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개의 문이 있어도 열지 않으면 벽이다. 급속한 현대화와 외래문물 선호사상이 팽배해지면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기억의 문에서 점차 닫혀지고 있다. 밀양의 소중한 역사와 문화는 우리가 소중히 가꾸고 계승해야 할 유산이다. 닫혀져 가는 역사를 세월속으로 꺼내 밀양인 모두가 공유하며 밀양의 가치를 더 높일 ‘밀양이야기’를 신설했다. 첫 회로 밀양강의 옛 이름 ‘응천’의 유래와 의미, 지형적 특색 등을 이야기 형식으로 엮었다.
필자가 수 십년전 밀양문화원 감사를 역임하면서 그 당시 밀양아랑제(현 밀양아리랑 대축제) 행사 중 하이라이트였던 모범아랑규수 선발 심사위원으로 위촉돼 진행한 적이 있다. 그때 기초 소망 필기시험문제도 필자가 맡아 출제를 했다. 그런데 당시 예비 아랑들은 50문제 중 유독 한 문제만은 아무도 답을 쓰지 못했다. 그 문제는 밀양간의 옛 이름을 쓰라는 것이었는데 20여 명의 규수 중 정답을 쓴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밀양에 살면서 다른 것은 몰라도 밀양강의 옛 이름쯤은 알고 있으리라는 내 추측이 정말 틀렸구나 하고 크게 뉘우친 적이 있다. 동국여지승람을 비롯 밀주지, 밀주읍지, 교남지, 경상도읍지 등 향토지를 보면 ‘응천(凝川)’이란 지명(地名)으로 기록된 것이 여러 군데 나온다. 그런데 그 옛날 한때 밀양고을의 이름이 ‘응천’인 때가 있었다. 이 응천(凝川)이 바로 밀양강의 옛 이름이다. 기록을 보면 응천은 부성(府城) 남쪽에 있는데, 그 근원이 셋이라 했다. 하나는 부(府)의 동쪽 재약산에서 나오고, 하나는 청도군 동쪽 운문산에서 나오고, 또 하나는 풍각현 북쪽 비슬산(琵瑟山)에서 나와 서로 합류(엉겨)하여 부성(府城)을 돌아 남쪽 삼랑진 해양강(海陽江)으로 흘러 간다고 기록되어 있다. 응천의 ‘응(凝)’자는 엉길 응자이자, 물이 서로 ‘뒤엉긴다’는 뜻이다. 전술한 봐와 같이 응천은 청도천과 운문천이 유천에서 서로 만나 뒤엉겨 흘러오다, 월연정 앞에 다다르면 재약산에서 흘러내려 온 단장천과 서로 만나 또 엉기게 된다. 엉긴 이 강물은 월연(月淵)에서 잠시 머물다 숨 한번 돌리고는 장승마을 앞에서 또 다시 두 갈래로 나눠진다. 한 갈래는 꿈틀거리는 용두산 줄기를 따라 금시당(金是堂) 앞으로 쏜살같이 흐른다. 또 한 갈래는 암새들을 사이에 두고 용평리 섬불마을 앞으로 느릿느릿 흐른다. 두 갈래로 갈라져 흐르는 강물은 암새들을 지나자마자 용두연에서 또 서로 만나 응길 사이도 없이 한 갈래는 영남루 앞 꼬꾸랑 바위 쪽으로 유유히 흘러 삼문동을 한 바퀴 휙 돌아 마암산 앞 밤섬에 다다르면, 용두목 일류제를 살세게 흘러 내려 온 강물이 이에 마중을 한다. 강물은 또다시 서로 뒤응기면서 남포와 광탄을 지나 삼랑진 해양강(海陽江·낙동강)으로 유유히 흘러 간다. 이처럼 응천은 응겼다. 갈라지기를 몇 번을 거듭하면서 삼랑나루를 지나 김해 들판을 적셔주고 저 넓은 바다로 흘러 가는 것이다. 우리의 옛님들은 이를 두고 강 이름을 응천(凝川)이라 붙였던가, 밀양을 고향을 두고 살아오는 우리들이 어찌 응천에 얽힌 뜻을 몰라 본데서야 말이 되겠는가. 응천이 있기에 영남루가 아랑각 대숲이 있고, 응천이 있기에 꼬꾸랑 바위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니 응천이 있기에 산자수명(山紫水明)한 밀양이 전국에 회자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조 초기 양촌 권근(陽村權近)의 외손으로 세종때 문과에 급제, 오랫동안 문형을 잡았던 서거정(徐居正:1420~1488)의 밀양10경 중에는 ‘응천의 낚싯배’라는 다음과 같은 시가 전해져 내려온다. - 凝川작艇(응천작정) -
凝川遠從銀漢來(응천원종은한래) 樓前綠染葡萄醅(누전록염포도배) 昨夜小雨장半蒿(작야소우장반호) 漁船隨薏沿流廻(어선수의연류회) 桃花細浪궤兒肥(도화세랑궤아비) 盤心膾縷紛雪肥(반심회루분설비) 半酣鼓脚歌滄浪(반감고각가창랑) 潾臺黃閣都不知(린대황각도불지)
(해석) 응천은 멀리 은하수에서 흘러 와서 누각 앞을 포도주처럼 푸르게 물들이네, 지난밤 작은 비에 삿대 반쯤 물이 불어 어선이 마음대로 물길 따라 맴도는데, 도화랑 가는 물결에 쏘가리 살쪄 정반의 실같은 회는 눈이 내린 듯 얼큰하여 다리를 치며 창랑가 노래하니 기린각 황각의 일을 도무지 모를래라. ※기린각: 중국 한나라 무제 때 건립한 전각으로 공신의 초상을 그려 놓았다고 함. ※황각(黃閣) : 재상의 관청 한여름 밀양이 무덥다고 야단들이다. 그러나 무덥다고 산자수명한 밀양을 버릴 참인가. 무더위를 식혀 줄 응천이 있지 않는가 수 천년 역사를 머금고 유유히 흐르는 저 응천에서 올 여름 우리는 이 강을 더욱 사랑하고 아끼며 자손대대 물러 줄 유산의 가치, 그리고 그 소중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응천이 없는 밀양을 생각해 보라. 도시의 삭막함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
첫댓글 박희학 고문님께서 신문에 기고하신 글입니다. 카페에 올려 여러 위원님과 공유하고자 하시는 고문님의 뜻이 계셔서 올립니다. 우리 위원님들의 좋은 글들을 이곳에서 함께 접해보는 것도 좋은 일이라 여겨집니다.
응천이라. ㅎ! 의미가 깊은 이름이로군요. 응천이 있어 아랑각 대숲이 있고 응천이 있어 시인의 읊조림도 영남루에서 흘렀을지라.!~ 고이름 참애요.~~~ 좋은 자료 얻어 갑니다.
응천이 밀양강의 옛이름이라는 것을 잘 알앗읍니다 .감사합니다
들꽃님 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