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1978년 꽃을 위한 헌사에서 부터 〜
꽃이나 꽃을 모아 피우는 꽃밭은 언제 봐도 기쁨을 준다. 꽃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신라 시대 경주에서 강릉으로 올라오는 도중 수로부인에게 선물하고 싶은 노인의 선물도 벼랑위의 꽃이었다.
나는 꽃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였다. 수술 후 아픈 몸을 달래는 방법은 꽃을 보는 일이었다.
1976년『새교실』 <지우문예> 추천작에도 처음 추천 받은 작품이 ‘곷밭’이었다.
꽃 밭
꽃밭 가득 피어았는 꽃들은
얼굴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정다운 친구일 거야
정다운 친구가 아니라면
그들의 향기가 그렇게 곱지는 못할 거야
그들의 얼굴이 그렇게 예쁘지는 못할 거야
그들의 고운 향기는
하나같이 아름다운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일 거야
그들의 예쁜 얼굴은
하나같이 정다운 이야기만
하기 때문일 거야
그들이 만일
아름다운 마음을 잃어버린다면
정다운 이야기를 내동댕이친다면
햇살은 울고 싶은 마음으로
따스한 손길을 거두어들이고
구름은 슬픈 일이지만
가슴 속 깊숙이 간직한
금비 단비를 보내주지 않을 거야
그러면
그들의 고운 향기도
예쁜 얼굴도
영영 잃어버릴 거야
다시는 피지도 못할 거야
나비도 꿀벌도 모두
마음 아파하며
다시는 찾아오지도 않을 거야.
『새교실』1회 시 추천. 1976년 5월호)
( 1988. 8. 30. 제4시집<동시집>, 『풀잎과 코스모스에게 』)
( 2015. 4. 15. 남진원동시선집. 지식을 만드는 지식)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시 ‘곷밭’ 이외에도 ‘꽃’을 소재로 한 많은 작품들을 썼다.
[동시]
깨꽃
꽃이 피었다.
순할 수 있을까, 이리도…
흰색 은은함과
겸손한 마음이 다 나타나 있다.
가정 고소한 기름을 가진 참깨는
거만함을 드러낼 법도 한데,
꽃ㅊ에서 그 성품이
드러나는구나.
깨 중에 ‘참’ 깨
그냥 붙여진 이름이 아니구나.
내 행동을 떠올릴 때는
나는 참깨를 돌아본다.
그 착한 꽃을 그려본다.
(한국불교아동문학 2017 연간집, 『무궁화할아버지』)
꽃
엄마가 꽃을 보고 있으면
“예뻐라!”
꽃이 말하는 소리 듣는대요
엄마가 꽃을 만지고 있으면
“튼튼하구나!”
꽃이 말하는 소리 듣는대요
엄마가 꽃에게 다가가면
“사랑해!”
꽃이 말하는 소리 듣는대요
태아도 정말 사랑을 느낀대요
( 2012. 10. 13. 제11시집 『톨스토이태교동시』,처음주니어,)
꽃
어느 날은
슬픈 모습
어느 날은
기쁜 모습
그건 자네 모습이야
나는 그냥 피고 지지
점잖게
말은 하지만
질리도록 나무란다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꽃
가만히
네가 나를
먼저 보면
난 숨어버리지
네 속에
숨어버리지.
( 시집, 『장자의 하늘』, 태원출판사, 2004. 6. 30.)
(강원문학대선집, 강원문학대선집발간위원회, 2005년 6월)
꽃
넌 땅위의
별
예쁜
하늘나라에서 온
땅의 별
가만히
네가 나를 보면
난 숨어버리지.
네 속에
숨어버리지.
( 시집, 『어초(語草), 2002. 8. 1.)
꽃
아픈 모습으로
꽃이 피었다.
내 아픔이
꽃을 가리웠기 때문이다.
행복한 모습으로
꽃이 피었다.
내 행복이
꽃을 가리웠기 때문이었다.
꽃이 피어 있었다.
어느 날
거기엔
아픈 꽃도, 행복한 꽃도 없었다.
( 시집, 『어초(語草), 붓다가야, 2002. 8. 1.)
돼지감자꽃
잠자리 떠다니는 파란색 하늘 아래
한가한 노랑웃음을 마구마구 날린다
꽃
살을 물어 뜯으며
모질게 다독인 숨결
이제 뜨거운 피
붉게 끓이며 태우며
피어서 영혼의 불을
사방 천지에 밝힌다.
( 1986. 1. 『월간문학』)
꽃
보라
끝내
네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사랑의
피
핏자국
( 1987. 10. 1. 제3시집『넘치는 목숨으로 와서』)
꽃가지를 흔들 듯이
꽃가지를 흔들듯이
너를 자꾸만 흔들고 싶은
바람이고 싶어
매화 향기 불어오듯
그렇게 네 가슴에 번져드는
향기이고 싶어
가을엔 내 속살 송두리
너로 하여 익어가는
과일이고 싶다.
그러다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내 하늘빛 기다림은 겨울바다에서
또 한 해 새움으로 돋아날
바람이고 싶어서
봄이고 싶어서…
( 「관대 신문」, ‘이 고장 문인과의 만남’ 글 속의 시. 1984. 10. 27. )
꽃과 나비
1.
나비가 꽃밭에
날아 왔어요
뽐내고 웃고 있는
꽃들을 지나
마음 예쁜 꽃 위에
앉았습니다
2.
나비가 꽃밭에
날아왔어요
다투며 시샘하는
꽃들을 지나
마음 착한 꽃에만
앉았습니다
( 1989. 4. 솔바람 47호)
꽃구경
5월 10일 휠체어로 화장실을 다녀온 후 3층 정원으로 갔다. 문을 열자 바람이 휙 몰려온다. "시원하네!" 아내는 춥다고 한다.
내가 웃으니 "웃을 일이 아니야! " 정색을 하고 말한다. 늘 어눌하고 발음이 정확하지 않더니 이 말은 정확했다. 정확한 발음이 반가워서 더 크게 웃으니 추워 죽겠단다.
아내를 보고 웃는 오랜만의 웃음, 그게 마지막 꽃구경이었다.
( 2013. 시집, <하늘에 기댄 아내>, 태원 )
꽃나무
나무가 잎눈을 열며
말을 걸어온단다
꽃망울이 벌 때는
꿈속에까지 찾아온단다
그런데
그런데
먼지가 가득 낀 날은
하루종일 장님이 된단다
소음이 가득한 날은
하루 종일 벙어리가 된단다.
(1988. 6. 3. 『씨앗을 심는 다섯소리』, 감자동인 4집 )
2020년 꽃들의 침묵
남진원
저 2020년의 침묵은 하얀 누군가의 잊혀 진 신경이다
미모를 뽐내는 데 보아 주는 이 없으니 그리움의 눈빛 하나 전할 수 있으랴
코로나 19로 끊어진 발자취
꽃들의 화사함이 오히려 무거운 날
사회적 거리두기로 모두는 스쳐가는 행렬
「감염 병 장례식장」으로 들어서는 행렬 같은 검은 마스크 흰 마스크 …
2020년, 산과 들 일시에 침묵하고
밀랍 인형들이 멀찍이 거리를 둔 채 흘러 다닌다.
* 약력: 1976년 ≪샘터≫ ‘샘터시조상’ 으로 등단. 저서로 시집『하늘에 기댄 아내』,『무소유의 냄새』등 많음, 현대시조문학상, 강원도문화상 등을 수상. 현재 강원시조시인협회장으로 활동.
꽃망울
새 신부처럼
얌전한
꽃망울
나오려는 웃음을
안 보이려고
자꾸 고개를 숙이지만
나비가
모올래 넣어둔 기다림이
몽실몽실
웃고 있다.
( 1980. 물레문학 창간호)
꽃망울
물감 번지 듯
항홀함으로 번지는
네
작은
젖꼭지
( 1989년 9월. 해안 6집 )
꽃망울
안으로
안으로
설레는 마음
감추고
송이
송이
발그레
익어가는
꿈망울
( 1988. 8. 30. 제4시집<동시집>, 『풀잎과 코스모스에게 』)
( 1980. 물레문학 창간호)
( 2015. 4. 15. 남진원동시선집. 지식을 만드는 지식)
꽃모종을 하고
이른 봄날 양지 볕을 소복이 모아논 밭
보송한 흙을 헤쳐 꽃씨들을 뿌렸어요
꿈꾸며 살며시 크라고 가만히 덮어준 흙 이불
잠깬 꽃씨들이 시샘하며 크고 있어요
연둣빛 바람 불면 옴짓옴짓 말을 할 듯
연하디 연한 얼굴로 반기는 저 새 잎들
아빠와 비 맞으며 꽃모종을 하였지요
해바라기는 맨 뒷줄에 채송화는 맨 앞줄에
이제는 대접을 받는 어엿한 식구가 되었지요
이사한 꽃님들 꽃밭에서 잘 지낼까?
아직도 잎 적시는 단비가 오시는데
문 열고 내려다보니 다소곳이 섰어요
살금이 문을 닫고 방에 누워 있으려니
비님이 보내시는 은빛 나라 은빛 노래
내 마음 무지개 꽃밭에 송송 날고 있었지요.
( 1986. 10. 1. 『강원아동문학』 11집 )
( 1988. 8. 30. 제4시집<동시집>, 『풀잎과 코스모스에게 』)
( 1989. 4. 15. 제5시집,동시집>, 『가을바람과 풀꽃, 그리움에게』)
( 2015. 4. 15. 남진원동시선집. 지식을 만드는 지식)
꽃물 들어 아픈 날
雨水 지난 골짜기에 새 물 줄기 드리우듯
내 마음 계곡에도 움돋는 강이 있다
매화꽃 향기의 물줄기, 장강보다 긴 흐름
띄워놓은 거룻배 안, 畵紙를 펼쳐놓으니
나는 돌연 붓이 되어 홀연히 휘몰아친다
꽃물 든 내 봄날의 아픔 아스라이 날린다
( 2016. 4. 13. 남진원 제15시집. [무소유의 냄새]. 태원 )
- 시집속의 시조집 「나를 놓다」
( 제17시집 『조그마하게 살기』, 태원, 2023. 5 )
꽃바람
아침 푸른 참새소리
도란 도란 목에 걸고
바름은 매일 같이
꽃밭에 들러서는
꽃 향기 부신 상쾌함
꽃 속에서 취해 논다.
( 1979. 10. 20. 물레방아 제4호 )
꽃바람 둘이 둘이
바람은 코가 있다
향기 따라 찾아오는
바람은 눈도 있다
나비 따라 찾아오는
바람은 꾸러기 같은
참말 친한 꽃 친구
꽃밭에 소곤소곤
바람이 얘기한다
무언지 우리는 모를
다정한 얘기들을
꽃․바람 둘이 둘이만
너무 재밌게얘기한다.
( 1979. 10. 20. 물레방아 제4호 )
꽃바람 풀바람
꽃 속에서 놀다 온 바람이기에
바람은 한 올 한 올
고운 향기입니다.
풀숲에서 놀다 온 바람이기에
바람은 한 잎 한 잎
진초록 풀내음입니다.
그 바람이
살며시 들어서는 골목길
골목길엔
꽃 내음이 넘실대며
풀 내음이 넘실대며
상쾌한 빛깔들이
해해거리며
하늘 속으로 하늘 속으로
날아오릅니다.
( 1982. 5. 『아동문예』)
첫 시집 (동시집), 『싸리울』, 1982. 12. 10. 아동믄에사)
꽃 밭
1.
빨강
파랑
노랑
웃음이 오순도순 흐른다.
2.
나비가
웃으면
꽃이 따라
웃고
꽃이
웃으면
나비가
따라 웃고
3.
하루 종일
망설이기만 했다는데
꽃은
나비야
하루 종일 기다렸대요.
4.
아! 고개 내민
곱디 고운 얼굴들
이 밝은
얼굴들 속엔
미움도 사랑으로
ᄇᆞ꾸어놓네
5.
그때 그 풀밭에서
놀던 때와 같더니
이젠
엄마 해바라기
누나 해바라기
왼종일
해 따라 웃으며 섰네.
6.
한 꽃은 팔짱을 끼고
또 한 꽃은 손을 포개고
인사합니다.
7.
바람으로 구름으로 말끔이 닦고 닦는
곱고 고운 얼굴들
티끌도 부끄러워라
앉으려다 그냥 간다
8
가만히 겨울 꽃밭
귀대어 보면
땅속에서 들려오는
꽃씨들의 소곤거림
빨간 꽃씨는 빨간 꿈
노란 꽃씨는 노란 꿈
저마다 소곤대는 고운 꿈 자랑
가만히 겨울 꽃밭 귀 대어 보면
꿈씨들의 소곤거림 간지럽다.
9.
아침 푸른 참새소리
도란도란 목에 걸고
바람은 매일 같이
꽃밭에 들려서는
꽃향기 부신 상쾌함
꽃속에 취해 논다.
10.
올해도 꽃씨를 받는다
안개꽃 기생꽃 족두리꽃
꽃씨를 받노라면
어느새 마음은
내년을 향해 달리고
거기엔 꽃시를 받는
내가 서 있다
올해보다 더 예쁜 꽃밭에서.
(1978년 12월 1일. 『조약돌』)
웃음 박꽃
엄마 손 잡고
이웃집에 같이 갔다
엄마가
울 너머에 대고
큰 소리로 순희 엄마를 부른다
마루 밑에 있던 봉당개가
반가워 먼저 짖어대는구나
살그머니 순희 엄마 손으로 건네는
인절미 한 접시
그때 웃던 우리 엄마 웃음
젤 예쁜 웃음 박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