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원에 들어 갔을 적에
지도교수님은 해외에 계셨기에
선배님이 시키는대로 일을 하여야 했다.
선배님은
나에게 다른 사람이 2년 반을 실험을 하였으나
진척이 없자 나에게 대신 하라고 하였다.
나는 왜 그가 실험을 잘 하지 못 할까 생각하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준비를 하였다.
우선 실험기구를 내 손으로 닦고 멸균하였다.
그리고는
실험재료인 소 난자를 얻기 위하여
마장동 도살장으로
아침 일찍 출근을 했다.
소를 잡을 때 소 난소를 떼어 달라고
부탁 해 둔 것을 가지러 가기 위해서였다.
늦게 가면
그냥 실온에 놓아 둔 재료가
좋지 않을거란 우려 때문이었다.
도살장 사람들은 나에게 왜 남자를 보내지
왜 이런 험한 곳을 여자가 왔느냐고 묻곤 하였다.
사육실을 돌보던 남학생이 있었으나
그는 자기 할일을 다 마치고
시간이 나는대로 오전이든 오후든
재료를 가지고 와서
난자의 상태가 아주 나빴다.
그래서 나는 직접 내가 간 것이었다.
해부현미경 아래에서
소 난소를 놓고 여포를 터뜨려
소의 미성숙 난자를 꺼내고
그걸 여러가지 배양액에 넣어
배양시켜 결과를 보는 실험이었다.
나는 그 실험을
6개월만에 끝을 내었다.
다른 사람이 2년반 동안 하였으나
진척이 없었던 실험을 단 6개월만에
끝냈다.
그 실험으로 내 석사학위 논문을
쓸 수가 있었고
그 실험을 시킨 선배님의
박사학위 논문의 재료가 되었다.
사정에 의하여
내가 실험실을 떠난 후에
우연히 그 선배님을 시내버스에서 만났다.
그는 말하기를
교수님께 자기 논문에
내이름을 넣어달라고 부탁을 하였으나
교수님이 거절하였단다.
그래서 내게 미안하다고 하였다.
내가 한 실험이지만
내가 그 실험을 하였다는 문구조차 넣어 주지 않았다.
나는 두고 두고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슬프다.
물론
내가 한 실험에서
선배님과 내가
논문을 한편씩 가지게 된 것 만으로도
나는 감사해야 한다면서도 슬펐다.
그러나 훗날 나는 생각하였다.
만약에
그 두편의 논문에 내 이름이 다 들어갔다면
2년반 동안이나 실험을 끝내지 못하고
나에게 빼앗긴(?) 그 사람은 얼마나
기분 나빴겠는가.
역시 스승님은 현명한 판단을 한 것이다.
이제 난자들의 이야기를 하여야 겠다.
해부 현미경으로 내가 본
소 난자는
노란색이고 조금 거칠다.
돼지 난자는
검은색이고 거칠다.
사람난자는
하얗고 매끄럽고 예쁘다.
사람 난자는
50대 여인이 난소를 적출하는 수술을
하여 그 난소를 스승님이 얻어 와서 난자를
꺼내 보았다.
첫댓글 슬프네요... 실험실 안에서 이뤄진 비화...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다니, 그 와중에서도 타인의 입장에서 이해하신다니 선생님은 참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