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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전통 의학 법적 제도의 정비를 위한 - '무면허 의료금지' 제도의 문제 대처 방안
만약 의사가 아닌 사람도 함부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고 한다면, 감언이설을 동반한 사이비 의료인이 창궐할 것이고, 중병이나 불치병을 앓는 사람들은 이에 현혹되어 올바른 판단이나 선택을 하지 못하고 이들에게 자기의 생명이나 신체를 맡기는 일도 흔히 있을 것인데 그렇게 되면 국가의료제도의 기초가 무너질 것이므로 무면허 의료행위는 그 치료결과가 좋든 나쁘든 이를 규제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 견해는 헌법재판소가 저의 위헌제청사건에서 판시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견해에는 다음과 같은 잘못된 점이 있습니다.
① 우선, 민간의료인들에 대한 지극한 불신과 편견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즉, 민간의료인들은 도덕성도 없고 치료기술도 형편없다는 것을 미리 깔고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함부로 의료행위를 할 것이라느니, 감언이설을 동반한 사이비 의료인이 창궐할 것이라느니 하는 표현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위헌제청사건에서, 피고인을 기소한 부산지방검찰청의 검사장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의견서에도, 무자격자의 치료로 불치병이 나을 수 있다는 것을 요행이나 기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도 같은 관점에 서 있는 견해라 할 것입니다. 아예 민간의료인들을 사람 취급도 안한다고 보아도 좋을 법한 표현들입니다. 우리가 어떤 논리를 전개함에 있어서는 근거 없는 예단이나 선입관을 가져서는 합리적인 논의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에 속하는 것입니다. 어떤 결론을 내림에 있어서는 반드시 객관적인 자료나 합리적인 추론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민간의료인들이 도덕성도 없고 치료기술도 형편없다는 것은 어떤 객관적인 자료나 추론에 의하여 뒷받침된 것입니까? 헌법재판소 결정이나 부산지검 검사장의 의견서는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바로 위와 같은 단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견해들을 피력한 사람들은 우선 민간의료인들이 왜 법의 박해를 받고 일신의 안전에 위협을 받아가면서 까지 굳이 험난한 무면허의료행위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사람들입니다. 무면허의료인들은 대체로 자기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이 병에 걸려 고통을 당하는 경험을 하면서 그 병을 극복하려고 애쓰다 보니 의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나름대로의 연구와 경험을 통하여 의술을 터득하게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어떤 방법에 의하다 보니 병이 잘 낫는 것이 신통하고 사람의 병을 고쳐주는 것이 재미와 보람이 있어서 계속 그 방면으로 나아가게 된 사람들도 많습니다. 또는 참선이나 선도, 기공, 무예 등과 같은 심신수련을 하다가 의통을 터득하게 되어 치료능력을 얻게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질병이 누구에게나 생기는 일이고, 병이 나면 먼저 어느 정도는 자연적이고 쉬운 방법으로 낫게 해보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속성입니다. 그러다 보면 병에 대하여 조금씩 지혜를 터득하게 되고, 개중에는 그쪽으로 남보다 더 뛰어난 소질을 보이는 사람도 있게 마련인 것입니다. 어떤 경로로든 민간의료인들은 나름대로 어느 정도의 의술을 터득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개중에는 의사들보다 훨씬 나은 탁월한 의술을 지닌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의술이 타인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일인데 어찌 누구든지 함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인간이든지 그가 악인이라는 것이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상 양심과 선의를 가진 인간이라고 믿고 대접을 하는 것이 인간관계의 보편적 도리일진대, 왜 민간의료인에 대하여는 아무 근거도 없이 양심도 없는 악인이라고 단정하는 것입니까? 일국의 헌법재판소 결정이라는 것이 이래도 되는 것인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② 중병이나 불치병을 앓는 사람들이 사이비 의료인에게 현혹되어 올바른 판단이나 선택을 하지 못하고 이들에게 자기의 생명이나 신체를 맡기는 일도 흔히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도 염려가 지나치거나 문제를 과장해서 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치료방법을 선택하는 문제는 거기에 생명과 건강을 걸고 있는 환자 자신이 가장 이해관계를 가진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뭐라 해도 환자 자신이나 그의 가족들이 가장 잘 헤아려 판단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혹시 잘못 판단할까 싶은 노파심에서 치료방법을 미리 제한해 버리는 것은, 마치 경제학에서 시장기능을 불신하여 국가가 개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험한 것입니다. 오히려 국가는 환자와 그의 가족들이 다양한 치료방법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③ 위의 헌법재판소나 검찰의 견해는 무면허의료행위가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을 극단적으로 과장해서 염려한 것인 반면, 민간의료인들이 가진 탁월한 능력과 민간의료의 효율성의 면은 철저히 외면하고 한마디도 언급하고 있지 않은 점에서 이미 思考의 균형을 현저하게 잃은 견해입니다. 민간의료 중 대표적인 침구술의 경우, 치료율이 높고, 수가(酬價)가 싸고, 장비가 간단하여 기동력이 빠르고,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점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이미 인정하여 세계각국이 제1차보건진료수단으로 활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④ 무면허의료행위에서 염려되는 부작용은 제도권 의술, 즉 의사들의 치료행위에서도 마찬가지로 제기되는 문제입니다. 예컨대, 우리는 경험상 의사들이 환자의 병을 고칠 자신도 없고 치료를 할 수 있는 방법도 잘 모르면서, 그런 사실은 숨긴 채 이 방법 저 방법을 써 보는 경우를 적잖이 보는데, 그러다가 요행히 치료가 되면 좋은 의사가 되는 것이고, 낫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병이 더 악화되거나 죽거나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의사가 그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의사이기 때문에 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이것도 정확히 따지면 함부로 치료하는 것이고 사이비와 마찬가지가 아닌가요? 반면에 민간의료인들이 시술을 하다가 잘못되면 당장 처벌을 받고 엄청난 비난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민간의료인들이 더 조심을 할 수밖에 없는 면도 있는 것입니다.
⑤ 무면허의료행위 전면금지제도를 철폐한다고 해서 사이비 의료행위까지 허용하자는 것이 아님을 간과한 듯 합니다. 우리의 주장은 무조건 전면금지가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금지할 것이 아니라, 능력을 검증하는 제도를 마련하여 검증이 되면 허용해야 할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일단 금지제도를 철폐하고 사이비 의료행위 임이 결과적으로 드러난 경우에만 중벌하는 제도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사후중벌제도로도 기본적인 질서는 유지할 수 있는 것이고, 오히려 그것이 치료능력의 玉石을 가림으로써 질병치료와 범죄처벌의 효율을 모두 기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셋째는, 민간의료방법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헌법재판소 결정도 이 점을 다소 비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과학적 검증”이라는 표현에 대하여 다소 위선적인 느낌을 갖습니다. 우선 과연 무엇이 과학이며 무엇을 과학적인 것이라고 하는지에 대하여 따져 보아야겠는데, 그 문제를 이 자리에서 모두 다루기에는 시간상으로나 강연의 주된 목적에 비추어서나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서 따로 적당한 방법으로 정리하기로 하고,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아니하였다는 견해에 대한 비판의 요지만 제시하겠습니다.
① 우선, 의술은 병을 치료하는 것이 목적이지 그 치료 경로의 과학적 검증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검증은 과학자들의 몫일 뿐입니다. 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에게는 당장의 고통을 치유하는 것이 급한 것이지, 어떤 치료방법이 어떤 과학적 과정을 거쳐 어떤 효과를 가져올 것인지를 잘 설명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마치 목마른 사람에게는 물 한잔을 마시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이유로 갈증을 해소하는지를 이론적으로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치료행위의 당부는 그 결과 병이 나았느냐 아니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② 어떤 치료방법으로 병이 나았다면 그 자체로서 과학적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치료방법이 자연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은 것이었다면 병이 나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치료방법을 썼으나 병이 차도가 없었다면 그 치료방법은 과학적인 것이 못되는 것입니다.
③ 질병 치료는 당장 화급한 일인 반면, 과학적 검증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모든 치료행위에 일일이 과학적 검증을 요구하고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치료행위는 금지한다면 인류는 질병 앞에 살아남을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소위 과학이라는 것이 생겨나기 전에는 질병치료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 그렇습니까? 병의 치료는 현실이고, 과학적 검증은 이론일 뿐입니다. 제가 구속영장 기각결정을 했을 때, 釜山日報는 1면의 「중앙동」이란 칼럼 란에서 다음과 같은 보도를 하였습니다. 이를 각색하지 않고 그대로 옮기겠습니다.
「일설에 따르면 유럽인으로서 말라리아에 걸렸다가 최초로 치유된 사람은 1638년의 스페인 페루총독 부인이라고 한다. 전신에 오한이 나며 부인의 목숨이 경각을 다투게 되자 총독은 왕실 시의에게 매달렸다. 시의는 온갖 수단을 쓰다 못해 현지 인디언들의 민간요법인 안데스산맥의 어떤 나무껍질로 만든 약을 복용시켰다. 총독부인은 기적처럼 쾌유됐고, 이 나무는 부인의 이름을 따 기나나무로 불려 유럽사교계에 은밀히 퍼졌다. 그러나 개신교도를 비롯한 의사들은 미개한 민간요법이라며 극구 배척했다. 그리하여 1820년께에야 프랑스인 의사 두명에 의해 기나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키니네가 제조되기 시작했다. 당시 유럽 의료인들의 독선이 유사이래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간 열병 말라리아의 퇴치를 그만큼 늦춘 셈이다.」
그러면서 위 칼럼은, “서양문물이 우리나라에 도입되면서 특히 홀대를 받아온 분야 가 한의학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최근 한의학에 대한 재인식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東醫要諦진전, 한국의 민간요법, 침뜸기초학, 동의보감 등의 한의학서들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가하면 교수출신 한 철학자는 뒤늦게 「한의학과」에 도전, 「한의학으로 노벨상을 타자」며 기염을 토하기도 한다.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金容沃 前교수가 한의학에 경도하게 된 것은 68년 중증이었던 관절염이 침술로 완쾌되면서부터 라고 한다. 釜山地法은 무면허 침술의료행위를 한 피의자를 「秘傳의 전통의술은 의과대학의 제도화된 교육체계를 통해서만 습득•계승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무조건 의료시술을 못하게 하는 것은 잘못」이란 사유를 들어 영장을 기각했다. 한의학 접근에 활기를 일으키는 신선한 법해석이라고 해야겠다.”고 적고 있습니다.
④ 민간의료 반대론자들이 만약에 “과학적 검증”이라는 말을 서양식의 “五感과 理性에 의한 확인”과 같은 취지로 사용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 민족의학을 평가하는 도구로서는 매우 부적절한 것을 사용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이 문제도 따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주제라서 여기서 상세한 언급은 생략하고 요지만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자고로 동양과 서양은 우주와 인간을 인식하는 방법과 자세에서 근본적으로 상이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서양은 五官의 감각에 의하여 수집한 자료를 理性이 종합하여 인식하는 것을 진리로 파악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왔고, 동양은 五官의 감각과 理性의 통합작용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초월하여 그 오관과 이성을 통하여 작용하는 근본주체를 통찰하여 진리로 파악하는 자세를 취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동양의 우주관, 인식론에서는 오관과 이성은 도구에 불과할 뿐, 그것이 받아들인 자료들은 진리가 아닙니다. 이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五官으로 받아들인 모든 감각이 空하다고 본 불교 반야심경에 나오는 오온개공(五蘊皆空)의 사상과, 그 오온을 취합 정리하면서 생긴 의식(제6식), 잠재의식(제7식), 무의식(제8식)이 모두 空하다고 본 사상입니다. 표현만 달리 하였을 뿐, 우리 조상들의 진리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동양사상에서는 인간과 우주 삼라만상을 움직이는 궁극적인 실체는 순수의식 하나로 귀일하고 삼라만상은 그 순수의식에서 벌어져 나온 다양한 작용으로 파악되기 때문에 우주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요, 인간은 그 우주를 몸 안에 담은 신성한 존재로서 그 자체가 우주(또는 소우주)로 파악되어 온 것입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人耐天)” “사람 섬기기를 하늘과 같이 하라(事人如天)” 든가 사람과 신을 동일시하는 人神思想 등은 모두 그러한 진리관의 표현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블가분의 일체로 파악하고 질병의 원인도 전체적인 것에서 찾고 그 치료방법도 종합적•전체적으로 보았습니다. 동양적 진리가 우주를 하나로 통찰한 것은 서양식의 관념론에 의한 것이 아니고 실제로 독특한 심신 수련방법을 통하여 고도로 높은 수준에 올라가 진리 그 자체를 확연히 깨쳐서 알아낸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몸을 인식함에 있어서도 지혜의 눈으로 꿰뚫어 본 것이지 서양식의 해부학에 의하여 안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민족의학은 바로 이와 같은 수준 높은 정신적 바탕 위에서 전개되어 온 것이어서, 저 서양의 오감에 의한 검증이라든가 하는 저차원의 의술과는 본래 차원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서양귀신에 쒸인 사람들이 서양식 사고와 인식방법으로 평가하고 분해하려고 드니 그것이 어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오히려 우리는 그러한 높은 차원에서 인간과 우주를 통합하고 정신과 육체를 통합하여 질병의 원인을 전체적 포괄적으로 파악하고 그 치료 방법도 순리와 원리에 따른 완전한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저 서양의 분석적∙분열적∙지엽적∙대립적∙투쟁적 방법이 드러내는 온갖 불완전하고 모순되고 추한 문명의 상처들을 쓰다듬고 극복하여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알지 못하고 우리의 전통과 장점을 망각한 채 서양식 판단기준으로 의료체계를 세우고 있는 작금의 모습은 바로 아직도 서양의 제국주의적 망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주체성과 자기 정체성을 상실한 채 미망속을 헤매고 있는 매우 어리석고 얼빠진 자세일 뿐입니다.
그 혼돈된 정신이 우리 사회를 아직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비극입니다. 요즈음 대체의학이라는 용어가 활개를 치고 다니는데 서양사람들은 그렇다치고 우리나라 의료인들 조차 덩달아 같은 용어를 쓰고 다니는 것은 참 부끄럽습니다. 서양의학이 한계에 부딪치자 그 대안을 동양의 다양한 의료기법에서 찾아서 그것을 대체의학 내지 보완의학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침구술입니다. 미국 각 주에서는 침술만 할 줄 알아도 한의사면허를 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그 용어는 서양의사들에게만 맞는 것인데, 우리가 본래 우리의 의술을 가지고 대체의학이니 보완의학이니 하고 있으니, 그것도 얼빠진 짓입니다.
둘째, 점잖은 사람이 입에 담기에는 적절치 않습니다만, 솔직히 말하면 의사들의 직업 이기주의가 의료법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즉, 민간의료를 개방하면 의사들의 수입이 즐어든다는 것입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의사들이 민간의료의 치료능력과 저비용 고효율을 인정하고 이를 두려워한다는 해석도 가능케 합니다. 의료법을 제정할 당시는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대체로 의사나 약사 출신자가 보건행정부서의 장관으로 있었다는 점이 악법의 개정을 가로막는 주요한 원인중 하나입니다.
이상으로서, 민간의료를 전면 금지하고 있는 의료법은 아무런 정당성이 없는 악법임을 살펴 보았습니다.
다음으로, 위 법이 어떤 해악을 끼치고 있는지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위 법이 존치 됨으로써, 우수한 민간의술에 의하여 병을 고칠 수 있는 수많은 환자들이 그 기회를 박탈당함으로서 겪는 생명과 건강의 침해는 말할 것도 없고, 가장 아쉬운 것은 탁월한 민족의학의 맥이 점점 끊어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의술이 뛰어나면 소문이 나고, 소문이 나면 잡혀가서 처벌을 받고, 돈을 받고 업으로 하면 엄청난 중형이 선고되는 판이니, 돈도 벌 수 없고 신체의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 이 일을 누가 하려고 하겠습니까? 그나마 그래도 법이야 어떻든 뛰어난 의술 그 자체가 너무 신기하고 좋아서 배우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국가가 이것을 공인하고 육성한다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을 구하고 세계에 자랑스럽게 민족의 자존심을 살릴 수 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국법의 탄압을 받아가며 근근히 명맥만 유지하는 것과, 국가의 지원 육성 하에 계속 새로운 의술로 연구 발전되어 가는 것 사이에는 천양지차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민족의술에는 우주적 진리와 혼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의술로 사람을 고치면 단순히 병을 치료했다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그 사람의 정신을 일깨우고 진리에 눈을 뜨게 하는 힘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活人醫術이고 세계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의술인데, 이것이 무지몽매한 사람들에 의하여 막히고 닫히니, 실로 인류의 불행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료법은 시급히 개정되어야 합니다. 그 개정의 방향(방법)은 대체로 두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방법은, 민간의료를 전면 금지할 것이 아니라, 유형별로 자격시험이나 면허제도를 두어 양성화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침구분야에는 침구사제도를 부활시키는 것입니다. 단식, 지압, 활법, 자연치료법 등도 이를 어느 정도 체계화시켜 면허제도를 두는 방법을 연구하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둘째방법은, 사전금지를 아예 철폐하고, 면허 없이 치료행위를 해서 잘못된 결과가 생겼을 때에만 사후적으로 엄벌하는 방법입니다.
민간의료의 다양성과 우수성 쪽에 무게를 두자면 둘째방법이 더 적정할 것이고, 그래도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겠다고 하면 첫째방법이 절충적인 방안이 될 것입니다. 저로서는 사전금지를 아예 철페하고 사후에 엄벌하는 쪽으로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이미 제시한 바 있고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현행 의료법 하에서 재야의료인들이 취해야 할 대책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민족의학을 살려야 된다는데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이 뭉쳐야 합니다. 재야 의료인들은 물론이고 학자든 법조인이든 일반시민이든 하나로 단합해야 합니다. 몇 안되는 사람들이 이 단체 저 단체로 난립하여 우물안 개구리, 도토리 키재기 식의 싸움을 하지 말고 대의를 위하여 대동단결해야 합니다. 그렇게 뭉쳐도 될까말까 한 일을 분열되어 서로 싸워서야 무슨 일이 되겠습니까.
둘째, 그 뭉친 힘으로 투쟁을 해야 합니다. 오늘날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정립된 자유•평등•인권•인간 존엄 등도 오랜 역사에 걸쳐 압제자에 대한 피나는 투쟁 끝에 쟁취된 것들입니다. 권리는 투쟁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연약한 방법으로는 不知何歲月입니다.
셋째, 중지를 모아서 투쟁의 구체적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각자 제잘난 방법으로 이리 쑤시고 저리 쑤셔봐야 누가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제 나름대로 몇가지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여 보겠습니다.
◎ 투쟁의 구체적인 방법
① 진료기록부를 작성할 것을 권유합니다. 재야의료인들이 처벌받는 것은 어차피 함정단속이라든가 용하다고 소문이 나서 단속되는 것이므로, 진료기록이 없다고 해서 진료를 하지 않았다고 인정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진료기록이 없기 때문에 치료효과를 본 사람들을 자신에게 유리한 증인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립니다. 그러므로 진료기록부를 잘 작성해서 환자의 인적사항, 연락처, 치료경과 등을 잘 기록해 두었다가 나중에 단속이 되었을 때 “나는 결코 돌팔이가 아니요” 하고 주장해서 이를 증명하는 자료로 활용하여 선처를 받는 것이 훨씬 나은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② 치료능력이 있음을 적극적으로 증명할 것을 권유합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치유된 환자들을 참고인이나 증인으로 내세우는 방법도 물론 그 중의 하나입니다. 보다 근원적으로는 객관적으로 권위가 있는 기관에서 치료능력을 갖추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침구분야에 있어서 종래 형사문제가 된 사건들에서 보면, 국내 면허제도가 없다보니 이북5도청에서 발급한 다소 정체가 애매한 침구사자격증을 내어 놓거나 중국의 침구사고시 합격증 등을 제시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런 것도 없는 것 보다는 낫겠지요. 그러나, 비록 국가가 공인하는 침구사 제도가 없지만, 국내 침구인들이 하나의 단체로 단합해서 그 단체에서 임의로 침구사시험을 실시하고 합격증을 교부하는 것도 임시적인 방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반드시 국내에 통합된 1개의 단체만 있어야지, 여러 단체가 난립해서 여기저기서 시험합격증을 발급한다면 그 합격증은 권위가 없어져서 별 효과가 없게 될 것입니다.이렇게 통합된 단체를 만들어서 임의적이지만 침구사시험을 실시해서 그것을 국내 침구사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는다면 나름대로 어느 정도의 권위가 부여되고 사회적 인증기능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정부로 하여금 침구사제도는 언제든지 부활시키면 즉시 시행이 가능하겠다는 판단을 하도록 유도하는 효과도 있을 것입니다. 또, 그런 방법을 시행하는 경우, 침구사 시험은 좀 어렵게 출제하는 것이 권위를 높이고 사회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인정받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③ 일단 형사입건이 되면 변호사를 활용할 것을 권합니다. 오늘날 민간의료행위가 별 수입이 되지 않기 때문에 몇백만원씩 돈을 들여 변호사를 선임하기는 어려운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래서 재야의료인들의 지역단체가 결성되어서 연대적으로 대응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되면 고문변호사를 둘 수가 있고, 사건이 발생했을 때 비교적 저렴하게 사건을 맡길 수 있으며, 평소 그 변호사를 통하여 현행 의료제도의 문제점을 인식시켜 우군으로 만드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쌓이면 법조계에도 상당한 후원자들이 생겨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④ 起訴가 되면 가급적 재판부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할 것을 권유합니다. 제가 직권으로 한번 제청했다가 기각을 당하기는 했으나, 사실 그 때는 준비가 소홀했던 점이 있습니다. 제가 그 위헌제청을 하기로 결심을 하고 두세달 동안 다른 업무가 너무 많아서 위헌제청서를 못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보직변경 발령이 나서 그 사건을 담당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형사재판담당이 끝나는 날의 전날 밤에 밤을 새워서 위헌제청서를 작성하였는데, 과로한 상태에서 급하게 하다 보니 평소 하고 싶었던 주장을 충분히 펴지 못하고 뒷받침할 자료들도 거의 제시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단지, 이 정도라도 문제점을 지적해 놓으면 세상을 5•60년씩 살고 평생 재판을 해온 헌법재판관님들이 나머지는 잘 헤아려서 판단해주시리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위헌제청기각으로 나온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그 기각 이유에 담긴 판단내용이 너무 실망스러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무지와 편견에 가득찬 결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좀 두고 위헌의 논리를 정교하게 세우고 풍부한 자료로서 뒷받침 한다면 위헌결정이 나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설사 단시일내에 위헌결정을 받아내지 못하더라도, 여러 사람들이 계속 위헌제청을 해대면 판사들이나 헌법재판관들이 점점 문제점을 인식하게 될 것이고, 그것이 쌓이면 승부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⑤ 憲法訴願을 집단적으로 제기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시라고 권유합니다. 지금 의료법이 민간의료행위를 직접 금지하고 있어서 그 자체 바로, 의료행위를 하고자 하는 개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의료법 제25조를 걸어서 바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이 할 수도 있지만, 논리를 잘 정리하고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집단적으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는 반드시 헌법소송 전문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것을 권유합니다. 왕왕 재야의료인들이 답답하다 보니 하고 싶은 말들을 직접 적어서 내는 경우가 있는데, 문장도 서투르고 주장도 간명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중언부언하거나 법률적으로 별 의미없는 편벽된 주장을 늘어놓거나 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네째, 민간의료도 玉石을 가려야 합니다. 반대론자들이 비난하듯이 실제로 치료능력이 별로 없으면서 환자들을 현혹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민간의료인들이 스스로 가려내어서 치료행위를 못하게 하는 自淨작용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렇게 되려면 역시 통일된 단체가 있어야 되겠지요.
다섯째, 학술연구와 발표를 적극적으로 활발하게 해서 민간의료의 수준을 높이고 대외적으로 이를 과시해서 신뢰도를 제고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 정도로 끝낼까 합니다. 부족한 말을 끝까지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거침없는 비판과 조언을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하는 일은 大義와 順理에 합당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신념과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 길에 하늘의 보살핌이 함께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황종국판사,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한 강연자료
국회헌정기념관 대강당 강연회 (2004. 3. 14)
침술연합신문 (기사입력: 2008/02/01 1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