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들판 끝에 날개를 접은 흰나비
어느 늦가을 꽃을 잃어버리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작고 늙은 흰나비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유리 벽 너머 꽃들이 놀고 있는 들판을
멍하니 바라보며
시골버스 정류장 딱딱한 유리벽에
무얼 기다리는지
죽은 듯 고요하게 붙어 있다
멀리 산 아래부터 정류장까지 들판에 펼쳐진
국화, 코스모스, 이름 모를 야생화들
조금만 옆으로 비껴 날면
어느 꽃에서든 단꿀을 먹을 수 있고
언제나 목을 축일 수 있는 이슬이 숲에서 유혹하는데
어쩐지 나비는 관심이 없고
버스가 와서 문이 열릴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겹눈 크게 뜨고 누군가 찾고 있다
들판을 벗어나
도시 축제에 놀러 갔다 오겠다던 어린 나비가
어느 늦가을 밤 버스 타고 간 후로 돌아오지 않고,
짓눌려 별이 됐다는 소식을 믿고 싶지 않은
늙은 흰나비에게
꽃이 있는 들판은 이미 죽어 있다
버스 오는 소리에 겹눈 크게 뜨고
혹시나 하고 기다리다 굳어버린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작고 늙은 흰나비
詩作 노트
한적한 시골 버스 정류장에서, 한 노인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낡은 모자를 쓴 채 구부정한 허리로,
그는 버스가 다가올 때마다 힘겹게 일어나 한 사람 한
사람을 애타게 살폈다.
"누굴 기다리세요?"라고 물었을 때,
그는 잠시 하늘을 보더니 낮게 말했다.
"마실 나간 손녀를 기다리네..."
그 말은 바람에 실려 사라질 듯 희미했고, 그 눈빛 속에는
깊은 슬픔이 서려 있었다.
정류장 뒤편으로는 가을이 깊게 번져 있었다.
황금빛 들판이 노을에 물들고, 코스모스와 국화가 바람을
타고 흔들렸다. 그 풍경은 잔잔하고 아름다웠지만,
그 노인에게는 더 이상 기쁨을 주지 못하는 듯했다.
노인은 버스가 올 때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렸지만,
돌아오는 사람은 없었기에...
어느새 노인은 정류장을 떠나갔고, 그가 앉아 있던 자리엔
작은 흰나비가 홀로 남아 유리벽에 조용히 붙어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고 늙은 나비.
황혼이 짙어가는 가을의 들판을 등지고, 그 나비는 여전히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듯 고요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들판은 더 이상 노인의 손녀가 뛰놀던
곳이 아닌, 기억 속의 잔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기억의
조각들은 흰나비의 날갯짓 속에서 천천히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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