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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꿈에 패밀리들과 교회 친구들이 보였고 7시에 기상해버렸어요. 우산과 모자를 쓰지 않고 밖으로 나왔는데 스타벅스 앞에서 자전거 끌고 오는 재혁이를 만났어요. "운동 가냐?" 일정을 틀어 집 앞 꼬마 김밥 집에 들어갔어요. 태국에 왜 안 갔냐고 물었더니 쩐주가 자금이 없어서 지연됐다고 하는데 표정이 어둡습니다. 어제 안 준 미수금을 오늘 주는 경우는 내 경험상 없지만, 기죽일 수 없어서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만 하고 헤어졌어요. 우리 같은 종류의 인간들은 자존심에 스크래치 나는 걸 질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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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기억> 중에서 일부만 가져와 현재의 상황에 투영시킨다는 베르크 손의 무의식 개념이 흥미진진합니다. 프로이트는 지금 내가 형제들과 공동체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할 것이고, 내가 재혁이가 걱정되는 건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상황에 투영된 것이라고 베르크 손은 힘주어 말할 것입니다. 기억은 현재에도 나를 형성합니다. 과거와 현재는 칼로 자르듯 분리되지 않고 서로 침투합니다. 베르크 손이 말한 <순수 과거 Pure Past>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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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지나간 것이 아니라, 현재와는 다른 차원에서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도서관의 책처럼 모든 과거는 보존되어 있고, 기억은 그 가운데 일부를 현재로 불러오는 행위입니다. 그가 말하는 <순수 기억>은 아직 현재의 행동을 위해 선택되거나 변형되지 않은 과거입니다. 어린 시절의 모든 경험은 순수 과거이고, 지금 떠오르는 추억과 현재에 소환된 기억은 순수 과거의 일부만 현재로 가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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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크 손은 과거는 뇌 속에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 안에 보존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도대체 어디에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 계속 제기됩니다. 만약 모든 과거가 존재한다면 왜 지금 이 기억만 떠오를까요? 베르크 손은 현재의 필요가 기억을 선택한다고 설명합니다. 현재의 행동에 도움이 되는 기억만 의식으로 올라옵니다. 결국 현재는 거의 순간적으로 과거가 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현재는 지속의 흐름 속에서 곧바로 순수 과거 속으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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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과거는 아주 얇은 경계입니다. 베르크 손은 인간은 과거 전체를 품고 있으면서도 현재 새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베르손의 무의식에서는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과거 전체를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질 들뢰즈는 베르크 손을 더욱 발전시켜 과거는 현재 뒤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동시에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생성과 엘랑비틸로 말입니다. 현재가 생기는 순간, 그 현재는 동시에 순수 과거 속으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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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현재와 과거는 두 개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의 두 측면입니다. 베르크 손에게 시간은 흘러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과거가 <지속'>속에 보존되고, 현재는 그 전체 과거와 만나며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창조의 과정입니다. <순수 기억>이 중요한 것은 기억이 소환되어 현재를 생성하고, 저장되어 있는 기억들이 현존재와 만날 때마다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결국 과거는 기억이고 경험이 아닙니까?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인가, 아니면 과거가 현재의 우리를 통해 다시 살아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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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장 4회>입니다. 몇 년도 북한 풍경일까요? 1997인가? <김>이라는 성씨 밖에 기억 못 하던 소년이 독기 하나만으로 리응령(이재용,64,철학 전공)에게 발탁됩니다. 이후 혹독한 수련과 서바이벌 과정을 거쳐 특수 요원 결승에 오른 66호(박영광) vs 73호가 특수 임무를 띠고 남한에 침투합니다. 리응령은 상곤이(친구), 미화(김두환)로 내가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이번 분장은 금이빨과 리응령이 1빠 입니다. 폭파 장면 설정이 어설프지만 오리지널 66호가 작전 중에 죽고 73호(김 부장이)가 살아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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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용 더미 인형에 설치된 트랩에 휘쓸려 66호가 죽었는데, 리응령은 김 부장의 배신이라고 판단합니다. 이후 김 부장은 남한에 귀순을 했고 그때부터 북한 최대의 적으로 악명을 떨치다 김정선 암살 임무 완료 후 전역했고, 소시민으로 살던 중에 이 사달이 난 것입니다. 김 부장과 성한수는 박강성에게 뒷덜미를 잡혔지만 곧바로 반격에 나섰는데 특임국까지 들이닥쳐 셋 다 손을 들어야 할 상황입니다. 감시조가 있을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은행 동료와 세탁소일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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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첩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만 드라마대로라면 간첩이 내 주변에도 득실 데고 있다는 말이 아닙니까? "손들어!(세탁소/은행 녀)" '민지가 납치됐어... 민지만 찾으면 갈 테니까 그때까지만 기다려줘!(김 부장)" 원래 벌래 하는 사이에 박강성도 김 부장도 토껴버렸습니다. 3회에서 민지 폰의 행적을 추적하던 김 부장 삼총사가 노숙자를 만났습니다. 흰색 BMW, 꽁지머리라는 중요한 단서를 알아냈고 CC TV를 확보했으니 그 차의 위치만 알면 되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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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추적하는데 버퍼링이 길어져서 너도 나도 애간장이 녹습니다. 쾅! 특임국이 깔아놓은 소형 폭탄이 터지면서 강으로 떨어지는 장면은 CG인가요? 다들 멀쩡하게 살았고 민지의 현 위치가 항구라는 걸 알아냈어요. 성한수가 특임국을 막는 사이 김 부장은 국장 차량을 타고 달아납니다. 성한수는 국장을 강에 처박은 후 자신도 뛰어내렸고, 박진철은 관망하다가 항복을 해서 특임국 요원들을 벙뜨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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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위너 피스!" 한편, 금이빨이 주강천 딸(혜령)의 시체 처리를 빌미로 간 크게 그를 협박하는 가운데 민지는 냉동 창고에서 정신을 차립니다. 주강천은 딸로부터 민지 살해 고백을 듣고 금이빨을 만나러 갑니다. 악어들이 입을 쩍벌이며 오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금이빨은 항구에서 부하들이랑 닭도리탕을 쳐먹고 있습니다. 금이빨은 박강민이 올려놓은 감자를 보고 기겁을 하며 부하를 두들겨 팹니다. 비포 9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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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청소업체 직원으로 뼈빠지게 일했던 금이빨이 금이빨이 된 뻐국이 우는 사연입니다. "옆집에서 엄청 큰 개 한 마리를 키웠어. 그 개가 너무 사나워서 주인이 그 개를 때려죽이려 하는데 내가 길들여 주겠다고 설득했어. 그 개가 사나워서 마음에 들었거든. 그 개를 어떻게 길들였는지 아냐? 아예 주인을 물 일이 없게 만들었어" 금이빨의 아가리를 벌려 뜨거운 감자를 넣었다는 내용 같습니다. "회장님의 개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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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랬던 금이빨이 "야, 주강찬! 상황 파악이 안돼!" 냐며 약을 박박 올립니다. "니 딸이 살인을 했고 그 증거도 있으니 현금 20억 들고 똘마니 없이 튀어 와 당장!"라고 도발합니다. 주강찬은 남실장에게 짧게 "가지!" 하는데 절제된 분노가 주상욱의 연기 짠 밥을 보는 것 같았어요. 개인적으로 포스트 박근형(1940)의 포지션을 기대해 봅니다. "이렇게 죽이고 싶었으면 아빠한테 죽여달라고 했어야지... 네가 원하는 거 안 들어준 적 없잖아!" 내가 꼽은 5회 명장면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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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강천은 딸의 도덕성을 나무라는 게 아니라 방법론을 지적하는 데 소름이 끼치더이다.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무서운 것은 폭력성보다 감정이 없이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 대목에서는 주강천이나 김 부장의 부성이 같다고 봅니다. 정녕 당신은 자식을 위해서 사람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나요? 물론 동의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민지(서수민)는 금이빨에 의해 트렁크에서 냉동 창고로 옮겨집니다. 근무 잘 서는 경비원은 죽습니다. 민지가 냉동 창고를 헤매며 탈출 시도를 하다가 열린 냉동 창고 문 앞에서 금이빨과 마주칩니다.
2.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는 것인가, 아니면 과거가 현재의 우리를 통해 다시 살아나는 것인가? 꿈속에서 가족과 교회 친구들을 만난 뒤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습니다. 우산도 모자도 없이 밖으로 나왔다가 우연히 재혁이를 만났고, 운동 계획을 바꾸어 함께 김밥집에 들어갔습니다. 태국행이 자금 문제로 미뤄졌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의 어두운 얼굴 앞에서 현실적인 충고를 길게 늘어놓지는 않았습니다. 경험상 받지 못한 돈이 다음 날 들어올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미 기가 죽은 사람의 자존심까지 꺾을 필요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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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나는 현재의 재혁이만 본 것이 아닐 것입니다. 돈이 없어 계획이 미뤄지고, 미수금을 기다리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던 과거의 나도 함께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걱정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기억의 반응입니다. 현재의 한 장면이 과거의 어떤 층을 건드렸고, 그 기억이 지금의 행동과 말을 선택하게 한 것입니다. 프로이트라면 꿈속의 가족과 교회 친구들을 공동체를 향한 억압된 욕망이나 결핍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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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외로움이 무의식 속에 있던 과거의 인물들을 불러냈다는 것입니다. 반면 베르그손은 기억을 억압된 욕망의 창고라기보다 현재와 끊임없이 관계 맺는 과거 전체의 장으로 이해합니다. 베르그손에게 과거는 단순히 사라진 현재가 아닙니다. 과거는 지나갔지만 없어지지 않고, 현재와 다른 방식으로 계속 존재합니다. 그는 이를 흔히 <순수 과거>또는 <순수 기억*>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순수 기억은 지금 당장 행동하기 위해 선택되거나 변형되기 이전의 과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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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경험, 잊었다고 생각한 얼굴과 감정도 과거의 층위 안에서는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거는 어디에 보존되는가? 베르그손의 대답은 다소 낯섭니다. 그는 과거를 뇌 속에 저장된 물건처럼 보지 않습니다. 뇌는 기억의 창고라기보다, 현재의 필요에 따라 어떤 기억을 선택하고 행동으로 연결하는 기관에 가깝습니다. 과거는 특정 장소에 물건처럼 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한 차원으로 보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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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비유는 어느 정도 유용합니다. 모든 책은 도서관에 있지만, 지금 내 손에 들린 책은 한 권뿐입니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기억은 책을 꺼내어 원본 그대로 읽는 일이 아닙니다. 기억은 과거를 현재의 문제와 감정에 맞추어 다시 구성하는 사건입니다. 같은 어린 시절의 경험도 오늘의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재혁이를 보며 떠오른 과거는 과거 그대로가 아닙니다. 현재의 염려, 자존심, 책임감과 만나 새롭게 해석된 과거입니다. 기억은 복사가 아니라 창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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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결국 과거는 기억이고 경험이 아닙니까?”라는 질문이 중요합니다. 과거와 기억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닙니다. **경험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고, 과거는 그 사건이 지나간 뒤 존재하는 방식이며, 기억은 그 과거가 현재 속으로 들어오는 방식**입니다. 경험은 과거가 되지만, 모든 과거가 언제나 기억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억되지 않는 과거도 우리 안에 흔적과 성향으로 남아 현재의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억은 과거 전체가 아니라 과거가 현재화되는 하나의 통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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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그손에게 현재는 독립된 한 점도 아닙니다. 현재는 이미 지나가고 있는 순간이며, 지각하는 즉시 과거가 됩니다. 우리는 현재를 붙들었다고 생각하지만, 붙드는 순간 그것은 이미 기억의 영역으로 이동합니다. 현재와 과거 사이에는 두꺼운 벽이 아니라 거의 보이지 않는 얇은 막만 있습니다. 들뢰즈는 이 생각을 더욱 밀어붙입니다. 그는 현재가 생겨나는 순간, 그 현재가 동시에 과거로 보존된다고 설명합니다. 현재와 과거는 순서대로 줄을 서는 두 시간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이 가진 두 얼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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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이미 보존되고 있는 과거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과거의 포로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과거 전체를 품고 있지만, 현재 어떤 기억을 불러내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선택도 과거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과거는 우리를 기계적으로 반복하게만 하지 않습니다. 과거는 현재와 결합할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베르그손이 말하는 지속과 창조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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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4회> 역시 현재를 움직이는 것은 과거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현재의 김부장은 민지를 찾는 평범한 아버지처럼 보이지만, 그의 몸과 판단 속에는 북한 특수요원 시절의 과거가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73호였던 그는 66호의 죽음, 남한 귀순, 암살 임무와 전역이라는 시간을 통과하여 지금의 김부장이 되었습니다. 과거는 끝난 사건이 아닙니다. 특임국이 그를 추적하고, 북한 요원들이 그를 적으로 규정하며, 과거의 동료들이 다시 등장하는 순간 그의 순수 과거는 현재의 행동으로 현실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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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직원과 세탁소 주인이 사실은 감시 요원이었다는 설정도 평범한 일상 뒤에 과거가 잠복해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김부장은 과거를 잊고 소시민으로 살아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는 잊는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민지가 납치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과거의 기술과 감각이 다시 현재로 소환됩니다. 사람을 추적하는 능력, 위험을 감지하는 직관, 총과 칼을 피하는 몸의 기억은 모두 사라진 줄 알았던 과거가 현재의 필요에 의해 선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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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김부장의 몸 자체가 하나의 기억입니다. 기억은 머리로 떠올리는 장면에만 있지 않습니다. 몸의 움직임,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 위기 앞에서의 반응에도 과거가 들어 있습니다. 김부장은 생각해서 싸우기보다 이미 몸에 새겨진 과거로 싸웁니다. 그의 몸은 과거의 사건을 압축해서 지닌 살아 있는 기록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과거의 반복만이 아닙니다. 과거에 김부장의 능력은 국가와 이념을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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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 능력은 딸을 살리기 위해 사용됩니다. 똑같은 기술이지만 목적이 달라졌습니다. 과거가 현재에 돌아왔지만, 동일한 방식으로 반복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기억의 창조적 성격입니다. 과거는 현재를 결정하지만, 현재는 과거의 의미를 다시 결정합니다. 예전의 김부장은 남파 공작원이었고 암살 요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김부장이 딸을 구하기 위해 그 능력을 사용하면서, 그의 과거도 새롭게 해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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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기 위한 기술이 지키기 위한 능력이 되고, 국가의 명령을 따르던 사람이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국가기관과 맞섭니다. 반면 금이빨의 과거는 다른 방식으로 현재화됩니다. 그는 과거에 힘없는 청소업체 직원이었고, 폭력과 굴욕을 견디며 권력자의 개가 되었습니다. 뜨거운 감자를 입에 넣는 잔혹한 훈육은 그에게 권력의 본질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복종했지만, 마침내 힘을 얻자 자신이 당한 폭력을 다른 사람에게 반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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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과 금이빨은 모두 과거에 의해 형성되었지만, 과거를 사용하는 방식은 정반대입니다. 김부장은 과거의 폭력을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는 데 사용하고, 금이빨은 과거의 상처를 타인을 지배하고 협박하는 데 사용합니다. 상처가 사람을 자동으로 선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고통받았다는 사실이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더 잔혹한 폭력의 면허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간을 결정하는 것은 과거의 내용만이 아니라, 현재 그 과거를 어떤 방향으로 현실화하는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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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강천의 부성애도 여기서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이렇게 죽이고 싶었으면 아빠한테 죽여달라고 했어야지. 네가 원하는 것을 안 들어준 적 없잖아.” 이 말에는 도덕적 판단이 없습니다. 그는 딸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보다 일을 서툴게 처리했다는 사실을 문제 삼습니다. 딸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딸을 선하게 만드는 사랑이 아니라, 딸의 욕망을 무제한으로 실행해 주는 권력입니다. 김부장과 주강천은 모두 자식을 위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아버지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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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두 부성애가 완전히 같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김부장은 위험에 처한 딸을 구하기 위해 폭력의 세계로 들어가고, 주강천은 딸이 저지른 폭력을 은폐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제거하려 합니다. 하나는 생명을 구하려는 폭력이고, 다른 하나는 책임을 지우려는 폭력입니다. 물론 김부장의 폭력도 무조건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차이는 사랑이 향하는 방향에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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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위해 사람도 죽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부모의 감정으로는 충분히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철학적으로는 다시 물어야 합니다. 자식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타인의 자식까지 희생시킬 권리가 있는가? 사랑이 정의와 분리되면 사랑은 쉽게 폭력이 됩니다. 주강천은 딸을 위해 모든 것을 해주지만, 바로 그 무제한적인 사랑 때문에 딸은 타인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인간이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욕망을 모두 들어주는 것은 사랑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녀가 현실의 한계와 타인의 존재를 배우지 못하게 하는 방임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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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가 냉동 창고에서 탈출하려는 장면은 이런 권력의 세계와 대조됩니다. 그녀는 거대한 힘을 가진 인물이 아니지만, 살아남기 위해 움직입니다. 김부장의 과거, 금이빨의 과거, 주강천의 권력이 모두 민지를 둘러싸고 있지만, 정작 민지는 자기 힘으로 문을 찾습니다. 인간은 타인의 기억과 욕망이 만든 상황 속에 던져지지만, 그 안에서도 현재의 선택을 시도합니다. 아침에 재혁이를 만난 일도 어쩌면 같은 구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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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실패와 미수금의 경험은 “어제 주지 않은 돈은 오늘도 주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기억을 그대로 상대에게 던지지 않고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말로 바꾸었습니다. 과거의 경험이 냉소로 반복되지 않고, 타인을 지키려는 충고로 변형된 것입니다. 이것이 기억을 창조적으로 사용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과거는 지울 수 없습니다. 가족, 교회 공동체, 돈 문제, 자존심의 상처, 자녀를 키운 기억은 모두 현재 속에서 계속 살아 움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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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그 과거를 그대로 재연할 필요는 없습니다. 상처를 폭력으로 되돌릴 수도 있고, 타인을 이해하는 감각으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베르그손에게 인간은 과거 전체를 품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과거는 완성된 운명이 아닙니다. 현재가 과거와 만날 때마다 새로운 행동과 의미가 태어납니다. 기억은 우리를 뒤로 끌어당기는 쇠사슬만이 아니라, 아직 살아 보지 않은 삶을 만들어 내는 재료이기도 합니다. 결국 과거는 단순한 기억도, 단순한 경험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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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우리 안에 보존되어 현재의 만남과 선택을 통해 계속 다른 얼굴로 나타나는 존재의 깊이입니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다음 문장은 아직 쓰이지 않았습니다. 꿈속에서 만난 가족과 교회 친구들, 아침에 마주친 재혁이, 딸을 찾아 뛰는 김부장, 과거의 굴욕을 폭력으로 되갚는 금이빨은 모두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과거를 불러내고 있으며, 그 과거로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
2026.7.24.FRI.악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