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광복절이 다가옵니다. 살아계실 적, 큰 집 안 방 화로 앞에 정갈하게 정리되어있던 할아버지의 문방사우를 보고 열 살내기 였던 제가 붓글씨를 가르쳐 달라고 졸라대던 기억이 아직도 또렸 합니다. 매일이면 어김없이 안방 화로 앞에 벼루를 놓으시고 하고 손 수 붓을 잡으시고 해서체를 멋들어지게 쓰셨지요. 저는 그 추운 겨울 날 붓이 춤추며 노래하던 그 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할머님을 먼저 보내시고 쓸쓸한 마음에 홀로 대청마루에 앉아 홀로 시조를 읊으시던 나의 할아버지
임종을 목전에 앞에 두고 마지막으로 애타게 찾으시던 못난 손자 상태는 당신께서 가시던 마지막 소원을 끝내 못 들어 드린 것이 너무나도 한이 맺힙니다.
할아버지!!저는 이제 평생 력사연구의 길을 가려고 합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왜 그 험난한 길을 가려 하느냐고 극구 말렸지만, 2년의 방황 끝에 비로소 제가 가야 할 길을 찾게 되었읍니다. 집착일까요,, 아니면, 할아버지가 한 평생 그리워하시던 잃어버린 조선의 혼과 그 망국의 한을 이어받은 핏줄 때문일까요..
왜정시대가 시작되자마자 세상에 나오셔서, 수 없이 당한 고초에도 나는 조선사람 이었고 너도 고려,조선조의 당당한 후예라며 족보를 펴주시고 하나하나 조상님들의 흔적을 가르쳐 주셨지요. 1.4후퇴 때 평안도에서 피난 온 현가의 후예들을 일일이 조상들을 찾아주시기도 하셨고요.
이제는 왜 당신께서 그리도 혈육에 대한 애착이 강하셨는지조금 알 것도 같읍니다. 왜정시대에 몰래 고증조부께 사서삼경을 배우시고, 국민학교에는 끝끝내 가지 않으셨던,,, 그래서 등본에 무학이라고 써져있던 것을..
나이 서른 무렵에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여 가세가 기울고, 징용으로 만주에 끌려가서 왜놈 비행장에서 목수 일을 하다가 폭격 맞아 죽을 고비를 넘기신 것이 수십 번. 4년 만에 고향에 무일푼으로 고향땅 밟으셨을 때, 할머님께서 억장이 무너지는 마음으로 “왜 엽전 한 닢 도 못 받아 오셨소.” 원망하셨을 때 몰래 동네 뒷산에 올라 시조를 구슬픈 목소리로 부르시다가, 굼벵이도 살려고 꿈틀꿈틀 거리던 모습을 보시고는 눈물을 훔치시며 억척같이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셨다고 하셨지요..
이제 할아버님의 손자가 당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어 보려고 합니다. 하늘나라에서 잘 지켜봐 주세요. 저번 달 기일, 문득 생전 조상님들 제사가 돌아오는 날이면 붓으로 축문, 지방을 손수 정성스럽게 쓰시고 축문을 엄숙하게 읽어내리시던 그 모습을 생각합니다. 살아계셨다면 여쭈어 볼 것이 너무나도 많았는데 왜 그렇게 빨리 가셨는지요.야속합니다.그립습니다..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부디 하늘에서 저를 살펴보아 주시 옵 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