥의 왼쪽이 동로면 생달리에서 산북면 가좌리로 바뀌는 삼읍면봉이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300여m 떨어진 곳에 삼각점이 있는 912.5m봉이 있다. 왼쪽으로는 대승사를 안고 있는 공덕산과 천주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문경시 산북면은 여기부터 월방산 직전 호계면, 산양면과 만나는 삼면봉인 348.2m봉까지 가장 길게 운달지맥과 같이 한다.
♤ 문경시 산북면(山北面)
경북 문경시 북동부에 있는 면으로 북동쪽으로 동로면(東魯面), 북서쪽으로 문경시, 남쪽으로 산양면(山陽面), 서쪽으로 마성면(麻城面)·호계면(虎溪面)과 접한다. 백두대간 남쪽사면으로 고도가 높고, 면의 대부분이 1,000m 내외의 험준한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운달산(雲達山)·단산·조항령·공덕산 등이 면 주위에 있어서 분수계를 이룬다. 이들 산간에는 금천(錦川)의 지류인 아천(雅川)이 남류하여 작은 분지를 형성한다. 남쪽은 산지가 낮아 왕의산·오봉산 등으로 곡간에 좁은 평지가 형성되어 경작지로 활용된다. 경지율은 적으며 면의 남부에 많이 분포한다. 전통적인 농촌지역으로 주곡작물 이외에 사과·호산춘·송이버섯·영지버섯·인삼 등과 분재·도자장신구 등의 특산품이 생산된다. 대상리(大上里)에 정기시장이 선다. 교통은 낙동∼단양간 지방도가 북동, 남서 방향으로 통과하고, 문경~산북~단양 간 관광벨트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유물·유적이 풍부하다. 운달산의 김룡사(金龍寺), 공덕산의 대승사(大乘寺) 등은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창건한 고찰이다. 문화재로는 문경 내화리(內化里) 3층석탑(보물 51), 대승사 목각탱부관계문서(大乘寺木刻幀附關係文書:보물 575), 문경 대승사 금동보살좌상(聞慶大乘寺金銅菩薩坐像:보물 991), 문경 대하리의 소나무(천연기념물 426), 황방촌 유물(경북유형문화재 123), 대승사 마애여래좌상(경북유형문화재 239), 대승사 윤필암(潤筆庵)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지감(경북유형문화재 300), 김룡사 괘불(金龍寺掛佛:경북유형문화재 303), 문경 장수황씨 종택의 탱자나무(경북기념물 135), 김룡사 대웅전(경북문화재자료 235), 문경 장수황씨 종택(경북문화재자료 236), 문경 대승사 윤필암 후불탱화(경북문화재자료 348), 서중리(書中里) 석탑, 어서각(御書閣) 등이 있다.
♤ 문경시 산북면 가좌리 (加佐里)
가좌리는 운달산, 대미산, 공덕산 등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간 오지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가재목, 산막, 새터 등이 있으며 가재목은 마을 앞 개울에 가재가 많이 서식하고 지형 또한 가재목과 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산막은 임진왜란 때 이곳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 산에 움막을 치고 약초를 캐며 나막신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였다 하여 부르게 된 이름이다. 새터는 가좌목에서 500m쯤 떨어진 곳에 조선 세조 때 백촌 김문기 선생이 은신하면서 마을을 개척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새마라고도 부른다.
♤ 912.5m봉/ 삼각점봉(군용)
지맥길에서 왼쪽으로 살짝 벗어나 있는 봉으로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으며 훼손된 군용삼각점이 있다. 국사봉으로 가는 길은 등로가 잘 보이지 않는 암릉구간으로 시작된다.
♤ 839.6m봉
준희선생님 산패가 굴참나무에 매어져 불을 밝히고 있다. 민감한 계절이 되다보니 개인사유지 임산물에 손대지 마라는 경고문이 너절한데 전국 방방곡곡 마루금을 찾는 맥꾼을 잘 모르고 하는 말씀아닌가 싶다. 산삼 보약이 대수겠나 그까짓 송이, 능이쯤이야
♤ 국사봉(國師峰, 943m)/ 삼읍면리봉(산북면 가좌리, 문경읍 중평리 → 갈평리)
정상에서 지맥의 오른쪽이 문경읍 중평리에서 갈평리로 바뀌는 삼읍면리봉으로 이곳 국사봉에 대한 자료는 없다.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고 하얀 바탕의 산패에 국사봉이라는 글자는 풍우에 씻겨 빈 도화지로 남아있다. 멀리서 보면 삼각형 모양의 뾰족한 멋진 산이건만 주변에 워낙 명산이 많고, 더군더나 이곳이 1,000m급이 400개가 넘는 명산중에 명산이 많기로 유명한 문경지역이다 보니 조금은 홀대받는 느낌이다. 이곳에서 주변에 보이는 산만을 대충 쳐다봐도 대미산, 포함산, 주흘산, 공덕산, 천주봉, 운달산, 단산 등등등 천지삐까리인데 하물며 국사봉이야 산으로 치지도 않는 모양이다. 좌틀로 90도 꺽어져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 마전령(馬轉嶺, 670m)/ 말구리재
준희선생님 산패가 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다. 문경시 문경읍 갈평리에서 산북면 가좌리 말구리골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지도상에는 923번지방도로 표기된 이 고개는 요즘엔 지방도로로서는 보기드문 비포장 도로이다. 지명의 유래는 이 고개를 넘던 말이 굴렀다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순수한 우리말로 말구리재라고 한다. 하늘재(서울) 쪽으로 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할 산북에서 문경을 연결하는 옛 고개중 하나이다. 말구리재는 말구리와 재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말구리는 큰 골짜기의 뜻이고 재는 고개의 뜻이다. 따라서 큰 골짜기에 있는 고개로 해석할 수 있다. 큰 골짜기에 있는 고개는 말골재라고도 한다. 또는 말이 굴러 떨어진 골짜기, 지형이 말의 허리처럼 생긴 골짜기, 지형이 말의 아가리와 같은 골짜기 등과 같이 해석되기도 하며 이는 말골이나 말구리의 말을 말(馬)로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마전령에서 급경사의 왼쪽 능선으로 올라서니 예전에 민초들이 마전령을 넘어갈 때 소원을 빈 듯한 민초들의 애환과 염원이 담긴 성황당터인 돌무더기와 당산나무가 있다.
♤ 성황당/ 서낭당
서낭당은 마을을 수호하는 서낭신을 모셔 놓은 신당(神堂)으로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원추형으로 쌓아 놓은 돌무더기 형태로, 그 곁에는 보통 신목(神木)으로 신성시되는 나무 또는 장승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이곳을 지날 때는 그 위에 돌 세 개를 얹고 세 번 절을 한 다음 침을 세 번 뱉으면 재수가 좋다는 속설이 있다. 서낭당은 서낭신을 모신 신역으로서 신앙의 장소로 이곳을 내왕하는 사람들은 돌·나무·오색 천 등 무엇이든지 놓고 지나다녔다. 물론, 그곳의 물건을 함부로 파거나 헐지 않는 금기가 지켜짐은 말할 나위가 없다. 서낭이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서, 또는 석전(石戰)에 대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도 있으나, 민간에서의 서낭은 종교적 의미가 농후하다. 우리 나라에 서낭신앙이 전래된 것은 고려 문종 때 신성진(新城鎭)에 성황사(城隍祠)를 둔 것이 서낭의 시초라 한다. 그 뒤 고려에서는 각 주부현(州府縣)마다 서낭을 두고 이를 극진히 위하였는데, 특히 전주서낭이 유명하였다. 고려 고종은 침입한 몽고병을 물리치게 된 것이 서낭신의 도움 때문이라 하여 서낭신에게 신호를 가봉하였던 일도 있었는데 수호신으로서의 서낭은 조선시대도 널리 신앙되었다. 조선시대의 서낭은 국행(國行)서낭과 민간에서의 서낭으로 나누어진다. 국행서낭은 호국(護國)이라는 두 글자를 붙였다. 이성계(李成桂)는 즉위 후 여러 산천의 서낭을 제사하였으며, 태종은 백악(白岳)서낭과 송악(松岳)서낭을 신도(新都)서낭으로 모셨고 그 밖의 조선시대의 이름난 서낭으로는 해주·괴산·현풍·양산·신성(新城)·밀양·전주·고성서낭 등이 있었다. 이러한 서낭에서는 정기적인 제사뿐만 아니라, 국난이나 가뭄이 있을 때 서낭제를 거행하여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하려 하였는데 서낭당의 형태는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①서낭나무에 잡석을 난적(亂積)한 누석단이 있고, 이 신수에 백지나 청·홍·백·황·녹색 등의 오색 비단 헝겊을 잡아맨 형태, ②잡석을 난적한 누석단 형태, ③서낭나무에 백지나 5색 비단 헝겊 조각을 잡아맨 형태, ④서낭나무와 당집이 함께 있는 형태, ⑤입석(立石) 형태 등이다.
♤ 거르목산(926m)/ 삼읍면리봉(산북 가좌리, 문경읍 갈평리 → 용연리)
마전령에서 약 30분을 빡시에 쳐올리니 그저 밋밋한 봉우리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 있다. 정상에서 지맥의 오른쪽이 문경읍 갈평리에서 용연리로 바뀌는 삼읍면리봉이다. 네이버 지도에서 거르목산이라 표기를 해놨으나 그 이외의 지도에는 926m봉이라 표기되어 있고 유래는 알 길이 없다. 거르목산에서 지맥은 좌틀로 휘어져 내려서며 가야할 운달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운달산 옆으로 성주봉도 보이기 시작한다.
♤ 911m봉/ 삼읍면리봉(문경읍 용연리, 산북면 가좌리 → 호암리)
거르목산에서 5분 정도 진행한 밋밋한 봉우리로 대구 비슬이대선배님 띠지가 걸려있다. 정상에서 지맥의 왼쪽이 산북면 가좌리에서 호암리로 바뀌는 삼읍면리봉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가야할 운달산이 보이기 시작하며 우틀로 꺾어서 내려선다.
♤ 문경시 산북면 호암리(虎岩里)
호암리는 운달산 서쪽 기슭에 위치한 산간 오지 마을로 자연마을로는 불당골, 호암 등이 있다. 불당골은 개척 당시에 불당(佛堂)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불당이라고도 불렀다. 호암은 박세옥이란 이가 이곳에 처음으로 마을을 개척할 당시에 칡덩굴이 많아 이를 제거하고 마을을 형성하였다 하여 갈넘, 갈골이라 하였는데 그 후 차차 칡덩굴이 자연히 고사하였는데, 마을 사람들이 이러한 현상은 동네가 망할 징조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앞산의 용맹스럽게 생긴 큰 바위와 같이 마을이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뜻을 담아 호암이라 개칭하였다 한다.
♤ 장구목/ 장구령(797m)
문경시 문경읍 용연리에서 산북면 호암리 갈골마을로 이어지는 밋밋한 고개이다. 지도상으로 보면 여기에서 꽤 떨어진 곳에 장구마을이 보이긴 하는데 그 유래는 알 수 없다.
♤ 963.7m봉/ 삼읍면리봉(문경읍 용연리, 산북면 호암리 → 김용리)
장구령에서 급경사를 올라 돌무더기 암봉에 닿고, 지맥은 왼쪽으로 휘어져 963.7m봉으로 향한다. 급경사를 빡시게 올라서는 암봉으로 오름길에 하늘재 좌우의 백두대간 능선이 보이며 정상에서 지맥이 왼쪽이 산북면 호암리에서 김용리로 바뀌는 삼읍면리봉이다. 우틀로 꺽어 장구목재에 내려선다.
♤ 장군목(877m)/ 장구목
문경시 문경읍 용연리에서 산북면 호암리 불당골로 이어지는 고개인데 불당골로 이어지는 등로는 김용사에서 올라오는 길이라 일반 등산객들의 시그널이 많이 보인다. 운달산의 가장 일반적인 산행코스는 김용사-장구목-운달산-금선대-김용사 코스이다. 오룩스맵 지도에는 이곳을 ‘장군목’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장구목 이정표(←운달산 정상 1.1km, ↓김용사3.0km, →장구령 1.0km)가 서 있으나 장구목의 지명유래는 알 길이 없다. 나무계단을 올라 암봉을 오르내리다 전망바위에서 공덕산, 천주봉 뒤로 국사지맥과 문수지맥의 학가산을 조망하고, 운달계곡의 김룡사도 찾아 본 후 운달산 정상으로 향한다.
운달지맥의 주봉인 운달산입니다. 오른쪽으로 성주봉 능선이 분기합니다.
♤ 운달산(雲達山, 1,103.2m)/ 용뢰산(龍磊山)/ 2등삼각점(덕산 23/ 1980 재설)/ 삼읍면리봉(문경시 산북면 김용리, 문경읍 용연리 → 당포리)
정상에는 꽤나 넓은 공터가 있고, 문경시에서 설치한 스텐레스 정상표지판과 오래된 깨진 표시석 이정표와 산북면 자연보호협의 안내판, 그리고 2등삼각점이 있다. 삼각점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성주봉 가는 길이고 운달산 정상석은 두개가 나란히 왼쪽에 있다. 정상에서 지맥의 오른쪽이 문경읍 용연리에서 당포리로 바뀌는 삼읍면리봉으로 운달산은 부운령을 넘어 오정산을 솟게 하고 진남교반으로 뻗어 내리는 운달지맥의 맹주산으로 산 능선은 동서로 10여㎞에 걸쳐 뻗었으며 그 사이의 마전령(627m), 조항령(673m) 등은 예로부터 문경과 다른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천년고찰인 김룡사와 운달계곡을 품고 있으며 특히, 산북면 김룡리의 운달산 남쪽 사면에서 발원해 김룡사를 거쳐 문경읍으로 흐르는 운달계곡은 경치가 아름답고 물이 차가워 문경팔경 중 하나로 이름이 높다. 운달(雲達)이라는 이름은 구름에 가 닿는다는 뜻이지만, 해탈의 경지에 오른다는 의미도 있다. 김룡사사적서(金龍寺事蹟序)에는 운달산이 운봉(雲峰)으로 기록되어 있고, 그래서, 산 이름이 김룡사를 창건한 운달조사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으며 일반적으로 운달산은 육산으로 분류한다. 멀리서 바라보면 울창한 숲이 감싸고 있는 산세가 부드럽다. 그러나 속살을 파고 들어가면 도처에 암릉과 기암괴석들을 품고 있는 만만찮은 산이다. 문경시 산북면이 세운 정상비석에는 용뢰산(龍磊山)이라 새겨져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용뢰산의 바위너덜엔 암컷용이 살고 희양산 바위너덜엔 수컷용이 살았는데, 두 용은 서로 자신의 기가 세다는 걸 자랑하기 위해 가끔 비를 불렀다고 한다. 한 곳에 많이 비가 내리고 나면 얼마 후엔 반드시 다른 곳에 사는 용이 보란 듯이 더 많은 비를 내렸다. 그래서 두 곳 중 한 곳에 먼저 홍수가 나면 얼마 후엔 다른 곳에서도 홍수가 났다고 한다. 단산으로 가는 능선 활공장 뒤쪽으로 멀리 작약지맥의 작약산을 찾아보고 그 오른쪽으로 속리산, 그리고 문경읍 뒤로 펼쳐진 백두대간을 감상하고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좌틀로 길을 나서 암릉지대를 지나며 내려선다.
♤ 문경읍 당포리(唐浦里)
문경시 문경읍에 속하는 당포리는 운달산 남서쪽에 위치한 산간마을로 자연마을로는 고주골, 살뫼, 숲마을 등이 있으며 고주골은 고려시대에 고주부사가 있었던 곳이라고 하여 고주(줏)골이라 이름하였으며, 살뫼는 시루봉에 우뚝 솟은 세 개의 바위를 옥삼이라는 선비가 삼문이라 이름하였고, 또 당시 이곳에 있었던 고주부사가 갈뫼라 이름하였는데 이후 이곳 사람들은 이 마을을 살뫼 또는 살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숲마을은 마을 주위에 500년 이상의 고목과 느티나무숲이 울창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곳으로, 현재 당포리의 중심마을로 발전되었다.
♤ 1,058m봉/ 헬기장
헬기장에서 왼쪽으로 좌틀하면 금선대와 화장암, 김용사(金龍寺)가 있는 운달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운달계곡은 문경시 산북면 김룡리의 운달산 자락을 흐르는 계곡으로 주변에는 하늘을 가릴 만큼 울창한 숲이 우거져 시원함을 더해주며 울창한 숲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은 한여름에도 손이 시릴 정도로 물이 차서 냉골(冷谷)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비교적 폭이 넓고 수량이 많아 여름철에 많은 피서객이 모여든다. 계곡을 따라 수령 200~300년 된 전나무 숲을 걷다보면 신라 진평왕 때 운달이 창건했다는 김룡사가 보인다. 헬기장 끄트머리에 ‘←단산가는 길’ 표지를 따라서 맥길을 잇는데 헬기장 이후 바위가 많은 능선을 내려선다.
♤ 김룡사(金龍寺)
문경시 산북면 운달산(雲達山)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로 신라 진평왕 10년(588년)에 운달조사(雲達祖師)가 창건하여 운봉사(雲峰寺)라 하였으며, 그 뒤에 조선 중기까지의 사적은 전래되지 않고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절 이름을 김룡사라 한 것은 옛날 문희(聞喜 : 지금의 聞慶)부사로 김씨성을 가진 자가 있었는데, 관(官)에 죄를 짓고 도망쳐 이 산에 숨었다가 우연히 신녀를 만나 가정을 이루어 용(龍)이란 아들을 낳았다. 가운이 또한 부유해져 사람들이 김씨 어른(金長者)이라 일컬었다. 하루는 큰 비 바람이 분 뒤 그 처자를 잃어버리게 되었으나, 간 곳을 알 수 없었으며, 지금 그 옛 터와 섬돌이 절의 서쪽에 남아있어 절 이름을 김룡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금선대(金仙臺)의 금자와 용소폭포의 용자를 따서 금룡사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전국 31본사의 하나로서 50개의 말사를 거느린 큰 절이었으나, 지금은 교통의 불편으로 옛 말사였던 직지사의 말사가 되었으며, 1940년 요사와 종루를 개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김룡사 일원의 계곡을 운달계곡이라 하는데, 맑은 물과 짙은 녹음이 어우러져 ‘문경8경’ 가운데 하나로 손꼽는다. 일주문에는 문 윗부분에 ‘紅霞門(홍하문)’, 아랫부분에 ‘雲達山 金龍寺(운달산 김룡사)’라고 쓴 김규진(金圭鎭)의 글씨가 있고, 대웅전에는 1644년(인조 22) 조성된 천장(天藏)·지장(地藏)·지지(持地)보살상을 묘사한 삼장탱화(三藏幀畫)와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응진전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뒤 다시 지은 건물로서, 16나한상과 나한도가 모셔져 있다. 절 입구에서 보면 정면에 ‘慶興講院(경흥강원)’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건물이 있는데, 이는 300인을 수용할 수 있는 국내 최대의 온돌방으로서, 자연 지층을 그대로 이용하여 건축한 것이다. 절의 규모에 비해 지정문화재는 없으나, 시대를 알 수 없는 석조 약사여래입상과, 조선 중기의 것으로 보이는 맷돌·떡시루·쇠북·범종, 지옥의 염라왕청에서 죽은 이가 생전에 지은 선악의 행업이 나타난다는 업경대(業鏡臺) 등이 사물(寺物)로서 남아 있다. 부속 암자로는 대성암(大成庵)·화장암(華藏庵)·양진암(養眞庵)·금선대(金仙臺)·토굴 등이 있다. 양진암은 1658년(효종 9) 설잠(雪岑)이 창건하였으나, 1664년에 불탄 뒤 1749년(영조 25) 환월(幻月)이 중건하였으며, 그 뒤 1769년 무영이, 1825년 해운과 경봉이, 1840년 정봉이, 1929년 인택이 각각 중수하였다. 대성암은 1800년(정조 24) 영월(潁月)이 청하당을 옮겨 창건하였고, 1886년 혼성(渾性)이 중수하였다. 현재는 여승들만의 수도처로서, 이곳에는 고승의 진영이 담긴 영정과 동물 그림의 병풍 등 많은 현판들이 있다. 전래되는 대표적인 전설로는 산너머의 대승사(大乘寺)에 불이 났을 때, 일심으로 염불하면서 바가지에 시냇물을 퍼서 불을 끈 동승(童僧)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 석봉산(石鳳山, 985.7m)/ 삼읍면리봉(문경읍 당포리, 산북면 김용리 → 석봉리)
정상에서 지맥의 왼쪽이 산북면 김용리에서 석봉리로 바뀌는 삼읍면리봉으로 정상에는 이정표와 스텐레스 정상표지판이 있고 준희선생님 산패도 참나무에 매어 있다. 왼쪽 능선으로 내려가면 운달계곡과 천년고찰 김룡사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지명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산 왼쪽 아래가 석봉리라 그렇게 부른 것으로 보인다. 석봉산 아래에 있는 석봉리 굴골마을 뒤편에 석회암(石灰岩)으로 되어 있는 병모양의 동굴이 있고 동굴 밑에 골이 형성되어 이 골을 중심으로 마을이 있었다하여 굴곡이라 부르게 되었다. 최근(1980년대)까지 이 마을 뒤편에 있는 석봉광산과 단산광산에서 무연탄을 생산하였다고 한다. 급우틀로 휘어져 내려 조항령으로 향한다.
♤ 문경시 산북면 석봉리(石鳳里)
문경시 산북면에 위치한 석봉리는 단산 기슭의 산간 오지 마을로 자연마을로는 굴골, 돌담골, 샛골, 장자골, 허런골 등이 있으며 굴골은 뒤편에 위치한 병 모양의 동굴 밑에 골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 골을 중심으로 마을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돌담골은 산등성이가 내려온 모양이 돌닭이 홰에 오르는 모양과 같다 하여 석달이라 부르던 곳으로 오랜 세월이 흐르며 구전되는 과정에서 이름이 변하였다. 샛골은 경주 이씨가 이곳으로 이주하여 뒷재를 새의 목과 같이 생겼다 하여 새목재라 이름 짓고, 새목재 밑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새모기라 부르던 곳이다. 후일에 샛골이라 불리게 되었다. 장자골은 천 석을 하는 부자가 살던 부유한 골짜기의 마을이라 하여 부른 이름이다. 허런골은 마을 앞 시냇물 한 곳에 깊고 푸른 소가 있었는데 그 소에 두 마리의 용이 살고 있다가 한 마리가 승천하였다는 전설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희룡골이라고도 불리어졌다.
♤ 855.5m봉
운달산 이후 산세가 많이 부드러워진다. 889m 암봉을 만나 왼쪽으로 우회하고, 897m봉은 오른쪽으로 우회하고, 901m 암봉도 아래쪽으로 우회하고 다시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지나치는 둔덕수준의 봉우리로 준희선생님 산패가 있는 855.5m봉을 지나면 얹혀져 있는 기암이 보인다.
조항령에서 장자골로 석봉리 도로까지 탈출할 경우 약 40분 소요됩니다.
♤ 조항령(鳥項嶺, 680m)/ 새목재/ 임도 삼거리/ 팔각정/ 약수터
문경시 문경읍 당포리에서 산북면 석봉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단산과 운달산 사이에 있다. 새의 목처럼 잘록하다 하여 새목재라 하기도 하며 석봉리에는 새목재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새모기 또는 조항(鳥項)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최근 문경시가 임도를 개설하여 부분적으로 시멘트 포장을 하고 고개 정상 부근에는 약수터와 팔각정 등 쉼터를 조성하였으며 지역 주민들의 통행이 편리해지고 경제적으로는 물류비를 절감할 수 있게 되었으며, 김룡사와 대승사의 접근도 수월해져 관광객들의 발길도 잦아지게 되었다. 부근에 문경활공랜드 이륙장이 있다. 조항령 바로 위에 팔각정이 있다. 당포리 방향으로 성주봉이 보인다. 조항령에서 문경 활공장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버리고 길건너로 가파르게 오른다.
뒤돌아 보면 운달산에서 뻗어나온 성주봉과 수리봉(종지봉)이 시원스레 보이고, 성주봉 윗쪽으로는 지나온 운달산이 보입니다.
♤ 성주봉(聖主峰, 961m)/ 장군봉 & 수리봉(종지봉)
성주봉은 문경시 문경읍 고요리와 당포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성주봉은 전체가 거대한 바위산으로 안정감을 갖춘 빼어난 산세로 기세 당당하며 예로부터 고을 사람들이 신주(神主)처럼 받들어 신성시 한데서 산이름이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조선후기의 대문장가이며 학자, 시인인 옥소 권섭(玉所 權燮 : 1671~1759) 선생은 화지동(현 당포1리 고주골)에 은거하면서 이 일대의 지도인 "화지동 고지도"를 만들었는데, 이 지도에서 성주사 뒷편의 봉우리를 수리처럼 생겼다하여 취봉(鷲峯)이라 하였고, 정상 전 장군봉이라 부르는 바위봉을 관음상처럼 생겼다하여 관음봉(觀音峯)으로 표기하였다고 하며 당포리의 주민들은 기세등등한 장군이 버티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장군봉이라 부른다.
♤ 802m봉
꾸준히 오르면 방장님이 수고해 주신 준희선생님 산패가 참나무에 매어져 불을 밝히고 있다. 795m 무명봉을 지나고 석탄가루 같은 검은 물질이 많이 보이는 함몰지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두번에 올라선 약간의 공터가 있는 둔덕으로 나뭇가지에 가려 조망은 없고 능선은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861m봉으로 바투 다가서며 문경읍 시내가 바로 밑으로 보이고 건너편으론 문경의 진산 주흘산과 그 왼쪽으론 이화령에서 오르는 조령산과 그 오른쪽엔 하늘재에서 오르는 백두대간 포암산이 보인다. 이화령 뒤쪽으로 군자산도 보이고 포암산 너머에는 영봉도 보입니다.
♤861m봉/ 별빛전망대/ 활공랜드전망대/ 3등삼각점(문경306/ 재설)/ 삼읍면리봉(산북면 석봉리, 문경읍 당포리 → 고요리)
활공장으로 오르는 양회임도에 목조화장실이 있고 조망이 트인다. 활공장 일원에는 관광레저 공간이 조성되어 있는데 "조선생존기"를 시작으로 영화촬영지로 각광받고 있으며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는 모노레일(편도 40분, 요금 12,000원)이 있다. 또한 별빛 전망대와 오토캠핑장, 숲속썰매장, 산악바이크로드 등 산악 관광의 메카이다. 왼쪽 백화산에서 이화령-조령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이 보이고 주흘산과 하늘재, 포암산 그 뒤로 영봉도 보인다. 그 앞으로는 문경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도로를 따라 조망좋은 활공장으로 오른다. 활공장 가운데에 3등삼각점이 박혀있고 성주봉 뒤로 백두대간 대미산이 보인다. 활공장에서 단산 이후 600m까지 1.9km로 나무테크길로 연결이 되어 있어 편하다. 문경읍 고요리에 있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滑空場)으로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이들에게 활공기능을 가르치고 장소를 제공한다. 문경은 험준한 산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형태의 지형으로 상승기류가 안정적으로 형성되어 활공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자연조건을 이용하여 1998년 4월에 패러글라이딩스쿨 문경 활공랜드로 문을 열어 지역주민의 여가활동과 관광객들에게 즐길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단산과 조항령 사이에 위치한 이륙장에서는 문경읍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며 주흘산, 조령산 등의 명산들이 주변에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제1이륙장은 3,500㎡의 규모에 고도는 730m이며 제2이륙장은 6,800㎡, 고도 866m이다. 착륙장은 13,000㎡의 넓이이며 고도 220m이다. 활공전망대에서 활공하는 장면을 구경할 수 있으며 주변에 클레이사격장, 불정자연휴양림 등이 있어 당일 관광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2009년 4월에는 32개 국가의 선수들이 참가한 패러글라이딩월드컵문경대회(2009 Paragliding World Cup MunGyeong Korea)가 열리기도 했다. 활공랜드 정상에는 3등삼각점이 있다.
♤ 문경 스카이힐 천문대
문경관광 30選에 선정된 스카이힐 천문대는 관람형이 아닌 사전 예약제로 초보자들을 상대로 소인원으로 진행하는 칼 세이건 천문 리더쉽 강연이 유명한 곳이다. 도로에서 오른쪽의 데크목 계단으로 내려선다.
♤ 문경시 문경읍 고요리(古堯里)
문경읍 고요리는 봉명산 기슭에 위치한 산간 오지 마을로 자연마을로는 강선, 기성, 동우점 등이 있다. 강선은 조선시대에 넓고 큰 서당을 지어 학동을 가르쳤던 곳이라 하여 광원이라 하였던 곳이다. 전주 이씨가 글방을 차려 강론하였다 하여 강선이라 불려지게 되었으며 또한 갈평, 평천쪽으로 흐르는 물이 이곳에서 합쳐져서 넓은 냇가를 이룬다고 해서 광수원이라고도 불렀다. 기성은 중국의 요순시대 사람과 같이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하여 고요성 또는 구성으로 불려지던 것이 변음된 이름이다. 일설에 의하면 괴목이 울창하여 성을 이룬것 같다고 하여 괴성이라고 불리던 것이 음이 변하여 기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하며 동우점은 1500년경 경주 김씨가 이곳에 들어와 마을 동쪽 운달산 기슭에서 옹기(동우)를 구워 이것을 팔기 위한 점방을 벌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문경읍 가장 동쪽에 위치한 마을이므로 동녘의 해가 제일 처음으로 뜨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추측도 있다.
♤ 새목재
문경시 문경읍 고요리에서 산북면 석봉리 장자골로 이어지는 고개로 새의 목덜미 처럼 생겼다고 해서 새목재라 부르는데 데크목 계단을 설치해놔서 고개로 접근할 수가 없다. 데크목 계단으로 도상 799.7m봉을 지나고 왼쪽 능선이 맥길이지만 데크길로 진행한다.
♤ 850m봉/ 문경C.C.갈림길/ 삼읍면봉(산북면 석봉리, 문경읍 고요리 → 마성면 외어리)
맥길은 왼쪽 능선인데 데크목 길을 계속 따른다. 단산 정상 1.1km, 활공장 0.8km, 문경C.C. 1.5km 이정표가 서있는 지점 쯤으로 지맥의 오른쪽이 문경읍에서 마성면으로 바뀌는 삼읍면봉이다. 다시 맥길에 합류하여 원두막형 사각정자가 있는 931m봉으로 오른다.
♤ 문경시 마성면(麻城面)
문경시 중앙에 있는 면으로 북쪽은 문경읍, 동쪽은 호계면(虎溪面), 서쪽과 남쪽은 가은읍에 접한다. 백두대간 동쪽 사면을 차지하며, 원래는 신남면(身南面)과 신동면(身東面)으로 갈라져 있었으나, 1914년에 마고성면(麻姑城面)으로 병합되었다가, 1916년 마성면으로 개칭했다. 중부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이 1,000m 내외의 산지를 이루어, 오정산(810.5m), 단산(959.4m), 백화산(1,063.5m), 성주산(720.7m), 뇌정산(992m) 등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조령천이 면의 중앙을 남북방향으로 흐르며, 신현리 일대에서 분기하여 영강을 이룬다. 하천 양안의 충적지에서 논농사가 행해지며, 표고버섯·사과·꿀 등의 지역 특산물이 생산된다. 그 밖에 무·배추 등 채소의 경작도 소비증가와 더불어 증가하고 있다. 한때 문경시의 중심탄광지구로서 가행광구(稼行鑛區)가 26개소에 이르러 지역주민의 80~90%가 광업에 종사했을 정도로 지하자원이 풍부했으나 1991년 봉명탄광을 끝으로 모두 폐광되었다. 이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광업의 대체산업으로 오천리에 대규모의 마성농공단지를 조성하였다. 문경선·가은선은 산업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국도와 지방도, 중부내륙고속도로가 하천을 따라 남북으로 관통한다. 진남교(鎭南橋) 일대는 경상북도 8경의 하나로 풍광이 아름답다. 문화재로는 신현리에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모산성(姑母山城), 고부산성(姑夫山城) 등이 있다.
조망이 시원하고 눈이 부시게 훌륭합니다.
♤ 단산(檀山, 959.4m)/ 데크광장전망대/ 문경시 마성면 - 문경시 산북면
넓다란 공터를 나무데크로 마루를 깔고 전망대로 만들었다. 두개의 정상석이 있다. 공덕산과 천주봉 뒤로 백두대간 능선이 예쁘게 펼쳐져 보인다. 백두산악회 노란표지판이 소나무에 매달려 있다. 문경시 마성면과 산북면의 경계에 있는 단산은 서쪽과 남쪽으로 두 줄기가 뻗어내려 봉명탄광으로 유명한 봉명산과 경북팔경 중에 제1경으로 꼽히는 진남교반의 오정산을 솟구치게 한 뒤 영강으로 잠긴다. 단산의 모습을 자세히 바라보면 정상부위의 평평한 산세가 푸른 하늘에 제단을 펼쳐놓은 것만 같은 형상이라 선암산(배너미산/배나무산)에 살던 신선들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하여 쌓은 거대한 하늘 제단 같다. 문경시는 평야지대와 구릉지대가 조화를 이룬 살기 좋은 고장으로 특히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조선시대 철 생산지로 기록되어 있으며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도 석탄 생산지로 유명하다. 운달산과 오정산 사이에 있는 단산은 탄전지대의 중심이며 1988년에는 41개 탄광에서 7,000여 명의 근로자가 경상북도 석탄 총생산량의 57%를 생산했다. 급좌틀로 데크계단을 내려 배너미산으로 향한다.
♤ 봉명산(鳳鳴山, 692.1m)
문경시 문경읍 문경읍 고요리와 마원리, 마성면 외어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봉명' 지명은 『문경읍지』(2009)에 의하면 봉황새가 울었다는 전설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문경)에 "봉명산은 현의 동쪽 8리에 있다."라는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산 중턱에 지금은 없어진 금학사(金鶴寺) 터가 남아 있는데, 앞의 문헌에 "금학사는 봉명산에 있다."라는 기록이 확인되며 『해동지도』에 봉명산이 향교 아래 표시되어 있고, 『청구도』에서도 봉명산이 확인된다. 근대에 봉명산 아래 봉명광업소는 문경 석탄산업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운달지맥과 장거리 감마로드환종주가 갈리는 곳입니다. 오정산 갈림길도 되네요.
♤ 배너미산(814m)/ 선암산(仙岩山)/ 삼면봉(산북면 석봉리, 마성면 외어리 → 호계면 선암리)
스텐레스 배나무 정상 이정표와 오정산 5.9km, 장산 정상 1.9km, 석봉리마을회관 3.4km를 가리키는 이정목에 준희선생님 산패도 추가되었다. 배너미산은 오정산 방향으로 20여m 오른쪽으로 떨어져 있다. 지맥은 배나무산 20m 전에 산불조심 이정표에서 왼쪽 전망대(돌리네습지) 방향으로 내려가나, 배나무산을 들렸다 간다. 문경시 산북면 석봉리와 마성면 외어리, 호계면 선암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대미산에서 뻗어 내린 능선이 남쪽으로 운달산과 단산을 거쳐 이루어낸 산으로 군락을 이루는 곳이 많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큰 홍수가 났을 때 배가 산을 넘어와 서덜지대에 머물렀다고 한다. 선암산(仙岩山)이라고도 하며 오정산으로 향하는 남서쪽에는 봉수대가 있었다고 전한다. 오른쪽으로는 진남교반이 있는 오정산으로 가는 등로가 보인다.
♤ 문경시 호계면(虎溪面)
문경시 남동부에 있는 면으로 북동쪽으로 산북면(山北面), 남동쪽으로 산양면(山陽面), 북서쪽으로 마성면(麻城面)에 접한다. 대부분의 지역이 100~300m의 산지를 이루며, 북서쪽 경계에는 백두대간의 줄기가 이어져 고도가 높고 지세가 험한 오정산(烏井山:810m)·부운령(富雲嶺:813m) 등의 산이 마성면과의 경계지점에 솟아 있으며 남동쪽으로는 완만하게 경사진 산기슭에 소규모의 곡저평야를 형성한다. 면의 중앙부를 가도천(加道川)이 남류하여 막곡리(幕谷里)에서 영강(潁江)과 합류하며, 영강은 동류하여 낙동강에 유입한다. 경지는 이들 하천연안과 견탄리·오암리 일대에 분포한다. 호계는 ‘호계삼소(虎溪三笑)의 옛 이야기’에서 근원을 찾고 있다. ‘동진의 혜원법사(慧遠法師)는 수행 도량인 동림사(東林寺)를 벗어난 일이 없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찾아온 도연명(陶淵明)과 육수정(陸修靜)을 전송하다가,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경외의 골짜기에 다다랐음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안거(安居)의 계율을 깬 것을 깨닫고, 세 사람이 함께 크게 웃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여기에서 동림사 밖의 ‘호랑이가 으르렁대는 골짜기’를 호계라 하므로, 수행의 도량에 알맞은 깊은 산골이 아니고서는 호계라는 땅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 한편으로 호계(虎溪)라는 명칭은 지형이 호랑이가 영강(潁江)을 보면서 누워있는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며 일설에는 오정산 호랑이가 마을 앞 냇가까지 내려와 호계라 하였다 한다. 부곡리·호계리에는 석회암용식지형인 돌리네와 석회암 동굴이 있다. 쌀 이외에 배·사과·감 등 과수 재배와 느타리버섯, 청국장 등의 생산이 활발하다. 1991년까지는 5개의 광산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폐광된 상태이다. 견탄리에는 문경상무야구장이 있으며, 호계리 영강 인근에는 폐교를 문화휴양지로 리모델링한 성보예술촌이 있다. 국도가 서남부 면계를 지나며,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서단을 관통한다.
♤ 감마로드환종주
감마로드 길은 경북 제1경 진남교반에서 들머리 어룡산을 거쳐 백두대간 형제봉에서 분기해 오는 작약지맥 일부를 포함한 40km와 백두대간 중에서도 가장 힘들고 거친 대야산, 희양산, 조령산의 암릉을 지나는 95km의 대간길과 그리고 백두대간 대미산에서 시작되는 운달지맥의 일부를 넣은 다음 운달지맥 배나무산에서 갈라져 나와 진남교반의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오정산을 거쳐 날머리 진남교반 토끼비리로 이어지는 장거리 산길의 백미이자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하며 감마로드라는 명칭에서 묻어나듯 험하고 거칠며 지루한 180km 대장정의 길이다. 무박산행 장거리 산꾼의 꿈의 도전 길이라 자부할 수 있음을 확신한다. (소스뜨라)
♤ 감마로도 환종주 개념도
배너미산에서 급경사를 내려가면 앞쪽에 계단이 있는 안부에 닿고 다시 급경사 계단을 올라갑니다.
♤ 신선대(神仙臺, 798m)/ 산북면 석봉리 - 호계면 선암리
문경시 산북면 석봉리와 호계면 선암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암봉 정상이 아주 좁아 우회하기도 했는데 정상을 가로질러 데크계단길 전망대가 만들어졌다. 누군가가 돌에다가 ‘신선대’라고 메직으로 써놓았는데 문경대간이라 그려놓은 지도에는 이곳을 선암산이라 표기를 해놨고 북서쪽으로 조망이 트여 지나온 문경 활공장과 단산이 보인다. 옛날에 이곳에 살던 신선들이 단산으로 가서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고 하는데 신선이 놀기에는 너무 좁은 공간으로 보인다. 지그재그로 희미하게 미친듯 내려서는 길은 길게 계속되면 마지막 묘지로 내려서며 진정이 된다. 신선대에서 새터재로 내려서며 지맥의 고도가 400m이하로 낮아진다.
용선사 방향 새터골로 내려서 석봉리 돌당길을 따라 산북면 우곡리까지 약 2.7km이고 우곡교 왼쪽 버스정류장에서 점촌터미널 나가는 버스(35분 소요)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 새터재/ 임도오거리/ 과수원농장(장우농원)
문경시 산북면 석봉리와 호계면 선암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이다. 양회임도 농로가 나있는 오거리로 지맥은 선암리와 용선사 갈림길 이정표에서 전망대(돌리네 습지) 방향으로 직진한다. 임도를 따라 새터골로 3분 정도 내려서면 과수원농장에서 물을 구할 수 있다. 새터재는 사과농원이 넓게 자리잡고 있는데 문경하면 사과와 오미자가 특산물이다. 운달산과 활공랜드에서 바라보이는 문경읍 당포리, 고요리, 팔영리의 절반이 사과밭이라고 보아도 무관할 정도로.... 배너무산에서 뚝 떨어진 곳에 있는데 양회임도가 나있고 돌리네 습지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지명 유래는 호계면 선암리 새동네마을 윗쪽에 있는 고개라 새터재라고 부른다. 새동네마을은 상선암 아래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새터재에서 편안한 길이 이어지고 왼쪽으로 공덕산과 천주봉이 보인다.
♤ 355m봉/ 면계/ 삼리봉(호계면 선암리, 산북면 석봉리 → 우곡리)
전망대(돌리네습지) 1.1km, 배넘이산 2.42km 이정표가 서있는 곳으로 지맥의 왼쪽이 산북면 석봉리에서 우곡리로 바뀌는 지점이다. 우틀로 꺽어져 내려선다.
♤ 돌리네습지 전망대
무대처럼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는 굴봉산(399.9m) 돌리네습지 갈림길에서 지맥은 오른쪽 주차장 방향으로 간다. 전망대 앞에 이정표가 있고 길은 반듯하다. 전망대를 만들었으면 조망이 가능하도록 나무를 베어야 하건만...
♤ 돌리네 습지
국가지질공원 후보지 문경은 희귀 지형이 많은 생태계의 보고(寶庫)이다. 문경시 산북면 우곡리 문경 돌리네 습지(49만4000여㎡)는 2017, 6, 15.(환경부고시 제2017-117호)로 23번째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으로 산지형 습지로 물이 고이기 힘든 지대에 습지가 형성된 희귀한 곳이며 세계적으로도 매우 특이한 사례로서 지형, 지질학적 측면에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지역이라고 하며 또한 육상,초원,습지 생태계가 공존해 좁은 면적임에도 수달, 담비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 6종을 비록해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 낙지다리 등 3종을 포함하여 731종의 야생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지역이다. 석회암이 빗물, 지하수에 용해, 침식되어 형성된 접시모양의 웅덩이를 돌리네(doline)라고 한다.
♤ 전망대/ 2층팔각정
새로 지은 삐까번쩍한 2층전망대에서 천주봉 능선과 돌리네 습지가 보인다. 굴봉산(399.9m) 옆으로 공덕산-천주봉-숫돌봉 순이다.
♤ 공덕산(功德山, 912.9m)/ 역덕산(亦德山)/ 사불산(四佛山)/ 만불산(四佛山 掘佛山 萬佛山)
습지너머로 보이는 공덕산 지명은 "공로 공(功), 덕 덕(德)"자로서, '공과 덕이 많은 산'이라는 뜻인데, 지형도에 표기되어 있는 산이름일 뿐 불교계에서는 이 산 기슭에 자리한 천강석조사불상과 관련지어 사불산으로 부른다. 사불산이라는 산이름을 낳게 한 사불암은 신라 진평왕 9년(587년) 하늘로부터 붉은 비단으로 싸여 산중턱의 커다란 암반 위에 내려 앉았다고 전해지며, 진평왕이 이 소식을 듣고 직접 가본 뒤 바위 곁에 절을 세운 것이 대승사라는 전설도 전한다. 공덕산은 대승사, 사불암 외에 나옹화상이 거처했다는 묘적암과 안장바위, 탑돌이문화를 계승하고 있는 윤필암, 두 암자 사이에 있는 마애여래불상, 그리고 묘봉의 부부바위, 사불암 아래 유무유바위, 윤필암 아래 나도야바위 등 볼거리가 많은 산이다.
♤ 천주봉(天柱峰, 836m)/ 붕어산
돌리네 습지 너머로 공덕산과 나란히 있는 천주봉도 멋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문경시 동로면에 있는 천주봉은 전형적인 바위산으로 전체적인 산세는 두드러진 주능선 없이 둥그런 모양을 띈 아담한 산처럼 보이지만, 정상부가 하늘높이 뾰족하게 솟아있고 그 주변을 거대한 기암절벽이 감싸고 있으며 정상은 큰봉과 작은봉이라는 두개의 봉우리고 이루어져 있으며, 이 사이는 좁고 가느다란 암릉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곳에 오르면 조망 또한 사방으로 막힘이 없이 무척이나 우수하다. 서쪽으로는 바로 옆의 공덕산과 그 뒤로 운달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북쪽으로는 경북 문경시 동로면의 넓은 들판 위로 황장산과 그 뒤 도락산이 백두대간의 여러 마루금들과 함께 물결처럼 다가오며, 또한 남쪽으로는 발아래 여러 산들 사이로 한반도 모양을 하고 있는 경천호(湖)가 그림처럼 바라다 보인다. 천주산이라는 이름은 "하늘 천(天), 기둥주(柱)"자로서, '하늘을 받치고 있는 기둥'이라는 뜻인데, 정삼각형 모양으로 하늘 높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마치 '하늘의 기둥처럼 보인다'고 하여 불리게 되었다고 하며, 더불어 '큰 붕어가 입을 벌리고 하늘을 쳐다보는 모습으로 보인다'고 하여 붕어산으로도 불리었다.
♤ 388.7m봉
돌리네습지 입구에 설치된 주차장 시설을 지나 388.7m봉을 앞두고 등로는 왼쪽으로 꺾어진다. 잡목숲을 힘들게 올라서니 소나무에서 불을 밝히는 준희선생님 산패가 반겨주고 좌틀로 내려서면 흐릿한 길을 지나 임도에 닿고 임도를 따른다.
♤ 십자안부
문경시 호계면 선암리 상선암 마을에서 산북면 우곡리 읍실마을로 이어지는 곳이다. 등로 오른쪽으로 보이는 문경시 호계면 선암리 상선암은 선암 위쪽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왼쪽으로 내려가는 읍실마을쪽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지 등로가 뚜렷하다. 우곡리 읍실마을은 임진왜란 때 평해 황씨의 자손들이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사당을 짓고 이를 지날 때마다 읍을 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읍실이 깊은 계곡에 위치하였다고 하여 우곡(于谷)이라고도 하였다. 다시 오르막이 나오고 감나무와 밤나무가 있는 밭이 나온다.
♤ 평해 황씨(平海 黃氏)
평해 황씨(平海 黃氏)는 경북 울진군 평해읍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황씨의 본관은 창원(昌原), 장수(長水), 평해(平海), 우주(紆州), 회덕(懷德) 등이 있는데 이 중 창원, 장수, 평해 황씨가 황씨의 메이저 3성(姓)으로 이 세 성씨가 황씨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 외 본관들은 중국계인 항주 황씨를 제외하면 모두 이 3개 메이저 본관에서 갈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해 황씨는 고려 때 금오위대장군(金吾衛大將軍)을 역임한 황온인(黃溫仁)을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으며 3세조 황유중(黃裕中)과 4세조 황서(黃瑞)가 고려에서 문하시중을 역임했다. 황유중(黃裕中)의 손자 황희석(黃希碩)이 요동정벌 때 이성계의 부장으로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조선개국공신 2등에 올랐으며 공조전서 황유정(黃有定)은 정도전의 여동생과 혼인하였고, 아들인 황현(黃鉉)은 태종과 세종대에서 성균관 대제학과 대사성까지 역임하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인해 평해황씨는 쇠퇴했다. 가문의 족보는 임진왜란으로 완전히 소실되어 지금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족보는 1604년에 예천군수였던 황여일(黃汝一)이 새로이 간행한 평해황씨초간세보(平海黃氏草刊世譜)이다.
♤ 370.2m봉/ 면계/ 삼리봉(호계면 선암리, 산북면 우곡리 → 이곡리)
밤나무밭을 지나 희미한 길을 따라 오정산을 바라보며 올라서니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져 반겨준다. 올라선 봉우리에 묘지가 있고 소나무 사잇길로 내려선다.
♤ 358.5m봉/ 송전탑
국가지점번호가 걸린 NO.109 송전탑이 있고, 준희선생님 산패가 나무에 매어 있다. 북동쪽으로 공덕산과 천주봉 능선이 시원하게 바라보인다. 우틀로 내려선다. 천주봉을 가운데 두고 좌공덕, 우숫돌봉이다.
♤ 281m봉
358.5m봉에서 급경사로 내려와 안부에서 살짝 솟은 곳으로 노송이 있는 지나치는 갈림봉 능선이다.
♤ 장구매기산(310.7m)/ 면계/ 삼리봉(산북면 이곡리, 호계면 선암리 → 지천리)
NO.111철탑 안부에서 살짝 오른 능선봉이다. 문경시 호계면 지천리와 산북면 이곡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준희선생님 산패와 선답자들의 시그널만 걸려 있을 뿐 그저 밋밋하며 지명 유래는 알 길이 없다. 뚜렷한 직진길을 버리고 급하게 좌틀로 확꺽어서 내리막으로 내려서는데 등로가 희미하다. 양회임도로 내려서고 달고개 도로로 나간다.
달고개에서 대중교통은 이곡리로 내려가 거산, 김룡, 전두리발 점촌행 버스시간표를 참고합니다.(06:29~19:50, 약 30분 간격) 달고개에서 구간을 끊으려면 점촌택시를 콜해 터미널로 이동 합니다.
♤ 달고개(月峴, 216m)/ 923번지방도로/ 부천로
문경시 호계면 지천리 놋점마을과 산북면 이곡리 달고개 마을을 잇는 고개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고 준희선생님 달고개 산패가 전봇대에 매어 있다. 923번 2차선 지방도가 지나가며 북동쪽으로는 운달산과 석봉산 아래에는 유서깊은 고찰인 김용사와 대승사, 윤필암, 화장암, 사불암 등 이름난 절집들이 많이 있다. 지명 유래는 고개 왼쪽 아래에 있는 달고개 마을에서 따왔으며 이 고개는 달이 뜰 때의 높이와 질 때의 높이가 똑같다고 하여 달고개라 부른다고 한다. 달고개를 가로질러 옹벽 왼쪽 능선으로 올라선다.
♤ 381.1m봉/ 삼각점/ 산북면 이곡리 - 대하리
달고개에서 약 20분 오르면 면계/ 삼리봉(호계면 지천리, 산북면 이곡리, 대하리)인 381.1m봉 갈림능선 삼거리에 닿는다. 맥길은 오른쪽으로 휘어지지만 왼쪽으로 0.4km 정도 떨어진 삼각점이 있고 족보가 있는 381.1m봉을 들른다. 독도대선배님 코팅지와 백두사랑산악회 노란 산패가 참나무에 매달려 있다. 작은 공터 가운데 마모되어 판독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있다. 조망은 없다.
♤ 문경시 산북면 대하리(大下里)
문경시에 속해있는 산북면 대하리는 금천의 지류인 대하리천이 남북으로 흘러 연안에 평야를 형성하고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너부내, 막골, 신평, 영각, 웃한두리 등이 있다. 너부내는 아천과 금천이 합류하여 강폭이 넓어졌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광천이라고도 부른다. 막골은 마을을 개척하였을 당시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여서 흡사 막을 친 것과 같다 하여 부르게 된 이름이며, 신평은 조선 말기에 인근 동민들이 이곳으로 이주하여 새 터전을 마련해 생활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영각은 황희의 영정을 모셨던 영각이 있었던 곳의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웃한두리는 황희의 후손인 황정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한두리의 위쪽에 위치하였다 하여 부르게 된 이름이다. 또 광천, 막골, 신평, 영각을 포함한 5개의 자연부락을 대하라 칭하였다.
♤ 321.8m봉/ 면계/ 삼리봉(호계면 지천리, 산북면 대하리 → 대상리)
지맥의 왼쪽이 산북면 대하리에서 대상리로 바뀌는 곳으로 임도 왼쪽에 있는 둔덕으로 노송 1그루가 있으며, 지맥은 계속 임도따라 내려간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해맞이행사를 개최했다고도 한다.
♤ 문경시 산북면 대상리(大上里)
문경시 산북면에 소재한 대상리는 금천 주위의 평야지역이다. 자연마을로는 오미기, 지보실, 한두리 등이 있다.
오미기는 임학선이라는 선비가 이 마을이 까마귀혈이고 까마귀는 나무 위에 둥지를 틀어 서식하므로 붙인 이름으로 오목이라고도 하며 지보실은 임학선의 후손이 오미기에서 분가하여 이곳에 새로 터전을 잡고 정착한 후 자손들이 번성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마을을 잘 보존한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으로 지보(知保) 라고도 부른다.
♤ 360.6m봉
321.8m봉을 내려서면서 임도 갈림길을 만나는데 지맥 마루금은 오른쪽이지만 벌목지 잡목지대를 헤치고 올라서야 해서 여름철엔 임도를 따르는게 훨썩 수월하다. 잡목 숲이라 조망이 없는 지나치는 둔덕이고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면 묵은 임도가 나오고 길이 좋아진다.
♤ 한두리재/ 대도촌(大道村)
문경시 호계면 지천리에서 산북면 대상리 한두리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한두리는 선조 황희 정승의 증손 황정(세조때 대사정)선생의 아들 황사웅이란 선비가 이곳에 이주 정착하면서 도(道)와 덕(德)으로 마을을 개척하였으므로 도덕군자가 사는 마을이라 하여 도촌이라 하던 곳이다. 이것이 대도촌(大道村) 이라 불리게 되었고 우리말로 한두리라 이름 하였다. 장수황씨는 중국 후한(後漢)의 유신이었던 황락(黃洛)이 서기 28년(신라 유리왕 5년) 현재의 베트남 북부 하노이지방 교지국(交趾國) 사신으로 가다 동북해에서 심한 풍랑을 만나 현재의 울진군 평해(平海) 월송(月松)지방에 표착(漂着)한 후 그곳에 자리잡고 살면서부터 시조가 됐다. 자칭 황장군(黃將軍)이라 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황씨의 시원(始源)이다.
♤ 관암봉/ 해돋이광장 전망대
해맞이봉으로 년중 행사만 치르는지 관리를 벗어난 데크목광장과 돌탑이 있다. 노송 두 그루가 있고 왼쪽에 천주봉과 정면으로 문경시 산북면 들판이 보이고 그 뒤로 백두대간 저수령에서 시작되는 국사지맥 능선의 모습도 훤히 보인다. 곧이어 잡목으로 어수선한 도상의 320.2m봉을 지난다.
♤ 지보실(知保室)고개
문경시 호계면 지천리에서 산북면 대상리 지보실 마을로 이어지는 고개이다. 왼쪽의 지보실 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상당히 뚜렷하다. 산북면 대상리에 위치한 지보실 마을은 임학선의 후손이 오미기에서 분가하여 이곳에 새로 터전을 잡고 정착한 후 자손들이 번성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마을을 잘 보존한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으로 지보라고도 부른다.
♤ 352.9m봉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조망이 없는 둔덕봉으로 간벌목과 나뭇가지가 널려 진행에 지장을 준다. 좌틀로 살짝 꺽어져 내려서면 진남교반으로 이어지는 오정산(烏井山) 능선이 보인다.
♤ 오정산(烏井山, 810m)/ 선암산(禪巖山)
오정산은 문경시 마성면 오천리와 호계면 호계리·별암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오정산의 다른 이름은 선암산(禪巖山)이다. 그래서 '오정' 지명은 조선 전기 선암산에 있었던 오정사(烏井寺)라는 사찰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문경)에 "오정사는 선암산에 있다."라는 관련 기록이 확인되고, 『해동지도』에도 오정사가 표시되어 있으며 『1872년지방지도』에는 문경 읍치 아래쪽에 선암봉대(禪巖烽臺)가 자리 잡은 산 기슭에 오정사가 확인된다. 선암산은 『세종실록지리지』(문경)에 "선암산은 현 동쪽에 있다. 동쪽으로 산양 소산에 응하고, 남쪽으로 함창 남산에 응하며, 북쪽으로 본현 탄항에 응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문경의 옛 모습과 이름』(2007)에 의하면 오정산의 옛 이름을 장산(獐山) 또는 여산(廬山)으로 정리하고 있는데, 『세종실록지리지』(문경)에 "장산은 현 동쪽에 있다."라 하고 『신증동국여지승람』 (문경)에 "장산은 호계현의 북쪽 1리에 있다."라고 하여 그 방위와 거리상 장산이 현재의 오정산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기는 힘들 것이다. 『청구도』에도 선암산과 장산이 따로 표기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때는 지도제작을 위한 삼각점을 오정산 정상에 박고 큰 기를 세워 표시했다고 하여 대표산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 임도 사거리/ 호계면 가도리 - 산북면 대상리 오미기마을
문경시 호계면 가도리와 산북면 대상리 오미기 마을로 이어지는 곳에 있는 안부로 오미기 마을로 이어지는 길은 뚜렷하다. 오미기는 임학선이라는 선비가 이 마을이 까마귀혈이고 까마귀는 나무 위에 둥지를 틀어 서식하므로 붙인 이름으로 오목(烏木)마을 이라고도 부른다.
묘지 있는 곳에서 군자봉에 다녀와야 하는군요.
♤ 군자봉(282.8m) 갈림길
왼쪽으로는 군자봉으로 향하는 뚜렷한 등로가 보이고 능선 아래는 안동권공 묘가 있다. 군자봉은 그리 높지도 않고 전망도 없어 들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백두사랑산악회에서 소나무 가지에 산패를 매달아 놓았다.
♤ 금사재(金沙嶺)/ 양회임도/ 면계/ 삼리봉(문경시 호계면 지천리, 산북면 대상리 → 서중리)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에서 호계면 가도리와 지천리로 이어지는 양회임도가 지난다. 가도천(금사천)은 호계면 부곡리와 선암리에서 발원하여 가도리 마을 앞을 흘러 영강으로 가는데, 요즘에는 거의 모래가 사라졌다. 금사마을은 가도리 동쪽 금사재(金沙領) 밑에 있는 마을인데, 모래에 금빛이 나고 사금(沙金)이 많이 나서 금사(金沙)라 하였다. 오른쪽으로 배나무산과 멀리 운달산이 보인다. 양회임도 건너 임도따라 오르며 지맥의 왼쪽이 산북면 대상리에서 서중리로 바뀐다. 왼쪽에 사과과수원이 보이고, 위에 공원처럼 잘 관리되는 묘지가 있어 살펴보니 딸네미가 먼저 세상을 뜬 모양이다. 아랫마을에 동네 멍멍이들이 떼창을 한다. 가까이 민가도 바라다 보인다.
♤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
서중리는 문경시 산북면에 있는 리로서 동쪽으로 금천이 흐르며 그 주위에 평지가 분포한다. 자연마을로는 곰우챙이, 서중이 있는데 곰우챙이는 조선시대에 백성들이 납세한 양곡을 보관했던 곰(웅)과 같이 큰 창고가 있었던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웅창이라고도 한다. 서중은 근품산의 품자와 산자를 합하면 암자가 되므로 마을 이름을 근암이라 하였고 박씨 문중에서는 서원이 있는 마을이므로 서원이라 불렀다 하며 이후에 이 마을이 상주목에 속하였을 때에는 서원중리라 칭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서자와 중자를 따서 서중이라 이름붙였다.
♤ 근품산성(近品山城)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산양(山陽)의 옛 이름은 근품(近品)이고, 근암(近巖)이라고도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근품산성은 산양면 현리 뒷산인 근품산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산성으로 대부분 토성이며 정상부만이 석축인 토석 혼축으로 축성되었으며 편축식, 테뫼식으로 길이는 1,600m이다. 신라가 고구려의 침입을 저지하기 위해 축성하였고 후삼국시기에는 견훤이 완산주에서 후백제를 세워 이 지역은 견훤의 세력권에 있었으나 뒤이은 고려 태조의 남하로 양대 세력의 각축장이 되었다. 927년(태조 10년) 정월 왕건이 용주(龍州- 예천 용궁)를 친히 함락시켰으며, 3월에는 근품성(近品城)을 함락시켰다. 그러나 견훤은 9월에 근품성을 쳐서 불사르고 진격하여 고울부(현 영천)에 이르러 신라의 도성에 육박하였다.
♤ 163m봉/ 면계/ 삼리봉(산북면 서중리, 호계면 지천리 → 가도리)
산북면 서중리와 호계면 가도리를 넘어가는 양회임도를 지나 밋밋하게 지나가는 능선이다. 왼쪽 서중리 쪽에 사과밭이 보인다.
♤ 문경시 호계면 가도리(加道里)
문경시 호계면에 있는 가도리는 가도천(금사천) 변의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가도리의 옛 지명은 가길이었다. 원길(큰길)이 있고, 마을로 들어오는 길이 갓길이라고 해서 가길이란 마을명이 생겼으며, 가길이 가도로 바뀌었다. 한편 산의 생김새가 갓처럼 생겼다는 가산(佳山)에서 유래했다고도 하고, 갓재 아래에 마을이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마을 유래는 확실치 않으나 삼정사(三渟寺)라는 절이 있었으며, 그 뒤에 경주 김씨, 고령 박씨가 마을의 터전을 잡았다고 한다. 자연마을로는 가도, 밤나뭇골, 사시나뭇골, 성뚜리, 성마마을 등이 있다. 가도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 유래 또한 가도리의 그것과 같으며 밤나뭇골마을은 밤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사시나뭇골마을은 사시나무가 많았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성뚜리마을은 뒷산에 옛 성터가 있다하여 칭해진 이름이며, 성마마을은 승방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 작은재/ 성황당터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와 호계면 가도리를 넘어가는 고개인데 돌무더기가 있는 서낭당이 보인다. 잠깐 고도를 높이고 평평하게 간다.
♤ 352.7m/ 3등삼각점(문경 309/ )/ 면계/ 삼리봉(산북면 서중리, 호계면 가도리 → 구산리)
조망없는 잡목봉이고 바로 아래 밀양박공 묵은 묘지와 석물이 있다. 삼각점 표지판과 함께 백두산악회 노란 산패가 매어 있다. 지맥의 오른쪽이 호계면 가도리에서 구산리로 바뀐다.
♤ 무명고개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와 호계면 구산리를 연결하는 희미한 등로가 보이는 갈림길이다.
♤ 348.2m봉/ 삼면봉(문경시 호계면, 산북면 → 산양면)
352.7m봉 삼각점을 지나 340m 무명봉을 왼쪽으로 비켜 정점을 지나면 길이 흐릿하고 잡목속이라 힘들게 내려와 다소 가파른 급경사로 오른다.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와 산양면 봉정리, 호계면 구산리가 만나는 삼면경계봉이다. 이곳부터 왼쪽으로 산행 시작부터 같이 걸어온 산북면과 작별을 하고 산양면으로 들어선다. 소나무에 준희선생님 산패와 많은 표지기가 달렸고 우틀로 휘어져 내려선다.
♤ 문경시 산양면(山陽面)
문경시청 소재지의 북동쪽으로 7㎞ 지점에 위치한 산양면은 영순면,호계면,산북면과 예천군 용궁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신라중기까지 근품현(近品縣)으로 불리어지다가 경덕왕(750년경)때는 가유현(嘉猷縣)이라 개명하여 보주(甫州: 현 예천))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 현종(1018)때에 상주의 속현으로 산양현으로 개칭하였다가 고려 명종(1180)때에 감무가 폐지되었다. 1909년 행정구역 개편시 상주군의 산동(山東), 산남(山南), 산서면(山西面)과 예천군 화장면(花庄面) 일부를 병합, 15개 이동(里洞)으로 산양면(山陽面)이 되어 문경군 관할로 편입되었다. 면소재지는 불암리(佛岩里)이며 지형은 전체적으로 낙동강(洛東江) 연안의 낮은 산지로서, 주위에 왕의산·오봉산·비조산 등의 낮은 산이 있어서 분수계를 형성하며 동쪽에는 금천(錦川)이 북에서 남으로 흘러 면의 중앙부를 남류하여 낙동강으로 유입하고 서쪽 경계에는 낙동강의 지류인 영강(穎江)이 남류한다. 양 하천의 유역에는 넓은 평야가 전개되고 수리도 좋은 편이다. 교통의 요충지로서 국도 34호선이 예천, 안동, 영덕으로 연결되고 국도59호선이 충북단양으로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하며, 1988년 진정리 5만평의 규모에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인구의 90%가 농업에 종사하며 특산물로는 수박·영지버섯·친환경 쌀인 새재청결미, 새재바로미와 농업부산물인 볏짚을 활용한 친환경 고급육의 문경한우, 표고버섯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문경 존도리의 소나무(천연기념물 425), 문경 봉정리 약사여래좌상 및 관세음보살 입상(경북유형문화재 308), 김승주 삼공신 회맹록 판본(金承廚三功臣會盟錄板本:경북유형문화재 309), 충절사·상의재(忠節祠·尙義齋:경북문화재자료 302), 문경 녹문리 고병숙 가옥(汶慶鹿門里高柄璹家屋:경북문화재자료 365), 영모재(永慕齋), 김병표묘(金炳豹墓) 등이 있다.
♤ 월방산(月芳山) 갈림길
이정표(월방산 100m, 봉천사 1.5km, 봉정리 1.5km)가 서있다. 여기부터 등산로가 반듯하고 왼쪽으로 지맥길에서 100m 정도 떨어져 있는 월방산을 다녀와 봉정리 방향으로 진행한다.
♤ 월방산(月芳山, 360.1m)
비교적 넓은 공터에 소나무 아래 점촌1동산악회에서 세운 아담한 정상석이 있고 호계면 방향으로 조망이 트였다. 조망이 좋은 전망바위 봉정대가 아래에 있다. 독도대선배님 코팅지와 백두사랑산악회 노란산패가 소나무에 매어 있다. 월방화합송(和合松)이 있는 정상은 널찍하여 쉬어가기 좋다. 문경시 산양면 봉정리와 호계면 가곡리, 봉서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조선 중기까지 점촌을 비롯한 이 고장의 진산이었다. 고대에는 사벌국의 성지였으나 임진왜란 이후에는 관문이 있는 문경 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되었다. 산기슭에 봉정리 탑동의 삼층석탑 부재, 마애보살입상, 마애여래상, 봉서리삼층석탑 등의 불교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정상 바로 밑에 있는 작은 산신당에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옛날 이 마을에 마음씨가 착한 한 아낙네가 산에 나물을 캐러 갔다가 미끄러져 온 몸에 상처를 입고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 이때 꿈에 이 산신당 화상의 백발 노인이 나타나서 “이 앞 벼랑 틈에서 나오는 물이 있을 터이니 그 물을 먹고 상처에 바르면 곧 나을 것이다.”라고 일러 주고는 사라졌다. 잠에서 깬 그 여인은 꿈속의 노인이 시키는 대로 그 물을 마시고 바르고 했더니 상처는 씻은 듯이 없어지고 제 정신을 찾게 되었다. 마을에 돌아온 그 여인의 이야기를 들은 한 심술궂은 사나이가 그것을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우기면서 산신당에 달려가 벽에 걸린 산신령 화상의 눈을 솔가지로 마구 찔러 찢어버렸다. 또 벼랑에서 나오는 물구멍도 마구 파헤쳐 버렸다. 집에 돌아와서 잠을 자려하니 귀신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3일 만에 그 사내는 죽고 말았다고 한다. 그 후부터 우물물은 흙탕물로 변해버렸고 밤이면 마을의 개, 돼지 등의 가축이 호랑이의 피해를 무수히 입게 되었다. 그래서 동민들이 의논하여 정월 대보름날 쌀을 모아 제사를 드려 제액초복의 축원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설에 따라 지금까지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이면 정성껏 이 산신당에 제사를 드리고 축원을 한다. 제관으로 정해진 사람은 삼일간 목욕재계하고 궂은일을 보지 않고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착실히 잘 지내면 한 해 동안 동네가 편안하고, 만약 불결했거나 정성이 모자랐다면 한 해 동안 동네가 퍽 불안했다고 한다. 동로면쪽으로 공덕산, 천주봉, 숫돌봉이 보이고 국사지맥도 찾아본다. 지맥은 월방산 정상부에 있는 월방산둘레길 안내판이 가리키는 오른쪽 봉천사(1.7km) 방향으로 되돌아 나간다.
♤ 봉샘(鳳泉) 갈림길
왼쪽 40m 지점에 샘이 있다는 표지판이 있고 길은 널찍하다. 봉샘은 약수터가 아니고 물이 솟는 웅덩이이다.
♤ 330m봉/ 면계/ 삼리봉(문경시 호계면 구산리, 산양면 봉정리 → 호계면 봉서리)
잡목이 많은 능선을 올라 철망울타리가 쳐져있는 330m봉을 지난다. 지맥의 왼쪽이 산양면 봉정리에서 호계면 봉서리로 바뀌며 호계면으로 들어선다.
자실고개에서 봉서리 도로로 수루재에 이르기까지는 호계면 봉서리 내안을 횡단합니다.
♤ 자실고개
문경시 호계면 구산리 자실마을과 호계면 봉서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월방산 둘레길에 있는 고개인데 왼쪽의 뚜렷한 길은 봉천사로 이어지는 임도이고 맥길은 오른쪽 철망이 있는 능선으로 오른다. 월방산 둘레길을 따라서 내려 오다가 오른쪽에 이정표(정상 1.3km)가 서있는 안부로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뚜렷하다. 마루금은 오른쪽 철망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나 개사육장과 길이 희미하고 잡목이 많다는 선답자들 산행기로 왼쪽 사면길로 우회해 봉천사를 구경하기도 한다. 지명 유래는 고개 오른쪽 아래에 있는 구산리 자실마을에서 따온듯 하다. 자실마을은 1903년경에 구산리 인근 봉서리에서 예천임씨가 이주하여 마을을 개척하였는데 개척 당시에 잣나무가 무성하여 잣이 많이 생산되었는데 이 잣으로 잣죽을 끓여 먹으면서 생활한 동네라고 하여 자실마을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 마을 윗쪽에 있는 고개라 자실고개라 부른다.
♤ 봉천사(鳳泉寺)
봉천사는 문경시 호계면 봉서리 월방산에 있다. 너럭바위를 봉천대라 부르며 그 위에 세워진 사찰이 봉천사이다. 절집이지만 개량한옥을 보는 느낌이라 생경하다. 절집이라고 다 전통 한옥으로 지으라는 법은 없다. 봉천사는 1998년 고향이 이곳인 향림(香林) 비구니가 고찰 봉덕사터 인근에 옛터를 다듬어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올려 봉천사를 다시 지었으니 이는 오래된 불연의 회복이라 할 수 있다. 신령스러운 한 쌍의 봉황이 둥지를 틀어 알을 품고 만년의 세월을 인고하니 산정에는 봉천이 샘솟고 높은 언덕 위에는 천하를 조망하는 봉천대(鳳泉臺)가 생겼으니 이곳에 봉천사가 자리하고 있다. 인근에는 봉덕사지의 삼층석탑, 봉정리 마애관음, 석조아미타불, 반곡리 미륵불이 현전하고 절 옆에는 안동 김씨의 병암정(屛巖亭)과 일송정이 푸르르며 절 앞 바위 봉황대는 새해 해맞이 명소로 이름이 나있다. 예천 용궁면 장안사 주지스님이던 지정 주지스님이 부임한 이후로 월방산을 경주 남산에 비견하는 관광 명승지로 만들기 위해 산재하는 문화재와 800여개의 바위 등을 발굴하고 이것을 이어주는 둘레길을 조성하고 있다. 사찰 앞 소나무가 있는 넓은 바위가 일출 명소라고 한다. 9월 말 연보랏빛 개미취가 장관을 연출한다. 꽃말은 ‘기억’과 ‘먼 곳의 벗을 그리다’이다.
수루재로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내려오다 오른쪽 위쪽 마루금으로 사과밭 농장이 보입니다.
♤ 251m봉
251m봉을 지나고 임도의 유혹을 지나쳐 맥길을 이으면 사과밭농장을 만난다. 마루금은 바라보이는 민가 뒤쪽으로 이어지지만 사유지라 금줄이 쳐져 있다. 왼쪽 능선이 맥길이나 오른쪽 도로로 내린다.
♤ 수루재(戍樓峙)/ 면계/ 호계면 봉서리 - 산양면 반곡리
문경시 호계면 봉서리와 산양면 반곡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봉천사/ 월방산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보이고 오른쪽에 과수원이 있는데 지도상에는 수루재로 표기가 되어 있으나 지명 유래는 알 길이 없다. 일반적인 수루(戍樓)란 적군의 동정을 살피기 위하여 성 위에 지은 망루라는 뜻이다. 수리재가 수루재로 변형되었을 수도 있어 보인다.
♤ 222.4m봉
수루재 삼거리에서 오른쪽 임도로 진행하다 묘지 있는 곳에서 오른쪽 능선으로 오르며 마루금 상의 222.4m봉을 만나고 왼쪽으로 내려선다.
반곡리는 수루재에서 만나 평지저수지까지 함께 합니다.
♤ 문경시 산양면 반곡리(盤谷里)
문경시 산양면 반곡리는 서쪽으로 낙동강의 지류인 영강이 흐르며 낮은 산지를 이룬다. 자연마을로는 반곡(盤谷), 뱀골, 불미골, 한바우 등이 있으며, 반곡은 주위의 산과 계곡에 크고 작은 반석이 많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뱀골은 뱀 같이 길고 꾸불꾸불하게 생긴 골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또 이곳에 백사가 많이 있었다고 하여 백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불미골은 옛날에 이곳에서 놋그릇을 많이 생산하여 집집마다 놋쇠 조각을 녹일 때 사용되는 풀무가 있었다고 하며 마을이 풀무 손잡이 모양과 같다고 하여 불미골 또는 풀미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바우는 산모퉁이에 소반 같이 생긴 큰 바위(고인돌)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반암이라고도 하였는데,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마귀 할머니가 아기를 재우기 위하여 큰 반석에 고임돌을 괴어 그늘을 만들었는데 그 모양이 소반 같이 생겼다고 하여 반암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 235.8m봉 갈림길
봉서 삼양목장 입구를 지나 내려오면 왼쪽에 폐축사가 있는 곳으로 내려선다. 폐축사옆 공터에서 절개지 능선으로 올라서면 지도상에 족보가 있는 235.8m봉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235.8m봉이고 맥길은 오른쪽 임도로 향해 넓은 임도를 따라 내려선다.
♤ 반암고개
산양면 반곡리에서 추산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오른쪽에 약천산이 있다. 고개를 가로질러 넓은 임도를 따라 약천산으로 오른다.
♤ 약천산(藥泉山, 210.8m)/ 면계/ 호계면 봉서리 - 산양면 진정리
문경시 호계면 봉서리와 산양면 반곡리, 봉정리, 진정리 경계에 걸쳐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오석(烏石)으로 된 정상석이 있으나 조망은 없고 위에서 보면 밋밋한 육산(陸山)이지만 밑에서 보면 까칠한 암산(巖山)으로 운달산(1,103.2m) 줄기 월방산(360.1m)에서 산줄기가 갈라져 나와 산양농공단지가 있는 가재골 고개를 넘어가기 전에 솟아있는 산으로 약샘이 가재골에 있어 찾는 이가 많으며 소나무 숲과 큰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가재골에 약샘이 있어 약천산(藥泉山)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전한다. 묵묘 1기가 있고 소나무에 서레야선배님 코팅지와 띠지가 잔뜩 매달려 있다. 정상석 앞쪽으로 뚜렷한 등로가 보이나 맥길은 오른쪽의 임도로 내려서야 한다. 지맥 마루금은 오른쪽이나 왼쪽 좋은 길로 내려서니 학가산과 자미산이 보인다. 산아래 산양 산업단지가 내려다 보인다. 곳곳에 큰 바위가 있으며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으나, 높이가 낮은 야산으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 찾는 이는 많지 않으며 봉정리 산자락에 비구니 암자인 경선암이 있으며, 가재골의 약샘을 찾는 인근의 주민들이 산책길로 이용하고 있다.
♤ 문경시 산양면 진정리(辰井里)
진정리는 영강과 금천 사이에 위치하여 경지가 비옥하며,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기동, 미리물(辰井), 시거리, 추산(秋山) 등이 있으며 기동은 1700년 경 영양 남씨 문중에 임은 남용한이라는 선비가 영덕군 영해에서 안동 예안을 거쳐 이곳에 정착하면서 텃골, 턱골로 불렀던 곳이다. 미리물은 마을에 용(미리)이 살던 우물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시거리는 길이 예천, 산북, 점촌 등 세 갈래로 갈라지는 삼거리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추산은 신라경순왕의 후손인 경주 김씨의 입향선조가 마을을 개척할 당시에 산에 머루, 다래 등 과실나무가 많아서 멀뫼라 했던 곳이다. 뒷날 한문으로 고쳐 추산이라 하였다.
약천산을 내려서며 지맥은 산양면 반곡리와 진정리의 경계를 따르나 공단구간을 우회하고 다시 철길에서 왜곡재로 향하며 진정리 내안으로 들어섭니다.
♤ 34번국도/ 진정사거리
약천산에서 산양농공공단을 바라보며 34번 도로로 내려오며 등로에 여기저기 많은 바위들을 만나며 암릉사이 미끄러운 낙엽으로 제법 까칠한 구간을 지나 경주김씨 묘지를 통해 내려선다. 약천산을 내려오면 산양 제2농공단지 분양 광고가 있는 곳으로 나와 도로따라 오른쪽으로 간다. 34번도로 오른쪽에 산양교차로 표지판이 보이고 34번 국도가 맥길을 끊어 왼쪽 능선이 맥길인데 차량도 많고 설령 도로를 건너더라도 공장 건물이 맥길을 가로막고 있어 우회를 한다. 지맥은 왼쪽 진정사거리 방향으로 가야 한다. 진정사거리가 마루금이다. 진정사거리에 도착하여 34번 국도를 경계로 왼쪽은 산양제1공단이고 길을 건너서는 산양제2공단이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서 산양제2공단 오른쪽 골목길을 향한다.
공단에서 벗어나 묘지 있는 곳으로 내려가 철길을 만나 건너는데, 공단 벗어나기 직전 좀더 왼쪽으로 클라임코리아 본사 건물이 있군요. 제가 좋아하는 스포츠클라이밍 설치제작 전문회사입니다. 파주 문산에도 회사가 있어 언젠가 방문한 적이 있었지요.
♤ 산양논공공단/ 산양산업단지
문경시 산양면에 위치한 산양논공공단은 시골 공단 치고는 생각보다 상당히 크다. 이곳은 1949년도에 약관 22세의 나이로 문경군수를 지냈고 3공부터 5공까지 6선의 국회의원을 지낸 故 채문식국회의장이 이곳 산양면 출신이다. 도로 건너에 산업단지 복지회관 매점이 있다. 앞에 보이는 능선이 맥길이나 경북산업 앞으로 공단내 도로 따라 간다. 오른쪽 능선이 맥길이고 원고개로 내려서는 족보가 있는 147.8m봉이나 공단 조성으로 절반이 날아가 버렸다. 눈팅만 하고 그냥 공단 도로를 따라서 간다. 산양공단2길을 따라 가다가 유풍산업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휘어져 도로끝까지 진행하고 전면 녹색 휀스를 끼고 우틀로 진행하여 34번 국도에서 헤어진 마루금에 복귀를 한다. 공단 끄트머리에 키 큰 소나무 있는 곳으로 내려간다.
점촌에서 예천으로 향하는 경북선 철길을 건너네요.
♤ 경북선 철길
풍천임씨 가족묘원 앞이 경북선 철길인데 절개지가 높아 묘지 오른쪽으로 조금 내려가서 좌우 철망이 쳐진 철길을 무단횡단으로 건너 절개지로 오른다. 개구멍으로 들어가 잠겨져 있는 문을 넘어선다. 경북지역을 지나는 단선 철도로 일제 강점기에 부설되어 과거에는 철제와 석탄 수송에 사용되었고, 경부선의 김천역에서 중앙선의 분기점인 영주역을 연결하는 길이 115.2km의 경북선 개통이후 김천과 영주는 교통의 요지로 성장하였으며 단선 철도로 지금은 여객의 수요가 매우 적어 폐역(14개)이 많다. 김천시, 상주시, 문경시, 예천군, 영주시 등 경북 서북부 일대를 잇고 있으며 경부선, 문경선, 중앙선, 영동선과 연결되어 있다.
♤ 117.3m봉/ 삼각점봉
우틀로 수로를 아래로 통과하여 올라서면 비포장 농로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꺽어진다. 농로를 따르다 왼쪽에 삼각점이 있는 117.3m봉을 지난다.
♤ 왜곡재(116m)/ 양회임도 사거리
비포장 임도를 잠시 걸으면 포장도로와 만나는 왜곡재에 닿는다. 문경시 산양면 진정리에 있는 양회임도 삼거리로 왼쪽에 한우목장이 있다. 직진해 우사 방향으로 간다. 마루금은 오른쪽인데 농로따라 왼쪽으로 비켜서 양회임도로 계속간다. 문경시는 인근 상주시에 비해 마을의 지명유래에 대한 자료가 없어 상당히 불편한데 이곳 왜곡재에 대한 자료도 찾기 어려워 아쉽다.
♤ 147.8m봉
넓은 공터를 지나 147.8m봉으로 올라선다. 이 봉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벌목지가 나오고 점촌(店村)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 문경시 점촌동(店村洞) 시가지
본래 상주군 영순면의 지역으로서 그릇점이 있었으므로 점촌 또는 점마라 하였고 1895년에 문경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에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달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점명이라 한데서 그 지명이 유래되었다. 이곳은 원래 교통의 요지였는데, 1926년경 일본인이 불정리(佛井里) 탄전(炭田)을 위시한 인근 지역을 탄전 개발하자 인구 집중이 이루어져 도시로서 더욱 활발히 발전하게 되었고 1949년 국회의장을 지냈던 채문식이 약관 22세에 문경 군수를 하면서 자기 고향(산양면)과 가까운 문경군의 군청 소재지가 문경면 하리에서 호서남면의 점촌리로 이전해오자, 이 지역의 발전은 급속도로 추진되었다. 그러다가 점촌시로 승격되었고, 행정구역 개편으로 문경군과 점촌시가 도농 복합시로 바뀌면서 지명이 문경시로 바뀌었는데 점촌이 문경보다 5배정도 규모가 크고 문경의 모든 행정기관이 점촌에 있어 외지인들은 상당히 헷갈린다. 일반적으로 문경시라면 문경읍으로 가지만 문경과 점촌간 거리가 24km정도로 상당히 먼 편이다.
오른쪽엔 백동마을이 보이고 왼쪽으로 평지저수지가 보입니다. 지맥길이 울타리로 막혀있어 수로를 따르는 지점으로 문경시 산양면 반곡리에서 평지리로 들어섭니다.
♤ 923번도로/ 백동고개/ 산양면 진정리 - 반곡리
흥부농장 앞으로 나와 오른쪽 도로따라 가면 고공수로와 평지저수지가 보인다. 923번 지방도 따라 과수원이 있는 평지저수지 농로삼거리에서 고공수로를 지나 언덕으로 오른다. 왼쪽으로는 평지저수지가 보이고 오른쪽에 백동마을이 보인다. 백동마을 임도 갈림길에서 직진한다.
♤ 문경시 산양면 반곡리 뱀골(백동)마을
뱀골이라고도 부르는 백동마을은 뱀같이 길고 꾸불꾸불하게 생긴 골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또 이곳에 백사(白蛇)가 많이 있었다고 하여 백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묘지를 지나서 고추밭 아래로 내려간다.
♤ 문경시 산양면 평지리(平地里)
문경시 산양면 평지리는 마을 전체가 낮은 산지를 이루며, 농경지가 분포한다. 자연마을로는 상평지, 중평지, 하평지, 새발재 등이 있다. 상평지는 마을 개척 당시 큰 못이 있어서 주위보다 산세가 낮다 하여 평지못골로 칭하던 곳인데 현재는 평지, 또는 제일 위쪽에 위치한 곳이라고 하여 상평지라 부르며 중평지는 마을이 중간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하평지는 옛날에 기와집이 많이 있었다고 하여 기와집이라 부르기도 한다. 마을 아래에 옛 삼사지(三沙池)가 있어 못골이라고도 부르고, 바로 위에 있다 하여 직상(直)이라 하기도 한다.
♤ 새발재/ 봉강(鳳崗)/ 봉계(鳳溪)/ 갈림삼거리
마루금 왼쪽으로 펼쳐진 평지저수지를 지나고 얕은 봉을 이어가는 수로를 따라 오르내리다 공중수로 아래를 지나는 포장도로 갈림삼거리 새발재에 닿는다. 산양면 평지리 평지저수지 옆에 있는 새발재는 1719년 조선 정조 때 인동인(仁同人) 장극찬(張極燦)이란 분이 산북 내화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와보니 산이 낮고 평평하여 새가 밭에서 나는 형상같기도 하고, 산이 새의 발같기도 하여 새발재 또는 봉강이라 불렀다 한다. 잡목이 많은 야산의 능선을 내려오면 포장된 농로를 만나고 앞쪽 봉우리로 육각정 정자(일월출정)가 보이면 곧바로 좌틀해야 한다. 수로와 나란히 가며 내려가면 원두막형 사각정(봉계쉼터)에 닿는다.
♤ 923번도로/ 산남로/ 화곡재/ 면계/ 문경시 산양면 평지리 - 영순면 의곡리
봉계쉼터에서 도로 따라 왼쪽으로 약 3분쯤 가면 923번도로와 만나는 삼거리에 닿는다. 도로 뒤쪽으로는 평지저수지가 있고, 지맥은 923번도로 의성방향으로 가다가 오른쪽 산길로 오르는데 923번도로를 따라 맥길을 이어가다 이 고개에서 문경시 산양면을 벗어나 온전히 영순면으로 접어든다. 923번 도로의 오른쪽 산길을 오르면 약 116m의 무명봉을 지나고 116m봉에서 넓은 임도를 따라 내려서면 앞쪽으로 사과과수원이 보인다. 지맥은 과수원 직전에 왼쪽 수로가 지나는 곳을 따라야 한다.(독도주의) 수로를 따라 야산을 넘어 다시 923번 도로에 내려서고 오르막 도로를 따른다.
♤ 문경시 영순면(永順面)
문경시 영순면은 문경시 동남단에 위치한 면으로 동쪽은 예천군 용궁면, 서쪽은 점촌동·상주시 함창읍, 남쪽은 예천군 풍양면, 북쪽은 산양면에 접해 있으며 동남부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구릉과 평야지대로 동쪽과 서쪽을 경계 지으며 남북방향으로 흐르는 금천과 영강이 낙동강에 합류하고 있다. '영순'이라는 지명은 고려시대 영순현(永順縣)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인데, 『고려사지리지』에 "세상에 전하기를 이 주(상주) 북면 임하촌(林下村)의 태(太)씨 성을 가진 사람이 반역자를 잡은 공로가 있었으므로 그 촌을 영순현(永順縣)으로 승격시켰다고 한다."라는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세종실록지리지』(상주)와 『신증동국여지승람』(상주)에도 영순현이 만들어진 유래와 그곳이 곧 임하촌이라는 관련 기록이 확인되는데 본래 조선시대 상주목 영순면(永順面) 지역으로, 『호구총수』 (상주)와 『여지도서』(상주)에 영순면이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에 영순면이 상주목 읍치 위쪽에 표시되어 있다. 1906년 상주군으로부터 분리 편입되었고, 1914년 영순면을 중심으로 용궁군 서면·구읍면, 함창군 동면의 여러 동리를 합쳐 영순면으로 하여 현재의 11개 동리를 관할하게 하였으며 1986년 문경군에, 그리고 1995년 문경시에 속하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영순면 소재지 의곡리(蟻谷里)
마을 서쪽으로 영강이 흐르며, 주위에 충적평야가가 펼쳐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감골, 갬실, 도연, 정골, 퇴안 등이 있는데 감골은 김해 김씨가 이곳에 처음 정착하였을 때 가가호호에 감나무를 심었고 심지어 밭둑에도 감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감골이라고 하였다. 갬실은 남원 양씨 양응해라는 사람이 이곳을 개척하여 정착하게 되었을 때 지형이 개미의 혈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갬실이라 명명하였으며 도연은 마을 앞에 큰 못이 있었는데 어느 해 큰 홍수가 나서 이 못이 매몰되어 없어지고 그 자리에 길이 만들어졌다고 하여 도연이라 부르게 되었다. 정골은 골짜기가 너무 조용하고 정적만 울린다고 하여 정골이라 하였다. 퇴안은 비만 오면 마을 전체가 물에 갇혔다가 비가 멈추면 물이 빠져나갔다 하여 물안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후 안동 권씨 초은 권병선생이 이곳에 이주하면서 다른 성씨와 대동단결하여 편안히 잘살아보자는 뜻에서 마을 이름을 퇴안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 청림조경삼거리/ 영순면 의곡리 - 사근리
비산비야의 지맥으로 도로를 따르다 청림조경 삼거리에서 왼쪽 방향으로 들어선다. 고갯마루턱에 올라서면 왼쪽으로 공장(동양ENG)이 보이는 포장도로로 지맥을 이어간다. 원지맥은 공장 건물 뒷쪽 과수원이 있는 120m봉으로 올라야 하나 길이 없고 다시 왼쪽으로 내려와야 해서 도로로 진행한다. 오른쪽은 영순면소재지로 향한다. 영순면 소재지인 의곡리 시내 도로를 따르면 영순면사무소-치안센터-농협삼거리를 지나 사근리로 들어서서 영순중앙교회쪽으로 향하고 교회앞의 924번 도로(영순로)에 도착하여 도로따라 걸으며 사근1리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영순초등학교-글로벌 선진학교 문경캠퍼스앞을 지난다.
♤ 문경시 영순면 사근리
사근리는 낙동강 서쪽 연안의 평지지역으로 자연마을로는 남산마, 무림, 방고개, 사근절, 새터, 서낭댕이, 엄촌, 재궁마, 진촌, 추촌 등이 있으며 남산마는 무림의 남쪽 산밑에 마을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무림은 마을을 개척할 당시 주변이 무성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사근절은 마을 뒷산에 사근절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새터는 옛날에 이곳에 한 길이 생기고 난 뒤 이 길을 중심으로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샛터라 불려지고 있다. 서낭댕이는 옛날 성황당을 짓고 무림동민의 무사안녕을 기원하였던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엄촌은 영월인 엄사현이라는 사람이 정착하부터 부르게 된 이름이다. 재궁마는 개성 고씨 가문에서 재사를 두 동 건립한 후 재사 관리인이 이곳에 거주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진촌은 추실이라는 사람이 추촌에 정착한 이후 여양 진씨들이 들어와 거주하면서 부르게 된 이름이다. 추촌은 추실이라는 사람이 이 마을을 개척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글로벌 선진학교 문경캠퍼스
글로벌선진학교(Global Vision Christian School)는 미국의 AP교육과정으로 운영되는 국내의 인가된 국제화 대안학교로 한때 박찬원이라는 무도인이 학교 전체를 휘잡는 등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후에 박찬원이라는 무도인의 전설은 모든 학생들의 교과서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다. 이사장은 남진석이며 2003년에 음성캠퍼스를 개교하였으며 2011년에는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에 있는 옛 영순중학교 부지에 분교인 문경캠퍼스를 개교하였다. 2015년에는 미국의 펜실베니아 캠퍼스를 개교하였고 2017년에는 세종에 교육센터를 개교하였다. 또한 2018년에는 GEFE(Global Education Fair in Europe)을 독일 프랑크프루트에서 개최하였다.
블루베리 농장 입구를 지나 왼쪽 언덕배기에 있는 흰 건물의 사당 앞으로 올라갑니다.
♤ 사근버스정류장/ 경주김씨 계림군파 선화당
사근리버스정류장삼거리에서 오른쪽 무림길로 들어서면 고공수로가 있고 도로따라 10분 정도 가다 송아리블루베리 농장을 지나 밤고개로 가는 도로를 버리고 왼쪽으로 올라 민가처럼 생긴 경주김씨 계림군파 선화당을 바라보면서 걷는다. 계림군파 묘비앞을 지나고 천마산을 바라보며 농로 가운데를 걷다가 농로삼거리에서 왼쪽 숲으로 올라선다. 황톳길에서 왼쪽으로 꺾어져 뚜렷한 임도를 따라 무명봉(110m)에 오르고 우틀로 90도 꺽어져 밤고개를 바라보며 밭아래로 내려선다. 개인주택 마당으로 밤고개에 내려서서 무림 2길 방향으로 들어서면 마을길이고 마을길로 들어서 마을 끝에서 양회임도를 벗어나 오른쪽으로 올라서 능선에 오르면 다시 양회임도와 만난다. 양회임도를 지나면 산길로 이어지고 묘지가 드믄드믄 있고 길은 반듯하다.
♤ 밤고개(114m)/ 서낭당안부/ 팔각정
문경시 영순면 사근리 무림 마을에 있는 고개로 방고개라고도 부르는데, 양방향 길은 넓은데 묵어가고 돌무더기가 낮게 쌓여 옛날 흔적이 보인다. 길은 잡목없이 좋다. 방고개는 아주 신씨 휘각이란 사람이 마을을 개척할 당시에 방을 붙였던 곳이라고 하여 방고개라 하였다는 설과 밤나무가 많았던 곳이라고 하여 밤고개라 하였다고도 한다. 무림길을 따라 밤고개에 도착하고 이곳에서 지맥은 오른쪽 무림2길을 따라 민가의 맨 끝까지 올라가 무림2길 끄트리집 갈림길에서 오른쪽 산으로 오르는 임도를 따른다.
♤ 202.5m봉
직진으로 뚜렷한 등로가 보이나 맥길은 오른쪽으로 90도 급하게 꺽어진다. 오른쪽 아래로는 등로가 보이지 않으나 선답자들 띠지가 많아 알바할 염려는 없다.
♤ 도장산(236.2m)/ 영순면 사근리 - 말응리
꽤 넓은 벌목지대를 지나 오르는 봉으로 영순면 사근리와 말응리의 경계에 있다. 정상부에 준희선생님 산패와 힘힘힘 격려 산패가 있고 정점 직전에서 왼쪽 사면으로 비켜서 간다.
♤ 석봉(石峰, 262m)
지도상에는 엄연하게 석봉이라 표기가 되어 있는데 맥꾼들에겐 인정을 받지 못한 모양이다. 정상에 시그널만 여러개 걸려 있고 맥길은 왼쪽으로 내려간다.
♤ 도장골재
문경시 영순면 사근리에서 금밭골로 내려가는 고개 안부로, 문수사를 가리키는 날개가 땅에 떨어져 있었는데 그마저도 어디로 사라지고 없다. 날개 없는 이정표가 서 있다.
♤ 영강(潁江)합수처 갈림길/ 삼리봉(영순면 사근리, 말응리 → 이목리)
안부에서 올라서니 장의자 세개와 이정표가 있다. 숭덕지맥의 마지막 군암산과 마주하는 영강 합수처는 오른쪽 능선으로 괴포고개로 내려가 217.3m봉을 넘어 말응리 합수점에 이르며, 삼강교는 좌로 직진해서 간다. 오른쪽으로 낙동강이 내려다 보인다. ※ 영강합수점 ~ 하풍버스정류장: 1.4km
♤ 천마산(天馬山, 274.4m)/ 산불감시초소
정상은 넓은 공터에 산불감시초소와 정상석, 이정표, 소나무 아래 장의자가 놓였다. 독도대선배님 힘!힘!힘!힘! 코팅지가 나무에 매어 있다. 정상은 널찍한데 아까시아 잡목이 우거졌고 오른쪽으로 낙동강이 내려다 보인다. 문경시 영순면 이목리· 말응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북서쪽으로 백두대간 능선이 조망되고, 바로 앞에는 영순면 들녘이 보인다. 동쪽으로 낙동강이 보이고 강 너머로 보현지맥 비봉산에서 내려오는 능선과 예천군 풍양면의 들녘이 시원스레 보인다. 천마산은 높이는 낮지만 문경시의 남쪽 끝에 솟아 정상에 서면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데 옛날에는 산기슭에 나루터가 있어 많은 배들이 드나들었다고 하며 그래서 지금도 이목 1리를 금포, 이목 2리를 백포라고 부른다. 해장골에는 작은 암자인 해장사가 있다. 우틀로 휘어져 소나무숲길로 내려선다.
천마산에서 잘 가꾸어진 길을 따라 내려서며 지맥의 왼쪽이 영순면 사근리에서 금림리로 바뀝니다.
♤ 222.3m봉
부드럽게 지나가는 능선으로 좌틀로 간다. 해주 오씨 묘지 바로 아래 이정표(천마산 1.6km 삼강표 3.7km)와 119 구조 말뚝(위치번호 A-11)이 있다. 삼강교는 오른쪽으로 내려가고 마루금은 직진하는데 바로 앞에 큰고개 절개지가 높아 오른쪽 삼강교 방향으로 비켜서 간다.
♤ 205.8m봉/ 영순면 금림리 - 달지리
큰고개로 내려서기 직전 봉우리로 지맥의 왼쪽이 금림리에서 마지막 달지리로 바뀌어 큰고개로 내려선다.
♤ 문경시 영순면 달지리
달지리는 문경시 영순면에 있는 리로서 마을 동쪽으로 낙동강이 흐르며 그 주위로 평야가 펼쳐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달늪, 삼인, 한밤 등이 있으며 달늪에는 산북 방면과 안동 방면에서 흘러내리는 강물이 만나서 넓다란 늪지대가 형성되어 있는데 달봉산 아래의 늪이라 하여 달늪이라는 지명이 붙여졌다고 한다. 삼인은 마을 뒷산 숲속에 새들이 많이 모여 와서 잠잔다고 하여 새미라 호칭하던 곳으로 그 후 선조 때 이곳의 강씨 3형제가 모두 과거에 합격하였는데 경상감사가 용궁현에 순시차 들렸을 때 이 3형제가 배알하는 자리에서 이들이 새미에 사는 누구라고 하자 감사가 어진 선비 셋이 난 곳이니 마을 이름을 삼인이라고 하는 것이 어떠냐 해서 그 후로 새미는 삼인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밤은 마을 개척 당시 주변에 밤나무가 많아 붙여진 지명이다.
♤ 큰고개/ 2차선포장도로
천마산에서 약 30분 거리이다. 포장도로에 이정표(삼강교 3.6km, 문수사 4.9km, 천마산 1.7km)가 서있고 왼쪽 고갯마루에 이동 통신탑이 보이는 곳으로 간다. 문경시 영순면 달지리와 이목리를 연결하는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곳으로 절개지가 높아 위치번호 A - 11 말뚝에서 사면길로 와야 한다. 통신탑 뒤로 올라서면 진주강씨 묘지가 오름길에 있다.
♤ 199.5m봉
잡목없이 좋은 길이 이어지고 준희선생님 산패가 소나무에서 불을 밝히고 있다. 199.5m봉을 지나 내려서면 다시 달봉산 오르는 등로가 시작된다.
♤ 달봉산(236m)/ 육각정(백석정)
육각정자와 널찍한 공터에 정상석이 반듯하다. 문경시 영순면 들녁과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고 멀리 문경 점촌시가 바라보인다. 보현지맥의 비봉산과 한번 더 눈을 맞추고 급좌틀로 꺾어 내려서면 등산로가 잘 나있고 계단따라 내려간다.
♤ 윗골고개/ 양회임도
양회임도에 이정표(삼강교 1.5km, 천마산 3.5km)와 119 구조 말뚝(A - 13)이 있고 띠지가 보이는 절개지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10여분 진행하면 묵묘 1기가 있고 묘지 뒤로 빙 돌아 우틀로 휘어져 진행한다. 마지막 봉에서 용화사로 내려오는 능선 약 100m는 흐릿하고 잡목과 가시 덩쿨이 많아 애롭다. 게다가 가파르기까지 하다. 삼강교와 삼강주막쪽 풍경이 보이기 시작하며 급경사의 내리막 등로는 지혜롭게 왼쪽으로 휘어져 산허리를 도는데 직진으로 계속 내려가기에는 너무 급경사 비탈이다.
♤ 삼강교/ 용화사
금천과 내성천이 낙동강과 합수하는 문경시 영순면 달지리 삼강교에서 운달지맥을 마무리 한다. 삼강교 북쪽에 문수지맥 합수점이 보이고 삼강교를 건너면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로 유서깊은 삼강주막이 나온다. 용화사에서 삼강교 출입구 방향으로 걸어가니 임도 왼쪽에 민가 두채가 보이는데 그곳이 바로 예전에 주막이 있었던 백포나루이다. 백포나루를 지나 삼강교 밑을 통과한 왼쪽으로 오르니 드디어 삼강교 초입에 도착한다.
♤ 영순면 원달지
원달지는 경북 문경시 영순면 달지리에 있는 마을로서 삼강 나룻터에서 올라온 산골짝 안에 있는 나루터 마을이다. 산양방면과 예천방면에서 흘러오는 금천과 내성천이 낙동강과 합수하여 넓은 늪지대를 형성하였는데 달봉산 아래의 늪이라 하여 달늪이라고 하며 옛날 낙동강 소금배가 이곳까지 거슬러 올라와서 문경과 예천 지방에 소금을 공급하였으며 또 이곳 갯벌에서 생산되는 무와 배추 등이 유명하여 널리 각 지방으로 반출되는 등 농산물집산지로 촌락을 이룬 곳이다.
♤ 내성천
내성천은 경북 봉화군의 물야면과 봉화읍을 흐르는 하천으로 백두대간의 선달산과 문수지맥의 문수산에서 발원하여 물야면과 봉화읍을 지나서는 영주시와 예천군을 거쳐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고장에서는 가계천과 창평천이 만나는 봉화읍 삼계리 부터가 내성천의 본류라고 부르는데 삼계리도 세 곳의 물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대동여지도에 의하면 봉화군 내성천 상류에 물야계 또는 소천이 묘사되어 있을 뿐 내성천 지명은 고지도의 어디에도 보이지 않으며 이 지명이 지도에 처음 쓰이기 시작한 것은 조선지형도이다. 지명은 군의 내성면에서 유래하였다.
* 에필로그
운달지맥은 두개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첫날 막차로 내려가서 대미산에 올랐다가, 여우재에서 비박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여우재에서 출발하는 계획, 자실고개에서 수루재까지 기왕에 우회하는 코스라니 봉천사 개미취축제를 구경하기로 했지요. 대미산에서 내려서다가 등뒤가 서늘한 느낌이 들어 어플을 바라보니 등곡으로 가고있네요. 밤새워 등곡으로 알바 할 뻔 했습니다. ㅋ 봉천사 개미취축제에 더해 천수백년 역사를 가진 산신각도 둘러보았습니다. 열쇠가 잠겨져 있지만 문을 열 수 있을 것 같아 안을 들여다보며 덜그럭거리는데 왼쪽 위에서 웽웽웽~ 하는 소리에 뒤도 안돌아보고 내뺏는데 벌집이 있더군요. 안 쏘이느라고 다행이었습니다. 첫날에 여우목재 여우정에서 비박할렸는데 센스있는 직원분이 출입문은 잠그고 창문을 열어두셔서 감시초소 신세를 졌습니다. 그런데 추워서 한시간에 한번씩 깼습니다. 겨울잠바를 하나 더 챙기는건데.. ㅠㅠ
운달산 직전 김룡사에서 올라서는 장군목에 대해선 저도 이모저모로 살펴보며 유래에 대해 고민했는데, 결론은 장군봉(963.7m)이었습니다. 다만, 어느 동네에서 바라 보았을때 장군의 머리 형태인진 증명하지 못했지만 장군봉 좌우에 장군목이 있다는 사실이 장군봉 이름의 실전을 말해준다고 보였습니다.
활공랜드 매점에서 식수와 간식을 보충할렸는데,,, 페러글라이딩을 준비중인 60초중반 아저씨께 물을 구할 수 없느냐 묻자 그 황급한 순간에도 "화장실까지 모두가 폐쇄되어 아무것도 구할 수 없다"고 급하게 답변해 주시더군요. 아!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물을 더 준비하든지 아껴서 마시는건데 하며 후회했지만 새터재까지 사탕 10개와 물 250cc를 믿고 가야 했습니다. 다행히 단산데크전망대에서 아래를 바라보니 등산객이 떨어뜨린 물병이 보이네요. 가시덤불 아래 물병은 개봉하지 않았고 2023. 6. 29일 날짜가 찍혀 있었습니다. 여름이 아니고서야 새터재까지 가는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만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
달고개에 다가서면서 고민을 하였습니다. 봉천사까지 서너시간 야간행군으로 천수백년된 산신각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느냐, 마느냐 다행히 놋점마을 정장로님의 은혜로 따뜻한 전기장판으로 허리를 지졌지만 산신각까지 갔더라도 잘 수 있는 형태의 산식각이 아니라 벼랑박에 산신령만 그려져 있는 누울 공간이 없는 산신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월방산에서 산신각을 구경하고 다시 빽하는 방법이 좋겠더군요. 산신각에서 봉천사로 향하며 바위작품 감상을 하는건 좋았지만 갈길이 먼데 너무 우회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km 정도는 더 돌았습니다. 제가 보기엔 운달지맥은 순한 지맥에 속했습니다. 다만 달고개에서 시간반 가면 360.6m봉에 오르는데 악마의 구간으로 가시덤불 속에 갇혀 앉아서 울뻔 했습니다. 기어가며 일어서다가 머리에 아카시아 가시가 박히기도 했구요. 요 구간 눈딱 감고 잠깐 우회하시면 운달은 아주 쉽습니다.^^ 밤고개에서 236.2m에 올라 내려가며 잠깐 가시덤불이 있구요. 마지막 용화사로 내려서는 급경사 100m구간에는 후답자분들이 보다 안전하게 내려서시도록 눈에서 놓치지 않게 홀대모 띠지를 촘촘히 매달아 두었습니다. 뒤풀이는 점촌터미널에서 짜장면 한그릇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연 3일...지맥 졸업 축하 드리구요...
수고 무지 하셨네요.
고문님!^^
늦잠자고 좀전에사 일어났습니다.
어제 후기를 마감하고 잘려고 올라오는 버스에서 푹 잤거든요.
후기 마치고 네시쯤 잤나봅니다.
오후 1시에 응봉으로 운동 나오라니 실실 준비해야 합니다.^^
힘든 지맥이었다면 무릎 통증으로 걷기 조차 불편했을텐데 그렇진 않네요.
추석 연휴 온 가족들이 모여 풍성한 한가위 보내셨죠.
어디 산에는 안 가셨나요.^^
우와 ~겁나부러요~~!!
나는 아주오래전에 화요맥사랑에서 소형버스로
운행하며 산나물도 캐고 두릅도 따면서 신선놀음 했는데...
무지막지 하시네요. 이제 부럽기도하고~!!??
산과계곡대선배님!
추석명절 잘 쇠셨는지요.
해외로도 50개국을 넘게 다니셨으니 이제 갈 곳이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대선배님의 강따라 물따라는 계속 진행 중에 계시고....
응봉에서 운동 마치고, 저녁겸 머릿고기에 막걸리 한잔 하고 들왔습니다.
손가락 등에 박힌 가시가 빠지지 않아 두 군데가 곪고 있는 중입니다. ㅋ~
아마도 낚시바늘 처럼 생긴 찔레나무 가시가 아닌가 싶네요.
달고개에서 놋점마을로 내려가 어디 빈집이나 마을회관이 있는지 물어보니
마눌이 서울에 가 혼자 계신다고 자고 가라고 하시네요.
서울 상계/ 노원이 댁이시고, 따님 시집 근처에 헌집을 사서 리모델링을 하셨답니다.
덕분에 편안하게 하룻밤 보냈고, 비박장비는 쓰지도 않고 첨부터 끝까지 메고만 다녔습니다.^^
운달지맥 한번에 마무리 하셨네요
예전 우리는 19년 4월20일 1구간 05월4일 2구간 마무리 했네요
거리가 많이 나와서 보니 여우목고개에서 분기점 찍고 내려 오셨군요
우리는 등곡지맥을 하면서 여우목고개에서 대간길을 따라서 분기점에서 등곡지맥을 했지요
그래서 운달지맥 산행시는 여우목고개에서 운달산으로 올랐네요
그래서 거리 시간이 맞지 않아서 의야해 했는데 접속 분기점 찍고 오는 거리가 만만치 않는 6.0km
정도 되는것 같습니다
운달산 정상석도 바뀌고 문경활공장도 새롭게 단장 되었네요
활공하는 모습이 넘 부렵고 모노레일도 있다던데 언제 한번 더가고 싶은 곳이네요
비박까지 하면서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봉천사도 둘려 보시고 우리는 패스 했는데 정말 일출 명소도 장관입니다
개미취 꽃도 장관이네요
인심 좋은 집에서 하룻밤 신세도 지시고 좋은 추억도 많이 남기시고 수고 하셨습니다^)^
와룡산선배님!
운달을 4년 전에 하셨군요. 띠지는 어제 한 것처럼 따끈따끈했습니다.
제가 원칙론자는 아닌데, 등곡을 먼저 했다면 저도 여우목재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요.
나중 등곡에서 할거라며 외상을 깔아 놓을 수도 없어 다녀왔는데 의외로 길이 좋았습니다.^^
대미산 다녀오는데 6.2km, 달고개에서 놋점마을 다녀오는데 1km, 산신각에서 봉정사 찾아가는데 1km 추가 되었습니다.
활공랜드에는 행글라이더 빼고는 사람 한명 찾아 볼 수가 없었구요.
식수는 첫 구간을 새터재로 준비하고 출발해야 하겠더군요.
봉정사는 개미취축제때문에 더더욱이나 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만 우회하지 않더라도 월방산에서 산신각도 꼭 다녀왔음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운달지맥을 한달음에 해치우고 나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집니다.
교통, 식수, 난이도, 역사 등 준비하는 과정의 세밀함이 돋보이고
산줄기 전체를 일목요연하게 일별할 수 있게 정리하는 수고로움이 역력합니다..
운달하면서 겪었을 에피소드 몇몇이 미소를 머금게 하네요.
대미산에서 등곡으로의 이탈, 단산전망대 아래의 물병 줍기, 달고개 근처의 덤불 고행,
산신각 벌과의 달리기 경주, 봉천사 도토리묵 무료 시식.....
범산이 마르고 닳도록 쏘다녔던 고향 산천인데도,
저번에 운달하면서 보니 변한 것도 많고, 새로운 것도 많이 보였었네요.
월방산 주변을 몇 번 오른 적이 있었지만 말씀하신 산신각은 금시초문이었답니다.
가시덤불에 갇혀 앉아서 울 뻔했다는 그 말이 격하게 와 닿습니다.
그리고 합수점 발 담그는 신발에 새겨진 주름이 90고개 어르신들 주름보다 거룩해 보였답니다.
산과 더불어 일상을 병행하는 인생 여정에서 늘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범산선배님!
오늘 오후는 뚝섬유원지역 인공암벽에서 보내다 출근했습니다.
응봉은 그늘이라 이제 을씨년스러워 남향인 뚝섬에서 땀을 흘리며 한낮을 즐기는게 나은것 같습니다.
일,월 이틀은 선운산 속살과 투구를 가기로 했네요. 해서 내일은 운동을 쉬어주어야 할것 같습니다.
산행기는 선답자님들의 후기를 종합 정리한 거라고 봐주심 될것 같습니다.
지맥에 들어서지만 바빠서 공부하기 힘든 분들이 한번에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이 되었음 하는 마음입니다.
보다 많은 후기를 숙독해야 하는데, 예닐곱개가 고작이라 아쉬운 점입니다. 열댓개는 읽었음 싶은데요.
현재 길은 것부터 30개 정도 지맥을 대충 정리했고, 다녀와 사진과 추가사항만 보충하면 되도록 준비했습니다.
저는 아무리 용을 써도 범산선배님처럼 예술적인 산행기에는 닿지 못합니다. 재미있게 보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70km가 넘는 산줄기를 단박에 걸어 내셨네요.
우리는 두번으로 갔어도 쎄빠지게 걸엇는데요.
첫날 달고개에서 끈엇는데 점촌택시는 안 온다고 해서 문경택시를 불러서 여우목재로 올라 갔구요.
지도에는 923번 도로로 표기되여 있는데 그 길은 마전령을 넘어가는 비포장 임도였습니다.
조향령에다 보급품을 두고 여우목재로 가는데 엄청나게 돌아서 가데요.
만전령을 넘어가면 지척인데 참 난감했습니다.
운달지맥 원삿종주 축하합니다.
부뜰이성님!
달고개에서는 산북에서 동로로 넘어가 여우목고개로 가야할것 같은데
중간에 조항령을 들려야 하다보니 경로가 애매하셨군요.
마전령은 지방도로이긴 하지만 달구지가 넘나드는 임도식이라 오프로드 차량도 힘들게 보였습니다.
저는 이번에 튀김건빵 하나만으로 완주했습니다.
첫날 문경읍에서 김밥을 사서 저녁과 아침으로 먹고 출발했고,
새터재에서 낙과 하나 먹고, 달고개 장로님이 컵라면에 밥을 말아주셔서 김치와 맛있게 먹었습니다.
진정사거리에서 점심 사먹고, 복지회관에서 웨하스와 캔음료 세개 사서....
웨하스는 점촌 터미널에서 캔음료와 먹고 라면땅과 단백질바는 그냥 가져왔어요.
아! 봉천사에서 도토리묵과 살구음료를 네잔 마셨네요.^^
무게 때문에 먹거리를 최소한으로 줄일려 노력하는데 현재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와... 역시 ~~
반갑고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네요 ㅎㅎ
추석 명절은 잘 쉬셨는지요....
운달지맥을 원샷으로 끝내버리셨네요~
날이 많이 추웠을텐데~
그 누구의 도움없이 혼자 생으로~ 그대로 부딪히며 이겨내는 그 모습에
정신 승리가 따로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고통을 이겨낸 인간적인 그 마음에 감격하며~ 박수 보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늘 안전산행 이어가시길 응원합니다 홧팅입니다. ^^
나케님!
저는 추석에 특별히 갈 곳이 없어 근무를 자원했습니다.^^
봉천사 개미취를 먼저 다녀오셨지요.
저도 개미취를 볼 요량으로 운달을 선택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배너미산에서 신선봉으로 내려서는데 한분이 송이를 채취하며 올라오시더군요.
제가 여우목재에서 부터 왔다고 하니 요즘 민감한 시기라 지나오기가 어려웠지 않았느냐 묻던데
그럼 말방울을 딸랑거리고 가겠냐며,
임산물을 채취하지 말라는 경고문은 많이 보았지만 그런거엔 관심도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산행에 활공랜드에서 만난 행글라이더 분들 말고는 그분 딱 한분 보았습니다.
봉천사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구요. 돌리네 습지를 구경하는 분들도 꽤 계셨습니다.^^
퐁라라운영자님
연휴 3일 동안에 운달지맥도 거침없이 질주하여 끝을 보고야 말았군요.
내성천, 금천, 낙동강의 삼강합수점에서 운달지맥 졸업을 축하드려요.~
야심한 밤에 여우목에서 대미산 왕복도 만만치않고 .. 지칠 줄 모르는 체력도 여전하십니다.
단산 활공장 주변의 파란 하늘도 드러나고 망중한의 심정이던 때가 생각나네요.
해맞이전망대도 인파로 붐비고, 짬뽕 맛이 절로 구미당기게 합니다.
상세한 산행담을 즐감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방장님!
여우목재에서 대미산까지의 왕복은 똥벼락님이 정리를 잘 해주셨더군요.
여우목재에서 대미산까지는 접속구간이고, 운달지맥은 대미산에서 시작하는데,,,
여우목재에서 첫 봉우리 돼지봉/ 여우봉까지가 약간 된비알이고, 이후부턴 능선이라 편안한 길이 이어집니다.
운달지맥의 마지막이 삼강주막이지만 또 한 군데 영강합수점을 가보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작약지맥을 하며 좀 더 가까이 돌아볼 기회가 닿을런지 모르겠네요.
운달지맥의 주연으로 활공랜드를 잡아야 할지, 봉천사를 잡아야 할지,, 조연은 성주봉과 천주봉이고 배경은 백두대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