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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간화선看話禪 수행修行
5. <무>에서 <척수성隻手聲>으로
5. <무>에서 <척수성隻手聲>으로
선도회 간화선 수행의 입문 과정인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화두들’은 <무無>자 화두로부터 시작한다. 조주(趙州從諶, 778∼897)화상에게 한 스님이 ‘개에게도 불성이 있느냐?’고 묻는다.『열반경涅槃經』에 나오는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 즉, 모든 중생은 불성이 있다’에 대해 물은 것이다. 이에 대해 조주 화상은 “없다(無)!”라고 대답한다.
이로부터 시작된 <무>자 화두는 오조법연(五祖法演, ?~1104)선사의 법문에서 최초로 제기되었고,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선사에 의해 간화선 화두로 개발되었다. <무>자 화두에 대해 종달 노사님은 그의 책『선과 과학』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공안을 보는 때 그것에 체당體當하여야 하는 것이지 이론으로서는 통치 못한다. 다시 말하면 공안의 줄거리의 중심점을 잡아서 그와 한 몸이 되어야 한다.
사실상 1,700 공안의 중심점은 <무>하나로 통한다. 진리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1,700 공안을 내세웠을까. 그것은 우리들의 일상생활이 천 가지 만 가지 차별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희익,『선禪과 과학科學』 p. 62.)
무문혜개(無門慧開, 1183~1260) 선사는 옛 공안들을 가려 뽑아 『무문관無門關』이라는 공안집公案集으로 정리할 때, 이 화두를 1칙에 배치하여 간화선 수행의 선두先頭 타자打者로 삼았다. 『중국 선종의 성립사 연구』, 『선의 역사와 사상』, 『선종의 전등설 연구』 등등 많은 책들을 쓰고, 역서로 『돈황본 육조단경』, 『금강경 강설』, 『벽암록』 『종용록』등을 펴낸 정성본(鄭性本, 1950~ ) 스님은 <무>자 화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간화선의 수행체계는 조주의 무자화두 참구와 공안 공부라는 두 가지 골격으로 이루어진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조주의 <무>자 공안을 참구하여 번뇌 망념의 중생심에서 각자의 근원적인 본래심을 깨닫는 <무>자 공안을 참구하는 방편과 대승불교 경전과 선승들의 어록 등에 전하는 불교사상과 수많은 법문, 선문답 등의 다양한 사례와 판례를 깊이 사유(看)하여 정법의 안목을 체득하고 많은 지혜를 구족하는 공안공부를 병행하는 수행인 것이다. (無門慧開, 鄭性本 譯註,『무문관無門關』「무문관에 대하여 」 p. 361.)
<무>자 화두는 ‘번뇌 망념의 중생심에서 각자의 근원적인 본래심을 깨닫는’ 근본根本이 되는 ‘체体’의 화두이고, 그 외 다른 화두들은 ‘다양한 사례와 판례를 깊이 사유하여 정법의 안목을 체득하고 많은 지혜를 구족하는’ 활용活用의 화두 ‘용用’의 화두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화두는 크게 <무>자 화두와 <무>자 아닌 화두로 나눌 수 있다는 주장이다.
법경 법사님도 그의 책에서 ‘무문관은 첫 번째 <조주무자趙州無字>가 전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며, 나머지 47칙은 모두 이 <조주무자>를 철저히 투과했는지를 다시 점검하기위해 있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하셨다. 그렇다! 그렇게 중요하게 치부되는 화두이지만 그 만큼 쉽게 들리지 않는, 쉽게 투과할 수 없는 화두이기도 하다.
당․송대, 전문 선원에서 아침저녁으로 입실하며 수행하는 출가자들에게 <무>자 화두는, 잡생각을 지우고 참선 수행에 몰두하게 하는 좋은 화두이다. 초보 수행자들에게 다른 생각을 못하게 하는, 생각할 여지조차 주지 않는 다분히 의도적인 장치라고나 할까? 매일 점검을 받는다면 이리저리 만져보고 굴려가며, 살살 다독이고 독려督勵하는, 그리고 자신을 제어하기 좋은 무념무상無念無想, 무색무취無色無臭의 화두이다.
그러나 1주일에 한 번씩 입실하는 재가자들에게 <무>자 화두는 그리 녹녹한 화두가 아니다. 오히려 단순하고 쉬워서 화두 본질에 접근하기 어렵다. ‘왜? <무>라고 했을까?’라는 의심을 가지고 참구하라고 지도한다지만, 그런 의심, 나아가서는 의단疑端을 일으키기도 쉽지 않은 화두이다. 그래서인지 선도회 재가자들은 보통 1년 혹은 1년 넘게 이 화두를 참구한다.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화두들>과 『무문관』을 끝내고, 재독 과정에 들어가면 세 번째로 화두 <무>를 마주한다. 필자의 경우, 세 번째 <무>를 투과하였을 때의 환희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요즘 말로 “포텐(Potential)이 터졌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자 화두를 완전히 알게 된 것은 그 후로 한참 뒤인『벽암록碧巖錄』을 마치고 나서다. 알게 되었다고 하기보다 무심해졌다고나 할까! <무>자 화두에 대한 털끝만큼의 의심도 사라지고, 그때까지 껄끄럽기만 했던 화두가 착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화두와 하나가 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처음 참구할 때는 껄끄럽기도 하고 잘 들리지도 않던, 참! 멋없는 화두라고 생각했었는데, 모든 화두들을 투과하고 나서 보니 <무>만큼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화두가 없었다. 왜 <무>자 화두를 강조했는지, 왜 종달 노사님이 ‘간신히 <조주무자>를 얻어 평생을 쓰고도 다 못 쓰고 가노라!’라고 하셨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화두를 하나만 가져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이때였다. 돌아가실 때까지 ‘<무>라! <무>라!’를 염송하며 평생토록 <무無>자 화두를 들고 계셨다는 효봉(曉峰, 1888~1966)스님을 이해할 수 있었다. 효봉 스님은 ‘절구통 수좌’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한 번 앉았다 하면 일어날 줄을 몰랐다고 한다. 뜨거운 방바닥에 얼마나 오래 앉아있었는지, 피가 나고 또 굳어서 일어나면 방석이 엉덩이에 붙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재가자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다.
필자는 수행하면서 <무>자 화두에 걸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회원들을 많이 보았다. 처음 당하는 은산철벽銀山鐵壁같은 화두에 “간화선은 어렵구나!”라고 생각하게 되고, 건조함에 답답하기도 하여 자칫 흥미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화두이다. 초보자에게 <무>자는 집중하기 어려운 화두이면서, 또 풀고 나면 허탈虛脫하기만 한 화두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무>자 화두는 초보자, 특히 재가 수행자에게 무리가 있는 화두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다만 양쪽 끝, 즉 상대적인 양변을 끊어라.
但割斷兩頭句。
있다느니 있지 않다느니,
割斷有句不有句。
없다느니 없지 않다느니 하는 것을 끊으면,
割斷無句不無句。
양쪽의 자취가 나타나지 않는다.
兩頭迹不現。
양쪽에서 잡아당겨도 끌리지 않고,
兩頭捉汝不著。
어떤 헤아림이나 규정으로도 너를 얽어매지 못한다.
量數管汝不得。
부족한 것도, 완전한 것도 아니고,
不是欠少。不是具足。
범부도 성인도, 밝음도 어두움도 아니다.
非凡非聖。非明非暗。
앎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不是有知。不是無知。
그렇다고 얽매임도 해탈도 아니어서,
不是繫縛。不是解脫。
어떤 이름도 붙일 수가 없다.
不是一切名目。
(『指月錄』권8, 百丈懷海.)
영하산방 부법사였던 청연 거사는 8개월 넘게 <무>자 화두와 씨름하다가 필자를 만났다. 몸도 아팠고 집안 형편도 좋지 않아 그만 둘 요량으로 참석한 여름 수련회에서다. 형편상 일주일 마다 입실하기도 어렵고, 자기 능력으로는 어렵다고 생각하여, 이제는 그만 두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참석한 마지막 수련회였다.
필자는 사정을 다 듣고 전자입실을 권했고, 거사는 그것을 받아들여 공부를 지속할 수 있었다. 당시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방문하기 힘든 제천에 있는 영하산방 모임에서만 유일하게 전자입실을 하고 있었다. 매일 입실하는 전자입실의 효과가 있었는지, 이후 다시 공부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열심히 수행 정진하여『무문관無門關』과정을 모두 마치고 부법사가 되었다.
많은 경험은 아니지만 후학後學들을 지도하면서 <무>자 화두를 투과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또 어렵게 <무>자 화두를 투과했다 하더라도, 그 경계를 신뢰하지 못해 선도회를 떠나는 회원들도 보았다. <무>자 화두에 대한 경계나 이론들이 분분하다보니, 그들 경계들과 비교해보고 선도회 경계를 믿지 못하게 되는 경우다. 기대가 컸던 만큼 투과한 경계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선도회 공부를 그만 두는 것이다. “겨우 이거냐?”라며 보다 공신력 있는 기관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공부를 끝까지 해보지도 않고 선도회 간화선 공부에 의문을 품는 것이다.
어느 날 조주가 스승 남전南泉에게 물었다.
“도를 깨달은 사람[知有底人]은 어디로 갑니까?” 一日問泉曰:知有底人向甚麼處去?
남전이 말했다.
“산 앞의 단월(檀越) 집에 가서 한 마리 물소(水牯牛)가 되어라.” 泉曰:山前檀越家作一頭水牯牛去。
조주가 말했다.
“스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師曰:謝師指示。
남전이 말했다.
“어젯밤 삼경에 달이 창에 이르렀도다.” 泉曰:昨夜三更月到窗。
(『五燈會元』 권4 「趙州從諗禪師」,『古尊宿語錄』.)
그래서 고민 끝에 굳이 실체가 없는, 그리고 참구하기도 어려운 <무>자 대신, 다른 화두로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단순히 순서만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수행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하산방 모임에서는 몇 번의 시도 끝에 의심하기에 용이한 <외짝 손 소리, 척수성隻手聲!>을 첫 화두로 선택하게 되었다.
<척수성>도 초심자에게는 그리 쉬운 화두는 아니다. 그러나 ‘한 손으로 내는 박수소리는 뭘까?’라는 당면한 문제에 부딪혀 쉽게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화두다. 그리고 간단한 질문이다 보니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뚜렷한 목적이 눈앞에 있어 흥미를 잃어버리지 않게 된다. 한 마디로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선의 진수를 느끼게 하는 화두이다.
이 화두의 창시자인 하쿠인 에카쿠 (백은 혜학白銀慧鶴, 1686~1769) 선사는 기존 조주趙州 화상의 <무無자> 공안을 대신하거나 보완할 수행 방법으로 <척수성, 외짝 손 소리> 공안을 고안考案하고 지도指導했다고 술회述懷한다. 그는 1753년 『藪柑子』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懷古한다.
지난 5~6년 전부터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내어 사람들에게 한 손의 소리를 듣도록 지도해 왔다. 此五六ヶ年以來は、思ひ付きたる事侍りて、隻手の聲を聞屆け玉ひてよと人每に指南し侍るに。
그리고 이 방법이 이전의 지도 방식보다 의심을 일으키기 쉽고 수행을 진전시키는 데 효과적이었다고 평가한다.
어떤 경우는 자기에 대해서 의심하고, 혹은 無字를 참구하게 하는 등, 이런 저런 방편을 구사해 왔지만…, 5, 6년 이후는 생각이 난 것이 있어서, ‘隻手의 聲(片手의 音)’을 들으세요라고 사람마다 지도해 왔습니다만, 이전 지도방법과는 전혀 다른 발군의 효과가 보여, 누구라도 의심이 일어나기 쉽게 되고, 좌선 공부도 나아가기 쉽게 된 것, 여기에서는 매우 큰 차이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까지마 시로 Shiron Nakajima 中島志郞, 하나조노대花園大學,「일본 공안선 백은선의 원리와 구조」(2011 제2회 간화선 국제학술대회 Day 2 <간화선, 그 원리와 구조>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종학연구소) p. 86. )
이후 영하산방 모임에서는 <척수성>을 첫 화두로 하였고, 바꾸고 나니 고생하는 이가 줄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법경 법사님이 서강대에서 <참선>과목을 지도하고 계실 때도 참구 시간이 긴 <무>자 화두 대신 간단한 <척수성>을 도입하였더니 많은 효과가 있었다고 알려주셨다. 이 화두의 창시자인 백은 혜학 선사가 이 공안을 제창提唱하게 된 동기와도 부합符合된다.
백은 선사는 어려운 기연이 담긴 공안(公案)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들을 위하여 ‘척수음성(隻手音聲)’이라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공안을 창시하기도 한다. ‘척수음성’이란 ‘한 손바닥에서 나는 소리’라는 뜻이다. “두 손바닥이 부딪쳐야 소리가 나는데 한 손바닥에서 나는 소리는 무엇인가?”라는 공안이다. 이 공안은 사실 심오한 선의 도리가 있어 보이지 않는 평범한 의문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공안선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화두이다. (一指 지음,『100문100답 선불교 강좌편 下』 p. 475.)
서양에 선(Zen)을 소개한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1870 ~ 1966)가 처음 참구한 화두도 <척수성隻手聲>이다. 그는 와세다 대학(Waseda University, 와세다다이가쿠 早稲田大学わせだだいがく)의 전신인 도쿄 전문대학교(1882년(메이지 15년) 10월 21일에 창설)에서 공부하기 위해 도쿄[東京]에 입성한다. 그리고 동경東京에 도착하자마자 선 공부를 위한 선사禪師, 스승을 만나기 위해 바로 가마쿠라[Kamakura, 鎌倉]로 향한다.
동경에서 가마쿠라까지는 서울에서 수원정도의 거리로 지하철로도 1시간쯤 걸리는 거리다. 그는 동경에서 저녁에 출발, 밤새도록 걸어 아침에 가마쿠라에 도착한다. 그리고는 엔카쿠사[원각사圓覺寺] 주지인 선승 이마키타 고센(今北洪川, 1816~1892) 노사를 만나 화두를 받는다. 그때 받은 화두가 바로 <척수성>이다.
참선하러 갈 때 마다 그는 말없이 내게로 왼손을 내밀어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척수’ 공안에 대한 그럴듯한 해답을 찾기 위해 나는 노력했지만 고센은 이 모두를 거부했는데 참선을 몇 번인가 하고 난 후 나는 마치 캄캄함 골목에 들어선 것 같았다. (鈴木大拙 저, 심재룡 역, 『아홉 마당으로 풀어 쓴 선』 p 212.)
그는 다음해 고센 노사가 입적 할 때까지 <척수성>을 참구하였지만 진전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 주지로부터 <무>자 화두를 다시 받아 참구를 계속하게 된다. 고센 노사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그가 투과한 첫 번째 화두가 <척수성>이 되었을 터였다.
<척수성>을 시작으로 <시작하는 사람들의 화두들>에서 <무>를 투과하고 나면, 『무문관』과정에서 다시 <무>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힘을 바탕으로 『무문관』에 수록된 다른 화두들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재독에서 다시 <무>를 만나 그동안 공부한 선의 경계를 다시 점검받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