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노래 한 곡에서 찾은 아름다움
김종훈
20여 년 전 여름, 대학교 교양수업 중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살면서 언제 아름다움을 느껴보았는지’ 질문을 하셨죠.
살아가며 와 저거 멋지다, 예쁘다, 맛있네, 기분 좋다, 잘 그렸군, 듣기 좋네,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은 많아요. 하지만 아름다움, 그건 좀 뭔가 달랐습니다. 딱 집어서 아름답다고 할 수 있었던 경험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인생을 더듬으며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천천히 곱씹어 봤습니다. 내 인생에 그런 게 있었나 없었나 고민하던 중, 불현듯 떠오른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초등학교, 당시는 국민학교였어요. 생일이 빨라 7살에 입학했습니다. 유치원에 갈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학교에 입학하라는 통지서가 날아왔어요. 정신 차려보니 동네 1살 터울 형 누나들과 같은 반에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바뀐 환경에 제대로 적응을 못 했죠. 남들 다 맞추는 등교 시간조차 잘 못 지켰어요. 받아쓰기, 시험, 이런 것은 개념 자체가 없어서 만날 0점이었습니다. 앞에 나가서 선생님께 드려야 하는 제출물도 부끄러워 직접 내지 못하고 짝에게 부탁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를 떠올려보면, 마냥 불행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행복했던 감정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그건 노래 한 곡 덕분이에요.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Bridge over troubled water.
7살의 아침 동이 틀 때, 어머니께서 매일 이 노래를 들려주셨습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눈을 뜨면 이 노래 멜로디가 항상 함께 했어요. 영어를 하나도 몰라 무슨 뜻인지는 전혀 몰랐죠. 그저 사이먼과 가펑클의 감미로운 화음과, 클라이맥스에서 심장을 울리던 그 드럼 소리. 그 소리들과 함께 잠에서 깼습니다.
요즘도 이 노래를 들으면 온 몸에 전율이 느껴져요. 그 때의 그 이불 감촉. 날 깨우던 어머니의 그 젊었던 목소리. 구수한 아침 밥과 국의 냄새. 어린 내 눈의 틈으로 들어오던 눈부신 햇살. 정말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기억이지만, 이제 제법 나이가 든 나에겐 벅찬 감동으로 되살아 납니다.
맞아요. 저는 이 노래를 들으면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내 어릴 적 추억 속으로 데려가 주기 때문이에요. 그 속에는 어린 내가 있고, 건강하셨던 우리 엄마도 있고, 가난했지만 정겨웠던 우리 집이 있습니다. 마치 시간 여행이라도 한 듯 그때 그 시절이 오감으로 되살아납니다. 부지불식간에 아름다움이라는 감정이 나를 휘감습니다.
그렇게 이 일화를 발표했습니다. 무언가를 예쁜 것을 보았을 때, 사랑에 빠졌을 때, 무언가를 이루었을 때와 같은 내용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던 중 이었습니다. 제 어릴 적 사이먼과 가펑클 이야기에 모두가 주목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좋은 미적체험을 가지고 있다며 그 삶이 바로 행복한 삶이라 평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제 아내는 아이가 일어날 때마다 음악을 들려줍니다. 이루마의 피아노 연주곡입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아이만의 미적 체험을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습니다. 마치 어린왕자의 작은 마법처럼요. 생텍쥐페리는 밤하늘의 별을 볼 때마다 어린왕자의 청량한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몰래 아무도 모르는 미소를 지었지요. 제 아이도 훗날 이루마의 연주곡을 들을 때마다 아마 지금 이 시절로 되돌아오면서 미소 지을 거라 생각합니다.
조각가 로댕은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결코 우리의 시야 내에 없을 리가 없어요. 다만 우리의 눈이 그것을 알아보지 못할 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우리 삶에는 많은 아름다움이 산재해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평범해서 그걸 모른 채 살아가죠. 아름다움을 바로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열심히 닦아야 합니다. 걱정, 돈, 불평과 같은 눈곱이 있다면 다 떼어버리고요. 맑은 눈으로 우리 세상의 아름다움을 많이 자각하며 살아갈수록 인생이 더 행복해집니다.
네잎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지만, 세잎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입니다. 아름다움이란 찾기 어려운 네잎클로버가 아니에요. 평범하게 지천에 널려있는 세잎클로버조차도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평범에서 미적 체험을 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