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唐)나라의 무장으로서 이름은 열(烈)이며 자(字) 정방(定方)이다. 허베이[河北] 출생으로 당나라 태종(太宗) 때 이정(李靖)을 따라 동돌궐(東突厥)을 정벌하였고, 657년에는 서돌궐을 쳐 항복시킴으로써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를 모두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에 예속시켰다. 660년(백제 의자왕 20) 3월 나 ·당(羅唐) 연합군의 대총관으로서 13만의 당군을 거느리고 산둥[山東] 반도에서 황해를 건너 신라군과 함께 백제를 공격하였다. 이때 백제의 의자왕은 태자 효(孝)와 함께 옛 수도 공주로 피난하고, 제2왕자인 태(泰)가 남아서 사비성(부여성)을 고수하려 했으나 오래 지탱하지 못하고 1만여 명의 전사자를 내고 궤멸하였다. 나당군은 이어서 공주를 함락시키고 의자왕과 태자 효도 660년 7월 마침내 투항하였다. 의자왕과 태자 융(隆) 및 대신(大臣)·장사(將士) 88명을 포함하여 백성 1만 2,000명과 함께 당으로 압송된 사로잡아 당나라로 송치하였다.
그 이듬해인 661년(고구려 보장왕 20)에는 나 ·당 연합군을 거느리고 고구려 평양성(平壤城)을 포위 공격하였다. 즉, 660년 11월 당의 설필하력(契苾何力), 소정방(蘇定方), 유백영 (劉佰英), 정명진(程名振)이 길을 나누어 고구려로 쳐들어 왔고 661년 정월 당이 35군대(軍隊)를 수륙으로 나누어 침공하였다. 8월 소정방이 평양성(平壤城)을 포위하였다. 하지만 9월 연개소문의 아들 남생(男生)이 정병 수만으로 압록수(鴨
水)를 지켰으나 당의 설필하력(契苾何力)이 이를 물리치고 들어오니 아군 3만의 희생을 내고 남생은 겨우 목숨을 건졌다. 662년 정월 당의 방효태(龐孝泰)가 연개소문과 사수(蛇水)에서 싸웠으나 전군이 몰살하였다. 하지만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소정방은 평양의 포위를 풀고 물러갔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