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주의 "제 3회 전국 남.녀 궁도대회" 다녀와서(여무사대회)
20001.8.22~25 세계 도자기 엑스포 박람회 및 제 33회 세종문화 큰잔치 기념 의 제3회 전국 남. 녀 궁도대회를 여주에서 개최를 하였습니다 나는 대회인 8.24일 "청심정"에서 치러지는 여무사대회를 참가하려 동서울 터미널에서 여주까지의 교통편은 30분마다 직행과 고속이 번갈아 운행하여 1시간 30분 정도 걸려서 여주에 도착했습니다
여주에 가는 동안 차창밖으로 스치는 가을 풍경이 한 층 무르익음을 느끼며 가을의 문턱을 넘어선것을 알려라도 주듯이 들녘마다 곡식들이 익어가고 곳곳의 들판에는 누렇게 색이 변하고 알알이 맺힌 벼이삭들이 무게를 실어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경기도 이천을 지나 여주로 가는 동안 길거리 마다 길다란 프랜카드는 이번 세계 도자기 엑스포 박람회를 알리며 관광객들을 반가이 맞이 하고 있었습니다 깨끗히 정리된 길가의 가로수와 꽃들이 흐드러지게 반기며 바람에 살랑 흔들리고 빨간 칸나꽃이 수줍은 둣이 얼굴을 내밀어 붉은 빛을 띄웠습니다
여주의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이미 각 지역에서 올라 오시는 하얗게 깔끔하게 차려입고 활을 어깨에 메고 삼삼오오 도착하고 낯익은 얼굴들이기에 서로 반가이 인사를 나누며 신륵사 주변의 임시 개최지인 경기장에 도착했습니다
오전 10시 반경인데 이미 남자 개인전이 한 창 치르고 있는 중이고 여무사들도 여럿이 보였습니다 이번 대회의 규모는 남자 개인전이 120대이상의 (7인 1조)가 참가의사를 밝혔고 이미 3일째 경기중이고 (남자 개인전은 3일에도 다 치르지 못해서 25일까지 연장되었다) 특히 여무사들도 평상시 7대(7인 1조)에 반해 15대까지 예약을 받은 상태로 거의 100명 가까운 전국의 여무사들이 다른 대회와는 다르게 상당히 많은 인원이 참가를 신청을 했다합니다
이렇게 여주에서 개최한 이번 전국 남. 녀 궁도대회는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었고 언제나 전국대회의 활터의 풍경인 단골 손님들이 오시어 좌판을 벌려 활과 화살 그리고 깍지등 각종 필요한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이날 여무사 대회는 오후 1시에 이곳에서 할 예정이었으니 상상외로 많은 참가 인원때문에 여주의 "청심정"에서 따로 진행한다고 했습니다
이미 도착한 선수들은 가까운 도자기 전시회장에 다니러 가고 남아 있는 선수들도 서로간의 정보를 주고 받으며 분위기는 화기애애 하며 지난번에 탐방한 거창의 아림정 선수들과 대구의 선수들 그리고 인터넷상으로 나를 알아본 선수들과 이야기를 하며 경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교각의 기둥에 커다랗게 써붙여 놓은 이미 치러진 남자 선수들의 개인전 결과가 씌여 있고 이미 15시 15중을 한 남자선수들이 두분이나 있고 대전의 대덕정, 대구의 관덕정 소속의 두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15시 14중한 선수들과 13중을 한 명단이 하얀 백지 위에 줄맞추어 기록되어 지고 있었고 아직도 치르지 않은 예약명단은 교각의 기둥을 도배라도 하듯이 하얗게 뒤덮었습니다
날씨도 화창하게 여름끝을 보여주듯이 아직도 햇볕은 따가움을 줄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우리는 12시가 넘어서 하나, 둘 가슴 설레임으로 각오를 단단히 하고 "청심정"으로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이미 도착해서 습사를 내고 있는 여무사들이 여러명이 보이고.. 진행 하시는 분들의 분주함을 보이며 파랗게 잘 자란 잔디밭 너머 과녁이 3개가 나란히 우리 선수들에게 긴장감을 주었습니다 청심정은 약간 앙사(무겁이 평지가 아닌 약간 올라 선듯한)이다 뒷쪽에서 바람이 제법 세게 블어 와 풍기를 옆으로 세워놓으며 (이번 참가자가 너무 많아 갑자기 준비를 하게된 "청심정"의 사두님을 비롯 사우님들에게 다시 한번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전국 대회에서 자주 보는 얼굴들이기에 밝은 표정으로 서로를 반기고 낯이 설은 선수들이 보여서 더욱 보람이 있었다 국궁의 대중화가 되고 있슴이다
사대에 올라 발시하는 선수들을 뒤에서 바라보면서 표를 어떻게 볼것인가를 생각하고 바람의 세기를 미리 짐작을 하면서 경기를 임하는 태도들이 진지하다 내심 바람때문에 어떻게 쏠 것인가를 염려하는 기색도 보이기도 했습니다 1순, 2순, 3순을 차례로 경기를 마치면서 경기 결과가 그 자리에서 발표되어 지고 기다리는 선수들은 더욱 초조함을 갖게 하고 오후 1시부터 5시가 넘도록 경기는 지속 되었습니다 바람의 세기를 잘 몰라 화살은 거의 과녁 앞(오른쪽)으로 떨어지고 이미 바람을 아는 선수들의 발시에 고전의 깃발이 동그라미를 힘차게 그리며 시관의 "관중"이라는 소리는 크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명궁들도 불(5시 무중)을 쏜다는 말도 있듯이 영원한 일등도 영원한 꼴찌도 없다 나름대로 그날의 바람을 잘 간파하여 경기에 임하면 좋은 시수가 나오고 아무리 평소에 잘 내던 선수라도 잘 맞지 않는 일이 허다하다. 매순을 마칠때마가 희비가 엇갈리고 생각대로 되지 않는 선수들의 아쉬운 표정이 안타까운 모습으로 비출때 서로 서로 격려를 하면서 응원을 해주시고 친분이 돈독한 선수들 사이에는 언니라는 호칭을 불러 다정함으로 설사 처음 본 사이라도 국궁을 한다는 동호인으로 서로에게 미소를 지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1대, 1대 경기를 마치면서 시상권에 어느정도 접어든 선수들은 기다리고 그렇지 않은 선수들은참가상품을 받고 다음에 잘할 것을 다짐하면서 떠나고 시상에 든 선수들은 상금과 푸짐한 상품을 버거울 정도로 많이 받았습니다
경기를 마치고 나서 남은 선수들과 청심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다음 (9.1-3)에 치르는 수원대회를 기약하면서 아쉬운 인사를 하며 헤어졌습니다
이번 대회를 개최한 궁도 경기도지부의 관계자님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거창의 아림정(娥林亭)--전국대회 이모저모...
거창의 2001년 8.10-12(거창연극제) 전국 남녀 궁도대회를 참가하기 위해 10일 저녁 대구행의 심야 버스에 올라 까만밤의 고속도로를 달린다 이른 새벽 대구에 도착했다.. 6시경 지난번에 들렀던 대구의 관덕정에서 습사를 9순을 내고 다시 대구의 서부정류장에 들러 10시차로 거창을 향한다.. 거창으로 가는길에 조금씩 비가 뿌려주고 있었다... 들녁엔 초목들의 녹음들이 물결처럼 바람에 일렁인다.. 거창에 도착하여 노란색을 띈 택시를 타고 국궁장을 향하면서 연극제 프랜카드가 곳곳에 붙어 나부끼고 있었다
거창의 아림정(娥林亭)이 눈에 들어온다 거창의 운동장옆에 정갈히 마련되어진 아림정이 먼길의 여행객을 반기고 있었다 이미 도착한 전국의 남녀 궁사들의 차량들이 넓은 주차시설에 꽉 차 이번 아림정에서 처음으로 개최하는 전국남녀궁도대회를 축하해줌을 보여준다
사대에선 이미 경기에 임하느라 진지한 표정들의 남자 선수들의 거궁은 저 멀리 과녁을 향하고 있었다..
정간에 인사를 드리고..오후 1시에 있는 여무사대회를 대비하여 궁시를 준비해놓고 약간은 설레임의 두근거림을 진정시켜 본다... 먼저 도착한 여무사들과의 정겨운 대화는 오고가고...언제나 여무사의 꿈이신 금산의 서효행명궁님의 자태는 늘 아름답게 눈에 든다.
언제나 그렇듯이 전국대회시 풍경은 하얀 유니폼으로 깨끗하게 차려 입은 남녀궁사들의 외모에서부터 정갈함을 느끼게 한다. 궁도장 밖의 풍경은....활을 판매하는 송무궁,연무궁의 사장님께서 연신 무사들의 궁시를 돌봐주고 계신다.. 그리고 깍지를 작은 책상에 골고루 펼쳐 놓고 손가락에 맞도록 다듬어 주시는 분 한 옆에는 건강식품을 목청돋궈 설명하시는 분도 계시고 예쁜 개량한복을 진열해놓고 판매하는 분도 계시고 건강채크를 하면서 전기 이온기구를 판매하는 분,또 흰티와 바지를 판매하는 분 언제나 그렇게 국궁대회시 단골로 찾아 오는 분들이다... 분주하게 오가는 궁사들 틈에 또한 살아가기 위새 바삐 움직이는 장사하시는 분들 언제나 우리 국궁이 있는 곳에서 함께 동고동락을 하신다...
12시경 거창 아림정의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점심 식사를 대접받고 1시부터 여무사들의 경기가 시작 되었다... 넓게 펼쳐진 잔디밭 멀리 과녁을 향한 여무사들의 진지함이 소슬대던 바람을 재우는 듯 했다.. 오른쪽 언덕의 키큰봉엔 형형색색의 깃발이 태극기와 함께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전국의 여무사 50여명이 참가한 경기를 마치면서 나는 또 부진한 성적에 고개를 떨 구어야 했지만 ... 여자부 경기에서 일등은 강원도 동해의 "쌍용정"소속의 여무사께서 15시 11중으로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이번 대회에서 놀라운 것은 남자부 우승에서도 동해의 "쌍용정"소속의 남자 사우분이었다 이렇게 동해의 쌍용정은 남,녀 부문에서 두개의 우승컵을 걸머쥐었다.. 단체전은 아직 결과를 보지 못했기에 소식을 전해 듣고 올리겠습니다.
나는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고 있다.. 전국의 활터를 돌아보며 탐방기를 쓰는것은 그동안 전국 활터를 가보지 않는 분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 호미숙 접장의 활터 탐방기 10편---부곡정(온깍지복놀이한마당)
세미나 2부는 조영석(8단) 교장님께서발디딤과 몸통의 방향연구에 관한 논문을 설명하시고 구체적으로 실현을 해주시었다... 비정비팔의 의미를 상세히 비교설명으로 충분히 이해가 갔었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기본 비정비팔이 교장님의 이론에 가까웠다 모든 운동의 중심과 힘의 분산에 관한 역학적 비교분석은 정말 감사하게 받아 들인다 그리고 최석규접장님의 남다른 비정비팔과 온깍지에서 거둔 경험담은 정말로 놀라웠다 .위를 절제하는 큰 수술후에 건강을 회복한 동기가 바로 비정비팔의 온깍지를 해서라니 놀랍지 않은가.. 지금은 건장한 체구시며 언제 아프신 분이었는지 전혀 느끼질 못하겠다.
이렇게 온깍지에 관한 토론과 비정비팔에 관한 논쟁이 12시를 넘어 늦게 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피곤한줄도 모르고 온깍지와 국궁에 관한 애정은 밤이 깊어 가는줄도 몰랐다 함께온 가족들은 남편들의 긴긴 토론게 지루하지도 않는지 다른 방에서 남편들의 진지함에 존경스런 눈치들이다...
이렇게 작은방에서 여자회원들과 어린이들이 자고 큰 방에서는 여전히 남자회원들이 열띤 국궁사랑은 3시가 넘도록 이어진다...
새날이 밝았다 드디어 대회를 하는날이다... 밤새 잠을 설친 회원들의 눈이 빨갛게 충혈되었다.. 아침식사를 한후 9시경부터 10순의 경기를 치르기고 하고 우리는 4대까지 순서를 정했다
4순까지 경기를 마치고 5순 내는데 하늘이 갑자기 컴컴해지면서 소나기가 퍼붓시 시작했다 바람이 몹시 불어 솔포를 엎어지게 하고 무겁의 모래들을 휘감아 날리게 하고 있었다 풍기의 펄럭임이 요란스러웠다..
결국에 5순도 마치지 못하고 4순 경기로 대회를 마치고 시상식을 했다 가장 큰 상인 궁체상은 청주 우암정의 사우님과 또 다른 사우분이 받았고 그리고 대살판상과 살판상과 소살판상을 골고루 받았다
나는 복식상(전통을 살린 복장)을 받았고 살판상을 받았다 이번 대회의 참가는 나에게 온깍지에 대한 정의를 제대로 알게한 계기였으며 전통을 살리는 국궁에 관한 체계적 이론을 정립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동안 국궁에 관해 알고 싶어 하고 궁금해 하던것을 이번 온깍지 궁사회의 논문발간으로 인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아무쪼록 온깍지궁사회로 인해 국궁인들의 저변확대와 이론 확립의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번 대회를 치르시느라 애쓰신 온깍지 궁사회 임원님들과 부곡정 사두님과 함께한 회원님드레게 감사를 드린다.. 온깍지 궁사회가 더욱 발전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만 부곡에서의 아름다운 기억을 마무리 하련다...다음 광주의 송무정에서 뵙기를 ...
*********************************************************** 호미숙 접장의 활터 탐방기 9편--"온깍지 궁사회" (부곡정)
지난 며칠간의 탐방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한뒤 바로 8.4-5일간 이틀간의" 온깍지 복놀이 한마당"의 세미나및 대회를 참석차 부곡 하와이를 찾았다. 처음으로 온깍지 궁사회에 가입한 후 행사 참석인 만큼 설레임과 새로움의 각오가 가슴가득했다. 지난 전국대회에서의 부진한 성적을 만회도 할 겸 온깍지에 대한 자세함을 알 수 있는 기회인것이다. 8월이 휴가철과 맞닿아 행락객들이 몰리는 곳 부곡하와이.. 아무래도 하루전에 가야할 것 같아 고속버스 막차로 대구에 도착하여 잠시 머므르고 부곡을 찾았다.. 대구도 그렇고 부곡도 분지라 그런지 왜 그렇게 더운지 부곡하와이 앞을 가르는 길다란 도로가 엿가락 휘어지듯이 휘청이고 흐물거린다.
아이들과 함께 하려 했던 여행인데 여의치 않아 혼자만의 여행이 또 되고 말았다 (시골에 머물겠다고 한다) 부곡하와이 맞은편 커다란 현대식 건물이 깨끗히 단장을 하고 반긴다 "온깍지복놀이한마당"이란 프랜카드가 옆으고 걸려 있고..새로막 단장하는 무겁에는 일하는 작업인부들이 분주히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청주 우암정의 전진명 우총무님께서 반가이 맞아주시고 행수이신 이석희님 부부께서 안내를 해 주셨다...사무실 안에는 부곡정 사두님들과 어르신들이 시원한 바람을 쐬며 반겨 주셨다.
과녁이 4개나 있고 솔포란 옛과녁을 그대로 재현한 과녁이 있었다 이미 도착한 온깍지회원들이 땀방울을 줄줄 흘리면서 습사를 하고 계셨다 사대까지 길게 뻗은 황토밭에 여름햇살이 더욱 내리 쬔다.. 먼 앞으로 펼쳐진 산의 모습이 마치 누워 있는 여인의 모습처럼 길게 뻗어 있었고 부곡하와이의 관광지답게 화려한 간판들이 색색이 수놓고 있었다
앞으로 쭉뻗은 도로엔 행락객들의 줄을 이은 자동차들이 즐비하다.
이내 찬물을 들이키고 습사에 나섰다.. 좀전의 과녁의 위치와 크기가 좀 다르기에 연습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규정이 기존의 145미터보다 좀 더 먼 150미터 그리고 과녁의 크기도 훨씬 작았다 나름대로 석호정에서 연습을 해본다고 해보았지만 거리의 감각에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이곳에서의 습사에서 잘익혀야 했다.
여러 온깎지 회원님들과 습사는 긴장을 더욱 고조 시켰다 초시부터 어떻게 되었는지 관중이다..이시에도...삼시에도..사시에도.. 연중을 하면서 혹여 몰기를 하는게 아닐까 하는 기대감이 생기며 오시째 발시를 했다 그만 앞으로 짧고 말았다... (다행이었다 오시오중을 하면 벌주를 사야 한다는 말을 뒤늦게 들었기에 ㅎㅎㅎ)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온깍지의 진정한 궁체이다 아직도 벗깍지에 치우치기에 좀더 연습을 해야 한다..이번 대회에서는 무엇보다 궁체상이 최고 인데 아직 폼이 나질 않는다...
궁체상을 욕심을 내기엔 무리임을 알았다 다만 옳바른 궁체를 배워감으로 만족하리라 생각하고 그동안 틀에 잡힌 자세들을 바꾸는데 신중을 해보지만 쉽지가 않았다
기존 명궁님들과 오랜 사우들의 궁체를 보면서 탄복만 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저녁 세미나 시간이 될 무렵까지 연습을 하고 하나 , 둘, 회원들이 모여들었다
우리는 커다란 방을 잡아 세미나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번 대회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면 아마도 국궁논문집의 발간일것이다 이번의 논문으로 시작하여 앞으로 더욱 큰 기대를 걸어본다. 논문집안에 실려진 내용에 차례로 설명을 덧붙였다. 온깍지 궁사회의 탄생동기와 그리고 윤준혁옹님의 해방전의 활쏘기 풍속등 여러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활터의 문화에 귀를 쫑긋 세웠다. 연세도 연세지만 어쩌면 그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옛기억들을 모두 기억하시는지 너무도 놀라웠다. 이런 저런 옛이야기를 들으니 시간 가는줄 몰랐다...온깍지 회원님들도 또한 진지한 모습으로 경청을 하셨다 그리고 한수 읊으시는 시조창에 탄복할 정도 였다...전곡을 하기엔 숨이 차기에 하시지 못하셨지만 ..너무도 존경스러웠다.
이렇게 온깍지 궁사회의 세미나는 시간가는지 모르고 저녁은 늦은시간에 마치고 다시 또 계속 되었다
************************************************************ 활터 탐방을 마치며 ---- 2001.7.25~7.31
처음으로 해보는 활터 탐방을 계획하면서 약간 설레임과 그리고 두려움이 있었다 낯선곳의 방문이었기에... 하지만 전국 어디 정을 찾아가도 반가이 맞아주는 전 국궁인의 환대에 감사드린다 대구- 여수- 남원- 곡성- 대전 으로 이어진 탐방은 쉽지는 않았다.. 곡성에서의 전국대회를 참석차 시간을 내어 한 탐방은 나에게 새로움을 주었다. 앞으로 국궁이 발전할 미래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각 정마다 젊어지는 신사들의 입정에 더욱 기뻤다. 전통, 전통하면서도 우리는 많이 소외되어진 이 국궁을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현재도 sayclub.com에서 활을쏘는여인으로 별명을 하여 국궁을 소개하고 있으면서 우리 일반인들이 국궁에 대하여 너무도 무지함을 다시 깨닫곤 한다 양궁은 잘 아는데 반해 전통 활인 국궁은 전혀 모르고 있는것이다 하루에 50여명에게 국궁을 홍보하고 각 정을 소개 하면서 배우라 권유하기도 한다 젊은 층이 두터워 지면 국궁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 믿어지고 앞으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서민운동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면 한다. 그리고 특히 여성국궁인들이 증가 하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전국체전시 여자부를 신설함을 간곡히 바라는 바입니다 사실 각정의 위치는 가장 풍경좋은 지역에 자리잡고 있으며 옛어른들과 함께 하니 예절도 배울수 있고 도를 알 수 있는 곳이며 정적인 운동으로 심신단련에 최고라 자랑스럽다. 앞으로 전국대회시 참가할때마다 그곳의 풍경을 써보려 한다 참가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반간접으로 경험을 얻게하고 전혀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생생하게 중계하여 새로운 국궁의 신비로움을 알려드리고 싶다. 시간이 가능하는대로 계속 호미숙의 활터 탐방기는 이어질 것입니다.
전국 국궁 동호인 여러분 무더운 여름날 건강하시고 원하는 과녁에 관중하는 님들의 꿈이 이뤄지길 바라면서 부족하고 미흡한 저의 탐방기를 마치겠습니다
-- 이상 활터 탐방기를 마치며 --
*********************************************************** 새벽에 도착한 대전에서 머물곳을 찾다가 인터넷 피시방을 찾아 시간을 보내고 유성의 무덕정을 향했다. 2년만에 들러보는 무덕정 정을 이전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아직 옮기기 전이었다. 7일간의 탐방에서의 마지막으로 무덕정을 찾았다 신사 두분이서 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열심히 습사를 하시고 있었다 유성구청 맞은편에 자리한 무덕정은 넓다랗게 야채밭을 지나 과녁이 있었다 바람은 오늬바람에 앞바람까지 세차게 불어온다 개천 옆이라서 언제나 바람이불곤 했었는데
신사님들과 함께 습사를 하기위해 사대에 올르니 바람으로 표을 어디를 봐야 할지 몰라서 일단 줌을 앞으로 옮기고 표를 낮추어 봤다..하지만 화살은 과녁위를 지나 떨어진다 여러번 시도 끝에 표를 잡았다하고 내면 또 짧거나 길거나 아니면 뒤로 난다 시간은 11시경이라 그런지 더위는 표현하지 못할 정도이다 활도 물렀는지 잘 나가지도 않는다... 7일간의 여정이 한꺼번에 피로로 몰려오고 있었다 몇순을 내고 도저히 날도 덥고 몸도 나른하여 쉬기로 했다
신사님들과 이런 저런 대화를 하면서..다시 습사를 해본다 오늘은 신사들에게도 보여드리기 부끄러울 정도로 결과가 좋지 않았다 몇순을 더 내고서는 휴식을 취했다.
좀 시간이 지난뒤 대덕정의 박여무사님께서 오시어 반가이 맞이하고 이제 습사는 그만 해야겠다 생각하여 활을 접고는 대전을 떠나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긴 여정의 활터 탐방은 이렇게 끝난것이다 서울에 도착하니 7일전 떠날때 비가 내렸는데 이렇게 다시 도착하는 그 시간에도 비가 뿌리고 있었다 이제 이 무거운 베낭과 고생한 활을 내려놓고 긴긴 잠을 자고 싶다 현관문을 열자 마자 반기는 희미한 전등불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없는 집을 지키느라 쓸쓸했을 형광불빛과 오늘은 다정히 이야기 하련다.
********************************************************** 7.30 대회의 마지막날이다. 여무사 경기는 어제 마쳤지만 나는 마지막 경기까지 보려고 하루 더 머물기로 하였다 마침 대전의 "대동정"이 8강에 들어 응원도 할 겸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개인전을 다치르는 동안 기다림의 시간이란 지루하리 만큼 길었다 늦은 밤까지 야사를 하면서 개인전을 마치게 되었다 어제까지 시수가 14중을 하신 남자 무사께서 혹시 비교사 할지 긴장을 풀지 못하고 기다리는 모습을 보았다. 거의 남자 개인이 마칠무렵 15시 15중이란 대기록이 나왔다. 이렇게 해서 개인전을 마무리하니 그제서야 단체전 4강전부터 시작되었다 각 정의 대표들의 진지한 발시 하나 하나는 정을 대표하는 자랑스런 화살이 된것이다 그렇게 해서 결승전엔 남원의 관덕정과 전주 천양정이 경쟁하게 되었는데 전주 천양정에서 양사를 하시어 남원의 관덕정이 우승을 차지했다 관덕정은 창설이래 전국 1위를 첨 해본단다... 이렇게 해서 3일간의 대회는 12시 넘어 폐회식을 마치고 기념촬영들을 멋지게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단체전과 개인전에서 입상하신 분들과 작별의 인사를 하고 다음을 기약하면서 송별 인사를 하였다
그동안 심청제릉 주선하신 곡성군님들에게 감사드립니 그리고 반구정 사두님을 비롯하고 무사들에게 감사합니다.... 내년에 또 방문하기를 바라면서...
*********************************************************** 7.29 어제 남원에서 곡성을 와서는 숙소를 잡긴 잡았는데 한개만 있다 한다 일단 저녁식사를 삼겹살로 먹고선 우리 석호정 일행 세명은 곡성의 한 노래방에 들러 한시간 동안 스트레스를 풀면서 내일을 위한 굿판이라도 하듯이 신명나게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셋은 경기 전날의 전야제를 치르고 또 하나의 숙소를 잡기 위해 곡성을 전부 알아 보는데 없었다 먼길을 따라 가보니 겨우 한개의 방을 얻을 수 있었다 석호정의 신사인 최여무사와 함께 밤을 보내는데 영 잠이 안온다 낮에 관덕정에서 습사시 못내 아쉬움이 남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 5시에 모닝콜을 부탁하고 잠을 청해본다... 엎치락 뒤치락하다가 겨우 잠든것이 새벽2시너머...시합전에 몸의 조시를 잘 맞추어야 하는데 그러다 어느새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우리 둘은 준비를 부랴 부랴 하고 새로운 날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올라 기분 좋게 새벽을 맞이하면서 공기를 가르며 도로위를 달렸다 다시 곡성에 찾으니 이미 몇명의 사우들이 습사를 하고 계셨다 오전 7시부터 남자 개인전을 치르고 오후 1시에 여무사대회가 있다
그래서 동료 여무사와 습사를 하면서 어제 활병을 고치고 싶었다 처음 1순을 내보니 모두 뒤로 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줌을 앞으로 바짝 옮기니 과녁을 찾긴 찾은 것이었다 그때 부터 어느정도 줌을 찾은거였다,, 어제는 활 고집을 피운것이었다 앞 바람이 있을 수록 줌을 옮겨서 했어야 했는데 고집이 세서인지 너무 조금 움직임 으로 나타난다. 그제야 조금 표를 잡았다 생각하고 남원으로 습사 하러 갔었다
다시 찾은 남원의 아침.. 상쾌한 바람과 함께 까치가 날아 오르면서 기쁨을 선사해주는 거 같았다. 왠지 모르는 기대가 가슴 뛰게 한다
다시 우리 일행은 대회를 치르기 위해 곡성의 반구정으로 향했다..
오후 한시 여무사들이 9대까지 있었다 신청자수가 좀더 많았는데 참가자는 그정도 였다. 일대부터 발시를 하는데 앞바람이 무척이나 세게 분다 축하 에드벌른이 옆으로 뉘어 질 정도로 바람이 분다 어느정도 내 차례가 다가오면서 긴장을 풀어 보려 커피를 마셔본다 완벽히 준비를 하고 사대에 올랐다.. 초시다 바람을 어느정도 잡아야 할지 도대체를 모르겠다 나름대로 반관정도를 앞으로 내서 발시를 했는데 화살은 과녁뒤로 멀리 떨어진다 다시 두번째 발시...아까 보다 좀더 앞으로 옮겼다 그래도 또 뒤로 떨어지는 화살 세번째 발시할땐 좀더 확실히 해보겠다고 줌손과 깍지 손까지 힘이 들어가고 좀더 세게 당겼다 ...또 뒤로 나간다... 이렇게 화살 3개을 두로 보내니 갑자가 조마 조마 마음이 조린다 4시째 이번만큼은 정말 과녁을 찾아야 하는데 하면서 아까보다 훨씬 더 앞으로 줌을 옮겨 내보았다 ...관중~~~ 너무도 기다리던 관중이란 소리 흥분을 멈추고 다시 정자세로 들어간다 조금전의 거궁자세를 기억하자...하면서 5시째 시위의 밀어내는 힘에 다시 화살은 과녁의 중앙의 홍심에 맞았다...관중~~~ 다행이도 2중으로 1순을 마치고 2순을 준비하는 동안 다시 생각에 잠긴다..
2순째 올라서서 나름대로 아까 터득한 표를 맞추려고 했다 하지만 바람은 풍기를 기역자로 세워놓고 길다란 빨간통로를 만들고 있었다 아까보다 요란하게 불어 온다 어디에 맞출지를 모르겠다 .. 매시마다 꾀만 부려 겨우 1중만 했다.. 이제 정말 마음이 아예 편안했다 장려상도 못하나 보다 하고 3순째 습사인양 하기로 맘먹었다. 1시 과녁을 제대로 보자는 생각과 바람에 너무 신경쓰지 말자고 속으로 생각하고 초시에 관중....2시엔 너무 급한 나머지 과녁바로앞에 떨어지고 말았다 3시 관중 4시 관중 5시 관중....아쉬운 4중을 했다... 이래서 종합성적이 7중으로 3위에서 밀렸다... 각궁죽시가 3위를 차지하고 난 그대로 4위에 머물렀다...
모든 활을 내고서 그제야 모든것이 본인탓임을 알게 됨을 알게 되었다 바람을 못보는 것도 연습 부족인것이다..앞바람이 이렇게 세게 불어오는것은 처음인거 같았다 전국대회를 자주 참가하다 보면 아마도 이와 다른 내가 경험하지 않은 사대의 특징을 알수 있으리라...
여무사들의 개인전을 마치고 남자 개인전이 계속 진행되었다 이번경기는 신청자만 1300여명이라 한다.. 그래서 야사(밤 9시)까지 쉴 새 없이 진행 되었다...
************************************************************ 호미숙 접장의 활터 탐방기 5편 -- 남원 (관덕정)
7월 28일 곡성의 반구정에서는 뜨거운 햇살아래 얼굴에 땀을 흘리면서 경기에 참여하는 남자 사우들의 뒤로 하고 우리 세명은 곧 남원으로 향했다 가는길에 경찰의 검문에 걸려 세명 모두 신분증을 제시하고 무사히 통과를 했다 그리고 남원에 접어 들어 반듯하게 뻗은 길을 따라 광한루가 보이고 길게 뻗은 가로수들이 우리 세명을 환영하듯이 여름바람에 흔들렸다. 전에 춘향제때 참가했던 남원의 관덕정 다시 오랜만에 들러본다 관덕정에 도착하니 매미울음소리가 요란하기도 하여 여름하늘에 울려 퍼진다 가파른 좁은 계단을 헉헉 대고 올라서니 새로 지워진 듯한 건물이 보였다 2년전에 왔을때 볼 수 없던 건물이 있었다 .. 그리고 앞의 과녁이 6개나 놓여있어 먼저보다 웅대하게 달라진 모습에 놀랐다 정간에 정중히 절을 하고 우리는 그곳의 회원님께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나란히 사대에 올라서서 활을 내었다 1순 2순 차례로 활을 내면서 제대로 표를 잡고 있었다 그렇게 5순을 내어 보니 평시수를 넘었다 어느정도 만족하고 내려오려다가 다시 습사를 더하는데 이번에는 너무 엉토당토하지않게 화살이 과녁을 벗어나 떨어진다 .아까와 달라진것이 전혀 없는데 매시마다 화살은 계속 뒤로 나가고 있었다. 문득 활병이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세를 고쳐잡고 또 거궁을 한다 더욱 진지하게 그리고 깍지를 힘차게 ... 그래도 아까 그자리...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다..마음이 조급해 지기 시작한다 내일이 경기인데 이 중요한 시기에 활병이 났다는 생각에 심기가 불편해 오기 시작했다 그러니 아무리 거궁을 하여 활 시위를 당겨 놓아도 이젠 아예아까 보다 더욱 멀리 과녁을 벗어난다... 안되겠다 싶어서 일단 활을 접기로 했다..이렇게 계속 내다간 습관으로 될까 쉬어 보기로 했다..
남원의 관덕정을 내려오면서 내심 불안하다... 내일의 경기가 부담스러워 오기 시작했다... 일행은 곡성으로 다시 떠났다.
*********************************************************** 호미숙 접장의 활터 탐방기 4편 -- 곡성 (반구정)
7월 28일 곡성의 심청제가 열리는 날이다 여수에서 곡성에 가는 국도를 따라 달렸다. 푸르른 녹음이 우거진 시골길을 가로지르는 질주는 정말 시원했다 버스지붕으로 찌는듯한 더위가 내리 퍼붓더라도 스치는 농촌풍경은 다정스레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어린시절 부모님과 함께 하던 들일들이 문득 떠오르며 갑자기 어머님 생각에 잠시 가슴 뭉클해짐도 느껴진다. 중학 시절 충남 연기의 금호중학교 2학년때 우연히 궁도부에 등록하여 멋도 모르고 양궁과 인연을 갖었다. 3개월정도 할 무렵 부모님의 반대로 인해 도중에 하차해야 했던 활... 나이 어렸지만 너무도 가슴아픈 기억이다... 처음으로 마주한 양궁은 나에게 어떠한 기대와 새로운 세계로의 안내였는데 그렇게 어린시절의 꿈은 사라지고 세월이 흐른 지금 양궁이 아닌 국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국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언젠가는 배워야 하겠다고 다짐한지 벌써 25년 세월이 흘렀지만 늘 활에 대한 기억으로 가슴한켠 응어리를 풀고자 3년전 서울의 황학정에 들러 가입절차를 여쭤보게 되어 시작한 국궁이다. 시작한지 얼마안되서 초단에 입단을 하고 전국대회서 우승도 하니 정말 국궁은 나에게 또다른 신세계로의 진입이었다. 시작한지 1년쯤 사업을 다시 시작하면서 잠시 국궁은 일시적으로 멀리 하면서 가끔 시간이 있으면 석호정에 들러 활을 내곤 했다 그리고 올 봄부터 다시 시간이 있어 국궁에 다시 정열을 담아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원도 양구의 전국대회에 참가하고 이번이 두번째 곡성을 찾는 것이다...새로운 각오이다..
우선 곡성터미널에 내려 반구정을 찾아 나섰다. 곳곳에 국궁장 안내판이 세워져 찾기는 쉬웠다 작은 동네어귀를 지나 학교 앞을 따라 좁은 길을 쭉 따라 가니 길가마다 차들이 들어서고 흰유니폼의 남자 사우들이 보였다 오늘은 남자개인전이 치러지고 있었다 차번호를 보니 전국 각지역의 번호들이었다
반구정 입구에 즐비하게 서있는 화환들이 이번 심청제의 축하의 규모를 알 수 있었다 개회식때 참가하지 못해서 제대로 다 쓰지 못하고 뒤늦게 보이는 반구정 분위기만 적습니다..
어느정도 선수들의 경기과정을 보고 있는데 서울의 석호정 소속의 회원 두분이 오시어 우리는 남원의 관덕정으로 습사를 하러 떠났다.
********************************************************** 호미숙 접장의 활터 탐방기 3편 -- 여수 (군자정)
이른 새벽 여수를 향한 차편이 있는 줄 알고 6시에 터미널에 들르니 여수로 곧장 가는 차는 없고 순천에서 환승하는 버스만 있단다 첫차는 7시 30 출발 긴 시간을 기다려 차에 올랐다. 밤새 잠을 잘수 없었기에 차에 오르자마자 잠을 청했다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흔들거림에 몸을 맡기고 하루 일정을 다시 정리 해본다
시골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작은 도시가 눈에 보인다.. 순천이었다...순천에서 내려 순천의 정을 찾을까 하다 여수의 일정에 늦을까 그냥 여수로 향했다. 여수에 도착하니 이른 점심시간이었다. 택시기사에게 여쭈어 여수가 초행길이니 안내를 부탁했다. 아저씨께서 안내해주신곳은 경도가 보이는 곳으로 부두에 내려주셨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경도가 보였다 간판의 글씨가 보일정도로 가까운 거리 2척의 배가 오가는이들을 나르고 있었다 300원의 배삯을 주고 여수바다바람을 맘껏 맞으며 새로움에 가슴 벅차온다 몇분만에 도착한 경도는 첫눈에 식당이 반기고 있었다 벌써 도착한 관광객들이 여기 저기 모여앉아 즐거운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를 곁으로 들마루에 앉아 "하모회"란 것을 먹었다.
다시 바다를 뒤로 하고 주위분들에게 여수의 활터를 안내 받았다. 군자정이란곳을 찾았다. 체육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공원의 한 쪽에 자리한 군자정 아래서 올려다 보니 웅장한 지붕만 보였다 베낭을 둘러메고 활도 메고 오른 군자정 정말 시설이 놀랍도록 잘 되었있었다 군자정 사우들은 낯선 방문객에 의아한 표정이 보였다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습사를 청했다. 왼쪽과 앞쪽에 산이 둘러 있고 오른쪽은 시원하게 축구경기장이 보인다 사두님과 여무사님과와 함께 1관에서 습사를 하니 그래도 다행스레 평시수를 내었다.
편사를 마치고 군자정 사우들은 닭죽과 수박을 내 주셨다. 여러 사우들과 함께하고 다시 습사를 계속 했다 오후시간에 더위를 피하려 늦은 시간까지 습사를 혼자라도 하기로 하고 사우들이 다 내려간뒤 다시 난 과녁을 향해 거궁을 하면서..긴장을 풀지 않고 5순을 더 내었다.
혼자서 습사를 하는동안 활은 아까 습사를 할때 보다 발시하는 모든 것이 만족하다 평 4중을 하고 5순을 마치면서 군자정을 내려오는길 깨끗하게 잘 가꾸어진 체육고원을 천천히 산책을 하면서 여수에서의 또 다른 느낌을 만끽하고 있었다
오늘까지 3순데의 정을 둘러보면서 국궁인들의 우호관계가 아주 돈톡함을 알게 되어 더욱 기뻤다..낯설은 곳이지만 낯설지 않음은 아마도 국궁이란 커다란 끈의 연결이라 생각되어 진다.. 이러한 국궁인들의 일체감이 앞으로 더욱 단결하여 국궁의 대중화를 기대해 본다
*********************************************************** 호미숙 접장의 활터 탐방기 2편 -- 대구 관덕정
대구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시 대구 관덕정을 물어 물어 찾아 갔다 대구 관덕정은 처음으로 방문하는 곳이다 그리 크지 않으면서 말끔하게 푸른잔디가 넓게 깔려 멀리 떨어진 과녁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게 하였다 앞바람이 불어오는듯 하더니만 산세를 타고 뒷바람과 아래로 내리고 있었다 정에 오르니 많은 사우들이 편사를 하고 계셨다 마침 3명의 여무사들도 만날수 있어 더욱 반가왔다 지난 전국대회에서 몇번 뵈었던 여무사님과 그리고 새로 배운다는 신사분과 글을 쓴다는 분과의 상견례를 마치고 우리는 3관에서 습사를 했다 늘 진지하게 자세를 잡아 내려하지만 만족하지 못한 발시는 결과로써 보여준다. 서울의 석호정에서 습사할때와 다르게 이상하게 잘 되지 않았다 다행히 초순에 연사를 하고 마지막 시를 뺐다. 조금은 만족하다 생각하고 2순째 내는데 영 아까와는 다르게 화살은 짧고 말았다 매시마다 중압감이 들어 발시할때 자세가 흐트러지고 있었다 처음으로 방문한 정이기에 더욱 잘해야겠다는 어떤 힘이 몸을 뒤틀게 하고 있었나 보다 3순을 내고서 잠시 휴식 시간 시원한 수박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6명의 사우들과 습사를 다시 했다... 1관에서는 거의 뒤로 나가고 있었다.2번째 발시땐 좀더 줌을 옮겨 앞으로 내보지만 왼팔의 뒷 뿌림이 느껴진다 ...그러니 아무리 앞으로 줌을 내보고 엎어보아도 화살은 아까 그자리였다...몇순을 그렇게 내고 남무사들과 여무사들간의 선의의 내기를 했다..(여무사 3명 :남무사 3명) 3:3으로 초순엔 모두가 1중씩만 하여 비기고 두번째순 부터는 치열하게 경쟁을 하였다 엎치락 뒤치락하면서 세 순을 다 낸 결과 11:10으로 여무사들의 승이었다 성 대결을 하다 보니 우리 여무사들은 더욱 결집력이 생기고 욕심은 또 과녁을 벗어나는 활살이 되어 우리들은 즐거운 경쟁을 하였다. 이렇게 대구 관덕정에서 즐겁게 습사를 마치고 내려오면서 곡성에서 만나자는 기약을 하고 내려왔다.
어제의 대구 팔공정에서는 여무사를 못 보았는데 이곳 관덕정에서 3명의 여무사를 만나니 여무사의 한명으로써 더욱 반가왔다 각 정마다 여무사들의 소수에 조금은 국궁에 관한 여자들의 관심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 지금 전통적으로 활터엔 늘 남자들이 훨씬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남자들만의 전유물이 되다시피한다.
전국 대회규모에서만 봐도 남자 출전 선수에 비해 10%정도 밖에 안되곤 했다 일단 우리 국궁을 한다는 여무사들도 같은 여자들에게 홍보를 더 해야겠다고 느꼈다
특히 전국체전에 남자들로만 구성되어 진것을 여자들에게도 기회를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모든 경기가 남녀부가 따로 있는데 반해 국궁만큼은 전혀 그렇질 못하다 전국체전시 여자부를 신설하여 우리 여성들에게도 각 도나 시를 대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면 한다.(실력향상및 대중화에 더욱 여파가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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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호미] 호미숙 접장의 활터 탐방기 1편 -- 대구 팔공정
25일 대구의 팔공정에서
모처럼 아이들이 방학을 맞이하여 시골(공주)로 떠나고 대구에 볼일이 있어서 전국 곡성대회까지 일정을 잡아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기로 계획을 세웠다 커다란 배낭에 준비한 옷가지와 활을 메고 동서울 터미널을 찾았다 시간은 11시30분차 대구까지 예정시간이 4시간 정도... 설레이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버스안에는 몇몇사람들이 여행복 차림으로 뛰엄 뛰엄 앉아서 담소를 나누며 즐거워 하는 표정들이 밝아서 맑은 유리창을 더욱 빛나게해서 환하다 차창밖으로 스치는 여름의 농촌풍경은 옛 고향의 정취를 느끼게 하고 29일 있을 전남 곡성대회에 남다른 각오를 되새김해본다
예정보다 30분 일찍 도착한 서대구에 내려서 대구 팔공정을 찾았다 산세는 조용히 활짝핀 꽃들이 먼길에서 온 나를 반긴다 사대에는 편사를 진행하느라 사우님들이 진지하게 거궁을 하고 계시었다 사범님께서 반가이 맞아 주시며 습사를 하라고 하셨다.. 혼자만의 타정의 발걸음이지만 국궁인은 언제나 전국동호회인 답게 친절하게 맞이해주셨다
커다란 사정 옆으로 등나무가 푸르게 지붕을 만들고 그아래 휴식공간을 활용하도록 벤취가 말끔히 준비되었고 한 켠에서는 젊은 신사가 주살을 당기고 있었다.. 국궁에도 젊은 바람이 불어오길 기대하던차에 아주 젊은 신사의 진지한 태도에 밝은 국궁의 미래가 보이는것 같았다. 그동안 일반인들에게 약간은 소외된 듯한 국궁이 씁쓸했었는데 각 정마다 하나, 둘 늘어가는 젊은이들의 잦은 발걸음이 미래를 짐작할 수 있어 궁도인의 한명으로 기쁨이었다.
편사를 하는 맨 오른편에 자리를 잡고 거궁을 해본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풍기만이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발시한 화살은 과녁을 벗어나 멀리 떨어지고 있었다.. 긴장해서 일까 타정에 낯설움일까...자세의 흐트러짐이 느껴진다 줌손을 버텨 보지만 도저히, 흔들림이 느낄정도로 움직이 있다 시위를 당겨 깍지를 놓아 보는데 깍지에 걸려서일까 좀 늦어지면서 화살은 뒤로 떨어졌다. 매순 평균 3중도 안되고 말았다. 팔공정사우들의 편사가 마치고 늦은 시간까지 10순 정도 활을 내고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내려왔다.
팔공정사우님들의 환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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