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선 9.18 기사
“김정일, 스웨덴式 사회주의 모델에 흥미느껴”
울브라이트 美 前국무 회고록
|
|
▲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의 재임시절이던 2000년 10월 한반도 긴장완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한 뒤 웃으며 건배하고 있다. /조선일보DB사진 |
|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이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Albright·66) 전 장관의 회고록 ‘마담 세크리터리’가 지난 16일 출간됐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중동분쟁과 북한 핵위기, 코소보 사태 등 역사의 현장에서 미국 외교정책을 이끌던 시절을 기록한 회고록에서 ‘은둔의 왕국 내부’라는 제목을 붙인 장(章) 하나를 할애, 북한 핵문제에 관한 자신의 견해와 평양 방문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만남을 자세히 공개했다. 이 회고록의 주요 내용을 발췌 소개한다.
◆ 김정일, “외화벌이 위해 미사일 판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지난 2000년 10월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마주서 보니, 자신도 김 위원장도 ‘하이힐’을 신고 있었으며 키도 비슷했다고 회고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의 인도적 지원에 감사하면서 빌 클린턴(Clinton) 대통령의 북한을 고대한다고 환영인사를 했다. 김 위원장은 “양측이 모두 진심으로 진지하다면 우리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대화를 시작했다.
올브라이트는 미사일 문제에 대한 만족스러운 합의가 없다면 클린턴 대통령에게 정상회담을 권유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측은 당초 북한에 일련의 질문을 서면으로 주고 전문가들이 이 질문을 검토해보고 그날 중으로 대답을 해주면 좋겠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질문 목록을 달라고 하더니 즉석에서 자기 옆에 있는 전문가들과 상의도 하지 않고 그 질문에 대답을 해 내려가 놀랐다고 올브라이트는 밝혔다.
김 위원장은 “시리아와 이란에 미사일을 판매하는 것은 외화가 절박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돈을 벌기 위해 (미사일을) 수출하고 있으니, 보상이 있다면 중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이 쉽게 납득하지 못하자, 김 위원장은 “자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군을 무장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이어서 “한국의 능력도 우려 대상”이라면서 “한국이 사정거리 500km 미사일을 개발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으면 우리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이미 배치된 미사일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면서 “당신들이 부대 안으로 들어가 미사일을 점검할 수는 없지만, 생산을 중단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이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에 가입한다면 북한도 가입할 용의가 있는가”란 질문에 “예스”라고 대답했다.
김 위원장은 “구소련이 붕괴하고 중국이 개방한 이후 두 나라와의 군사적 동맹이 사라진 지도 10년이 됐다”면서 “군부는 최신 장비를 갖추고 싶어하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결상황이 없다면 무기의 중요성도 없다”면서 현재 미사일은 중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
|
▲ 울브라이트 장관
자서전 표지 |
|
◆ “주한 미군에 대한 인식 변했다”
주한 미군과 관련해 김 위원장은 올브라이트에게 냉전 이후 주한 미군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바뀌었다면서 “주한 미군은 안정세력의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북한 군부 내에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대한 찬반입장이 50 대 50으로 나뉘어 있고, 외무성 안에도 내가 미국과 대화하겠다고 한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미국 수준에는 못미치지만 북한에도 자신의 입장과 다른 견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한 미군이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직 여기 있고, 남한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미군 주둔에 반대한다”면서, “해결책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 스웨덴과 태국 모델에 관심
김 위원장은 “제3국과 관련된 민감한 내용을 제외하고 대화내용을 모두 공개해도 좋다”고 말했다. 올브라이트가 이번 대화가 양측의 이해를 증진시켰다고 지적하자 그는 “남한 사람들이 왔을 때, ‘내 머리 위에 뿔이 있는지 찾고 있느냐’고 물어봤다”면서 남북한간에 오해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는 어린이들을 바르게 교육시키지 않았다”면서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당신 나라 사람들을 ‘미국인’이 아닌 ‘미국놈’이라고 부르도록 교육받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이 전력 부족으로 인해 비참한 곤궁상태에 빠져 있다고 털어놓았다. 올브라이트가 경제개방을 할 의사가 있느냐고 묻자 김 위원장은 “개방이란 나라마다 다른 의미를 지니므로 먼저 개방에 대한 정의부터 내려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서구식 개방은 수용할 수 없으며, 자유시장과 사회주의를 혼합한 중국식 모델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인 스웨덴식 모델에 흥미를 느끼고, 전통을 고수하며 시장경제를 유지하는 태국 모델에도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 김정일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인물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김 위원장을 만나고 나서 ‘그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아는 지적(知的)인 인물이라고 했던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견해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썼다. 김 위원장은 고립돼 있기는 해도 정보가 부족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의 비참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절박하거나 걱정스러워 보이지 않았고 자신감있게 보였다고 기록했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김 위원장이 원하는 것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였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과의 대화를 마친 올브라이트는 북한체제의 한계와는 무관하게, 김 위원장을 무시하는 사치스러운 태도를 취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올브라이트는 북한의 경제적 궁핍을 이용해 직접대화를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날 대화에서 김 위원장은 자신의 통역이 김대중 대통령의 통역만큼 잘하느냐고 물었다. 올브라이트는 북한측 통역을 곤경에 빠뜨리기 싫어서 한국대통령 통역과 똑같이 잘한다고 대답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에 영어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면서, 한국계 미국인들이 북한 사람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러 왔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
|
▲ 미국 역사상 첫 여성 국무장관인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1996년 12월 국무장관에 지명된
뒤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앨 고어 부통령(왼쪽)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조선일보DB사진 |
|
◆ 김 위원장 방미 추진 실패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워싱턴으로 돌아온 후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북한방문을 추진하려 했다. 무엇보다 클린턴이 가고 싶어했다. 그러나 북한의 외교 스타일, 우방과의 관계, 미국 국내정치 사정 등이 문제가 됐다. 샌디 버거(Berger)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미사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클린턴이 북한을 방문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김대중 대통령도 클린턴의 평양 방문을 강력하게 권했다. 그러나 시간이 없었다. 의회에는 미·북 정상회담이 미사일 방어체계의 명분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하는 세력이 있었다. 미·북 정상회담이 북한의 사악한 지도자를 정당화시켜준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시기가 너무 늦었으니 후임자에게 넘겨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백악관은 위기상황으로 치닫는 중동문제 때문에 방북 결정을 미뤘다. 클린턴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의 분쟁 중재와 북한 방문이라는 두 가지 문제 중 결국 전자를 택했다. 올브라이트는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마지막 노력의 일환으로 김 위원장을 북한에 초청했으나 북한은 이를 거절했다. 올브라이트는, 북한이 클린턴을 초청한 사실이 이미 공개된 상황에서 뒤늦게 김 위원장을 초청한 점과 체면을 중시하는 동아시아 외교를 고려할 때, 북한의 거절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클린턴이 조지 W 부시(Bush) 대통령 당선자에게 미·북 정상회담에 대한 의견을 묻자 부시 대통령은 “그것은 당신의 결정”이라고 대답했다. 올브라이트는 콜린 파월(Powell) 국무장관 내정자가 당시 전임 행정부가 해놓은 일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
올브라이트는 1986년 한국을 방문해 당시 가택연금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났다. 김 전 대통령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해결책을 추구한다면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붓글씨로 써주었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 다시 만난 자리에서 김 대통령은 햇볕정책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밝혔다. 올브라이트는 ‘김 대통령이 북한과의 평화공존을 추구하겠다는 결의에 차 있었다’면서, ‘김 대통령은 북한이 갖고 있는 거의 피해망상에 가까운 불안감이 큰 위험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2002년 11월 다시 서울을 방문한 올브라이트는 김 대통령을 만났다.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김 대통령은 “클린턴 행정부 말기가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최선의 기회였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안전하다고 느낄 때까지는 태도를 바꾸지 않을 것”이라며, “그들은 (미국의) 공격을 억지하기 위해 그런 무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북한을 위협하지 않으면서, 북한에 ‘위협은 통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 국무장관 임명에 힐러리 입김
1996년 12월 5일 올브라이트가 미국 역사상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국무장관에 임명됐을 때, 한 기자는 “워싱턴 사람들의 반이 충격에 휩싸였다”고 썼다. 이날 오전 9시47분, 클린턴 대통령은 올브라이트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이 국무장관을 맡아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올브라이트는 클린턴 대통령 부인 힐러리가 자신의 임명에 영향을 끼쳤다는 추측에 대해, 웰슬리대학 동문인 힐러리와 여성문제를 위해 함께 일하면서 우정을 유지해왔다고 밝혔다. 클린턴 대통령은 훗날 힐러리가 자신에게 이런 충고를 했다고 올브라이트에게 이야기했다.
“당신이 올브라이트를 국무장관으로 임명하는 것만이, 당신의 외교정책을 우아하게 지켜내면서 당신의 가치를 공유하고 여성들을 자랑스럽게 해주는 사람을 뽑는 것이다.”
11세 때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웰슬리대학을 졸업하고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학계와 백악관 국가안보위원회에서 활동했고, 유엔 대사를 지냈다.
(워싱턴=강인선특파원 insun@chosun.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