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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복지법 개악’으로 IL운동 위기 맞아
한자협, 22대 국회에서 ‘장애인자립생활권리보장법’ 제정 추진
‘장애인복지법 4장 개정’으로 IL센터 지원·권익옹호 강화
한자협은 1일 오후 2시, 국회 앞 ‘한국판 T4 농성장’에서 장애인자립생활운동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어깨꿈밴드의 ‘한자협 진군가’ 노래에 맞춰 사람들이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전국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들이 자립생활권리 보장을 위한 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 집결했다. 이들은 지난해 장애인복지법 개악으로 위기를 맞은 자립생활운동의 현실에 개탄하며,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1년 내 ‘장애인자립생활권리보장법’(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안) 제정을 이루겠다고 결의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한자협)는 1일 오후 2시, 국회 앞 ‘한국판 T4 농성장’에서 장애인자립생활운동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 한자협, 22대 국회에 ‘장애인자립생활권리보장법’ 제정 요구
장애인자립생활운동은 1960년대 미국에서 출발했다. 당시 미국은 인권운동, 여성운동, 반전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는 장애인권리운동에 영향을 미쳤고, 장애인들은 시혜적인 복지 모델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자립생활운동이 한국에 소개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Center for Independent Living, 아래 IL센터)가 운동의 거점이 됐다. 2001년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사로 촉발된 장애인 이동권 운동을 시작으로 활동지원제도화 투쟁, 교육권 투쟁, 탈시설 운동 등으로 자립생활운동은 확대됐다.
그러나 지난 21대 국회에서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장애인복지법 개악안’이 통과되면서 자립생활운동은 큰 위기를 맞았다. 장애인복지법상의 독립적 조항(54조)으로 있었던 IL센터가 장애인복지시설(58조)의 하나로 편입된 것이다.
최용기 한자협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당시 한자협은 개악안에 대해 “IL센터가 지니고 있는 장애인 당사자 중심성과 권리운동체로서의 성격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거세게 반대했다. 그러나 대안이 충분히 검토되고 토론되긴커녕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사안을 왜곡하고 거짓말을 일삼으면서 개악안은 결국 국회를 통과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 한자협은 현재 장애인복지법의 제4장 ‘자립생활의 지원’을 ‘자립생활권리보장’으로 개정하는 일부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근거해 장애인을 복지 수혜자가 아닌 권리 주체로 바라보고, IL센터에 대한 국가와 지자체의 예산 지원 강화, 권익옹호 활동 강화, 장애인의 시설 퇴소 및 자립생활지원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이날 총궐기대회에서 한자협은 이러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을 ‘장애인자립생활권리보장법’이라고 칭하며, 22대 국회에서 1년 내 제정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간절한 기원을 담아 장애시민국회를 개원해 장애인자립생활권리보장법이 많은 사람의 지지 속에서 통과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전국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들이 자립생활권리 보장을 위한 법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 집결했다. 사진 강혜민
- IL센터가 만든 변화, 시설수용 장애인을 당당한 시민으로
이날 발언자들은 장애인자립생활운동이 만들어 온 사회적 변화를 이야기하며, IL센터의 권익옹호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용기 한자협 회장은 “IL센터는 중증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동료성을 기반으로 자주적인 운영을 하는 곳”이라면서 “자립생활운동에서 권익옹호 활동을 뺀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라고 되물었다. 장애인복지법 개악안으로 권익옹호 활동이 약화될 현실을 우려한 것이다.
최 회장은 “중증장애인들은 몇 푼 안 되는 돈을 받으며 격무에 시달리고, 역량이 안 된다는 이유로 IL센터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막아야 한다”면서 “장애유형과 특성을 고려한, 장애인 권익옹호 활동이 보장되는 장애인자립생활권리보장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금호 한자협 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대구에서 온 노금호 한자협 부회장 또한 “2001년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이 떨어져 죽었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간 사람, 2005년 활동지원서비스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 삭발하며 투쟁한 사람, 시설에서 장애인이 학대받고 죽어갈 때 그 죽음을 막아선 사람들이 있는 곳이 바로 IL센터”라고 말했다.
노 부회장은 “지난해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이 대표발의한 장애인복지법 개악안에 거수한 국회의원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 모두 반성하라”고 분노했다. 그는 “지금 이렇게 많은 중증장애인들이 거리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IL센터 덕분이다. 감옥 같은 시설에 수용되어 있던 장애인들이 이제는 노동자의 모습으로, 활동가의 모습으로, 당당한 시민의 모습으로, 권리의 주체로 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면서 “국회의원들은 제발 이 중증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들어라”고 외쳤다.
장애인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영상으로 응원을 보냈다. 서미화 의원은 “장애인복지법 개악을 바로잡고자 장애인자립생활권리보장법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IL센터는 저항의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여러분의 투쟁이야말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장애인자립생활운동 총궐기대회에서 어깨꿈밴드가 ‘한자협 진군가’를 열창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 “비용 많이 들어서 탈시설 안 된다”는 오세훈의 말, 10년 전 부산 공무원도 했다
최영아 부산 함세상IL센터 소장은 “천문학적 세금이 든다”는 이유로 탈시설을 반대하는 오세훈 시장의 행태에 대해 지적했다. 최영아 소장은 “10년 전, 활동지원 면담할 때 부산시 공무원도 우리에게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오면 수천만 원의 돈이 든다고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오 시장 입에서 똑같은 말이 나오고 있다”면서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가 여전히 그들에게는 돈으로만 계산되고 있다”고 규탄했다.
최 소장은 “그 발언 때문에 해당 공무원은 전출됐다. 오 시장도 어딘가로 보내야 하지 않겠나”면서 “자립생활 권리는 시혜와 동정이 아니라 장애인의 당연한 권리”라고 강조했다.
최영아 부산 함세상IL센터 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그 뒤로 한자협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사진 강혜민
장애인자립생활운동이 만든 변화 중엔 권리중심공공일자리도 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노동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탈시설한 장애인들이 공공기관에 고용되어 권익옹호, 문화예술, 장애인식개선이라는 3대 직무를 통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홍보하는 일자리이다. 2020년 7월에 서울시에서 시작한 이 일자리는 전국으로 확대되어 시행되고 있다.
나주변화IL센터에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로 3년째 일하고 있는 김성현 씨는 “3년의 노동으로 내겐 많은 변화가 생겼다”면서 “친구도 생기고, 화가 많았던 성격도 부드러워졌다. 돈을 벌면서 미래도 꿈꾸게 됐다. 내년에도 꼭 일하고 싶다”고 전했다.
궐기대회 사회를 본 정다운 한자협 사무총장은 “서울에선 탈시설조례가 폐지되고,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이런 세상에서 IL센터가 최중증장애인들의 권리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라면서 “우리에게는 IL센터를 결성하고 조직할 권리가 필요하다. 국가와 지자체가 예산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 사무총장은 “막무가내로 돈 내놓으라는 게 아니다. 우리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근거해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향한 권리 실현을 위해 현장에서 투쟁하며 당사자들을 만나고 있다”면서 “이를 위해 IL센터에 대한 지원 강화가 법에 명시되어야 한다. 탈시설 권리가 역행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장애인자립생활권리보장법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자협 활동가들이 ‘장애시민국회’를 개원해 장애인자립생활권리보장법이 많은 사람의 지지 속에서 통과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강혜민
한편, 한자협,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은 총궐기대회를 시작으로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1박 2일 전동행진에 돌입했다.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가 시작된 2019년 7월 1일을 기점으로 진보적 장애인운동계는 장애인권리예산보장을 촉구하는 전동행진을 매년 진행하고 있다. 올해로 6회째를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