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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6월 4일 화요일
[(녹)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베드로 사도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쓰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리라고 한다(복음).
제1독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베드로 2서의 말씀입니다. 3,12-15ㄱ.17-18
사랑하는 여러분, 12 하느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날을 앞당기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날이 오면 하늘은 불길에 싸여 스러지고
원소들은 불에 타 녹아 버릴 것입니다.
13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언약에 따라,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15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을 구원의 기회로 생각하십시오.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니,
무법한 자들의 오류에 휩쓸려 확신을 잃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18 그리고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은총과
그분에 대한 앎을 더욱 키워 나아가십시오.
이제와 영원히 그분께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3-17
그때에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은
13 예수님께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보냈다.
14 그들이 와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 다오.”
16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자 예수님께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그들은 예수님께 매우 감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이 예수님께,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한지, 그렇지 않은지에 관하여 물어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데나리온 한 닢을 보여 주시며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시자, 사람들은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과연 사람들의 이 대답은 맞는 것이었을까요? 황제는 누가 창조하였습니까? 누가 황제에게 생명을 주었습니까? 세상 모든 것을 관장하시는 하느님 아니십니까? 세상에 어찌 황제의 것, 하느님의 것이 따로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황제의 것이라 여기는 모든 것이 사실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 하신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정치적인 것은 정치인들에게 맡기고, 신앙적인 것은 종교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는 황제의 것으로 여기는 모든 것이 사실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다만 예수님과 논쟁하는 이들이 이를 이해하지 못하였을 뿐입니다.
많은 이들이 교회가 사회 문제에 관여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교회가 복음의 빛을 받아 각 시대와 환경에 따라 발생하는 인간의 기본권과 영혼들의 구원과 관련된 정치 문제에 대하여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2246항 참조). 부조리와 불평등, 억압과 폭력으로 많은 이들이 신음하고 있는데도, 모든 이의 참주인이신 하느님께서 그것이 정치적인 문제라고 선을 긋고 무심하실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마음을 쓰시는 만큼 교회는 그분의 뜻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태도입니다. (한재호 루카 신부)
하느님 나라를 관계 안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오늘 우리가 두 번째 독서로 봉독한 베드로 2서는 우리가 그토록 궁금해하는 하느님의 날,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날을 앞당기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날이 오면 하늘은 불길에 싸여 스러지고 원소들은 불에 타 녹아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언약에 따라,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2 베드로 3, 12-13)
우리가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부분은 아무래도 3가지 점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 과연 어떤 곳일까? 도대체 언제쯤 그 나라가 우리에 올 것인가? 우리는 정말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체험해본 적이 없는 일이기에 확신은 금물이지만, 하느님 나라를 관계 안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원자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새 하늘과 새 땅, 다시 말해서 하느님 나라의 주체이십니다.
우리가 그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따라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이미 들어가 있을 수도 있고, 바깥 어두운 곳에서 땅을 치며 울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과 적대적인 관계, 전혀 무관한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아직도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는 요원한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매일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 속에 살아간다면 우리는 이미 하느님 나라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주관하시는 성찬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그분께서 나눠주시는 생명의 빵이신 성체를 지극정성으로 받아 모신다면, 우리 안에 이미 하느님 나라는 건설되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 강생으로 인해 하느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는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 나라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쪽 발은 인간 세상에 딛고 서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생활, 티없고 흠없는 생활을 통해, 주님 나라의 도래를 앞당기는 사람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은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날, 마지막 날, 종말에 대한 베드로 2서의 가르침에서 우리에게 가장 큰 희망과 기쁨을 주는 표현은 ‘새로움’입니다. 주님의 날이 도래하면 그분 가르침에 충실했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놀라운 은총의 선물이 주어질 것입니다.
새로운 이름이 부여될 것입니다. 새로운 언어로 말하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도성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언약이 어김없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1986년 2월 저는 신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졸업식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1986년 1월에 입대했기 때문입니다. 졸업장은 동창 신학생이 집으로 가져다주었습니다. 미국은 대학 졸업이 5월에 많이 있습니다. 학기의 시작이 한국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으로 대학졸업 축하연설을 검색하면 저명인사들의 축하연설을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스티브 잡스의 연설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스탠포드 대학의 졸업연설에서 아주 인상적인 말을 남겼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을 잃지 말고, 언제나 호기심을 갖고 도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항상 배움을 멈추지 않고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추구하며, 규범과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을 격려하는 메시지입니다. 이 말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최초로 16강에 진출했던 한국 팀의 감독 히딩크가 한 말과 비슷합니다. 히딩크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I'm still hungry!" 그리고 한국 팀은 월드컵 4강의 신화를 남겼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우리의 신앙도 그 시작은 ‘갈망’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만나 치유되었던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갈망입니다. 나병환자도, 소경도, 하혈하던 여인도, 중풍병자도, 이방인의 여인도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몸은 물론 영혼까지 치유되었습니다.
며칠 전에 저는 또 다른 졸업 축하 연설을 보았습니다. 졸업생의 어머니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들려준 말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Joy와 Sad는 같은 3문자이다. 그러나 의미는 정반대이다. Love와 Hate는 같은 4문자이다. 그러나 의미는 정반대이다. Truth와 False는 같은 5단어이다. 그러나 의미는 정반대이다. Friend와 Enemy는 같은 6문자이다. 그러나 의미는 정반대이다. Forgive와 Condemn은 같은 7문자이다. 그러나 의미는 정반대이다. Positive와 Negative는 같은 8단어이다. 그러나 의미는 정반대이다. 미래는 선택에 달려있단다.” 길이 있어서 가는 것일 수 있지만, 내가 가기에 그곳이 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역사는, 문명은, 희망은 아무도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선택한 선구자들의 희생과 열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구원의 역사는 나자렛의 마리아의 선택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를 가질 것이라는 천사의 말에 마리아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2000년 교회의 역사는 예수님의 선택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따라라. 나는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예수님의 첫 제자들은 그물을 버리고,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언약에 따라,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여러분은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니, 무법한 자들의 오류에 휩쓸려 확신을 잃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은총과 그분에 대한 앎을 더욱 키워 나아가십시오.” 그렇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우리가 어디론가 가야 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우리가 흠 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께 나갈 때 시작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받은 은총과 그분의 앎을 더욱 키워가면서 시작됩니다. 긍정의 눈으로, 잘못한 이를 기꺼이 용서하며, 친구들과 함께 진리를 추구할 때 시작됩니다. 미워하기보다 사랑할 때 우리의 슬픔은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때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택의 기준을 말씀하십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마르 12,17)
나의 것은
너 아닌
나에게
너의 것은
나 아닌
너에게
하느님의 것은
나도 아니요
너도 아니요
오로지 하느님께
나는
나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니
나는
나도 아니요
너도 아니요
오로지 하느님께
너는
너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니
너는
너도 아니요
나도 아니요
오로지 하느님께
오늘의 성인
성 프란치스코 카라치올로(Francis Caracciolo)
신분 : 신부, 설립자
활동연도 : 1563-1608년
같은이름 : 방지거, 카라촐로, 프란체스꼬, 프란체스꾸스, 프란체스코, 프란체스쿠스, 프란치스꼬, 프란치스꾸스, 프란치스쿠스, 프랜시스
귀족 집안 출신인 성 프란치스코 카라치올로(Franciscus Caracciolo, 또는 프란체스코)는 1563년 10월 13일 이탈리아 중부 아브르초(Abruzzo)의 발라 산타 마리아(Villa Santa Maria)에서 태어나 아스카니오(Ascanio)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는 22세 되던 해에 나병으로 여겨지는 중병에서 일어나기만 하면 하느님께 자신의 생을 바치겠다는 사적인 서원에 하였고, 기적적으로 회복되어 나폴리(Napoli)에서 공부하고 1587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거룩한 죽음을 준비하도록 사형수들을 돌보는 '정의 백의 사제단'(Bianchi della Giustizia)에 가입하였으며, 1588년에는 요한 아우구스티누스 아도르노(Joannes Augustinus Adorno) 신부와 12명의 동료들과 함께 병원의 환자들과 죄수들을 위하여 일하고 사목하는 '작은 수행 성직자 수도회'(Ordo Clericorum Regularium Minorum)를 설립하였다. 이 회는 규칙은 그 해에 교황 식스투스 5세(Sixtus V)로부터 승인을 받았고, 아도르노 신부가 첫 번째 장상으로 선임되었다. 다음 해에 그는 종신서원을 하면서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의 청빈을 본받는 의미에서 프란치스코라는 수도명을 정했다.
그들은 나폴리에 수도원을 짓고,
그 다음에는 에스파냐로 뻗어나가려 했으나 에스파냐 정부 당국이 수도원 건립 허가를 주지 않아 미뤄지는 사이에 이 수도회는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장되었다. 1591년 아도르노 신부가 사망한 후에 총장직을 승계한 성 프란치스코가 에스파냐를 방문했을 때는 그전보다 훨씬 좋은 여건이었기 때문에 마드리드(Madrid)와 바야돌리드(Valladolid) 그리고 알칼라(Alcala)에 수도원을 세울 수 있었다.
그는 7년 동안을 총장으로 봉사하다가 사임하고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Santa Maria Maggiore)의 원장 겸 수련장이 되었다. 그는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의 주교직 제의를 끝까지 거절하고 수도생활에 전념하다가 1608년 아뇨네(Agnone)에서 병이 들어 그해 성체 성혈 대축일 전날인 6월 4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일생은 환시와 예언의 은혜가 충만하였다. 그는 1769년 6월 4일 교황 클레멘스 14세(Clemens XIV)에 의해 시복되었고, 1807년 5월 24일 교황 비오 7세(Pius V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리고 1838년에 나폴리의 수호성인이 되었으며, 1925년에는 아브르초에 있는 성체회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그의 유해는 처음에는 나폴리에 있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에 안치되었으나, 후에 몬테베르지넬라(Monteberginella) 성당으로 옮겨졌다.
성 필리포 스말도네(Filippo Smaldone)
활동년도 : 1848–1923년
신분 : 신부, 설립자
지역 :
같은 이름 : 비리버, 스말돈, 필리뽀, 필리뿌스, 필리포스, 필리푸스, 필립, 필립보, 필립부스, 필립뽀, 필립뿌스, 필립포, 필립푸스
성 필리푸스 스말도네(Philippus Smaldone, 또는 필리포 / 필립보 스말도네)는 교회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정치 · 사회적 혼돈의 시기였던 1848년 7월 27일 이탈리아의 나폴리(Napoli)에서 태어났다. 그를 둘러싼 사회적 · 정치적 · 종교적 불안에도 불구하고 그는 교회 활동에 헌신하며 사제가 될 결심을 했다. 신학교에 입학하여 철학과 신학을 배우면서도 나폴리 안에서 아무런 원조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많은 소외된 이들과 청각장애인들을 돕는 일에 참여하였다. 공부하는 시간 이상으로 봉사하던 그는 소품을 위한 시험을 통과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는 나폴리 대교구의 신학교에서 학업에 정진하며 청각장애인에 대한 봉사를 계속하였고, 1871년 9월 23일 사제품을 받았다.
스말도네 신부는 저녁 교리반을 운영하고 병원에 입원하거나 집에 있는 병자들을 방문하며 사제다운 사목활동에 최선을 다했다. 그는 흑사병이 급속히 확산되던 때에 환자들과의 잦은 접촉으로 인해 감염되었으나 평소 마음속에 특별히 간직하며 일생 동안 헌신한 폼페이(Popmeii)의 성모 마리아께 전구함으로써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 그는 본당 사목에 더하여 청각장애인에 대한 교육 분야에 있어서도 선구자적인 사업을 계속하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만난 많은 장애들로 인해 낙담하고 그래서 사목 생활의 변화를 위해 해외선교에 관심을 돌리기도 했다. 그때 그의 현명한 고해신부가 그의 참된 사명은 나폴리에서 그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 안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일깨워주었다. 결국 그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사목에 자신을 바쳤고, 이를 자신이 수행할 사명의 근본적인 목적으로 삼았다.
이렇듯 오랜 세월 동안 체험을 통해 단련된 그는 1885년 3월 25일 이탈리아 남부의 레체(Lecce)로 가서 로렌조 아피첼라(Lorenzo Apicella) 신부와 특별히 훈련된 일단의 수녀들과 함께 청각장애인을 위한 협회를 설립하였는데, 이것이 성심의 살레시오 수녀회의 기초가 되었다. 그가 레체에 설립한 협회는 빠르게 뿌리를 내리며 발전했고, 후에 수녀회의 본원이 되었다. 1897년에 그는 로마(Roma)와 바리(Bari)에도 협회를 설립하였다. 스말도네 신부는 많은 이들의 요구에 의해 협회의 사업을 앞 못 보는 아이들과 고아들 그리고 소외된 이들에게로 확장해 나갔다.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이룩한 그의 위대한 사업은 외적 · 내적으로 많은 시련을 이겨내야만 했다. 외적으로 그는 반교회적인 지방자치 의회에 대항하여 스스로를 지켜야 했고, 내적으로는 그가 설립한 새로운 협회가 교황청의 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첫 번째 장상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이런 혹독한 시련들은 하느님의 거룩한 사람인 스말도네 신부를 시험하였고, 그가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신의 사업을 더욱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도록 이끌어 주었다. 그는 아버지다운 애정으로 청각장애 학생들을 교육하며 성심의 살레시오 수녀회의 수녀들에게 완벽한 수도원의 틀을 갖추어 주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였다. 또한 사제들과 신학생들 그리고 여러 수도 공동체의 고해신부와 영적 지도자로서도 활동했으며, 성체 흠숭 사제회 · 여성회를 설립하였고, 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cus de Sales) 선교회의 원장이 되기도 했다. 그는 레체 주교좌성당의 참사위원으로 선임되었고, 시 당국으로부터도 그의 활동에 대한 인정을 받았다.
필리푸스 스말도네 신부는 심장 합병증을 동반한 심각한 당뇨병으로 1923년 6월 4일 75세의 나이로 레체에서 선종하였다. 그는 자신이 설립한 수녀회의 수녀들과 평생 동안 섬겼던 가난한 이들에 둘러싸여 평화로이 세상을 떠났다. 1996년 5월 1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그를 복자품에 올렸고, 2006년 10월 15일 교황 베네딕투스 16세(Benedictus XVI)가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다른 세 명의 복자들과 함께 그를 시성하며 성인으로 선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