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정애리(49)씨는 구호 활동을 갈 때마다 사탕을 꼭 챙긴다. 인생의 쓴맛을 너무 일찍 본 아이들과 오랜 기간 신산한 삶을 살아온 노인들에게 주기 위해서다. 연기 활동 못지 않게 나눔과 구호에도 정성을 쏟아온 그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탕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찡하게 울린다고 했다. 최근 찾아갔던 베트남의 마을에서도 그랬다. 베트남전에서 아들을 잃고 어렵게 살아온 할머니는 막대사탕을 유독 맛나게 먹었다. “아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자 온몸이 마비됐다고 하더라고요. 몸이 성치 않으니 일도 못하고, 소득이 없으니 생활이 말이 아니었어요. 아들 얘기가 나오자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이 너무 가슴 아팠어요.” 그의 눈에 다시 물기가 어렸다.
국제 구호단체인 사회복지법인 월드비전의 홍보대사 자격으로 최근 4박5일간 베트남의 흐엉후아 지역을 방문하고 돌아왔다는 그는 힘들어 보였다.“피곤하지요. 쉴 시간 없이 계속 이동하고, 아이들과 할머니를 만나며 도왔으니까요. 하지만 몸의 고단함은 정신적 충만감에 비할 바가 못돼요. 딸 지현이가 ‘엄마는 구호활동을 다녀오면 얼굴에서 빛이 나’라고 말하더군요.”
그는 월드비전을 통해서만 해외 206명, 국내 5명의 아이를 지원하고 있다. 한 달에 내놓는 지원금이 월드비전을 통한 것만 650만 원을 넘는다. 그 밖에도 다양한 경로로 아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연말정산을 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몇 년째 연 기부금액이 1억을 넘겼기 때문”이란다. 2005년 자신의 나눔 활동을 에세이 형식으로 펴낸 책 『사람은 버리는 게 아니잖아요』(랜덤하우스 중앙)의 인세도 ‘정읍 도시락 나눔의 집’에 내놨다. 서울시 흑석동에 ‘하래(下來)의 집’이라는 2층짜리 쉼터도 마련했다.
“무엇 때문에”라는 질문에 정씨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나누면 나눌수록, 도우면 도울수록, 더 많이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요. 세상은 불공평하고 괴로움이 넘쳐나는 곳이기도 하지만 또 한 켠엔 밝음과 희망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그가 처음 나눔 활동을 시작한 건 1989년. 방송 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성로원’이라는 아동시설을 방문했던 게 계기다.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며 따르는 아이들을 보며 ‘안녕’이란 말 대신 ‘다음주에 보자’는 말을 해주기로 마음 먹었다. 그 뒤 20년이 다 되도록 거의 모든 일요일에 성로원을 찾고 있다.
“남이 예쁘거나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아빠·엄마가 있는 게 가장 부럽다는 아이들을 보면 제가 대신 부모가 돼주고 싶어요. 제가 이런 활동을 하면서 다른 분들도 나눔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하는 마음도 간절하고요.”
몇 년 전 이혼의 아픔을 겪었을 때도 그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 둘은 나눔과 딸 지현이었다. “지현이는 항상 ‘난 엄마처럼은 못 해요’라고 하지만, 나눔에 쏟는 정성을 보면 저보다 더해요. 감사한 일이지요. 나눔을 통해 제가 얻는 게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나눔 활동이 알려져서 그런지 관련 배역 제의가 자주 들어왔다. “‘태양의 여자’에서도 그랬고 ‘왕꽃 선녀님’에서도 그랬고, 입양과 관련한 역할을 많이 맡았어요. 감독님과 작가님들이 일부러 저를 찾아줄 때도 많아요. ”
앞으론 특히 입양되었다가 다시 돌려보내진, 파양된 아이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싶다고 했다. “섣불리 입양을 결정했다가 아이들과 잘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양을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하더군요. 아이들은 두 번 버려지는 거지요. 그 상처를 보듬어 주고 싶어요.”
그는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걸 나누는 게 진정한 나눔”임을 강조했다. “부자만 남을 도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나누면 되죠. 4000원짜리 커피 한 잔 덜 마시고 모아도 돼요.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은 나눔에서도 통합니다.”
중앙일보, 헤럴드 경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