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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보다 끝이 좋은 인생 (열왕기상 11:1-11)
끝이 좋으면 다 좋다.”(All’s Well That Ends Well.)는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희극
제목입니다.
인생에는 처음(시작)과 중간, 그리고 나중(끝)이 있는데, 굳이 택한다면 나중이 좋은 것이 좋습니다.
지금이 좋은 인생보다는 10년 후가 좋은 인생이 더 좋고, 10년 후보다 끝이 좋은 인생은 더 좋습니다.
학생의 수석 입학도 좋지만 수석 졸업은 더 좋습니다.
오늘은 힘들고 고생하여도 내일이 좋다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여 결혼행진곡을 울리고 백년해로하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서로 갈라서며 군대행진곡을 울리는 부부들도
있습니다.
개인이나 가정, 교회나 국가도 현재보다 미래가 좋아야 합니다.
반면에 시작은 좋았으나 끝이 좋지 못한 사람이 있는데, 솔로몬왕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솔로몬왕의 인생 시작과 대부분은 너무도 좋았습니다.
위대한 왕 다윗의 아들로 태어난 솔로몬은 요즘 식으로 말하면 금수저입니다.
수저계급론(spoon-and-chopsticks class theory)은 영어 표현인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유럽 귀족층에서 은식기를 사용하고, 태어나자마자 유모가 젖을 은수저로 먹이던 풍습에서 유래한 말로,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직업, 경제력 등으로 본인의 수저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청년 실업과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 문제가 심각해지자 부모의 직업, 경제력 등에 따라서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심지어 손가락 빨면서 나온 사람 등으로 지칭합니다.
솔로몬은 다윗왕가의 아들로 태어났고, 많은 아들들 중에서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다윗왕의 아들들 중에서 압살롬과 아도니야는 왕이 되려고 하다가 죽음을 당했습니다.
다윗왕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싶어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아들을 세워 성전을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솔로몬은 다윗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되고, 성전을 건축할 자로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기브온 산당에서의 일천 번제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였고, 응답을 받았습니다.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열왕기상 3:10)
솔로몬은 하나님께 구한 지혜뿐만 아니라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받았고, 어떤 왕보다 뛰어나도록 받앗습니다.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열왕기상 3:12-13)
그래서 솔로몬은 ‘지혜의 왕’으로 불립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쪽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열왕기상 4:29-30)
많은 왕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자 사람들을 보냈고, 스바(아라비아반도 남쪽 지금의 예멘 부근으로 짐작)의 여왕이
찾아왔습니다.
솔로몬왕 때에 이스라엘은 가장 영토를 가졌고, 주변국들까지 다스리고 조공을 받았습니다.
“솔로몬이 그 강 건너편을 딥사에서부터 가사까지 모두, 그 강 건너편의 왕을 모두 다스리므로 그가 사방에 둘린
민족과 평화를 누렸으니,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 (열왕기상 4:24-25)
나라가 부강하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를 누리며, 최고의 안정과 번영의 시기였습니다.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같이 많게 하였더라.” (열왕기상 10:27)
이렇게 말할 수 없는 복을 받으며 출발한 솔로몬은 차츰 탈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풍요와 영광을 누리자 많은 여자들을 사랑하였으며, 이방 여자들도 가리지 않고 통혼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열왕기상 11:2-3)
하나님께서 왕의 자격으로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고 하셨고, 이방 사람들과는 통혼하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하셨으나
솔로몬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신명기 17:17)
솔로몬왕의 시작은 좋았습니다.
일천 번제를 드리고 기도하며 왕정을 시작하였고, 겸손하게 지혜를 구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
아버지 다윗왕의 숙원이었던 성전을 건축하고 자기의 왕궁도 건축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부귀와 영광, 국가적 평안함과 강성함, 경제적 풍요를 누렸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다른 왕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왕은 차츰 변질되고 하향 곡선을 그렸습니다.
솔로몬은 애굽의 바로와 혼인 관계를 맺어 바로의 딸을 아내로 맞았습니다.
아마도 애굽과의 관계를 위해 정치적인 목적으로 바로의 딸을 아내로 삼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여자들을 좋아하여 천 명이나 되었고, 그 여자들이 이방 여자라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솔로몬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들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열왕기상 11:1)
솔로몬왕은 많은 여자를 사랑하고, 거기에 이방 여자들을 사랑하는 잘못을 더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서 출발한 솔로몬이 여자들, 이방 여자들, 이방 신들을 사랑하는 것으로 전락하였습니다.
이 여자들이 솔로몬의 마음을 돌려 이방신들을 따르게 하였습니다.
많은 여자를 둔 사람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한 남편과 한 아내가 한 몸을 이루는 것이 맞습니다(창세기 2:24, 디모데전서 3:2,12).
아브라함, 야곱의 가정에 여자들로 인한 불화와 다툼이 있었고, 더욱이 삼손과 솔로몬같이 이방 여자들을 사랑하면
인생과 믿음이 같이 무너집니다.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들과 통혼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신명기 7:1-4, 고린도후서 6:14-16 참조)
남자나 여자가 결혼할 때 자기의 신앙도 가지고 갑니다.
당연히 이방 사람, 불신자들은 자기가 섬기는 종교나 우상을 가지고 갑니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을 섬기는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과 결혼해야 합니다.
성도가 결혼 상대자를 찾을 때 가장 중요한 첫째 조건이 믿음입니다.
불신자와 결혼해도 나중에 믿게 하면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변명이며 자기 합리화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불신자와 통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왕이 이방 여자들을 사랑하여 많이 둠으로써 왕궁에서부터 우상 숭배를 허용한 셈입니다.
왕이 사랑하는 여자들이 우상을 섬기는 것을 막을 수 없고, 그러다 보니 우상 숭배가 온 나라에 쉽게 퍼졌습니다.
또 솔로몬의 여자들이 애굽과 모압과 암몬과 시돈과 헷 출신으로 다양하니, 그들로부터 다양한 우상들이 들어와
퍼졌습니다.
지난 1999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고위층 부인들 사이의 옷로비 사건이 있었습니다.
국회 청문회가 생중계되는 가운데 같은 교회의 교인들끼리 성경에 손을 얹고 서로 반대되는 증언을 하였습니다.
그 사건으로 한동안 문을 닫았던 의상실이 세일 행사를 호텔에서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4,50대 아주머니들 천여 명이 몰려와 할인가라고 해도 비싼 옷들을 싹쓸이하였습니다.
장관 부인들이 입는다는 옷이 어떤 건지 한번 보고, 나도 입어 보자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부자들, 고위층들, 왕족들이 하는 것을 따라하고 싶은 심리가 있습니다.
솔로몬왕의 여자들이 저마다 자기들의 우상을 섬기고, 왕궁에서부터 그렇게 하니 백성들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문제는 지혜의 왕이라 불리는 솔로몬이 지혜에 대해 강조한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언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강조하고 가르쳤음에도 솔로몬 자신은 그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혜자로 불리며, 지혜와 명철을 강조한 솔로몬이 자신은 그 지혜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음녀를 주의하라.”고 가르치고 강조하였으면서 정작 자신은 많은 이방 여자들을 두고 사랑하였습니다.
이방 여자들은 우상을 섬기면서 솔로몬의 마음을 돌이키는 영적 음녀였습니다.
“이제 아들들아 내 말을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되지
말지어다.” (잠언 7:24-25)
솔로몬은 이방 여자들, 영적 음녀들을 많이 두고 사랑하여 음녀의 길로 갔으며,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4절)
죄도 병과 같이 잠복 기간이 있습니다.
숨을 죽이고, 없는 듯이 있다가 세력이 강해지면 존재를 드러내고 주인 노릇하는 것이 죄입니다.
솔로몬의 왕궁에 스며든 우상 숭배와 음녀의 길은 세력을 넓히고 온 나라에 퍼졌습니다.
또한 죄는 슈퍼박테리아(Superbacteria, 항생제에 대한 내성력이 강해져 어떤 강력한 항생제에도 저항하는 박테리아)
보다 끈질깁니다.
죄는 예수님의 피로 씻고, 회개해야 없어집니다.
솔로몬왕은 아름답게, 영화롭게 시작하였으나 점차 변질되어 끝은 타락하고 무너졌습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솔로몬의 마음이 돌아선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않게 되고, 하나님을 향하던 마음이 우상과 정욕으로 향하였습니다.
이런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경고하셨으나 듣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9-10절)
결국 솔로몬이 죽은 후에 나라가 분열되고, 분열된 나라들도 우상 숭배하며 내리막길을 갔습니다.
이 부분도 솔로몬 자신이 잠언에서 가르친 대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잠언 3:11)
성도는 하나님의 경고와 징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라디아서 3:3)
미국의 보험회사 직원이었던 하인리히((Herbert William Heinrich)가 1931년 주장한 법칙이 있습니다.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은 한 번의 큰 재해가 있기 전에, 그와 관련된 작은 사고나 징후들이 먼저 일어나고,
큰 재해와 작은 재해, 사소한 사고의 발생 비율이 1:29:300이라는 것입니다.
하인리히의 법칙은 큰 재해가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전에 사소한 사고 등의 징후가 있다는 것을
말하며, 각종 사고나 사회 경제적 위기를 예방하는데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두 번이나 경고하셨음에도 듣지 않고 내리막을 향했습니다.
성도는 갈수록 하나님을 더 잘 믿고, 더 잘 섬겨야 합니다.
그래서 갈수록 더 복을 받고, 처음보다 끝이 더 좋아야 합니다.
성도에게 최고의 끝은 구원과 영생입니다.
성도의 삶은 항상 해피엔딩(happy ending )입니다.
천국이 있고, 영원한 생명과 상급과 보화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힘들게 살고 고난과 박해를 당한다 해도 영생과 영광을 누릴 성도이기에 해피엔딩입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린도후서 4:17)
대형마트 홈플러스(Home plus)는 “생활에 플러스(+)가 됩니다.”라고 선전합니다.
십자가는 플러스(+)인데, 옆으로 굴리면 곱하기(×)가 됩니다.
성도의 삶은 항상 플러스(+)이고, 믿음으로 살면 곱하기(×)가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천국과 영생입니다.
누가복음 16장의 거지 나사로가 그렇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구원받은 강도가 그렇습니다.
돌에 맞아 순교하였지만 스데반의 최후에 예수님이 그를 맞으셨습니다.
그들의 인생이 해피엔딩이었고, 최고의 끝을 맞았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삶이 좋은 시작입니다.
끝까지 더 잘 믿고 섬겨서 끝이 더 좋은 인생이 됩시다.
솔로몬처럼 시작은 잘하였으나 끝이 좋지 않은 인생이 되지 맙시다.
자신이 지혜와 음녀에 대해 가르치고 경고하고서 스스로 어리석은 자가 된 솔로몬에게서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 믿으면 플러스 인생이고, 말씀대로 살면 곱하기 인생이고, 천국과 영생을 누리는 해피엔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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