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시, 거대쇼핑몰에 홀리다
포에버21 장대표의 아이디어가 불 지펴
권기흥,서미현,최현 시민기자
‘조용한 전원도시’ 과천에 거대한 공룡급 쇼핑몰이 출현한다. 지난 7월 19일 과천시의회 행정사무감사 특위에서 당혹스러운 소식이 밝혀졌다. 과천시가 그간 추진해오던 복합문화관광단지 조성 계획이 예상을 훌쩍 벗어난 모습으로 드러난 것이다.
수도권 주민이라면 한 번쯤은 가보았을 국내 최대 규모의 코엑스몰도 이 사업 앞에서는 왜소해 보일 지경이다. 현재까지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복합문화관광단지는 코엑스몰의 3배가 넘는 규모(연면적 1백만㎡, 30만평)로 구상되고 있다.
랜드마크 구실을 할 고층 특급호텔, 백화점 3개, 브랜드숍 400여개를 포함하여 총 매장수 600여개, 멀티플렉스, 수족관 등 문화오락시설, 1만1천여대나 수용 가능한 주차장, 예상하는 국내외 관광객수는 연간 3천만명 이상이며 총 사업비는 과천시 1년 예산의 4배가 넘는 1조원에 이른다.
과천시는 이 거대 쇼핑몰을 그 규모에 걸맞게 잠정적으로 몰오브코리아(Mall of Korea)라 부르기로 한 모양이다. 이 사업에는 포에버21을 비롯한 미국, UAE 등 해외 투자사들과 삼성물산과 같은 국내 기업까지 두루 참가할 예정이다.
이들 투자자들은 전체 재원의 절반 가량을 부담하고 과천시와 경기지방공사가 나머지를 부담한다. 시의 구상대로라면 연간 700억원(경기도 400억, 과천시 300억)의 세수입이 발생해 투자액을 훨씬 뛰어넘는 기대효과가 발생한다. 물론 연간 3천만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아온다면 말이다. ‘
경마세’에서 자립하기 위한 과천시의 몸부림 과천시청 박현수 도시계획팀장은 사업 추진의 핵심 배경을 레저세(경마세)에 전체 세수의 41%를 의존하고 있는 시 세입구조의 취약성에서 찾았다. 경기도 내에서 발언권 있는 자립 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본 투자를 유치해 세수를 늘리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가운데 인구규모를 키워가야 한다는 것이다.
시는 이를 위해 7년 가까이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그 자리에 대규모 산업시설을 조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피나는 노력 끝에’ 작년 7월 갈현동 지식정보타운 부지와 과천동 복합문화관광단지 부지를 포함한 40만평이 광역도시계획 도시화 예정지로 확정되면서 각종 개발사업은 돌연 탄력을 받게 되었다.
이 중 복합문화관광단지를 놓고 경기개발연구원에서는 지난 2월까지 용역을 진행했다. 그 결과 교육 및 문화, 비즈니스 및 문화, 종합쇼핑몰 및 문화 복합시설 등 세 가지 안이 올랐으나 용역보고서는 이 중 수익성이 높고 투자유치 여건이 좋은 제3안을 최종적으로 제안했다. 하지만 당시 보고서에서 채택된 안은 총 예산 2천억원, 방문객수 1천만명, 고용창출 6천명 규모로 현재 추진 중인 ‘몰오브코리아’의 1/5 수준이었고 쇼핑몰과 비슷한 비중으로 문화시설이 독립되어 있었다. 결국 현재 구상은 전체 규모로는 5배 확대되었지만 쇼핑몰만 커지고 문화 시설은 축소된 셈이다.
포에버21 덕에 5배 커진 계획 규모가 커진 이유는 전적으로 포에버21(2면 박스기사 참조) 장도원 대표의 아이디어와 의지 덕분이라고 한다. 작년부터 한국 투자를 결심하고 경기도에 투자의향서를 낸 뒤 몇 개 지역을 고려하던 장대표가 “과천 현장 투어 뒤 먼저 대시”했다는 것이다. 장대표는 평소 사이먼 부동산투자회사(Simon Property Group, Inc)와 같은 세계적인 몰개발업체(Mall Developer)와 교분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LA 교외의 대표적인 쇼핑몰인 그로브(Grove), 비버리힐즈센터 등을 벤치마킹하여 거대 쇼핑몰을 과천에 만들자고 제안했다.
특히 이 쇼핑몰의 기획과 관리, 브랜드숍 유치를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이에 반색한 과천시장이 LA를 방문하고 몇 차례의 논의가 진행된 뒤 급속도로 사업의 규모가 커지게 되었다. “모든 지자체가 지금 투자 유치를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지방소비세가 신설되면 지역개발 성과에 따라 부가가치세를 차등 교부받게 되기 때문에 개발 사업에 지자체의 성패가 달려 있죠.” 박현수 팀장의 말이다. 결국 ‘몰오브코리아’ 구상은 포에버21 장대표의 적극적 제안과 시의 요구가 맞아떨어져 출현한 결과이며 시의 처지에서는 넝굴째 굴러떨어진 호박인 셈이다.
하지만 포에버21은 복합쇼핑몰의 운영 경험이 전무한 기업으로 밝혀져 있다. 아시아의 거대 쇼핑몰 붐 미국의 권위 있는 한 쇼핑몰 연구 사이트(http://www.easternct.edu/depts/amerst/Malls.htm)에 따르면 2008년 현재 총 매장면적 기준 세계 10대 몰 중 8개가 중국, 필리핀 등 아시아에 있다. 그리고 현재 공사중인 몰까지 고려한다면 조만간 세계 10대 몰 중 7개는 중국에 있게 될 것이다. 현재도 세계 1, 2위 쇼핑몰은 당당히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1위는 광둥성 남단, 인구 6백만의 동관시 외곽에 위치한 사우스차이나몰(南華몰)로 총 매장면적 66만㎡, 건물 연면적 89만㎡에 이르며 총 1천5백여 개의 점포를 수용한다. 과천에 들어설 ‘몰오브코리아’ 매장수(600여개)의 두 배가 넘는 규모인 것이다.하지만 최근 해외 언론에 따르면 2005년 개장한 이 몰은 1천5백여 매장 중 채 10여 개도 입점하지 않아 세계 최대의 거대몰일 뿐만 아니라 최대의 유령몰이기도 하다. “이 몰은 망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애초부터 점포라곤 들어오지 않았으니, 개발업자가 일부러 폐허에 끌리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 같다.” 2004년 베이징 외곽 제4순환로 부근에 개장한 세계 제2위 몰인 진위엔(金源)몰 또한 그리 사정은 좋지 않다. 1천20여개 매장이 들어서 있는 이 몰은 애초 계획과는 달리 외국인 관광객이 거의 찾아오지 않고 있으며 도심의 쇼핑몰들과 힘겨운 경쟁을 하고 있다. 중국의 한 부동산 전문 사이트(http://office.soufun.com) 2008년 7월 13일자 기사에 따르면 중국의 대형몰에서 장사가 되는 점포는 1층과 2층 바겐세일 매장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금회수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고 진위엔몰도 지금 이 때문에 점차 손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한편 중국의 이러한 쇼핑몰 붐에 포에버21의 전략적 제휴자라는 사이먼사 역시 동참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이먼사는 내년까지 대략 12개의 쇼핑몰을 중국 상하이에 지을 예정이다. 또한 사이먼사는 이미 한국에서도 신세계-첼시 합작회사를 만들어 여주프리미엄아웃렛에 진출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개장 후 명품아웃렛 브랜드와 물량 확보에 실패하여 저조한 실적(작년 순이익 4억원)으로 기대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과천의 63빌딩인가 매머드급 우정병원인가 현재 쇼핑몰 유치 계획은 과천에 국한되지 않는다. 경기도에서는 고양, 파주, 하남, 동두천 등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대형 쇼핑몰 조성 계획을 갖고 있고 특히 용인, 판교, 광교 등에서는 과천급의 초대형 쇼핑몰을 계획하고 있다. 서울시도 구 동대문운동장 부지에 대규모의 디자인플라자 및 조각 공원을 조성하고 지하에 코엑스몰 규모의 쇼핑몰을 2010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며 용산, 송파도 후보지로 올라가 있다. 과천에 ‘몰오브코리아’가 들어선다면 서울 도심의 전통적인 상권과 백화점들뿐만 아니라 이러한 신규 쇼핑몰들과도 경쟁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중국의 사례에서 보듯 규모가 크다고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규모가 큰 만큼 대실패의 가능성 또한 제쳐둘 수 없다. 입지 선정의 타당성(교외냐 도심이냐), 도로교통 문제, 브랜드숍 유치 전략, 여느 쇼핑몰 · 상권과의 차별화 전략, 소비예측, 지역공동체와의 관계 등 수많은 문제들을 꼼꼼히 검토하지 않은 채 성급하고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우정병원의 수십배가 넘는 거대한 흉물이 과천의 랜드마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도로교통문제, 중심상가 공동화, 풀리지 않는 숙제들 과천시의 열악한 교통 사정도 쇼핑몰 흥행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의 쇼핑몰들은 대부분 교외에 위치하며 도로 사정이 수월한 편이다. 반면 중국의 거대 쇼핑몰들은 교외에 위치했지만 열악한 교통 사정으로 고전했다. 사우스차이나몰의 경우 완강 유역에 위치해 있는데 몰로 통하는 다리의 교통정체가 실패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주말만 되면 상습 정체되는 남태령 고개, 선바위 앞 삼거리 등을 고려할 때 과천시의 현재 도로 사정으로는 거대 쇼핑몰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
광역교통대책이 수립되지 않으면 인허가 자체가 나지 않는다고 호소하는 담당자의 고민도 고민이지만 지금의 세 배 이상 몰려올 차량으로 인해 발생할 소음과 배기가스, 교통정체는 고스란히 과천시민의 몫이 될 것이다. 시에서는 우면산 입구까지의 도로를 확장하는 안과 공항도로를 개설하는 안 등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지만 아직까지 뾰족한 대책은 없었다. 또한 과천시는 중심상가 공동화 문제를 상식과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고 있었다. 보통 거대 쇼핑몰이 생기면 인근의 소규모 상가가 다 죽는다는 상식과는 달리 유동인구가 늘어나 중심상가에도 새로운 고객이 늘어나리라 시측은 기대했다. 쇼핑몰 방문객 중 일부가 중심상가로 유입되어 트리클다운 효과(Trickle Down, 물이 주변에 흘러넘치는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시는 이를 위해 중심가와 쇼핑몰 사이에 모노레일과 순환버스를 도입할 예정이다. 이는 명품도 취급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중저가 쇼핑몰인 ‘몰오브코리아’에 중심상가의 주고객층을 내어주는 손쉬운 수단이 될 수 있다. 개발인가 보존인가, 쇼핑몰인가 도서관인가 박현수 팀장은 인터뷰 말미에 ‘몰오브코리아’를 포함한 현재 과천시의 모든 개발 계획은 인구 20만 가량의 자립형 도시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과천시는 규모의 경제가 안 돼요. 지금으론 시민들 중 많은 수가 작은 전원도시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시의 재정이나 산업 구조 상황을 안다면 분명 생각이 바뀔 겁니다.” 앞으로 도시개발계획 용역을 발주하면서 ‘몰오브코리아’ 사업의 타당성에 대해 재검토하고 주민공람 및 공청회 개최 등 적극적인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겠다는 다짐 또한 잊지 않았다.그러나 투자 유치와 개발을 통해 도시 규모를 키워 자립도시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생존 전략이지만 과천시의 기존 강점과 고유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이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천에는 도립, 시립 도서관이 있고 과천은 시민 1인당 장서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도시이다. 위에서 언급한 용역보고서의 제1안 ‘교육과 문화가 중심이 되는 복합단지’ 안에는 국립도서관이 핵심 시설로 들어가 있었다. 실현성 여부를 떠나 제각기 특성을 달리하는 세 개의 도서관을 가진 과천시를 한번쯤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권기흥, 서미현, 최현 시민기자 ▲ [사진 설명_그로브] LA 외곽에 있는 실외 개방형 쇼핑몰 그로브. 과천시장이 올초에 LA 방문시 들른 곳이라 한다. ⓒ 과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